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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엄마, 누가 엄마를 괴롭힌 거예요?”

소원이는 눈을 깜빡이면서 앙상한 손을 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무게감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손이었다.

“그럴 리가 있겠어? 그런 생각 하지 마.”

나는 애써 울분을 참으며 소원이의 이마 위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살살 쓸어주었다.

소원이는 예전에 머리를 밀었었는데 머리가 조금 자라서 까슬까슬했다. 만져보면 단모종의 강아지 같기도 했다.

소원이를 달래며 삭발을 시켰을 때가 눈앞에 생생했다. 그때 나는 삭발을 하고 나면 까맣고 윤기 도는 예쁜 머리카락이 자랄 거라고 소원이를 속였었다.

그러나 머리카락이 자라는 모습은 이제 더는 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간호사 언니가...”

소원이는 시선을 내려뜨리면서 말했다.

“제가 내연녀의 딸이라고 했어요.”

소원이는 아직 너무 어려서 내연녀가 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의도적으로 드러낸 악의쯤은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항상 다정하게 대해주던 간호사가 갑자기 태도를 바꿨으니 소원이는 많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겠고, 그저 어렴풋이 누군가 날 괴롭힌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괜찮아. 푹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게 다 괜찮아질 거야.”

나는 잔잔한 목소리로 소원이를 달랬다. 하지만 아쉽게도 목소리가 너무 쉬어서 자장가를 불러줄 수는 없었다.

소원이는 언제나 말을 잘 들었다. 내가 자자고 하면 소원이는 늘 스스로 이불을 덮고 진지한 얼굴로 눈을 감았었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소원이는 눈을 감지 않았고 입에서 끊임없이 피를 토했다.

병실 안의 기계들이 요란하게 경보음을 냈다.

나는 놀라서 멍해졌고, 병실에서 끌려 나갈 때는 손이 끊임없이 떨리고 두 다리에 힘이 쭉 빠져서 일어설 수조차 없었다.

“소원이 어머님, 예치금이 다 떨어졌어요.”

간호사가 내게 포스기를 건네면서 말했다.

“응급처치 비용과 중환자실 비용까지 총 2,000만 원을 결제해 주셔야 해요.”

나는 떨리는 손으로 카드를 긁었지만 곧 잔액 부족이라는 알림이 떴다.

그 카드에는 분명 1억이 있었는데 말이다.

다른 사람이 내 카드를 도용한 건 아닌지 확인해 보려던 찰나, 화면에 뜬 기사 하나가 내게 답을 알려주었다.

사진 속에서 강승재와 최나리는 행복한 얼굴로 서로에게 기대고 있었는데 선남선녀라 모두의 부러움을 샀다. 기자는 강승재가 최나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대서특필했다.

알고 보니 최나리는 연예인이 된 뒤에 일이 순조롭게 풀리지 않았다. 최나리를 배우로 캐스팅하려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고 다들 최나리의 외모는 기껏해야 엑스트라밖에 할 수 없다고 했다.

강승재는 홧김에 최나리를 위해 남은 재산 120억을 모두 투자하여 그녀를 위해 영화 한 편을 제작하려고 했다.

그들의 사랑에 감명을 받은 네티즌들은 최나리의 앞날이 창창하길 바란다고 했고, 또 누군가 전적으로 그녀의 꿈을 응원해 준다는 사실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실로 아름다운 사랑이었다.

강승재는 딸이 위독한 상황에서도 최나리를 위해 감독과 제작진들을 찾아 나섰고, 회사 자금까지 전부 끌어다 모아서 최나리에게 투자했다.

그는 심지어 살기 위해서는 엄청난 치료 비용이 필요한 딸마저 잊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냉정해져야 했다. 나는 한 편으로 여기저기서 돈을 빌리며 강승재에게 전화했다.

드디어 한 시간쯤 뒤 강승재가 전화를 받았다.

전화 너머에서 은구슬 굴러가는 듯 맑은 최나리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왜? 돈 썼다고 나한테 뭐라고 하게?”

강승재는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이미 예상했다.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넌 아무것도 몰라. 나리는 연기력이 뛰어나. 그리고 내가 직접 나리를 위한 대본을 썼어. 나리는 이제 곧 대스타가 될 거야! 120억을 투자했는데 이제 곧 몇천억의 수익이 생길 거야. 그렇게 속 쓰리면 박은우에게 널 위한 영화를 만들어 달라고 해. 시청자들이 과연 누구를 선택할지 어디 한번 지켜보자고!”

거나하게 취한 강승재는 발음도 제대로 못하면서 들뜬 어조로 말했다.

그는 본인의 대본이 얼마나 훌륭한지, 최나리의 외모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끊임없이 주절댔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감독들도 전부 최나리의 연기력에 놀랄 거라고 했다.

“그만해!”

난 더는 참을 수 없어 그의 말허리를 잘랐다.

“소원이 응급처치받으려면 2,000만 원이 필요해. 우리 돈 없어! 소원이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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