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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강승재는 카드란 카드는 모조리 긁은 듯했다. 잔액을 다 합쳐도 40만 원이 안 됐다.

“돈 없어? 그러면 박은우 찾아가든가.”

강승재는 아주 가볍게 말했다.

“소원이가 지금까지 앓고 있는 건 전부 당신 때문이잖아. 가서 약 한 알 더 구해와서 소원이에게 먹여. 그러면 소원이도 금방 다 나아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잖아. 안 그래? 윤세영, 난 정말로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날 질책하는 건지 모르겠어. 난 그저 젊었을 때의 내 꿈을 이루고 싶은 것뿐이야. 그런데 당신은 매번 딸의 목숨으로 날 협박했지.”

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전화 너머로 아주 큰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강승재가 얼마나 박력 있고 용기 있는지를 칭찬하며 사람들의 시선을 뒤로 하고 자신의 꿈을 좇는 그의 모습에 감탄했다. 그들은 강승재가 최나리를 구원해 준 영웅이라고 떠들어댔다.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아내와 딸이 죽든 말든 관심도 없는 남자가 다른 여자를 구한 영웅이라니.

나는 귀에 거슬리는 환호 소리를 더는 듣고 싶지 않아 묵묵히 전화를 끊었다.

그들은 마치 거머리처럼 나와 내 딸의 몸에 달라붙어서 우리의 피를 빨아먹었다. 그들은 아마 우리의 피를 다 빨아 먹고서야 즐거운 얼굴로 우리의 몸에서 떨어질 것이다.

죄책감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인간들이었다.

나는 그렇게 밤새 모든 친지에게 연락을 돌려 겨우 2,000만 원을 구했다.

돈을 내러 가자 의사는 필요 없다고 했다.

그는 내 등 뒤의 수술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초록색으로 빛나던 ‘수술 중’이라는 글이 까맣게 변하고 수술실 문이 열렸다. 내 딸 소원이가 의료진들에게 둘러싸여 수술실 밖으로 나왔다.

이번에는 다른 때와 달랐다.

흰색 천이 소원이의 야윈 얼굴 위를 덮고 있었다.

“소원이 어머님, 저희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의사는 비통한 얼굴로 말했다.

“소원이도 최선을 다했어요.”

“암세포가 온몸에 퍼졌어요. 어젯밤에는 내출혈이 심했고요. 소원이가 어떻게 지금까지 버틴 건지 놀라울 따름이에요. 소원이는 정말 강인한 아이였어요.”

의사는 내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했다.

“마취하기 전에 소원이는 아프지 않다고 했어요. 그리고 어머님께 절대 걱정하지 말라고, 그렇게 전해달라고 했어요.”

나는 넋이 나간 채로 손을 뻗어 침대 옆으로 축 늘어진 소원이의 새끼손가락을 만졌다.

소원이는 내 손을 꽉 잡지 않았다.

소원이가 정말로 떠났다.

나는 막 태어났을 때 소원이의 그 조그맣던 모습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기절 직전의 상태로 병상 위에 누워있었는데 소원이는 처음으로 숨을 쉬기 시작하더니 충분히 울었다고 생각됐는지 호기심 어린 얼굴로 내 손을 잡았었다.

내 딸은 너무 어렸다. 혼자 떠나는 것인데 무섭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그러나 소원이는 오히려 날 위로하며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엄마는 알아... 우리 소원이가 진짜 강한 아이라는 걸.”

나는 조심스럽게 소원이의 손을 잡으면서 비 오듯 눈물을 흘렸다.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엄마가 곧 만나러 갈게.’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죽음에 익숙한 의사는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이 세상에 사람을 기사회생시킬 수 있는 약은 없어요. 아무리 괴로워하셔도 소원이는 돌아오지 못해요.”

없을 리가.

의사는 그 약을 소원이의 친아빠가 다른 사람에게 주었다는 걸 모를 뿐이었다.

이제 이틀 뒤면 소원이와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자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우리 소원이는 빨리 걷질 못하니 내가 뛰어간다면 분명 소원이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장례식장에서 유골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때 나는 강승재에게 연락했다. 어젯밤 많이 취한 상태였으니 아직 깨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윤세영, 적당히 해!”

‘아, 일어났네.’

“나 지금 영화 크랭크인 중이야. 귀찮게 하지 마.”

강승재는 내게 욕설을 퍼부으면서 전화 너머의 사람들에게는 부드럽게 말했다.

“소원이 하늘나라로 갔어.”

난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말도 안 돼.”

강승재는 아주 단호히 대답했다.

“소원이가 정말로 죽었다면 당신이 이렇게 태평하게 나한테 연락할 수 있겠어? 잘 들어. 괜히 동정받으려고 우리 소원이 이용하지 마. 감히 우리 소원이가 죽는다고 저주한다면 바로 당신이랑 이혼할 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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