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송연아는 창문 너머로 낯익은 차 한 대를 보았다.그런데 송연아가 제대로 볼 틈도 없이 차는 출발했다.송연아가 뒤를 돌아보았고 차에서 내리는 사람이 전 집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바로 강세헌 할아버지 차였다.강세헌이 그쪽과 연락을 끊었기에 송연아는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부엌에서 살짝 덜컹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 조용했다.한혜숙은 소파에 앉아 오늘 새로 구입한 유아용품을 정리하고 있었다.송연아는 한혜숙한테 다가가서 물었다.“세헌 씨는요?”“진원우 씨랑 서재에서 얘기하고 있어.”한혜숙이 대답했다.송연아는 아기방에 가서 잠든 아이를 한번 보고는 조용히 나왔다.“가서 얘기 끝났는지 물어봐, 식사 준비는 다 됐어.”한혜숙이 말했다.송연아가 서재로 가니 방문이 반쯤 닫혀 있어, 손을 뻗어 문을 밀고 들어갔다.“그 의사는 임지훈이 처리했습니다. 고훈이 또 일을 벌였는데 어떻게 하실 생각인지요?”진원우가 말했다.강세헌은 이번에 아들을 구하려는 마음에 고훈의 아이를 붙잡아 협박만 했을 뿐 다른 격한 수단은 쓰지 않았다.과거 강세헌이었다면 이렇게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그는 예전처럼 잔인하지 않았다.게다가 아이는 해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고훈이 한 행동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그동안 너무 봐줘서 고훈이 그의 아들을 훔치는 사단까지 일어났다고 생각했다.‘감히 내 아이를 훔쳐서 연아를 힘들게 하다니!’반드시 복수해야만 했다!“사람을 시켜 그놈의 회사 내부로 들어가든지, 아니면 핵심 업무를 맡고 있는 인원을 스카우트하든지, 밤이 어두운데 사고가 안 나도록 조심하게 하든지 해.”진원우는 바로 그의 뜻을 이해했다.송연아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는 듯 문을 열고 말했다.“식사 준비가 다 됐어요. 원우 씨도 같이 저녁 식사해요.”“할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진원우는 정중하게 거절했다.송연아는 방금 대화내용을 다 들었기에 말리지 않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진
이른 아침의 햇살이 유난히 좋았다.강세헌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바로 외출했다.송연아는 집에서 두 아이를 돌보기로 했다.한혜숙은 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연아야.”한혜숙은 송연아의 자존심이 상할까 봐 눈치를 보았다.“엄마, 할 말이 있으시면 해요.”“결혼식이 좀 늦긴 했지만, 너도 이제 준비해야지.”송연아는 찬이와 놀아주며 말했다.“세헌 씨가 다 알아서 한다고 했어요. 저는 아무것도 안 해도 돼요.”송연아가 알아듣지 못하자 한혜숙은 직설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너 예쁜 신부가 되어야지 않겠어? 평소 나가 다닐 때는 가리고 다니더라도 아직 긴 세월이 남았어.”송연아는 손으로 얼굴의 흉터를 만지며 고개를 숙였다.한혜숙이 이어서 말했다.“강 서방은 신경 안 쓴다고 하겠지만 그래도 어찌 됐든 큰 흉터잖아.”“세헌 씨가 바람둥이고 무정한 사람이라면 제가 아무리 절세미인이라도 소용없어요.”한혜숙은 딸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네 말이 맞아. 외모는 중요한 거 아니야. 하지만 너도 계속 집에만 있을 건 아니잖아? 만약 일을 하게 되면 그런 흉터로 다니는 거 안 좋잖아.”송연아는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송연아도 비록 아들 둘이 아직 어리다고는 하지만, 한혜숙과 오은화가 있기에 자기의 일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내일 병원에 가볼게요.”“나도 너를 생각해서 말하는 거야.”“알아요.”송연아도 당연히 한혜숙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엉엉...”침대에 누워있던 작은아들이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송연아는 찬이를 내려놓고 작은아들한테 가봤는데 똥을 싸고 우는 것이었다.한혜숙은 뜨거운 물을 받으러 갔다.송연아가 면 기저귀를 벗겨 옆에 놓고 엉덩이를 살살 씻겨주자, 아이는 편안해하며 울음을 그쳤다.정리를 마친 한혜숙은 기저귀 씻으러 가고 송연아는 분유를 타러 갔다.그 사이에 아이가 또 울음을 터뜨리는데 송연아가 젖병을 들고 뒤돌아보니 찬이가 아이의 발을 깨물고 있었다.송연아는 작은아들을 안아 달래며 찬이에게 물었다.“왜 동생을
강세헌은 문 앞에서 송연아를 지켜보다가 들어갔다.송연아가 물었다.“저녁은 먹었어요?”강세헌은 대답하지 않고 그녀에게로 다가가서 흉터 있는 얼굴을 만졌다.송연아의 장난기가 발동되었다.“내가 이대로 당신이랑 결혼하면 사람들이 당신이 못생긴 여자랑 결혼한다고 놀리지 않을까요?”“감히 누가 놀려?”강세헌은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앞에서는 안 해도 뒷담화로 하지 않겠어요?”송연아는 그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얼른 씻어요. 난 애들한테 가볼게요.”강세헌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애들은 보는 사람이 있잖아. 그런데 오늘 좀 이상한데?”“엄마가 흉터 제거 수술을 하라고 하셨어요. 보기 흉하다고.”강세헌은 웃으며 말했다.“그렇긴 해.”송연아는 곧바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세헌 씨, 괜찮다고 하지 않았어요?”“응, 괜찮아!”“그런데 흉하다고?”‘지금 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건가? 괜찮다는 것도 그냥 하는 소리인가?’“역시 세헌 씨도 다른 남자들이랑 똑같네요. 예쁜 여자만 좋아하고. 이제야 진심이 나왔네요.”강세헌은 미간을 찌푸렸다.‘왜 아직도 이렇게 예민한 걸까? 농담일 뿐인데...’“화났어?”강세헌이 송연아를 끌어안으며 물었다.“놔요.”송연아는 얼굴을 찡그리며 몸부림쳤다.“못 놔. 신경 안 쓴다는 걸 증명해야지.”강세헌은 송연아의 얼굴에 뽀뽀하고 말했다.“나도 당신 것과 같은 흉터를 만들까? 그러면 우리 더 잘 어울리겠지?”“말이 되는 소리를 해요?”강세헌은 송연아를 감싸 안고 놓지 않았다.“난 진짜로 괜찮아. 그러니 당신도 너무 신경 쓰지 마.”“알았어요.”“지금 바로 증명해 줄까?”강세헌은 점점 더 거침없이 송연아의 잠옷 속으로 파고들었다.송연아는 움찔했다.“알았어요. 그만해요... 간지러워...”“어디가 간지러워? 내가 긁어줄게.”두 사람은 장난을 치다가 침대에 쓰러졌다.송연아의 옷은 엉망진창이 되어 헐렁했고,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다.강세헌은 그녀의 입술에 뽀뽀하더니 손을 잡아
“누군가가 강세욱과 그의 여자 친구를 빼갔습니다.”진원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강세헌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어떻게 된 거야?”“원장님 전화를 받고 바로 청산정신건강병원으로 가봤는데, 두 사람이 갇혀 있던 방의 벽에 구멍이 뚫려 있었습니다.”강세헌은 눈을 지그시 감으며 말했다.“알았어. 누가 두 사람을 데려갔는지 빨리 알아봐.”“네.”강세헌이 전화를 내려놓자, 송연아가 물었다.“무슨 일이에요?”“정신병원에 있던 강세욱과 임설이 도망갔어.”강세헌은 말하며 숟가락을 내려놓았다.“그래도 밥은 먹어야죠. 내 성의인데?”송연아가 다가와 숟가락을 다시 건네며 말했다.강세헌은 그녀를 바라보며 웃었다.“알았어, 다 먹을게.”“누구일까요?”그녀가 물었다.강세헌은 깊게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강세욱을 구하고 싶은 사람 그 노인네밖에 더 있겠어. 그런데 왜 진작 구하지 않고 지금에야 움직인 건지 모르겠어.”송연아 역시 그게 궁금했는데 도무지 알 수가 없다.“원우가 알아볼 거니까, 당신은 걱정하지 말고 먼저 올라가서 자.”“밥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릴게요. 다 먹는지 지켜볼 거예요, 낭비하면 안 되니까.”“밥 한 톨도 안 남길 거야. 당신도 한 입 먹어봐.”강세헌은 한 숟가락 떠서 송연아에게 건넸다.송연아는 더 거절할 수 없어 먹었다.아침이 되자, 강세헌은 아침도 먹지 않고 일찍 집을 나갔다.송연아는 강세헌이 강세욱이 구출된 것에 대해 화가 났을 거라는 것과 오늘 아주 바쁠 거라는 것을 알았다.그녀는 정상적으로 일어났고 오늘은 외출하지 않기로 했다.시간이 있을 때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10시가 조금 지났을 때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연구센터의 원장이 송연아를 만나고 싶다는 전화였는데 그때 큰 도움을 줬던 원장이기 때문에 거절할 수 없었다.“점심때 유가든 중식당 어때요?”“알았어요.”송연아는 흔쾌히 동의했다.전화를 내려놓자, 한혜숙이 물었다.“외출할 거야?”“네, 가봐야 해요.”“그럼 돌아
“지난번에 연아 씨가 약을 개발할 때, 정말 놀라웠어요. 당신들의 전문성과 인내심 정말로 존경해요. 미디브 연구소에 계셨고 또 최신 데이터도 가져오셔서 정말 큰 공헌을 하셨어요. 그래서 말인데 오늘 연아 씨한테 원장직을 부탁하려고 왔어요.”송연아는 원장이 자기에게 원장 자리를 맡기려 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충격에 눈이 휘둥그레졌고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망설였다.“저는 아직 원장을 하기에 많이 부족합니다.”“서둘러 대답할 필요는 없어요. 돌아가서 천천히 생각해 보세요.”원장은 그녀에게 물 한 잔을 따라주며 말했다.“원래는 부 원장한테 넘기려고 했는데 알고 보니... 다행히 전에 일어났던 일 때문에 그의 실체를 알 수 있었어요. 만약 연구센터를 그자에게 맡겼다면 그야말로 재앙이었을 거예요.”송연아는 뭐라고 할 말이 없어서 차를 한 모금 마셨다.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었기에 굳이 붙잡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생각해 보시고 언제든지 전화 주세요.”원장은 진심이었다.“잘 봐주시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생각해 보겠습니다.”“비록 아직 젊으시지만 연아 씨의 능력을 인정합니다. 연아 씨가 맡아 주신다면 우리나라의 의학 발전에 큰 힘이 될 겁니다.”원장은 연구소 내부에서 적임자를 고르지 못했다.송연아는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경험은 충분했다.원장과 헤어진 송연아는 과일을 사서 병원으로 갔다.송예걸은 잘 회복하고 있었다.그는 송연아를 보자 너무 반가웠다.“나를 잊어버린 줄 알았어.”송예걸이 불만을 털어놓았다.송연아는 그한테 바나나 껍질을 벗겨주며 말했다.“구해주지 말 걸 그랬어. 그럼 이런 불만을 안 들어도 되니까.”송예걸은 웃으며 말했다.“누나, 농담인데 진담으로 받으면 어떡해.”송연아는 의자를 옮겨 침대 옆에 앉으며 물었다.“언제 퇴원할 수 있대?”“일주일 정도 더 있으면 된다고 했어.”“알았어. 그리고 너 이식한 심장 누구 건지 알아?”“어느 기증자겠지.”어차피 더 살 수 없는 사람이었기에
“케이크 사러 왔어요?”구애린은 전혀 낯선 감이 없이 웃으며 물었다.송연아는 고개를 끄덕였다.“진원우가 너무 바빠서 나랑 놀아줄 시간이 없어요. 혼자 너무 심심한데, 저랑 같이 놀아줄래요?”구애린이 물었다.송연아는 거절할 생각은 없었지만 정말 시간이 없었다. 일을 하지 않을 때 집에서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뭐라도 할 생각은 없어요? 좋아하는 일이요, 그럼 시간도 보낼 수 있고요.”“저도 그러고 싶었는데 진원우가 먹여 살린다고 하네요.”구애린은 행복한 얼굴로 말했다.송연아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행복하다고 느낄 때 사람에게서 발산되는 빛은 보고 있는 사람까지 따뜻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왜 웃어요? 제가 말을 잘못했나요?”구애린이 물었다.“아니요. 원우 씨 좋은 사람이에요. 두 사람 너무 축하해요.”“저한테 잘해줘요. 그런데 너무 바빠서 만날 시간이 없어요. 어떤 때는 밤에 집에도 못 들어와요.”“일이 많이 바쁜가 봐요.”송연아가 말했다.“아 그거...”구애린이 또 무슨 말을 하려고 할 때 송연아의 케이크가 다 되었다.송연아는 케이크를 받아 들고 말했다.“그럼 저는 먼저 가볼게요.”“네, 들어가세요. 저는 좀 있다가 쇼핑이나 하려고요.”송연아는 케이크를 들고 문 앞으로 가더니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우리 집에 갈래요?”“좋아요.”그런데 뭔가 생각하는가 싶더니 물었다.“강세헌이 저를 보면 화내지 않을까요?”강세헌의 어머니가 그녀를 키워줬을 뿐 둘은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안 그래요.”송연아가 말하자 구애린은 안도하며 그녀를 따라갔다.그녀는 아주 자연스럽게 송연아의 팔짱을 꼈다.“뭐라고 부를까요?”“이름 부르면 돼요.”“안 돼요. 언니라고 부를게요.”“...”“비록 강세헌과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다고는 하지만 엄마가 저를 키워주셨으니 10분의 1 정도의 여동생 지분이 있는 거니까요.”구애린의 설명에 송연아는 웃었다.“성격이 참 좋네요.”집에 거의
“뭔데요?”송연아는 엄마의 긴장된 모습을 보고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갔다.“이거 봐.”한혜숙이 핸드폰을 내밀었다.핸드폰을 받아 뉴스를 보는 송연아의 미간은 점점 굳어졌다.강세헌의 할아버지가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 갔다는 소식이었다.사진도 있었는데 비록 선명하지는 않지만, 강세헌과 강의건 회장인 건 알 수 있었다.“아래 댓글을 봐. 비난이 빗발쳐.”한혜숙은 그들을 혼내주고 싶었지만, 핸드폰을 잘 다루지 못하기에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송연아는 한혜숙을 달래면서 말했다.“제가 가볼게요.”송연아는 이 문제가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을 수 있다고 느꼈다.강세헌의 능력에 이런 뉴스는 쉽게 막을 수 있었을 텐데 못 막았다는 건 무슨 음모가 있는 게 분명했다.“네가 가서 뭘 할 수 있는데?”한혜숙이 말했다.“강 회장이 병원에 갔다니까 상태를 알아봐야죠. 세헌 씨가 이대로 모든 걸 뒤집어쓸 수는 없잖아요.”“그래, 너 의사니까, 정말 아픈 건지, 아픈 척하는 건지 알아볼 수 있겠다. 얼른 가봐. 조심해서 다녀오고.”“네.”송연아는 떠나려다가 구애린이 생각나서 한혜숙에게 낮은 소리로 말했다.“엄마, 내가 데려온 손님 이름은 구애린이고 세헌 씨 어머니가 키운 아이예요. 강세헌과 아무런 혈연관계는 없지만 그래도 연계는 있어요. 게다가 지금 세헌 씨가 그쪽 강씨 가문과 연을 다 끊어서 친척도 없잖아요. 구애린 씨 성격도 좋아요. 제가 돌아오지 못하면 엄마가 잘 챙겨줘요.”한혜숙은 딸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잘했어.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 내가 알아서 할게.”송연아는 집을 나서기 전 구애린에게 말했다.“저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해서 그러는데, 걱정하지 말고 여기서 놀아요.”“알았어요.”...차에 탄 송연아는 강세헌에게 전화했다.“지금 어디예요?”“병원에 있어.”“어느 병원이에요?”강세헌은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30분 후 송연아가 병원에 도착했다.강세헌은 그녀의 등장에 놀라지 않고 물었다.
송연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강세헌이 거절했다.“그럴 시간 없어요. 할 얘기 있으면 저한테 해요.”“회장님은 송연아 씨만 만나겠다고 하셨습니다.”전 집사가 말했다.강세헌이 또 거절하려고 할 때 송연아가 말했다.“제가 만나볼게요.”강세헌은 몇 초간 침묵으로 송연아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가봐.”송연아는 전 집사를 따라 병실로 들어갔다.강의건은 침대에 기대어 있었는데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았고 얼굴은 노랗고 눈빛은 생기가 없어 보였다.“왔어? 오랜만이군.”강의건이 물었다.송연아도 정중하게 인사했다.“안녕하세요.”“넌 똑똑한 아이니까 내가 널 왜 찾는지 알겠지?”강의건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죄송합니다만, 무슨 말씀인지요?”“세헌이와 오랫동안 같이 지내더니 닮아가는구나. 내가 사람 하나는 잘 봤어. 자네를 처음 봤을 때부터 세헌이의 마음을 잡아줄 수 있을 것 같았거든. 그런데 내가 잘못하는 바람에 지금 이런 상황이 되긴 했지만. 솔직하게 얘기할게. 세욱이와 세헌이는 사촌지간인데 정말로 죽을 때까지 가둬야겠어?”송연아는 강의건이 강세욱을 살리고 싶었다면 왜 지금까지 기다렸는지 궁금했다.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충분히 기회가 있었을 텐데 말이다.“원래는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얼마 전에 뇌암을 확진 받아 이제 얼마 살지도 못하는데 이대로 죽을 수가 없어서 자네한테 부탁하네. 이미 오래 가뒀었잖아, 세욱이도 이제 제정신이 아니야. 나온다고 해도 아무것도 못 해.”송연아는 강세욱이 저지른 일을 잊지 않았기에 강세헌이 하는 일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할아버지, 세헌 씨의 성격은 할아버지도 잘 아시잖아요. 한번 결정한 건 아무도 못 말려요.”“지금은 달라, 세헌이 네 말은 들을 거야.”“할아버지 저를 너무 높이 평가하시네요.”송연아는 계속 말을 돌리며 거절했다.“이렇게 죽어가는 노인네가 부탁하는데도 안 되겠나?”강의건의 목소리가 눈에 띄게 차가워졌다.그럼에도 송연아는 전혀 물러서지 않았다.“할아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