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생각과 추운 온도 탓에 온몸이 굳어 관절이 아파왔다.부로 돌아오고 나서 송석석이 혜태비를 챙겼다.이어서 하인들에게 지시를 내렸다.“생강차 좀 끓여 오게나, 자네들도 생강차 마시고 몸 좀 축이게.”송석석은 자신도 공주부에서 추위에 떨었지만 타인부터 챙겼다.이어서 혜태비는 자신의 행동에 창피함이 몰려왔다.사실 송석석은 혜태비가 아니라 사여묵이 걱정 되었던 것이다.곧이어 주방에서 생강차가 올라왔다.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생강차를 마시고 있었다.한편, 송석석은 고개를 돌려 사여묵을 바라보았다.그가 생강차를 두 잔 마시고 나서야 혜태비에게 시선을 옮겼다.“어머님께서 먼저 드시지요. 돌아가서 따뜻한 국물 음식을 가져달라 하겠습니다.”그들은 오늘 밤에 목적지로 출발했다. 게다가 공주부는 물 한 모금 조차 대접하지 않았다.하물며 먹을 음식이 있었으랴.“그래.”대답하는 혜태비의 코가 꽉 막혔다.그녀는 감동에 벅차올랐다.“다 마시겠네.”“네, 알겠습니다. 저는 먼저 목욕부터 하겠습니다. 다 마시고 나면 뜨거운 물로 몸을 더 녹이시는 게 좋겠습니다.”송석석은 상대방의 대답은 듣지 않았다.곧이어 뚱한 표정을 하고 있는 사여묵을 데리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사여묵은 화가 잔뜩 났다.그의 모친이 한 짓에 경악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그녀는 후궁에서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았던 사람이다. 하지만 가의 군주에게 은을 주고, 때로는 은을 가져가는 행동은 신중하지 못했다. 게다가 혼인 한 지 며칠도 되지 않은 송석석이 모친을 도와 두 번이나 나섰다. 그가 밤에 공주부 밖에서 대기를 한 이유는 송석석 때문이었다.그녀의 실력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자신의 모친을 위해 힘든 일을 맡아 하는 그녀가 안쓰러워서였다. 게다가 그는 송석석이 도움을 청하기 전까지 사건에 함부로 끼어들 수가 없었다. 그녀는 분명 장공주와 쌓인 원한을 스스로 풀고 싶어 했을 것이다.한편, 두 사람은 매화원으로 향했다. 사여묵이 송석석의 손을 잡고
결국 두 사람은 같이 목욕을 하러 들어갔다. 목욕은 끝내도 서로를 향한 사랑은 끝이 없었다. 다행히도 둘 다 무술인이라서 1-2시간만 숙면해도 문제가 없었다.그 다음 날 아침.여인 두 명이 노 집사의 지시로 방 안으로 들어가 사여묵의 시중을 들었다. 두 사람은 원래 자수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왕야의 시중을 들 사람이 없어 잠시 데려온 것이다. 노 집사가 사내 하인들이 왕야의 옷을 갈아입히는 게 부적절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서다. 왕비의 하녀인 서주와 동주는 송서우를 챙겼고, 보주와 설주 그리고 명주는 왕비의 곁에서 그녀의 시중을 들었다. 양 마마는 매화원 전체를 신경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시중을 들게 하는 것도 부적절했다. 그리고 젊은 여인을 데려와 다른 일이 생기는 것 보다 궁녀 영씨와 옥씨에게 맡기는 쪽이 마음이 편했다. 게다가 두 사람은 이미 마흔이 넘었다. 그리하여 일도, 관계도 모두 안정감이 있었다.심지어 왕야가 황실에 배정받을 때 태후가 보내온 사람들이었다. 예전에는 태후 마마의 시중을 든 궁녀들이라 그런지 더욱 마음이 놓였다.곧 연말이라 대리사도 문을 닫는지라 사여묵은 오늘 대리사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었다. 모든 일은 내년 정월 초팔일 부터 처리가 가능했다.한편, 송석석은 국공부로 돌아가야 했다.그리하여 두 사람은 옷을 갈아입고 아침 식사를 했다.식사를 한 후 송석석은 송서우를 국공부로 데려가기 위해 사람을 불러 아이를 데려오게 했다. 그렇게 외출 준비를 끝내고 나가려고 문을 열자 문 앞에 시만자와 몽둥이가 서있었다.시만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어제 저녁에 다들 진성을 나가셨어, 바빠서 말도 못하고 가셨데.”송석석은 그녀의 말에 눈시울이 붉어졌다.“아, 또 이렇게 되는구나. 역시 사부의 말은 믿을 수가 없어. 떠날 때도 말해주겠다고 약조했건만.”시만자가 답했다.“사부는 네가 울까 봐 그러신 거야. 날이 더워지면 너랑 같이 매산으로 갈 생각이야.”“그때까지 계속 있을 생각이야?”송석석이 그녀를 바라 보았다.“너
염구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왕비가 계시니 그대에게 소홀히 하지 않아. 그저 일만 잘 처리 하면 된다네. 이제부터 부병의 관리와 훈련 모두 자네에게 맡기겠어. 그만큼 고생을 했으면 당연히 상이 있을 거야.”하지만 몽동이는 애매한 대답은 듣고 싶지 않았다.그는 다시 직설적으로 물었다.“그래서 얼마를 주신다는 말씀입니까?”염구진이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렸다.몽동이는 당장이라도 방망이를 들어 염구진의 머리를 내려치고 싶은 심정이었다.‘왜 정확하게 말하지 않는 거야?’그러자 사여묵이 끼어들었다.“하겠느냐?”“네, 합니다!”몽동이는 바로 대답했다.이미 하겠다고 약조를 했고, 얼마 인지는 송석석을 찾아가 물어보면 그만이었다.은을 벌지 못하고 돌아가면 신명 나게 맞아야 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어서 염구진이 말했다. “그래. 병사 모집에는 자네 도움이 필요하지 않아. 자네는 그저 병사들에게 무술만 알려주면 되네.”“예, 하지만 황실에 다 모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노 집사가 답했다.“이건 자네가 상관 쓰지 않아도 된다네. 황실 뒤에는 다른 공간이 있어. 은을 다시 돌려받게 되면 관리자를 부를 걸 세. 그러면 새로 지을 수 있어.”“그 기간에 제 임금은 있는 것이겠지요?”몽동이가 물었다.염구진은 돈밖에 모르는 그의 질문에 마음이 답답했다.“물론이지.”염구진은 줄 때는 확실히 주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상대는 왕비의 오랜 친구이기도 했다. 동시에 군중에서 잠시나마 백호를 맡은 무장이기 때문에 돈은 확실하게 주어야 했다. 몽동이는 그제야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예, 알겠습니다.”한편, 밖에는 눈이 내렸다.대리사는 문을 닫았지만 현갑군의 지휘관인 사여묵은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그는 관청 호위와 연말 순찰에 관해 회의를 하러 간다고 송석석에게 알렸다.“네, 그렇게 하시지요. 저는 만자와 몽동이와 함께 청목암에 들릴 생각입니다. 제 이모님이 거기에 있습니다.”“청목암이라면 나랑 같이 가시는 게 어떻겠소?”“저들과 같이
송석석이 답했다.“병에 걸리셔서 청목암으로 옮기신 겁니다. 첫째는 깨끗한 환경에서 몸을 간호하기 위함이고 두 번째는 청목암의 신에게 기도를 올리기 위함입니다.”한녕 공주는 이해가 돠지 않았다.“병에 걸리셨으면 더욱 연황실에 있는 게 좋다고 봅니다. 적어도 무슨 일이 생기면 하인들이 곧바로 알 수 있지 않습니까.”한녕 공주도 아는 도리를 연왕이 모를 리가 있으랴. 연왕이 다스리는 지역은 연주였다.하지만 송석석은 오히려 걱정이 되었다. 청목암과 진성이 연주에서 많이 멀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병 치료를 위함이라면 진성으로 보내는 게 더 좋지, 적어도 진성에는 태의나 단신의가 보살필 수 있는데.’단신의가 국춘과 청작을 보내 왕비를 보살피지만 주위에 친한 지인도 없어 외로움이 극에 달할 것이다.송석석이 답했다.“그럼 저는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머님께 서우를 부탁드리겠습니다.”“그래, 나한테 맡기거라.”혜 태비는 송석석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에 발 벗고 나섰다. 그 모습에 한녕 공주가 깜짝 놀랐다.그녀는 그저 먹을 것만 생각하고 있어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몰랐다. 하여 자신의 새언니가 자리를 뜨자마자 서둘러 물었다.“어머니께서는 새언니를 싫어하지 않으셨습니까? 왜 갑자기 이렇게 변하셨습니까?”혜 태비가 한숨을 내쉬었다.“가여운 사람이야, 집안사람은 겨우 서우 하나밖에 안 남았어. 내가 시어머니이니 며느리를 딸처럼 대해야 하지 않겠느냐?”한녕 공주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궁에 있을 때는 그렇게 말씀하신 적 없으셨잖아요. 제가 말렸어도 항상 들은 척도 안 하셨던 것 아닙니까.”“내가 언제 안 들었다고 그러느냐? 그저 행동이 조금 느린 것뿐이야.”한녕 공주는 모친의 행동에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송석석한테 잘 해주면 그만이었다. 한편, 송석석은 외출했다.몽동이에게 말을 맡기고, 그녀와 시만자는 마차 안으로 들어섰다. 그 외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하인들도 데려가지 않았다. 시만자는 그제야 운익각에서
송석석은 그때의 일을 다시 한번 더 떠올리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병이 갑자기 악화된 게 나 때문일 까봐 두려워.”시만자는 이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하지만 송석석이 알아챘다면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었다. “사실 연왕비께서는 모르고 계셨는데 측비 김씨가 일부러 알렸어. 연왕비께서 그걸 듣고 나서 바로 피를 토하셨고. 그 후로 병증이 더 악화됐어. 이 일은 운익각에서 들은 게 아니라 홍작이 이야기해 줬어. 너한테 말을 해줄지 말지 신중하게 생각하라고 하더라.”“그럴 줄 알았어.”송석석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내 혼사는 이모님이 중매를 서 주셨어. 비록 이모님이 추천한 사람이지만 내 모친도 알아 보긴 했었어. 그 당시, 장군부는 별다른 사건이 없었어. 게다가 민씨가 무능하고 연약했거든. 내가 그 집에 들어 가고 나서도 큰 형님한테 받는 압박은 없었어. 큰 집안과 작은 집안 사이도 그저 겉으로 화목할 뿐이었지.”“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청목암에서 연왕비를 만나고 나서 생각해도 늦지 않아.”시만자는 위로에 탁월하지 않았다.어떤 일이든 해결하려면 당사자가 나타나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연왕비는 본처이지만 김씨는 결국 첩이었다. 본처가 힘이 없다고 해도 본처는 결국 본처이기 마련이었다.첩이 자식을 낳았다고 할지라도 첩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그래.”송석석이 고개를 끄덕였다.“내가 왕야와 혼인했다는 사실을 아시면 좀 나아지실지도 몰라.”“그래.”시만자는 등에 방석을 받쳤다. 그녀의 외투의 목덜미 부분에는 하얀 여우의 털이 달려있었다. 그 덕에 외모를 한껏 더 올려 주었다. 송석석은 그녀를 보고는 다시 물었다.“내가 또 모르는 게 있어?”“아니, 내 일 때문에 그래.”시만자가 미간을 찌푸렸다.“아무 일도 아니야.”“집안 일이야?”“우리 고모가 인사하러 온대. 게다가 그 선비까지 데리고 말이야.”시만자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사실 예전에는 고모를 엄청 싫어했어. 우리 시씨 가문의 명성을 떨어뜨렸
시만자의 눈에 눈물이 고였고 그녀는 송석석의 어깨에 기대어 울먹거렸다.“그 선비가 고모를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실망하면서 평생동안 후회하면서 살기 바랬어.”송석석은 그녀의 어깨를 쓰다듬었다.“진심이 아니잖아.”“진심으로 생각해 본 적 있어. 난 착하지 못해. 너만 모르는 거야.”“나 말고, 우리 가문 사람들은 두 사람을 보려고도 하지 않아. 오래된 하인도 두 사람만 보면 욕하기 바쁘고.”“왜 돌아오신 거야?”“할머니가 아프셔. 문안 오면서 가족도 보러오신 거지. 근처에 집을 빌려 살면서격일마다 문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계셔. 계속 버티다 보면 할머니가 봐주실 줄 아셨던 거지. 하지만 우리 조부모님은 기쁘게 고모를 맞이하지 않으셔. 오히려 집안에 한 발자국도 들이지 못하게 하시지. 그렇지 않으면 집안이 또 시끄러워 질지도 모르거든.”송석석은 고개를 끄덕였다.시만자의 고모 한 명 때문에 시씨 가문의 모든 여인들이 혼사에 애를 쓰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를 미워하는 이유도 충분했다. 설령 시만자의 할머니는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송석석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녀가 이어서 위로를 해주려 하자 시만자가 등을 곧게 세웠다.“괜찮아. 너희 이모 얘기를 하다 보니 우리 고모가 잠시 떠오른 것뿐이야. 너희 이모는 왕실 집안에 시집가서 연왕비가 되셨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고모보다 못한 날을 보내고 있다는 게 안타까워. 그리고 너랑 전북망도 결국 그런 결말을 맞이했잖아.”송석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모두 각자의 인연이라는 게 있겠지.”그녀는 청목암에서 연왕비를 보고 나서야 시만자의 마음을 이해했다.2-3년이 지나서 만난 연왕비는 삐적 마른 나무처럼 살이 빠져 있었다.온몸은 힘없이 푹 늘어져있었고 볼살은 푹 들어가고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그녀는 침대에 누워 이불을 두껍게 덮고 있었다. 아무리 방 안에 온돌을 펴 두어도 몸을 덜덜 떨었다.연왕비는 송석석을 알
송석석의 혼사 때문에 시만자가 집으로 돌아갔다.돌아가서 적염 동료들에게 그녀를 꾸며 줄 것을 부탁했다.한 달 전 일이다.하지만 연왕이 직접 청혼하러 왔다는 가정을 하고, 연주에서 강남의 시 가 집안까지 거리를 계산했다. 곧이어 시 가 집안을 떠나 적염문으로 갔을 때로 짐작했다. 게다가 집안 사람들은 송석석에게 화장을 해주기 바빴고,시만자는 적염문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진성으로 나가야 했다. 경성에서 만난 집안사람들은 모두 모르는 눈치였다.시만자가 벌떡 일어났다.“연왕께서 나이가 얼만데 그런 짓을 하고 다니시는 겁니까?그리고 이혼장은 또 언제 보내셨습니까?어쩌면 먼저 청혼하고 이혼장을 보냈을 수도 있습니다. 이 더러운 자식, 죽여 버리고 싶습니다.”반복되는 ‘연왕’이라는 말에 연왕비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곧이어 힘없는 눈빛에 점점 생기가 돌더니, 송석석을 지그시 바라보았다.그녀는 송석석을 알아보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심장 찢길 것처럼 소리를 내며 울었다. 곧이어 기침을 하고는 이불에 피를 잔뜩 쏟았다.옆에 있던 송석석은 깜짝 놀랐다.서둘러 연왕비의 등을 살짝 두드려 주었다.그녀가 아무리 피를 닦아도 연왕비는 계속 피를 토했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는 거의 기절한 채로 쓰러졌다.한편, 청작과 국춘은 당황한 기색이 없다.그리고 익숙하게 연왕비를 눕히고 침을 놓았다.약제를 갈아서 억지로 먹였다.하녀들은 바닥을 닦거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송석석은 마치 벼락에 맞은 것처럼 움직이지 못했다.두 손에는 모두 피가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하녀가 손 새척에 필요한 물을 가져와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시만자는 송석석을 두드렸다.“가서 손부터 씻어. 일단 침은 놓고 상황 보자.”송석석은 그제야 두 손을 물에 담갔다.몸은 울분에 이기지 못해 벌벌 떨렸다.연왕비가 아픈 건 알고 있었지만 심각한 상태 일 줄은 몰랐다. 그리고 서서히 서늘함과 두려움이 그녀를 감쌌다.이 느낌은 다름 아닌 가족을 잃는 두려움이다.
연왕비가 다시 흥분할까 봐 걱정이 되었던 청작이 그녀에게 침을 두었다.수면에 도움이 되는 약도 같이 먹였다.시만자는 이혼장을 훑고는 탁자를 세게 내려쳤다.청목암의 하인들이 다과를 대접했다, 곧이어 청작이 사람을 시켜 그들을 측원으로 안내했다.청작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청목암의 주지는 착한 사람이다.연왕비의 상황을 이해해주고 동정하기 때문이다.방해도 받지 않고, 먹는 것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살생과 육식을 금하고 있다. “고기 국물도 한 입도 못 마시는 게 말이 됩니까?”송석석이 걱정하며 말했다.“드려도 드시지 않아요.”청작이 고개를 저었다.그녀는 값싼 천으로 만든 옷을 입고 밖에는 두꺼운 면 외투를 입었다.“황실에서도 잘 드시지 않으셨습니다.고기 냄새만 맡으면 손사래를 치셨어요,채식을 하신 지 오래되셨습니다.”그녀가 말한 것과 시만자가 말한 것은 다름이 없었다. 연왕비 슬하에는 아들 한 명, 딸 두 명이 있다.마음으로 낳은 아들은 은혜를 베푸는 중이지만 아직 연락이 없다,하지만 직접 낳은 딸들의 행실은 불효가 확실하다. 연왕비가 왕에게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자신의 모친을 버리고 측비 김 씨를 따랐다. 김 씨는 그들에게 화려한 의복, 맛있는 음식은 물론이며,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가져다주었다.혼사도 그러하다.두 사람은 모두 현주로 봉해졌지만 군주로는 아니다.게다가 연주에서 김 씨 집안은 그들의 모친의 집안보다 한 수 위다.연왕비는 한평생 ‘선’을 쫓은 사람이다.하지만 타인의 눈에는 그저 연약한 사람일지 모른다.심지어 자신의 딸들도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국춘이 더 자세하게 설명했다.“옥영 현주는 왕비를 무시하는 게 대다수입니다,심지어 황실에서도 몇 번 온 적 없지요.반대로 옥청 현주는 가끔 와서 왕비를 돌보러 옵니다, 하지만 왕비의 약이 자신의 옷을 더럽히면 화를 참지 못하십니다.”“게다가 원래 왕비를 모셨던 시녀와 하녀들은 모두 측비 김 씨 쪽으로 넘어갔습니다. 지금 온 시
송석석은 차분하게 질서를 잘 정돈한 뒤, 학생들과 부모님들을 저택으로 돌려보냈고 비밀을 지켜달라는 얘기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 일은 언젠가 소문이 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그러고는 홍현에게 청작과 경조부의 사람을 불러오라고 했다.이 범인은 약을 먹은 게 확실하기에 반드시 매달아서 심문해야 하며 청작을 통해 무슨 약을 먹었는지 확실하게 알아내야 한다.한편, 도망친 범인들도 오진에게 전부 잡혀왔고 그들은 묶여 있는 중년 남성보다 정신이 훨씬 멀쩡해 보였지만 송석석과 홍현을 쳐다보는 눈빛은 여전히 야릇하고 이글거렸다.송석석은 안여옥을 살포시 안아주었고, 이제서야 평정심을 되찾은 안여옥이 되레 송석석을 위로했다.“괜찮아요. 저 괜찮습니다.”“왜 그런 말을 했어요? 선생님은 지금 자신을 망가트린 거라고요. 이를 어찌하면 좋을까요?”국태 부인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얼굴이 창백한 안여옥은 가까스로 미소를 지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국태 부인께서 제 걱정을 이리 하시니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전 애초부터 혼인할 생각이 없었고 저에게 있어서 명성은 그저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이제 그 짐을 벗어 던졌으니 차라리 잘 된 일이지요.”“그렇지만 모든 화를 혼자서 떠안겠다고 하시니… 사람들이 선생님을 어찌 얘기하고 다닐지 걱정됩니다. 선생님 조부께도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지…”국태 부인은 안씨 어르신과 오랜 인연을 이어왔다. 이번에 안여옥을 여학 선생으로 데리고 올 때에도 안여옥을 잘 보살피겠다고 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안 그래도 몸이 허약하신 안씨 어르신이 이 얘기를 들으면 충격에 쓰러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다들 안여옥을 위로하기 바빴고 안여옥은 많은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쳤다는 생각에 얼른 웃으면서 말했다.“전 정말 괜찮습니다. 그리 큰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사람이 살면서 더한 일도 경험하게 될 텐데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안여옥은 연신 괜찮다고 했지만 사람
이때, 송석석이 서원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조금 전 밖에 있을 때부터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 있었다.송석석이 나타나자 부인들은 우르르 몰려가 송석석에게 이제 어떻게 해야 하냐고 닥달했다. 감히 대놓고 따져 묻지는 못했지만 송석석에게 합리적인 설명을 내놓으라는 뜻으로 말하고 있었다.송석석은 겉으로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분통이 터졌다. 여학 마지막 날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오늘 서원 대문이 열려 있었던 이유는 학생들과 데리러 온 가문 사람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나올 때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인데 범인들이 이 틈을 노리고 학교 안으로 들이닥칠 줄은 몰랐다.이 일은 분명 여학을 겨냥해서 벌인 일이었다.“이 일은 제가 확실하게 처리하겠습니다.”송석석의 말에 부모들이 너도나도 한 마디씩 보탰다.“왕비님,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실 겁니까?”“그러게요.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였고 쳐다보는 눈이 이렇게 많은데 이 많은 입들을 다 단속할 수 있습니까? 소문이 이상하게 퍼지면 없는 사실도 있는 일처럼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여학에 호위병을 좀 많이 세워둬야 하는 거 아닙니까?”한편, 안여옥은 송석석이 궁지로 몰리자 얼른 눈물을 닦은 뒤, 벌떡 일어나 큰소리로 말했다.“여러분, 걱정하시 마십시오. 한 명도 다친 학생이 없습니다. 저 범인은 그저 저를 잠깐 껴안았을 뿐이지 다른 학생을 해치지 못했습니다.”안여옥의 말에 현장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고 다들 안여옥이 이 일을 이렇게 대놓고 얘기할 줄은 몰랐다.범인이 안여옥을 껴안은 게 사실이라고 해도 이를 숨겨야 하는데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얘기한단 말인가?그러다가 소문이라도 나면 안여옥은 평생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살게 될 수도 있다.이때, 정신을 번쩍 차린 국태 부인이 다급하게 부인했다.“선생님은 범인에게 당하지 않았습니다. 함부로 그런 얘기하지 마세요. 범인은 선생님에게 손을 댈 기회가 없었습니다.”하지만 안여옥은 국태 부인의 말을 따르지 않았
서원에 비명소리가 점점 더 커졌고 홍현은 왕지아를 달랜 뒤 바로 서원으로 뛰어갔다.“함부로 돌아다니지 말고 잘 숨어있으렴.”한편, 서원 안에서 너무 놀란 국태 부인과 정 부인은 재빨리 딸들을 등 뒤로 숨겼고 안여옥과 무씨 아가씨는 손에 긴 몽둥이를 들고 덜덜 떨면서 들이닥친 남자들을 향해 휘둘렀다.두 선생님은 혹시라도 뒤에 있는 여학생들이 다칠까 봐 최선을 다해 막았지만 힘이 부족했다.이때, 한 남자가 주창우를 향해 덮쳤고 화들짝 놀란 주창우가 비명소리를 지르자 안여옥은 몽둥이로 남자를 내리쳤다. 하지만 남자는 겁을 먹긴 커녕, 되레 사악하게 웃으며 안여옥을 향해 달려갔다.홍현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안여옥은 남자에게 강제로 안겨 있었고, 그 남자는 심지어 입을 맞추려고 했다. 겁에 질린 안여옥은 미친 듯이 발버둥쳤지만 힘으로는 이길 수 없어, 결국 손톱으로 남자의 얼굴을 할퀴었다.미간을 확 찌푸린 홍현은 바로 달려가 한 손으로 남자의 등을 확 잡더니 그를 바닥에 내리꽂았고 발로 남자의 배를 힘껏 짓밟았다.극심한 고통에 남자는 바닥을 굴러다녔고 홍현은 무씨 아가씨 손에서 몽둥이를 낚아채더니 남자들을 향해 무섭게 공격했다.안여옥을 침범하려고 했던 남자는 홍현이 휘두른 몽둥이에 다리뼈가 부러졌고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바로 이때, 딸을 데리러 온 가문들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어떻게 된 거예요? 왜 학교 안에 남자들이 들이닥친 겁니까?”서원 안으로 몰려든 사람들은 바닥에 누워 비명을 지르는 남자를 쳐다보았고 여학생들은 너무 큰 충격에 다들 넋이 나간 상태였다.그러다가 부모님을 발견한 여학생들은 엉엉 울면서 각자 가족의 품으로 달려갔다.“어머니, 아버지, 너무 무서워요! 저 남자들이 갑자기 서원으로 뛰어들어와서 안 선생님을 강제로 안았어요.”사람들은 이내 안여옥에게 고개를 돌렸다. 머리가 헝클어진 안여옥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무씨 아가씨 품에서 온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경험이 많은 국태 부
송석석은 이 사실을 염 선생에게 알리자, 염 선생은 흠칫하다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사국 사람들이 어떻게 진성에 진입하게 된 거죠? 심지어 이곳에서 살고 있다니.”송석석이 대답했다.“그래서 나머지 남풍관도 확실하게 조사해봐야 할 것 같아. 그리고 남풍관 주인장도 만나봐야지. 주인이 사국 사람들을 거둬서 남풍관에서 장사를 하는 거니까 아무것도 모르지는 않을 거야.”사국 사람들이 언제 진성에 왔고 누가 데리고 왔으며 무슨 목적으로 온 건지 확실하게 알아내야 했다. 송석석은 나머지 남풍관을 직접 방문해서 조사할 생각이었고, 시만자와 왕이장도 함께 했다.그렇게 며칠 동안 송석석은 남풍관 다섯 군데를 돌아다녔다. 그중 세 군데에 사국 사람들이 있었고 총 열다섯 명이었다.호흡 방식이나 걸음걸이로 보면 열다섯 명 전부 무술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확실히 사국 사람들 외모는 아니었으며 보통 몸매의 남강 사람들 같았다.보아하니 신경 써서 고른 듯했다.불빛이 어두운 환경에서는 사국 사람들을 알아보기 어려웠으며 더군다나 그들은 상국 말을 유창하게 쓰고 있었기에 아무도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다.그리고 세 가게의 주인은 동일인이었으며 그자가 바로 광릉후의 향봉천이다.상의 끝에 송석석 일행은 섣불리 움직이는 대신 사람들을 시켜 몰래 남풍관 가게들을 지켜보라고 했으며 그들의 진정한 목적을 알아내려 했다.그리고 염 선생은 광릉후를 다시 한번 제대로 조사하기 시작했다.광릉후의 향봉천은 남색을 즐기는 자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자를 싫어하지는 않았다. 평범한 사내들과 똑같이 혼인하여 아이도 낳고 첩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향회옥이 바로 향봉천의 막내딸이었다. 사람들은 새로운 사실에 조금 놀란 눈치였다. 평소에 광릉후 사람들의 행실이 조용하고 눈에 잘 띄지도 않았으며 향회옥이 가끔 제자예와 함께 여학에서 문제를 일으킨 것 외에는 그 어떤 추문도 없었다.하지만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해 보이는 광릉후에서 남풍관을 세 군데나 운영하고 있는 것도 모자
송석석은 시만자를 의자에 앉히며 대답했다.“오사형이 아주 고맙게 생각하겠네. 하지만 난 맞추고 싶지 않아. 그래서 누굴 봤는데?”“빅토르! 그래, 맞아! 빅토르를 봤어! 그것도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의 빅토르를 봤지!”시만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고 송석석은 이마를 꾹꾹 누르며 다시 물었다.“여러 명의 빅토르를 본 거야 아니면 빅토르를 닮은 사람이 여러 명 있었던 거야? 너 대체 술을 얼마나 마셨길래 이렇게 취한 거야?”“빅토르… 아니야. 빅토르보다 젊었어.”시만자가 머리를 휘청거리며 대답했고 송석석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빅토르를 닮았다는 거지? 그럼 사국 사람들이네?”사국과 상국은 아직 길이 통하지 않았기에 사국 사람들이 상국에 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사국 사람들이 진성에 나타난 것도 모자라 진성에서 살고 있다니.이때, 시만자가 꼬인 혀로 힘겹게 대답했다.“맞… 맞아. 사국 사람들이야. 그런데 어떻게 진성에 사국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거지? 남풍관에 숨어 있었는데 왜 남풍관에 갔던 손님들은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않았던 걸까? 내가 그 사람들을 봤다는 건 다른 손님들도 다 봤다는 뜻인데.”송석석은 조금 불안했다. 남풍관을 방문한 손님들은 절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남풍관에 갔었다고 얘기하지 않을텐데 말이다. 하지만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사국 사람들이 언제 진성에 몰래 들어왔냐는 것이다. 그들은 남풍관에 숨어 있었기에 아무도 그들을 발견하지 못했다.진성에 남풍관이 몇 개가 있지만 전부 비밀리에 운영되고 있었다. 선황제가 확실한 금지령을 내렸기에 엄격하게 조사했지만 숙청제가 황위에 오르고 나서 더 이상 이런 일에 신경을 크게 쓰지 않았다. 물론 엄하게 다루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권장하지도 않았다. 분위기는 선황제 때보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웠지만 남색은 여전히 이 나라에서 용납되지 않기에 아무도 대놓고 얘기하는 사람은 없었다.언급하는 사람이 없어서 아무도 주의 깊게 지켜보지 않았다.한편, 시만자는 털썩 눕더니 바로 잠이
송석석은 사여묵에게 항상 안전에 조심하고, 스쳐가는 여인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말라며 신신당부했다.사여묵은 질투를 하는 듯한 송석석의 모습에 기분이 좋아서 환하게 웃으며 대꾸했다.“내 절대 눈길도 안 줄 테니 걱정하지 마시오.”조금 뒤, 사여묵은 몽동이와 장대성을 데리고 길을 떠났고 혜 태비는 아들의 뒷모습을 몇 번 쳐다보고는 이내 돌아서서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염 선생과 양 마마도 돌아갔고 송석석과 시만자만 문 앞에 서서 사여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마음이 허전해?”시만자가 송석석의 어깨를 툭 치며 물었고 송석석은 울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조금.”송석석과 사여묵은 혼사를 치르고 나서 계속 각자 일로 바빴지만 거의 매일 밤 함께 보냈기에 하루도 못 보는 날이 없었다.그런데 최소 두 달은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져 송석석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두 달이 참 길게 느껴지네.”“두 달이 길어? 2년도 아니고.”시만자가 송석석의 어깨를 팔로 감싸더니 말을 이어갔다.“내가 보기엔 넌 이 두 달 동안 자유를 만끽해야 돼. 서방이 곁에 없으니 하고 싶은 건 다 해봐야지. 나중에 널 데리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좋은 데도 같이 가야겠네! 내가 왕이장한테서 들었는데 진성에 꽤 괜찮은 주막들이 있대. 한 번쯤 가보고 싶었는데 전에는 북명왕이 있어서 널 부르기 조금 미안했지. 이제 됐네. 두 달 동안 자유이니까 마음껏 즐기자고.”“무슨 주막이길래 서방이 있을 땐 날 못 부른 것이냐? 왕경루 음식보다 맛있어?”의아한 듯 묻던 송석석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됐어. 나 지금 입맛이 없어서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그런 거 아니야! 남풍관이라고 남자들이 장사를 하는 곳이야. 그러니까 우리가 남장을 해서 들어가면…”시만자가 입꼬리를 씩 올리며 말하자 송석석이 걸음을 턱 멈추었다.“뭐야? 너 가봤어? 오사형이 널 데리고 간 거야? 오사형은 지금 어디 있어?”“그자가 날 데리고 가진 않았지. 그저
사여령이 대리사를 나올 땐 허리를 쫙 편 채 눈빛이 단호하고 당당한 모습이었다. 조금 전, 사여묵이 마지막에 그에게 했던 한 마디 덕분이었다.“네가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들었어. 조금만 더 노력하고 버티면 내가 승진을 시켜줄게.”그 순간, 사여령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지금까지 어머니를 제외하고 아무도 그의 능력을 인정해준 적이 없었으며 그를 진심으로 칭찬해준 사람도 없었다.어머니가 사여령을 칭찬하긴 하지만 그건 대부분 위로였다. 어렸을 때부터 문무가 모두 약했던 사여령에게 어머니는 항상 칭찬으로 자신감을 북돋아주었고 나중에 크면 잘하게 될 거라고 위로했다.하지만 그건 그저 위로일 뿐, 인정은 아니었다.지금, 사여령은 진정한 인정을 받았고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았으며 이 길을 계속 갈 수만 있다면 지금보다 더 노력할 자신이 있었다.사여령은 어렸을 때부터 부왕의 예쁨을 받지 못했고 통방이 낳은 자식이라며 늘 차별을 받았었다.그때 당시 부왕은 통방에게 회임하지 못하도록 약을 먹였는데 어찌된 일인지 결국 통방이 회임을 하게 되었고 부왕은 바로 통방에게 낙태약을 먹였지만 어머니의 노력으로 사여령의 친모는 결국 아이를 낳게 되었다.사여령의 어머니는 연왕이 체면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일부러 대놓고 갓난 사여령을 저택으로 데려왔고 연왕은 아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그때부터 사여령의 어머니는 연왕에게 미운 털이 박히게 된 것이다.이런저런 생각에 사여령의 발걸음도 몹시 가벼워졌다. 비록 아버지를 배신했다고 하지만, 심리적으로 부담이 되지도 않았고 미안한 마음도 들지 않았다.사여령이 미안한 건 어머니가 청목암으로 보내졌을 때 따라가지 않았던 점이었다.아버지라는 사람은 아들에게만 몹쓸 짓을 저질렀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에도 빨리 죽지 않는다고 욕설을 퍼부었다.한편, 북명황실 의사당 안의 불빛은 밤새 꺼지지 않았다.사여령한테서 들은 정보에 의하면 노주 한 곳만이 아니며 사여령의 정보도 부족한 부분이
사여령은 한참동안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주먹만 꼭 쥐고 있었고 손바닥에는 어느새 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사여령은 이제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대리사 감옥 관리자가 되고 나서 사여령은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속으로 수천 수백 번을 생각했지만 확실한 답을 얻지 못했다.나중에 진소경이 사여령의 고민을 눈치채고 사여령에게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눈앞에 닥친 일만 잘 해내면 된다고 방법을 제시했기에 사여령은 그 뒤로부터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여태까지 답을 얻지 못했기에 갑작스러운 사여묵의 물음에 넋을 잃은 채 앉아있던 사여령은 위엄이 넘치는 사여묵 눈빛에 머릿속이 하얘졌다.덜컥 겁이 난 사여령은 본능적으로 대답했다.“노주에 병사가 정확하게 얼마나 많은지는 모릅니다.”“넌 그걸 어떻게 알았어?”사여묵이 물었고 사여령은 노주에 병사가 있다는 사실을 얘기한 뒤 오히려 마음이 많이 진정되었다.선택을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사여령이 솔직하게 대답했다.“연주의 왕부에 서재가 두 층으로 되어 있습니다. 전 평소에 2층에서 책을 보는데 가끔 하루 종일 2층에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아래층에서 얘기하는 걸 들은 적이 몇 번 있습니다. 바로 아래층에서 얘기하고 있었지만 서재가 너무 큰 탓에 정확하게는 듣지 못했습니다. 노주에 대한 얘기가 몇 번 나왔고 노주 외에도 옹현, 간현, 부현 그리고 나현 등 지역도 언급된 적이 있습니다. 그 외에 다른 지역도 있는데 지역명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번에는 식량을 노주에 가져가야 한다는 말도 들었습니다.”사여묵은 미간을 찌푸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뭔가 이상한데? 연왕이 여러 지역에서 병사를 키우고 있다고? 그럼 세력이 대체 얼마나 큰 거지? 병사를 키운다는 게 점포를 여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닌데 식량과 무기 공급은 문제가 없는 건가?’사여묵이 사전에 조사한 정보에 따르면 연왕에게는 그럴 만한 세력과 재력이 없었다.옹현과 간현은 그럴 가능성
북명왕 저택에는 호위병 외에 따로 비밀 호위무사를 양성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밖에서 정보를 캐내는 무술 실력이 강한 부하들이 몇 명 있긴 했지만 다들 매우 바빴기에 거의 한 달에 한번 저택으로 돌아와 얻은 정보를 보고하곤 했다.물론 정탐조도 있지만 이들은 적의 동향을 살피는 자들이기에 사적인 일로 움직일 수 없었다.비밀 호위무사를 두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 이유는 사여묵이 남강에 파견되기 전에 이미 큰 전공을 세웠고 현갑군도 거느리고 있었기에 선황제는 사여묵이 저택에 너무 많은 부병을 두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두 번째 이유는 사여묵이 남강 전쟁에 투입되고 나서 이런 부분에 신경 쓸 겨를도 없었기에, 전쟁을 승리하고 돌아왔을 땐 황제의 의심과 경계 때문에 더더욱 비밀 호위무사를 키울 수 없었다.지금 만약 황제가 대외적으로 사여묵을 노주로 정찰을 보낸다고 발표한다면 현갑군에서 병사들을 보낼 수 있지만 아무도 모르게 가는 것이기에 저택에 있는 사람들만 데리고 갈 수 있었다.“제가 같이 갈까요?”송석석의 물음에 사여묵은 피식 웃으며 송석석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괜찮소. 위험한 건 아니오. 그저 정보만 수집하는 일이라 몸을 쓸 일은 없소. 몸을 써야 한다면 우리 몇 명만 가지도 않았을 것이오. 그리고 이제 연말이라 경위부도 사건 사고가 많을 테니 이곳을 지키는 게 좋겠소.”사여묵이 말한 것처럼 연말에 경위부와 순방영은 평소보다 훨씬 일이 많았기에 송석석이 간다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하지만 몇 명만 보내기엔 도무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다음날, 이 사실을 전해 들은 심청화는 10일 뒤면 서원도 수업이 끝나니 며칠 앞당겨서 사여묵과 함께 떠날 수 있다고 했다.심청화가 함께 간다고 하니 송석석은 훨씬 마음이 놓였지만 그래도 이 일은 국태 부인과 상의를 해야 한다.심청화가 국태 부인에게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다들 동의했으며 출발까지 아직 3일이나 남았으니 서원 시험만 보면 된다고 했다.심청화는 당연히 진짜 행방을 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