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방, 오 대반이 보고를 올렸다.“폐하, 장공주께서 입궁하셨습니다. 폐하를 알현하고 싶다십니다.”산처럼 쌓인 상소문들 사이로 황제가 살짝 고개를 들었다.붓을 내던진 그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꾹 눌렀다.“무슨 일이냐?”이에 오대반이 조심스레 대답했다.“구체적인 연유는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화가 많이 나신 듯한 모습이었습니다.”“짐의 고모님은 성격이 아주 괴퍅하시지.”황제가 피식 웃었다.“행사 때문에 입궁하실 때마다 짐에게 어른 대접을 받으시길 원하시는 분이 날 따로 만나시겠다? 해결하지 못할 일이 있으신 건가? 아니면 아직도 생일 연회 일 때문에 화가 나신 걸까?”연회에 대한 일을 대충 듣긴 했지만 시간이 꽤 지난 지금까지도 그 일 때문에 화가 나있는 건가 싶어 의아했다.“드시라 해라.”황제의 말에 잠깐 망설이던 오대반이 대답했다.“장공주 마마께서는 자안궁에 계십니다. 폐하더러 오시라는데요. 혜태비 마마도 부르셨답니다.”“불러?”황제가 코웃음을 쳤다.“그래. 짐이 조카이니 고모님을 만나뵈러 가는 게 당연하지.”허리를 숙인 오대반이 입을 열었다.“가마를 준비해라.”어서방에서 후궁까지는 거리가 꽤 되는 데다 날이 워낙 더워 걸어서 가기엔 무리가 있었다.가마에 오른 황제를 향해 오대반이 속삭였다.“그날 생일 연회에서 석석 낭자가 장공주마마가 송 부인께 선물했던 열녀비를 언급했다 합니다. 그게 참...”“짐도 들었다.”황제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그게 사실이라면 황가의 일원으로 추앙받을 자격도 없지. 할바마마가 장공주에게 주었던 사랑을 저버리는 일이야.”“아직도 석석 낭자에게 원한이 남은 모양입니다.”“원한?”황제는 소문 하나를 떠올렸다.“송국공과 혼인하려다 거절당했던 일을 말하는 게냐?”“네. 당시 그 사건은 황궁을 꽤 들썩거리게 만들었습죠. 그 일로 부마를 들이신 뒤로도 한참을 화가 나계셨습니다. 부마와도 겉보기엔 화목하나 실제론 사이가 안 좋다는 소문이 들리고요.”황제가 오대반을 힐끗 바라보자 그는 당황하며
이에 장공주가 이를 악물었다.“송석석입니다!”그 이름이 흘러나오자 혜태비가 당황한 표정과 함께 고개를 살짝 숙였다.공주부로 향하는 게 아닌지 사람까지 보냈지만 그자가 다시 돌아오도 전에 장공주가 입궁을 하더니 그녀까지 이 자리로 불러냈다.저 기세를 보아하니 굳이 보고를 듣지 않아도 송석석이 공주부로 향했고 장공주에게 불손한 짓을 저질렀음을 가늠할 수 있었다.‘무슨 말을 한 걸까? 저렇게까지 화나 나다니. 지금까지 폐하에게까지 부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송석석? 그 아이가 뭘 어찌 했다고 황제더러 벌하라는 것입니까?”태후가 미간을 찌푸리며 묻자 장공주가 소리쳤다.“그자가 함부로 공주부에 침입해 저를 모욕했습니다!”하지만 송석석을 아끼는 태후는 장공주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공주부에 침입했다면 사람을 불러 내쫓으면 되는 일이 아닙니까? 그리고 모욕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사실 그대로 말할 순 없어 망설이던 장공주가 입을 열었다.“제 생일 연회에서 행패를 부릴 때도 아직 나이가 어려 철이 안 들었다 생각하고 혼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함부로 제 처소에 침입한 것도 모자라 앞으로 절 가만두지 않겠다 저주까지 퍼부었던 말입니다.”‘저주?’무슨 저주일까 싶어 순간 혜태비의 눈이 반짝였다.한편 태후의 표정은 더 어두워졌다.“정말 이상하군요. 석석 그 아이가 아무 이유도 없이 장공주를 도발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 나라의 장공주를요.”왠지 송석석의 편을 드는 듯한 말투에 장공주는 그제야 황태후와 송 부인이 막역한 사이라는 걸 떠올렸다.생각이 여기까지 닿으니 화가 더 치밀었다.“군공 좀 세웠다고 묵이의 왕비로 간택되더니 정말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봅니다. 저 같은 건 아주 안중에도 없더군요. 뭐, 어쨌든 절대 이대론 못 넘어갑니다.”악독함으로 번뜩이는 눈빛에 혜태비는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하지만 황제는 여전히 무덤덤한 표정이었다.“석석 낭자가 사과하길 바라시는 겁니까? 그럼 바로 국공부
장공주의 말을 듣던 황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고모님 진정하세요. 석석 낭자가 공주부에 침입해 고모님을 모욕한 건 분명 잘못된 일이죠. 하지만 석석 낭자가 이런 일을 벌여 얻는 게 무엇이란 말입니까? 증인은 있습니까? 말씀해 보세요. 그리고 열녀비 사건은 경조부에 조사를 맡기겠습니다. 만약 석석 낭자가 거짓을 고한 것이라면 엄히 벌할 거예요.”“증인이요? 증인이라면 많죠. 공주부 시종들 전부가 증인입니다. 호위가 막을 새도 없이 쳐들어왔고 그자가 절 모욕하는 걸 저택 사람들 모두가 들었습니다.”잠깐 멈칫하던 장공주가 말을 이어갔다.“하지만 열녀비 사건을 경조부에 맡기는 건 지나친 처사인 것 같습니다. 이미 지난 일을 다시 끄집어내서 뭐 합니까. 백성들은 워낙 우매하여 일단 다시 조사를 한다는 사실만으로 제가 열녀비를 보냈다 확신할 겁니다. 그럼 제 결백을 씻을 방법이 없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죠.”“도대체 뭐라고 모욕을 했단 말입니까? 말이라도 해보세요.”태후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무엇이라 모욕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모욕했다는 그 사실이죠. 전 아 나라의 장공주입니다. 설령 묵이와 혼인을 한다 해도 제가 황실 어른이니 이렇게 무례하게 나오면 안 되는 거겠죠. 그런데 혼인도 올리기 전에 황실을 능멸했으니 대역죄인이 아니면 뭐겠습니까.”“아니.”황태후가 손을 저었다.“말끝마다 대역죄인이라는 말만 하지 말고 자초지종을 말해 보세요. 그럼 석석 그 아이가 장공주가 무섭게 생겼다고 말해도 모욕이란 말입니까? 그건 사실을 말한 것에 불과하니 벌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구체적으로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아야 벌을 내려도 내릴 수 있죠.”이에 장공주의 얼굴이 울그락푸르락 변했다.“태후께선 송석석 그 아이를 지나치게 감싸고 계십니다. 폐하, 폐하께서 말씀해 보세요. 송석석 그자는 조정의 대신이죠. 대신이 황가 일족을 모욕하는 것도 죄가 아닙니까?”아무리 물어도 송석석이 도대체 무슨 말을 했는지 말을 하지 않는 걸 본 황제는 장공
혜 태비는 왜 송석석의 죄를 물을 수 없는지 몰랐다. 불경은 엄청 큰 죄였다. 하지만 대장공주께서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아 죄를 물을 수 없게 되었다. 혜 태비는 언니에게 물어보고 서야 어떻게 된 건지 알아채고 화가 나서 얼굴이 붉어진 대장공주의 얼굴을 보며 통쾌하기 그지없었다. 대장공주는 화가 나서 결국 자리를 떠났다. 그녀는 이번에 궁에 들어와서 깨달은 점이 있는데 그건 바로 송석석이 저렇게 나대는 건 모두 태후와 황제가 뒤에서 도와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도와주는 사람이 사여묵 한 사람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저렇게 멋대로지.’대장공주가 떠난 뒤 황제는 이마를 짚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고모님이 정절문을 세우라고 요구한 게 사실인가 봅니다. 이번엔 고모님이 너무하셨습니다.” 태후는 화가 난 얼굴로 말했다. “방금 공주의 뺨을 갈기고 싶은 걸 겨우 참았습니다. 오만하고 무지한 데다 음험하고 이기적이기까지 하다니 황실의 체면을 모두 구기고 있습니다.” 그러자 황제가 말했다. “그러니 송 부인이 당시 얼마나 화가 났겠습니까?” 태후는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하지만 제 앞에서 한 번도 억울함을 털어놓은 적이 없습니다. 제가 분명 그녀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어마마마,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 이미 떠난 사람이니 안식하길 바랄 수밖에 없죠.” 황제는 음험한 눈빛으로 생각했다. ‘이방이 송 씨 가문을 멸문했는데 진실일 밝혀지지 않는다면 송 부인께서 어떻게 안식할 수 있겠어… 어떻게 해야 진실을 밝힐 수 있을까? 그냥 이렇게 모른 척할 수밖에 없는 건가? 오 대반의 말이 맞아. 송씨 가문이 억울함을 너무 많이 당했어.’황제는 정무가 있어 오래 머물지 않고 떠났다. 그래서 태후와 혜 태비만 남게 되었다. 혜 태비는 생각에 잠겼다. ‘대장공주는 오늘 기세등등해서 송석석에게 처벌을 내리려고 했어. 송석석이 대단해봤자 이번 처벌은 피하기 어렵다고 생각했겠지. 그렇게 나
태후는 동생의 마음을 모를 리 없었다. 그래서 그는 먼저 떠보는 심정으로 말했다. “너 조만간 황실로 가서 묵이와 함께 살게 되는데 모르는 게 많으면 굳이 황실을 주관하려고 하지 말고 석석에게 중책을 맡겨.” “언니, 그건 아니죠.” 혜 태비는 황태후의 말을 끊고 모처럼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 “며느리가 들어오자마자 중책을 맡는 게 어디 있어요? 그리고 난 마음 놓고 그녀에게 맡길 수 없어요. 자매끼리 돌려 말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난 송석석이 싫어요. 그 아이가 내 며느리가 되는 것도 싫어요. 그러니 더더욱 그 아이에게 황실의 중책을 맡길 수 없어요.” “그래? 그럼 네가 중책을 맡을 거야?” 태후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그럼 내일부터 후궁을 다스리는 황후의 권리를 너에게 줄 테니 네가 한번 해봐. 마침 황후도 휴식이 필요하니 네가 며칠 관리해 봐.” “내가 궁중의 일을 맡아보지 않은 것도 아니고, 황후가 후궁을 다스리는데도 내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그리고 언니가 후궁을 다스릴 때도 내가 많이 도왔잖아요. 안 그래요?” “많이 도와주긴 했지. 오히려 일이 더 복잡해져서 문제였지만.” 태후는 인정사정없이 말했다. “부모님이 널 너무 애지중지하게 키워서 네가 입궁한 후에도 내가 항상 널 지켜보고 널 보호했어. 그러니 너도 편히 아들 딸을 출산할 수 있었던 거고. 하지만 황실로 가서는 편히 살고 싶으면 며느리 잡을 생각 하지 마. 네가 석석을 싫어하든 그녀 애가 시집오는 게 싫든 이 일은 이미 정해진 일이야. 그러니 네가 반대한다고 변수가 생기진 않아. 네가 황실에서 소란을 피운다면 내가 가만 두지 않을 거야.” 태후는 이렇게 엄격한 말투로 혜 태비와 말한 적이 없었다. 송석석 때문에 언니가 더 이상 자신을 예뻐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혜 태비는 송석석이 더 미웠다. 하지만 혜 태비도 한 가지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아무리 송석석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결국 그녀는 사여묵에게 시집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날
이 일은 확실히 대장공주의 소행이었다. 송석석의 죄를 물을 수 없게 되자 그녀는 자신의 방식으로 송석석에게 교훈을 주려고 했던 것이었다. ‘진성 백성들 모두 송석석이 효녀라고 하던데 그녀가 상중에 시집갔다는 걸 알게 되면 백성들이 욕을 퍼붓겠지.’이때 공주부의 육집사가 기쁜 마음으로 들어와서 아뢰었다. “공주님, 군주님, 지금 밖에 소문이 퍼져서 찻집과 술집에서 모두 이 일을 논하고 있어요. 거의 모든 사람이 욕설을 퍼붓고 있어요.” “거의라니? 그럼 모두가 욕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건가?” 가의 군주는 냉담한 눈빛으로 물었다. “왜? 아직도 그녀의 편을 드는 사람이 있다는 거야?” 그러자 육집사가 말했다. “군주님, 백성 중 몇 명이 송석석이 시집갈 땐 이미 아버지가 떠난 지 24개월이 자난 후라고 그녀의 편을 들어 말하고 있어요.” 삼년상이란 딸로서 3년 동안 상을 입어야 하는데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24개월을 지키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자 가의 군주가 말했다. “보통 백성들이 송석석이 시집간 날짜를 기억할 리 없잖아? 아마도 국공부에서 사람을 사주해 백성들을 혼란스럽게 하려는 거야.” 그녀는 장공주를 보며 물었다. “어머니, 그럼 송석석은 실제로 상을 입는 기간을 지킨 겁니까?” 그러자 장공주는 덤덤하게 말했다. “그걸 누가 알아? 백성들도 권리 있는 자들을 욕하면 그들의 마음도 후련해질 테니까 그런 것까지 상관하지 않을 거야.” “만약 송석석이 기간을 채운 후 시집간 거라면 그녀가 백성들에게 해명을 하기만 하면 우린 헛수고하는 거 아니에요? 이번에 돈 꽤 많이 썼잖아요?” 장공주는 대답을 하고 안색이 좋지 않았다. “돈을 많이 썼지만 온 진성 백성들이 모두 송석석을 욕하게 할 수 있다면 돈을 쓴 보람이 있어.”장공주의 마음은 시원했지만 확실히 엄청 많은 돈을 썼다. 몇 년 동안 장공주는 공주부의 돈을 물 쓰듯이 써 겉으로는 번지르르하지만 사실은 돈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부모님께서 애초에 주신 식읍과
장공주는 천천히 웃었다.‘그래, 혜 태비라는 돈주머니를 찾아가야지.’혜 태비는 장춘전에서 심하게 재채기를 했다. 낮잠을 자려고 하는데 장공주와 가의 군주가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고씨 유모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장공주 모녀가 왜 같이 온 건지 짐작할 수 있었다.몇 년 전에 가의 군주와 덕 귀태비가 함께 연지가게를 차려 돈을 좀 벌었다.모든 일에서 뒤처지기 싫어하는 혜 태비는 그들이 돈을 벌었다는 말을 듣고 자기도 가게를 차리려고 했지만 가의 군주가 아니라 친정의 조카와 함께 할 생각이었다.그런데 가의 군주께서 찾아와 독특한 비법이 있다고 궁 안의 연지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며 혜 태비에게 3천 냥을 가져와 함께 가게를 차리자고 했다.혜 태비가 가의 군주를 믿지 못하자 장공주가 나서서 혜 태비에게 그들 모녀를 믿지 못하는 것이라는 괴변을 늘어놓았다. 혜 태비는 원래 두 사람을 무서워하는데 장공주의 어두운 표정을 볼 때마다 바로 돈을 꺼냈다.하지만 몇 년 동안 연지가게에서 번 돈을 한 번도 나눈 적이 없었다. 오히려 해마다 적자를 봐 그들은 계속 돈을 요구했다. 혜 태비는 속으로 울고 싶었지만 나중에 그녀가 가난하다 거나 인색하다는 소문이 돌까 봐 주지 않을 수 없었다.그래서 몇 년 사이에 가의 군주가 보지도 못한 연지가게 때문에 혜 태비에게서 뜯어간 은만 해도 만 냥이 넘었다.고씨 유모는 혜 태비가 궁으로 들어오기 전부터 그녀를 모셔 당연히 그녀를 위해 생각했다.“또 돈 받으러 온 게 확실합니다. 태비마마, 연지가게가 이득도 없는데 문을 닫는 건 어때요?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또 돈을 달라고 찾아올 겁니다. 이 몇 년만 해도 많은 돈을 들였잖아요.”혜 태비도 연지가게가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폐업을 하려고 하니 창피했다. 덕 귀태비는 연지가게로 돈을 잘만 벌고 있는데 자기만 손해를 보는 것 같아 분해서 지금까지 해온 것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장공주와 가의 군주를 들였다. 역시 연지가게의 일로 찾아온 것이었다. 혜 태비는 참
장공주는 혜 태비에게서 받은 돈에서 조금 풀어 술집과 다방의 설화인에게 계속 송석석이 효도를 지키지 않은 것을 들먹이도록 했다. 국공부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문을 닫고 나오지 않는 걸 보고 장공주는 그들이 무서워서 나오지 않는 줄 알고 속이 시원했다. ‘나와 맞서는 건 계란으로 바위치기지.’그녀는 이 참에 궁으로 들어가 황제에게 사여묵과 송석석의 혼인을 동의하는 건 황제의 자리에 화근을 심어주는 것이니 강산을 위해서 송석석이 북명황실로 시집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그녀는 황제가 듣고 깊이 생각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고모,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묵이와 석석은 모두 무장이에요. 남강을 수복하고 국토를 호위하며 나와 조정에 충성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묶이는 내 동생이라 어릴 때부터 친밀하게 지냈고요. 묵이는 결코 다른 마음을 품지 않을 것입니다. 고모도 함부로 추측하지 말아 주세요.” 장공주는 잠깐 멍하더니 고모의 신분을 내세우며 호되게 말했다. “멍청하긴. 그리 쉽게 사람의 마음을 믿어서야. 황실에서 형제끼리 서로 싸우고 죽이는 걸 보지 못했느냐? 황제가 되어서 그렇게 쉽게 사람을 믿으면 그가 황제의 믿음을 사서 나쁜 일을 행할까 두려워서 그러는 거야.” 이때 황제의 안색이 안 좋아지더니 차갑고 음울한 눈빛으로 옥반지를 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오 대반은 금세 알아차리고 황급히 무릎을 꿇고 말했다. “장공주님, 제발 말을 삼가 주십시오. 이런 말이 전해지면 조정의 문무백관들이 장공주께서 황제폐하와 북명왕의 형제애를 이간질한다고 말할까 두렵습니다. 그건 장공주님께도 불리하지만 황제폐하와 북명왕에게도 불리한 말입니다. 지금 황제폐하와 북명왕께서는 사이가 좋으신 데다 북명왕과 송석석 아가씨의 혼인은 이미 정해졌는데 이제 와서 황제폐하께서 사람을 명해 혼인을 망친다면 천하의 사람들이 황제폐하를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장공주는 황제가 탁자 위에 올려놓은 옥반지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오 공공의 말은
시부인이 바로 그날의 고청우였다. 산후조리를 마친 그녀는 얼굴에 빛이 났고 몸집은 붓기가 하나도 없었으며 여전히 소녀처럼 아름다웠다. 남강에는 모래바람 때문에 겨울엔 아주 추웠지만 그녀의 피부는 기름을 바른 것처럼 부드러워 보였다. 저택의 좋은 물건은 모두 그녀가 사용했다. 매일 낙타젖으로 제비집을 삶고 양젖으로 목욕을 했는데 진성에서 돈이 들어오지 않아도 그녀는 조금도 절약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보양을 하니 적어도 왕표의 눈에는 지극히 고귀한 존재로 보였고 그녀의 연약하고 부드러운 손을 잡으면 그의 마음도 나른해지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번 생에 국색천향의 미인, 매력이 있는 미인, 온유한 미인 등 많이 만나보았지만 그중에서도 하필이면 여우 같은 고청우가 그의 마음에 들었다. 방천허마저도 그녀의 신분이 의심스러우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왕표는 그런 말을 듣고 오히려 욕을 하려고 했다. 왜냐하면 고청우는 진작에 자신의 신분을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처음엔 이곳에 와서 살 길을 찾고 싶었을 뿐 그에게 몸을 맡기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왕표에게 엄격한 부인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더 이상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고청우가 왕표를 유혹한 게 아니라 왕표가 끝까지 쫓아가서 같이 살게 된 것이었다. 왕표는 그녀를 갖기 위해 많은 방법을 썼는데 처음엔 그녀를 수양딸로 삼겠다고까지 했었다. 그래서 나중에 그들이 부부가 된 후에도 고청우는 밤에 가끔씩 그를 아버지라고 불렀다. 왕표는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찌릿한 것 같았다.그는 아들이 생긴 데다 아름다운 부인을 보면서 심지어 여생을 남강에서 보내는 것도 행복한 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결코 최 씨에게 부당하게 대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요 몇 년 동안 그녀가 중책을 맡아 집안의 재산을 처리하도록 내버려두었고, 그가 밖에서 군사를 이끌 기에 백작 부인인 그녀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앞으로
사여묵은 원래 누군가가 연왕의 배후에서 조종을 한다고 여겼지만 목종욱이 함부로 추측할까 봐 말을 하지 않았다. “처음엔 실증도 없었으니 연왕을 죽였다면 황제는 황숙을 이유 없이 죽인 혼군이라는 말을 들을 것이 아닌가? 그럼 그들이 반란을 일으킬 구실이 하나 더 생기는 것이지. 반란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니 그의 세력이 이 정도까지 확장되었으니 누군가 깃발을 들것이다. 그를 연주로 보낸 이유는 그가 애초에 사온이 접촉했던 인맥과 다시 연루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야.” 그러자 목종욱이 말했다. “그런 것이군요.” “내 추측이 맞다면 그들이 거사를 일으키려 한다면 분명 각지에서 트집을 찾아 봉기를 일으킬 것이니 조심해야 하네. 특히 강남은 우리 상국의 공창과 상회의 땅이니 그곳을 빼앗긴다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사여묵이 재차 당부하자 목종욱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목숨을 걸고라도 그들이 강남을 차지하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모두 인계한 후 사여묵도 진성으로 떠나는 길에 올랐다. 그는 지금 조금도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 사청엽이 진성으로 압송되었다. 그는 평생 체면에 신경을 썼는데 이젠 호위가 앞뒤 좌우에서 호송하는 건 흔치 않으니 이번 생에 소원을 이룬 셈이었다. 중간에 휴식할 때 송석석은 강철 바늘을 팔찌에 넣었다. 사병을 소탕할 때 팔찌의 강철 바늘을 다 썼는데 정말 사용하기 편리하다고 생각했다.특히 이런 산악전에서는 적이 분산되어 있어서 일단 발견하면 강철 바늘이 멀리까지 쏠 수 있어서 경공을 펼치지 않아도 되었다. 다만 그녀가 산에서 몇 번 넘어져서 팔찌가 약간 변형해서 사여묵이 역관에게 공구를 빌려 수리해 주었다. 복구하지 않으면 각도에 문제가 생겨 정확하게 발사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들이 진성으로 돌아갈 때 남강에 있던 전북망도 마침내 성릉관에 도착했다. 왕표가 특별히 그들 몇 명을 성릉관으로 보내 소대장군에게 생신 선물을 주겠다고 했다. 전북망을 따라갔던 세 사람은 모두 전북망과
이튿날, 연황실의 사람들은 더욱 많아졌는데, 그중에는 강남에 사는 훈작 가문도 적지 않았다. 원래는 이 훈작 가문들은 태평성대만이 영화를 누릴 수 있기에 정세가 흔들리는 것을 가장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어야 했다. 그러나 한 가문이 수십 년이 지나도록 작위가 공작에서 백작으로 하락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더 이상 작위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여 마음속으로 아주 초조했다. 왜냐하면 그들도 전성기를 누렸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모든 가문이 연왕의 진영에 들어온 건 아니었다. 왜냐하면 조용한 나날을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도 연왕의 계략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의 미움도 받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처세술이라고 생각했다. 오늘도 사람들이 모두 오지 않았기 때문에 연왕은 모든 사람이 온 후에 결정을 내리겠다고 일을 다시 뒤로 미루었다. 그러자 더욱 무상의 말이 입증된 셈이었다. 사람들은 연왕이 움직일지, 아니면 투항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노주에서 사여묵은 강남도에 주둔하고 있는 병력들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포로들을 모두 인계했다. 강남 위영의 총병은 목종욱이었는데 예전에 소 대장군의 휘하였다. 소대장군은 하마터면 그를 의자로 삼을 뻔했다. 전공을 세운 후, 소 대장군의 천거로 강남에 가서 수비를 하고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그의 목적은 도적 때를 소탕해서 소란을 피우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사여묵은 그와 왕래가 많지 않았지만 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소대장군의 영향을 받아 충성심이 강하고 담력이 커서 절대로 연왕의 진영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연왕이 이리저리 병력을 동원할 필요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목종욱은 직접 포로를 데리로 왔다.그가 사여묵과 송석석에게 인사를 하자 두 사람도 후배의 신분으로 그에게 인사를 했다. 왜냐하면 소대장군의 관계가 있으니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온 후에 다른 것은 묻지 않고 소대장군께서 진성에 계셨던 상황만 물었다. 처음에 그는
연황실의 서재는 밤새도록 불이 꺼지지 않았다. 연왕은 모든 참모들을 불러놓고 논의를 했다. 그는 자신을 인정해 주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는 지금이 적합한 시기가 아니라 죽음만 초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사청엽만 죽이면 그가 역모를 계획한 일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더 이상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모든 참사들과 연주에서 그와 함께 일을 도모했던 관리들은 모두 사청엽을 죽이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사병 오천 명을 섬멸한 부대가 사청엽을 진성으로 호송하는데 어떻게 죽일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최선을 다해서 사청엽을 죽이느니 차라리 움직이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연주지부 하상지가 말했다. “왕야님, 이미 가장 좋은 시기를 놓쳤으니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은 병력을 기르는데 비용이 많이 드는 데다 진성에서 제공하던 은자도 끊겼으니 더 이상 소모하면 오래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하상지는 전 호부시랑으로 있다가 작은 잘못을 저질러 선제에게 경주로 파견된 후 연왕을 따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게다가 사온이 은전으로 사람을 매수해서 그를 연주지부 자리에 앉게 한 것이었다. 하지만 내년이면 임기가 다가오는데 이부 제상서가 그에게 불만이 많았다. 옛날 진성에 있을 때부터 두 사람은 사이가 좋지 않아 임기가 차면 아마 다른 곳으로 갈 것 같았다. 그가 자리를 옮기면 숙청제가 반드시 사람을 들여보낼 것이고 그때가 되면 왕야님이 연주를 장악할 수 없게 될 것이었다. 모두들 번갈아 가며 설득했다. 숙청제가 군대를 보내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먼저 곳곳에 불을 지피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고 모두의 분석이 일리가 있었고 현재의 형세에도 부합했다. 그러나 연왕은 여전히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내일까지 기다렸다가 모든 사람이 도착한 후에 다시 의논해 보지. 다들 먼저 돌아가거라.” 서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가족의 생명을 그에게 맡겼고, 입이 마르도록 설득을 했는데 여전히 우유부단을 하니 사람들은 실망하기 그지없었다. 무상은 눈앞의 상황을
소식이 연주에 전해지자 연황실이 발칵 뒤집혔다. 연왕은 격노하여 방에 있는 도자기란 도자기들을 모두 깨뜨렸다. “병신들 같으니라고. 오천 명의 사병들이 모두 당하고도 보고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니. 사청엽은 대체 뭐 하는 인간이냐? 그렇게 많은 사람이 노주로 갔는데 경계심이 조금도 없다니, 심지어 사람을 보내 소식을 전하지도 않았다니.” 그의 얼굴은 흉악하고 무서워 회왕조차도 한쪽에서 서서 감히 말을 하지 못했다. 그들은 이 일로 인해 당황하기 그지없었다. 그들의 관심은 온통 옹현에서 옮겨간 사병들에게 있어 노주에 문제가 생길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노주 대석촌 같은 숨겨져 있는 곳이 대체 어떻게 들킨 것이지? 노주는 원래 그들의 눈에 들 수 없는 곳이었다. 그곳의 지형은 정말 좋았는데 빽빽한 땅굴 외에도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는 역모를 실패하더라도 대석촌으로 가면 몇 년 동안은 평안할 수 있어 다시 계획을 짜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발견하기 어려운 지역인데 이렇게 쉽게 공격을 당하다니. 무상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왕야님, 지금 화를 내도 소용이 없습니다. 일찍 결정을 내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들이 노주를 노리는 것은 사청엽에게서 실수가 생긴 것입니다. 그가 체포되어 진성으로 이송되기만 한다면 반드시 왕야님이 시켰다고 자백할 것입니다. 그의 말을 들은 연왕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들은 비적을 토벌한다는 명분으로 의심만 했을 뿐 사병들이 본왕 것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없었지. 지금 유일하게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은 사청엽이니 기회를 봐서 그를 제거한다면?”그러자 무상이 말했다. “왕야께서는 그를 제거하실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들은 모두 무림 출신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사가 죽어 나가야 하는지 아십니까? 아마 몰래 들어가서 한 번 보는 것조차 불가능할 것입니다.” 연왕은 초조해서 일어났는데 동작이 너무 커 아물지 않은 상처가 당겨 아파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
그들은 신속히 준비를 해 1군은 대석촌 북로로 진격했는데 그건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물론 1군이 움직이기 전에 이미 다른 분대가 먼저 입산해서 전후좌우로 협공을 했다. 적은 인원에도 불구하고 포진이 합리적이어서 그야말로 빈틈없는 포위망을 마련해 준 셈이었다. 하지만 결국 쉽지 않은 싸움이었다. 워낙 공격할 곳이 많고 적들이 산세 지형에 익숙해 있어서 무소위가 미리 사람을 데려가 대석촌으로 향하는 밀도 입구를 막지 않았다면 싸움을 계속 진행할 수 없었을 것이었다. 장대성은 겸사겸사 두 명의 인부도 구해내 그 사람들에게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을 데리고 대석촌을 떠나라고 했다. 두 사람은 마침내 구출이 되어 춥고 배가 고픈 데다 밖에 싸움이 났다는 것을 알고 황급히 산 부근에 사는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에게 철수하라고 했다. 하지만 노동을 하던 사람들도 소수였고 이곳에는 오천 명이라는 사병이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싸우기 어려웠다. 몇 시진 후, 2군은 대석촌을 점령하고 그들의 공급을 차단해서 산으로 몰아넣었다. 식량을 지키기만 하면 그들이 산에서 약탈을 할 수밖에 없기에 쉽게 노출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상대는 무림의 고수들이니 조금의 기척이 있어도 쉽게 들킬 수 있었다. 노주 지부 서계경은 북쪽 길목에서 탈출하는 일꾼들을 기다리고 있다가 그들이 소식을 퍼뜨리지 못하도록 모두 체포했다.사실 이렇게 큰 움직임이 있는 이상 노주에서 분명 누군가가 소식을 전파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계경은 많은 것을 알지 못했지만 이 전투가 아주 위험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절대로 산적과 토비들에게 외부에게 지원을 요청할 기회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왜냐하면 그도 이 사람들은 진정한 산적과 토비가 아니라 역모를 꾸미는 사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사여묵 등 인은 통쾌한 몸싸움을 겪은 뒤 각 팀이 돌아가며 휴식을 취하고 유연한 산악전을 시작했다.송석석과 사여묵은 같은 팀이 아니었다. 무소위가 강력하게 그들이 나누어서 팀을
이번 작전은 비적을 토벌한다는 명분이 붙었다. 작전 전날 밤, 그들은 함께 앉아서 토론을 했는데 이번 행동은 위험하지도 않고 임무가 어렵지도 않았다. 다만 노주 대석촌의 사람이 예전 옹현의 사병은 아니라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럼 연왕이 사람들을 어디로 옮겨갔을까? 전에 사여령은 여러 주와 현에 이런 거점이 있다고 말했었다. 그래서 사여묵은 모두 대석촌 같은 규모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몇 천 명은 많지도 적지도 않은 수자였다. 위소가 없는 곳은 현지 관부만으로 오천 명을 섬멸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반격에 점령당할 수 있었다.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면 백성들에게 큰 피해를 입힐 것이고 대군이 쳐들어왔을 때 이미 얼마나 많은 곳을 점령했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이번에 노주의 사병을 토벌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큰 문제는 뒤에 있었다. 요 몇 년 동안 남강에서의 전쟁으로 인해 연왕이 계속 발전하고 있는데도 조정에서는 그에 대해 조금도 방비를 하지 않았다. 남강에서 승리한 후 조금의 억제를 했다고 하더라도 이미 어느 정도 실력을 쌓았고 지금은 뒤에서 전략을 짜주는 사람까지 있었다. 비록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몰랐지만 사여묵은 지금 자신들이 피동적이라고 생각했다. 노주로 온 후 그는 줄곧 그 사람이 누구일까 생각했다. 원래 염 선생과 분석할 때는 많은 사람을 배제했지만, 단 한 사람이 그들의 시야에서 배제되었다가 다시 주목받게 되었고, 그 인물이 염 선생의 머릿속에서 결코 잊히지 않았다.그 사람이 가장 큰 혐의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었다. 왜냐하면 전에 사람을 파견해 그 사람을 조사해 보았지만 그는 부유하지 않았지만 아주 평화로웠다. 그의 집에도 부병을 많이 기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이상이 없었다.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제외되었을 사람인데 사여묵이 그를 배제한 뒤 다시 이름을 올린 이유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은 분명히 연왕의 뒤에 서서 모의를 한 사람일 것이었다. 다시 말해
노주에는 영락루라는 곳이 있었는데 기세가 웅장하고 규모가 컸다. 영락루에 소비하러 가는 사람들은 부자가 아니면 귀족이었다. 하지만 영락루의 왼쪽 모퉁이에는 난잡하고 텅 빈 곳이 있었는데 장사꾼은 매일 그곳에서 장사를 했다. 밥을 파는 사람, 떡을 파는 사람, 완탕을 파는 사람 등이 있었는데 이곳은 품질이 좋고 가격이 저렴하여 음식을 구하러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서민들과 부두의 노동자들이었다. 장사하는 자리 밖에는 몇 개의 낮은 탁자와 걸상이 놓여 있었는데 손님들은 거기에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곳은 시끌벅적했고, 어떤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다 있었지만 유독 국사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만 없었다. 왜냐하면 백성들에겐 너무 먼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그중 완탕을 파는 노점 앞에 두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그들의 옷차림도 수수하고 평범했다. 한 사람은 회색 솜저고리를 입고 흰 모자를 쓰고 있었고 나이는 대략 30살 좌우로 보였다. 다른 한 명은 대략 40살 좌우로 보였는데 청색의 옷을 입고 있었다. 다만 아무리 봄이라고 해도 아직 날씨가 쌀쌀한데 옷차림이 다소 얇아 보였다. 하지만 완탕 한 그릇을 먹고 나니 그의 이마에는 작은 땀방울이 맺혔다. 다 먹은 후에 그릇을 내려놓고 회색 저고리를 입은 남자가 말했다. “그럼 그냥 놔준단 말입니까?” 그러자 청색 옷을 입은 남자가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그들이 준비를 단단히 하고 왔으니 그만둘 수밖에 없지.” 그러자 회색 옷을 입은 남자가 말했다. “거 참 아쉽군요.” 청색 옷을 입은 남자는 그릇에 남은 국물을 바라보며 말했다. “연왕에게도 초조한 맛을 보게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움직이지를 않으니 날이 갈수록 남의 자리가 안정되어 승산만 줄어드는 것 아니냐?” “나는 진성에서 왜 연왕을 돌려보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회색 옷을 입은 남자는 진성에서 연왕이 역모하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연왕을 풀어준 건 호랑이를 풀어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
마을은 이미 그들의 사람들로 가득 차 뜨거운 물이며 옷이며 없는 게 없었다. 다만 옷들이 상대적으로 짧아 무소위는 다른 사람을 시켜 그의 몸에 맞는 옷으로 한 벌 구해오라고 했다. 사여묵은 욕조에 몸을 담그고 송석석은 그의 몸에 묻은 흙을 닦아준 후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씻어주었다. 사청엽은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 머리를 감는 비누도 좋아서 잠깐 문질렀더니 머리카락이 금세 부드러워졌다. 다만 사여묵의 머리카락이 너무 더러워 물을 세 번이나 갈아서야 깨끗해졌다. 그리고 송석석은 천천히 그의 수염을 깎아주어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주었다. 사여묵은 홀쭉해진 송석석의 얼굴을 보고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이 아팠다. 아마 그동안 잠도 못 자고 매일 걱정을 해서 그런 것 같았다. 사여묵은 이럴 줄 알았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편지를 한 통 보냈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아직 옷을 사 오지 않아 일단 사청엽의 옷을 입어야 했는데 좀 짧긴 했지만 큰 영향은 없었다.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았다. 사여묵은 쉰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당신이 올 줄 몰랐소. 심 사형이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이렇게 많은 사람을 동원한 것 같소.” “당신에게서 편지가 오지 않아서 내가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모릅니다.” 송석석은 그의 품에 안겨 두 손으로 그의 허리를 꼭 감쌌는데 몸이 밀착되어 전해오는 진실함이 오랫동안 그녀를 괴롭혔던 근심과 초조함을 씻어 주는 것 같았다. “사고가 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하겠소.” 그의 뜨거운 입술은 송석석의 이마에 닿았고 그녀를 안고 있던 팔엔 힘이 더 들어갔다. “그러니 내 걱정은 하지 마오.” 방금 송석석이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흘려 그는 슬프면서도 감동적이었다. 그녀는 평시에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래서 사여묵도 그녀가 부담스럽지 않게 항상 자신의 감정을 참아왔던 것이었다.그는 송석석의 마음속에 자신이 있지만 그다지 중요하진 않다고 생각했다.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아주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