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상준이 걸음을 멈추었다.차우미는 당황하며 고개를 돌렸다.목소리의 주인공은 온이샘이었다.‘서흔 씨 만난다더니 여기서 만난 거였어?’복도 전방에 핸드폰을 들고 불빛을 받으며 서 있는 온이샘이 보였다. 그는 많은 사람들 틈에서도 오로지 그녀만 바라보고 있었다.박물관 식구들도 걸음을 멈추고 온이샘을 바라보았다.그날 온이샘이 박물관으로 찾아왔을 때, 적지 않은 작업자들이 그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복잡한 시선으로 나상준의 눈치를 살폈다.예전에 차우미가 이혼했다고 추측했던 이유도 온이샘의 출현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일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복잡한 것 같았다.나상준의 옆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기에 그의 표정을 제대로 볼 수는 없었다. 그는 평소에도 표정에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다.온이샘을 오늘 처음 보는 진정국은 그가 바로 직원들이 입에 마르게 칭찬하던 남자라고 본능적으로 느꼈다.진정국은 저도 모르게 나상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남자는 속을 알 수 없는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온이샘의 출현은 뜻밖이었지만 만났으니 인사를 안 하고 지나갈 수는 없었다. 차우미는 하 교수에게 양해를 구했다.“교수님, 아는 선배가 저기 있는데 인사만 하고 올게요. 먼저 가세요.”하 교수를 포함해 이 자리에 있는 남자들은 평균적으로 차우미보다 나이가 많았다.남자의 마음은 남자가 안다고 온이샘이 차우미를 바라보는 눈빛이 일반 후배들을 보는 눈빛이 아니라는 건 다들 알고 있었다.하 교수는 나상준을 힐끗 바라보고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어서 가봐.”사람들이 자리를 뜨자 차우미는 나상준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고 온이샘에게 다가갔다.온이샘은 전방에 우뚝 서서 가만히 있는 남자를 보고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그는 전화를 받으러 잠깐 나오는 길이었다. 강서흔은 이미 취했는데도 계속 술병을 끌어안고 있었고 말려도 듣지 않을 걸 알기에 가만히 자리만 지켜주고 있었다.그때 전화가 걸려와서 밖으로 나왔는데 하필 식사를 마치고
차우미는 온이샘 앞으로 다가와 말했다.“선배.”그녀의 얼굴에 따사로운 웃음과 부드러운 눈빛이 있었다.온이샘은 웃으며 말했다.“여기서 볼 줄 몰랐어.”“나도 몰랐어.”차우미는 오늘 밤 부가 별장에 온 이유를 말했고 온이샘은 들은 후 말했다.“그렇구나.”차우미가 말했다.“강서흔도 여기 있어?”“응.”온이샘의 얼굴엔 난처함이 보였고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상황이 안 좋아.”차우미가 생각하더니 말했다.“나 들어가 봐도 돼?”“당연히 되지.”“너를 보면 더 좋아질 거야.”온이샘은 차우미를 데리고 룸으로 들어갔고 그제야 온이샘 마음속에 있던 위기감이 가라앉았다. 어떤 일들은 차우미에게 물어볼 수 없지만 그는 느낄 수 있었다.당연히 느낌이 왔고 그걸로 부족하고 증거가 필요하다.누구에게 인증 받을려면 당연히 여가현의 인정이 필요했다.두 사람은 룸에 들어갔고 룸이 바로 차우미 옆방일 줄은 몰랐다. 정말 우연이었다.룸에서 강서흔은 이미 카페트에 앉아 술병을 안고 만취한 상태다.차우미는 들어오자 독한 알코올 냄새를 맡았고 한눈에 카페트 위에 널브러진 술병들을 봤다.와인에 소주에 여러 가지 종류 정말 마시다 죽으려고 작정한 것 같았다.술을 마시다 죽으면 고통스럽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차우미는 온이샘에게 말했다.“선배, 여기 직원한테 해장국 끓여달라고 해. 내가 강서흔이랑 얘기해 볼게.”“그래.”강서흔은 술을 아무리 마셔도 주사를 부리지 않는다. 그는 술 버릇이 없기에 온이샘도 차우미랑 그가 단둘이 있는 것을 걱정하지 않았다.온이샘이 나가고 룸문이 닫혔다. 차우미가 소파에 앉아 강서흔을 조용히 바라봤다.그때 강서흔도 그녀를 봤고 표정이 멍했다.그는 취했지만 모든 것을 다 잊을 정도로 취하지 않았다. 술에 취하지 않아 정신은 멀쩡했다.차우미가 말했다.“강서흔, 가현이랑 어디까지 가고 싶어?”“어디까지......”강서흔은 몇 마디를 반복했고 낯설고 막막했고 알 수 없었다. 그 누구도 그에게 이런 물음을 한 적이 없었다.차
차우민는 꽃들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여자들은 남자랑 달라. 여자들은 결국 가정을 원하기 마련이야. 아무리 강한 여자여도 집이 주는 안전함이 필요해.”“그 집은 얼마나 단단하거나 화려하지 않아도 돼. 그저 폭풍우가 몰아칠 때 그녀를 지킬 수 있고 절대 버리지 않는다면 충분해.”“그거면 되.”강서흔은 입술을 깨물며 안색이 어두워졌다.그는 여가현을 잘 지키지 못했고 자신의 엄마한테 수모를 당하게 했으며 그런 엄마와 따지지 말라고 했다.그 시각 술병은 강서흔 손에서 점점 뜨거워지며 언제든지 부서질 것 같았다.차우미가 돌아서서 그를 보며 말했다.“사랑, 결혼, 가정 그저 간단한 말 같아도 어느 하나를 연결해 놓으면 다 어려운 단어야.”“너도 가흔을 사랑하고 가흔도 너를 사랑해, 이건 축복받은 일이야.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는데 사랑만 갖고 안돼.”“너는 부모님도 있고 부모님이 너를 사랑해서 집안이 맞는 여자를 만났으면 하는 것도 틀린 건 아니야. 가현이도 부모님이 있고 부모님도 가현을 사랑해. 가현 부모님은 가현이 사랑받는 남편한테 시집가길 바라고 시어머니한테 이쁨 받길 바라는 것도 잘못된 거 아니야.”“잘못한 사람 없어.”“그저 너희들 집안 배경이 다를 뿐이고 자란 환경이 다르기에 자연스럽게 생각도 다른 거야. 그래서 오늘 같은 상황이 생긴 거야.”강서흔은 머리를 수그리고 몸이 바짝 긴장했다. 왜냐하면 차우미 말이 맞기 때문이다.이것이 더 잔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차우미는 그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눈빛이 흔들렸다.“하지만 난 여전히 모든 일에 절대적인 건 없다고 믿어. 어떤 일들은 바뀔 수 있고 일부 생각들도 바뀔 수 있어.”“사람은 매 단계마다 생각이 다 바뀌게 되여 있고 그 변하는 생각을 받아들이는지 안받아들이는지가 문제야.”“혹은 넌 어떤 결과를 원해?”“그 결과를 위해 노력할 준비, 계속 앞으로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어?”강서흔의 마음이 움칠했고 눈이 커졌다. 어떤 결과를 원할까......차우미는 더 이상 얘기하지
달빛이 그윽하고 불빛이 영롱한 긴 복도에서 잔잔한 바람에 빛이 일렁인다. 불빛이 파도처럼 흔들리자 복고풍 그림이 눈앞에 나타난다.차우미는 준수하고 백옥처럼 정교한 사람을 보고 있다.입술이 움칠하다 머리를 저으며 말한다.“아니에요, 우리 가자.”그녀는 선배랑 두 사람이 안 맞고 가능성이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하지만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고 그저 친구 같다. 선배도 그녀랑 오래 만나면 그녀 몸에 있는 단점들을 많이 발견하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것이다.그녀의 눈빛이 불안하게 흔들리면서 부터 평온해지고 또 그녀가 그 말을 꺼내자, 온이샘이 긴장했던 마음도 평온해졌다.그 시각 온이샘은 손을 펴자 자신의 손이 땀으로 가득한 것을 발견했다.방금 한순간 온이샘은 차우미가 거리를 유지하자라는 말을 할까 봐 겁났다.정말로 겁났다.하지만 다행히 하지 않았다.차우미의 발걸음이 앞으로 향했고 온이샘도 마음속의 불안함을 갈아 앉히고 따라갔다.두 사람 모두 말을 하지 않고 대문으로 향해 걸었다.금방 대문 밖으로 나오자 두 사람은 걸음을 멈췄다.앞에 덩치가 큰 사람이 보였다.어두운 밤에 그 사람은 정장을 입고 팔에 외투를 걸치고 진중하고 침착한 분위기를 풍겼다.이때 그는 폰으로 뭘 보고 있었다.그의 옆에는 아무도 없었으나 주위에 지나가는 사람마다 그를 쳐다본다.그는 키가 훤칠할 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 비즈니스를 해온 탓에 카리스마스 있고 한눈에 주의할 수 있을 만큼 눈에 띈다.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말이다.차우미는 나상준이 이미 떠난 줄 알았지만 지금 보아하니 떠나지 않았고 의외였다.그러나 남들이 다 갔는데 혼자 있는 거 보면 누구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나상준은 그녀를 기다릴 이유가 없기 때문에 차우미는 그가 자신을 기다린다고 생각하지 않았다.필경 지금은 아무 사이도 아니고 이번에 회성에서 흑단 이벤트 진행한다 해도 그건 하 교수와 진 아저씨 담당이다.차우미는 그냥 배치된 것뿐 그가 그녀를 찾아올 일은 없다.차우미는
나상준은 온이샘을 보지 않았고 그를 등지고 있는 차우미를 보고 있었다.그의 시선은 그녀 몸에 있었고 마치 그녀 말고 누구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차우미는 멍을 때렸다.나상준의 목소리를 그녀는 한 번에 알았다. 삼 년 아마 십 년이 지나도 그녀는 알 수 있다.근데 나상준은 왜 그녀를 기다리는 걸까?차우미는 매우 의아했고 돌아서서 나상준을 봤다.“당신......”그녀는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나상준이 기다린 걸 보니 꼭 중요한 일이 있었다.나상준은 아무 일 없이 그녀를 찾지 않기 때문이다.차우미가 입을 열려고 하는 순간 멈췄다.선배가 옆에 있기에 말하기 불편했고 또 다른 일이 생각났다.오늘 밤 룸에서 사람들은 다 그녀와 나상준이 여전히 부부 사이인 줄 안다. 그때는 하 교수님이 자리에 있어 일부러 알려주지 않으려고 가만히 있었다.그러나 지금은 이 일로 나상준 측에서 언제까지 속이려고 하는지 얘기를 나눠봐야 할 것 같다.차우미는 워낙 남의 말을 신경 쓰지 않아 자기 일만 잘하면 되기 때문에 괜찮았다.주요하게 나상준 측의 문제라 합리하면 차우미도 말을 맞춰줄 수 있다.때문에 차우미의 말이 잠깐 멈칫하더니 머리를 끄덕였다.그녀는 돌아서서 온이샘을 보며 말했다.“선배, 저녁 일찍 쉬어.”말이 끝나고 그녀는 온이샘을 보며 밝게 웃은 뒤 나상준과 같이 떠났다.온이샘은 자리에 서서 나란히 걸어가는 두 사람을 보자 방금 전에 복도에서 봤던 그림 같은 장면이 떠올랐다. 마음이 아팠고 더 이상 보지 못했다.머리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핸드폰을 꼭 쥐고 침착하게 마음을 가라앉혔다.온이샘이 다시 눈을 떴을 때 차는 이미 멀리 떠났고 어두운 밤에 멀어져 가는 차 불빛만 보였다. 그리고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가현아, 물어보고 싶은 일이 있어.”차가 천천히 차도에서 주행하고 창밖의 풍경이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이 시간 때 차량이 여전히 많았고 고속도로로 진입하면 괜찮을 듯하다.창문이 닫혀 있고 차 안은 조용하며 차우
차는 일정한 속도로 인행 도로를 지나 계속 앞으로 향해 달리고 있고 전혀 멈추려는 뜻이 없었다.차우미가 멈칫하며 운전석의 사람을 쳐다봤다.저녁은 고요하고 잘 개발되지 않은 도시의 밤이 더 깊어져 간다. 양옆의 풍경 수들이 얼마 전 도시 계획으로 인해 가지가 다 잘렸고 나무 기둥만 남았으나 가로등이 비치자 더 선명해졌다.도시의 불빛이 일찍 밝았고 조용해진 도시에 가로등은 여신처럼 청아하게 빛을 발하고 있다.차 창문은 여전히 닫혀있고 바람 한 점 새어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창밖의 불빛은 조용히 비춰 들어와 그의 얼굴을 비췄다. 나상준의 원래 깊은 눈매가 이 순간 더 깊어졌다.차우미는 눈빛이 흔들렸다가 다시 시선을 돌렸고 더 이상 소리를 내지 않았다.그는 아마 할 말이 있겠지.차가 한 골목으로 들어가 어느 동네로 들어왔고 천천히 주차장에서 멈췄다.나상준은 파킹에 세우고 가이드를 내린 후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렸다.차우미는 그가 차에서 할 말이 있는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으나 나상준이 차에서 내려버렸다.그녀는 멈칫하고 바로 차에서 내렸다.나상준이 밖에서 말하려고 하는 것 같아 차우미는 따라갔다. 근데 그는 계단으로 바로 올라갔다.마치 집에 도착해 두 사람이 같이 집으로 가는 것 같았다.그러자 차우미가 넋이 나갔다.나상준은 몇 발자국을 걸다가 뒤에 따라오는 소리가 들리지 않자 돌아섰다. 그리고 달빛 아래에 조용히 서있는 사람을 보고 말했다.“안가?”마친 전과 다를 게 없는 똑같은 말이다.차우미는 의아했다.그녀는 시선 속의 사람을 봤다. 달빛 아래에서 그의 눈매가 더 깊어졌고 몸에도 짙은 외투를 입은 것 같았다. 그는 여전히 전과 같이 훤칠하고 차분하다.그러나 나상준은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나상준은 그녀랑 같이 집을 오는 것이 아니라 할 말을 하고 자리를 떠나야 맞다.그래, 나상준 지금의 뜻은 같이 집에 가자는 거다.차우미는 고민하고 그에게로 다가갔다.“우리 엄마 아빠한테 할 말 있는 거야?”그녀는 그런 줄 알았고 혹은 나
차우미가 이마 살을 찌푸렸다. 왜냐하면 그녀는 나상준의 단추에 입술을 박았고 순간 고통이 느껴졌다.그 고통에 그녀는 자신이 나상준의 품에 꼬옥 안겨있다는 사실도 몰랐다.나상준은 차우미의 긴장을 눈치채고 머리를 숙여 품속의 차우미를 보고 있었다. 차우미는 미간을 찌푸렸고 얼굴이 빨개졌다.나상준은 차우미를 내려놓고 그녀의 턱을 올렸다.어두운 불빛 아래 담담하던 얼굴에 고통이 가득했고 분홍색 입술이 꼭 담고 있었고 빨간 피가 입가에서 흘러내렸다.나상주는 미간을 찌푸리고 그녀의 허리를 잡은 후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차우미의 입술을 닦아줬다.차우미는 아직 아픔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입술에 따뜻하고 낯서면서도 익숙한 감촉이 느껴졌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느끼는 기운에 그녀의 몸이 굳어져 버렸고 눈앞에 사람을 의아하게 쳐다봤다.나상준은 그녀의 입술을 보고 있었고 손수건으로 그녀의 다친 입술을 눌러 주고 있었다. 눈빛이 너무 지긋하고 처진 속눈썹에 눈빛이 가려져 눈매가 더욱 깊어 보이고 두려워 난다.차우미의 가슴이 철렁했고 반응하고 바로 그를 밀어버렸다.“나...... 나 괜찮아.”뒤로 물러섰으나 자신이 계단에 있는 것을 까먹고 또 발을 헛딛었다.몸은 뒤로 떨어지고 차우미의 눈에 황급함이 보였으며 무의식적으로 나상준의 셔츠를 잡았다하지만 나상준은 팔을 내밀고 차우미의 허리를 잡아 차우미는 뒤로 떨어지다가 나상준 몸에 붙었다.방금의 여운으로 차우미의 심장이 빨리 뛰었다.정말 떨어졌다면 큰일 날뻔했다.나상준은 손수건을 넣고 허리를 꼭 잡으며 품속에서 놀란 그녀를 보고 말했다.“나도 같이 떨어졌으면 좋겠어?’차우미가 머리를 저었다.“아니. 나는......”무의식적으로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그의 시선과 마주한 순간 차우미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그의 말은 탓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의 눈매처럼 깊으며 무언가에 눌리는 것 같고 무슨 의도를 표시하는 것 같지만 그녀는 또 알 수 없었다.나상준은
하선주는 잠에서 깼지만 완전히 꿈을 깨지 못 했다. 그러나 차우미를 따라 들어온 사람을 봤을 때 완전히 잠이 깨버렸고 졸음이 싹 사라졌다.“너......”하선주는 나상준을 가리키며 멍을 때렸고 자신이 환각이 생긴 줄 알았다.차우미는 하선주 소리에 일어섰고 엄마의 놀란 표정을 보며 말했다.“엄마, 이 사람 엄마랑 아빠 보러 왔어.”하선주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딸을 보고 입술을 움찔했지만 말을 꺼내지 않았다.왜 보러 왔지?잘 살고 있는데 왜 전 사위가 보러 올 필요가 있지?하선주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하선주가 더 생각하기도 전에 나상준은 신을 벗고 차우미가 준 남성 슬리퍼를 신고 들어왔다.“어머님.”“.......”하선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무슨 어머님야?이미 이혼했는데 왜 그러지?차우미는 자신이 처음에 받아들이지 못 했던 것처럼 하선주도 당분간 나상준을 받아주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다.그러나 나상준이 이미 왔다. 그런 이상 주인 예의를 갖춰야 한다.차우미가 말했다.“먼저 앉아, 차를 갖고 올게.”하선주도 차우미와 나상준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차를 내오겠다고 말하려고 했으나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우미와 하상준은 이미 이혼했고 지금 곁에 우수한 남자도 있다. 그런 이상 두 사람이 자주 만나는 건 불편하다.하선주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차우미가 주방으로 향했고 하선주가 나상준을 봐라 봤다. 키가 훤칠한 사람이 서있으니 넓어 보이던 거실도 좁아 보였다.하선주가 말했다.“앉아.”“네.”하선주가 먼저 앉자 나상준도 앉았다.하선주는 정장을 입고 정중한 나상준을 보고 마음속에 불만이 많았지만 그래도 손님이 예의를 갖춰 방문했기에 눈치 주기도 애매했다.“우미 아빠 이미 잠들었어. 내일 아침 일찍 가게 나가 봐야 해서 깨우지 말지.”지금 온 사람이 온이샘이라면 하선주는 무조건 차동수를 깨운다. 하지만 나상준이라 불편한 것이다.나상준이 하선주의 뜻을 모를 리가 없다.“네, 아버님은 쉬게 하는게 좋을
온이샘은 차우미의 표정을 보고 잠시 멈칫하더니 그녀가 이제야 자기가 누군가와 싸웠다는 걸 믿어주는 것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차우미는 자기의 질문이 어디가 잘못돼서 온이샘이 웃는지 생각하며 의아해했다.온이샘은 그녀의 멍하고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 더 사랑스러웠다.그가 싸웠다는 말에 이토록 진지한 표정을 보일 줄은 생각도 못 했다.온이샘은 그런 차우미의 모습이 너무나도 귀엽고 사랑스러웠다.“그래. 같은 반 친구를 도와야 해서 싸운 거야.”차우미는 입을 살짝 벌리며 말했다.“선배도 싸울 줄 아네.”차우미의 눈에 온이샘은 아주 세련되고 우아하며 이성을 가지고 말로 사람을 설득하지 절대 싸우는 스타일이 아니었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온이샘은 차우미가 놀라는 모습을 즐기며 말했다.“왜, 놀랐어?”차우미가 고개를 저었다.“놀란 건 아니고 조금 의외여서. 나는 선배가 절대 싸움질 하는 사람 같지 않았거든.”온이샘이 웃었다.“그때는 어렸고 지금과는 상황도 다르잖아. 그리고 주변 친구들이 모두 뛰어갔고 게다가 상대가 모두 우리보다 커서 친구를 구하려면 다른 방법이 없었어.”차우미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런 상황이었구나.”“그래, 상황이 상황인 것만큼 그런 방법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어.”온이샘의 설명을 듣고 차우미는 그때의 상황이 얼마나 긴급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게다가 그때 당시 모두 나이가 어렸고 청소년이니 많은 걸 생각할 겨를도 없었을 것이다.차우미는 계속해서 고개를 숙이고 길을 살피며 걸어갔다.“그다음은 어떻게 됐어?”온이샘은 차우미가 평정심을 회복하자 눈을 지그시 뜨고 뒤를 따랐는데 여전히 조금 전과 같이 팔을 벌려서 차우미를 보호하며 걸었다.“혈기 왕성했던 우리가 미세한 차이로 이겼어. 비록 모두 부상을 입었지만, 결과적으로 모두 기뻐하며 골목에 앉아 같이 웃었어. 우리가 도와준 친구의 이름이 유리였는데 그녀의 외할아버지가 골목길 맨 끝에서 아침 식사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거든. 유리는 우리를 거기로 데리고 가서 상처를 처리
차우미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양쪽의 건물과 도로 표지판, 그리고 낯설면서도 익숙한 주변을 구경하였고 온이샘은 예전에 이곳에 놀러 왔던 이야기들을 했다.그는 예전에 친구들과 같이 여기에 와서 맛있는 음식들을 많이 먹었다고 했다.차우미는 차 안에 있을 때처럼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흥미진진하게 온이샘의 이야기를 들었다.그렇게 두 사람은 무후문을 지나 조금 더 걷다가 작은 골목으로 들어갔다.골목거리는 매우 외진 곳이었는데 거의 모퉁이에 자리 잡고 있었고 양쪽에는 엄청나게 오래된 성벽이었는데 도색도 되지 않아 벽 모서리의 가장자리에는 이끼층이 선명하게 보였다.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것 같았는데 낮에는 괜찮아도 밤에 다니기에는 위험할 것 같았다.온이샘은 차우미가 약간 놀라고 의아해하는 모습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여기에는 와 본 적이 없지?”차우미가 고개를 끄덕였다.“응. 여기는 사람들이 많이 오는 곳이 아닌 것 같아.”발 아래 길은 청색 돌길이었는데 어젯밤에 내린 비에 돌판들이 아직도 젖어 있었다.골목길은 구불구불하고 좁아서 햇빛을 많이 받지 못하기 때문에 계속 습했던 것이다.차우미는 넘어질까 봐 고개를 숙이고 길을 보며 조심조심 걸었다.이런 길에서는 미끄러져 넘어지기 쉽다.온이샘은 차우미가 걷는 모습마저 너무 귀여워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맞아. 여기는 아는 사람이 적어서 많이들 오지 않아. 여기 주변에 사는 사람과 나와 같은 극소수의 아는 사람들만 다니는 곳이야.”온이샘은 말하면서 슬그머니 차우미의 가까이로 가더니 그녀의 뒤에서 손을 벌리고 넘어지려고 할 때 바로 부축할 수 있게 준비했다.사실 온이샘은 어젯밤에 비가 내린 줄도 몰랐고 이 길이 이렇게 습해서 미끄러울 줄은 더더욱 몰랐다.그가 차우미를 여기로 데리고 온 것은 다름 아니라 자기가 걸었던 길을 그녀와 함께 걷고 싶어서였다.하지만 온이샘도 도착해서 이렇게 미끄러운 것을 알았기에 가능한 차우미가 넘어지지 않게 보호하려고 신경을 썼다.차우미는 온이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
시간은 어느새 9시가 되어 태양이 점점 더 뜨거워졌는데 양산이 차우미의 머리 위를 가리는 순간 햇빛과 단절되어 약간의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이건 양산의 공로라고 하지만 정확하게는 온이샘의 공로였다.온이샘은 차우미의 아주 가까운 곳에 서 있었는데 여름 바람이 살살 불면서 그의 몸에서 풍기는 치자꽃 향기가 그녀의 코끝을 감쌌다.차우미가 웃으며 말했다.“나는 괜찮아.”“그냥 해.”온이샘은 양산 손잡이를 꼭 잡고 차우미를 바라보았는데 새하얀 피부에 버들잎 같은 눈썹을 보자마자 시선을 거둘 수 없었다.양산은 태양의 뜨거움을 막았을 뿐만 아니라 햇빛도 막아서 차우미 눈 밑에 있는 다크서클마저 잘 보였다.온이샘이 마음아파하며 물었다.“어젯밤에 잠을 잘 자지 못했어?”“왜?”차우미는 온이샘의 난데없는 질문에 의아했다.온이샘은 그녀의 다크서클이 너무나 선명하게 보였다.“눈 아래에 다크서클이 심해서 잠을 잘 자지 못한 것 같아.”차우미도 아침에 씻고 거울을 볼 때 봤었다.그녀는 밤에 늦게 자고 수면 시간이 짧기만 하면 다음 날에 곧바로 다크서클이 나왔는데 컨디션이 좋으면 그나마 조금은 괜찮았었다.지금 컨디션도 좋고 졸리지도 않아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온이샘의 눈을 속이지 못했다.차우미는 눈을 만지며 말했다.“어젯밤에 늦게 자서 그래. 혜지 씨가 관강동 별장에 예은이 데리러 왔는데 그때가 밤 10시였거든, 그리고 상준 씨와 얘기를 조금 하느라 호텔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12시가 넘은 시간이었어.”차우미는 어젯밤에 있었던 일들을 하나도 속이지 않고 온이샘에게 이야기했다.온이샘은 그녀가 어젯밤에 있었던 일들을 속이지 않고 담담하게 말하는 모습에 가슴이 두근거렸고 그녀의 선명한 눈빛을 바라보며 마음이 따뜻했다.온이샘의 눈에는 온통 차우미로 가득 찼다.“그럼, 아침 먹고 호텔로 데려다 줄 거니까 한잠 자. 점심때 되면 연락할 테니 같이 식사하고 오후에 안평으로 가자.”온이샘은 차우미의 일이 끝나서 이제 나상준과 더 이상 엮일 일이 없으니 마음
“왜 그래? 무슨 일 있어?”조금 전에 호텔 앞에서 봤던 표정인데 그때는 햇빛 때문에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지금은 차 안이어서 무언가를 고민하는 것이 그대로 눈에 보였다.순간 온이샘은 무의식적으로 마음이 조여왔는데 마치 뭔가 안 좋은 일이 발생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그는 자기도 모르게 핸들을 꽉 잡았는데 얼굴에 가득하던 미소도 순식간에 사라졌다.차우미는 고개를 저으며 눈웃음을 지었다.“선배, 여기서 일은 다 끝났어?”차우미는 아무것도 생각한 적이 없다는 듯 표정을 회복했다.온이샘은 차우미의 안색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는데 조금 전의 표정이 보이지 않자 억지로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고 말했다.“응, 어젯밤까지 다 처리했어.”온이샘은 정말 일했다는 것을 강조하듯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그의 대답은 차우미가 미리 예상했었는데 그녀는 온이샘이 정말로 일이 있었고 자기를 속이지 않았다고 믿고 싶었다.그때 차우미는 입꼬리를 치켜올리고 앞을 바라보며 웃었다.“선배, 우리 어디 가서 아침 먹는 거야?”온이샘은 차우미의 목소리에서 평소와 다름없는 편안함을 들었다.그는 차우미에게 무슨 일이 있지만 별로 심각한 것 같지 않아 한시름 놓았다.“무후문으로 갈 건데 혹시 들어봤어?”차우미는 잠깐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알아. 거기가 옛날 건물들이 있는 곳이지?”온이샘은 차우미가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 했다.무후문은 청주에서 오래된 건물들이 많은 거리에 있는데 이 도시에서 3년 동안 생활한 차우미가 모를 리가 없었다.무후문은 소문이 많이 나서 청주에 여행 오는 사람들 거의 모두 반드시 다녀가는 곳이기도 하다.외부에서 여행으로 잠깐 오는 사람들도 아는 곳을 청주에서 생활했던 차우미가 모른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하지만 온이샘은 자기가 지금 차우미를 데리고 가려는 그곳은 절대 모를 거라고 확신했다. 왜냐하면 거기는 아주 외진 곳이기 때문이다.온이샘이 흐뭇해하며 웃었다.“거기는 아침 먹기에 조금 불편해. 내가 지금 가려는 곳은 그 옆
온이샘은 차우미 앞에 부드럽게 차를 멈추고 문을 열고 나왔다.자기 앞에 서 있는 차우미를 바라보며 그는 진정으로 차우미가 자기 손이 닿는 바로 앞에 있다는 것이 실감 났다.온이샘은 빠른 걸음으로 차우미의 앞으로 갔는데 그녀는 그를 보는 순간 잠깐 멍해 있었다.햇빛이 강렬한 관계로 그녀는 눈을 찌푸려서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하지만 온이샘도 차우미의 이런 표정은 처음으로 보았는데 조금은 귀엽고, 또 조금은 매혹적이었다.온이샘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차우미의 귀에 들어갔는데 그제야 눈썹을 흠칫하며 온이샘이 자기 앞에서 부드러움으로 가득 찬 눈으로 자기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차우미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웃으며 말했다.“아니야. 선배, 아침 먹었어? 안 먹었으면 내가 살게.”차우미가 그를 보자마자 첫마디가 그에게 아침 사준다는 말에 그는 고개를 숙이고 웃었다.온이샘이 웃는 것을 본 차우미는 왜 웃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고 그 표정을 본 온이샘은 더 크게 웃었다.그러다가 헛기침하며 웃음을 꾹 참았는데 입꼬리는 여전히 참지 못하고 치켜올라갔다.“우미야, 여기는 청주이니 내가 살게.”그의 진지한 표정에 차우미가 웃었다.“알았어. 안평으로 돌아가면 내가 살게.”“약속한 거야?”차우미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당연하지.”“나 똑똑히 기억하고 있을 거니까 아침 사주기로 한 거 까먹으면 안 돼.”온이샘은 특별히 차우미가 이번에 아침을 사주기로 한 것과 기존에 밥 사기로 한 것을 구분해서 강조했다.전에 약속한 것과 지금 약속한 것을 반드시 별도로 해야 했는데 같이 있을 수 있는 차수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차우미가 대답했다.“알았어.”“가자. 내가 먹어 본 중에서 아침을 제일 잘하는 집이 있는데 거기로 가자.”“좋아.”온이샘은 조수석의 차 문을 열어주었고 차우미가 올라타자, 본인도 즉시 운전석에 타고 출발했는데 교통 체증은 여전했다.“오래 기다렸어?”교통 체증 때문에 천천히 달리는 차에서 차
나상준이 만약 아무 일도 없으면 자기와 같이 안평으로 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차우미는 미간을 찌푸리고 한참을 생각하다가 메시지를 보냈다.그녀가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흰색 BMW 차 한 대가 멈춰 섰다.차가 브레이크 밟는 소리를 내며 앞에 멈춰서자, 차우미는 고개를 들었는데 운전석의 문이 열리며 흰색 셔츠에 회색 캐주얼 바지를 입은 온이샘이 내려왔다.시간은 8시가 넘어서 햇빛이 적당하여 너무 덥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몸 전체를 짱짱하게 따뜻하게 내리 비춰주었다.온이샘이 차에서 내리자 밝은 햇빛이 즉시 그를 감쌌는데 얼굴도 더욱 맑고 우아해졌다. 그는 햇빛 때문에 눈을 지그시 뜨더니 입꼬리를 치켜올리고 미소를 아끼지 않으며 차우미를 보고 있었다.그건 만족의 눈빛이었다.차우미는 온이샘의 그런 모습에 마음이 살짝 흔들리는 것 같았다.사람으로서 가장 거부할 수 없는 것이 진심이라고 하는 데 진심은 분명히 통하게 된다.차우미는 온이샘이 자기를 대하는 것이 조금은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는데 여가현이 노골적으로 얘기한 이후로는 그 마음이 더 잘 보였다.온이샘은 차우미를 각별히 챙기고 돌봐주었는데 모든 면에서 온이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온이샘은 연인으로도 남편으로도 너무나 좋은 사람이다.처음에 차우미는 그냥 한 번 시도해 보려고 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피치 못 할 일이 생길 거라는 생각에 이제 더 이상 시도하고 싶지 않았다.온이샘은 남자로서 훌륭하고 심지어 나상준보다도 더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차우미는 만약 이혼한 경력만 없었으면 아무 고민 없이 온이샘과 함께했겠지만, 본인의 상황이 온이샘 인생에 흠집이 될까 봐 걱정되었다.그녀는 본인은 자격이 없기에 온이샘은 자기보다 더 좋은 여자를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다.“왜 그래?”온이샘은 주차장을 나오자마자 차우미의 호텔을 향해 달렸는데 아마 평생 처음으로 이렇게 빨리 운전했을 것이다.청주의 7~8시는 모두가 출근하는 시간이기에 자전거, 스쿠터, 자동차로 이동하는 사람들로 붐볐다.어쩔
휴대폰 화면에 나상준의 이름이 나타났다.온이샘이 아닌 것을 보고 차우미는 잠깐 멈칫했다가 메시지를 클릭했다.[일 끝나면 연락해.]너무 간결한 한 마디였지만 뜻은 분명했는데 동시에 차우미의 머릿속에는 나상준이 어젯밤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일 끝나면 연락해. 너랑 같이 안평으로 갈 거니까.”어제저녁부터 나상준은 차우미와 같이 안평으로 가려고 했는데 그녀가 처리할 일이 있어서 미룬 것이다.차우미는 나상준이 정말로 일이 있고 타임이 맞아서 같이 안평으로 가는 줄 알았는데 그냥 쉽게 미루니까 급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어젯밤에 물어보려고 했지만, 그가 순식간에 차에 올라타면서 대화가 끊어져 버렸다.그 후 집중해서 운전하느라 그 일은 완전히 잊었다.지금 차우미는 나상준의 메시지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정말 나와 같이 안평으로 가겠다는 건가?’차우미는 나상준과 같이 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메시지를 확인하고 잠시 생각하다가 답변했다.[오늘 나와 같이 안평으로 가겠다는 거야?]메시지를 보내고 차우미는 나상준이 메시지를 보낸 시간을 보고 엘리베이터로 갔다.그녀는 아까 연락한 시간에서 20분 정도 지났기에 온이샘이 이제 곧 도착할 것 같아서 호텔 입구에서 기다리기로 했다.같은 시각, 관강동 별장에서 나상준은 차우미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욕실로 들어갔다.그는 어젯밤에 회사에서 밤을 새우고 방금 집에 왔는데 샤워하고 식사를 한 다음 곧바로 다시 회사로 나가야 했다.나상준이 욕실로 들어가자마자 물소리가 들렸는데 침대 머릿장에 올려놓은 휴대폰에서 그때 메시지 도착 음이 울렸다.휴대폰은 짧게 두 번 울리고 곧바로 침실에 정적이 흘렀다.별장 전체가 차우미와 나예은이 떠나면서 고요함은 더욱 짙어졌다.욕실의 물소리가 아무리 크게 들려도 별장 내의 고요함과 차가운 느낌은 가려지지 않았다.나상준은 시원하게 씻고 머리를 닦으며 나와서 곧바로 머릿장으로 가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화면이 켜지면서 읽지 않은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는데 발신자 이름을 보고 그는
순간 여가현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는 차우미가 행복하기를 바라지만 어쩐지 힘들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차우미는 여가현의 목소리에서 슬픔과 무력함을 듣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가현아, 난 괜찮아. 이혼을 결심했을 때 남은 생을 살면서 다시 결혼하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어. 원래는 선배와 잘 지내면서 연애도 해보고 나중에 천천히 결혼 생각도 해보려고 했어. 이샘 선배와 같은 좋은 사람을 놓치고 싶지 않았거든. 그런데 선배가 좋으면 좋을수록 내가 너무 부족하고 자격이 없는 것 같아. 선배는 나보다 훨씬 더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 그래서 계속 이렇게 선배의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오늘 선배한테 확실하게 얘기하고 더 좋은 여자를 만나라고 할 거야. 그리고 나는 당분간 다른 건 신경 쓰지 않고 일에 매진하고 결혼은 나중에 다시 생각할 거야.”어떤 일들은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하는 것이 다를 때가 많다.산도 보기에는 가까워 보여도 정작 가려면 엄청 멀듯이 말이다.온이샘은 차우미에게 바로 그런 가까이에 있는 같지만 사실상 멀고 먼 곳에 있는 존재인 것 같다.여가현은 크게 벌렸던 입을 다물며 속상해했다.“우미야, 나도 지금 세상이 이혼한 여자한테 불공평하다는 거 알아. 현재로서 세상 사람들의 그런 생각을 바꿀 수 없다는 것도 잘 알아. 그런데 나는 이혼을 한 사람도 자기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 그리고 이샘 선배가 너를 지켜줄 거라는 것도 믿어. 너도 이샘 선배가 훌륭한 사람이라는 거 인정하잖아. 더 중요한 건 이샘 선배의 마음속에서 너의 자리는 아무도 대체할 수 없다는 거야.”차우미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현아,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해. 얻지 못한 것은 언제나 좋아 보이는데 정작 얻고 나면 달라질 거라고. 너 그거 알아? 그날 나상준과 같이 예은이를 데리고 식당에 갔는데 선배가 밖에서 우리를 만났을 때의 표정을 보며 재혼이라는 건 쉽지 않다는 걸 절실히 느꼈어. 왜냐하면 아무리 이전의
여가현은 서류의 맨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사인을 하려다가 차우미의 말을 듣고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할 말이라는 건 뭐야? 무슨 뜻이야? 해야 할 말이 뭔데? 그러니까 네 말은 이샘 선배가 고백하기 전에 네가 먼저 거절하겠다는 거야?”역시 차우미와 함께 자란 사람으로서 차우미의 간단하게 한 말에서 그 의도를 알아챘다.차우미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응.”탁!여가현이 펜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두 눈을 크게 뜨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흥분하며 큰 소리로 말했다.“거절한다고? 왜? 이틀 동안 나상준 씨가 또 무슨 말로 너를 꼬셨는데 이샘 선배를 거절한다는 거야? 차우미, 제발 멍청한 짓 하지 마!”여가현은 어찌나 흥분했는지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사무실 안을 이리저리 걷기 시작했다.차우미는 여가현의 반응을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클 줄은 몰랐다.이어서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큰 목소리에 차우미는 깜짝 놀라며 본능적으로 휴대폰을 귀에서 멀리 뒀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가현의 다급한 목소리는 여전히 잘 들렸다.여가현이 말을 다 하고 잠깐 숨을 쉬는 사이에 차우미가 휴대폰을 가까이 가져다 진지하게 말했다.“가현아, 일단 진정하고 내 말을 들어봐.”휴대폰으로 차우미의 차분한 목소리를 들으니, 여가현은 화가 치밀어 올라 핏줄이 터질 것만 같았지만 애써 참고 심호흡하며 자신을 진정시켰다.‘그래, 우선 진정하자.’차우미는 휴대폰 건너편이 조용해지고 거친 호흡 소리가 들리자, 여가현이 듣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속해서 말했다.“가현아, 상준 씨랑 상관없이 나도 오랫동안 생각했어. 얼마 전에 선배의 어머니와 가족들도 만난 적이 있는데 너무 좋은 분들이었어. 이번에 청주에 와서 선배 어머니를 또 뵀었는데 너무너무 좋은 분이셔. 상준 씨의 어머니보다도 엄청 좋았어. 그분도 나를 예쁘게 봐주셨고 나도 선배 어머니가 너무 좋았는데 그렇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건 아니잖아. 나는 이혼했고 선배의 가족과 배경은 너도 잘 알다시피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