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세헌이 저녁이 되어서도 돌아오지 않았지만 송연아는 딱히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녀는 일을 하지 않았기에 별장에서 인터넷상에서 자문 의사 알바를 하면서 건강 회복에 신경을 썼으며 밖에 나가지도 않고 동영상 관련 기사에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강세헌은 며칠 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았기에 지금이 도망갈 기회라고 생각한 송연아가 오은화를 보며 말했다.“세탁소에는 제가 직접 다녀올게요.”“제가 다녀올게요, 사모님.”오은화의 말에 송연아가 둘러댔다.“바람 좀 쐬고 싶어서 그래요. 돌아오는 길에 챙겨오면 돼요.”사실 그녀는 옷을 챙겨 바로 떠날 계획이었다. 송연아는 오은화를 빤히 쳐다보며 손을 뻗어 오은화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아주머니, 아주머니가 계속 마음에 걸리네요.”“그게 무슨 말이에요? 다시는 안 볼 사람도 아니잖아요.”오은화가 웃으면서 대답하자 아무 설명도 하지 못하는 송연아는 그저 가볍게 웃다가 집을 나섰다.세탁소에 도착하자마자 송연아의 핸드폰이 울렸고 가게로 들어가려고 하다가 일단 전화부터 받았다.“연아야, 나 기억해?”“이 교장 선생님.”한참 생각하던 송연아가 그제야 떠오른 듯 대답하자 이 교장이 말을 이어갔다.“맞아, 나야. 내 남편이 약물 연구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잖아. 남편 회사에 약물 개발에 성공해서 저녁에 연회가 열리는데 독무를 추는 선생님이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무대에 설 수가 없게 되었어. 그래서 갑자기 네가 생각났거든. 넌 춤을 잘 추니까 충분히 독무를 소화해낼 수 있을 거야…”“저기… 선생님, 전 무대에 설 수 없어요.”송연아가 이 교장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임신한 그녀는 힐을 신고 춤을 출 수가 없었으며 더군다나 라틴 댄스는 열정적이고 옷도 꽉 끼는 복장이기에 볼록하게 튀어나온 배가 눈에 튈 것이다.“그래?”이 교장이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죄송합니다, 선생님.”“너 저번에 보니까 피아노도 잘 치는 거 같은데 그럼 혹시 피아노 연주 좀 부탁해도 될까? 일부러 너를 찾는 게 아니라 시간 상으로 다 준비
관심이 전혀 없던 강세헌은 왕호경의 말에 고개를 들어 무대 위를 쳐다보았고 화려한 불빛 아래 아름다운 한 여인이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눈썹을 치켜올리면서 송연아의 의외의 모습을 지켜보았다.송연아가 이런 장소에 나타날 줄도 몰랐고 더군다나 그녀가 피아노를 칠 줄 알 거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다.“송연아 씨가 재능이 많거든요. 제 와이프가 그러는데 춤도 엄청 잘 춘대요.”왕호경의 말에 강세헌은 무대 위를 빤히 쳐다보았다. 송연아의 가느다란 손이 피아노에 놓인 순간, 손가락으로 건반을 꾹 누르더니 첫 음절이 새어 나왔고 잇따라 편하고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피아노에 대해 전혀 일가견이 없는 왕호경은 강세헌과 자신의 기쁨을 나누고 싶은 생각뿐이었다.“이 약물을 개발하기 위해 신경을 엄청 많이 썼어요. 그리고 강 대표님이 적절한 타이밍에 거금을 투자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빨리 개발해 내지도 못했을 겁니다.”오늘 강세헌이 이 자리에 나타난 건, 그가 투자자였기 때문이고 이 회사에 지분이 있을 뿐만 아니라 발언권도 있었다.“나중에 판매 가격도 회의 열어 정해야 하는데 혹시 모레쯤 시간 되시나요?”왕호경이 구구절절 얘기했지만 강세헌은 그의 말이 전혀 들리지도 않았으며 시선은 무대 위에 있는 송연아에게 꽂혀 있었다.왕호경은 음악 감상을 할 줄 몰랐지만 강세헌은 송연아의 연주가 얼마나 완벽하고 이 분위기에 얼마나 어울리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연주하는 곡은 마치 듣고 있는 사람에게 꿈만 있으면 뭐든지 가능하다는 희망을 주고 있는 듯했다.이는 강세헌이 처음으로 송연아를 똑바로 직시하는 거였고 그녀의 능력을 인정하는 순간이었다.그녀는 아름다운 외모를 갖췄을 뿐만 아니라 의학에도 일가견이 있고 춤에 피아노까지 칠 줄 알았으며 강세헌이 직접 두 귀로 듣지 않았다면 그녀의 피아노 실력이 이 정도로 좋을 거라고 믿지 못했을 것이다.연주가 끝나자 열렬한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고 안경을 쓴 한 남성은 매우 만족한 듯 힘찬 박수를
송연아는 이제야 강세헌이 이 교장 남편의 투자자라는 것이 떠올랐다. 그가 이곳에 나타나는 건 아주 당연한 일이란 말이다.‘나 진짜... 이렇게 중요한 일을 잊으면 어떡해.’“대답 안 해?”휴대폰 건너편에서 재촉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알겠어요.”송연아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안경 낀 남자에게 말했다.“죄송하지만 제가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아요.”송연아는 성큼성큼 길가에 세워진 차를 향해 걸어갔다. 그녀의 손이 뒷좌석의 문에 앉은 순간 한기 서린 강세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앞에 앉아요.”송연아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조수석에 올라탔다. 그러자 강세헌이 기다렸다는 듯이 잔소리를 늘어놓았다.“연아 씨, 조용히 지내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에요?”송연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어쩐지 강세헌이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내가 조용히 지내지 않으면 시끄럽게 지냈다는 거야? 이 사람은 도대체 왜 나를 괴롭히지 못해서 안달인 건데.”“시비 걸지 마세요.”송연아는 안전 벨트를 메며 말했다.강세헌은 말을 듣지 않는 송연아도, 그녀의 앞에서만 예민해지는 자신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와 처음 만나서부터 지금까지, 너무 많은 화를 낸 나머지 건강에 적신호가 올 지경이었다.“앞으로 절대 다른 사람한테 미혼이라고 말하지 마요.”강세헌은 애써 분노를 억누르며 말했다. “네네~ 알겠어요.”곧 떠날 마당에 강세헌을 건드려 나쁜 인상을 남길 필요는 없었기에, 송연아는 순순히 대답했다. 만족스러운 대답에 강세헌의 잔뜩 구겨진 미간도 드디어 펴졌다. 그렇게 두 사람은 오래간만에 싸우지 않고 화목하게 별장으로 돌아갔다.차가 별장 앞에 서서히 멈춰서고 송연아가 이만 내리려고 했을 때, 강세헌이 예고 없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송연아는 놀란 토끼 눈이 되어서 그를 바라봤다.“뭐예요?”강세헌은 요즘 홧김에 연속 외박을 했다. 아내라는 사람이 어떻게 자기 남편에게 여자를 소개해달라는 말을 심재경에게 할 수 있는지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피부가 하얀 것은 진작에 알았지만, 이토록 부드러운 줄은 또 몰랐다. 깃털이 짓궂게 간지럽히는 듯한 이상한 느낌이 온몸을 휘감았다. 강세헌은 이런 느낌이 너무나도 황홀했다.송연아는 눈을 크게 뜬 채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게... 무슨 상황이지? 아, 안돼. 지금은 안돼!’송연아는 지금의 몸 상태로 이러한 행위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강세헌은 이미 이성을 잃은 듯 반항을 하면 할수록 더 강하게 압박할 뿐이었다.송연아는 어쩔 수 없이 큰마음 먹고 강세헌의 입술을 꽉 깨물었다. 예상치 못한 통증에 손목을 포박하고 있던 힘이 약해졌고, 그녀는 이참에 힘껏 강세헌을 밀어냈다. 그리고 분노 섞인 시선으로 물었다.“강세헌 씨, 이게 무슨 뜻이에요? 제가 그렇게 만만해요? 함부로 대할 수 있는 가벼운 여자인 것 같냐고요?”강세헌은 몽롱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아니에요?”송연아는 손을 흠칫 떨었다. 자칫 그의 뺨을 향해 사정없이 후려갈길 뻔했다. 화가 나기는 하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에게는 화를 낼 만한 자격이 없었으니 말이다.“아니에요! 저가 남자를 만난 적 있는 건 사실이지만 딱 한 명뿐이었어요. 저는 가벼운 여자가 아니에요.”송연아는 이성을 되찾고 차분한 말투로 말했다. 지금 따져 물어봤자 어이없는 대답만 돌아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당신은 제 아내예요. 당신을 어떻게 대할지는 제 권한이에요.’라던가... 반대로 차분하게 대하면 이 불편한 대화를 더 빨리 끝낼 수 있었다.“그 남자 다시는 만나지 마요.”강세헌도 똑같이 차분한 말투로 말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송연아가 얌전히 아내 노릇을 하는 것이다. 한 명이든 두 명이든 그녀가 다른 남자와 만나는 것은 싫었다. 그녀는 오직 그의 것이어야만 했으니까.송연아는 ‘그 남자’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었다. 그날 밤을 제외하고는 만난 적도 없었다. 두 사람 사이의 연결고리라고는 태어나지도 못한 아이뿐이다. 그래서 그녀는 미련 없이 대답했다.“알겠어요.”
시선을 거둔 송연아는 고개를 숙인 채, 서운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30분 뒤 간단한 반찬과 함께 요리가 완성되었고 강세헌은 식탁 앞에 앉아 하나뿐인 밥그릇을 보자 그녀에게 물었다.“안 먹어요?”“전 배 안 고파요.”송연아는 간단하게 대답한 뒤,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고 그의 곁을 지켰다. 물론 혼인 신고밖에 안 했지만 그래도 부부였기에 송연아가 식사를 하고 있는 강세헌의 곁에 있어준 것이다.오늘 두 사람은 그 어느 때보다 사이가 좋고 다정했다.이튿날 아침, 두 사람은 아침 식사를 같이 했고 밥을 먹던 강세헌이 먼저 말을 걸었다.“나 오늘 회사로 갈 건데 가는 김에 병원에 데려다줄게요.”송연아는 자신이 이제 병원에서 근무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밥을 먹으면서 대답했다.“저 오늘 병원 안 가요.”강세헌은 그녀가 아직 완전히 건강을 회복한 게 아닌 건가 싶어서 더 묻지 않았다.“내가 연아 씨를 병원의 정규직 의사로 만들어줄 수 있어요.”“괜찮아요.”송연아가 고개를 들어 가볍게 웃었다. 과하게 친절한 강세헌의 모습이 적응되지 않았으며 예전이었다면 그녀가 감사해서 절이라도 했을 것이지만 지금은 잠시 이 일이 필요하지 않았다.강세헌은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왠지 그녀가 수상해 보였다. 만약 그녀가 강세헌의 말에 반박이라도 했으면 전혀 의심되지 않았을 것이다.실눈을 뜬 채 송연아를 빤히 쳐다보던 강세헌은 일어서서 식탁을 떠났고 송연아는 여전히 느긋하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그러다가 문 닫는 소리가 들리자 송연아가 고개를 살짝 돌렸다. 식사가 끝나자 송연아가 오은화를 보며 말했다.“조금 이따가 세탁소에 옷 가지러 갈 거예요.”“알겠습니다.”소파를 정리하고 있던 오은화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알겠다고 했고 송연아는 필요 없는 물건을 전부 버린 뒤 기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세탁소로 향했다.세탁을 맡긴 옷들을 챙겨 차로 돌아오자마자 기사에게 말했다.“기사님, 저 백화점 잠깐 다녀올래요.
비서가 걸어온 전화였고 이미 확인했다.“송연아 씨가 티켓을 끊은 기록이 없습니다.”송연아는 한혜숙을 먼저 보내주었고, 그녀는 본인인증이 필요하거나 기록 확인이 가능한 교통수단은 절대 타지 않을 것이다.그녀는 이미 오래 전에 중고차를 구입하여 쇼핑몰 아래 주차장에 주차해 놓았고, 모든 카메라를 피하고 도망치기 위해 경로도 계획했다.그녀가 쇼핑몰을 선택한 이유는 우선 쇼핑몰이 붐비기 때문이었고 변장하여 감시카메라를 피할 수 있었다.그녀의 흔적을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수사를 하고 싶어도 시작할 방법이 없었다.강세헌은 쇼핑몰 쪽의 모든 감시카메라를 살펴봤지만 그녀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비서와 운전기사는 감히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강세헌의 표정은 얼음같이 차가웠다.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지만 불안하게 만드는 분위기는 폭풍우가 임박한 하늘처럼 산소부족으로 인해 사람들로하여금 숨을 헐떡이게 만들었다.“사람을 얼마든지 동원해서라도 그녀를 찾아내!”그는 굵은 목소리로 외쳤다.“네.”비서는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운전기사는 떨면서 감히 말을 하지 못했다.그가 경계를 소홀히 한 탓에 사람이 눈앞에서 도망친 것이다.강세헌은 그에게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좋은 표정을 보여주지도 않았다.만약 그가 더 일찍 알았다면 송연아는 도망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는 무엇보다도 송연아가 싫었다!그녀는 도망쳤다.왜 도망쳤을까?그 남자와 함께 도망친 걸까?생각하면 안된다. 생각하면 할수록 그는 더 화가 났다!그가 별장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밤이 되었다.주변은 조용했다.그는 위층으로 올라가 송연아가 잠을 자는 방의 문을 열었다.내부는 청소를 해서 매우 깨끗했다. 지난 번에 들어왔을 때 그는 여전히 그녀의 물건을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녀에게 속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그는 들어가서 옷장을 열었고 뜻밖지 않게 그녀의 옷이 사라진 텅 빈 공간을 보았다.송연아가 챙길 것들은 세탁소에 가져갔고 챙기지 않을 것들도
그녀는 입술을 오물거렸다.“저 임신했어요.”한혜숙은 얼어붙었다.잠시 후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다소 믿기지 않는 말투로 물었다.“네가 임신했다고?”송연아는 고개를 끄덕였다.“강세헌의 아이야?”한혜숙은 딸이 남자친구를 사귄 적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송태범은 송연아에 대해 이 문제에서 매우 엄격했다.송연아도 매우 순결하고 자신을 아꼈다. 강세헌과 결혼하여 함께 살 뿐이었다.한혜숙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강세헌뿐이었다.송연아는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고 말할 수도 없었다.자기 배 속 아이의 아버지가 누군지 모른다고 말한다면 한혜숙이 어떻게 생각할까?한혜숙이 강세헌의 아이라고 생각한다면 당분간 그렇게 인정하려고 했다.모른다고 말해서 그녀를 걱정하게 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흠.”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감히 한혜숙 쪽을 쳐다보지 못했다.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다.한혜숙은 그녀에게 음식을 집어주며 걱정 어린 질문을 던졌다.“임신하면 많이 먹어야 하는데, 혹시 입덧해? 몇 개월 됐어?”송연아는 고개를 들고 어머니를 바라보았다.“엄마, 나 아이 낳는 거 동의해요?”그녀는 처음에 자기가 이혼했기 때문에 한혜숙이 낙태를 요구할까 봐 걱정했다.“네 애야.”한혜숙은 물론 이혼한 상황에서 낙태가 가장 좋은 선택이고 더 이상 엮일 일이 없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도 어머니이기에 아이란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슈퍼마켓에서 재고 관리자 일자리를 찾았는데 한 달에 80만 정도 나와. 월급은 높지 않지만 우리가 살기에 충분해. 너도 알다시피 내가 네 아빠랑 결혼한 이후로 일한 적이 없고 지금은 나이도 많고 직장 경험이 없기 때문에 이런 일거리밖에 찾을 수 없어. 하지만 걱정하지 마. 내가 널 잘 보살필 거야. 넌 집에서 잘 쉬어. 아이가 태어나도 강씨 집안이랑 아무 연관이 없어.”한혜숙은 송연아가 이혼한 것은 강세헌에 대한 감정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아이를 포기할 수 없어서 낳으려고 한다고 생각했
“선배.”송연아는 웃으며 다가와 그녀를 껴안았다.“이번에 도와주셔서 고마웠어요.”그녀가 이곳으로 온 이유 중에 안이슬이 여기에 있는 원인도 있었다. 물론 이건 이유 중 하나였고 또 다른 이유는 이전에 온라인으로 이 도시에서 화실을 양도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그녀는 그것을 인수하고 싶었다.송태범이 그녀에게 많은 것을 배우도록 강요했지만 미술은 그녀가 의사가 되는 것 다음으로 가장 좋아하는 것이었다.그녀는 이미 온라인으로 화실 주인과 거의 상담을 끝냈다.오늘 안이슬과 만난 뒤 그녀는 그를 만나서 협의할 것이다.“고맙긴 무슨.”안이슬은 그녀를 토닥이고 예의를 차리며 말했다.“난 그저 어머님이 오셨을 때 마중을 나갔을 뿐인데.”곧 그녀는 화제를 돌렸다.“어떻게 이곳으로 올 생각을 했어? 네 가족들은 모두 용운시에 있잖아.”송연아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말하자면 길어요.”안이슬은 더 묻지 않았다. 모두 각자의 사연이 있다.그녀가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데는 당연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너 먹고 싶은 거 마음껏 시켜. 내가 살게.”안이슬은 송연아보다 나이가 두 살이나 많았지만 두 사람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안이슬이 용운시를 떠난 후에도 두 사람은 연락을 끊지 않았다.송연아는 심재경에 대해 말하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그녀는 안이슬이 떠난 이유와 고충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선배, 여기서 잘 지냈어요?”송연아는 그녀를 쳐다보았다.“또 살이 많이 빠지셨네요.”안이슬은 웃었다.“일 때문에 너무 바빴어. 너도 알잖아, 내가 하는 일의 특성상...”송연아는 그녀를 감탄하고 있었다.그녀의 일과 그녀의 능력을.식사가 끝날 때까지 안이슬은 심재경의 이름을 꺼내지 않았다.마치 그 사람이 그녀의 삶에 나타난 적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나한테 와.”식사 후 안이슬이 말했다.송연아는 대답했다.“선배, 고마워요.”“우리 알고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