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그녀는 서경 사람이 사국인인 척 남강 전장에 나간 걸 알자, 홀로 천리를 달려와 그에게 소식을 전했더라니. "진정이 되면 나에게 고하도록 하시오."사여묵은 그녀의 곁에 앉았고, 그의 큰 덩치는 장벽과도 같았다. 송석석은 한결 차분해진 상태로 말을 꺼냈다. "장군님께서 더 아시고 싶으신 게 있으십니까?"사여묵은 어두운 눈빛을 한 채 말했다."모든 것을 알고 싶소, 왜 갑자기 시집을 갔는지, 시집을 간 후에 일어난 일들과, 서경의 첩자가 후부를 학살하기 전과 후에 일어난 일들 말이오."송석석은 그가 왜 자신의 혼인에 대해서 알고 싶어하는지 몰랐지만, 감정이 실리지 않게 사실대로 말하려고 노력했다."제가 매산 만종문에서 돌아왔을 때 부형의 희생을 알게 되었고, 어머니에게 남강 전장에 나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셨고, 아버지와 형제들의 희생에 충격이 크셨던 탓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우셨죠…… 어머니께서는 저를 진성으로 시집을 가게 한 뒤 아이를 낳고 안정된 삶을 살도록 강요하셨고, 저를 위해 1년 동안 혼담을 꺼내고 1년 동안 규칙을 배우게 하셨죠."사여묵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내 기억으로 장군은 그렇게 순종적인 사람이 아니었는데 말이지."송석석의 눈빛에는 의심이 스쳐 지나갔고, 그의 말이 옳았지만 그가 어떻게 그녀의 성격을 알고 있었던 거지?"예, 하지만 집안에 변고가 생겨 노약자와 아이들만 남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뜻을 받아들여 대갓집 규수가 되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어머니께서도 저를 위해 혼사를 선택하셨고, 많은 사람들 중 전북망을 선택하신 겁니다. 사실 어머니께서는 무장을 원하지 않으셨지만, 제가 세가에 시집가는 것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 두려워하셨죠. 세가의 규율은 엄격하고 집안일도 많아서, 어머니께서는 제가 이를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제가 괴롭힘을 당하든, 괴롭히든 둘 중 하나의 삶을 살 거라고 생각하셨고, 이런 삶도 안정적이지 않다고 느끼셨죠.""그리고 선비도 저와
송석석이 말했다."이것은 몰상식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나머지 일들이 그렇다고 할 수 있죠."그녀는 전씨 가문이 그녀의 혼수를 노리고, 그녀에게 질투심이 가득하고 불효한 것으로 누명을 씌워 그녀를 문밖으로 못 나가게 했던 일들을 늘어놓았다."이거야말로 몰상식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폐하께서 아버지에게 진국공을 하사하시고, 저와 전북망의 이혼을 허락하신 뒤 저의 혼수를 모두 가져갈 수 있게 해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사여묵의 눈은 분노로 불타올랐다."그들이 감히 장군을 이토록 괴롭히고 억울하게 했단 말이오?""저는 억울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송석석은 무릎에 손을 얹고 사여묵을 곁눈질로 바라보았고, 눈 밑의 미인 점은 피처럼 선명했다. "제가 그에게 정이 있었다면 억울했을 텐데 저에게는 장군부를 떠나는 것이 해방이었습니다, 그들의 계획도 성공하지 못했죠. 원수님께서도 방금 이방이 저에게 분노하신 것을 보셨을 테지만, 그녀가 마음에 들어 하는 남자를 저는 마음에 두지도 않았습니다."이방은 그녀를 모욕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가볍게 무시를 하며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그렇게 그녀는 소탈하게 혼수를 가지고 장군부를 떠나 국공부 적녀의 존영을 누리고 있으니 이방은 달갑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이방과 전북망 사이의 눈빛을 보면 그들 부부 관계는 좋은 편이 아니었고, 심지어 약간의 불화도 있었다. 사여묵은 한참 동안 그녀를 쳐다보더니 천천히 말했다."송씨 집안 사람들은 결코 허리를 굽히지 않아야 하오, 석석 장군, 계속해서 버티시오!"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이내 이어갔다."성릉관 전투는 성상께서 조사를 하실 거요, 그때가 되면 밝혀질 것이고 누군가는 이 일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방식은 아닐 수도 있소."송석석은 알고 있다.서경 사람들은 극도로 체면을 좋아하며, 그들은 차라리 이런 식으로 복수를 할지언정, 자신들의 태자가 포로로 잡혀 모욕을 당하고 배설물을 맞고 거세를 당해 자결하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도읍에 주둔한 3만 현갑군은 모두 사여묵의 훈련을 받았고, 모두 도읍을 방어하는 임무를 맡았으며 3만 현갑군은 모두 정예병으로 번왕(藩王)이나 반군이 도읍으로 진입하는 것을 막아낸다.현갑군은 일반적으로 최후의 수단이 아닌 한 전장에 가지 않았다. 이제 남강을 수복했으니, 부득이한 때가 되었다. 회주의 병력을 이동시키면 월국(越國)의 야망을 건드릴 수 있기 때문에 회주위소의 병력은 움직일 수 없었다. 현갑군이 전장에 나가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들이 전장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고, 반대로 3만 명의 현갑군은 모두 전장에 나가 있던 병사들 중에서 선발하여 훈련을 받은 것이다. 현갑군 중 1만 명은 현갑위였고, 그들은 태자의 안위와 도읍의 치안을 책임졌다.만 명은 황실의 종친을 포함한 용의자를 직접 체포할 수 있었고, 공개적으로 심문할 필요 없이 북명왕에게 보고하기만 하면 됐다. 나머지 만 명은 수백 명의 관리들을 감독했고, 대부분이 일반 백성으로 변장을 하여 시정을 드나들었고 대갓집이나 관저의 하인들과 매우 가깝게 지냈다. 현재 남강에 도착한 1만 오현갑군은 각 부에서 오천 명을 차출했다.북명왕은 송석석을 데리고 현갑군위소로 와서 그들을 모두 명단에 올리게 했다.검은 철갑을 입은 만 오천 명의 현갑군은 모두 키가 비슷했고, 나이는 20세에서 40세 사이였다. 대오는 정연했고, 위엄이 넘쳐 정예병으로서의 소양이 보였다. "잘 들어라!"북명왕은 석양 아래 서서 외쳤고, 붉은 석양빛이 그의 얼굴을 비췄다. "오늘부터 송 장군이 부지휘사가 될 테니, 남강 전장에서 송 장군의 지시를 듣도록! 송 장군이 돌격을 외치면 불복종하는 이 하나 없이 모두 돌격해야 한다!"땅을 뒤흔드는 우렁찬 목소리가 이리성 주둔지에 울려 퍼졌다. 송석석은 꼿꼿이 선 채 병사들의 의연한 시선을 마주하고 있었고, 이런 훌륭한 병사들과 함께라면 전투에서 이기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전북랑과 이방은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았고, 석양빛이 당당한 현갑군의 얼굴에 비치
전북망은 그녀를 쫓아가며 말했다."당신은 줄곧 나에게 말하지 않았소. 당시 녹분성에서 내가 군대를 이끌고 곡물 창고를 불태웠을 때, 어떻게 서경 원수 수란키가 당신과 평화 조약을 맺은 거요?"이방의 표정은 초조하고 경계심이 가득했다."말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녹분성에서 북명왕이 이미 남강에서 승리를 거두어 곧 성릉관 전장에 갈 것이라고 떠들었고, 게다가 곡물 창고까지 불이 났으니 그들은 혼란에 빠져 투항을 선택한 것입니다."그렇다, 이 설명은 이미 여러 번 말을 했었다.이전에 전북망은 이 설명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여겼다. 그와 이방이 혼인을 하고, 백 명의 형제들을 불렀을 때 임 장군은 그녀를 꾸짖었다. 알고 보니 그녀는 전혀 사전에 보고하지 않고 100명 이상의 병사를 허가 없이 군영에서 전출시킨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뻔뻔스럽게 그에게 보고를 이미 했으며, 임 장군도 허가를 했다고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성릉관 대첩을 다시 돌이켜 보면, 확실히 뭔가 문제가 있었다. 서경 30만 병사가 사국 사람인 척 가장하여 남강 전장에 나갔을 때, 그는 성릉관 대첩에 대해 점점 더 의심을 품게 되었다. 이쪽은 사이좋게 국경선을 정했고, 곧 30만 대군을 남강으로 보내 상나라와 싸울 것인데 그럴 이유가 전혀 없었다.성릉관의 평화조약이 체결되었을 때, 서경 사람들이 원한을 품지 않는 한에서 말이다. "장군님, 저는 장군님의 아내입니다, 그런데 제 말을 믿지 못하시는 겁니까?"이방은 그의 눈이 불안한 것을 보고 고개를 돌려 억울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성릉관 전투는 어떤 조사도 견뎌낼 수 있습니다. 조약은 그들이 자발적으로 서명한 것이고, 서경의 녹분성 수란키가 직접 서명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들의 자발적인 항복이 아니라면, 수란키의 난폭한 성격으로 제가 그 300명을 이끌고 서명을 강요할 수 있었겠습니까?"전북망이 생각을 하자 이 또한 맞는 말이었고, 당시 녹분성의 병력과 이방이 이끄는 수백 명의 병력은 천지 차이였다.만
그러나 사흘 만에 12만 명의 지원군은 모두 분개하여 한 가지 일을 말하고 있었다.송석석이 부형의 위신에 의지해 공적도 없이 5품 장군을 하사받은 것이다. 이방이 지휘하는 병사들은 계속 동요하며 말을 꺼냈다."부형의 군공을 먹고 싶다면 도읍에 남아 아가씨가 되어 부귀영화를 누리면 되지, 왜 전장에 와서 우리와 무공을 다투는 겁니까? 우리가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는 것은 무공을 위한 것이 아닙니까? 그 여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직위를 하사받다니, 이 얼마나 불공평한 일입니까?""북명왕이 군사를 다스리는 데 엄격하고, 상벌이 분명하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여 송석석에게 그리 큰 공적을 주다니요. 저희가 노력을 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어쩌면 우리가 전장에서 죽인 적들은 결국 송석석의 공적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남강 전장이 원군을 요청하여, 눈보라가 몰아쳐 오는 상황에 수많은 병사들이 길에서 병에 걸리기까지 하며 쉬지 않고 밤낮으로 행군하여 남강 전장을 지원하러 왔는데. 이방 장군은 오랜 질병의 공격을 견뎌내면서 가지고 온 약이 전선에서 부족할까 근의관의 약을 낭비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자마자 이방 장군이 송석석을 질투했다고 북명왕의 질책까지 받으니, 게다가 현갑군을 모두 송석석에게 지휘하도록 주지 않았습니까. 이혼한 여인이 현갑군을 통솔하는 것은 상나라의 가장 큰 웃음거리가 아니겠습니까?""제 말이 그 말입니다. 우리 이방 장군이 성릉관에 데리고 온 병력은 300명에 불과했고, 지금은 5품 장군일 뿐 북명왕의 권력으로 추대된 송석석보다도 한 단계나 낮은 직책입니다.""도대체 우리가 왜 이렇게 고생을 해야 합니까? 남의 혼수를 벌어다 주는 꼴밖에 되지 않습니다!"이러한 유언비어는 지원군들 사이에 극도의 불만을 불러일으켰다.심지어는 현갑군에서조차 분개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자신은 정예 장군인데 어찌 공덕도 없는 이혼한 여성에게 통솔될 수 있는지 인정할 수 없었다.다만 현갑군은 감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그
송석석은 이 말을 듣고 눈썹을 찌푸렸다.그녀는 소문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일부러 군에서 대립을 조성하고 불공평함을 조성하며 군심을 어지럽히는 것은 결전 전의 큰 금기이기 때문이다.이방은 전쟁터에 많이 나갔고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아마도 여론을 이용하여 북명왕을 압박하고, 북명왕이 그녀를 방치하게 하여 군심을 안정시키려는 것이다.“지금은 원군에만 전해졌니?” 송석석이 물었다.시만자는 화가 가라앉지 않은 채 얼굴을 점점 붉혔다. “맞아, 원군은 영지에 살고 있어. 원래의 북명군과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북명군도 모르는 일이지.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가 그들에게 따질 거야.”송석석의 미간이 더욱 찌푸려졌다. 몇 번의 전쟁으로 그녀를 따르던 장병이 많아졌다. 만약 그들이 그녀가 편파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의론은커녕 싸움이 날수도 있었다. 이렇게 되면 군심은 결속력을 잃을 것이다.전쟁할 수 없게 된다. 남강을 두 손으로 사국에 보내는 꼴이다.만두가 말했다. “그들은 이미 선동하고 있으니 몇 명의 원군 무장들을 찾아서 원수를 찾게 해야 한다.”송석석이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들더러 먼저 찾게 해. 원수가 그들을 진정시킬 수 있을 거다. 언제 서경과 사국 전쟁을 벌일 수 있는지 몰라. 원수님은 절대 군심이 흩어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그럼 상관하지 말아야 하는 거야?” 시만자는 이해되지 않았다. “그럼 가서 이방을 때리는 건 되지?”시만자는 이렇게 억울하게 당할 수 없다. 감히 그녀를 노비라 칭했으니 당연히 크게 분노했다. 송석석이 눈썹을 찡그렸다. “정 하고 싶으면 그래도 되지만, 너보다 무직이 높다. 군중 속에서 곤장 백 대를 맞고 싶은 게 아니면 가.” 시만자가 콧방귀를 뀌었다. 백호가 되지 않았으면 어떤 장군이든 간에 때렸을 것이다. 남강을 수복하면 더는 군에 있지 않을 것이고 어떤 장군직을 주든 하지 않을 것이다.이 상태로는 짜증이 나서 죽어버릴지도 몰랐다.저녁에 이방의 사촌인 이
송석석은 도화창(桃花槍)을 바닥에 꽂아넣었다. 그리고 머리를 틀어 올렸다. 매서운 북풍이 그녀의 옷깃을 스쳤다.그녀는 턱을 약간 치켜 올리고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 “그대만 이기면 되는가?”“그렇다!” 필명이 큰 소리로 말했다. “날 이긴다면 목숨을 걸고 영원히 약속을 깨지 않을 것이다.”“필 교위, 잘했습니다.”“그녀를 때려 부형의 군공과 우리 병사들의 기를 살려주세요!”“군공이 얼마나 어려운 데, 여인 따위가 감히 허위 군공으로 우리 현갑군을 호령하려 합니다. 우리는 복종할 수 없습니다.”필명이 차갑게 말했다. “송 장군 잘 들었나?”송석석은 고함을 지르는 현갑군을 둘러보더니 도화창을 손에 꽉 쥐었다. “좋다, 덤벼라!”필명은 가소롭다는 눈빛으로 말했다. “여인을 괴롭힌다는 소리 듣고 싶지 않으니 송 장군에게 한 수 양보하겠다!”“고맙군!” 송석석이 입꼬리를 올려 비웃었다. 그녀의 눈 밑의 붉은 점이 핏빛으로 빛났다.전북망과 이방 그리고 많은 사관도 소란스러운 광경을 멀리서 바라보았다.이방이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 “송석석한테 누군가 도전하려나 봅니다.”거리가 있었지만 전북망은 송석석과 필명이 겨루려는 광경을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필명은 절대 송석석의 상대가 될 수 없다.이방은 흥미로운 얼굴로 말했다. “필명은 현갑군에서 무공이 그나마 강한 사람입니다. 필명과 몇 수를 겨룰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전북망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필명은 이기지 못합니다.”이방은 호탕하게 웃었다. “송석석 편을 드는 거군요, 어디 한 번 지켜보자고요.”그녀는 눈동자를 가늘게 뜨고 먼 곳을 쳐다보며 필명이 그녀의 무릎을 꿇리고 용서를 구하게 했으면 했다. 그녀가 여인의 평판을 잃게 한다고 여겼다. 야지에서 송석석은 도화창을 들어 필명의 오른쪽 팔을 찔렀다.필명은 미친것처럼 웃었다. 가녀린 여자가 자신에게 검을 겨누고 달려드는 것이 부끄러웠고 우스꽝스러웠다.필명뿐만 아니라 현장에 있던 1
성루(城樓)는 야지(野地)와 거리가 있어서 내력을 느낄 수 없었고 바닥의 균열도 볼 수 없었다. 그들이 본 것은 필명이 제자리에 서 송석석에게 찔려 상처를 입은 것이다.그래서 이방이 보기엔 이 상황이 매우 우스꽝스러웠다. 북명왕이 그녀의 기를 치켜세우기 위해 만든 장면 같았기 때문이다.이방의 말투는 분노로 가득 찼다. “현갑군은 북명왕 명에 따르고 북명왕이 누구에게 복종하라고 하면 누구에게 복종할 것입니다. 왜 이런 연극을 하는 거죠?” 전북망도 약간의 의혹이 있었다. 북명왕은 이런 안배까지 할 필요가 없었다. 송석석의 무공은 확실히 뛰어났다. 설령 진짜로 싸운다 하더라도 필명은 그녀의 상대가 되지 못할 것이다.어쩌면 송석석이 할 줄 아는 게 저게 다라서 이런 장면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다른 능력이 없는 것 같았다.어쨌든 오늘 이 장면은 그야말로 웃음거리였다.전북망도 마음속에 약간 분노가 차올랐다. 전장에서 허위를 날조하고 세가의 자제들을 대신하여 공로를 쌓는 일은 드물지 않다. 그러나 이렇게 현갑군을 송석석에게 직접 보내고 이런 군령을 내리는 것은 어린애들 장난 같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론 장병의 사기만 줄어들 것이다.“제가 도전해야겠습니다.” 이방은 화가 나서 몸을 돌렸다.전북망이 그녀를 잡아당겼다. “가지 마오. 그녀는 단지 현갑군을 통솔할 뿐, 다른 병사를 통솔하는 게 아니오. 그대가 가서 이기면 북명왕과 현갑군의 체면이 상하오. 대전 전에 우리가 내분을 일으켜 군심을 교란하면 안 되오.” 이방은 화가 나서 말했다. “그게 어때서요?” “군심이 불안은 제가 초래한 게 아닙니다. 북명왕과 송석석이 짜고 치는 겁니다.”전북망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군공을 세우고 싶은 게 맞긴 하오?” “이 전쟁의 원수는 북명왕이오. 결국, 전쟁 후에 그가 조정에 상주할 것이오. 그의 미움을 사면 뒷일은 감히 상상하기도 무서울 것이오. 우린 군공은 커녕 군심을 어렵혔다는 죄명을 받을 수 있소.”이곳은 남강의 전장이며 원수는 북명왕
다음 날, 전북망은 소위 합동 훈련이라는 것이 병력 배치나 전술 훈련이 아니라 농사를 짓는 일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9월은 겨울 밀을 심기에 적기였다. 남강은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지역으로, 물자가 여전히 부족했으며 전쟁으로 인해 인구도 크게 줄어든 상태였다. 이에 병사들이 농사를 돕게 된 것이다. 밀 외에도 배추, 무, 과일 등을 심기도 했다.방천허는 전북망이 마침 좋은 시기에 도착했다며 서둘러 가서 합류하라고 말했다.전북망은 하루 종일 농사일에 시달렸지만, 그 와중에도 짬을 내어 필명에게 편지 한 통을 썼다.진성에서 전북망의 편지를 받은 필명은 편지를 본 후 한참 동안 멍하니 있다가 머리를 긁적였다. '음…… 우리 사이가 이렇게 좋았던가?' 편지에는 자잘한 이야기가 빼곡히 적혀 있어 무려 3장이나 되었다. 대부분은 전에 전북망이 술에 취해 늘어놓았던 말들과 비슷했다.전북망은 원수부에서의 생활을 적으며 원수부가 얼마나 호화롭고 웅장한지 왕실조차 능가할 정도라고 표현했다.그는 원수부에 하인들이 구름처럼 많고 임신한 주모를 모시고 있으며, 그녀가 사용하는 물건이 모두 사치스러워 천금에 맞먹는다고 묘사했다.또한 농번기로 인해 현재 병사들이 농사를 지어야 하고, 농사가 끝난 뒤에야 훈련이 시작된다는 점을 언급했다. 병사들의 피부는 모두 새까맣게 그을렸지만 원수는 돼지처럼 하얗다고 비꼬기도 했다.뒤죽박죽한 이야기들을 잔뜩 늘어놓은 뒤, 평서백 부인에게 안부를 전해달라는 말을 덧붙였다.그 말을 마치고 나서는 자신도 한때 그런 사람이었고 비슷한 실수를 저질렀지만, 다른 사람이 자신의 과거와 같은 길을 걷는 것은 차마 볼 수 없다고 말하며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이어갔다.편지를 읽던 필명은 전북망이 왜 이런 말을 적었는지 눈치챘다. 평서백 부인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 그녀가 마음 속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하려는 의도였다.필명은 전북망이 괜한 걱정을 한다고 생각했다.'평서백 부인처럼 현명한 사람이 왕표의 상황을 모를 리가 있나?'그러나
왕표는 전북망이 자신의 위엄을 충분히 보도록 한 뒤에야 그를 불러들였다.남강에 머문 지 2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왕표는 살이 많이 쪘다. 비록 과도한 비만 상태는 아니었지만, 호랑이 가죽이 깔린 팔걸이 의자에 앉아 있을 때면 턱 밑의 주름이 겹겹이 드러났다.그는 높은 자리에서 전북망을 내려다보며 위압적인 태도로 말했다.“너와 왕청여의 일은 이미 들었다. 그래, 너같이 평범하고 포부도 없는 자는 내 여동생과 어울릴 자격도 없지."전북망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반응 없이 한마디 대꾸만 하고 입을 닫았다.왕표는 차가운 코웃음을 치며 꾸짖었다."네가 이렇게 무능할 줄은 몰랐다. 현철위 부사령관이었지만 결국 관직에서 쫓겨났으니. 장군부는 정말 무능한 자들로만 가득 찼구나. 네 조부께서 하늘에서 너희 같은 무용지물을 보고 계신다면 눈을 감지 못하실 거다."전북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이마에는 핏줄이 드러났다."불만이면 어쩔 거냐? 너희 장군부에서 나온 인간들이 대체 어떤 꼴이 났는지 봐라. 그리고 너 자신만 봐도 여자 하나한테 휘둘려 이 지경이 됐으니. 앞뒤로 세 명의 여자가 있었지만 그 누구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지 않냐……쯧, 우리 남자들의 체면을 다 구겨놨다!”왕표는 지금 그야말로 의기양양했다.그의 곁에는 절세미인이 있었고, 그 미인은 그의 아이를 임신 중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그녀 이전에도 왕표는 남강에서 원하는 여자는 누구든 손에 넣었다.언제나 여자들이 그를 즐겁게 하려고 애썼을 뿐이었다.그래서 그는 본능적으로 전북망을 깔보았다.위세를 충분히 떨친 뒤 왕표는 물었다."진성 쪽에 무슨 큰일이라도 있는 것이냐?"전북망은 대답했다."큰일은 없습니다."왕표는 의자 팔걸이를 매만지며 입가에 냉소를 띠고 말했다."그래? 그럼 여기로 오기 전에 최씨를 본 적이 있나?"전북망은 고개를 들고 답했다."원수께서 말씀하신 게 평서백 부인 입니까?"왕표는 그의 의도적인 물음 속 뜻을 간파하고 냉소를 지었다."왜? 내가 내 여자를 어떻게
그러나 뜻밖에도, 왕표는 전북망이 남강에 도착한 것을 알고 직접 그를 원수부의 부병으로 지명했다.원수부의 부병은 주로 왕표의 출행 준비와 그의 안전을 책임지는 역할이었다. 적의 자객이 잠입해 주군을 해치려는 시도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왕표가 있는 동안에는 이런 일이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과거 송회안이나 사여묵 시절에는 여러 번 이런 자객 사건이 있었다.왕표는 이미 진성의 노부인으로부터 온 편지에서 전북망이 왕청여와 협의 이혼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었다.왕표가 그의 여동생에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차치하고, 현재 그의 신분으로 보아 전북망이 그의 여동생을 그런 식으로 대했다는 것은 곧 자신에게 도전하고 자신의 권위를 모욕하는 행위라고 여겼다.그래서 왕표는 전북망을 불러 물 긷기, 장작 패기, 마당 쓸기, 꽃에 물 주기 같은 자질구레한 일감들을 시켰다. 심지어 주방에서 음식을 나르고 물을 따르는 일까지 맡겼다.전북망은 아무 말없이 모든 지시에 순순히 따랐다. 그는 스스로 먼지 속에 가라앉을 만큼 비천해진 존재로 여겼기에, 짓밟힐 자존심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며칠 동안 그는 수부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여기저기를 살폈다. 그리고 그는 수부가 이전에 그가 알던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겉모습만 비슷할 뿐 내부는 거의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예전에는 수부에 부엌일을 도맡은 여자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인원이 남자였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많은 시녀와 하녀들이 추가되었고, 심지어 한 명의 주모가 살고 있었다. 그는 그 여인을 두세 번 본 적이 있었는데, 그녀는 임신 중이었으며 대략 5~6개월 정도로 보였다.수부에는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그녀는 외출할 때 가벼운 비단으로 얼굴을 가리곤 했다. 가려진 얼굴 사이로 보이는 눈은 사람의 혼을 빼앗을 만큼 매혹적이었다. 전북망은 그녀의 신분을 사적으로 캐묻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야기는 자연히 들려왔다.사람들은 그녀를 원수의 부인이라 불렀다. 그녀가
송석석 일행은 왕이장과 시만자가 돌아오길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이 평서백부에 갔다는 소식과 심지어 모든 것을 터놓고 이야기를 했다는 말을 전해 들은 송석석은 약간 걱정스러웠다.요즘 평서백부의 상황이 불안정했기 때문이다."걱정하지 마. 화해하지 않았어."왕이장은 송석석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미소를 지었다."처음엔 꽤 감동적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나중엔 가식적이라는 생각이 들더라."돌아오는 길 내내 그는 노부인이 말하던 장면을 떠올리며 점점 더 명확하게 깨달았다.왕준의 진심 어린 감정 표현과 달리, 노부인의 모든 말은 마치 노부인 자신에게 들려주기 위해 한 것 같았다.그래서 그녀가 왜 그동안 그가 어떻게 지냈는지 묻지 않았는지도 설명이 된다. 그녀가 신경 쓴 것은 그와 최씨가 그녀의 말을 믿는지에 대한 여부였지, 왕이장 그 자체를 걱정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송석석은 이해하지 못한 채 시만자를 바라보았다. 시만자는 고개를 저으며 자신도 모른다는 뜻을 전했다."이제 가서 자자. 나도 졸리네."왕이장은 손을 뒤로 깍지 낀 채 방으로 돌아갔다. 이런 일에 더이상 얽매이지 않는 듯, 한결 가벼워 보이는 왕이장의 모습에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시만자는 남아있던 사람들에게 말했다."왕준과 노부인 모두 무척 격앙된 상태였고 계속 울더라고. 그런데 왕이장이 왜 가식적이라고 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송석석은 최씨도 방 안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는 얘기를 듣고 말했다."다음에 최씨 부인에게 물어봐야겠어."그전까지 묻지 않은 이유는 단지 오사형이 먼저 얘기를 꺼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그가 얘기를 꺼냈으니 묻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다음 날 아침, 송석석이 최씨를 찾아가려던 찰나에 최씨가 먼저 찾아왔다.최씨는 아주 직접적으로 두 가지 일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첫째, 평서백부의 일부 재산을 왕이장에게 "판매"하도록 그를 설득해달라는 것이었다.둘째, 왕이장이 노부인의 말을 믿지 않도록 하고, 그녀와 화해하지도 말고, 왕
왕이장과 시만자는 말을 끌고 나가 넓은 거리를 걸었다. 살랑살랑 부는 밤바람에 취기가 모두 날아갔다."오늘 밤 일은 너무 충동적이었어. 너를 데리고 오는 게 아니었는데…"시만자가 약간 후회하는 표정으로 말했다."나쁘지 않았어."왕이장이 대답했다."지금 마음이 어떤데? 그들과 화해한 거야?""아니."왕이장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전보다는 훨씬 여유로운 표정을 지어보였다."노부인이 나와 최씨를 방으로 불러서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어. 하지만 단 한 번도 묻지 않더라. 그동안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 내가 끌려간 뒤에 무슨 일을 겪었는지 말이야. 그저 자신이 했던 일에 대해 변명하고, 잘못이 없다고 강조할 뿐이었어.""그랬구나"왕이장은 약간 흐트러진 머리카락과 함께 다시 자유분방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나는 처음 산을 내려갔을 때를 기억해. 한 달 동안 외지에서 지내고 돌아오니 사부와 사숙이 나를 둘러싸고 묻더라. 뭘 먹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어떤 여관에서 묵었는지, 싸움은 했는지, 남에게 속여 돈을 빼앗긴 적은 없는지, 그리고 어떤 경치를 봤는지.""내 사부님께서도 그랬어."시만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게 당연하지.""맞아."왕이장은 다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나는 어릴 때부터 사랑받고 자란 아이였어. 내게도 집이 있었다고."시만자는 그의 기분이 어떤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꽤 좋아 보였다."그래서, 이제는 마음을 정리한 거야?""응. 그런데 그렇게 나쁘지도, 좋지도 않아. 그러니 굳이 화해할 필요도, 원망할 필요도 없지."왕이장은 노부인이 남편을 독살해 복수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감동해야 마땅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감동하지 않았다.그에겐 비록 아이가 없지만 만약 있었다면, 심지어 그 아이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라면, 멀리 떨어진 곳으로 보내어 법도의 가호를 받게 해야 한다 할 때 그는 반드시 함께 갔을 것이다. 자신이 직접 가지 못한다면 믿을 만한 사람이라도 꼭 붙여 함
노부인은 여전히 격한 기쁨과 슬픔에 잠겨 있었다. 그녀는 왕이장의 소매를 꼭 붙잡고 놓지 않았다. 아무리 바라봐도 부족하다는 듯이 만족할 줄 모르며 그를 쳐다보았다. 눈물은 마를 틈이 없었다."이 어미를 용서해줄 수 있겠니? 나는 정말 몰랐단다… 어미가 이미 너의 복수를 해줬으니 제발 용서해주거라…"그러자 왕이장은 잠시 침묵하더니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말했다."노부인, 왕교여는 확실히 죽었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는 그 화재 속에서 죽은 것이 아닙니다. 석산에 보내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에서 고통받다 죽었습니다. 장청 도인은 그에게 온갖 고된 일을 시켰고, 툭하면 때리고 욕하여 결국 그를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습니다. 마지막엔 그를 밖으로 내던져버렸고, 그는 굶주린 늑대들에게 먹히고 말았습니다.""그럴 리가 없어!"노부인은 눈을 크게 뜨고 왕이장을 바라보며 소리쳤다."처음에는 인정하더니, 왜 지금 와서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냐? 넌 여전히 나를 원망하고 있구나, 그렇지?"왕이장은 그녀의 손을 뿌리치며 차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저는 당시 그곳에 교여와 함께 있었던 도동입니다. 교여와 친하게 지냈기 때문에 그의 일을 알고 있는 것일 뿐, 저는 교여가 아닙니다.""하지만 네 이 얼굴은…….""어머니!"최씨가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말했다."이 사람은 시숙의 친구입니다. 시숙이 아닙니다!"노부인은 멍한 눈빛으로 며느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는 분명…….최씨는 왕이장에게 말했다."먼저 돌아가십시오. 며칠 후에 제가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안돼, 못 가! 절대 못 간다!"노부인은 필사적으로 왕이장을 붙잡으려 했지만, 그는 이미 일어나 떠난 뒤였다. "어머니."최씨가 그녀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억지로 강요하지 마십시오. 그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나요? 그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어머니는 모르시잖아요. 분명 그의 마음속에 원망이 가득할 겁니다. 어머니께서 죄책감을 느끼신다면 그를 위해 보상해주세요. 집안의 재산 대부분을
최씨는 인삼탕을 노부인에게 건네 마시게 했다. 그녀는 왕이장과 함께 자리에 앉아 노부인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그때 나는 정말 속았다. 장청 도인이 늘 했던 말이, 우리 교여가 복을 가져다줄 아이라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교여를 아주 아끼는 것처럼 보였어. 교여가 병에 걸렸을 땐 나보다 더 안절부절못하며 약을 구하고 의원을 찾으러 다녔지. 하지만 교여의 몸은 날이 갈수록 약해졌다. 다섯 살이 넘자 거의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할 정도였단다."이것은 노부인의 가슴 깊이 새겨진 상처였다.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여전히 숨조차 쉬기 힘들 만큼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장청 도인이 말하길, 방법을 쓰지 않으면 교여는 한 달도 버티지 못할 거라고 하더구나. 석산의 사철에 보내어 부처의 가호를 빌어야만 18살 고비를 넘기게 되고 그 이후로는 평생 순탄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하였다.""네 조부는 이런 말을 전혀 믿지 않으셨다. 다 거짓말이라며 반대하셨지. 하지만 네 아버지가 장청 도인을 데리고 조부를 찾아갔고, 뭔가를 얘기한 끝에 조부는 결국 동의했다. 심지어 매년 삼천 냥의 은화를 그 도인에게 주며 네 수명을 늘리기 위해 연꽃등을 밝혔다. 불교와 도교의 가호를 모두 받아야 한다는 이유였단다.""그런데 그 모든 것이 거짓말이었다니!"노부인의 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졌다. 그녀의 표정에는 분노와 살기만이 가득했다."나를 속였고 네 조부를 속였다. 아니, 모든 사람을 속였어! 사실 장청 도인이 네 아버지에게 한 말은 네가 조부에게 복을 가져다주는 존재라는 것이었다. 네가 살아 있는 한 네 아버지는 작위를 이어받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일찍 죽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지. 그래서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널 죽이려 했다. 의원이 준 약을 전부 바꿔치기 했는데, 일부는 미세한 독을 섞었고, 일부는 약효가 상충되게 했으며, 일부는 심맥과 기혈을 깎아내리는 성분으로 바꿔 놓았다. 그래서 네 몸이 점점 악화된 게야."노부인은 숨을 헐떡이며 말을 쏘아붙였는데, 눈빛에는
어떤 힘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걷기도 버거워 보이던 노부인이 갑자기 날렵하게 움직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금숙과 천마마조차 그녀를 따라잡지 못할 정도였다.노부인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심장 박동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눈앞에는 정원의 풍경도, 주변의 사물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머릿속에는 수년간 불타오르던 큰` 화재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불길 속에서 울려 퍼지던 처절한 비명이 귀를 맴돌았다.그때 그녀는 누군가에게 끌리고 붙잡혀 움직이면서도 그 불길이 모든 것을 삼키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았다.그녀의 막내아들은 그렇게 불 속에서 죽었다.불길 속에서 여러 시신이 끌려 나왔지만 그녀는 그 시신들 중 어느 것이 자신의 아들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그녀는 몇 번이나 의식을 잃을 정도로 크게 오열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아들이 죽지 않았을 가능성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감히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병약해 걷는 것조차 누군가의 부축이 필요했던 아들이 어떻게 그 불바다 속에서 살아남았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노부인이 본채에 도착했을 때, 그녀의 눈에는 오직 한 사람만이 보였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눈물이 계속 흘러내리면서 그녀의 시야는 더욱 흐릿해졌다. 그녀는 온 힘을 다해 그 희미한 그림자를 따라 걸어갔다.노부인은 고개를 약간 기울이며 힘없고 불확실한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네가 내 아들이냐?"왕이장은 그녀를 알아보았다. 마음속으로 가장 원망스러워했던 사람이었다.하지만 그 순간 노부인의 끊임없이 흐르는 눈물을 보고 왕이장은 가슴 한구석에서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그는 움직이지 않고 대답도 하지 않았다."어머니, 저 아이가 교여예요." 왕준이 울면서 옆에서 외쳤다."아……!"노부인은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지르며 왕이장을 끌어안았다. 그녀의 기억 속 깊은 과거가 검고 짙은 밤을 뚫고 되살아났다. 그녀의 가슴은 마치 한 조각이 도려내
왕준이 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화난 목소리로 외쳤다."여기서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거냐? 어머니께서 언제 친아들을 버린 적이 있다고 그래? 나도, 큰형도 잘 지내고 있지 않느냐!""너희는 잘 지낸다고? 그럼 나는?"왕이장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너무 힘을 준 나머지 위와 목이 자극을 받아 고통스러워졌다. 그는 위를 부여잡고 웅크린 채 앉아 내력으로 속을 진정시키려 애썼다.그의 말에 왕준은 한동안 얼어붙었다. 그러다 무언가를 떠올린 듯 그를 급히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최씨 역시 무언가 기억난 듯 당황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그녀가 처음 집에 들어왔을 때 들었던 이야기였다. 어머니에게는 세 명의 아들이 있었고, 막내아들은 병에 걸려 치료하지 못해 사찰로 보내져 길러졌다. 그러나 사찰에 화재가 발생해 어머니는 막내아들이 불타 죽는 것을 두 눈으로 지켜봐야 했다.‘설… 설마 그때 죽지 않았던 건가?’"이름이 무엇이냐?"왕준은 이미 울먹이며 물었다. 그의 입술은 계속해서 떨렸다. 그는 왕이장을 간절히 바라보았다."노부인에게 물어보십시오, 노부인에게."왕이장은 위를 부여잡고 힘겹게 의자에 앉아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더 이상 힘이 없었다.최씨는 다가가며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기억났어요. 당신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아요. 여러 번 백부 문 앞에서 서성였잖아요."왕이장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최씨는 곧바로 시만자를 바라보았다.하지만 시만자 또한 최씨를 보지 않고 왕이장에게 말했다. "왕노오, 여기까지 왔으니 이들에게 분명히 말해. 왕교여라는 이름으로 어릴 적 여자 아이처럼 길러졌고, 다섯 살 때 사찰에 버려졌으며 학대받아서 몇 달 만에 죽을 뻔하다가 또 다시 버려졌다고. 사부가 널 주워서 살려줬지. 너는 아무 잘못도 없어. 잘못한 건 이들이야. 그러니까 제대로 따져봐."왕준은 마치 벼락을 몇 차례나 맞은 사람처럼 멍하니 굳어버리고 말았다. 눈동자조차 움직이지 않았다.그리고 곧 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