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우는 주춤거리는 것 없이 바로 문을 열었고 마침내 차우미의 인영이 드러났다.다들 차우미를 보고 얼굴에 웃음이 지어졌지만 하 교수가 유독 그러했다."우미 맞네."차우미는 노크를 두 번 하고는 꼭 누군가가 문을 열어줄 거란 걸 알기에 더 노크하지 않고 얌전히 기다렸는데 문이 열리는 순간 제 시야에 들어오는 게 하성우라 적잖이 놀랐었다.차우미는 하성우가 오후에는 나상준과 함께 경찰서로 갔기에 회의에는 참석하지 않을 줄 알았다.둘이 같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이런 생각도 하지 않았겠지만 둘이 같이 나타났고 또 같이 사라지니 꼭 무슨 바쁜 일이 있다고 생각해 당연히 회의에 하성우는 없을 거라 생각했었다.그런데 이렇게 떡하니 서 있다니.그러자 차우미는 무언가 생각난 듯 회의실 안을 훑었고 하 교수님 옆쪽에 앉아있는 나상준을 발견했다.오후에 경찰서에서 봤던 셔츠에 단추는 몇 개 풀어져 있었고 소매를 올려 훤히 드러난 팔뚝에는 딱 봐도 비싸 보이는 명품 시계가 채워져 있었다.누가 왔는지도 모르는지 여전히 시선을 파일에 고정하고 있는 모습은 차갑고 도도해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다.나상준까지 있는 것이 의외였지만 또 생각해보면 이상할 것도 없었다. 나상준은 늘 박물관을 재건축 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기에 시간이 있을 때 그 관계자들과 함께 하는 건 당연했다.차우미는 나상준에게 향했던 시선을 거두고 하 교수를 향해 웃어 보였다.하 교수가 차우미를 바라보는 얼굴에는 자애로움이 가득했다."우미야, 얼른 들어와. 다들 얘기 중이었어."차우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나상준을 뚫어져라 보고 있던 하성우는 문을 열고 차우미를 마주했을 때 바로 나상준을 보았지만 여전히 똑같은 모습을 유지하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정말 포커페이스 유지하는 것 하나는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그래요, 형수님 얼른 들어와요. 다들 기다리고 있었어요."하성우는 빨리 말하며 차우미를 들어오라 하고 회의실 문을 다시 닫았다.회의실에는 늘 차우미를 위
선배를 배웅한 후 일 생각을 하느라 그녀는 곧장 회의실로 향했는데 노트를 가지고 가는 걸 깜박했다. 회의실 앞에 도착해서야 다른 사람들이 노트 얘기를 하는 걸 듣고서야 깜박했다는 것이 생각났다.하지만 지금은 돌아서서 가지러 갈 수 없었다. 어차피 두 시간이니 머릿속으로 열심히 기억했다가 돌아가서 정리해도 된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차우미는 곧 모든 신경을 사람들과의 토론에 쏟았다.나상준은 자리에 앉아 손에 든 서류를 보고 있는데 차우미가 옆에 다가가 앉아도 아무런 기색이 없었다.몇백억에 달하는 계약을 보느라 다른 사람에게 신경 쓰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하성우는 자리에 앉은 뒤 맞은편 두 사람을 쳐다보고는 사람들이 토론하는 걸 들으며 그 두 사람을 힐끔거렸다.그러다가 곧 웃음이 터져버렸다..선남선녀 같은 두 사람이 함께 앉으니 눈 호강하는 것 같았다.하지만... 별로 안 친한 듯싶었다...이 두 사람은 차가운 분위기를 띠고 있었는데 한 사람은 다가가기 힘들 것 같았고, 다른 한 사람은 열심히 토론을 들으며 옆 사람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잡념 하나 없는 듯한 모습이 마치 자신의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이 3년 동안 살아온 전남편이 아닌 낯선 사람 같았다.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각자 할 일을 하고 있었는데 서로 관련이 없고, 연루된 것이 없는듯했다. 결혼하고 이혼한 사이라는 걸 몰랐다면 누가 봐도 남남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그리고 그는 두 사람의 이런 모습, 특히 나상준이 그 서류를 한 시간 가까이 보고 있는걸 보고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하지만 지금은 웃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하성우는 고개를 숙인 채 서류를 들었다. 아무리 눌러도 올라가는 입꼬리 때문에 자신을 진정시키려고 애썼다.절대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신경 쓰는 사람 때문에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면 안 된다.나상준은 눈을 살짝 치켜뜨고 하성우를 바라보았다.하성우는 순간 자신의 위로 떨어지는 시선을 느끼고 웃음을 멈췄다."쿨럭!"가볍게 두 번
“형수, 혹시 자료 까먹은 거 아니야?”하성우는 차우미 앞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보고 물었다.담소를 나누던 사람들도 그제야 차우미 앞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눈치챘다.차우미가 멈칫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네.”하성우는 눈을 깜빡이더니 말했다.“그러면 상준이 거 써. 상준이는 내 거 쓰면 되고 나는 다시 프린트해서 오면 되니까.”하성우는 재빨리 자신의 자료를 나상준에게 건넸다.나상준은 그의 맞은편에 앉아있었기 때문에 팔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 그렇게 하성우의 자료는 나상준에게 넘겨지고, 나상준은 아무 말도 없이 자신의 자료를 차우미에게 건넸다.차우미가 멈칫하더니 말했다.“감사해요.”차우미는 아주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네며 자료를 받았다.하지만 나상준이 손에서 자료를 놓지 않으려고 하자 차우미는 멈칫하면서 고개를 쳐들어 옆에 앉아있는 그를 쳐다보았다.어느샌가 진지해진 나상준의 표정은 손에 땀을 쥐게 했다.그와 눈이 마주친 차우미는 그제야 방금 아무 생각 없이 말한 “감사해요”라는 말이 부부 사이로 보이지 않을 만큼 얼마나 형식적이었던지 느끼게 되었다.이 한마디는 회의실에 앉아있는 사람들한테 두 사람의 사이가 안 좋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과도 같았다.당황한 차우미는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내가 말실수했네.’비록 나상준과 어느정도 거리를 두고 싶었지만 일부러 이런 말로 다른 사람들의 오해를 받고 싶지는 않았다.그저 깜빡하고 형식적인 인사를 건넸을 뿐이다.하지만 이미 입 밖에 낸 말은 아무리 되돌려 보려고 해도 이미 수습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차우미는 얼굴이 발그레해진 상태로 긴장한 마음에 입술을 깨물면서 나상준을 쳐다볼 뿐이다.모두 다 지켜보는 와중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나상준은 그녀가 미안함과 자책으로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미 입밖에 낸 말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몰라 긴장해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결국 이렇게 대답했다.“별말씀을.”그러면서 시선을 거두고 하성우가
그런 즐거움을 공유할 만한 사람은 양훈뿐이었다.하성우는 바로 핸드폰을 꺼내 양훈에게 전화했다.“여보세요.”전화 연결음이 울리고, 전화기 너머에서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차디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하성우는 이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양훈의 목소리가 반가워 웃으면서 말했다.“있잖아, 아까...”그렇게 방금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양훈에게 전하고는 다시 또 벽을 붙잡고 박장대소 짓기 시작했다.“두 사람 정말 웃기지 않아? 아이고, 배야.”“...”전화기 너머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하성우는 웃다 말고 통화가 끊겼는지 핸드폰 화면을 확인했다.‘왜 말을 안 하지?’“여보세요?”하성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핸드폰을 귓가에 댔다.“양훈!”“응.”하성우는 순간 불쾌했다.“왜 말을 안 해? 넌 안 웃겨? 상준이가 차우미한테 완전히 잡혀 살잖아. 쟤가 언제 저러는 거 봤어?”그리고선 무언가 생각났는지 배시시하면서 말했다.“그런데 차우미를 다시 자기 여자로 만들기 어려울 것 같아. 이래서 언제 자기 여자로 만들겠어.”말로는 안타까워하면서 속으로는 오히려 깨 고소했다.하성우는 나상준이 잡혀 사는 모습이 좋았다.“쉽지 않지.”양훈이 드디어 대답했다.하성우가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너도 쉽지 않다고 생각해?”양훈마저도 쉽지 않다고 했으니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하성우가 곧바로 질문했다.“빨리 말해봐. 왜 쉽지 않은데?”그는 늘 사리에 밝고 똑똑한 양훈의 생각을 듣고 싶었다.“큰 노력을 해야 할 거야.”하성우가 여전히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노력? 그건 당연한 거 아니야? 신혼생활 3년 동안 차우미를 보는 체도 하지 않고 꽃 같은 청춘을 낭비해 버렸잖아. 인과응보인 거지! 만약 내 딸이 이런 대접을 받았다면 아주 혼쭐을 내줬을 거야!”“...”양훈은 또다시 말이 없었다.하성우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불쾌해하면서 물었다.“바빠? 빨리 말해봐. 나 또 회의 들어가 봐야 한다고. 시간 없어.”
하성우가 나가자 회의실 분위기는 회복되었다. 나상준은 비서더러 차우미에게 펜을 가져다주게 하였다. 차우미는 비서한테서 펜을 받고는 메모를 하기 시작했으며 모두 계속 토론했다.하성우가 서류를 복사하고 돌아왔어도 모두 잠시 머뭇거렸을 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고 계속 토론하였다.차우미는 계속 필기하였다. 아까 기록하지 못한 부분을 보충했으며 또 토론 중 요점도 메모하였다.차우미는 메모하는 데 열중하다 보니 하성우가 들어온 줄도 몰랐다.하성우는 오른손에 복사한 새 문서를 들고는 원본을 하 교수님께 돌려준 후 자리에 앉아 맞은편의 나상준과 차우미를 바라보았다.나상준은 의자에 앉아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예전처럼 긴장을 풀고는 사람들의 토론을 듣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항상 차우미의 손에 떨어졌다. 가늘고 예쁜 손가락이 중성 펜을 들고 서류에 청초한 글씨를 적었다.일하는 차우미를 보면 나상준은 주위의 숨결이 가라앉은 것 같았다.평온하고 조용한 게 둘만의 공간처럼 느껴졌다.이 장면을 보면서 하성우는 눈에 웃음꽃이 피어났고 그저 괜찮다고 생각했다.사실 그는 두 사람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나상준은 성격이 진중하고 타산이 있으며 조심스럽고 조용한 것을 좋아하기에 가까이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런 사람은 그와 같은 사람을 찾으면 피곤하여 힘들 수 있다.하지만 차우미의 경우는 아주 합당하다. 성격이 조용하고 온순하며 일을 처리할 때 온화하고 반응이 굼뜨나 생각이 단순하고 착하다. 따지는 편이 아니며 한눈에 보기에도 단순했다.온실 속의 꽃처럼 바깥의 험악함을 본 적이 없었으나 스스로 자신을 잘 보호하였다. 가정교육도 훌륭해 깨끗하고 단순하며 세속에 물들지 않았다.이런 사람은 나상준과 천생배필이다.복잡한 사람은 원래 간단한 사람과 함께 있어야만 편안해진다.사업을 하다 보면 매일 서로 속고 속이며 조금만 조심하지 않으면 큰 손실을 보게 되므로 정신이 극도로 긴장되어있다.이럴 때 집에 돌아온 후에도 계산하는 여자를 마주해야 하면 고생을 사서 하게 된다.그
예를 들면, 사랑.사랑은 돈으로 살 수 없고 신분 지위가 있어도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사랑은 하늘에서 맺어주는 연분이기에 귀중하고 희귀하다.이제 나상준은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고 한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도 알게 되어, 하성우는 진심으로 친구를 위해 기뻐했다.사랑을 위해 용기를 내는 것은 의미 깊은 일이다. 하여 친구의 행복한 생활을 위하여 무언가를 해줘야겠다고 다짐했다.회의는 5시에 끝났다. 얼마 되지 않아 하성우는 저녁을 같이 먹자고 요청했다.차우미는 자리에 앉자 동료들이 분분히 일어나는 것을 보고서야 펜을 놓고 서류를 덮었다.나성준은 그녀를 기다리지 않은 채 벌써 일어나 그들과 함께 밖으로 갔다.차우미는 그와 할 얘기가 생각나 서둘러 뒤를 따라 나갔다.하지만 나성준은 앞장서 걸었고 그 뒤로는 하 교수님과 진정국이 함께 하였기에 차우미는 입을 오므리며 마음속으로 하고 싶은 말을 억누르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그를 따라 다른 사람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으며 호텔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차는 이미 호텔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하나둘씩 차에 타기 시작했다. 차우미도 나상준을 따라 차에 올랐다. 그녀는 단독으로 할 얘기가 있었다.이때 나상준은 하상우의 스포츠카 대신 그의 차에 탔다.하성우는 나상준과 차우미가 한 차에 오르자 자신의 차를 몰지 않고 서둘러 따라와 조수석에 앉았다.재빨리 차 문이 닫히고 차가 줄지어 떠났다.차우미가 말을 하려고 할 때 앞쪽 조수석의 문이 열리며 하성우가 들어왔다.그녀가 하려고 하던 말이 이렇게 입술에 박혀 나오지 못했다.“형수님, 점심시간에 함께 있던 남자가 누구예요?”하성우는 안전벨트를 착용한 후 고개를 돌려 차우미를 바라보며 마치 그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는 듯이 웃으면서 물었다.해야 할 말을 중단한 차우미는 입술이 벌려져 있었다. 한동안 무슨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는데 그의 말을 듣고 차우미는 무의식중에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을 쳐다보았다.나상준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는 눈을
그는 진지하게 묻는 것 같았으나 함부로 묻지 않았다.차우미는 잠시 머뭇거리다 하성우의 답안을 몹시 궁금해하는 모습을 보며 말했다.“사람마다 우점과 결함을 가지고 있어 서로 비교할 수 없어.”“어...”“그건... 그래요...”하성우는 또 나상준을 바라보더니 빙그레 웃으며 또 물었다.“상준이 형은 어떤 장점이 있어요?”하성우는 농담하기를 좋아한다. 지금 그의 이런 모습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비록 우스개로 물었으나 차우미는 곰곰이 생각하고 나서야 대답했다.“가정을 돌보고 효심이 있고 책임감이 있으며 성숙하고 듬직해. 사람을 대하고 일을 처리하면서 진지하고 믿음다워.”나상준은 차에 오르자마자 눈을 감았다. 하성우와 차우미가 대화를 해도 눈을 뜨지 않았고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무슨 말을 해도 그는 눈을 뜨지 않을 듯했다.그러나 차우미가 하성우의 두 번째 물음에 대답할 때 나상준은 눈을 떴다.그녀는 자신의 장점을 곰곰이 생각해 본 후 부드러운 목소리로 진지하게 얘기했다. 마치 곰곰이 사고하고 회억한 후에 말한 것 같았다.거짓도 과장도 없었다.그녀의 마음속에서 그는 그녀가 말한 것처럼 좋았다.마음속에서 갑자기 무언가가 생기더니 사르르 싹이 트고 미친 듯이 자라나며 뻗어갔다.하성우는 차우미가 나상준의 우점을 한꺼번에 이렇게 많이 말하는 것을 듣고 눈이 휘둥그레졌다.가정을 돌본다?그럴 리가!가정을 돌보는 사람이 늘 밖에서 자주 돌아가지도 않았을까?책임감은 분리해서 봐야 한다. 사업에 대한 책임감은 있으나 차우미에 대해서는 없었다.성숙하고 듬직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도 사람 나름대로만 하는 것이다.믿음직스러우나 단지 주위 사람에게만 해당한다.하성우는 입을 벌린 채 다물지 못했다. 차우미가 말한 우점은 나상준과 거리가 멀었다.차우미가 말한 것처럼 훌륭하지 못하니 오히려 걱정되었다.무의식적으로 하성우는 나상준을 쳐다보았다. 감았던 눈을 떴으나 차우미를 보지 않은 채 조용히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하성우는 눈을
차우미는 멍해졌다.나상준이 그녀의 손을 잡는 순간, 그녀는 몸이 굳어진 채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상준 씨... 그가... 나에게 묻다니...’차우미는 거기에 앉아 눈앞에 있는 사람을 보았는데 눈동자의 짙은 색깔과 그의 시선은 마치 아이를 원하는지, 몇 명 갖고 싶은지 묻는 것 같았다.그는 그녀의 의견을 구했다.그리고 그녀가 승낙하면 마치 정말 아이를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차우미는 심장박동이 빨라지며 말을 전혀 하지 못했다.‘그이는 잊었어? 우린 이미 이혼했고 그저 하성우 앞에서만 부부인 척하는 거야.’나상준은 충분히 화제를 돌릴 수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차우미는 나상준이가 왜 갑자기 이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그의 손바닥의 힘이 전해왔다. 힘 있고 따스하고 싸여있는 온기가 전해져 차우미를 그의 세계에서 도망칠 수 없게 하였다.손가락이 반사적으로 움직이며 빠져나가려고 했으나 그럴수록 그는 힘을 주어 차우미의 손을 꽉 잡았다.차우미는 눈살을 찡그리고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온통 의문이 가득하였다.‘왜 이러지? 우리가 이혼한 것을 잊었어? 그리고 약혼녀도 있는데 이러면 안 돼.’이 순간 차우미는 하성우를 잊은 채 입술을 꼭 다물고는 손을 빼려고 버둥거렸다.‘이럴 수 없어, 이러면 안 돼.’그러나 그녀가 발버둥 칠수록 나상준의 힘은 더 팽팽해졌다. 나중에는 손바닥에 땀이 났지만 그래도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참다못해 차우미가 입을 열었다.“나상준, 너...”말하자마자 하성우를 보더니 말을 멈추었다.하성우는 마치 한편의 멋진 연극을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하게 그 둘을 지켜보면서 그 후의 멋진 전개를 기대하고 있었다.나상준은 하성우를 아랑곳하지 않고 차우미를 바라보았다. 멍해졌다가 화를 내가다가 또 당황해하는 차우미를 보며 진지하게 물었다.“낳기 싫어?”차우미는 미간을 찌푸리고는 더 말을 하지 않았다.“...”‘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왜 이렇게 물어봐?’‘이런 말을 하지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