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두 시간이 지나자 날이 이미 어두워졌고 날씨는 더욱 싸늘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염을 기른 회계사가 장공주에게 다가가 보고를 했다. “장공주님, 모든 장부를 확인해 본 결과 왕비께서 말씀하신 금액과 일치합니다.” “젠장!” 장공주는 또 하나의 찻잔을 바닥에 내리쳤다. ‘쾅’하는 소리에 혜태비는 정신이 번쩍 들어 노기등등한 장공주를 바라보았다. 장공주는 화가 치밀어 올라 말했다. “조천민 그 자식이 감히 가짜 장부로 혜태비와 가의 군주의 돈을 횡령하다니? 내가 반드시 그를 엄벌에 처하게 할 것이야.” 송석석은 혜태비를 놓고 말했다. “장부에 문제가 없으니 다행이군요. 조천민이 횡령했다는 걸 확인했으니 장공주께서 나설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사람을 보내 그 자를 대리사로 보내 모든 돈을 받아오겠습니다.” “석석아.” 장공주는 말투가 한결 부드러워져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 일은 네 사촌언니에게도 잘못이 있다. 제대로 감찰을 하지 못했어. 이렇게 많은 돈을 횡령당한 줄도 모르고 있었다니.. 하지만 조천민도 평양후부의 사람이라 이 일이 커지면 네 언니와 평양후부에도 안 좋은 영향을 끼칠 게 뻔하니 이렇게 하는 건 어떠냐? 조천민을 나한테 맡긴다면 내가 반드시 돈을 다 받아내마. 만약 돈을 받아내지 못한다면 네 언니의 30% 지분을 포기하고 금루를 너에게 넘기마. 지금까지 금루에서 번 돈을 너도 보지 않았느냐? 앞으로도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테니 밑진 장사는 아닐 것 같은데?” “밑진 장사 아니라뇨? 그렇게 되면 오히려 저희가 이익을 얻는 셈인데요.” 송석석이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모두 한 가족인데 제가 어떻게 언니를 손해 보게 만들겠습니까? 금루는 쭉 언니가 관리해 왔고 점포의 사람 모두 언니가 보낸 사람이지 않습니까? 게다가 저희는 점포를 경영하는 법을 모르니 경솔하게 금루를 인수했다간 손해를 볼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이런 일이 생긴 마당에 계속 협력하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이래서 친척끼리 장사를 하는 게 아니라
송석석은 환한 등불 아래에서 은표를 하나씩 세었는데 근 몇 년간 금루에서 번 이윤과 딱 맞아떨어졌다. 심지어 잔돈까지 모두 정확했다. 진지하게 은표를 세는 송석석의 모습에 가의 군주는 이가 간질간질했다. 하지만 어쨌든 고비를 넘겼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송석석이 또 훼방을 놓았다. “내일 저는 사람들을 내보내 점포를 양도한다는 소식을 퍼뜨릴 것입니다. 고모님과 사촌언니가 운영하던 점포라고 하면 두 분의 명성을 봐서라도 사람들이 몰려올 것입니다. 양도가격을 25만 냥으로 정하는 건 어떻습니까?” 그녀의 말을 들은 가의 군주는 안색이 어두워졌다. “뭐라고? 나와 어머니가 운영하던 점포라고 소문을 내겠다고? 그건 안된다.” ‘금루에 무슨 명성이 있겠어? 돈을 빼돌리기 위해 운영하는 곳이라 좋은 재료를 사용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소문이 나면 나와 어머니의 명성까지 망가질 것이야. 나는 돈을 벌려는 것이었지 점포가 내 것이라고 인정할 생각은 없었다고.’ 그러자 송석석이 말했다. “하긴, 언니가 직접 경영하신 건 아니긴 하네요. 조천민이 평양후부의 사람이니 그럼 평양후부의 점포라고 소문을 내면 되겠지요. 평양후부가 백 년 세 가인 데다 금루의 장사도 잘 되었으니 많은 상인들이 점포를 인수하러 올 것입니다.” “그건 더욱 안된다!” 가의 군주는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굴렸다. “송석석, 너 이게 대체 무슨 속셈인 게냐?” 그러자 송석석은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담담하게 답했다. “가격이 높으면 언니도 돈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으니 좋은 거 아닌가요? 언니가 왜 이렇게 화를 내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가의 군주는 화가 나서 어쩔 줄 몰라했다. 송석석이 다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모습이 재수 없고 얄미웠다. ‘그리고 혜태비도 그렇다. 바보같이 새로 시집온 며느리에게 규칙을 세울 생각은 하지 않고 함께 돈을 받으러 오다니. 예전엔 송석석이 그렇게 싫다고 하더니, 방금 그들이 서로 안고 있는 모습을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모녀인 줄 알겠
송석석은 의자에 기대어 앉은 덕에 키가 훤칠하고 다리가 길어 보이며 기품이 있어 보였다. 그녀는 혜태비가 장공주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은 점이 기뻐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장공주는 그 방법이 쓸모가 없는 걸 보고 마음을 다잡으며 담담한 척 말했다. “그렇지요. 능력 있는 사람이 관리한다는 말은 맞는 말이지요. 그런데 송석석이 한 번 시집갔던 몸이라 싫어한다던 혜태비가 언제부터 며느리와 이렇게 각별한 사이가 된 건지 궁금하군요. 혜태비, 나는 당신이 북명왕부에서 며느리에게 억눌려서 살까 봐 걱정돼서 하는 말입니다.” 그러자 송석석이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 “그만하세요. 나머지는 제가 말한 대로 할 테니 저희는 그만 가보겠습니다.” “잠깐!” 장공주가 그들을 불러 세웠다. “너도 적당히 하거라. 염치없이 굴지 말란 말이다.” 장공주의 말에 혜태비는 무의식적으로 몸을 떨었다. 반면, 송석석은 애써 참았던 화를 내기 시작했다. “제가 뭘 염치없이 굴었단 말입니까? 전 돈을 받으러 온 겁니다. 서로의 감정이 틀어질까 봐 제가 말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장공주님께서 이렇게 나오시니 저도 더 이상 참지 않겠습니다. 금루의 돈은 조천민이 횡령한 게 아니라 두 분이 저희 어머님을 어리석게 여기고 여태 헛된 말로 돈을 받아간 것이 아닙니까. 조천민이 모든 사실을 말했습니다. 전에는 어머님이 궁에 살았으니 아랑곳하지 않고 날뛰었겠지요. 하지만 어머님이 궁에서 나오자 두 분이 미리 어머님의 초상화를 그들에게 보여주고 어머님이 점포에 가시게 되면 손님들은 그저 장사를 유지하려고 부른 일꾼이라고 말하라고 시킨 게 아닙니까!” “헛소리하지 말거라.” 장공주가 냉소를 터트렸다. “점포의 돈을 횡령한 사람의 말도 곧이곧대로 믿더니.” “그런 사람의 말을 믿어도 두 분의 말은 믿을 수 없습니다. 오늘 받을 돈을 받고 물러나야 할 자리에서 물러나 주신다면 이 일은 그냥 넘어가려 했으나 이렇게 나오시니 저도 두려울 것 없습니다. 공주께서 저희 어머님께 정절문을 보내왔을
그래서 다시 돈을 세기 시작했고 은표가 부족하자 금으로 채웠다. ‘20여만 냥을 눈도 깜짝하지 않고 내놓다니.. 공주부에 재산이 만만치 않군. 하긴, 근 몇 년 동안 부병을 키우고, 수백 명의 시종과 하인을 거느리는 것도 모자라 종종 손님까지 대접했었지. 게다가 공주부의 복장, 장신구 등은 모두 일등품이었어.’ 돈을 꺼낼 때 마음을 아파하던 장공주의 표정을 본 송석석은 이번에야말로 장공주의 급소를 정확히 찔렀다는 생각에 통쾌했다. 이번일로 정말로 그녀와의 관계가 틀어진 것 같았다.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모두 되돌려 받았으니 적어도 손해는 보지 않았어. 그리고 내가 장공주와 사이가 틀어진 일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니 허위적인 친절을 유지할 필요 없어. 이젠 집으로 돌아가야지.’ 장공주 모녀는 송석석이 올 때와 달리 아주 오만스러운 태도로 떠나는 모습을 보고 화가 나서 어쩔 줄 몰라했다. “송석석!” 장공주는 이를 갈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지만 그녀에게는 이제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가의 군주도 처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 몇 년간의 노력이 모두 수포로 돌아갔군요. 모두 송석석 저 천한 년 때문이니 내가 가만 두지 않겠어요!” 장공주도 송석석을 원망했지만 가의 군주가 하는 말을 듣고 말렸다. “아니다. 넌 송석석의 상대가 아니니 괜히 건드리지 말거라. 금루의 일도 네가 잘 처리하지 못한 탓 아니냐? 어떻게 장부를 전부 금루에 둘 수가 있어? 너 대체 생각이 있는 거냐?” 가의 군주는 화가 나면서도 억울했다. “저는 평양후부로 바로 가져가면 제가 금루를 운영한다는 걸 시어머니에게 들킬까 봐 무서워서 그랬던 겁니다..” “그럼 다른 저택에 다시 가져다 두었어야지. 평양후부에만 가져다 놓을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느냐? 정 방법이 없으면 오래갈 장사도 아니니 매년 장부를 확인한 후 태워버릴 수도 있는 것이잖냐!” “저도 그러려고 했는데 조천민 녀석이 태우면 안 된다고 저를 계속 말렸습니다.. 공주부의 모든 가게 중 금루만 세금을 내고 있어서
사여묵과 장대성이 앞장서서 길을 안내했고 뒤로 마차들이 천천히 따라왔다. 한편, 혜 태비가 송석석의 손을 덥석 잡으며 기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내가 다시 은을 돌려 받았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장공주에 대해 잘 알고 있지, 관대한 모습 뒤로 단호하기 짝이 없어.”송석석이 손을 집어넣었다.“잘 알고 계시니, 다음부터 조심하시면 됩니다.”“그러마.”하지만 몰려드는 걱정에 다시 입을 열었다.“만약 이번 일로 사이가 틀어지면 다른 부인들 앞에서 우리의 욕을 하겠지. 그럼 우리의 명성도 떨어지는 것이 아니겠느냐.”“그게 큰 문제입니까?”“넌 오래전부터 명성이 좋지 않아 문제가 되지 않지. 하지만 나는 막 궁에서 나오지 않았는가, 어떻게든 명성은 지켜내야 해.”송석석은 그녀를 살짝 노려 보았다.‘자기 자신 밖에 모르다니’혜 태비는 자신이 말을 잘못했다는 사실에 서둘러 수습에 나섰다.“아, 나는 그 뜻이 아니야. 한녕이 선을 보는 중이라 다른 집안들과 만남이 잦아. 자칫해서 한녕의 명성까지 더럽히면 어찌하나 싶어 한 말이네.”송석석이 답했다.“한녕 공주는 폐하와 태후가 지키고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북명황실이 그분의 배경입니다. 그 누구라도 한녕 공주의 명성을 감히 건드릴 수 없습니다.”그녀는 태후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당시의 태후는 제씨 집안의 여섯 번째 아들을 마음에 들어 했다.그리고 그를 조사하면서 한녕 공주의 의견을 물어보면 되지 않은가.마찬가지로 제씨 집안의 여섯 번째 아들의 의견도 들어 볼 것이다.송석석은 실패한 혼인 경험 때문에 부모 말고 본인들의 의견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마음 상했느냐?”한참을 침묵하던 송석석에게 혜태비가 물었다.“아니요.”송석석은 생각을 가다 듬었다.“다른 일을 생각하는 중이었습니다.”혜태비는 관대한 태도로 말했다.“내가 말했지 않느냐, 전부 다 돌려받게 된다면 반은 꼭 주겠다고 말이야.”송석석이 실성한 미소를 지었다.“어머님이 다 가져가서도 좋
많은 생각과 추운 온도 탓에 온몸이 굳어 관절이 아파왔다.부로 돌아오고 나서 송석석이 혜태비를 챙겼다.이어서 하인들에게 지시를 내렸다.“생강차 좀 끓여 오게나, 자네들도 생강차 마시고 몸 좀 축이게.”송석석은 자신도 공주부에서 추위에 떨었지만 타인부터 챙겼다.이어서 혜태비는 자신의 행동에 창피함이 몰려왔다.사실 송석석은 혜태비가 아니라 사여묵이 걱정 되었던 것이다.곧이어 주방에서 생강차가 올라왔다.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생강차를 마시고 있었다.한편, 송석석은 고개를 돌려 사여묵을 바라보았다.그가 생강차를 두 잔 마시고 나서야 혜태비에게 시선을 옮겼다.“어머님께서 먼저 드시지요. 돌아가서 따뜻한 국물 음식을 가져달라 하겠습니다.”그들은 오늘 밤에 목적지로 출발했다. 게다가 공주부는 물 한 모금 조차 대접하지 않았다.하물며 먹을 음식이 있었으랴.“그래.”대답하는 혜태비의 코가 꽉 막혔다.그녀는 감동에 벅차올랐다.“다 마시겠네.”“네, 알겠습니다. 저는 먼저 목욕부터 하겠습니다. 다 마시고 나면 뜨거운 물로 몸을 더 녹이시는 게 좋겠습니다.”송석석은 상대방의 대답은 듣지 않았다.곧이어 뚱한 표정을 하고 있는 사여묵을 데리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사여묵은 화가 잔뜩 났다.그의 모친이 한 짓에 경악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그녀는 후궁에서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았던 사람이다. 하지만 가의 군주에게 은을 주고, 때로는 은을 가져가는 행동은 신중하지 못했다. 게다가 혼인 한 지 며칠도 되지 않은 송석석이 모친을 도와 두 번이나 나섰다. 그가 밤에 공주부 밖에서 대기를 한 이유는 송석석 때문이었다.그녀의 실력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자신의 모친을 위해 힘든 일을 맡아 하는 그녀가 안쓰러워서였다. 게다가 그는 송석석이 도움을 청하기 전까지 사건에 함부로 끼어들 수가 없었다. 그녀는 분명 장공주와 쌓인 원한을 스스로 풀고 싶어 했을 것이다.한편, 두 사람은 매화원으로 향했다. 사여묵이 송석석의 손을 잡고
결국 두 사람은 같이 목욕을 하러 들어갔다. 목욕은 끝내도 서로를 향한 사랑은 끝이 없었다. 다행히도 둘 다 무술인이라서 1-2시간만 숙면해도 문제가 없었다.그 다음 날 아침.여인 두 명이 노 집사의 지시로 방 안으로 들어가 사여묵의 시중을 들었다. 두 사람은 원래 자수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왕야의 시중을 들 사람이 없어 잠시 데려온 것이다. 노 집사가 사내 하인들이 왕야의 옷을 갈아입히는 게 부적절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서다. 왕비의 하녀인 서주와 동주는 송서우를 챙겼고, 보주와 설주 그리고 명주는 왕비의 곁에서 그녀의 시중을 들었다. 양 마마는 매화원 전체를 신경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시중을 들게 하는 것도 부적절했다. 그리고 젊은 여인을 데려와 다른 일이 생기는 것 보다 궁녀 영씨와 옥씨에게 맡기는 쪽이 마음이 편했다. 게다가 두 사람은 이미 마흔이 넘었다. 그리하여 일도, 관계도 모두 안정감이 있었다.심지어 왕야가 황실에 배정받을 때 태후가 보내온 사람들이었다. 예전에는 태후 마마의 시중을 든 궁녀들이라 그런지 더욱 마음이 놓였다.곧 연말이라 대리사도 문을 닫는지라 사여묵은 오늘 대리사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었다. 모든 일은 내년 정월 초팔일 부터 처리가 가능했다.한편, 송석석은 국공부로 돌아가야 했다.그리하여 두 사람은 옷을 갈아입고 아침 식사를 했다.식사를 한 후 송석석은 송서우를 국공부로 데려가기 위해 사람을 불러 아이를 데려오게 했다. 그렇게 외출 준비를 끝내고 나가려고 문을 열자 문 앞에 시만자와 몽둥이가 서있었다.시만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어제 저녁에 다들 진성을 나가셨어, 바빠서 말도 못하고 가셨데.”송석석은 그녀의 말에 눈시울이 붉어졌다.“아, 또 이렇게 되는구나. 역시 사부의 말은 믿을 수가 없어. 떠날 때도 말해주겠다고 약조했건만.”시만자가 답했다.“사부는 네가 울까 봐 그러신 거야. 날이 더워지면 너랑 같이 매산으로 갈 생각이야.”“그때까지 계속 있을 생각이야?”송석석이 그녀를 바라 보았다.“너
염구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왕비가 계시니 그대에게 소홀히 하지 않아. 그저 일만 잘 처리 하면 된다네. 이제부터 부병의 관리와 훈련 모두 자네에게 맡기겠어. 그만큼 고생을 했으면 당연히 상이 있을 거야.”하지만 몽동이는 애매한 대답은 듣고 싶지 않았다.그는 다시 직설적으로 물었다.“그래서 얼마를 주신다는 말씀입니까?”염구진이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렸다.몽동이는 당장이라도 방망이를 들어 염구진의 머리를 내려치고 싶은 심정이었다.‘왜 정확하게 말하지 않는 거야?’그러자 사여묵이 끼어들었다.“하겠느냐?”“네, 합니다!”몽동이는 바로 대답했다.이미 하겠다고 약조를 했고, 얼마 인지는 송석석을 찾아가 물어보면 그만이었다.은을 벌지 못하고 돌아가면 신명 나게 맞아야 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어서 염구진이 말했다. “그래. 병사 모집에는 자네 도움이 필요하지 않아. 자네는 그저 병사들에게 무술만 알려주면 되네.”“예, 하지만 황실에 다 모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노 집사가 답했다.“이건 자네가 상관 쓰지 않아도 된다네. 황실 뒤에는 다른 공간이 있어. 은을 다시 돌려받게 되면 관리자를 부를 걸 세. 그러면 새로 지을 수 있어.”“그 기간에 제 임금은 있는 것이겠지요?”몽동이가 물었다.염구진은 돈밖에 모르는 그의 질문에 마음이 답답했다.“물론이지.”염구진은 줄 때는 확실히 주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상대는 왕비의 오랜 친구이기도 했다. 동시에 군중에서 잠시나마 백호를 맡은 무장이기 때문에 돈은 확실하게 주어야 했다. 몽동이는 그제야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예, 알겠습니다.”한편, 밖에는 눈이 내렸다.대리사는 문을 닫았지만 현갑군의 지휘관인 사여묵은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그는 관청 호위와 연말 순찰에 관해 회의를 하러 간다고 송석석에게 알렸다.“네, 그렇게 하시지요. 저는 만자와 몽동이와 함께 청목암에 들릴 생각입니다. 제 이모님이 거기에 있습니다.”“청목암이라면 나랑 같이 가시는 게 어떻겠소?”“저들과 같이
송석석은 차분하게 질서를 잘 정돈한 뒤, 학생들과 부모님들을 저택으로 돌려보냈고 비밀을 지켜달라는 얘기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 일은 언젠가 소문이 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그러고는 홍현에게 청작과 경조부의 사람을 불러오라고 했다.이 범인은 약을 먹은 게 확실하기에 반드시 매달아서 심문해야 하며 청작을 통해 무슨 약을 먹었는지 확실하게 알아내야 한다.한편, 도망친 범인들도 오진에게 전부 잡혀왔고 그들은 묶여 있는 중년 남성보다 정신이 훨씬 멀쩡해 보였지만 송석석과 홍현을 쳐다보는 눈빛은 여전히 야릇하고 이글거렸다.송석석은 안여옥을 살포시 안아주었고, 이제서야 평정심을 되찾은 안여옥이 되레 송석석을 위로했다.“괜찮아요. 저 괜찮습니다.”“왜 그런 말을 했어요? 선생님은 지금 자신을 망가트린 거라고요. 이를 어찌하면 좋을까요?”국태 부인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얼굴이 창백한 안여옥은 가까스로 미소를 지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국태 부인께서 제 걱정을 이리 하시니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전 애초부터 혼인할 생각이 없었고 저에게 있어서 명성은 그저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이제 그 짐을 벗어 던졌으니 차라리 잘 된 일이지요.”“그렇지만 모든 화를 혼자서 떠안겠다고 하시니… 사람들이 선생님을 어찌 얘기하고 다닐지 걱정됩니다. 선생님 조부께도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지…”국태 부인은 안씨 어르신과 오랜 인연을 이어왔다. 이번에 안여옥을 여학 선생으로 데리고 올 때에도 안여옥을 잘 보살피겠다고 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안 그래도 몸이 허약하신 안씨 어르신이 이 얘기를 들으면 충격에 쓰러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다들 안여옥을 위로하기 바빴고 안여옥은 많은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쳤다는 생각에 얼른 웃으면서 말했다.“전 정말 괜찮습니다. 그리 큰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사람이 살면서 더한 일도 경험하게 될 텐데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안여옥은 연신 괜찮다고 했지만 사람
이때, 송석석이 서원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조금 전 밖에 있을 때부터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 있었다.송석석이 나타나자 부인들은 우르르 몰려가 송석석에게 이제 어떻게 해야 하냐고 닥달했다. 감히 대놓고 따져 묻지는 못했지만 송석석에게 합리적인 설명을 내놓으라는 뜻으로 말하고 있었다.송석석은 겉으로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분통이 터졌다. 여학 마지막 날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오늘 서원 대문이 열려 있었던 이유는 학생들과 데리러 온 가문 사람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나올 때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인데 범인들이 이 틈을 노리고 학교 안으로 들이닥칠 줄은 몰랐다.이 일은 분명 여학을 겨냥해서 벌인 일이었다.“이 일은 제가 확실하게 처리하겠습니다.”송석석의 말에 부모들이 너도나도 한 마디씩 보탰다.“왕비님,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실 겁니까?”“그러게요.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였고 쳐다보는 눈이 이렇게 많은데 이 많은 입들을 다 단속할 수 있습니까? 소문이 이상하게 퍼지면 없는 사실도 있는 일처럼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여학에 호위병을 좀 많이 세워둬야 하는 거 아닙니까?”한편, 안여옥은 송석석이 궁지로 몰리자 얼른 눈물을 닦은 뒤, 벌떡 일어나 큰소리로 말했다.“여러분, 걱정하시 마십시오. 한 명도 다친 학생이 없습니다. 저 범인은 그저 저를 잠깐 껴안았을 뿐이지 다른 학생을 해치지 못했습니다.”안여옥의 말에 현장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고 다들 안여옥이 이 일을 이렇게 대놓고 얘기할 줄은 몰랐다.범인이 안여옥을 껴안은 게 사실이라고 해도 이를 숨겨야 하는데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얘기한단 말인가?그러다가 소문이라도 나면 안여옥은 평생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살게 될 수도 있다.이때, 정신을 번쩍 차린 국태 부인이 다급하게 부인했다.“선생님은 범인에게 당하지 않았습니다. 함부로 그런 얘기하지 마세요. 범인은 선생님에게 손을 댈 기회가 없었습니다.”하지만 안여옥은 국태 부인의 말을 따르지 않았
서원에 비명소리가 점점 더 커졌고 홍현은 왕지아를 달랜 뒤 바로 서원으로 뛰어갔다.“함부로 돌아다니지 말고 잘 숨어있으렴.”한편, 서원 안에서 너무 놀란 국태 부인과 정 부인은 재빨리 딸들을 등 뒤로 숨겼고 안여옥과 무씨 아가씨는 손에 긴 몽둥이를 들고 덜덜 떨면서 들이닥친 남자들을 향해 휘둘렀다.두 선생님은 혹시라도 뒤에 있는 여학생들이 다칠까 봐 최선을 다해 막았지만 힘이 부족했다.이때, 한 남자가 주창우를 향해 덮쳤고 화들짝 놀란 주창우가 비명소리를 지르자 안여옥은 몽둥이로 남자를 내리쳤다. 하지만 남자는 겁을 먹긴 커녕, 되레 사악하게 웃으며 안여옥을 향해 달려갔다.홍현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안여옥은 남자에게 강제로 안겨 있었고, 그 남자는 심지어 입을 맞추려고 했다. 겁에 질린 안여옥은 미친 듯이 발버둥쳤지만 힘으로는 이길 수 없어, 결국 손톱으로 남자의 얼굴을 할퀴었다.미간을 확 찌푸린 홍현은 바로 달려가 한 손으로 남자의 등을 확 잡더니 그를 바닥에 내리꽂았고 발로 남자의 배를 힘껏 짓밟았다.극심한 고통에 남자는 바닥을 굴러다녔고 홍현은 무씨 아가씨 손에서 몽둥이를 낚아채더니 남자들을 향해 무섭게 공격했다.안여옥을 침범하려고 했던 남자는 홍현이 휘두른 몽둥이에 다리뼈가 부러졌고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바로 이때, 딸을 데리러 온 가문들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어떻게 된 거예요? 왜 학교 안에 남자들이 들이닥친 겁니까?”서원 안으로 몰려든 사람들은 바닥에 누워 비명을 지르는 남자를 쳐다보았고 여학생들은 너무 큰 충격에 다들 넋이 나간 상태였다.그러다가 부모님을 발견한 여학생들은 엉엉 울면서 각자 가족의 품으로 달려갔다.“어머니, 아버지, 너무 무서워요! 저 남자들이 갑자기 서원으로 뛰어들어와서 안 선생님을 강제로 안았어요.”사람들은 이내 안여옥에게 고개를 돌렸다. 머리가 헝클어진 안여옥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무씨 아가씨 품에서 온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경험이 많은 국태 부
송석석은 이 사실을 염 선생에게 알리자, 염 선생은 흠칫하다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사국 사람들이 어떻게 진성에 진입하게 된 거죠? 심지어 이곳에서 살고 있다니.”송석석이 대답했다.“그래서 나머지 남풍관도 확실하게 조사해봐야 할 것 같아. 그리고 남풍관 주인장도 만나봐야지. 주인이 사국 사람들을 거둬서 남풍관에서 장사를 하는 거니까 아무것도 모르지는 않을 거야.”사국 사람들이 언제 진성에 왔고 누가 데리고 왔으며 무슨 목적으로 온 건지 확실하게 알아내야 했다. 송석석은 나머지 남풍관을 직접 방문해서 조사할 생각이었고, 시만자와 왕이장도 함께 했다.그렇게 며칠 동안 송석석은 남풍관 다섯 군데를 돌아다녔다. 그중 세 군데에 사국 사람들이 있었고 총 열다섯 명이었다.호흡 방식이나 걸음걸이로 보면 열다섯 명 전부 무술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확실히 사국 사람들 외모는 아니었으며 보통 몸매의 남강 사람들 같았다.보아하니 신경 써서 고른 듯했다.불빛이 어두운 환경에서는 사국 사람들을 알아보기 어려웠으며 더군다나 그들은 상국 말을 유창하게 쓰고 있었기에 아무도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다.그리고 세 가게의 주인은 동일인이었으며 그자가 바로 광릉후의 향봉천이다.상의 끝에 송석석 일행은 섣불리 움직이는 대신 사람들을 시켜 몰래 남풍관 가게들을 지켜보라고 했으며 그들의 진정한 목적을 알아내려 했다.그리고 염 선생은 광릉후를 다시 한번 제대로 조사하기 시작했다.광릉후의 향봉천은 남색을 즐기는 자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자를 싫어하지는 않았다. 평범한 사내들과 똑같이 혼인하여 아이도 낳고 첩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향회옥이 바로 향봉천의 막내딸이었다. 사람들은 새로운 사실에 조금 놀란 눈치였다. 평소에 광릉후 사람들의 행실이 조용하고 눈에 잘 띄지도 않았으며 향회옥이 가끔 제자예와 함께 여학에서 문제를 일으킨 것 외에는 그 어떤 추문도 없었다.하지만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해 보이는 광릉후에서 남풍관을 세 군데나 운영하고 있는 것도 모자
송석석은 시만자를 의자에 앉히며 대답했다.“오사형이 아주 고맙게 생각하겠네. 하지만 난 맞추고 싶지 않아. 그래서 누굴 봤는데?”“빅토르! 그래, 맞아! 빅토르를 봤어! 그것도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의 빅토르를 봤지!”시만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고 송석석은 이마를 꾹꾹 누르며 다시 물었다.“여러 명의 빅토르를 본 거야 아니면 빅토르를 닮은 사람이 여러 명 있었던 거야? 너 대체 술을 얼마나 마셨길래 이렇게 취한 거야?”“빅토르… 아니야. 빅토르보다 젊었어.”시만자가 머리를 휘청거리며 대답했고 송석석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빅토르를 닮았다는 거지? 그럼 사국 사람들이네?”사국과 상국은 아직 길이 통하지 않았기에 사국 사람들이 상국에 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사국 사람들이 진성에 나타난 것도 모자라 진성에서 살고 있다니.이때, 시만자가 꼬인 혀로 힘겹게 대답했다.“맞… 맞아. 사국 사람들이야. 그런데 어떻게 진성에 사국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거지? 남풍관에 숨어 있었는데 왜 남풍관에 갔던 손님들은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않았던 걸까? 내가 그 사람들을 봤다는 건 다른 손님들도 다 봤다는 뜻인데.”송석석은 조금 불안했다. 남풍관을 방문한 손님들은 절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남풍관에 갔었다고 얘기하지 않을텐데 말이다. 하지만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사국 사람들이 언제 진성에 몰래 들어왔냐는 것이다. 그들은 남풍관에 숨어 있었기에 아무도 그들을 발견하지 못했다.진성에 남풍관이 몇 개가 있지만 전부 비밀리에 운영되고 있었다. 선황제가 확실한 금지령을 내렸기에 엄격하게 조사했지만 숙청제가 황위에 오르고 나서 더 이상 이런 일에 신경을 크게 쓰지 않았다. 물론 엄하게 다루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권장하지도 않았다. 분위기는 선황제 때보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웠지만 남색은 여전히 이 나라에서 용납되지 않기에 아무도 대놓고 얘기하는 사람은 없었다.언급하는 사람이 없어서 아무도 주의 깊게 지켜보지 않았다.한편, 시만자는 털썩 눕더니 바로 잠이
송석석은 사여묵에게 항상 안전에 조심하고, 스쳐가는 여인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말라며 신신당부했다.사여묵은 질투를 하는 듯한 송석석의 모습에 기분이 좋아서 환하게 웃으며 대꾸했다.“내 절대 눈길도 안 줄 테니 걱정하지 마시오.”조금 뒤, 사여묵은 몽동이와 장대성을 데리고 길을 떠났고 혜 태비는 아들의 뒷모습을 몇 번 쳐다보고는 이내 돌아서서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염 선생과 양 마마도 돌아갔고 송석석과 시만자만 문 앞에 서서 사여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마음이 허전해?”시만자가 송석석의 어깨를 툭 치며 물었고 송석석은 울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조금.”송석석과 사여묵은 혼사를 치르고 나서 계속 각자 일로 바빴지만 거의 매일 밤 함께 보냈기에 하루도 못 보는 날이 없었다.그런데 최소 두 달은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져 송석석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두 달이 참 길게 느껴지네.”“두 달이 길어? 2년도 아니고.”시만자가 송석석의 어깨를 팔로 감싸더니 말을 이어갔다.“내가 보기엔 넌 이 두 달 동안 자유를 만끽해야 돼. 서방이 곁에 없으니 하고 싶은 건 다 해봐야지. 나중에 널 데리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좋은 데도 같이 가야겠네! 내가 왕이장한테서 들었는데 진성에 꽤 괜찮은 주막들이 있대. 한 번쯤 가보고 싶었는데 전에는 북명왕이 있어서 널 부르기 조금 미안했지. 이제 됐네. 두 달 동안 자유이니까 마음껏 즐기자고.”“무슨 주막이길래 서방이 있을 땐 날 못 부른 것이냐? 왕경루 음식보다 맛있어?”의아한 듯 묻던 송석석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됐어. 나 지금 입맛이 없어서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그런 거 아니야! 남풍관이라고 남자들이 장사를 하는 곳이야. 그러니까 우리가 남장을 해서 들어가면…”시만자가 입꼬리를 씩 올리며 말하자 송석석이 걸음을 턱 멈추었다.“뭐야? 너 가봤어? 오사형이 널 데리고 간 거야? 오사형은 지금 어디 있어?”“그자가 날 데리고 가진 않았지. 그저
사여령이 대리사를 나올 땐 허리를 쫙 편 채 눈빛이 단호하고 당당한 모습이었다. 조금 전, 사여묵이 마지막에 그에게 했던 한 마디 덕분이었다.“네가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들었어. 조금만 더 노력하고 버티면 내가 승진을 시켜줄게.”그 순간, 사여령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지금까지 어머니를 제외하고 아무도 그의 능력을 인정해준 적이 없었으며 그를 진심으로 칭찬해준 사람도 없었다.어머니가 사여령을 칭찬하긴 하지만 그건 대부분 위로였다. 어렸을 때부터 문무가 모두 약했던 사여령에게 어머니는 항상 칭찬으로 자신감을 북돋아주었고 나중에 크면 잘하게 될 거라고 위로했다.하지만 그건 그저 위로일 뿐, 인정은 아니었다.지금, 사여령은 진정한 인정을 받았고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았으며 이 길을 계속 갈 수만 있다면 지금보다 더 노력할 자신이 있었다.사여령은 어렸을 때부터 부왕의 예쁨을 받지 못했고 통방이 낳은 자식이라며 늘 차별을 받았었다.그때 당시 부왕은 통방에게 회임하지 못하도록 약을 먹였는데 어찌된 일인지 결국 통방이 회임을 하게 되었고 부왕은 바로 통방에게 낙태약을 먹였지만 어머니의 노력으로 사여령의 친모는 결국 아이를 낳게 되었다.사여령의 어머니는 연왕이 체면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일부러 대놓고 갓난 사여령을 저택으로 데려왔고 연왕은 아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그때부터 사여령의 어머니는 연왕에게 미운 털이 박히게 된 것이다.이런저런 생각에 사여령의 발걸음도 몹시 가벼워졌다. 비록 아버지를 배신했다고 하지만, 심리적으로 부담이 되지도 않았고 미안한 마음도 들지 않았다.사여령이 미안한 건 어머니가 청목암으로 보내졌을 때 따라가지 않았던 점이었다.아버지라는 사람은 아들에게만 몹쓸 짓을 저질렀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에도 빨리 죽지 않는다고 욕설을 퍼부었다.한편, 북명황실 의사당 안의 불빛은 밤새 꺼지지 않았다.사여령한테서 들은 정보에 의하면 노주 한 곳만이 아니며 사여령의 정보도 부족한 부분이
사여령은 한참동안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주먹만 꼭 쥐고 있었고 손바닥에는 어느새 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사여령은 이제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대리사 감옥 관리자가 되고 나서 사여령은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속으로 수천 수백 번을 생각했지만 확실한 답을 얻지 못했다.나중에 진소경이 사여령의 고민을 눈치채고 사여령에게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눈앞에 닥친 일만 잘 해내면 된다고 방법을 제시했기에 사여령은 그 뒤로부터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여태까지 답을 얻지 못했기에 갑작스러운 사여묵의 물음에 넋을 잃은 채 앉아있던 사여령은 위엄이 넘치는 사여묵 눈빛에 머릿속이 하얘졌다.덜컥 겁이 난 사여령은 본능적으로 대답했다.“노주에 병사가 정확하게 얼마나 많은지는 모릅니다.”“넌 그걸 어떻게 알았어?”사여묵이 물었고 사여령은 노주에 병사가 있다는 사실을 얘기한 뒤 오히려 마음이 많이 진정되었다.선택을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사여령이 솔직하게 대답했다.“연주의 왕부에 서재가 두 층으로 되어 있습니다. 전 평소에 2층에서 책을 보는데 가끔 하루 종일 2층에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아래층에서 얘기하는 걸 들은 적이 몇 번 있습니다. 바로 아래층에서 얘기하고 있었지만 서재가 너무 큰 탓에 정확하게는 듣지 못했습니다. 노주에 대한 얘기가 몇 번 나왔고 노주 외에도 옹현, 간현, 부현 그리고 나현 등 지역도 언급된 적이 있습니다. 그 외에 다른 지역도 있는데 지역명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번에는 식량을 노주에 가져가야 한다는 말도 들었습니다.”사여묵은 미간을 찌푸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뭔가 이상한데? 연왕이 여러 지역에서 병사를 키우고 있다고? 그럼 세력이 대체 얼마나 큰 거지? 병사를 키운다는 게 점포를 여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닌데 식량과 무기 공급은 문제가 없는 건가?’사여묵이 사전에 조사한 정보에 따르면 연왕에게는 그럴 만한 세력과 재력이 없었다.옹현과 간현은 그럴 가능성
북명왕 저택에는 호위병 외에 따로 비밀 호위무사를 양성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밖에서 정보를 캐내는 무술 실력이 강한 부하들이 몇 명 있긴 했지만 다들 매우 바빴기에 거의 한 달에 한번 저택으로 돌아와 얻은 정보를 보고하곤 했다.물론 정탐조도 있지만 이들은 적의 동향을 살피는 자들이기에 사적인 일로 움직일 수 없었다.비밀 호위무사를 두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 이유는 사여묵이 남강에 파견되기 전에 이미 큰 전공을 세웠고 현갑군도 거느리고 있었기에 선황제는 사여묵이 저택에 너무 많은 부병을 두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두 번째 이유는 사여묵이 남강 전쟁에 투입되고 나서 이런 부분에 신경 쓸 겨를도 없었기에, 전쟁을 승리하고 돌아왔을 땐 황제의 의심과 경계 때문에 더더욱 비밀 호위무사를 키울 수 없었다.지금 만약 황제가 대외적으로 사여묵을 노주로 정찰을 보낸다고 발표한다면 현갑군에서 병사들을 보낼 수 있지만 아무도 모르게 가는 것이기에 저택에 있는 사람들만 데리고 갈 수 있었다.“제가 같이 갈까요?”송석석의 물음에 사여묵은 피식 웃으며 송석석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괜찮소. 위험한 건 아니오. 그저 정보만 수집하는 일이라 몸을 쓸 일은 없소. 몸을 써야 한다면 우리 몇 명만 가지도 않았을 것이오. 그리고 이제 연말이라 경위부도 사건 사고가 많을 테니 이곳을 지키는 게 좋겠소.”사여묵이 말한 것처럼 연말에 경위부와 순방영은 평소보다 훨씬 일이 많았기에 송석석이 간다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하지만 몇 명만 보내기엔 도무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다음날, 이 사실을 전해 들은 심청화는 10일 뒤면 서원도 수업이 끝나니 며칠 앞당겨서 사여묵과 함께 떠날 수 있다고 했다.심청화가 함께 간다고 하니 송석석은 훨씬 마음이 놓였지만 그래도 이 일은 국태 부인과 상의를 해야 한다.심청화가 국태 부인에게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다들 동의했으며 출발까지 아직 3일이나 남았으니 서원 시험만 보면 된다고 했다.심청화는 당연히 진짜 행방을 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