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손을 뻗어 배를 어루만지며 이미 하늘나라로 간 아이한테 몰래 얘기했다.‘봤지? 너한테 손을 댄 나쁜 사람은 이미 벌을 받았단다.’이내 문을 닫고 침대에 앉아 물컵을 바라보았다.최지현이 나타난 이후부터 송연아는 병원 음식을 입에 대지도 않고 오로지 오은화가 가져다준 것만 먹었다.원래 최지현의 목표는 그녀였지만, 뜻하지 않게 강세헌이 마시게 되어 다소나마 재앙은 면한 셈이었다.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심재경에게 전화를 걸어 강세헌의 상황을 설명해 줬다.“정 안 되면 여자를 찾아줘요. 물론 약을 먹여줘도 되고요.”최지현이 그녀를 노린 이상 독한 약을 사용했을 게 뻔했다.아까 강세헌의 모습도 상태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심재경은 한동안 침묵하더니 대답했다.“알았어.”송연아는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왜인지 잠이 오지 않아 침대에서 뒤척이기만 했다....한편, 심재경도 발 빠르게 강세헌에게 여자를 찾아줬다.“연아가 그러는데 네가 약 때문에 얼른 욕구를 해소하지 않으면 병날지도 모른대. 나한테 여자를 찾아서 보내라고 했거든? 아주 깨끗한 사람이니까 걱정 안 해도 돼.”소파에 앉아 있는 강세헌의 얼굴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벌겋게 달아올랐고, 이마를 가린 앞머리 너머로 깊고 흐릿한 눈동자가 보일 듯 말 듯 했다. 활짝 풀어헤친 셔츠 아래로 매력적인 쇄골과 탄탄한 가슴이 어렴풋이 드러났다. 그는 꽉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뭐라고? 송연아가 여자를 찾아서 보내라고 했다고?”심재경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아니면 약 때문에 고생하는지 내가 무슨 수로 알아? 연아가 전화 와서 얘기해줬어. 아마도 네가 억지로 참다가 몸이라도 상할까 봐 걱정해서 그런 것 같은데.”‘하!’강세헌이 주먹을 불끈 쥐자 뼈에서 우드득하는 소리가 났다. 이게 걱정하는 건가? 걱정한다는 사람이 대놓고 원나잇 상대를 찾아주다니?빌어먹을 여자 같으니라고! 억지로 참다가 몸이라도 상할까 봐 걱정되면 왜 본인이 직접 나서지 않는단 말이지?그는 화가 나서 뚜껑이 열릴 지경이었다.
막아선 사람은 백수연이었다. 송태범은 송예걸을 위해 송연아에게 사정을 하러 왔지만 송연아는 끝까지 도와주지 않았기에 이제 그의 아들은 감옥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물론 형벌이 크지는 않아서 감옥에 오래 있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기록이 남기 때문에 나중에 학업을 마친다고 해도 직업을 찾는 데에서 많은 제한을 받을 것이다.백수연은 짜증도 나고 화도 났다. 그녀는 끝까지 도와주지 않는 송연아가 이기적이고 차가운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너무도 원망스러웠다.백수연이 오늘 이 자리에 나타난 것도 송연아를 난처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었으며 심지어 기자까지 동원해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무릎을 꿇은 것이다!백수연은 여론몰이를 하고 싶었다. 사람들에게 송연아가 불효자라는 걸 알리고 싶었고 자신의 동생이 죽는 꼴을 보면서도 끝까지 도와주지 않는 나쁜 여자라는 걸 전 국민에게 보여주고 싶었다.“예걸이는 네 동생이야, 어떻게 그렇게 매정하게 굴 수가 있어? 양심은 있는 거야? 너한테 친동생은 예걸이 하나뿐이잖아…”백수연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말했고 세상에서 제일 억울한 사람처럼 굴었다.그녀가 이렇게 난동을 부리자 병원 입구에 구경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잘잘못을 떠나 어른이 무릎까지 꿇은 모습만 보면 사람들은 당연히 무릎 꿇은 쪽을 동정하게 되며 거기에 백수연의 기막힌 연기까지 더해져서 모든 원망의 눈초리는 송연아에게 향했다.사람들은 너도나도 수군거리기 시작했으며 일부 정의 사자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은 송연아에게 손가락질까지 했다.“너무 철이 없는 거 아니에요? 어떻게 어른을 무릎 꿇게 만들어요?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심성이 너무 독하네요?”이 말을 들은 백수연이 얼른 말을 보탰다.“동생이 괴롭힘을 당하는데 분명히 도와줄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서 안 도와주고 있어요. 누나라는 사람이!”한편, 송연아는 차가운 눈으로 백수연의 기막힌 연기를 감상하고 있었으며 무릎을 꿇은 그녀를 뒤로한 채, 돌아서서 떠나려고 했다.이때, 백수연이 송연아의 다리를 부둥켜안고 끝까지 그녀를
백수연이 계속 따라붙으려고 하자 심재경이 그녀를 보고 경고했다.“계속 이렇게 난동을 부리면 경찰에 신고할 겁니다!”그 말에 백수연은 그제야 포기하고 떠났고 심재경이 송연아를 자신의 차에 태우며 물었다.“어떻게 된 거야? 내가 퇴원 수속해준다고 했잖아? 왜 혼자 퇴원한 거야?”“한시라도 빨리 병원에서 나가고 싶었어요.”송연아가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그럼 지금 집에 바래다줄까?”“네.”별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두 사람은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았고 집 앞에 도착하자 차를 세운 심재경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송연아에게 말해주기로 결정했다.“어제 네가 말한 대로 강세헌에게 여자를 붙여줬는데 그 여자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어.”전혀 예상하지 못한 송연아가 고개를 벌떡 들면서 자신도 모르게 좋아하고 있었지만 겉으론 차가운 목소리로 대꾸했다.“그래요?”“그래, 내가 설마 너한테 거짓말을 하겠어?”송연아는 심재경을 믿고 있기에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고 이때, 심재경이 그녀를 불렀다.“연아야, 안이슬이 정말 너에게 연락한 적 없어?”심재경이 송연아를 빤히 쳐다보면서 묻자 송연아가 그의 눈을 피하면서 대답했다.“없어요…”송연아는 심재경에서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안이슬이 그녀의 상황을 얘기하지 말라고 송연아에게 신신당부했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안이슬은 송연아의 선배이고 심재경과 동기였으며 심재경이 좋아하는 여인이었다. 두 사람은 대학생 시절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커플이었는데 나중에 헤어지고 나서 안이슬이 떠나버린 것이다.심재경은 안이슬을 오랫동안 찾았지만 번번이 실패했었다.“이슬이가 혹시 너에게 연락하면 나한테 꼭 말해줘. 헤어졌다고 해도 뭔가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이렇게 아무 말 없이 떠나는 건 받아들일 수가 없어.”심재경의 눈빛이 어두워졌고 송연아는 그런 심재경을 보며 너무 미안했기에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미 안이슬과 약속한 일이라 절대 얘기할 수가 없었다.송연아가 별장으로 들어서자 집을 나서려던 오은화와 마주쳤고
평소에 늘 차분한 모습이었던 오은화가 갑자기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이자 송연아가 하던 업무를 내려놓고 물었다.“아주머니, 무슨 일이에요?”“얼른 확인해 봐요.”오은화가 핸드폰을 송연아에게 건넸고 송연아가 확인해 보니 오전에 있었던 일을 누군가가 인터넷에 올린 것이었다. 앞뒤 상황을 다 자른 채, 그녀를 악독한 나쁜 여자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그녀는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누구 짓인지 알 것 같았으며, 백수연이 오전에 난동을 부린 것도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 벌인 짓일 것이다. 인터넷이 발달된 지금,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는 건 너무도 쉬운 일이었으며 돈으로 퍼트리기만 하면 생각 없이 떠드는 네티즌들은 보는 것만 믿을 뿐, 사실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뇌를 거치지 않는 댓글들은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 수도 있었다.전에 뉴스에서 봤는데 한 여자아이가 아버지에게 반찬을 가져다드리려고 배달 아저씨에게 배달을 부탁했는데 감사의 표시로 배달 아저씨에게 2만 원을 드렸고 아저씨는 마음이 기특한 여자아이가 귀여워서 돈을 받지 않았다. 그래도 마음이 불편한 여자아이가 아저씨에게 2만 원어치 핸드폰 요금을 충전해 줬는데 네티즌들은 액수가 너무 적다고 아이에게 질타를 하고 욕을 퍼부었으며 결국 여론의 힘에 눌린 아이가 자살을 선택했다.네티즌들은 칼만 들지 않았을 뿐, 다들 살인자나 마찬가지였고 이게 바로 백수연이 원하는 효과일 것이다. 여론의 힘으로 송연아에게 압박을 가하고 싶겠지만 송연아는 그렇게 속이 좁은 사람이 아니었기에 이 정도로는 전혀 흔들리지 않을 것이며 네티즌들로부터 자신을 잘 지켜낼 것이다.“어떻게 저런 사람이 있어! 참 어이가 없네! 어떻게 저렇게 악독한 말을 할 수가 있어! 사람한테 저주까지 하다니!”화가 잔뜩 난 오은화가 호통을 쳤고 동영상 아래에는 송연아에 대한 질타로 가득했기에 오은화가 봐도 너무 분했지만 송연아는 최대한 차분한 얼굴을 유지하며 오은화에게 미소를 보였다.“신경 쓰지 마세요. 어차피 사실도 아닌데요 뭐. 천벌
강세헌이 저녁이 되어서도 돌아오지 않았지만 송연아는 딱히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녀는 일을 하지 않았기에 별장에서 인터넷상에서 자문 의사 알바를 하면서 건강 회복에 신경을 썼으며 밖에 나가지도 않고 동영상 관련 기사에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강세헌은 며칠 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았기에 지금이 도망갈 기회라고 생각한 송연아가 오은화를 보며 말했다.“세탁소에는 제가 직접 다녀올게요.”“제가 다녀올게요, 사모님.”오은화의 말에 송연아가 둘러댔다.“바람 좀 쐬고 싶어서 그래요. 돌아오는 길에 챙겨오면 돼요.”사실 그녀는 옷을 챙겨 바로 떠날 계획이었다. 송연아는 오은화를 빤히 쳐다보며 손을 뻗어 오은화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아주머니, 아주머니가 계속 마음에 걸리네요.”“그게 무슨 말이에요? 다시는 안 볼 사람도 아니잖아요.”오은화가 웃으면서 대답하자 아무 설명도 하지 못하는 송연아는 그저 가볍게 웃다가 집을 나섰다.세탁소에 도착하자마자 송연아의 핸드폰이 울렸고 가게로 들어가려고 하다가 일단 전화부터 받았다.“연아야, 나 기억해?”“이 교장 선생님.”한참 생각하던 송연아가 그제야 떠오른 듯 대답하자 이 교장이 말을 이어갔다.“맞아, 나야. 내 남편이 약물 연구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잖아. 남편 회사에 약물 개발에 성공해서 저녁에 연회가 열리는데 독무를 추는 선생님이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무대에 설 수가 없게 되었어. 그래서 갑자기 네가 생각났거든. 넌 춤을 잘 추니까 충분히 독무를 소화해낼 수 있을 거야…”“저기… 선생님, 전 무대에 설 수 없어요.”송연아가 이 교장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임신한 그녀는 힐을 신고 춤을 출 수가 없었으며 더군다나 라틴 댄스는 열정적이고 옷도 꽉 끼는 복장이기에 볼록하게 튀어나온 배가 눈에 튈 것이다.“그래?”이 교장이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죄송합니다, 선생님.”“너 저번에 보니까 피아노도 잘 치는 거 같은데 그럼 혹시 피아노 연주 좀 부탁해도 될까? 일부러 너를 찾는 게 아니라 시간 상으로 다 준비
관심이 전혀 없던 강세헌은 왕호경의 말에 고개를 들어 무대 위를 쳐다보았고 화려한 불빛 아래 아름다운 한 여인이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눈썹을 치켜올리면서 송연아의 의외의 모습을 지켜보았다.송연아가 이런 장소에 나타날 줄도 몰랐고 더군다나 그녀가 피아노를 칠 줄 알 거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다.“송연아 씨가 재능이 많거든요. 제 와이프가 그러는데 춤도 엄청 잘 춘대요.”왕호경의 말에 강세헌은 무대 위를 빤히 쳐다보았다. 송연아의 가느다란 손이 피아노에 놓인 순간, 손가락으로 건반을 꾹 누르더니 첫 음절이 새어 나왔고 잇따라 편하고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피아노에 대해 전혀 일가견이 없는 왕호경은 강세헌과 자신의 기쁨을 나누고 싶은 생각뿐이었다.“이 약물을 개발하기 위해 신경을 엄청 많이 썼어요. 그리고 강 대표님이 적절한 타이밍에 거금을 투자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빨리 개발해 내지도 못했을 겁니다.”오늘 강세헌이 이 자리에 나타난 건, 그가 투자자였기 때문이고 이 회사에 지분이 있을 뿐만 아니라 발언권도 있었다.“나중에 판매 가격도 회의 열어 정해야 하는데 혹시 모레쯤 시간 되시나요?”왕호경이 구구절절 얘기했지만 강세헌은 그의 말이 전혀 들리지도 않았으며 시선은 무대 위에 있는 송연아에게 꽂혀 있었다.왕호경은 음악 감상을 할 줄 몰랐지만 강세헌은 송연아의 연주가 얼마나 완벽하고 이 분위기에 얼마나 어울리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연주하는 곡은 마치 듣고 있는 사람에게 꿈만 있으면 뭐든지 가능하다는 희망을 주고 있는 듯했다.이는 강세헌이 처음으로 송연아를 똑바로 직시하는 거였고 그녀의 능력을 인정하는 순간이었다.그녀는 아름다운 외모를 갖췄을 뿐만 아니라 의학에도 일가견이 있고 춤에 피아노까지 칠 줄 알았으며 강세헌이 직접 두 귀로 듣지 않았다면 그녀의 피아노 실력이 이 정도로 좋을 거라고 믿지 못했을 것이다.연주가 끝나자 열렬한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고 안경을 쓴 한 남성은 매우 만족한 듯 힘찬 박수를
송연아는 이제야 강세헌이 이 교장 남편의 투자자라는 것이 떠올랐다. 그가 이곳에 나타나는 건 아주 당연한 일이란 말이다.‘나 진짜... 이렇게 중요한 일을 잊으면 어떡해.’“대답 안 해?”휴대폰 건너편에서 재촉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알겠어요.”송연아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안경 낀 남자에게 말했다.“죄송하지만 제가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아요.”송연아는 성큼성큼 길가에 세워진 차를 향해 걸어갔다. 그녀의 손이 뒷좌석의 문에 앉은 순간 한기 서린 강세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앞에 앉아요.”송연아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조수석에 올라탔다. 그러자 강세헌이 기다렸다는 듯이 잔소리를 늘어놓았다.“연아 씨, 조용히 지내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에요?”송연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어쩐지 강세헌이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내가 조용히 지내지 않으면 시끄럽게 지냈다는 거야? 이 사람은 도대체 왜 나를 괴롭히지 못해서 안달인 건데.”“시비 걸지 마세요.”송연아는 안전 벨트를 메며 말했다.강세헌은 말을 듣지 않는 송연아도, 그녀의 앞에서만 예민해지는 자신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와 처음 만나서부터 지금까지, 너무 많은 화를 낸 나머지 건강에 적신호가 올 지경이었다.“앞으로 절대 다른 사람한테 미혼이라고 말하지 마요.”강세헌은 애써 분노를 억누르며 말했다. “네네~ 알겠어요.”곧 떠날 마당에 강세헌을 건드려 나쁜 인상을 남길 필요는 없었기에, 송연아는 순순히 대답했다. 만족스러운 대답에 강세헌의 잔뜩 구겨진 미간도 드디어 펴졌다. 그렇게 두 사람은 오래간만에 싸우지 않고 화목하게 별장으로 돌아갔다.차가 별장 앞에 서서히 멈춰서고 송연아가 이만 내리려고 했을 때, 강세헌이 예고 없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송연아는 놀란 토끼 눈이 되어서 그를 바라봤다.“뭐예요?”강세헌은 요즘 홧김에 연속 외박을 했다. 아내라는 사람이 어떻게 자기 남편에게 여자를 소개해달라는 말을 심재경에게 할 수 있는지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피부가 하얀 것은 진작에 알았지만, 이토록 부드러운 줄은 또 몰랐다. 깃털이 짓궂게 간지럽히는 듯한 이상한 느낌이 온몸을 휘감았다. 강세헌은 이런 느낌이 너무나도 황홀했다.송연아는 눈을 크게 뜬 채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게... 무슨 상황이지? 아, 안돼. 지금은 안돼!’송연아는 지금의 몸 상태로 이러한 행위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강세헌은 이미 이성을 잃은 듯 반항을 하면 할수록 더 강하게 압박할 뿐이었다.송연아는 어쩔 수 없이 큰마음 먹고 강세헌의 입술을 꽉 깨물었다. 예상치 못한 통증에 손목을 포박하고 있던 힘이 약해졌고, 그녀는 이참에 힘껏 강세헌을 밀어냈다. 그리고 분노 섞인 시선으로 물었다.“강세헌 씨, 이게 무슨 뜻이에요? 제가 그렇게 만만해요? 함부로 대할 수 있는 가벼운 여자인 것 같냐고요?”강세헌은 몽롱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아니에요?”송연아는 손을 흠칫 떨었다. 자칫 그의 뺨을 향해 사정없이 후려갈길 뻔했다. 화가 나기는 하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에게는 화를 낼 만한 자격이 없었으니 말이다.“아니에요! 저가 남자를 만난 적 있는 건 사실이지만 딱 한 명뿐이었어요. 저는 가벼운 여자가 아니에요.”송연아는 이성을 되찾고 차분한 말투로 말했다. 지금 따져 물어봤자 어이없는 대답만 돌아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당신은 제 아내예요. 당신을 어떻게 대할지는 제 권한이에요.’라던가... 반대로 차분하게 대하면 이 불편한 대화를 더 빨리 끝낼 수 있었다.“그 남자 다시는 만나지 마요.”강세헌도 똑같이 차분한 말투로 말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송연아가 얌전히 아내 노릇을 하는 것이다. 한 명이든 두 명이든 그녀가 다른 남자와 만나는 것은 싫었다. 그녀는 오직 그의 것이어야만 했으니까.송연아는 ‘그 남자’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었다. 그날 밤을 제외하고는 만난 적도 없었다. 두 사람 사이의 연결고리라고는 태어나지도 못한 아이뿐이다. 그래서 그녀는 미련 없이 대답했다.“알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