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간의 냉전 끝에 차서영은 병원에서 남편이 첫사랑을 위해 환영회를 열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집에 돌아가자 이도윤이 이혼협의서를 내밀며 말했다. “은비가 돌아왔어. 우리 이혼하자.” “그래.” 겉으로만 좋은 척했지, 그들의 사이는 이미 멀어진 지 오래였다. 차서영도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았다. 이혼한 다음 이도윤은 자꾸만 차서영의 소식이 보였다. 새로 만나는 사람과 여행 간 차서영. 상업계의 유명인이 된 차서영. 차서영... 차서영... 한평생 오만하게 산 그는 결국 머리를 숙였다. “이제 그만하고 나랑 집에 돌아가자.” 차서영은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앞으로의 매일 밤낮을 이도윤은 그녀의 집 문 앞을 지키면서 지냈다. 어느 날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나와서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서영이 지금 지쳤어요. 이 대표님을 동정할 시간은 없어요.”
View More차강훈은 드디어 자신이 파티에 참석한 목적을 밝혔다.그는 차은비를 위해 화풀이를 할 생각이었다.차서영은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차은비가 이도윤의 파트너가 되어 파티에 참석한다고요? 제 능력을 모르는 건 그렇다 쳐도, 차은비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세요? 차은비가 몇 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나요? 현장에 차은비가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죠? 걔가 금융 시장이나 사업에 관해 알아요? 제가 더 확실하게 말해야 하나요? 차은비는 지금 제일 간단한 사업 계약서조차 이해하지 못해요. 몇 번이나 한울그룹과 다른 회사의 협력을 망칠 뻔했죠. 그런데 차은비가 이도윤의 파트너가 되길 원하는 거예요? 아빠는 아빠가 가장 아끼는 딸이, 그리고 한울그룹이 망신을 당하길 바라는 건가요?”차서영은 피식 웃더니 긴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면서 여유로운 태도를 보였다.“한울그룹을 망신시킬 생각이라면 어떻게 보상할지는 생각해 보셨어요?”차서영의 반박에 차강훈은 말문이 턱 막혔다.차강훈이 아무리 차은비를 편애한다고 해도 차서영이 차은비보다 뛰어나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었다.차강훈은 음산한 얼굴로 눈앞의 차서영을 바라보다가 한참 뒤에 입을 열었다.“차서영, 네 말은 알겠어. 오늘 일은 그냥 넘어갈게. 하지만 앞으로는 차은비가 네 동생이라는 걸 명심해. 우리는 이제 가족이야.”차서영의 눈빛이 번뜩였다.“제게는 동생이 없어요.”“남동생은 있어도 되고 여동생은 있으면 안 돼?”차강훈은 차갑게 웃었다.“네 엄마가 다른 남자랑 낳은 아들은 네 남동생으로 인정하면서 왜 나랑 다른 여자가 낳은 딸은 네 여동생이 될 수 없는 건데? 왜? 설마 안형에 서유건이 있다는 걸 잊은 거야?”차강훈은 어두운 얼굴로 서유건을 언급했다.차서영의 표정이 순간 달라졌다. 그녀는 조금 전까지는 여유로웠다가 지금은 차강훈을 경계했다.두 사람이 어떻게 같단 말인가?차은비는 차강훈이 결혼 생활 도중에 바람을 피워서 낳은 사생아로 차강훈이 그녀의 엄마를 배신했다는 증거였다.반대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한울그룹 대표의 수석 비서가 되기에 가장 적합했다.차은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송하린은 들고 있던 와인잔을 흔들면서 입가에 미소를 띤 채로 와인을 한 모금 마시며 천천히 문가로 시선을 돌렸다.뒤늦게 파티장에 도착한 성태준과 얼마 뒤 모습을 드러낸 차은비와 차강훈을 본 송하린은 재밌는 구경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이 대표, 또 만나네.”차강훈은 웃는 얼굴로 차은비를 데리고 이도윤의 앞에 섰다. 그는 장인어른처럼 굴 수가 없었다.이도윤은 싸늘한 시선으로 차은비를 바라보았다.차은비의 검은 눈동자가 잠깐 반짝였는데 마치 억울한 듯 보였다.이도윤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고 곧 차은비가 자신을 도윤 씨라고 부르는 걸 들었다.차서영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이도윤의 앞에 섰다. 그녀는 냉정한 얼굴로 차강훈을 상대했다.“아빠, 이건 한울그룹이 리조트 프로젝트를 위해 주최한 파티예요. 볼일이 있다면 이런 공식적인 자리 말고 사적으로 하시죠.”차서영은 차강훈이 왜 이곳에 왔는지 당연히 알고 있었다.아마 자신이 이도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걸 과시하며 사람들을 속여 투자하게 만들 셈일 것이다.업계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차강훈과 한울그룹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았다.만약 그들이 정말로 차강훈에게 속는다고 해도 한울그룹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다들 가만히 있을 것이다.차강훈은 차가운 눈빛으로 차서영을 바라보았다.하지만 이도윤이 있으니 그는 억지로 화를 억누르면서 어색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서영아, 날 따라와. 너한테 할 말이 있다.”아주 명확한 태도였다.이도윤과는 얘기를 나눌 수 없어도 차서영과는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뜻이었다.차서영은 잠깐 흠칫하면서 옆에 있던 이도윤을 바라보며 잠깐 자리를 비울 수 있을지 물으려는데 멀리서 심은재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그녀는 심은재를 향해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심은재는 곧바로 그녀의 뜻을 이해했다.차서영은 그제야 마음 놓고 자리를 떴다.차서영이 차강훈을 따라서
안형의 차씨 일가.차은비는 차씨 일가로 돌아온 뒤 방으로 들어가서 나오질 않았다.차강훈은 차은비를 가장 아꼈다. 비록 진심으로 사랑하는 거라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차은비와 이도윤의 사이가 앞으로 그에게 승승장구할 발돋움판이 될 수는 있었다.차은비의 슬퍼하는 모습을 본 차강훈은 문을 열고 들어가서 그녀에게 이유를 물었다.차은비는 침대 끝에 앉아서 두 팔로 무릎을 끌어안은 채 불쌍한 모습을 해 보였다.“이번 한울그룹 리조트 테이프 커팅 행사와 오늘 밤에 있을 파티에 언니가 도윤 씨 파트너로 참석했어요.”차은비는 아주 작게 말했다.“도윤 씨 비서는 저잖아요. 그런데 언니가 굳이 도윤 씨를 따라서 파티로 갔으니 앞으로 한울그룹 직원들은 절 우습게 생각할 거예요.”차은비는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일반적인 상황에서 파티에 참석하는 임원들은 모두 파트너가 있었고 대부분이 비서였다.이번에 이도윤은 차은비가 아니라 차서영을 선택했다. 그것은 이도윤이 그녀의 능력을 믿지 않는다는 걸 증명했고 더 깊이 따지고 보면 파티에 참석할 수 있는 그녀의 자격을 박탈한 것과 다름없었다.비서실 사람들은 차은비를 무시했고 만약 이 일이 소문 난다면 직원들은 또 그녀의 험담을 할 것이다.차은비가 아무리 뻔뻔하다고 해도 그것까지는 견딜 수가 없었다.“이번 파티에 우리 차씨 일가도 초대장을 받았어. 내가 널 데리고 한울그룹의 파티에 참석하마.”차은비는 눈시울을 붉혔다.“그거랑 그거가 어떻게 같아요...”차은비가 이도윤의 비서라는 걸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다들 이도윤의 비서라고 하면 가장 처음 차서영을 떠올렸다.사람들은 심은재와 차서영을 이도윤의 오른팔과 왼팔로 여겼고 그중에 그녀는 없었다.차은비의 모습에 차강훈은 그녀가 정말로 슬퍼할까 봐 걱정되어 곧바로 말했다.“괜찮아, 은비야. 내가 서영이를 혼내줄게.”차은비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았다.“전 그저 언니가 너무 이기적이지 않길 바랄 뿐이에요. 그리고 한울그룹에 제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임수현 씨, 임수현 씨 이상형이 이 대표님 같은 분이라는 말이 있던데 혹시 두 분 사귀고 계신 건가요? 이 대표님 때문에 임수현 씨가 이 행사에 참석하신 건가요?”한 기자의 질문에 임수현은 얼굴을 붉히면서 웃었고 입가에 옅은 보조개가 생겼다. 그녀는 쑥스러운 듯 말했다.“저랑 이 대표님은 아직 친구 사이에요. 그런 말씀 하지 말아주세요.”비록 그렇게 말했지만 기자들은 임수현이 말한 ‘아직’이라는 단어에 주목했다.“아직 친구 사이라고 한다면 앞으로 연인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뜻 아닌가요? 임수현 씨, 제 추측이 맞습니까?”기자는 곧바로 캐물었다.임수현은 얼굴을 붉히면서 이도윤을 몰래 힐끔 보았다. 말하고 싶은데 이도윤 때문에 말을 하지 못하는 듯한 태도였다.옆에 서 있는 이도윤의 키가 워낙 큰 탓에 임수현은 고개를 힘껏 들어야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그가 옆에 서니 찬 바람도 느껴지지 않았다. 임수현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만족감을 느꼈다.게다가 이도윤은 집안도 좋았고, 연예인 뺨칠 정도로 잘생겼을 뿐만 아니라 얼굴로 먹고사는 연예인들에게는 없는 우월한 분위기가 있었다.그의 일거수일투족은 그를 냉정하고 현명한 사람으로 보이게 했다.임수현은 당연히 그런 이도윤이 좋았다.그의 여자 친구가 되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다들 그의 여자가 되려고 그의 품에 달려들 것이다.사실 임수현 같은 여자 연예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재벌가에 시집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도윤은 재벌가 중에서도 최고라고 할 수 있었다.만약 정말로 그의 여자 친구가 된다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할 것이다.이도윤은 단 한 번도 스캔들이 터진 적이 없었고 그가 다른 여자와 가까이 지내는 모습도 다들 본 적이 없었다. 만약 그의 여자가 된다면 그가 그 여자에게 진심이라는 걸 의미할 것이다.임수현은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임수현은 말하지 않고 묵인했다. 기자들은 좋은 기삿거리가 생겨서 흥분했다.그러나 이도윤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갑자기 마이크를
마지막에 차는 리조트 입구에 멈춰 섰다.다행히 그곳에 있는 건 이번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거나 기자들이었고, 회사 사람은 없었다.차서영은 회사 입구만 확인하느라 정신이 팔렸었는데 갑자기 귓가에 열이 오르면서 따뜻한 입김이 그녀의 귀와 목 쪽에 닿았다. 순간 이도윤의 기운이 느껴졌다.서둘러 고개를 돌린 차서영은 잠깐 호흡을 멈췄다.이도윤의 얼굴이 바로 코 앞에 있어서 조금 전 그녀가 고개를 돌릴 때, 그의 입술이 하마터면 그녀의 뺨과 입술을 스칠 뻔했다.이도윤의 뜨거운 숨결이 뺨에서 느껴지자 차서영은 살짝 당황했다.두 사람의 거리는 아주 가까웠고 차서영은 안경 너머 이도윤과 눈이 마주쳤다.그의 눈동자에서 약간의 열기가 느껴졌는데 그녀의 착각이 아니었다.차서영은 이도윤의 심오한 눈빛에 잡혀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녀는 멍하니 그와 시선을 주고받으면서 그에게 정신이 팔렸다.두 사람의 호흡이 섞였고 차서영은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이도윤, 또 뭘 하려는 거야?”“안전벨트 풀어주려고.”이도윤은 덤덤히 말했다. 그의 입꼬리는 그대로였지만 눈동자 속의 열기는 확연히 느껴졌다.이번에 차서영의 눈빛은 저도 모르게 그의 살짝 열린 입술로 향했다.얇은 입술은 근엄해 보였지만 촉감은 부드러웠다.차서영은 저도 모르게 저번에 그에게 강제로 키스 당했었던 때를 떠올렸다.이도윤은 눈썹을 치켜올리면서 그녀를 위해 안전벨트를 풀어주었다.“안 내릴 거야?”그의 목소리는 창밖에서 들려왔다.차서영이 고개를 들었을 때 이도윤은 차 문 앞에 서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차서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차에서 내리려는데 이도윤이 그녀를 향해 팔을 뻗었다.차서영은 습관적으로 그의 팔을 잡고 차에서 내린 뒤 그와 함께 행사장으로 향했다....리조트 현장에는 한울그룹이 초대한 기자들이 가득했다.동시에 스스로 행사장을 찾은 임수현도 있었고 연예계에서 인기가 많은 배우들도 그곳에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한울그룹의 지위가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었다.한울그룹이 공개한 리조트의
“내가 알아서 차 타고 갈게.”차서영은 오렌지 주스를 마신 뒤 메슥거리던 게 한결 나아졌다.“확실해? 지각해도 괜찮아?”이도윤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차서영은 그의 표정에 자조하는 기능이 있다고 생각했다.차서영은 시간을 보았다. 두 시간 뒤면 이도윤이 말한 테이프 행사 시간이었다.그곳에서 여동구까지 가려면 택시를 타도 1시간 30분 정도 걸렸다.“그러면 부탁할게.”차서영은 더 거절하지 않았고 이도윤은 이때 입을 열었다.“어제 성태준 씨에게서 연락이 왔어. 너무 시끄러워서 전화 꺼뒀어.”“...”어젯밤 집에 돌아가지 않았는데 윤지연에게서 아무런 연락도 없어서 이상하게 느껴진 참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전화가 꺼진 상태였다.“성태준 씨가 원래 좀 시끄러운 편인가 보지.”차서영은 대충 핑계를 댔고 이도윤은 그렇다고 했다.“확실히 시끄러웠어.”차서영은 말없이 이도윤을 바라보았다. 사실 어이가 없었다.그녀는 빠르게 아침을 먹었고 이도윤은 말없이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차서영에게 인사조차 하지 않고 말이다.차서영은 너무 급한 나머지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가방을 챙긴 뒤 휴대전화를 들고 황급히 그를 따라갔다.이 시간에 출발한다면 제시간에 도착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차서영은 옷을 고를 시간도 없었지만 다행히 이도윤이 거의 다 준비해 주었다.그러나 그녀는 이도윤이 빨간 드레스를 준비해 줄 줄은 몰랐다.드레스를 입고 이도윤의 차에 앉은 차서영은 긴 손가락으로 치맛자락을 잡고 침묵에 잠겼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이도윤을 힐끗 보았다.이때 이도윤은 안경을 껴서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까만 눈동자를 가렸다. 그의 옆모습은 조각된 것처럼 날카로움과 동시에 완벽했다.이도윤은 안경을 끼지 않을 때면 눈빛이 굉장히 매서웠다. 안경을 낀 그는 훨씬 점잖아 보였지만, 그와 오랜 시간을 함께한 차서영은 그가 겉모습만 점잖아 보일 뿐 사실은 굉장히 쓰레기라는 걸 알고 있었다.차서영은 저도 모르게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고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3년 전, 차서영이 막 이도윤의 비서가 됐을 때 그녀는 뛰어난 외모 때문에 많은 유언비어에 시달렸다.비록 그녀가 대학교에 다닐 때 겨우 2년 만에 학점을 다 취득하고 거의 만점에 가까운 성적으로 조기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험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상부와의 리조트 협력 건은 사실 중지돼야 했다. 그때 상부에서는 다른 회사를 마음에 두고 있었고 그 회사는 마침 한울그룹의 라이벌이었다.그때 이도윤은 해외에서 다른 계약을 진행하는 중이었고 날씨 때문에 비행기를 타고 돌아와서 상황을 만회할 수가 없었다.상부에서 다른 회사와 계약하려고 했을 때 차서영이 나서서 마지막 기회를 얻은 것이었다. 그녀는 두 회사의 장단점을 낱낱이 설명한 뒤 여론을 이용해서 다른 회사를 이긴 뒤 성공적으로 한울그룹이 계속해 상부와 협력할 수 있도록 했다.차서영은 상부에서 지정한 담당자 중 한 명이었다.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상부에서도 담당자를 보냈는데 차서영이 상대와 맞서게 되면 항상 상대방이 우위를 점했다.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디자인이나 인테리어 같은 것에서도 서로 의견이 갈렸고, 상대방은 몇 번이나 자신의 신분을 이용해서 차서영의 의견을 묵살했다.한울그룹 비서실 비서들은 차서영을 조롱했었다.차서영은 여러 가지 자료를 찾아보았고 그제야 그 담당자가 사실은 한울그룹 라이벌 회사의 돈을 받고 일부러 분탕을 쳤다는 걸 알게 되었다.그 점이 밝혀진다면 그 담당자는 절대 무사하지 못할 것이었다.차서영이 그를 봐줬을까?당연히 봐주지 않았다.그때 차서영은 정의감이 넘쳤고, 이도윤과 결혼한 이상 이도윤의 옆에 당당히 서 있을 수 있을 만큼 능력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했다.차서영은 잘못을 저지른 적이 있던 사람들을 한 명도 봐주지 않고 전부 자리에서 끌어내렸다.그리고 놀랍게도 아무도 차서영이 벌인 짓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그러나 다들 차서영이 절대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비서실 사람들은 그 일로 차서영을 완전히 존경하게 되었다.그저 평범하게 우수하다면 사
이도윤은 미간을 찌푸렸다. 대꾸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듯 보였다.차서영이 입고 있는 파자마는 엉덩이를 겨우 덮는 길이었고 등은 드러나 있었다.이도윤의 각도에서는 차서영의 가슴 모양이 명확히 보였다. 탄탄하면서 섹시하며 부드러웠던 촉감이 은근히 연상되었다.이도윤은 차서영이 그 파자마를 입고 그의 서재에서 잠자리를 가졌던 때를 기억했다.차서영은 그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하고 느긋하게 말했다.“사실 어제 날 깨우는 가장 좋았어. 그랬다면 여기 남아서 널 방해하지 않고 내 아파트로 돌아갔을 거니까.”“뭐야? 내 탓이란 말이야?”이도윤은 차서영이 천천히 입을 여는 모습을 바라보았다.“다음번에는 꼭 밖에 내버려두도록 할게. 그러면 이렇게 날을 세우는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되겠지.”차서영은 그를 잠깐 바라봤다가 입을 열었다.“나 어젯밤에 잠꼬대했어?”이도윤이 티가 나게 멈칫했으나 차서영은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이도윤은 덤덤히 대답했다.“했을 거야. 별로 신경 쓰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차서영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을 아꼈다.이상한 잠꼬대만 하지 않으면 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꿈에서 임신했다는 사실을 얘기할까 봐 두려웠다.차서영의 시선이 식탁 위로 향했다. 그녀는 나이프로 샌드위치를 잘랐고 곧 아주 옅은 비린내가 풍겨왔다.차서영은 참지 못하고 입을 막은 채 헛구역질을 했다. 위가 경련하는 느낌이 들면서 차서영의 눈가가 살짝 빨개졌다.눈앞에 신선한 오렌지 주스가 놓이자 그녀는 그것을 들고 벌컥벌컥 마셨다.따뜻한 오렌지 주스였다. 오렌지 주스를 마시자 아주 옅은 비린내가 순식간에 상쾌한 오렌지 향기에 가려졌다.헛구역질도 더는 하지 않게 되었다.차서영의 안색이 조금 돌아왔다. 그녀는 그제야 주변을 인식하게 되었고 눈앞에 커다란 그림자가 생긴 걸 발견했다.시선을 들자 남자의 궁금증에 찬 검은 눈동자가 보였다.“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 건지 설명해 봐.”차서영은 눈을 접어 웃으면서 일부러 화제를 돌렸다. 그러나 그녀는 손을 배에 올리면서 살
“사모님, 사모님!”차서영은 잠을 자던 와중에 누군가 자신을 흔들어 깨우는 걸 느꼈다.천천히 눈을 뜬 그녀는 40대의 중년 여성이 자애로운 표정을 하고 있는 걸 보았다.김영숙이었다.이도윤과 결혼한 뒤 줄곧 김영숙이 차서영을 돌봤다.차서영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일어나 앉았다.“아주머니, 왜 그러세요?”“사모님, 대표님께서 깨우시라고 하셨어요. 그렇지 않으면 회사에 늦으실 거라고 하셨어요.”김영숙은 자애롭게 말했다.차서영은 당황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다 고개를 숙인 그녀는 자신이 파자마 치마를 입고 있는 걸 보았다.그녀가 놀라기도 전에 김영숙이 설명을 했다.“어젯밤 대표님께서 데리고 오셨을 때 사모님은 깊이 잠든 상태였어요. 대표님은 사모님이 깊게 잠든 모습을 보고 사모님을 깨울까 봐 대신 파자마로 갈아입혔어요.”차서영은 그 순간 몸이 굳었다.이도윤과 이혼하기 전, 서재에서 기획서를 작성하다가 시간이 많이 늦으면 자주 책상 위에 엎드려서 잤었다.그때마다 이도윤은 그녀를 안아서 방으로 데려간 뒤 파자마까지 갈아입혔었다.만약 그 과정 중에 차서영이 잠에서 깬다면 이도윤은 그녀를 욕실로 데려가서 더 많은 일을 했었다.차서영은 저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져서 손을 뻗어 자신의 화끈거리는 뺨을 만졌다.이혼하기 전까지 이도윤은 그녀의 남편이었다.그러나 이혼한 뒤에도 옷을 갈아입히다니. 차서영은 조금 부끄러워서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차서영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어젯밤 마지막 기억은 이도윤과 함께 불족발 가게에 있을 때였다. 그때 이도윤은 음식을 먹지 않은 듯했다.“사모님, 어제 정말 깊게 잠드셨어요. 제가 몇 번 불렀었는데 꿈쩍도 안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대표님께서 옷을 갈아입히신 거예요.”김영숙은 웃으며 말했다.“죄송해요.”차서영은 목을 움츠리면서 당장 사라지고 싶었다.“제가 폐를 끼쳤네요.”“폐라뇨. 예전에도 대표님은 항상 이렇게 사모님을 돌보셨는걸요.”김영숙은 웃으며 위로했다.“얼른 씻으세요. 아침 준비는 다 됐어요
[이도윤이 돌아왔어.]병원에서 링거를 꽂은 차서영은 친구의 문자를 보고 잠깐 멈칫했다.그녀는 이도윤과 냉전 상태였다. 거의 한 달간 말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러니 당연히 돌아온 것도 몰랐다.곧이어 다음 문자가 왔다.[웬 여자를 데려왔다고 하던데?]문자의 아래에는 사진이 첨부되었다.사진 속의 여자는 그녀와 아주 닮아 있었다. 이름은 차은비, 그녀의 배다른 자매로 시골에서 키워졌다.친구는 계속해서 말했다.[너희 집안에서 환영회도 열어 준대. 차서영, 네가 가서 기 좀 눌러야 하지 않겠어?]차서영의 성격으로 이도윤이 저지른 것을 배로 돌려주는 건 일상이었다. 집안의 저택에 불을 지르는 것도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그녀는 링거를 바라봤다. 3일 동안 열이 내리지 않아서 링거를 맞느라 손이 퉁퉁 부어 있었다. 지금 복수할 기분은 당연히 없었다.[안 가.]답장하고 난 그녀는 잠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저녁 10시쯤, 그녀는 택시를 타고 경원 별장에 돌아갔다. 돌아가자마자 지친 몸으로 금방 잠들어 버렸다. 하지만 잠자리는 그다지 편하지 않았다.잠시 후 이도윤이 돌아와서 그녀는 금방 다시 깨어났다.“나 때문에 깼어?”정장 차림의 이도윤은 몽롱한 빛을 등지고 있었다. 하얀 피부는 냉철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는 감정 없이 덤덤한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봤다. 그러나 목소리는 아주 매혹적이었다.“아니.”금방 일어난 차서영의 목소리는 나른했다.“약을 먹었더니 깊게 잠들지 못하겠네.”“어디 아파?”이도윤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그녀는 아픈지 꽤 되었다. 얼마 전 도무지 견딜 수가 없어서 이도윤에게 문자를 보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도윤은 이제야 알았다는 듯한 반응이었다.차서영은 물을 두 잔 따라서 한 잔은 그에게 건네줬다.“남천시 일은 어떻게 됐어? 꽤 복잡한 일이라고 들었는데, 너...”목이 불편했던 차서영은 그다지 말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도윤과 두 달 만에 만나는 것이기도 하고 누군가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