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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6 화

작가: 강이슬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0-29 19:42:56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 없이 서정원은 유기견을 안고 동물 병원으로 달려갔다.

아까 그녀가 몸을 날려 강아지를 구하긴 했지만 강아지 앞다리는 이미 차에 치인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을 확인한 그녀는 지각할 것이 분명했다.

서정원은 잠시 생각에 빠지더니 이내 최성운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죠?”

전화를 받은 최성운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사정이 좀 생겨서 늦게 출근할 것 같네요.”

서정원은 늦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가 설명하기도 전에 휴대폰 너머에선 소리가 났다.

“이런 사소한 일은 제게 얘기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상대는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서정원은 입을 삐쭉거리며 남자가 참 차가운 나머지 말 한마디도 더 하지 않으려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쨌든 그녀는 이미 그에게 알렸다. 그녀는 의사에게 유기견에 대한 정밀 검사를 부탁했고 다행히 강아지는 찰과상만 있을 뿐 큰 문제는 없었다.

“입원하면서 경과를 지켜봐도 되나요?”

서정원은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는 듯했다.

의사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물론이죠.”

서정원은 40만 원을 내고 강아지를 입원시켰다. 그녀는 며칠 동안 강아지를 입원시킨 후 좋은 주인에게 입양시킬 생각이었다.

그렇게 강아지를 입원시키고 운성 그룹으로 서둘러 도착했을 땐 이미 11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드디어 출근하셨네요? 지금이 몇 시인가 보세요!”

서정원이 비서팀으로 발 들이자마자 하은별이 씩씩거리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제가 사정이 생겨서 좀 늦었네요.”

서정원은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정이 있었다고요?”

하은별은 코웃음을 치며 잔뜩 비아냥거리는 어투로 서정원을 향해 말했다.

“저기요, 서정원 씨. 출근한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무단결근을 하세요? 정말 본인이 뭐라도 된 줄 아셨어요?”

하은별의 질책에도 서정원은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첫째, 전 지각을 했지 무단결근을 하진 않았어요. 둘째, 전 이미 늦는다고 얘기했으니 그럼 지각이 아닌 거죠.”

“이젠 핑계를 대시네요? 언제 저한테 늦는다고 얘기하셨죠?”

하은별은 서정원에게 손가락질을 해대며 잔뜩 사나워진 눈빛으로 말했다.

“서정원 씨, 아무 이유 없이 무단결근을 하셨으니 당신은 해고에요!”

눈앞에 있는 여자의 악의를 느낀 서정원은 담담한 표정으로 자신을 짚고 있던 손가락을 쳐냈고 살짝 올라간 입꼬리엔 비웃음이 묻어있었다.

“전 이미 최 대표님에게 늦는다고 얘기했어요. 그런데 하 비서님이 무단결근을 이유로 저를 자른다고 하시니 최 대표님에게 늦는다고 말해도 소용이 없다, 최 대표님에게 그런 권리가 없다고 알아들어도 되나요?”

사람들 앞에서 서정원이 반박을 해오자 하은별은 얼굴이 뜨거워졌고 이내 서정원을 끌고 대표이사실로 갔다.

“거짓말하지 마세요! 제가 지금 당장 최 대표님께 확인할 거예요!”

“그러세요.”

서정원은 흔쾌히 대답했다.

‘어젯밤의 그 일도 이번에 함께 받아내야겠어.’

하은별은 서정원을 끌고 대표이사실 문 앞에 도착했다. 손으로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화장도 고치던 그녀는 이내 노크하였다.

그런 하은별의 모습에 비해 서정원은 초라한 모습이었다.

깔끔했던 정장 치마는 유기견을 구하고 나니 여기저기 주름이 생겨버렸고 가슴 앞쪽엔 강아지 몸에 붙어있던 흙으로 가득 얼룩져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드러난 하은별의 수줍어하는 모습에 서정원은 그제야 하은별이 왜 자신을 번마다 엿 먹이는지 알아챘다.

하은별은 최성운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녀는 마침 최성운의 약혼녀였다.

‘어쩐지 하은별이 매번 날 째려본다고 했더니.’

“들어오세요.”

최성운의 낮게 깔린 목소리가 들려오자 하은별은 자신이 가장 매혹적인 것 같은 미소를 지으며 문을 열었다.

들어가자마자 하은별의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서정원이 앞을 확인하자 최성운의 옆엔 여자 한 명이 서 있었다.

갈색에 웨이브 펌을 한 머리, 빨간색 스커트, 화려한 메이크업을 한 스타일리시한 여자가 서 있었다.

‘아니 이 사람은 아침에 하마터면 유기견을 칠 뻔하고 나를 욕하고 가던 사람 아냐?’

“최 대표님, 이건 다음 시즌에 공개할 메인 제품입니다...”

여자는 최성운에게 찰싹 붙으며 매혹적인 눈빛으로 최성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정원은 그제야 이 여자가 운성 그룹의 직원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어쩐지 익숙하다 했어.’

게다가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니 아마 또 최성운을 사모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이 남자는 도대체 주위에 이런 여자가 몇이나 되는 거야?!’

서정원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고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최성운을 쳐다보았다.

검은 아르마니 수제 정장 세트는 그의 완벽한 몸매 비율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었고 진한 눈썹과 오똑한 코, 그리고 섹시함이 묻어나는 얇은 입술까지 온몸에서 고귀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고 마치 신이 제일 완벽하게 만들어 낸 총아 같았다.

확실히 돈도 많고 잘생기기까지 한 남자는 수많은 여자를 매료시켰다.

하지만 그 수많은 여자 중 서정원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렇게 주위에 여자가 많이 꼬이고 오만하고 잘난 척이 심한 남자는 그녀의 취향이 아니었다.

‘됐어, 어차피 저 사람과는 3개월 후에 파혼할 사이인데 뭐. 주위에 여자가 꼬이던 많던 나랑 무슨 상관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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