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군사 보고서를 받은 숙청제는 흥분한 나머지 온몸의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송석석, 송회안의 여식이자 진국공부의 적녀. 그녀가 이렇게 뛰어나다니, 이방보다 훨씬 뛰어났다.이리성 함락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탁자를 치며 크게 웃었다. "좋다, 좋아. 장군의 집안에는 나약한 여식이 없구나."그는 즉시 승상과 병부 상서를 불러들여, 승전보를 보여주었다. 목승상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이리성이 회복되었군요. 송석석의 공이 크옵니다. 그녀가 식량 창고를 점령하고 지켰기에 보급을 줄일 수 있었사옵니다. 이로 인해 상국은 얼마나 많은 식량과 은전을 절약했는지 모르옵니다. 형님, 저세상에서 보이십니까? 그대의 여식이 정말 대단합니다. 송씨 가문의 명예를 잇고 있습니다."병부 상서 이덕회도 흥분한 나머지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저희 상국은 앞서 송회안이 있었고, 뒤에는 북명왕이 있으며, 이제는 송석석이 있사옵니다. 저희 조정의 젊은 무장(武將) 중 두 명은 명장으로 불릴 만하옵니다. 신구 교체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사옵니다."숙청제는 눈에 띄는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남쪽 변경에 이제 시몬만 남았다는 것이다. 시몬을 함락시키기만 하면 사국은 반격할 힘이 없을 것이다. 사국이 물러나면 서경이 남쪽 변경 전장에 머무를 이유가 없다. 서경이 성릉관에서 우리와 다시 한번 싸우지 않는 한 말이다."목승상은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말했다. "남쪽 변경이 곧 돌아오겠군요. 노신이 살아서 남쪽 변경의 회복을 볼 수 있다니, 죽어도 여한이 없사옵니다."이덕회는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전하, 이는 모두 전하께서 인재를 잘 활용하신 덕분이옵니다. 전하께서 송석석을 남쪽 변경으로 보내 북명왕을 도와 이리성을 함락시키고, 많은 식량과 군수품을 확보하도록 하셨사옵니다. 저는 서경 사람들이 남쪽 변경 전장에 온 것은 저희에게 군수품과 식량을 보내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될 정도이옵니다."사실 송석석은 황제가 보낸 것이 아니었지만, 여기서는
먼저 5품 장군을 수여한 뒤 4품 무관직을 수여할 것을 약속했으니, 이는 숙청제가 송석석에게 얼마나 큰 기대를 걸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었다.승상은 이에 대해 의견이 없었고, 이 이례적인 승진은 실로 송석석의 능력이 아닐 수 없었다. 목 승상이 말했다."원군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이방 장군이 약속한 기한은 지났습니다."숙청제는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이내 누그러뜨렸다."눈이 오는 날은 확실히 오는 길이 험하군 그래."이덕회가 말했다."폐하, 송석석이 5품 무덕 장군으로 승진한 반면, 전 장군과 이방 장군은 현재 5품 무략장군으로 품계가 송 장군보다 낮습니다."전북망과 이방이 큰 공헌을 하여 서경과의 평화 조약을 체결하고, 전쟁을 멈추고 국경선을 세웠으니 이 공로는 송석석이 북명왕을 도와 성을 점령하는 데 공로를 한 것보다 크다는 걸 암시했다.따라서, 이덕회가 이 말을 덧붙인 것이다. 그러자 숙청제가 말했다. "무엇이 문제인가? 두 사람의 공적은 이미 내가 이루어주지 않았는가?"이덕회는 머리를 긁적였고, 이 일을 하마터면 잊을 뻔했다. 전북망이 전공으로 장가를 들려 했을 때, 그는 이자가 그다지 쓸모없다고 느꼈지만 황제는 굳이 젊은 장군들을 지원하겠다고 고집했으니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확실히 지금 무장은 춘궁기이니 황제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틀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송씨 가문에는 식객 노릇을 하는 자는 한 명도 없었다. 숙청제는 아직 몇 가지 사항을 명확하게 조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이방에 대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고, 황제가 보낸 밀서에서 성릉관 대첩을 언급한 것과 서경의 달라진 태도로 보아 그 또한 성릉관 전투에 문제가 있다고 느꼈다.잠입 수사가 이뤄졌지만 아직까지 성과는 나오지 않고 있었고, 현재는 남강의 전투가 더 중요했다."아직 전방 전투는 치열하다, 그러니 이리성을 함락하는 일은 조회 때 언급할 수 있지만 송석석의 공로는 당분간 언급하지 않겠다. 대첩이 끝난 후 돌아가 공적을 논할 테고, 짐은 절대 그
두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 알현했다."말장(末將, 장군을 스스로 낮추는 말)전북망이 원수님을 뵈옵니다!""말장 이방이 원수님을 뵈옵니다!"사여묵은 고개를 들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드디어 왔구나."전북망이 대답했다."오는 길에 폭설이 내려 길이 막혀 늦었습니다, 벌을 달게 받겠습니다.""하늘이 도와주지 않았군, 이는 장군의 잘못이 아니네."사여묵은 송석석을 힐끗 쳐다보았고, 그녀는 단지 한 번 쳐다볼 뿐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을 보고 둘 사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방천허와 임 장군, 송씨 가문의 장군 두 명이 전북망이 온 것을 보자 그를 훑어보았고, 과연 용모가 준수하고 남자다운 기개가 있어 만족스러워했다.결국 송씨 부인이 직접 고른 사위이니 어찌 나쁠 수 있겠는가?방천허는 앞으로 나아가 전북망의 어깨를 두드리곤 웃으며 말했다."전 장군님, 오늘 드디어 뵙게 되었군요. 장군님께서는 훌륭한 부인을 얻으셔서 매우 좋으시겠습니다."임 장군도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거들었다."저도 축하드립니다, 두 부부가 힘을 합쳐 공을 세우니 반드시 장군님 댁의 가문을 다시 빛낼 수 있을 겁이다.""전 장군님, 장군님의 부인은 이토록 싸움에 능하고 뛰어나게 용맹스러우니, 저를 비롯한 남정네들이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전북망은 잠시 넋을 잃었다, 자신이 이방에게 장가간 일을 이곳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다는 말인가?그들은 송회안의 옛 부하인데, 어째서 이방을 아내로 맞은 것을 축하하고 있는 거지?그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감히 함부로 말을 하지 못하고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옆에 있던 이방은 조금 자랑스러워했다, 그들의 혼사가 무장의 인정을 받은 것 같았고 당연히 장군은 여장군과 혼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겼다. 송석석과 같은 소위 대갓집 규수들은 남자들이 가져다주는 영광을 누릴 줄만 알고, 자리에 있는 장군들은 모두 피를 흘리며 싸우는 최전방 무장들이니 당연히 이 도리를 알 것이다.그러자 그녀는 미소를 지은
송석석은 그녀의 힐문을 듣고도 화를 내지 않았고, 담담하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언급할 필요도 없는 사소한 일이라 말하지 않았습니다."방천허는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이혼이라니요? 왜 이혼하려는 거죠?"그러자 이방이 대답했다."성릉관 대첩 이후, 성상께서는 저를 장군에게 평처로 하사하셨고, 송 낭자는 저를 용납하실 수 없으셨기에 성상께 이혼을 청하였습니다."이 말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진실의 전부는 아니었다. 그녀는 그들이 전공으로 황제에게 결혼을 청한 것은 언급하지 않았고, 이곳에 있던 장군들이 송석석이 질투에 눈이 멀어 두 사람의 결혼을 용납하지 못해 이혼을 청한 거라고 여기길 바랐다. 어쨌든 송석석은 국공부의 적녀이기도 하지만, 남강 전장에서 신분을 따지자면 송석석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송석석은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두 분은 성릉관에서 큰 공을 세웠고, 두 분의 전공으로 성상께 혼인을 요청하셨습니다. 그리고 전 장군께서는 돌아오셔서 저에게 하신 첫 마디가 바로 이를 이행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제 생각에, 군자는 남의 좋은 일을 도와 이루게 하는 것인데, 두 분이 진심으로 사랑하시니 제가 이혼을 요청하여 두 사람의 혼인을 성사시키는 것 또한 하나의 공덕이라고 할 수 있지요."이 말을 들은 방천허는 노발대발했다."이게 도대체 무슨 헛소리입니까? 전공으로 처가 식구들에게 혜택을 주지 않은 것도 모자라서 다른 여인에게 장가를 가다니요? 전 장군님, 이는 실로 야박하고, 비정하기 그지없습니다."전북망은 송석석을 다시 쳐다보았고, 마음속에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현재 그는 혼인 문제로 다시 말다툼을 벌이니 싫증이 날 지경이었다. 그는 속으로 송석석을 원망했다, 왜 그가 오기 전에 이 일을 그들에게 말하지 않아서 상황을 이렇게 만든 걸까! 게다가 방천허는 5품 장군에 불과했고, 군대에서 연륜이 높다는 이유로 그에게 무례하게 대하는 것은 정말 기만적이었다.이방은 방천허의 비난을 받아들이지 않고 말했다."저희는 전공으로 성상
사여묵을 포함해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그녀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사여묵은 송석석을 보았고, 송석석은 눈시울을 붉힌 채 사여묵과 눈을 마주치자 고개를 약간 숙였다.방천허와 임 장군, 그리고 송회안의 옛 부하들도 이 비보를 듣자 충격을 받은 듯했다."어찌 이럴 수가……"송석석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8개월 전, 진성에 잠복해 있던 서경 첩자들이 모두 출동해 저희 집에서…… 저와 함께 장군 댁으로 간 몇 명을 제외하고 모두 목숨을 잃었습니다.""이럴 수가."장군들은 이 비보를 믿을 수 없었다, 송 원수는 여섯 아들을 데리고 전장에서 전사했고, 그의 가족들도 전멸했으니 이는 실로 참혹했다.하지만 서경의 첩자들은 미친 것일까? 왜 이런 짓을 벌인 거지?"송석석 낭자, 이런 일까지 숨기다니 도대체 무슨 생각인 겁니까?"이방은 도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만!" 사여묵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두 사람은 얼마나 많은 병사와 말을 데리고 왔는지 보고하라."전북망은 뺨을 문지르며 대답했다."원수님에게 보고합니다, 경군 10만 명, 신화영장병(神火營將士)1만 명, 오현갑군(五玄甲軍)1만 명입니다."사여묵은 송석석을 보며 말했다."송 장군, 1만 현갑군을 자네가 통솔한다. 신화영은 방 장군이 통솔하도록. 오늘 밤 성외 진영에 배치되어 내일 훈련을 할 것이다."이때, 이방이 큰 소리로 말했다."송 장군? 송석석? 송 낭자가 무슨 근거로 장군입니까? 원수의 권력으로 장군의 지위를 하사하신 것 아닙니까? 장군의 지위를 하사하는 것도 설득력이 있어야지, 부형의 공을 빌려 장군 지위를 아무렇게나 하사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 싸우는 장병들이 이를 어찌 납득할 수 있겠습니까?"그러자 사여묵이 냉정하게 말했다."송 장군은 다섯 번의 전투에 참여하여 수많은 적을 죽였고, 성안으로 침입해 성문을 열고 3천 명의 병마를 이끌고 거의 3만 명에 달하는 사서 연합군과 전투를 벌여 식량 창고를 힘겹게 지켜냈다. 그녀의 공로는 이
전북망은 이방의 손을 끌어당기며 말했다."원수님, 진정하시기 바랍니다. 이방 장군은 충동적이었을 뿐, 원수님에게 반박할 생각은 없었습니다."사여묵은 냉랭했다."만약 장군이 군령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지금 당장 남강을 떠나도록 하시오. 본 원수가 필요한 것은 절대적으로 복종을 하는 무장이오."이방은 내키지 않았지만 감히 대꾸도 하지 못했고, 그저 차갑게 송석석을 바라볼 뿐이었다.국공부의 귀녀는 당연히 모두가 받들 것이고, 타고난 부귀가 있는데 어찌 미천한 장군의 딸과 비교를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녀는 양심에 부끄럽지 않았고, 지금 그녀가 가진 것은 열심히 노력해 얻어낸 것이다.송석석처럼 모든 공로가 그녀의 손에 자동으로 들어온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녀는 마지못해 전북망과 함께 물러났고, 떠날 때 말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말장 무직은 보잘것 없고 출신도 귀하지 않아 원수님께 감히 말씀을 드릴 자격도 없습니다. 그러니 원수님의 군령에 복종을 하겠습니다."이 말에는 자연스럽게 송석석을 내포하고 있었다.그녀는 송석석이 달려와 그녀에게 따지기를 바랐지만, 송석석은 가만히 서서 눈물을 글썽이며 불쌍한 표정으로 제자리에 서 있었다.한마디도 꺼내지 않는 송석석의 모습에 이방은 당황했다. 언젠가 그녀는 송석석의 두꺼운 낯짝을 벗겨내 온 세상에 그녀가 부형의 옛 공로를 이용한 계략을 알리고, 장군들에게 멸시를 당하게 할 것을 다짐했다. 전북망과 이방이 나간 후, 방천허는 쪼그리고 앉아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원수와 여섯 명의 소장군이 떠났고, 부인과 소부인, 소공자도 모두 세상을 떠났다. 후부에는 이제 송석석 단 한 명뿐이었다. 울고 있는 사람은 방천허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장군들도 몰래 눈물을 닦고 있었다.사여묵조차도 눈시울이 붉어졌다.송석석도 눈물이 핑 돌았지만, 이내 눈물을 참아냈다.그녀는 이미 너무 많이 울었고, 울 때마다 무너져 내리곤 했다. 그녀는 참아야 했다.송석석은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로 천천히 말을 꺼냈다
어쩐지, 그녀는 서경 사람이 사국인인 척 남강 전장에 나간 걸 알자, 홀로 천리를 달려와 그에게 소식을 전했더라니. "진정이 되면 나에게 고하도록 하시오."사여묵은 그녀의 곁에 앉았고, 그의 큰 덩치는 장벽과도 같았다. 송석석은 한결 차분해진 상태로 말을 꺼냈다. "장군님께서 더 아시고 싶으신 게 있으십니까?"사여묵은 어두운 눈빛을 한 채 말했다."모든 것을 알고 싶소, 왜 갑자기 시집을 갔는지, 시집을 간 후에 일어난 일들과, 서경의 첩자가 후부를 학살하기 전과 후에 일어난 일들 말이오."송석석은 그가 왜 자신의 혼인에 대해서 알고 싶어하는지 몰랐지만, 감정이 실리지 않게 사실대로 말하려고 노력했다."제가 매산 만종문에서 돌아왔을 때 부형의 희생을 알게 되었고, 어머니에게 남강 전장에 나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셨고, 아버지와 형제들의 희생에 충격이 크셨던 탓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우셨죠…… 어머니께서는 저를 진성으로 시집을 가게 한 뒤 아이를 낳고 안정된 삶을 살도록 강요하셨고, 저를 위해 1년 동안 혼담을 꺼내고 1년 동안 규칙을 배우게 하셨죠."사여묵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내 기억으로 장군은 그렇게 순종적인 사람이 아니었는데 말이지."송석석의 눈빛에는 의심이 스쳐 지나갔고, 그의 말이 옳았지만 그가 어떻게 그녀의 성격을 알고 있었던 거지?"예, 하지만 집안에 변고가 생겨 노약자와 아이들만 남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뜻을 받아들여 대갓집 규수가 되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어머니께서도 저를 위해 혼사를 선택하셨고, 많은 사람들 중 전북망을 선택하신 겁니다. 사실 어머니께서는 무장을 원하지 않으셨지만, 제가 세가에 시집가는 것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 두려워하셨죠. 세가의 규율은 엄격하고 집안일도 많아서, 어머니께서는 제가 이를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제가 괴롭힘을 당하든, 괴롭히든 둘 중 하나의 삶을 살 거라고 생각하셨고, 이런 삶도 안정적이지 않다고 느끼셨죠.""그리고 선비도 저와
송석석이 말했다."이것은 몰상식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나머지 일들이 그렇다고 할 수 있죠."그녀는 전씨 가문이 그녀의 혼수를 노리고, 그녀에게 질투심이 가득하고 불효한 것으로 누명을 씌워 그녀를 문밖으로 못 나가게 했던 일들을 늘어놓았다."이거야말로 몰상식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폐하께서 아버지에게 진국공을 하사하시고, 저와 전북망의 이혼을 허락하신 뒤 저의 혼수를 모두 가져갈 수 있게 해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사여묵의 눈은 분노로 불타올랐다."그들이 감히 장군을 이토록 괴롭히고 억울하게 했단 말이오?""저는 억울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송석석은 무릎에 손을 얹고 사여묵을 곁눈질로 바라보았고, 눈 밑의 미인 점은 피처럼 선명했다. "제가 그에게 정이 있었다면 억울했을 텐데 저에게는 장군부를 떠나는 것이 해방이었습니다, 그들의 계획도 성공하지 못했죠. 원수님께서도 방금 이방이 저에게 분노하신 것을 보셨을 테지만, 그녀가 마음에 들어 하는 남자를 저는 마음에 두지도 않았습니다."이방은 그녀를 모욕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가볍게 무시를 하며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그렇게 그녀는 소탈하게 혼수를 가지고 장군부를 떠나 국공부 적녀의 존영을 누리고 있으니 이방은 달갑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이방과 전북망 사이의 눈빛을 보면 그들 부부 관계는 좋은 편이 아니었고, 심지어 약간의 불화도 있었다. 사여묵은 한참 동안 그녀를 쳐다보더니 천천히 말했다."송씨 집안 사람들은 결코 허리를 굽히지 않아야 하오, 석석 장군, 계속해서 버티시오!"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이내 이어갔다."성릉관 전투는 성상께서 조사를 하실 거요, 그때가 되면 밝혀질 것이고 누군가는 이 일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방식은 아닐 수도 있소."송석석은 알고 있다.서경 사람들은 극도로 체면을 좋아하며, 그들은 차라리 이런 식으로 복수를 할지언정, 자신들의 태자가 포로로 잡혀 모욕을 당하고 배설물을 맞고 거세를 당해 자결하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양안은 승리가 확실해졌다는 것과 황제의 명령을 알고 있었기에 자신감이 생겨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장공주님,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자신의 나라에 대해 비하하는 발언은 옳지 않습니다. 저희는 두 가지 준비를 했습니다. 그들이 물러나기를 원하면 당연히 협상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만, 만약 그들이 물러나지 않는다면 결국 전쟁을 해야 할 것입니다. 북명왕비를 잡는 것 역시 이방이 선태자에게 했던 방식과 똑같은 것입니다. 만약 두 군이 전쟁을 벌이면 북명왕비는 성릉관 전장에서 포로로 나타날 것이고 소가는 그대로 물러날 것입니다. 이는 수란키 대장군이 선태자를 위해 체결했던 그 부끄러운 조약처럼 될 것입니다."장공주는 이를 듣고 격노했다. "어리석기 그지없소! 그때 수란키 대장군이 그렇게 한 이유는 이방이 우리나라의 태자를 잡았기 때문이오. 당시 황제의 병세가 위중하고 내란이 일어나고 있었으니 국본을 안정시키지 않으면 나라가 뒤집어질 수도 있었소. 그런데 북명왕비와 태자를 어떻게 비교될 수 있단 말이오? 나는 그대들이 너무 어리석다고 생각하오. 내 말이 틀렸소? 그대들은 송석석에 대해 알고 있소? 소가의 장군에 대해 알고 있소? 소가군에 대해서는 아냐는 말이오!"양안은 송석석이 대단하다는 말을 그다지 믿지 않았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송회안 대장군이고 그녀도 남강 전장에서 싸운 경험이 있지만, 결국 여성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정영수와 회왕의 사사들이 그들을 도와줄 테니 실패할 일은 없을 것이다."물론 알고 있습니다. 우리도 무작정 나선 것이 아닙니다. 철저히 준비한 계획이 있단 말입니다. 결론적으로 북명왕비는 반드시 우리 손에 들어올 것입니다. 가둬둘 장소도 이미 준비되어 있습니다. 우선 회왕부에 두었다가 기회가 오면 진성을 떠나도록 할 것입니다. 협상이 실패하면 우리는 안전하게 서경으로 돌아가면 되면 정식으로 전쟁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장공주는 차가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서경으로 돌아가면 전쟁을 선포한단 말이오? 그럼 우리
냉옥 장공주는 회동관에 돌아왔지만 수란석과 정영수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그녀의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으며 무언가 일이 틀어졌음을 직감했다.수란석은 그녀의 작은 외삼촌으로, 수가에서 가장 말썽을 일으키는 사람이었다.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지나치게 용감하고 호전적이며 성급하고 무모했다."양안을 불러라!" 그녀는 여관에게 명령했다. "당장!"양안은 내각 대학사이자 수란석의 처남이다. 두 사람은 상국에 오는 내내 함께 세밀히 논의했기에 양안은 그가 오늘 밤정영수와 함께 무엇을 하러 가는지 잘 알고 있었다. 양안은 방으로 돌아가 소식을 기다렸다.그는 이번 작전은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 철저히 준비된 계획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가 떠날 때 수란석이 이미 계획을 반쯤 성공시킨 것을 보고는 북명왕을 데려갔다.북명왕을 속여 데려가기만 하면 송석석을 잡는 것은 매우 쉬웠다. 이번 외출에는 단지 마차 한 대와 하녀 두 명, 그리고 북명왕 부부만 있었으므로, 북명왕이 수란석에 의해 데려가졌다면 송석석이 아무리 강한 무공을 가지고 있어도 정영수와 회왕이 보낸 사사들 앞에선 불리할 수밖에 없다.따라서, 이 작전은 확실히 성공할 수밖에 없었다."양학사, 장공주께서 부르십니다." 문밖에서 향병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양안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갔다. 이번 일은 냉옥 장공주에게 숨기려 했지만, 이미 실행에 옮겨졌고 성공할 확률이 매우 높았으므로 이제는 알려야 했다. 장공주는 전쟁을 원하지 않았고 그저 상국의 적절한 설명을 원했다. 또한, 전쟁이 있어야만 진짜 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하며 전쟁을 일으키지 않으면 어떻게 새 경계선을 정하고 사과와 배상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그는 향병을 따라 장공주가 머무는 별실로 향했다. 등불 아래의 장공주의 얼굴은 굳어 있었는데 오늘 밤 궁중 연회 때의 온화한 표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수란석과 정영수는 어디 간 게요? 지금 무엇을 몰래 꾸미고 있는 것이오?" 그가 예의를 차리
심지어 그는 송석석이 어떻게 피했는지조차 보지 못했다. 그저 긴 칼이 공중에서 빗나갔고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그대로 서 있었다. 마치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마차의 풍등이 어두운 빛을 발산하며 송석석의 얼굴을 비췄는데, 차가운 바람 속에서 서리가 내린 듯 차가워 보였다. 송석석이 그를 향해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미소는 순간적으로 그의 피부를 스쳐 지나가며 오싹한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 오싹함은 단지 기분 뿐만이 아니라 통증까지 전해지게 했다. 그가 반응하기도 전에 송석석의 채찍이 공중에서 그를 정확히 내려 찍어버렸다. 순간 채찍 끝이 그의 얼굴을 스쳐 지나가며 얼굴을 가리고 있던 검은 천이 떨어져 나갔다. 그는 몸을 돌려 공중으로 날아오르며 얼굴을 재빨리 가렸다.그는 벽 위로 올라가 몸을 돌렸는데, 그때 붉은 채찍은 마치 독사처럼 왼쪽 사사의 목을 감아 버렸다. 송석석은 힘을 주어 채찍을 당기며 그를 오른쪽으로 날려버리고는 몸을 한 바퀴 돌리며 그의 사사를 마차 앞으로 끌고갔다.곧 사사의 손에 들려 있던 무기는 손을 벗어났고 무기가 떨어지기 전 송석석은 발끝으로 그것을 날려 보냈다. 칼은 공중을 가르며 비행했고 그녀는 그 사사를 끌고 빠르게 공중으로 뛰어올라 칼을 향해 다리를 휘둘렀다. 그러자 그 칼은 또 다른 사사의 배꼽을 정확히 찔렀다.이 모든 일이 순식간에 일어난 탓에 정영수는 가까운 거리에서 이 장면을 직접 목격했지만 그 어떤 도움도 줄 수 없었다.그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진정으로 강한 것은 송석석이지, 자신들이 아니라는 사실을.그는 이를 악물고 칼을 휘두르며 채찍을 끊으려 했다. 그렇지 않으면 사사는 정말 죽게 될 것이다. 송석석은 채찍을 휘두르며 사람을 공중으로 던졌는데 그 속도는 정영수를 다시금 어지럽게 만들었다. 그는 방향을 급히 바꾸어 사사를 실수로라도 다치지 않게 하려고 했다.하지만 방향을 바꾼 순간 그의 큰 칼엔 피가 묻었고 사사의 머리는 그대로 떨어져 나갔다.송석
회왕비는 문밖에서 한참을 서 있다가 떠났다. 그녀는 왕야가 마치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것 같아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회왕부에는 몇 명의 낯선 사람들이 왔는데 그들은 왕비인 그녀조차 안중에도 두지 않는 듯 마주쳐도 못 본 척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고요한 밤에 갑자기 말굽 소리가 들렸지만, 청석판 거리에는 아무도 다니지 않았다.진성의 밤은 동서성 및 강변 쪽에서만 번화했으며 그곳의 소음과 웃음소리가 남성까지 전해지지는 않았다.바로 그때 갑자기 말이 울부짖으며 멈추더니 공기 속에 이상한 떨림이 느껴졌다.몽동이는 채찍을 들고 허리에는 긴 칼을 찼다. 마차의 풍등은 먼 곳까지 비추지 못했고, 달이 구름 속에 숨어있는 탓에 주변은 어둠에 휩싸여 오싹할 정도로 음침했다.몽동이는 눈을 감고 공기 속의 변화를 귀 기울여 들으며 귀를 미세하게 움직였다.송석석도 채찍을 쥐고 있었는데 긴 채찍은 마치 붉은 뱀처럼 그녀의 발치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시만자는 검을 움켜잡으며, 검집을 살짝 튕기면 검이 쑥 빠져나오게 단단히 준비를 했다. 어둠 속에서 수십 명의 그림자가 조용히 내려앉았는데 발밑에는 먼지조차 닿지 않아 그들의 경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었다.몽동이는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전투력을 발휘했다. 그는 마치 천둥 같은 힘으로 채찍을 휘두르며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손에 쥐고 경공을 펼쳐 구름을 타듯 날아가면서 칼을 뽑아 그 사람을 향해 내리쳤다.암살자는 치명적인 일격을 피하기 위해 몸을 피했지만 긴 칼엔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피 냄새가 코를 찔러 암살자의 살육 본능을 자극했다.마차 안에서 두 사람은 창을 부수고 뛰쳐나왔다. 긴 채찍은 민첩하게 뱀처럼 휘어지더니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두 사람을 곧바로 밀어냈다.시만자는 보검을 뽑아 꽃처럼 휘두르고는, 송석석의 채찍을 밟고 그대로 공중으로 뛰어올라 능숙하게 방어막을 형성하며 암살자들을 단숨에 밖으로 밀어냈다.검은 옷과 가면을 쓴 정영수도 긴 칼을 들고 있었다. 그는 팔도장인 모든 무
해시중의 어가에는 마차 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몽동이는 앞에서 마차를 몰았는데 이제는 이 일에 꽤 능숙해진 것 같았다. 어쨌든 그는 이제 마차가 있는 사람이니 말이다. 이때 시만자가 송석석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오늘 정말 힘들었다며 푸념하기 시작했다. "너희는 안에서 맛있는 걸 먹고 마셨겠지만 우리는 밖에서 찬 바람이나 맞으며 기다렸다. 다행히 보주가 구운 오리와 과자를 준비해 주고 또 배려 깊게 차를 황피 물주머니에 담아 왔으니 말이지, 그렇지 않으면 지금 배고파서 쓰러져 버렸을 것이다."송석석이 웃으며 말했다."시만자 아씨를 굶게 두다니 정말 미안하구나. 일이 끝나면 내 너를 위해 잔치를 열어주겠다."시만자는 그제야 인상을 펴고 밝게 웃었다."역시 나를 가장 잘 아는 건 너밖에 없다. 내가 인생에서 가장 마음껏 쓸 수 있는 건 아마도 돈 뿐일 것이다."그녀는 주위 사람들에게 돈을 쓰는 걸 좋아했고 외부 사람들에게는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만약 동정심이 생기면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줄곧 아깝지 않게 돈을 썼다.송석석은 머리를 비스듬히 기울인 뒤 그녀의 머리와 맞대었다. 두 여인은 몽동이가 있으니 별문제 없을 것이라 믿어 외부 소음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회왕부.서재 안에는 어두운 불빛이 하나 켜져 있었다. 그 불빛은 그가 풍상에 쓸려온 얼굴을 비추고 있었는데 평소의 나약하고 소극적인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위험한 눈빛만 번쩍였다. 오늘 밤의 행동에서는 한 점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다.두 나라가 반드시 전쟁을 벌여야만 그들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남강 전쟁에서 그들이 이미 기회를 놓쳤기에 이번에는 절대 놓칠 수 없었다. 숙청제는 그들을 의심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자존심과 명예를 둘 다 취할 수 없었다. 아무리 반역자라고 하더라도 승자가 왕이 되는 법, 이후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지는 권력이 있는 자가 결정한다.과거 삼 형제는 명예를 너무 중시하여 그 좋은 기회를 놓쳤고 황자까지 희생시켰다.이제 성공적인 역
냉옥 장공주는 소란석과 정영수의 퇴장에 약간 불안한 마음을 느꼈다. 그들은 돌아왔을 때 서로 눈길을 주고받으며 무언가를 확인하는 듯한 모습이 보였지만 정영수에게 물을 수는 없었다. 궁중 연회에서 몇 번씩 정영수를 불러 내면 쉽게 눈에 띄기 마련이었다. 서경은 현재 내란이 일어나려 하고 냉옥 장공주는 이제 더이상의 충돌을 원하지 않는다. 이번에 공정한 해결을 요구하는 것도 삼황제의 황위를 안정시키고 백성들을 달래기 위해서였다.남강 전쟁에 나가 정의를 위해 싸웠을 때 이미 많은 군사들이 희생되었다. 게다가 사국에 전폭적으로 지원을 해주어 국고는 비어버렸기에 더는 민심을 잃는 전쟁은 감당할 수 없었다. 전쟁을 벌이려면 최소 5년은 더 기다려야 했다.궁거문고 연주가 울리고 무희들이 엄청난 기예를 선보이고 있었지만 모두 속마음을 숨긴 채 거짓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은 사람들을 몰래 살펴볼 뿐이었다. 연회가 끝났을 땐 이미 해시중으로 숙청제는 취기가 잔뜩 오른 상태였고 냉옥 장공주는 사절을 이끌고 퇴장 의례를 마쳤다. 술에 취한 숙청제는 궁인들의 부축을 받아 후궁으로 돌아갔다.오늘 밤의 연회는 모두 평화로웠고, 내일의 협상이 어떻게 진행될지, 어떻게 전쟁의 연료가 될지, 그가 직접 대면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사여묵의 사심이 마음에 들었다. 사여묵이야말로 진정 평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가 맘에 들었다. "대공무사"라며 나라와 백성을 위해 일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하도 위선적이라 그는 절대 믿지 않았다. 요구가 없는 사람이 더 두려운 법이다. 본성을 어긴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다.진정한 충신, 애국적인 순수한 신하가 있을 수 있긴 하다. 예를 들어 소 대장군은 정말 존경받을 만한 인물이다. 그는 말로만 하지 않고 실제로 평생을 걸어 행동으로 실천해 왔다. 하지만 사람 마음은 쉽게 변하는 법, 그는 이미 연주에 조사를 보냈는데, 현재까지도 연주에서 문제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심지어 옹현에도 사람을 보냈다. 옹현의 사온의 봉지로 만약
정영수는 이 방법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북명왕이 왕비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든 간에 이렇게 해서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아무 소용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큰 위험을 동반할 수도 있었다."수 대인, 저는 여전히 이 방법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분명 우리의 소행임을 알아차릴 것입니다." 정영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뭐가 옳지 않다는 거냐?" 수란석의 눈빛에는 분노가 섞여 있었다. "우리를 의심하게 하는 것이 바로 내 목적이다. 만약 그가 전쟁을 원한다면 이것은 그에게 큰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는 협상 자체를 파괴하고 즉시 전쟁을 일으킬 것이다. 만약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는 이 사건을 모른 척하고 비밀리에 사람을 보내 구출할 것이다. 그럼 우리가 그의 속셈을 알게 되지 않겠냐?""전쟁이 옳지 않다는 겁니다. 공주님께서 두 나라의 전쟁을 피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여인의 생각, 수란키와 똑같이 마음이 나약하구나." 수란석은 싸늘한 웃음을 지으며 주머니에서 손조를 꺼내 정영수에게 건넸다. "보거라. 이것이 바로 폐하의 진정한 뜻이다."등불 아래에서 정영수가 손조를 펼쳤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 손조가 진짜임을 확신했다. 그는 평소에도 황제 앞에서 시중을 들었기 때문에 황제의 필체를 잘 알고 있었다. 손조에는 엄격한 요구 사항이 담겨 있었는데, 상국이 이를 거부하면 즉시 상국을 떠나 전쟁을 선포할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정영수는 황제가 처음에는 전쟁을 원했으나 후에 장공주에게 설득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 만약 이 손조가 진짜라면... 정영수는 급하게 고개를 들었다. "그렇다면 수 대인은 북명왕을 시험하려는 것이 아니라 송석석을 납치하려는 것이군요."북명왕을 시험하는 것은 구실에 불과했다. 황제는 전쟁을 원했기에 송석석을 납치하여 그들 방식대로 갚으려는 것이다. 이는 예전에 이방이 태자를 납치하고 모욕해 성릉관에서 소가군을 물러나게 한 것과 같은 방법이었다
송석석은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들었다. 그들은 전쟁을 피하려고 애쓰고 있지만 서경이 그들이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 확신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특히 수란석에게는 송가와 소가만 전쟁을 원하지 않으며 북명왕은 오히려 군권을 되찾기 위해 전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야 했다. 송석석은 시선을 돌리며 냉옥 장공주의 유창한 상국 말에 귀 귀울였다. "본궁은 항상 왕비님을 뵙고 싶었습니다. 이번에 상국에 온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왕비님을 뵙기 위함입니다."그녀는 방금전에도 이렇게 말했었지만 이번에는 표정이 진지하고 진심에서 우러나 보였으며 아까 같은 가식적인 느낌이 들지 않았다. 송석석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공주님을 뵙게 되어 저 또한 영광입니다."가까이에서 보니 냉옥 장공주는 어제 성문에서 봤을 때보다 피로해 보이지 않았다. 어젯밤 충분한 휴식을 취한 모양이었다. 그녀의 눈 밑의 다크서클은 얇은 화장 덕분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전체적인 상태는 실제 나이보다 몇 년 더 많이 먹은 듯 지쳐보였다. 송석석은 그녀가 정권을 보좌했던 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서경은 내외의 위협을 겪었는데, 그들이 그동안 겪은 고통은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할 정도로 힘들었다고 했다. 내일 그녀와 신경전이 벌어질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녀에게 존경심을 느꼈다.서로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궁중 연회가 시작되었다.모두 자리에 앉아 식사를 준비했다. 서경의 사절단은 여전히 오른쪽에 앉아 있었고, 사여묵과 송석석은 나란히 앉았다. 태후는 음식을 같이 먹지 않았고 냉옥 장공주와 잠시 대면하기 위해 나왔다. 이는 사절단을 중시하는 태도였다.황제와 황후가 자리를 지키고 여러 왕야와 권신들도 함께 했다. 물론 회왕은 참석하지 않았고 회왕비도 오지 않았다. 연왕은 측비 김씨와 함께 자리에 앉았는데, 그는 이런 자리에 절대로 시민주를 데리고 오지 않는다. 아무리 시민주가 정비라도 말이다.연회 중 술잔이 오가며 두 나라는 우호적인 관계인 것처럼 보
북명왕이 자기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자 수란석은 속으로 화가 치밀어 오르며 더는 참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그동안 성릉관의 일을 명확히 밝혀야겠다는 마음이 굴뚝같았다.두 눈에서 불꽃이 튀고 있을 때 사여묵이 물었다. "수 대장군이 부상을 입었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다 나으셨습니까?"수란석은 눈빛을 거두며 대답했다. "이리 신경 써 주시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형님께선 이제 큰 이상이 없습니다.""이번에 수 대장군과 함께 오실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수란석의 눈빛은 차갑고 냉랭했다. "형님께선비록 큰 이상은 없지만 과거에 중상을 입으셨기에 장거리 이동은 부적합합니다."사여묵은 수란키가 갇혔다는 사실을 모르는 척 말했다. "우리 소 대장군도 두 번이나 화살을 맞았고 게다가 이제 막 칠순을 넘긴 고령이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국의 일을 처리하러 성릉관에서 진성으로 돌아오셨습니다."수란석은 미간을 찌푸렸다. ‘저 말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오늘은 분명 저런 얘기를 안 하기로 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나에게도 할 말이 아주 많은데.’하지만 수란석에게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듯 사여묵은 또 다른 화제로 말을 돌렸다. "아참, 듣자니 수 상서께서는 친히 검을 만드는 걸 좋아하신다 들었습니다. 최근에는 어떤 신검을 만드셨는지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주제는 이렇게 자연스럽게 바뀌었고 수란석은 화가 난듯한 목소리로 눈을 크게 뜨며 대답했다. "군무가 바빠서 이제 더는 검을 만들지 않습니다. 왕야께서 서경의 무기가 보고 싶으시다면 기회는 얼마든지 있습니다."전장에 나가면 충분히 볼 수 있었기에 사여묵은 그를 가볍게 바라보며 한 마디 던졌다. "좋습니다."목소리는 매우 낮았지만, 수란석의 귀에는 아주 도발적으로 들렸다. 마치 그가 전쟁을 원한다는 것 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내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왕이 말하길 북명왕은 두 나라가 전쟁을 계속하는 걸 가장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두 나라가 전쟁을 하면 소가는 분명 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