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우는 주춤거리는 것 없이 바로 문을 열었고 마침내 차우미의 인영이 드러났다.다들 차우미를 보고 얼굴에 웃음이 지어졌지만 하 교수가 유독 그러했다."우미 맞네."차우미는 노크를 두 번 하고는 꼭 누군가가 문을 열어줄 거란 걸 알기에 더 노크하지 않고 얌전히 기다렸는데 문이 열리는 순간 제 시야에 들어오는 게 하성우라 적잖이 놀랐었다.차우미는 하성우가 오후에는 나상준과 함께 경찰서로 갔기에 회의에는 참석하지 않을 줄 알았다.둘이 같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이런 생각도 하지 않았겠지만 둘이 같이 나타났고 또 같이 사라지니 꼭 무슨 바쁜 일이 있다고 생각해 당연히 회의에 하성우는 없을 거라 생각했었다.그런데 이렇게 떡하니 서 있다니.그러자 차우미는 무언가 생각난 듯 회의실 안을 훑었고 하 교수님 옆쪽에 앉아있는 나상준을 발견했다.오후에 경찰서에서 봤던 셔츠에 단추는 몇 개 풀어져 있었고 소매를 올려 훤히 드러난 팔뚝에는 딱 봐도 비싸 보이는 명품 시계가 채워져 있었다.누가 왔는지도 모르는지 여전히 시선을 파일에 고정하고 있는 모습은 차갑고 도도해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다.나상준까지 있는 것이 의외였지만 또 생각해보면 이상할 것도 없었다. 나상준은 늘 박물관을 재건축 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기에 시간이 있을 때 그 관계자들과 함께 하는 건 당연했다.차우미는 나상준에게 향했던 시선을 거두고 하 교수를 향해 웃어 보였다.하 교수가 차우미를 바라보는 얼굴에는 자애로움이 가득했다."우미야, 얼른 들어와. 다들 얘기 중이었어."차우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나상준을 뚫어져라 보고 있던 하성우는 문을 열고 차우미를 마주했을 때 바로 나상준을 보았지만 여전히 똑같은 모습을 유지하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정말 포커페이스 유지하는 것 하나는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그래요, 형수님 얼른 들어와요. 다들 기다리고 있었어요."하성우는 빨리 말하며 차우미를 들어오라 하고 회의실 문을 다시 닫았다.회의실에는 늘 차우미를 위
선배를 배웅한 후 일 생각을 하느라 그녀는 곧장 회의실로 향했는데 노트를 가지고 가는 걸 깜박했다. 회의실 앞에 도착해서야 다른 사람들이 노트 얘기를 하는 걸 듣고서야 깜박했다는 것이 생각났다.하지만 지금은 돌아서서 가지러 갈 수 없었다. 어차피 두 시간이니 머릿속으로 열심히 기억했다가 돌아가서 정리해도 된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차우미는 곧 모든 신경을 사람들과의 토론에 쏟았다.나상준은 자리에 앉아 손에 든 서류를 보고 있는데 차우미가 옆에 다가가 앉아도 아무런 기색이 없었다.몇백억에 달하는 계약을 보느라 다른 사람에게 신경 쓰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하성우는 자리에 앉은 뒤 맞은편 두 사람을 쳐다보고는 사람들이 토론하는 걸 들으며 그 두 사람을 힐끔거렸다.그러다가 곧 웃음이 터져버렸다..선남선녀 같은 두 사람이 함께 앉으니 눈 호강하는 것 같았다.하지만... 별로 안 친한 듯싶었다...이 두 사람은 차가운 분위기를 띠고 있었는데 한 사람은 다가가기 힘들 것 같았고, 다른 한 사람은 열심히 토론을 들으며 옆 사람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잡념 하나 없는 듯한 모습이 마치 자신의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이 3년 동안 살아온 전남편이 아닌 낯선 사람 같았다.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각자 할 일을 하고 있었는데 서로 관련이 없고, 연루된 것이 없는듯했다. 결혼하고 이혼한 사이라는 걸 몰랐다면 누가 봐도 남남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그리고 그는 두 사람의 이런 모습, 특히 나상준이 그 서류를 한 시간 가까이 보고 있는걸 보고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하지만 지금은 웃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하성우는 고개를 숙인 채 서류를 들었다. 아무리 눌러도 올라가는 입꼬리 때문에 자신을 진정시키려고 애썼다.절대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신경 쓰는 사람 때문에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면 안 된다.나상준은 눈을 살짝 치켜뜨고 하성우를 바라보았다.하성우는 순간 자신의 위로 떨어지는 시선을 느끼고 웃음을 멈췄다."쿨럭!"가볍게 두 번
“형수, 혹시 자료 까먹은 거 아니야?”하성우는 차우미 앞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보고 물었다.담소를 나누던 사람들도 그제야 차우미 앞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눈치챘다.차우미가 멈칫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네.”하성우는 눈을 깜빡이더니 말했다.“그러면 상준이 거 써. 상준이는 내 거 쓰면 되고 나는 다시 프린트해서 오면 되니까.”하성우는 재빨리 자신의 자료를 나상준에게 건넸다.나상준은 그의 맞은편에 앉아있었기 때문에 팔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 그렇게 하성우의 자료는 나상준에게 넘겨지고, 나상준은 아무 말도 없이 자신의 자료를 차우미에게 건넸다.차우미가 멈칫하더니 말했다.“감사해요.”차우미는 아주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네며 자료를 받았다.하지만 나상준이 손에서 자료를 놓지 않으려고 하자 차우미는 멈칫하면서 고개를 쳐들어 옆에 앉아있는 그를 쳐다보았다.어느샌가 진지해진 나상준의 표정은 손에 땀을 쥐게 했다.그와 눈이 마주친 차우미는 그제야 방금 아무 생각 없이 말한 “감사해요”라는 말이 부부 사이로 보이지 않을 만큼 얼마나 형식적이었던지 느끼게 되었다.이 한마디는 회의실에 앉아있는 사람들한테 두 사람의 사이가 안 좋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과도 같았다.당황한 차우미는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내가 말실수했네.’비록 나상준과 어느정도 거리를 두고 싶었지만 일부러 이런 말로 다른 사람들의 오해를 받고 싶지는 않았다.그저 깜빡하고 형식적인 인사를 건넸을 뿐이다.하지만 이미 입 밖에 낸 말은 아무리 되돌려 보려고 해도 이미 수습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차우미는 얼굴이 발그레해진 상태로 긴장한 마음에 입술을 깨물면서 나상준을 쳐다볼 뿐이다.모두 다 지켜보는 와중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나상준은 그녀가 미안함과 자책으로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미 입밖에 낸 말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몰라 긴장해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결국 이렇게 대답했다.“별말씀을.”그러면서 시선을 거두고 하성우가
그런 즐거움을 공유할 만한 사람은 양훈뿐이었다.하성우는 바로 핸드폰을 꺼내 양훈에게 전화했다.“여보세요.”전화 연결음이 울리고, 전화기 너머에서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차디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하성우는 이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양훈의 목소리가 반가워 웃으면서 말했다.“있잖아, 아까...”그렇게 방금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양훈에게 전하고는 다시 또 벽을 붙잡고 박장대소 짓기 시작했다.“두 사람 정말 웃기지 않아? 아이고, 배야.”“...”전화기 너머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하성우는 웃다 말고 통화가 끊겼는지 핸드폰 화면을 확인했다.‘왜 말을 안 하지?’“여보세요?”하성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핸드폰을 귓가에 댔다.“양훈!”“응.”하성우는 순간 불쾌했다.“왜 말을 안 해? 넌 안 웃겨? 상준이가 차우미한테 완전히 잡혀 살잖아. 쟤가 언제 저러는 거 봤어?”그리고선 무언가 생각났는지 배시시하면서 말했다.“그런데 차우미를 다시 자기 여자로 만들기 어려울 것 같아. 이래서 언제 자기 여자로 만들겠어.”말로는 안타까워하면서 속으로는 오히려 깨 고소했다.하성우는 나상준이 잡혀 사는 모습이 좋았다.“쉽지 않지.”양훈이 드디어 대답했다.하성우가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너도 쉽지 않다고 생각해?”양훈마저도 쉽지 않다고 했으니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하성우가 곧바로 질문했다.“빨리 말해봐. 왜 쉽지 않은데?”그는 늘 사리에 밝고 똑똑한 양훈의 생각을 듣고 싶었다.“큰 노력을 해야 할 거야.”하성우가 여전히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노력? 그건 당연한 거 아니야? 신혼생활 3년 동안 차우미를 보는 체도 하지 않고 꽃 같은 청춘을 낭비해 버렸잖아. 인과응보인 거지! 만약 내 딸이 이런 대접을 받았다면 아주 혼쭐을 내줬을 거야!”“...”양훈은 또다시 말이 없었다.하성우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불쾌해하면서 물었다.“바빠? 빨리 말해봐. 나 또 회의 들어가 봐야 한다고. 시간 없어.”
하성우가 나가자 회의실 분위기는 회복되었다. 나상준은 비서더러 차우미에게 펜을 가져다주게 하였다. 차우미는 비서한테서 펜을 받고는 메모를 하기 시작했으며 모두 계속 토론했다.하성우가 서류를 복사하고 돌아왔어도 모두 잠시 머뭇거렸을 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고 계속 토론하였다.차우미는 계속 필기하였다. 아까 기록하지 못한 부분을 보충했으며 또 토론 중 요점도 메모하였다.차우미는 메모하는 데 열중하다 보니 하성우가 들어온 줄도 몰랐다.하성우는 오른손에 복사한 새 문서를 들고는 원본을 하 교수님께 돌려준 후 자리에 앉아 맞은편의 나상준과 차우미를 바라보았다.나상준은 의자에 앉아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예전처럼 긴장을 풀고는 사람들의 토론을 듣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항상 차우미의 손에 떨어졌다. 가늘고 예쁜 손가락이 중성 펜을 들고 서류에 청초한 글씨를 적었다.일하는 차우미를 보면 나상준은 주위의 숨결이 가라앉은 것 같았다.평온하고 조용한 게 둘만의 공간처럼 느껴졌다.이 장면을 보면서 하성우는 눈에 웃음꽃이 피어났고 그저 괜찮다고 생각했다.사실 그는 두 사람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나상준은 성격이 진중하고 타산이 있으며 조심스럽고 조용한 것을 좋아하기에 가까이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런 사람은 그와 같은 사람을 찾으면 피곤하여 힘들 수 있다.하지만 차우미의 경우는 아주 합당하다. 성격이 조용하고 온순하며 일을 처리할 때 온화하고 반응이 굼뜨나 생각이 단순하고 착하다. 따지는 편이 아니며 한눈에 보기에도 단순했다.온실 속의 꽃처럼 바깥의 험악함을 본 적이 없었으나 스스로 자신을 잘 보호하였다. 가정교육도 훌륭해 깨끗하고 단순하며 세속에 물들지 않았다.이런 사람은 나상준과 천생배필이다.복잡한 사람은 원래 간단한 사람과 함께 있어야만 편안해진다.사업을 하다 보면 매일 서로 속고 속이며 조금만 조심하지 않으면 큰 손실을 보게 되므로 정신이 극도로 긴장되어있다.이럴 때 집에 돌아온 후에도 계산하는 여자를 마주해야 하면 고생을 사서 하게 된다.그
예를 들면, 사랑.사랑은 돈으로 살 수 없고 신분 지위가 있어도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사랑은 하늘에서 맺어주는 연분이기에 귀중하고 희귀하다.이제 나상준은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고 한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도 알게 되어, 하성우는 진심으로 친구를 위해 기뻐했다.사랑을 위해 용기를 내는 것은 의미 깊은 일이다. 하여 친구의 행복한 생활을 위하여 무언가를 해줘야겠다고 다짐했다.회의는 5시에 끝났다. 얼마 되지 않아 하성우는 저녁을 같이 먹자고 요청했다.차우미는 자리에 앉자 동료들이 분분히 일어나는 것을 보고서야 펜을 놓고 서류를 덮었다.나성준은 그녀를 기다리지 않은 채 벌써 일어나 그들과 함께 밖으로 갔다.차우미는 그와 할 얘기가 생각나 서둘러 뒤를 따라 나갔다.하지만 나성준은 앞장서 걸었고 그 뒤로는 하 교수님과 진정국이 함께 하였기에 차우미는 입을 오므리며 마음속으로 하고 싶은 말을 억누르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그를 따라 다른 사람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으며 호텔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차는 이미 호텔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하나둘씩 차에 타기 시작했다. 차우미도 나상준을 따라 차에 올랐다. 그녀는 단독으로 할 얘기가 있었다.이때 나상준은 하상우의 스포츠카 대신 그의 차에 탔다.하성우는 나상준과 차우미가 한 차에 오르자 자신의 차를 몰지 않고 서둘러 따라와 조수석에 앉았다.재빨리 차 문이 닫히고 차가 줄지어 떠났다.차우미가 말을 하려고 할 때 앞쪽 조수석의 문이 열리며 하성우가 들어왔다.그녀가 하려고 하던 말이 이렇게 입술에 박혀 나오지 못했다.“형수님, 점심시간에 함께 있던 남자가 누구예요?”하성우는 안전벨트를 착용한 후 고개를 돌려 차우미를 바라보며 마치 그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는 듯이 웃으면서 물었다.해야 할 말을 중단한 차우미는 입술이 벌려져 있었다. 한동안 무슨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는데 그의 말을 듣고 차우미는 무의식중에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을 쳐다보았다.나상준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는 눈을
그는 진지하게 묻는 것 같았으나 함부로 묻지 않았다.차우미는 잠시 머뭇거리다 하성우의 답안을 몹시 궁금해하는 모습을 보며 말했다.“사람마다 우점과 결함을 가지고 있어 서로 비교할 수 없어.”“어...”“그건... 그래요...”하성우는 또 나상준을 바라보더니 빙그레 웃으며 또 물었다.“상준이 형은 어떤 장점이 있어요?”하성우는 농담하기를 좋아한다. 지금 그의 이런 모습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비록 우스개로 물었으나 차우미는 곰곰이 생각하고 나서야 대답했다.“가정을 돌보고 효심이 있고 책임감이 있으며 성숙하고 듬직해. 사람을 대하고 일을 처리하면서 진지하고 믿음다워.”나상준은 차에 오르자마자 눈을 감았다. 하성우와 차우미가 대화를 해도 눈을 뜨지 않았고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무슨 말을 해도 그는 눈을 뜨지 않을 듯했다.그러나 차우미가 하성우의 두 번째 물음에 대답할 때 나상준은 눈을 떴다.그녀는 자신의 장점을 곰곰이 생각해 본 후 부드러운 목소리로 진지하게 얘기했다. 마치 곰곰이 사고하고 회억한 후에 말한 것 같았다.거짓도 과장도 없었다.그녀의 마음속에서 그는 그녀가 말한 것처럼 좋았다.마음속에서 갑자기 무언가가 생기더니 사르르 싹이 트고 미친 듯이 자라나며 뻗어갔다.하성우는 차우미가 나상준의 우점을 한꺼번에 이렇게 많이 말하는 것을 듣고 눈이 휘둥그레졌다.가정을 돌본다?그럴 리가!가정을 돌보는 사람이 늘 밖에서 자주 돌아가지도 않았을까?책임감은 분리해서 봐야 한다. 사업에 대한 책임감은 있으나 차우미에 대해서는 없었다.성숙하고 듬직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도 사람 나름대로만 하는 것이다.믿음직스러우나 단지 주위 사람에게만 해당한다.하성우는 입을 벌린 채 다물지 못했다. 차우미가 말한 우점은 나상준과 거리가 멀었다.차우미가 말한 것처럼 훌륭하지 못하니 오히려 걱정되었다.무의식적으로 하성우는 나상준을 쳐다보았다. 감았던 눈을 떴으나 차우미를 보지 않은 채 조용히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하성우는 눈을
차우미는 멍해졌다.나상준이 그녀의 손을 잡는 순간, 그녀는 몸이 굳어진 채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상준 씨... 그가... 나에게 묻다니...’차우미는 거기에 앉아 눈앞에 있는 사람을 보았는데 눈동자의 짙은 색깔과 그의 시선은 마치 아이를 원하는지, 몇 명 갖고 싶은지 묻는 것 같았다.그는 그녀의 의견을 구했다.그리고 그녀가 승낙하면 마치 정말 아이를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차우미는 심장박동이 빨라지며 말을 전혀 하지 못했다.‘그이는 잊었어? 우린 이미 이혼했고 그저 하성우 앞에서만 부부인 척하는 거야.’나상준은 충분히 화제를 돌릴 수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차우미는 나상준이가 왜 갑자기 이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그의 손바닥의 힘이 전해왔다. 힘 있고 따스하고 싸여있는 온기가 전해져 차우미를 그의 세계에서 도망칠 수 없게 하였다.손가락이 반사적으로 움직이며 빠져나가려고 했으나 그럴수록 그는 힘을 주어 차우미의 손을 꽉 잡았다.차우미는 눈살을 찡그리고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온통 의문이 가득하였다.‘왜 이러지? 우리가 이혼한 것을 잊었어? 그리고 약혼녀도 있는데 이러면 안 돼.’이 순간 차우미는 하성우를 잊은 채 입술을 꼭 다물고는 손을 빼려고 버둥거렸다.‘이럴 수 없어, 이러면 안 돼.’그러나 그녀가 발버둥 칠수록 나상준의 힘은 더 팽팽해졌다. 나중에는 손바닥에 땀이 났지만 그래도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참다못해 차우미가 입을 열었다.“나상준, 너...”말하자마자 하성우를 보더니 말을 멈추었다.하성우는 마치 한편의 멋진 연극을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하게 그 둘을 지켜보면서 그 후의 멋진 전개를 기대하고 있었다.나상준은 하성우를 아랑곳하지 않고 차우미를 바라보았다. 멍해졌다가 화를 내가다가 또 당황해하는 차우미를 보며 진지하게 물었다.“낳기 싫어?”차우미는 미간을 찌푸리고는 더 말을 하지 않았다.“...”‘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왜 이렇게 물어봐?’‘이런 말을 하지 말
청강 아파트는 도시 중심이 아닌 외곽에 자리잡고 있으며 입주한 지 2년밖에 안 되는 아파트인데 그 옆에는 강이 있고 그 맞은편에는 작은 산이 있다.때문에 청산녹수가 한눈에 보이고 경치가 너무 좋아 어르신들이 살기에 매우 적합한 곳인데 차우미의 조부모님들도 바로 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그들은 이제 백발노인이 되었지만, 아파트 앞에서 기분 좋게 오가는 차들을 보고 있었다.차가 멈추려 하자 노인들은 누구인지 궁금해서 차 쪽으로 보고 있었고 차 안에 있는 차우미도 밖에 있는 노인들을 바라보았다.차가 멈추자 차우미는 잽싸게 내려서 노인들에게로 다가가서 손을 잡고 말했다.“할머니, 여기까지 나와서 기다리지 않으셔도 되는데...”오늘 밤 차우미가 나상준과 함께 조부모님 뵈러 가는 것을 하선주는 싫어했지만, 그녀는 그래도 하선주와 통화를 마친 후 조부모님께 연락했었다.그리하여 그들이 아파트에 도착하기 전에 차우미는 할머니 소명진의 전화를 받고 도착 예정 시간을 얘기했다.그런데 이렇게 밖에 나와서 그들을 기다릴 줄은 생각도 못 했다.소명진은 차우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괜찮아. 조금 전까지 산책하다가 마침 네가 올 시간이 되는 것 같아서 기다린 거야.”두 사람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소명진은 차에서 내려 차우미 옆에 서 있는 키가 큰 사람을 보았다.나상준이 말했다.“할머니, 안녕하세요.”소명진은 나상준을 향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우미를 보고 말했다.“들어가자. 할아버지는 기다리다가 먼저 집에 들어갔어.”“네.”차우미는 소명진의 팔짱을 끼고 손을 잡고 계속 문질렀다.소명진은 차우미의 일과 생활에 관해 물었고 차우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하나하나 대답했다.나상준은 한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차우미 옆에서 두 사람이 걷는 속도와 비슷한 페이스를 유지하며 걸었다.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그렇게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고 두 분이 사는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띵. 존경하는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 비행기는 15분 후에 안평 공항에 착륙할 예정입니다. 착륙 준비를 위해...”기내에서 항공 승무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차우미는 속눈썹을 움직이다가 멍한 표정으로 눈을 떴는데 기내의 희미한 조명과 윙윙거리는 비행기 소리가 들려왔다.그녀는 제대로 한잠을 잤다.무의식적으로 창밖을 바라보니 안평시의 불빛들이 깜빡였는데 밤하늘의 가득 채운 것이 은하수의 별빛처럼 아름다웠다.차우미는 일어나 앉아서 눈을 비볐다.나상준은 옆에 있는 차우미가 일어나면서 담요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잽싸게 손을 뻗어 담요를 잡아 다시 덮어주었다.차우미는 무언가 느끼고 고개를 숙였는데 관절이 명확한 손이 자기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있었다.“고마워”그리고 직접 담요를 가져다가 덮었다.담요를 정리하고 차우미는 자연스럽게 하품하며 계속해서 창문으로 점점 가까워지는 도시를 바라보았다.목적지에 가까워지면서 비행기는 점차 하강했는데 익숙한 도시, 고향이 가까워지자, 차우미는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었다.드디어 돌아오게 되어 그녀는 행복했다.나상준은 미소를 짓고 있는 차우미의 옆 모습을 바라보았는데 눈에 빛이 반짝거렸고 또 하품으로 인해 살짝 촉촉했다.눈빛에서 나상준은 차우미가 고향으로 돌아와서 너무 행복해하는 것을 느꼈다.어느덧 시간이 흘러 비행기는 유유히 안평 공항에 순조롭게 착륙했다.기내는 어느새 등이 전부 켜졌고 승무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차우미는 안전벨트를 풀고 가방을 챙겨 일어섰는데 도로 옆에 앉은 나상준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녀의 가방을 들고 먼저 나갔다.차우미는 하는 수 없이 나상준의 뒤를 따라 기내에서 나갔다.두 사람은 여전히 VIP 통로로 아무 막힘없이 일사천리로 몇 분 만에 공항을 나왔다.차는 이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기사는 차우미와 나상준이 나오는 것을 보고 즉시 짐을 받아 트렁크에 넣었다.나상준은 뒷좌석의 차 문을 열어 차우미에게 먼저 타라고 했다.차우미는 사양하지 않고 올라가서 안쪽으로 앉
진문숙은 마음이 어찌 조급했는지 가능하다면 올해에 결혼식까지 치르고 싶었다.파티에서 사람들은 서로 잘 아는 사람들과 모여 앉아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며 우아한 음악 선율에 맞춰 각자의 생각과 행복, 그리고 걱정들을 이야기했다....성북동 별장에서.주혜민은 운전해서 별장을 떠난 후 액셀러레이터를 세게 밟고 큰 도로로 빠르게 달렸다.그날 밤, 그녀는 나상준의 냉정한 눈빛이 너무 두려워서 가까이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했고 당황했다.주혜민은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 봤지만, 도저히 나상준과 가까이할 수 없었다.그래서 고민 끝에 문지영을 만나서 상황을 얘기하려고 했다.비록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문지영과 친해지면 그것 또한 자기에게 유리할 거라고 믿었다.그런데 주혜민이 문지영이 집에 있을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방문했는데 결국 집에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가정부의 말에서 문지영이 자신을 만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왜 나를 안 만나려고 하는 거지?’주혜민은 설마 나상준이 다른 여자를 데리고 문지영을 만났고 또 문지영은 그 사람이 마음에 들었는지 궁금했다.그녀는 문지영의 성격을 잘 아는데 절대 아무에게나 마음을 주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그런데 이제 며칠도 되지 않았는데 문지영이 자기를 만나주지 않는다는 건 그 이유 외 다른 건 없다고 생각했다.이제 문지영이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여자가 자신을 이겼다는 생각에 화가 났다.‘절대 안 돼!’주혜민은 지금 상황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녀는 상대가 자기보다 조건이 좋든 안 좋든 절대 나상준을 포기할 수 없었다.3년을 기다려서 겨우 기회가 왔는데 다시는 나상준을 다른 여자에게 뺏기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핸들을 꽉 잡고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았다.그러자 기다란 브레이크 소리가 깊은 밤에 울려 퍼졌다.차를 길옆에 주차하고 주혜민은 분노로 가득 찬 눈으로 앞을 바라보았는데 눈빛에는 분노가 활활 타올랐다.그녀는 더 이상 시간
문지영도 멀지 않은 곳에서 들리는 편안하고 기분 좋은 웃음소리를 들으며 시선을 돌렸는데 한 번에 몇몇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아봤다.거의 모두 만나봤던 사람들인데 그중에 온씨 가문의 진문숙도 있었다.문지영은 친구 사귀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인데 특별히 필요가 있을 때만이 그 필요한 사람과 가까워지려 한다. 예를 들어 지금의 서혜란처럼 말이다.예를 들어 온씨 가문의 진문숙과는 거의 왕래가 없었는데 평소에 가끔 만나면 간단하게 웃으면서 인사만 하는 사이였다.서혜란의 말에 문지영은 궁금해서 물었다.“결혼식이라니? 어느 가문에 결혼식이 있을 것 같아?”문지영 나이대의 사람들은 자식들의 나이가 모두 나상준과 비슷했는데 거의 모두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 어느 가문의 자식이 약혼하고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었다.서혜란은 문지영을 보더니 턱으로 진문숙의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저기 가운데 있는 온씨 가문의 며느리 진문숙 씨 알지?”문지영은 진문숙 방향으로 보았는데 거기에는 3~4명이 있었는데 진문숙에 가운데서 제일 기쁘게 웃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무슨 경사가 있는 듯싶었다.문지영이 잠깐 생각하더니 무언가 떠오른 듯 말했다.“온씨 가문의 아들은 해외에서 무슨 연구를 하는데 괜찮다고 들었어.”예로부터 사람들은 훌륭한 아이와 나쁜 아이들에 대한 인상이 깊게 남는다.“맞아. 온씨 가문의 아들은 모두가 좋다고 해. 최근에 들었는데 그 아들이 좋아하는 아이가 있다고 해. 성격이 조용하고 가문도 좋으며 진문숙 씨도 보고 엄청 마음에 들었나 봐.”문지영이 그제야 이해했다.그들과 같은 가문에서는 며느리를 볼 때 아들만 좋아한다고 되는 거 아니고 가문 어른들의 동의도 받아야 하는데 만약 어른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절대 불가능했다.그런데 서혜란이 진문숙도 만나보고 만족한다고 하니 아마도 성사될 거라고 생각했다.“그럼, 잘된 일이군.”말은 그렇게 했지만, 문지영은 마음속으로 조금 다급했다.주변의 많은 아이들은 모두 결혼
어떤 일은 당사자가 눈치채기 전에 잘못 말하면 미움을 사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그 뒤에 주씨 가문에 일이 발생하고부터 문지영은 서혜란과 가까이 지냈는데 그녀를 통해서 더 많은 아기씨를 요해하고 직접 며느리를 고르고 싶었다.그때 서혜란은 마음속으로 기뻐했고 문지영이 장님은 아니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혜란은 주혜민의 나쁜 말은 하지 않고 자기가 알고 있는 아가씨들에 대해서만 문지영에게 알려주고 문지영이 직접 만나보고, 조사하고 고려하게 했다.비록 주혜민은 좋아하지 않지만, 서혜란은 나상준을 높이 평가했다.서혜란이 봤을 때 나상준은 능력이 있고 대담하고 용감하며 신중하게 일 처리 하는 모습에 호감을 느꼈다.하지만 결혼은 서로 맞아야 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비록 자기 가문에 나이와 조건이 비슷한 소녀를 나상준에게 소개해 주려고 골라봤지만, 도저히 찾을 수 없어서 포기했다.사람은 자신의 상황을 잘 알아야 한다.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려면 서로 맞아야 한다.서혜란은 모든 일을 한 번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본다.때문에 문지영이 며느리를 찾는 문제에서 그녀는 특별히 신경을 써서 모두 나상준과 잘 어울릴만한 아가씨들만 문지영에게 말했다.이제 남은 건 나상준의 마음에 달렸는데 그는 아무나 쉽게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다.문지영이 주혜민을 얘기하는 것을 듣더니 서혜란은 곧바로 문지영이 이제 주혜민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주혜민은 정말로 며느리로 적합하지 않았기에 서혜란도 그냥 준다고 해도 거부할 것이다.“그 아이가 상준이를 많이 좋아하나 봐요.”서혜란은 여전히 주혜민에 대한 나쁜 말은 하지 않고 이해한다는 듯이 말했다.주혜민과 나상준에 대한 소문은 서혜란도 들었지만 믿지 않았다.나씨 가문의 나상준이 만약 정말로 주혜민을 좋아한다면 절대 다른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을 거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게다가 주혜민이 어떤 사람인지 나상준이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때문에 나상준이 주혜민을 선택하지
“알았어요.”가정부는 거실의 유선 전화를 끊고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며 기다리고 있던 주혜민에게 다가가서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주 사장님, 사모님은 다른 일이 있어서 오늘 밤에 돌아올 수 없다고 해요.”주혜민은 눈 밑이 살짝 어두워졌지만, 여전히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알았어요. 많이 바쁘시군요. 오늘은 제가 사전에 약속하지 않고 왔으니 방법이 없죠. 다음에는 사전에 약속을 잡고 다시 올게요.”말하면서 주혜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럼, 저는 이만 갈게요.”가정부가 고개를 끄덕였다.주혜민은 더 이상 머무르지 않고 가방을 들고 가정부에게 미소를 지으며 거실을 나와 차에 타고 시동을 걸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차는 별정을 빠져나가 가정부의 시야에서 사라졌다.가정부는 계단에 서 있다가 차가 보이지 않자 돌아서서 안으로 들어갔다.그녀는 다시 거실에 있는 유선 전화기로 가서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문지영의 담담한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들리자, 가정부가 말했다.“사모님, 주 사장은 갔어요.”“알았어. 다음에 또 오면 나한테 전화할 필요 없이 그냥 내가 없다고 해.”“네, 알겠습니다.”문지영은 전화를 끊었다.옆에 있던 서혜란은 문지영이 휴대폰을 내려놓는 것을 보고 호기심에 물었다.“왜? 누구 때문에 기분이 안 좋은 거야?”서혜란은 최근에 늘 문지영과 함께 시간을 보냈는데 가끔은 그럼 전시회로 가고 또 가끔은 연극, 뮤지컬을 보고 또 SPA 하러도 다녔다.그야말로 엄청나게 가깝게 지냈다.오늘 문지영과 서혜란은 어느 브랜드사의 요청을 받고 자선 만찬에 참석했는데 오늘 밤 경매의 수익금은 모두 어려운 지역의 아이들 교육을 위해 기부될 거라고 한다.기부에 참여하기 위해 문지영과 서혜란은 각각 물품 두 개씩 샀다.이제 경매가 끝나 두 사람은 연회장의 소파에 앉아서 디저트를 먹고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서혜란은 문지영이 전화 받을 때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는 문지영이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 누구인지 궁
나예은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두 눈도 깜빡거렸다.“말하지 말라고? 왜? 그런데 예은이는 분명 큰아빠가 큰엄마를 무릎에 앉힌 걸 봤어. 그리고 큰엄마는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어.”나예은은 손으로 흉내까지 내면서 서혜지에게 그때 상황을 재연하려고 했다.“...”서혜지는 할 말을 잃었다.그녀는 나예은의 천진난만한 얼굴을 바라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서혜지는 자기의 교육에 문제가 있어서 나예은이 부끄러워하는 것도 아나 싶었다.나예은은 서혜지가 자기를 믿지 않으니 매우 진지하고 열심히 그때의 상황을 설명했는데 심지어 나상준이 차우미를 보며 했던 행동과 말까지 모두 표현했다.서혜지는 나예은의 다채로운 연기를 듣고 지켜보며 그때의 상황을 재현하는 모습에 마음속으로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서혜지는 분명 자신의 교육에 문제가 있어서 나예은이 어린 나이에 알면 안 되는 것까지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반성했다.하지만 나예은이 이틀 동안 나상준과 차우미가 어떻게 지냈는지를 듣고는 100% 나상준이 차우미에 대한 마음이 진지하다고 확신했다.그렇다, 지금 나상준은 자신의 사업을 대하듯 진지했는데 심지어 조금 무서울 정도였다.그녀는 나상준이 무언가 가지고 싶은 것이 있으면 아주 확실하고 신속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지금 그의 행동이 또 그것을 증명해 주었다.나상준은 차우미를 원하고 있고 차우미는 절대로 나상준의 공세를 거절할 수 없을 것이다.이제 남은 건 시간뿐이다.서혜지는 갑자기 머릿속으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나예은의 눈을 보고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예은아, 오늘 엄마한테 한 말은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마. 그리고 큰아빠와 큰엄마 함께 놀았다는 것도 절대 말하면 안 돼. 이건 예은이와 엄마, 아빠, 그리고 큰아빠, 큰엄마와의 비밀이야. 알겠지?”“왜? 왜 그래야 하는데?”나예은은 왜 말하면 안 된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하고 물었다.“왜냐하면...”서혜지는 잠시 생각하다가 미소를 지으며 말
비행기는 정확하게 6시 5분에 출발했다.휴대폰을 끄기 전에 차우미는 하선주에게 비행기가 곧 이륙할 거라는 메시지를 보냈다.비행기가 이륙해서 하늘에 높이 솟아오르자, 밤을 맞은 청주시는 아주 작게 변했고 차우미는 눈을 감았다.한잠을 자고 나면 집에 도착한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나상준은 옆에 앉아서 창문 쪽에 기대어 눈을 감고 고요히 잠이 든 차우미를 보다가 시선을 거두고 본인도 눈을 감았다.불이 서서히 꺼지면서 비행기 내에도 밤을 맞이했다....유엔 빌리지.청주시는 밤을 맞이하여 불빛들이 밝아졌다.서혜지와 나예은은 저녁 식사 후 산책하러 나갔다.나준우가 오늘은 너무 바빠서 저녁식사를 함께 못해서 서혜지는 송 할머니더러 나준우에게 가져다주라고 했다.워낙 서혜지가 직접 가려고 했는데 오늘은 나예은과 놀고 싶고 또 나상준과 차우미의 상황을 알아볼 생각이었다.때문에 예전처럼 나예은과 같이 직접 나준우에게 저녁밥을 가져가지 않고 집에서 나예은과 둘이 식사를 마치고 산책하러 나왔다.서혜지가 나예은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예은아, 지난 주말에 큰아빠, 큰엄마와 같이 놀 때 큰아빠가 무슨 말을 하지 않았어?”사실 진작에 물어보고 싶었지만, 어젯밤에 나예은을 데리러 갔을 때 이미 곤히 자고 있어서 하지 못했다.그리고 오늘은 일찍 일어나 아침을 먹고 학교에 가야 해서 그럴 시간이 없었서 하교하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또 나상준과 차우미와 전화를 한 내용에 대해서 먼저 물어보느라 이제야 주말에 있었던 일을 물어보게 되었다.나예은은 나상준이 나중에 또 같이 놀아준다는 얘기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퐁퐁 뛰면서 노래도 부르고 나비처럼 춤도 췄다.서혜지의 질문을 듣고 나예은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큰 목소리로 말했다.“있어. 큰아빠는 예은이와 엄청나게 많은 말을 했어.”서혜지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엄청나게 많은 말을 했다고? 예은아, 큰아빠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야.”나상준은 나씨 가문 사람 중에서 이혜정보다도 말이 더 없었다
차우미가 원하지 않는다는 건 나상준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냥 모르는 체하고 그녀와 함께하고 싶었다.차우미는 어찌 됐든 나상준과 이혼한 이후 서로의 생각이 다른 것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부분은 그녀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다.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차우미가 뭐라고 할 수는 없다.나중에 다시 얘기하자고 했으니, 그때도 아마 바쁠 거라고 생각하면서 차우미는 편안하게 생각하기로 했다.차우미는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탑승 시간인 것을 보고 잠시 휴식하면서 업무에 대해 생각하기로 했다.휴식 구는 점차 조용해지더니 나중에는 적막이 퍼졌다.나상준은 휴대폰을 들고 창밖을 바라보는 차우미를 보았는데 무언가 진지하게 생각하는 눈빛이었다.‘무슨 생각하는 거지?’그런 그녀의 모습은 회성 회의실에서 일할 때와 같았다.나상준은 차우미를 바라보다고 다시 휴대폰으로 안평의 관광 명소들을 검색했다.그는 자기와 멀어지려고 하는 차우미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시간은 어느덧 5시가 되어 나상준과 차우미는 비행기에 탑승했다.좌석에 앉아서 안전벨트를 하더니 차우미는 휴대폰을 꺼내 온이샘에게 탑승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곧바로 온이샘이 답장을 보냈다.[알았어. 나도 지금 탑승하고 있어.]퍼스트 클래스는 이코노미석보다 조금 더 일찍 탑승한 것이다.차우미는 온이샘의 메시지를 확인하고 다시 시간을 보더니 이어서 시선을 돌려 창밖을 보았다.하늘은 이미 어두워졌는데 청주는 안평보다 더 일찍 어두워지는 것 같았다.이제야 차우미의 마음은 조금 편안해졌다.청주에 있는 며칠 동안은 몇 년인 것처럼 오래 느껴져서 빨리 돌아가고 싶었는데 이제 비행기에 탑승하고 나니 정말로 집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차우미는 고향에 돌아가서 다시는 여기로 오지 않고 평범한 생활을 하고 싶었다. 그녀는 몸의 긴장을 풀고 의자 등받이에 기대었고 얼굴에는 마음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그런데 갑자기 무슨 물건이 그녀의 몸 위에 떨어져서 놀라며 내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