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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만약 내게 남은 수명이 있었다면 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 수명을 대가로 약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4일밖에 남지 않았다. 겨우 4일로는 시스템에서 제공하는 가장 싼 물건도 얻을 수 없었다.

강승재는 힘이 아주 셌다. 나는 그의 손아귀에서 숨을 쉴 수 없었고 결국 눈앞이 깜깜해졌다.

다시 깨어났을 때는 병상 위에 누워있는 상태였다.

“연기한 거지?”

날 실신하게 만든 강승재는 같잖다는 듯이 말했다.

“당신 겨우 스물여섯이야. 여든여섯이 아니라고.”

나는 더는 그와 논쟁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의 내겐 칼을 들어 최나리의 얼굴에 흉터를 남길 힘조차 없었다.

“소원이 보러 갈 거야.”

나는 버둥거리면서 일어나려고 했는데 중심을 채 잡기도 전에 강승재가 날 밀었다.

“소원이는 위급한 상황에서 벗어났어.”

그는 날 힐끗 바라보았다.

“약 가져오기 전까지 소원이 볼 생각하지 마. 소원이도 너처럼 무책임한 엄마는 필요하지 않을 테니까.”

강승재가 보기에 소원이가 아직도 병마에 시달리는 건 전부 내 책임이었다.

그는 내가 박은우에게 몸을 팔아서 약을 받아오는 걸 원치 않기 때문에 소원이가 아직도 병을 앓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최나리에게 약을 준 건 그의 고집스러운 꿈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니 우리 모녀가 양보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제야 강승재가 뼛속까지 이기적인 사람임을 깨달았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약은 한 알뿐이야.”

나는 폐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견디며 설명했다.

숨 한 번 쉬는 것뿐인데도 기도와 폐가 불에 타는 듯 아팠다. 난 내 삶의 끝자락에서 이런 고통을 느낄 줄은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말도 안 돼.”

강승재의 날카로운 눈빛이 내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예전의 강승재는 내 안색만 봐도 어떤 곳이 좋지 않은지를 눈치채고 금방 약을 챙겨와서 날 돌봐주었다.

그러나 지금의 강승재는 곧 죽음을 앞둔 나를 보고도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너랑 겨우 한 번 잤는데 박은우가 널 포기했다고?”

그는 조롱 섞인 말투로 말했다.

“하긴. 넌 아이도 낳은 유부녀니까 아래가 헐렁했겠지. 약이라도 먹어서 좀 잘 조여봐.”

그에게 있어 난 아무런 가치도 없었다.

누군가 나와 강승재가 싸우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서 인터넷에 게시했고 그 영상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박은우가 언급됐기 때문에 박은우의 팬들은 매우 흥분했다. 그들은 당장이라도 날 찾아와서 죽일 기세였다.

박은우는 얼굴도 잘생겼고 돈도 많았다. 전형적인 재벌 2세라고 할 수 있었다.

반대로 나는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은 아줌마였기에 박은우에게 환상을 품는 것마저도 큰 죄였다.

영상을 본 나는 그제야 내가 얼마나 빠르게 늙었는지를 깨달았다.

겨우 3일 지났을 뿐인데 피부는 50대처럼 축 늘어졌고 귀밑머리도 희끗희끗했다.

늙고 못생긴 나를 네티즌들은 늙은 아줌마라고 부르며 나처럼 염치도 모르고 바람을 피우려는 사람은 고통스럽게 죽어야 마땅하다고 저주했다.

어떻게 죽는 게 고통스럽게 죽는 걸까?

난 이미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데 말이다. 죽음은 오히려 내게 일종의 해방이었다.

친구는 내 처지를 안타까워하면서 자기가 처리해 주겠다고 했다.

친구에게는 돈만 쓰면 나에 대한 부정적인 것들을 전부 삭제해 줄 수 있는 루트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됐다고 했다.

어차피 내게는 3일밖에 남지 않았다. 그 어떤 욕설이나 저주도 내게는 무의미했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내가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두려워할 리가 없지 않은가?

차라리 그 돈으로 소원이를 치료해 주는 편이 나았다.

나는 그동안 강승재를 도와주며 몇십억의 재산을 모았다. 그 정도면 평생 아무 걱정 없이 살 줄 알았는데 소원이가 병을 앓게 되면서 몇십억은 턱도 없이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다.

소원이를 살리려면 돈이 필요했다.

“소원이 어머님, 계세요?”

화장실에 숨어서 피를 토하고 있을 때, 간호사가 날 찾아왔다.

“소원이가 아빠, 엄마를 보고 싶대요. 얼른 가보세요.”

기뻐하기도 전에, 나는 간호사의 암시를 알아들었다.

병실에 도착해 보니 소원이는 외롭게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소원이의 곁을 지켜주면서 소원이를 돌봐야 했던 강승재는 어디에도 없었다.

소원이를 만날 생각은 하지 말라며 내게 으름장을 놓던 강승재 본인은 정작 소원이가 안중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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