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즐거움을 공유할 만한 사람은 양훈뿐이었다.하성우는 바로 핸드폰을 꺼내 양훈에게 전화했다.“여보세요.”전화 연결음이 울리고, 전화기 너머에서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차디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하성우는 이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양훈의 목소리가 반가워 웃으면서 말했다.“있잖아, 아까...”그렇게 방금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양훈에게 전하고는 다시 또 벽을 붙잡고 박장대소 짓기 시작했다.“두 사람 정말 웃기지 않아? 아이고, 배야.”“...”전화기 너머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하성우는 웃다 말고 통화가 끊겼는지 핸드폰 화면을 확인했다.‘왜 말을 안 하지?’“여보세요?”하성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핸드폰을 귓가에 댔다.“양훈!”“응.”하성우는 순간 불쾌했다.“왜 말을 안 해? 넌 안 웃겨? 상준이가 차우미한테 완전히 잡혀 살잖아. 쟤가 언제 저러는 거 봤어?”그리고선 무언가 생각났는지 배시시하면서 말했다.“그런데 차우미를 다시 자기 여자로 만들기 어려울 것 같아. 이래서 언제 자기 여자로 만들겠어.”말로는 안타까워하면서 속으로는 오히려 깨 고소했다.하성우는 나상준이 잡혀 사는 모습이 좋았다.“쉽지 않지.”양훈이 드디어 대답했다.하성우가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너도 쉽지 않다고 생각해?”양훈마저도 쉽지 않다고 했으니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하성우가 곧바로 질문했다.“빨리 말해봐. 왜 쉽지 않은데?”그는 늘 사리에 밝고 똑똑한 양훈의 생각을 듣고 싶었다.“큰 노력을 해야 할 거야.”하성우가 여전히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노력? 그건 당연한 거 아니야? 신혼생활 3년 동안 차우미를 보는 체도 하지 않고 꽃 같은 청춘을 낭비해 버렸잖아. 인과응보인 거지! 만약 내 딸이 이런 대접을 받았다면 아주 혼쭐을 내줬을 거야!”“...”양훈은 또다시 말이 없었다.하성우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불쾌해하면서 물었다.“바빠? 빨리 말해봐. 나 또 회의 들어가 봐야 한다고. 시간 없어.”
하성우가 나가자 회의실 분위기는 회복되었다. 나상준은 비서더러 차우미에게 펜을 가져다주게 하였다. 차우미는 비서한테서 펜을 받고는 메모를 하기 시작했으며 모두 계속 토론했다.하성우가 서류를 복사하고 돌아왔어도 모두 잠시 머뭇거렸을 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고 계속 토론하였다.차우미는 계속 필기하였다. 아까 기록하지 못한 부분을 보충했으며 또 토론 중 요점도 메모하였다.차우미는 메모하는 데 열중하다 보니 하성우가 들어온 줄도 몰랐다.하성우는 오른손에 복사한 새 문서를 들고는 원본을 하 교수님께 돌려준 후 자리에 앉아 맞은편의 나상준과 차우미를 바라보았다.나상준은 의자에 앉아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예전처럼 긴장을 풀고는 사람들의 토론을 듣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항상 차우미의 손에 떨어졌다. 가늘고 예쁜 손가락이 중성 펜을 들고 서류에 청초한 글씨를 적었다.일하는 차우미를 보면 나상준은 주위의 숨결이 가라앉은 것 같았다.평온하고 조용한 게 둘만의 공간처럼 느껴졌다.이 장면을 보면서 하성우는 눈에 웃음꽃이 피어났고 그저 괜찮다고 생각했다.사실 그는 두 사람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나상준은 성격이 진중하고 타산이 있으며 조심스럽고 조용한 것을 좋아하기에 가까이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런 사람은 그와 같은 사람을 찾으면 피곤하여 힘들 수 있다.하지만 차우미의 경우는 아주 합당하다. 성격이 조용하고 온순하며 일을 처리할 때 온화하고 반응이 굼뜨나 생각이 단순하고 착하다. 따지는 편이 아니며 한눈에 보기에도 단순했다.온실 속의 꽃처럼 바깥의 험악함을 본 적이 없었으나 스스로 자신을 잘 보호하였다. 가정교육도 훌륭해 깨끗하고 단순하며 세속에 물들지 않았다.이런 사람은 나상준과 천생배필이다.복잡한 사람은 원래 간단한 사람과 함께 있어야만 편안해진다.사업을 하다 보면 매일 서로 속고 속이며 조금만 조심하지 않으면 큰 손실을 보게 되므로 정신이 극도로 긴장되어있다.이럴 때 집에 돌아온 후에도 계산하는 여자를 마주해야 하면 고생을 사서 하게 된다.그
예를 들면, 사랑.사랑은 돈으로 살 수 없고 신분 지위가 있어도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사랑은 하늘에서 맺어주는 연분이기에 귀중하고 희귀하다.이제 나상준은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고 한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도 알게 되어, 하성우는 진심으로 친구를 위해 기뻐했다.사랑을 위해 용기를 내는 것은 의미 깊은 일이다. 하여 친구의 행복한 생활을 위하여 무언가를 해줘야겠다고 다짐했다.회의는 5시에 끝났다. 얼마 되지 않아 하성우는 저녁을 같이 먹자고 요청했다.차우미는 자리에 앉자 동료들이 분분히 일어나는 것을 보고서야 펜을 놓고 서류를 덮었다.나성준은 그녀를 기다리지 않은 채 벌써 일어나 그들과 함께 밖으로 갔다.차우미는 그와 할 얘기가 생각나 서둘러 뒤를 따라 나갔다.하지만 나성준은 앞장서 걸었고 그 뒤로는 하 교수님과 진정국이 함께 하였기에 차우미는 입을 오므리며 마음속으로 하고 싶은 말을 억누르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그를 따라 다른 사람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으며 호텔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차는 이미 호텔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하나둘씩 차에 타기 시작했다. 차우미도 나상준을 따라 차에 올랐다. 그녀는 단독으로 할 얘기가 있었다.이때 나상준은 하상우의 스포츠카 대신 그의 차에 탔다.하성우는 나상준과 차우미가 한 차에 오르자 자신의 차를 몰지 않고 서둘러 따라와 조수석에 앉았다.재빨리 차 문이 닫히고 차가 줄지어 떠났다.차우미가 말을 하려고 할 때 앞쪽 조수석의 문이 열리며 하성우가 들어왔다.그녀가 하려고 하던 말이 이렇게 입술에 박혀 나오지 못했다.“형수님, 점심시간에 함께 있던 남자가 누구예요?”하성우는 안전벨트를 착용한 후 고개를 돌려 차우미를 바라보며 마치 그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는 듯이 웃으면서 물었다.해야 할 말을 중단한 차우미는 입술이 벌려져 있었다. 한동안 무슨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는데 그의 말을 듣고 차우미는 무의식중에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을 쳐다보았다.나상준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는 눈을
그는 진지하게 묻는 것 같았으나 함부로 묻지 않았다.차우미는 잠시 머뭇거리다 하성우의 답안을 몹시 궁금해하는 모습을 보며 말했다.“사람마다 우점과 결함을 가지고 있어 서로 비교할 수 없어.”“어...”“그건... 그래요...”하성우는 또 나상준을 바라보더니 빙그레 웃으며 또 물었다.“상준이 형은 어떤 장점이 있어요?”하성우는 농담하기를 좋아한다. 지금 그의 이런 모습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비록 우스개로 물었으나 차우미는 곰곰이 생각하고 나서야 대답했다.“가정을 돌보고 효심이 있고 책임감이 있으며 성숙하고 듬직해. 사람을 대하고 일을 처리하면서 진지하고 믿음다워.”나상준은 차에 오르자마자 눈을 감았다. 하성우와 차우미가 대화를 해도 눈을 뜨지 않았고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무슨 말을 해도 그는 눈을 뜨지 않을 듯했다.그러나 차우미가 하성우의 두 번째 물음에 대답할 때 나상준은 눈을 떴다.그녀는 자신의 장점을 곰곰이 생각해 본 후 부드러운 목소리로 진지하게 얘기했다. 마치 곰곰이 사고하고 회억한 후에 말한 것 같았다.거짓도 과장도 없었다.그녀의 마음속에서 그는 그녀가 말한 것처럼 좋았다.마음속에서 갑자기 무언가가 생기더니 사르르 싹이 트고 미친 듯이 자라나며 뻗어갔다.하성우는 차우미가 나상준의 우점을 한꺼번에 이렇게 많이 말하는 것을 듣고 눈이 휘둥그레졌다.가정을 돌본다?그럴 리가!가정을 돌보는 사람이 늘 밖에서 자주 돌아가지도 않았을까?책임감은 분리해서 봐야 한다. 사업에 대한 책임감은 있으나 차우미에 대해서는 없었다.성숙하고 듬직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도 사람 나름대로만 하는 것이다.믿음직스러우나 단지 주위 사람에게만 해당한다.하성우는 입을 벌린 채 다물지 못했다. 차우미가 말한 우점은 나상준과 거리가 멀었다.차우미가 말한 것처럼 훌륭하지 못하니 오히려 걱정되었다.무의식적으로 하성우는 나상준을 쳐다보았다. 감았던 눈을 떴으나 차우미를 보지 않은 채 조용히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하성우는 눈을
차우미는 멍해졌다.나상준이 그녀의 손을 잡는 순간, 그녀는 몸이 굳어진 채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상준 씨... 그가... 나에게 묻다니...’차우미는 거기에 앉아 눈앞에 있는 사람을 보았는데 눈동자의 짙은 색깔과 그의 시선은 마치 아이를 원하는지, 몇 명 갖고 싶은지 묻는 것 같았다.그는 그녀의 의견을 구했다.그리고 그녀가 승낙하면 마치 정말 아이를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차우미는 심장박동이 빨라지며 말을 전혀 하지 못했다.‘그이는 잊었어? 우린 이미 이혼했고 그저 하성우 앞에서만 부부인 척하는 거야.’나상준은 충분히 화제를 돌릴 수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차우미는 나상준이가 왜 갑자기 이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그의 손바닥의 힘이 전해왔다. 힘 있고 따스하고 싸여있는 온기가 전해져 차우미를 그의 세계에서 도망칠 수 없게 하였다.손가락이 반사적으로 움직이며 빠져나가려고 했으나 그럴수록 그는 힘을 주어 차우미의 손을 꽉 잡았다.차우미는 눈살을 찡그리고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온통 의문이 가득하였다.‘왜 이러지? 우리가 이혼한 것을 잊었어? 그리고 약혼녀도 있는데 이러면 안 돼.’이 순간 차우미는 하성우를 잊은 채 입술을 꼭 다물고는 손을 빼려고 버둥거렸다.‘이럴 수 없어, 이러면 안 돼.’그러나 그녀가 발버둥 칠수록 나상준의 힘은 더 팽팽해졌다. 나중에는 손바닥에 땀이 났지만 그래도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참다못해 차우미가 입을 열었다.“나상준, 너...”말하자마자 하성우를 보더니 말을 멈추었다.하성우는 마치 한편의 멋진 연극을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하게 그 둘을 지켜보면서 그 후의 멋진 전개를 기대하고 있었다.나상준은 하성우를 아랑곳하지 않고 차우미를 바라보았다. 멍해졌다가 화를 내가다가 또 당황해하는 차우미를 보며 진지하게 물었다.“낳기 싫어?”차우미는 미간을 찌푸리고는 더 말을 하지 않았다.“...”‘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왜 이렇게 물어봐?’‘이런 말을 하지 말
참을 수 없었다. 차우미는 그를 보면서 그렇게 하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시선을 돌리고 의자에 기대더니 다시 눈을 감았다.마치 그녀가 무슨 얘기를 하든지 그를 말릴 수는 없다고 얘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그는 그녀의 손을 잡아야 한다. 그녀는 반항할 수도 없이 그의 말을 들어야 했다.차우미의 표정이 바로 굳었다.그는 하성우가 차에서 내리면 그와 대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차 안에서.더는 기다릴 수 없었다.이러면 더욱 복잡해진다. 그녀는 일을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저 평범한 생활을 하면서 예전처럼 살고 싶었다. 하성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상준과 차우미도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차 안은 아주 조용해졌다. 하지만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확연히 긴장된 분위기고 마음을 놓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하지만 하성우는 달랐다.그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오히려 더욱 자유롭고 편안함을 느꼈다.그는 이 두 사람을 지켜보는 것을 재밌어했다.특히 차우미는 정말 재밌는 사람이었다.식사 장소가 약간 멀어서 차는 반 시간가량 움직였다.차가 멈춰서자 사람들은 차에서 내려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하성우도 차에서 내렸다.유독 차우미만 차에서 내리지 않고 차에 뿌리를 내린 것처럼 그대로 앉아 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이때 나상준이 천천히 눈을 뜨고 몸을 움직였다.그는 차 문을 열고 내렸다. 하지만 그의 손은 여전히 차우미의 손을 잡고 있었으며 같이 내리자는 눈짓을 보냈다.차우미는 움직이지 않고 차에서 내리는 하성우를 보면서 말했다.“우리 얘기 좀 해.”큰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나상준의 귀에는 또렷하게 들려왔다.나상준은 차 문을 연 상태로 차우미의 말을 듣고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발을 내디뎠다.“저녁에.”대충하는 대답이었다. 목소리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중후했고 감정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 말투였다. 마치 차우미의 목소리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처럼 말이다.차우미는 눈썹을 찡그리고 그를 쳐다보았다.그는 차에
발걸음을 멈춘 후 그는 핸드폰을 꺼냈다.진현.핸드폰에 떠 있는 그 입을 보면서 그는 시선을 들어 사람들과 함께 레스토랑으로 들어가며 어느새 그의 시야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는 사람을 주시했다. 그리고 바로 수신 버튼을 눌러 전화를 받고 입을 열었다.“여보세요.”“돌아왔어?”“응.”“저녁에 시간 돼? 양훈이랑 하성우도 불렀는데 너도 와야지.”“어딘데.”“로앤. 아홉 시.”“갈게.”“알겠어. 그럼 로앤에서 기다릴게.”진현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예전과 똑같은 웃음소리였다.나상준은 짧게 대답한 후 핸드폰을 놓고 전화를 끊었다.이때 레스토랑에서는 사람들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핸드폰을 들고 계단을 걸어 올라가 레스토랑에 들어갔다.다들 평소처럼 룸을 찾아 들어갔다. 음식은 이미 예약해 놓았다. 사람들이 룸에 도착하자 음식이 하나, 둘 씩 나오기 시작했다.하성우는 나상준과 차우미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룸으로 가서 자리를 다 안배해 주었다. 그리고 신경 써서 차우미와 나상준을 같이 앉게 했다.차우미가 들어오자 하성우는 바로 차우미를 끌고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나상준이 들어오자 나상준더러 차우미 옆에 앉게 했다.차우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상준도 마찬가지였다.전의 불쾌함은 사라진 듯, 두 사람은 평소로 돌아와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고 있었다.어떤 일들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없다는 걸 차우미는 알고 있었다. 아무리 불만스러워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건 옳지 않은 일이다.하지만 관찰력이 좋은 사람이라면 두 사람의 사이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마치 부부 싸움을 하고 온 것 같았지만 그렇게 큰 문제도 아니었다.어느새 사람들은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나상준은 평소처럼 차우미를 위해 음식을 짚어주었고 차우미도 거절하지 않고 다 먹었다.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그리고 다들 식사가 끝날 무렵, 하 교수가 내일의 일정과 업무 진척을 얘기해 주었다. 오늘 밤은 다들 자유롭게 활동하고 일
차우미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그녀가 차에 앉자 운전기사가 차 문을 닫았고 빠르게 시동을 걸었다.나상준은 자리에 서서 차가 점점 멀어지다가 그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을 쳐다보았다.하성우는 전화로 양훈에게 언제 가겠느냐고 물어보았고 또 양훈에게 그들의 상황을 알린 후 전화를 끊었다.이때 차우미는 이미 떠난 후였다.하성우는 나상준을 보면서 말했다.“여자한테 그렇게 딱딱하게 굴면 안 돼.”차에서 그는 웃고 있었지만 예전과 사뭇 달라진 차우미의 고집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없었더라면 차우미는 당장 나상준과 싸웠을 것이다.흠, 하지만 ‘싸운다’라는 표현은 그리 적절하지 않았다. 두 사람 다 싸울 것 같은 성격은 아니었다.하여튼 상황은 좋지 않았다.그는 많은 여자와 접촉해 보았기에 여자에 대해서 잘 안다. 차우미는 고집불통인 스타일이니 절대로 똑같이 대하면 안된다.“로앤으로 가.”나상준은 시선을 돌리고 택시를 잡아 탔다.“...”‘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네? 됐어. 어디 한번 알아서 잘 해 보라지.”두 사람은 차에 올라탔다. 하성우는 또 다른 일이 떠올라 얘기했다.“진현이 모이자고 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나랑 양훈을 불러서 널 설득해서 주혜민을 그만 괴롭히라고 하려고? 아무래도 진현은 주혜민을 많이 신경 쓰니까.”그렇게 말한 하성우는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안타까운 말투로 얘기했다.“그런 일이 있었는데 여전히 주혜민을 놓지 못하고 있다니. 정말 답 없다.”진현은 꽤 괜찮은 사람이다. 성격도 좋고 착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잘해주는. 하지만 그렇기에 주혜민 같은 사람에게 놀아나서 하마터면 인생을 망칠뻔한 사람이다.그는 진현이 아까웠다. 하지만 진현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기에 하성우는 더는 뭐라고 할 수 없었다.나상준은 핸드폰을 꺼내 들고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동자로 전방을 바라보면서 말했다.“가보면 알겠지.”하성우는 눈썹을 까딱이고 나상준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이내
나상준은 차우미 뒤에서 두 모녀가 포옹하는 것을 지켜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자기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시선을 느끼고는 흠칫하며 눈을 들었다.차동수는 하선주의 뒤를 따라 입구로 왔는데 문이 열리자마자 차우미를 보았고, 이어서 딸의 뒤에 서 있는 나상준을 보았다.그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깜짝 놀랐다.사위였던 나상준은 나씨 가문의 후손으로서 언제나 예의가 바르고 사려가 깊었다.나상준의 성격은 보통 사람과 달랐는데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잘 웃지도 않으며 내성적이어서 사람들이 잘 접근하지 못한다.차우미와 나상준이 결혼한 3년 동안 차동수도 사위 나상준과 몇 마디 해본 적이 없어서 여전히 낯설었다.차동수에게 나상준은 아주 훌륭하고 교양이 있는 젊은이였고 동시에 따뜻함도 인간미도 없는 사위이기도 했다.이런 사윗감은 좋다고 하기도 나쁘다고 하기도 애매했는데 차우미만 좋으면 그들은 의견이 없었다.그런데 두 사람이 이혼한 이유가 제3자 때문이라는 것이 제일 의외였다.차동수의 마음속에 나상준은 절대 교양이 없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일이 발생하고 나니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다만 나상준의 신분과 지위를 곰곰이 생각해 봤을 때 있을 법한 일이기도 했다.비록 부모 눈에 자신들의 자식이 제일이겠지만 차우미가 어느 정도인지는 그들도 똑똑히 알고 있었고 또 사람과 사람은 차이가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나상준과 같은 훌륭한 아이가 나씨 가문과 차씨 가문의 관계가 아니었다면 절대 차우미와의 결혼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다.만약 나상준이 차우미보다 훨씬 훌륭하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았더라면 차동수는 절대 두 사람을 만나게 하지 않았을 건데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가 알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기에 운명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얼마 전에 차우미가 나상준과 이혼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마음이 아팠는데 동시에 다행이라고도 생각했다. 모든 사람이 그렇듯이 맞지 않으면 하루빨리 헤어지는 게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그래서 하선주가 나상준을 못마
차우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아니야. 시간도 늦었고 아빠와 엄마는 이제 주무실 거야. 그러니 상준 씨도 일찍 돌아가서 쉬어.”안평에 오기 전에 나상준은 차은평과 소명진을 보러 온다고 했지, 차동수와 하선주도 만나겠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기에 차우미는 조금 놀랐다.하지만 그녀는 금방 나상준의 뜻을 이해했다.후배로서 예의상 부모님을 찾아뵙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안 가면 오히려 말이 안 되는 것이다.하지만 차우미는 나상준이 자기 집에 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는데 왜 그러는지는 나상준도 잘 알고 있었다.“가자.”차우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나상준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했다.나상준이 말을 마치자마자 차가 그와 차우미 앞에 멈춰 섰다.나상준은 몸을 옆으로 돌리고 뒷좌석의 차 문을 열어 차우미를 타라고 했다.차우미는 약간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다음에 가. 그리고 상준 씨는 일도 바쁠 텐데 얼른 가서 일해. 굳이 오늘 갈 필요 없으니 나중에 시간이 많을 때 가도 돼.”“지금 시간이 돼.”“...”차우미는 할 말을 잃었다.그녀가 싫어하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왜 굳이 가겠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순간 차우미는 나상준의 깊은 눈동자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상준은 차우미의 생각을 아예 모르는 듯 대답이 없는 차우미를 향해 말했다.“계속 이러고 있으면 시간이 더 늦어져.”차우미는 입술을 다시며 열려 있는 차 문을 보더니 잠깐 머뭇거리다가 올라탔다.나씨 가문에서 자란 나상준에게 예의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차동수와 하선주가 나상준을 반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겠다고 하니 차우미는 포기했다.차우미가 차에 타자 나상준은 문을 닫고 다른 쪽으로 가서 차에 탔다.그들은 순식간에 청강 아파트를 떠났다.청강 아파트와 차동수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멀지 않았기에 십여 분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게다가 지금 시간은 교통이 막히지 않은 시간이고 도
차우미는 걸음을 멈추고 소명진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할머니, 저는 괜찮아요. 상준 씨는 좋은 사람이고 아무 문제가 없어요. 저도 그렇고요. 저희는 그냥 맞지 않을 뿐이에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소명진은 밤하늘을 바라보더니 평소와 같은 단순하고 깨끗하고 부드러운 얼굴이었지만 눈에는 걱정이 많았다.“알았어. 맞지 않으면 다시 찾으면 되지. 우리 손녀가 얼마나 훌륭한데, 꼭 잘 어울리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거야.”차우미가 웃으며 소명진을 끌어안더니 소명진의 등을 다독이며 말했다.“할머니, 저 꼭 행복할 거예요. 저만 믿으세요.”소명진도 웃었다.“그럼, 우리 우미는 꼭 행복할 거야.”차우미와 소명진은 밖에서 너무 오래 머무르지 않고 30분 정도 있다고 신선한 과일을 사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집에 들어서자마자 차우미는 거실의 분위기가 나갈 때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차우미는 나상준과 차은평을 번갈아 보았는데 두 사람은 여전히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지만, 표정은 모두 달라졌다.나상준의 표정은 여전히 기쁨과 분노를 알아볼 수 없었지만 차우미가 예민한 탓인지 그녀는 나상준이 조금 전과 너무 달라진 것 같았다.반면에 차은평은 표정에 명백한 변화가 있었는데 전처럼 웃는 모습이 아니고 근엄하고 위엄이 느껴졌다.차우미와 소명진이 나가자마자 그다지 좋지 않은 대화를 한 모양이다.차우미는 과일을 테이블에 놓으며 말했다.“할아버지, 할머니, 시간이 많이 늦었으니 이제 쉬셔야죠. 저희는 이만 갈게요. 나중에 시간이 되면 다시 또 뵈러 올게요.”현재의 시간은 노인들에게 있어서 늦은 시간이 확실하다.차운평은 찻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끄덕였는데 조금 전의 엄숙한 표정은 차우미 집에 들어오는 순간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다시 인자한 얼굴로 변했다.“우리도 알아. 걱정하지 마. 너도 지금 금방 도착했으니 얼른 집에 가서 쉬어. 너의 부모도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잖아. 그런데 너 몇 달 못 본 사이에 야윈 것 같아.”매년 청주에서 새해를 맞이하고 차우
주변의 공기가 갑자기 응축되면서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것 같았다.차은평은 주전자를 들고 나상준을 바라보았는데 조금 전까지 보이던 후배에 대한 사랑은 온데간데없이 엄숙했다.나상준은 허리를 약간 굽혀 주전자를 받으려던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차은평의 진지한 말에 그는 동작을 멈추고 차은평과 눈을 마주치고 말했다.“네, 사실입니다.”대답을 들은 차은평의 표정은 엄숙하고 모르는 사람을 대하듯 낯설게 변했다.그와 동시에 나상준에게 차를 주려고 들었던 주전자를 거두고 테이블에 올려놓았다.나상준은 차은평의 행동에 놀라지 않고 다시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저와 우미가 이혼하게 된 건 제3자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적으로 제 문제입니다. 하지만 결혼 3년 동안 절대 혼인 생활을 배신하는 일은 하지 않았어요. 저희 사이에 오해가 좀 있어요. 제3자는 저도 생각을 못 했던 부분이었습니다. 저의 실수입니다.”차은평은 찻주전자를 내려놓고 자기 찻잔을 들고 마셨다.나상준이 담담한 어조로 하는 말을 들으며 차은평은 잠깐 흠칫하고 눈빛이 흔들리더니 계속 차를 마셨다.그 모습은 나상준의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하고 듣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나상준은 조금은 당황한 표정으로 계속 말했다.“할아버지, 저는 우미와 다시 시작하고 싶습니다. 보상하려는 것도 죄책감도 아니고 나씨 가문과 차씨 가문의 관계 때문도 아닙니다. 오로지 우미와 이번 생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차은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를 마시며 눈을 내리깔고 나상준의 말에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나상준은 말을 마치고 차은평을 바라보면서 무슨 말이라도 하기를 기다렸다.두 사람이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거실은 다시 조용해졌다.차은평은 그렇게 나상준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모르는 듯 고요함을 만끽하며 차를 천천히 마셨다.손에 들고 있던 차를 절반 넘게 마시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차은평은 찻잔을 내려놓고 나상준을 바라보았는데 화는 조금 풀리고 미소가 살짝 보였다.하지만 그 미소는
청강 아파트는 도시 중심이 아닌 외곽에 자리잡고 있으며 입주한 지 2년밖에 안 되는 아파트인데 그 옆에는 강이 있고 그 맞은편에는 작은 산이 있다.때문에 청산녹수가 한눈에 보이고 경치가 너무 좋아 어르신들이 살기에 매우 적합한 곳인데 차우미의 조부모님들도 바로 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그들은 이제 백발노인이 되었지만, 아파트 앞에서 기분 좋게 오가는 차들을 보고 있었다.차가 멈추려 하자 노인들은 누구인지 궁금해서 차 쪽으로 보고 있었고 차 안에 있는 차우미도 밖에 있는 노인들을 바라보았다.차가 멈추자 차우미는 잽싸게 내려서 노인들에게로 다가가서 손을 잡고 말했다.“할머니, 여기까지 나와서 기다리지 않으셔도 되는데...”오늘 밤 차우미가 나상준과 함께 조부모님 뵈러 가는 것을 하선주는 싫어했지만, 그녀는 그래도 하선주와 통화를 마친 후 조부모님께 연락했었다.그리하여 그들이 아파트에 도착하기 전에 차우미는 할머니 소명진의 전화를 받고 도착 예정 시간을 얘기했다.그런데 이렇게 밖에 나와서 그들을 기다릴 줄은 생각도 못 했다.소명진은 차우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괜찮아. 조금 전까지 산책하다가 마침 네가 올 시간이 되는 것 같아서 기다린 거야.”두 사람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소명진은 차에서 내려 차우미 옆에 서 있는 키가 큰 사람을 보았다.나상준이 말했다.“할머니, 안녕하세요.”소명진은 나상준을 향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우미를 보고 말했다.“들어가자. 할아버지는 기다리다가 먼저 집에 들어갔어.”“네.”차우미는 소명진의 팔짱을 끼고 손을 잡고 계속 문질렀다.소명진은 차우미의 일과 생활에 관해 물었고 차우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하나하나 대답했다.나상준은 한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차우미 옆에서 두 사람이 걷는 속도와 비슷한 페이스를 유지하며 걸었다.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그렇게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고 두 분이 사는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띵. 존경하는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 비행기는 15분 후에 안평 공항에 착륙할 예정입니다. 착륙 준비를 위해...”기내에서 항공 승무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차우미는 속눈썹을 움직이다가 멍한 표정으로 눈을 떴는데 기내의 희미한 조명과 윙윙거리는 비행기 소리가 들려왔다.그녀는 제대로 한잠을 잤다.무의식적으로 창밖을 바라보니 안평시의 불빛들이 깜빡였는데 밤하늘의 가득 채운 것이 은하수의 별빛처럼 아름다웠다.차우미는 일어나 앉아서 눈을 비볐다.나상준은 옆에 있는 차우미가 일어나면서 담요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잽싸게 손을 뻗어 담요를 잡아 다시 덮어주었다.차우미는 무언가 느끼고 고개를 숙였는데 관절이 명확한 손이 자기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있었다.“고마워”그리고 직접 담요를 가져다가 덮었다.담요를 정리하고 차우미는 자연스럽게 하품하며 계속해서 창문으로 점점 가까워지는 도시를 바라보았다.목적지에 가까워지면서 비행기는 점차 하강했는데 익숙한 도시, 고향이 가까워지자, 차우미는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었다.드디어 돌아오게 되어 그녀는 행복했다.나상준은 미소를 짓고 있는 차우미의 옆 모습을 바라보았는데 눈에 빛이 반짝거렸고 또 하품으로 인해 살짝 촉촉했다.눈빛에서 나상준은 차우미가 고향으로 돌아와서 너무 행복해하는 것을 느꼈다.어느덧 시간이 흘러 비행기는 유유히 안평 공항에 순조롭게 착륙했다.기내는 어느새 등이 전부 켜졌고 승무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차우미는 안전벨트를 풀고 가방을 챙겨 일어섰는데 도로 옆에 앉은 나상준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녀의 가방을 들고 먼저 나갔다.차우미는 하는 수 없이 나상준의 뒤를 따라 기내에서 나갔다.두 사람은 여전히 VIP 통로로 아무 막힘없이 일사천리로 몇 분 만에 공항을 나왔다.차는 이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기사는 차우미와 나상준이 나오는 것을 보고 즉시 짐을 받아 트렁크에 넣었다.나상준은 뒷좌석의 차 문을 열어 차우미에게 먼저 타라고 했다.차우미는 사양하지 않고 올라가서 안쪽으로 앉
진문숙은 마음이 어찌 조급했는지 가능하다면 올해에 결혼식까지 치르고 싶었다.파티에서 사람들은 서로 잘 아는 사람들과 모여 앉아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며 우아한 음악 선율에 맞춰 각자의 생각과 행복, 그리고 걱정들을 이야기했다....성북동 별장에서.주혜민은 운전해서 별장을 떠난 후 액셀러레이터를 세게 밟고 큰 도로로 빠르게 달렸다.그날 밤, 그녀는 나상준의 냉정한 눈빛이 너무 두려워서 가까이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했고 당황했다.주혜민은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 봤지만, 도저히 나상준과 가까이할 수 없었다.그래서 고민 끝에 문지영을 만나서 상황을 얘기하려고 했다.비록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문지영과 친해지면 그것 또한 자기에게 유리할 거라고 믿었다.그런데 주혜민이 문지영이 집에 있을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방문했는데 결국 집에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가정부의 말에서 문지영이 자신을 만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왜 나를 안 만나려고 하는 거지?’주혜민은 설마 나상준이 다른 여자를 데리고 문지영을 만났고 또 문지영은 그 사람이 마음에 들었는지 궁금했다.그녀는 문지영의 성격을 잘 아는데 절대 아무에게나 마음을 주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그런데 이제 며칠도 되지 않았는데 문지영이 자기를 만나주지 않는다는 건 그 이유 외 다른 건 없다고 생각했다.이제 문지영이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여자가 자신을 이겼다는 생각에 화가 났다.‘절대 안 돼!’주혜민은 지금 상황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녀는 상대가 자기보다 조건이 좋든 안 좋든 절대 나상준을 포기할 수 없었다.3년을 기다려서 겨우 기회가 왔는데 다시는 나상준을 다른 여자에게 뺏기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핸들을 꽉 잡고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았다.그러자 기다란 브레이크 소리가 깊은 밤에 울려 퍼졌다.차를 길옆에 주차하고 주혜민은 분노로 가득 찬 눈으로 앞을 바라보았는데 눈빛에는 분노가 활활 타올랐다.그녀는 더 이상 시간
문지영도 멀지 않은 곳에서 들리는 편안하고 기분 좋은 웃음소리를 들으며 시선을 돌렸는데 한 번에 몇몇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아봤다.거의 모두 만나봤던 사람들인데 그중에 온씨 가문의 진문숙도 있었다.문지영은 친구 사귀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인데 특별히 필요가 있을 때만이 그 필요한 사람과 가까워지려 한다. 예를 들어 지금의 서혜란처럼 말이다.예를 들어 온씨 가문의 진문숙과는 거의 왕래가 없었는데 평소에 가끔 만나면 간단하게 웃으면서 인사만 하는 사이였다.서혜란의 말에 문지영은 궁금해서 물었다.“결혼식이라니? 어느 가문에 결혼식이 있을 것 같아?”문지영 나이대의 사람들은 자식들의 나이가 모두 나상준과 비슷했는데 거의 모두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 어느 가문의 자식이 약혼하고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었다.서혜란은 문지영을 보더니 턱으로 진문숙의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저기 가운데 있는 온씨 가문의 며느리 진문숙 씨 알지?”문지영은 진문숙 방향으로 보았는데 거기에는 3~4명이 있었는데 진문숙에 가운데서 제일 기쁘게 웃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무슨 경사가 있는 듯싶었다.문지영이 잠깐 생각하더니 무언가 떠오른 듯 말했다.“온씨 가문의 아들은 해외에서 무슨 연구를 하는데 괜찮다고 들었어.”예로부터 사람들은 훌륭한 아이와 나쁜 아이들에 대한 인상이 깊게 남는다.“맞아. 온씨 가문의 아들은 모두가 좋다고 해. 최근에 들었는데 그 아들이 좋아하는 아이가 있다고 해. 성격이 조용하고 가문도 좋으며 진문숙 씨도 보고 엄청 마음에 들었나 봐.”문지영이 그제야 이해했다.그들과 같은 가문에서는 며느리를 볼 때 아들만 좋아한다고 되는 거 아니고 가문 어른들의 동의도 받아야 하는데 만약 어른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절대 불가능했다.그런데 서혜란이 진문숙도 만나보고 만족한다고 하니 아마도 성사될 거라고 생각했다.“그럼, 잘된 일이군.”말은 그렇게 했지만, 문지영은 마음속으로 조금 다급했다.주변의 많은 아이들은 모두 결혼
어떤 일은 당사자가 눈치채기 전에 잘못 말하면 미움을 사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그 뒤에 주씨 가문에 일이 발생하고부터 문지영은 서혜란과 가까이 지냈는데 그녀를 통해서 더 많은 아기씨를 요해하고 직접 며느리를 고르고 싶었다.그때 서혜란은 마음속으로 기뻐했고 문지영이 장님은 아니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혜란은 주혜민의 나쁜 말은 하지 않고 자기가 알고 있는 아가씨들에 대해서만 문지영에게 알려주고 문지영이 직접 만나보고, 조사하고 고려하게 했다.비록 주혜민은 좋아하지 않지만, 서혜란은 나상준을 높이 평가했다.서혜란이 봤을 때 나상준은 능력이 있고 대담하고 용감하며 신중하게 일 처리 하는 모습에 호감을 느꼈다.하지만 결혼은 서로 맞아야 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비록 자기 가문에 나이와 조건이 비슷한 소녀를 나상준에게 소개해 주려고 골라봤지만, 도저히 찾을 수 없어서 포기했다.사람은 자신의 상황을 잘 알아야 한다.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려면 서로 맞아야 한다.서혜란은 모든 일을 한 번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본다.때문에 문지영이 며느리를 찾는 문제에서 그녀는 특별히 신경을 써서 모두 나상준과 잘 어울릴만한 아가씨들만 문지영에게 말했다.이제 남은 건 나상준의 마음에 달렸는데 그는 아무나 쉽게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다.문지영이 주혜민을 얘기하는 것을 듣더니 서혜란은 곧바로 문지영이 이제 주혜민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주혜민은 정말로 며느리로 적합하지 않았기에 서혜란도 그냥 준다고 해도 거부할 것이다.“그 아이가 상준이를 많이 좋아하나 봐요.”서혜란은 여전히 주혜민에 대한 나쁜 말은 하지 않고 이해한다는 듯이 말했다.주혜민과 나상준에 대한 소문은 서혜란도 들었지만 믿지 않았다.나씨 가문의 나상준이 만약 정말로 주혜민을 좋아한다면 절대 다른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을 거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게다가 주혜민이 어떤 사람인지 나상준이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때문에 나상준이 주혜민을 선택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