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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었던 남편의 배신
믿었던 남편의 배신
작가: 태태

제1화

딸의 췌장암을 치료하기 위해 나는 남은 수명을 대가로 시스템에서 내 딸을 구할 수 있는 약 한 알을 받았다.

남편은 제정신이냐면서 나를 타박하더니 몰래 그 약을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의 얼굴 흉터를 치료하는 데 썼다.

큰 충격을 받고 절망에 빠져 있을 때, 남편은 한 점 부끄럼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나리는 연예인이 꿈이야. 걔 벌써 스물넷이야. 걔한테는 시간이 없어. 그리고 이 약 당신이 몸 팔아서 구한 거잖아. 그게 아니면 당신 같은 가정주부가 무슨 수로 이렇게 좋은 약을 구했겠어? 딸을 구하고 싶으면 다시 몸 팔아서 약을 구하면 되잖아. 한 번 더 몸을 팔면 뭐 죽기라도 해?”

애석하게도 난 더 이상 약을 구할 수 없었다. 내게 더는 대가로 바칠 수명이 없었기 때문이다.

...

거래가 성사된 뒤 시스템은 나머지 일을 처리할 수 있도록 내게 일주일이란 시간을 주었다.

첫날엔 약을 온전히 돌려받기 위해 기를 쓰고 강승재와 치고받고 싸웠다.

둘째 날엔 딸의 병실 밖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질 때까지 울었다. 강승재를 굳게 믿은 탓에 딸을 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잃어버렸다는 것이 너무도 한스러웠다.

오늘은 셋째 날이다. 난 내가 이제 곧 죽으리라는 걸 뼈저리게 깨달은 뒤 차분하게 남은 일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강승재가 내연녀의 손을 잡고 날 보러 왔을 때, 나는 고통을 참으면서 유서를 한 자 한 자 적고 있었다.

망할 시스템은 내게 남은 수명을 거둬가게 되면 몸의 장기 역시 노화한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다. 타자하는 것뿐인데도 손끝이 바늘에 찔린 것처럼 아팠다.

“마침 잘 왔네.”

나는 두 사람의 맞잡은 손을 애써 못 본 척하며 강승재에게 노트북 화면을 보여줬다.

“변호사랑 얘기 마쳤어. 뭐 더 보충할 건 없는지 확인해 봐. 내가 살아있을 때 빨리 끝내는 게 좋을 거야. 시간이란 건 원래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버리니까.”

“윤세영, 언제까지 그 지랄 떨 건데?”

유언이라는 두 글자를 본 강승재는 버럭 화를 냈다.

“겨우 약 한 알일 뿐이잖아. 왜 자꾸 당신 목숨으로 날 협박하는 건데? 이러는 거 재미있어?”

삼 일 차인데 강승재는 여전히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여겼다.

강승재는 내가 나의 첫사랑 박은우와 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시스템과 거래했다고 그에게 거짓말을 한 거라고 믿고 있었다.

강승재가 보기에 죽음을 앞둔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약은 오직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들만이 소유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 주위에서 권력이 가장 큰 사람은 박은우뿐이었다.

아주 오래전 일이었지만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없지는 않았다.

얼굴의 흉터를 치료할 수 있도록 최나리에게 약을 준 건 강승재가 내게 내린 첫 번째 벌이었다.

만약 내가 고개를 숙이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강승재는 아마 더 지독하게 나를 모욕할 것이다.

한 떨기 장미꽃 같은 최나리를 데리고 날 찾아온 것도 아마 그런 의도 때문일 것이다.

최나리의 옆얼굴에는 원래 붉은색의 흉터가 있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나은 상태였다. 그녀의 피부는 희고 탱탱했으며 안색도 몹시 좋았고 몸매도 일품이었다.

반대로 내 딸 소원이는 오랫동안 항암치료를 받아서 온몸의 피부가 누렜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몰골이라 조금만 힘을 줘도 어딘가 부러질 듯이 허약해 보였다.

내 눈빛에서 적개심을 발견한 강승재는 최나리를 자신의 몸 뒤로 감췄다.

“내가 몇 번이나 얘기했잖아. 나리는 스물네 살이라고. 이건 나리가 유명해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야. 사람이 왜 그렇게 속이 좁아? 나리가 꿈을 이룰 수 있게 행복을 빌어 주면 안 돼?”

그는 대놓고 혐오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소원이가 그렇게 소중하다면 박은우 찾아가서 약을 달라고 하면 되잖아? 괜히 나리에게 화내지 마. 나리는 당신한테 잘못한 거 없으니까.”

그 순간 강승재의 모습이 한없이 낯설게 느껴졌다.

5년 전 날 좋아했던 그의 모습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의 강승재는 내가 모욕을 당하면 내 편을 들어주면서 날 응원해 주었고, 내가 출국하여 콘테스트에 참석할 수 있도록 밤을 새우면서 일하여 내 교통비를 모으기도 했다.

난 단 한 번도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최나리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최나리는 흉터 있는 얼굴로 회사에 찾아와 청소부 면접을 봤다. 강승재는 최나리를 보더니 통곡을 했고, 곧바로 그녀를 자신의 곁에 두고 지켜줬다.

나는 그제야 강승재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최나리라는 걸 깨달았다. 그의 가장 큰 꿈은 최나리가 유명한 여배우가 될 수 있게 그녀를 돕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흉터는 그의 꿈을 가로막는 아주 큰 장애물이었다.

최나리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강승재는 딸의 목숨을 대가로 최나리의 흉터를 치료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너그러이 최나리의 행복을 빌어줄 수 있을까?

나는 주머니 안에 손을 넣어 미리 준비해 두었던 나이프를 쥐었다.

그런데 내가 손을 쓰기도 전에 의사가 헐레벌떡 뛰어와서 응급 상황이라고 알려줬다.

딸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 지금 당장 응급처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뭘 넋 놓고 있어?”

강승재는 눈이 벌게져서 내 멱살을 잡고 윽박질렀다.

“얼른 박은우 찾아가서 약 받아와! 소원이 죽는 꼴 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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