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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9 화

없다고?

그렇다면 어릴 적 그 소녀가 서정원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최성운은 금세 눈빛이 어두워졌고 그의 준수한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언뜻 스쳤다.

서정원은 영문을 알 수 없다고 생각하며 침묵했다.

'최성운은 무슨 뜻일까? 내가 납치당한 적이 있길 바라는 걸까?'

두 사람은 돌아가는 길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자 이진숙이 최성운에게 빨간색 초대장을 건넸다.

“이번 주말은 할아버지 칠순 잔치야. 잊지 마.”

손혁수의 칠순 잔치는 해성시에서 가장 호화로운 로운 호텔에서 열리는데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은 전부 유명 인사들이었다.

서정원은 이런 파티를 같잖게 생각했지만 이진숙이 아침 일찍 그녀를 깨웠다.

이진숙은 냉랭한 얼굴로 서정원을 흘겨봤다.

“우리 최씨 가문에 먹칠하지 마!”

파티는 성황리에 진행되어 아주 떠들썩했지만 서정원은 한없이 지루하기만 했다. 그녀는 사람들 틈 사이에 서서 주목받는 남자를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바람을 쐬러 옥상으로 향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몇 걸음 가지 않아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나 그녀의 길을 가로막았다. 손윤서와 그녀의 친구들이었다.

손윤서는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흰 손가락에는 반짝거리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끼워져 있었는데 그녀를 더욱 고귀하고 대범해 보이게 했다.

손윤서는 일부러 서정원을 힐끗 보면서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보여? 이건 세계적인 거장 에이디가 디자인한 거야. 전 세계 한정판인데 작년 내 생일을 위해 우리 할아버지가 특별히 파리 경매장에서 낙찰받으셨어.”

“너무 예쁘다!”

손윤서의 친구들은 끊임없이 칭찬했다.

“이렇게 고귀한 반지는 윤서 너에게만 잘 어울릴 거야.”

참 시시한 짓거리였다.

서정원은 손윤서가 끼고 있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힐끗 보았다. 예쁘기는 하지만 다이아몬드가 조금 작았다. 서정원의 할아버지가 서정원에게 선물해 준 것보다는 훨씬 뒤떨어졌다.

“좀 비켜줄래요?”

서정원은 그들의 곁을 지나쳤고 꼿꼿이 앞만 바라보며 걸어갔다.

등 뒤에서 손윤서 일행의 경멸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촌뜨기는 역시 촌뜨기라니까!”

서정원은 옥상에서 한참을 있다가 다시 파티장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그녀를 손가락질하며 큰 소리로 말했다.

“이 사람이에요! 아까 제가 본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었어요!”

서정원은 걸음을 멈췄다. 어디 아픈 사람인 걸까? 왜 뜬금없이 그녀를 손가락질한단 말인가?

직원의 말을 들은 손윤서는 빠른 걸음으로 서정원에게 다가가더니 소리를 질렀다.

“서정원 씨, 정말 당신이 내 다이아몬드 반지를 훔쳤어요?”

‘다이아몬드 반지를 훔치다니? 무슨 헛소리지?’

서정원은 눈살을 찌푸리며 손윤서를 바라봤다.

“무슨 다이아몬드 반지요?”

손윤서의 친구들도 다가와서 서정원을 질책했다.

“정말 사람 겉만 봐서는 모른다더니. 최 대표님의 약혼녀가 도둑일 줄이야.”

“약혼녀라니? 시골에서 올라온 촌뜨기지. 아마 살면서 이렇게 귀한 다이아몬드 반지를 본 적도 없을걸? 살 능력이 안 되니까 훔친 거겠지.”

“윤서야, 봐주지 말고 당장 신고해!”

서정원은 그제야 깨달았다. 그들은 서정원이 반지를 훔쳤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서정원은 손윤서의 손을 힐끗 바라보았다. 조금 전 그 다이아몬드 반지가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야?”

주위가 소란스러워지자 손혁수가 지팡이를 짚고 다가왔다.

“할아버지, 제 편 좀 들어주세요.”

손윤서는 억울한 표정으로 손혁수의 팔에 팔짱을 끼더니 노기등등하게 서정원을 쏘아봤다.

“서정원 씨가 할아버지가 선물로 준 제 다이아몬드 반지를 훔쳤어요.”

손혁수는 위로하듯 손윤서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서정원을 바라봤다.

“서정원 씨, 우리 윤서의 다이아몬드 반지를 가져간 거예요?”

서정원은 덤덤하게 웃었다.

“아뇨.”

손혁수는 미간을 구겼다.

“겨우 다이아몬드 반지라지만 우리 윤서가 그걸 엄청 마음에 들어 했어요. 서정원 씨도 그게 마음에 들었다면 다음에 제가 더 좋은 걸 선물해 줄게요. 대신 지금 그 반지를 윤서에게 돌려줬으면 해요.”

서정원은 어이가 없었다.

“전 가져간 적이 없는데 어떻게 돌려주죠?”

“서정원 씨, 참 뻔뻔하네요. 당신이 훔친 걸 봤다는 사람이 있는데 오리발을 내미는 거예요?”

손윤서의 옆에 있던 백유란이 조금 전 서정원을 가리켰던 직원을 끌고 와서 화를 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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