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그동안 그가 무슨 생각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궁금해한 적은 없는 것 같았다.성공에 목을 매는 것도 어쩌면 그녀가 군의관이 되고 싶어 하는 이유와 마찬가지일 지도 모른다.결국에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이지 않겠는가?“우리 가문을 더 크게 키우고 싶고, 내 딸도 언젠가는 부잣집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어.”송태범은 송연아가 마음이 약해진 걸 알고 한 마디를 더 거들었다.그녀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자기 꿈을 위해서 딸을 희생할 수 있다는 거예요?”송태범은 거듭 설득했다.“왜 널 희생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강세헌이 못생겼니? 돈이 없니? 그 사람이랑 결혼하고 싶은데 기회나 연줄이 없어서 안달복달하는 여자가 얼마나 많은지 알아? 하지만 우리는 기회가 눈앞에 버젓이 놓여 있잖아. 그런데도 잡지 않을 거야? 설령 네가 강세헌과 결혼하지 않는다고 해도 얼마나 더 대단한 놈을 찾을 건데? 강세헌보다 더 잘나가는 사람을 찾는다고 장담할 수 있어?”송연아는 말문이 막혔다.강세헌의 조건이 얼마나 좋은지는 그녀도 알고 있다.또한, 얼마나 많은 여자의 이상형인지도 익히 전해 들은 적이 있다.하지만 같이 지내다 보면 성격이 얼마나 더러운지 알게 될 것이다.절대로 결혼해서 같이 살 사람은 아니었다.단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할 뿐, 이런 남자는 감상용이지 실용성이 전혀 없다.“아빠, 절 너무 과대평가하시네요. 아무리 설득해봤자 입만 아프지, 저한테서 도움받을 생각은 하지도 마세요. 백수연은 우리 엄마의 결혼 생활을 망친 내연녀인데, 제가 왜 그 여자의 아들을 구해줘야 하죠?”송연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저 피곤하니까 이만 가주실래요?”결국 송태범을 내쫓았다.“네가 인정하든 말든 너한테 예걸이란 동생이 있는 건 변함없어.”송연아는 송태범을 바라보았다.“제가 끝까지 인정하지 않으면 어떡할 건데요?”송태범은 당장이라도 화를 터뜨릴 것 같았지만, 현재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자 꾹 참았다.어쨌거나 부탁하는 입장에서 최소한 성의라도 보여줘야 하지 않
그녀가 다친 게 아니라면 지금 당장 목 졸라 죽이고 싶은 충동마저 들었다.그와의 결혼 생활이 이 정도로 싫었단 말인가?송연아는 못 들은 척했다.하지만 떨리는 속눈썹은 그녀가 잠들어 있지 않았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강세헌은 눈을 감고 화를 참으려고 애를 썼다.그는 분노를 가라앉히고 침대맡에 앉아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려고 손을 뻗었다. 결국 송연아는 참지 못하고 고개를 홱 돌렸다.강세헌이 피식 웃었다.“계속 자는 척해보시지?”“자는 척이라뇨? 방금 막 깼거든요?”그녀는 일부러 기지개를 켜며 나른한 목소리로 물었다.“여긴 왜 왔어요?”“내 와이프를 보러 온 게 뭐 잘못됐나요?”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아주머니가 요즘 잘 돌봐주고 있어요?”송연아는 고개를 끄덕였다.오은화는 그녀를 살뜰하게 정말 잘 보살폈다.그녀가 이렇게 빨리 회복할 수 있는 것도 전부 오은화 덕분이었다.“언제 퇴원해요?”그가 물었다.송연아는 병원에서 지낼지언정 다시 별장에 돌아가서 강세헌과 한 지붕 아래 살고 싶지 않았다.“아직 멀었어요.”강세헌은 뻔히 알고 있지만 굳이 까발릴 생각은 없었다.“연아 씨, 피한다고 해서 다 해결되는 건 아니죠.”그녀는 모른 척했다.“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그래요, 치료 잘 받고.”강세헌이 일어섰다.책상 위에서 컵을 들고 물을 한 모금 마시는 송연아의 모습은 여유가 흘러넘쳤다.마치 그가 가기만을 바랐던 것처럼 말이다.이 광경을 본 강세헌은 화가 발끈 났지만, 하필이면 다친 몸이라 어떻게 할 수도 없었다.그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연아 씨, 날 자꾸 도발하지 마요. 조만간 배로 갚아줄 테니까!”송연아는 콧방귀를 뀌었다.강세헌이 병실을 나서자마자 코너에 숨어 있던 최지현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그동안 최지현은 휴가를 냈다. 며칠 전에 있었던 일 때문에 강세헌과 화해할 기회를 놓쳤다는 사실이 여전히 믿기지 않았고, 또한 받아들이기 싫었다.그제야 마음을 정리하고 오늘 다시 출근했더니 마침 병원에서
그녀는 최지현이 강세헌에게 마음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그래서 일부러 강세헌을 언급해서 열 받게 했다.아니나 다를까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화를 꾹꾹 눌러 담았던 최지현이 더는 못 참고 목을 조르기 위해 그녀를 덮치려고 했다.“남의 자리를 빼앗은 년아! 죽어버려! 너만 사라지면 강세헌은 내 거야!”송연아는 단지 그녀를 골탕 먹이려고 했을 뿐 몸싸움할 생각은 없었고, 더욱이 그럴 만한 컨디션도 아니었다.“강세헌이 최닥의 이런 모습을 보게 된다면 과연 좋아할까? 남자는 여성스러운 사람을 좋아하지, 무지막지한 여자는 관심이 없다고.”그녀의 말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강세헌 앞에서 최지현은 자기 이미지를 꽤 많이 신경 썼다.“사모님!”오은화는 식사를 챙겨주러 왔다가 송연아에게 손을 대려는 최지현을 보자 도시락을 내려놓고 뒤로 끌어내더니 엄한 목소리로 호통쳤다.“이분이 누군지 알아요? 어디서 감히 무례하게 구는 거죠? 우리 도련님한테 확 얘기해버립니다? 모든 책임은 본인이 감당해야 할 거예요!”송연아의 편을 들어주는 오은화를 보자 최지현은 안색이 돌변했다. 송연아만 아니었다면 그녀가 사모님이라고 불렸을 텐데.이 모든 건 자신이 누려야 할 영광이지만, 전부 송연아에게 빼앗기고 말았다.어쨌거나 강세헌은 그날 밤의 여자가 그녀라고 믿었기 때문이다.“송연아!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최지현은 또다시 독설을 퍼부었다.송연아의 얼굴도 싸늘하게 굳었다.최지현이 양수를 터뜨리지만 않았더라면 이미 하늘나라로 간 아이는 아마도 다른 아이와 마찬가지로 의지가 강하고 용감해서 고작 별거 아닌 상처에 목숨 잃은 일은 없었을 것이다.그녀가 유산한 이유는 양수를 터뜨리는 과정에 태아까지 건드렸기 때문이다.“피차일반이야.”물론 송연아도 그녀를 가만둘 생각이 없었다.최지현이 떠나고 나서 오은화가 잽싸게 다가가 확인했다.“사모님, 다친 곳은 없어요?”송연아가 고개를 끄덕였다.“네.”오은화는 화를 주체하지 못했다.“무슨 사람이 저래요? 교양을 밥 말아 먹었나
무조건 꿍꿍이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송연아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아니나 다를까 강세헌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연아 씨가 당하는 꼴을 보면 기분이 좋아요.”송연아는 어이가 없었다.이내 시큰둥한 모습으로 비아냥거렸다.“취향이 특이하네요. 다른 사람이라면 세헌 씨가 정신이 나갔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네요.”말을 마친 그녀는 침대에 도로 앉았다.컨디션이 어느정도 회복되어서 그녀는 오늘 침대에서 내려와 꽤 많이 움직였다. 슬슬 피곤한 느낌이 들어서 시계를 흘끗 봤더니 벌써 9시가 다 되어갔다. 이내 그를 향해 물었다.“집에 안 가요?”그녀가 밀어낼수록 강세헌은 더 붙어 있고 싶었다.“연아 씨가 여기 있는데 어딜 가라고요?”그러고 나서 몸을 뒤로 젖히더니 아예 소파에 등을 기댔다.송연아는 그를 무시하고는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이때, 강세헌이 말을 걸었다.“오늘 밤 여기서 잘 거예요.”그녀는 못 들은 척하고 이불을 여미더니 마치 그가 와서 이불이라도 빼앗을까 봐 몸을 꽁꽁 싸맸다.이를 본 강세헌은 황당한 듯 입꼬리를 올렸다. 그녀의 행동이 왠지 모르게 귀엽게 느껴지는 순간이다.그런데 이때, 몸이 후끈 달아오르자 그는 옷깃을 잡아당겼다.병실에는 에어컨도 있고, 가을에 접어들면서 밤에 날씨도 선선한 편인데 갑자기 초조해지고 땀이 나는 이유는 뭐란 말이지?곧이어 시야도 흐려지기 시작했는데, 그는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물론 강세헌 정도면 갑작스러운 몸의 변화가 분명 정상적이지 않다는 걸 눈치챘다.“송연아.”꽉 잠긴 그의 목소리는 어딘가 허스키했다.“물에 뭘 탔어요?”송연아는 그가 시비 걸려고 하는 줄 알고 대꾸하지도 않았다.강세헌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대체 뭐 하자는 거지?그는 벌떡 일어나 침대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겉보기에 멀쩡한 발걸음은 사실 초조함이 묻어났다.게다가 그 욕구는 점점 걷잡을 수 없이 번졌고, 열기는 마치 살아있는 도깨비불처럼 그의 이성마저 점령했다.강세헌은 그녀가 덮고 있는 이불을 끌어당겼다.“
물론 다른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일단 송연아와 강세헌부터 방해하기로 했다.방문이 갑자기 열리자 강세헌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갑자기 나타난 불청객을 노려보았다.“누가 들어오라고 했죠?”최지현을 발견하자 얼굴이 더욱 굳어졌다.임기응변에 능한 최지현도 잽싸게 받아쳤다.“송닥 찾으러 왔어요.”송연아는 최지현이 그녀를 모함하려고 찾아왔다는 걸 단번에 눈치챘다.이내 침대에서 일어나 일부러 다정한 척 뒤에서 강세헌을 껴안았다.강세헌은 키가 컸지만, 송연아가 침대에 무릎 꿇고 서 있으면 마침 턱이 그의 어깨에 닿았다.송연아는 미소를 지으며 최지현을 바라보았다.“나 찾으러 왔다고? 무슨 일인데?”비록 얼굴은 의기양양했지만, 속으로는 강세헌이 제발 이 타이밍에서 그녀를 밀어내지 말아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했다.강세헌은 그녀의 체면을 세워 줬을뿐더러 적극적으로 협조까지 해줬다.그는 송연아가 가까이 다가오는 게 좋았다. 그녀의 체취는 은근 마음에 들었다.최지현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하필이면 강세헌 앞이라서 화도 못 냈다.“오늘 야간 근무라서 회진을 돌고 있었거든. 송닥이 필요한 건 없는지 겸사겸사 확인하러 온 거야.”그녀는 억지로 미소를 쥐어짜 냈다.송연아가 피식 웃었다.“나한테 그렇게 잘해줬었나?”그러고 나서 입구에 서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는데, 못생긴 건 둘째치고 대머리이지 않겠는가?‘정말 독한 여자네.’만약 물은 마신 사람이 그녀였고, 방에 남자까지 나타났더라면 그 결과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그녀의 안색이 돌변하더니 눈빛이 싸늘하게 식어갔다.“저분은 누구야? 설마 최닥의 남자친구는 아니겠지?”송연아는 최지현을 대하는 강세헌의 뜨뜻미지근한 태도를 보고, 지난번 다른 남자와 데이트하는 최지현의 모습을 목격해서 아직도 화가 안 풀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최지현이 그녀를 모함하려고 한 이상 굳이 자비를 베풀 이유가 있을까?“남자가 정말 끊이질 않네. 대체 몇 명이야? 게다가 하나같이 못생겼잖
송연아는 딱히 부인하지 않았다.“두 사람 사이가 삐걱대는 꼴을 보니 기분이 한결 좋아졌어요.”어차피 강세헌과 최지현의 관계는 아직 불확실했고, 굳이 알아낼 마음도 없었다.단지 최지현이 강세헌을 좋아하기에 그녀가 강세헌의 곁에 있는 한 최지현을 열받게 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한 거로 충분했다.이런 솔직함이 마음에 든 강세헌은 그녀의 허리를 덥석 끌어안더니 침대에 눕히고 그 위로 올라탔다.송연아는 당황스러움을 금치 못하고 말까지 더듬었다.“뭐, 뭐 하는 거예요? 여기 병원이라고요! 다른 사람의 눈에 띄기라도 한다면 쪽팔려서 어떡해요!”강세헌이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럼 병원만 아니면 된다는 뜻인가?”“아, 아니요!”송연아는 즉각 부인했다.그럴 리가! 장소와 별개로 강세헌은 어떤 식으로든 엮이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아까는 단지 최지현을 열받게 하려고 그런 말을 했을 뿐이다.그녀를 바라보는 강세헌의 눈빛은 욕망으로 활활 타올랐지만, 애써 억누르고 있었다.비록 몸은 약물의 지배를 받고 있으나 이성까지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단지 약 기운을 핑계로 거침없이 그녀의 숨결을 탐했을 뿐이다.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시선에 송연아는 마른침만 꼴깍꼴깍 삼켰다. 그가 갑자기 이러는 이유도 약 때문이라는 걸 알고 일부러 떠보았다.“세헌 씨는 남자가 있었던 여자에게 흑심을 품을 정도는 아니잖아요?” 송연아는 강세헌처럼 잘나가는 남자는 자존심도 강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따라서 배우자에 대한 기준도 상당히 까다로웠다.이는 최지현을 대하는 그의 태도에서 보아낼 수 있다.과거에 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숨겼다가 나중에 들통나는 순간 즉시 내팽개쳐질 테니까.강세헌은 눈을 깜빡이면서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을 떨쳐냈다.이내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본인이 더러운 몸뚱어리를 가졌다는 걸 굳이 시도 때도 없이 상기시켜 주지 않아도 돼요.”그는 갑자기 몸을 일으켜 방을 나섰다.한편, 최지현은 아직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강세헌이 밖으로 나오자 그녀는 안
그녀는 손을 뻗어 배를 어루만지며 이미 하늘나라로 간 아이한테 몰래 얘기했다.‘봤지? 너한테 손을 댄 나쁜 사람은 이미 벌을 받았단다.’이내 문을 닫고 침대에 앉아 물컵을 바라보았다.최지현이 나타난 이후부터 송연아는 병원 음식을 입에 대지도 않고 오로지 오은화가 가져다준 것만 먹었다.원래 최지현의 목표는 그녀였지만, 뜻하지 않게 강세헌이 마시게 되어 다소나마 재앙은 면한 셈이었다.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심재경에게 전화를 걸어 강세헌의 상황을 설명해 줬다.“정 안 되면 여자를 찾아줘요. 물론 약을 먹여줘도 되고요.”최지현이 그녀를 노린 이상 독한 약을 사용했을 게 뻔했다.아까 강세헌의 모습도 상태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심재경은 한동안 침묵하더니 대답했다.“알았어.”송연아는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왜인지 잠이 오지 않아 침대에서 뒤척이기만 했다....한편, 심재경도 발 빠르게 강세헌에게 여자를 찾아줬다.“연아가 그러는데 네가 약 때문에 얼른 욕구를 해소하지 않으면 병날지도 모른대. 나한테 여자를 찾아서 보내라고 했거든? 아주 깨끗한 사람이니까 걱정 안 해도 돼.”소파에 앉아 있는 강세헌의 얼굴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벌겋게 달아올랐고, 이마를 가린 앞머리 너머로 깊고 흐릿한 눈동자가 보일 듯 말 듯 했다. 활짝 풀어헤친 셔츠 아래로 매력적인 쇄골과 탄탄한 가슴이 어렴풋이 드러났다. 그는 꽉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뭐라고? 송연아가 여자를 찾아서 보내라고 했다고?”심재경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아니면 약 때문에 고생하는지 내가 무슨 수로 알아? 연아가 전화 와서 얘기해줬어. 아마도 네가 억지로 참다가 몸이라도 상할까 봐 걱정해서 그런 것 같은데.”‘하!’강세헌이 주먹을 불끈 쥐자 뼈에서 우드득하는 소리가 났다. 이게 걱정하는 건가? 걱정한다는 사람이 대놓고 원나잇 상대를 찾아주다니?빌어먹을 여자 같으니라고! 억지로 참다가 몸이라도 상할까 봐 걱정되면 왜 본인이 직접 나서지 않는단 말이지?그는 화가 나서 뚜껑이 열릴 지경이었다.
막아선 사람은 백수연이었다. 송태범은 송예걸을 위해 송연아에게 사정을 하러 왔지만 송연아는 끝까지 도와주지 않았기에 이제 그의 아들은 감옥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물론 형벌이 크지는 않아서 감옥에 오래 있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기록이 남기 때문에 나중에 학업을 마친다고 해도 직업을 찾는 데에서 많은 제한을 받을 것이다.백수연은 짜증도 나고 화도 났다. 그녀는 끝까지 도와주지 않는 송연아가 이기적이고 차가운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너무도 원망스러웠다.백수연이 오늘 이 자리에 나타난 것도 송연아를 난처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었으며 심지어 기자까지 동원해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무릎을 꿇은 것이다!백수연은 여론몰이를 하고 싶었다. 사람들에게 송연아가 불효자라는 걸 알리고 싶었고 자신의 동생이 죽는 꼴을 보면서도 끝까지 도와주지 않는 나쁜 여자라는 걸 전 국민에게 보여주고 싶었다.“예걸이는 네 동생이야, 어떻게 그렇게 매정하게 굴 수가 있어? 양심은 있는 거야? 너한테 친동생은 예걸이 하나뿐이잖아…”백수연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말했고 세상에서 제일 억울한 사람처럼 굴었다.그녀가 이렇게 난동을 부리자 병원 입구에 구경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잘잘못을 떠나 어른이 무릎까지 꿇은 모습만 보면 사람들은 당연히 무릎 꿇은 쪽을 동정하게 되며 거기에 백수연의 기막힌 연기까지 더해져서 모든 원망의 눈초리는 송연아에게 향했다.사람들은 너도나도 수군거리기 시작했으며 일부 정의 사자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은 송연아에게 손가락질까지 했다.“너무 철이 없는 거 아니에요? 어떻게 어른을 무릎 꿇게 만들어요?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심성이 너무 독하네요?”이 말을 들은 백수연이 얼른 말을 보탰다.“동생이 괴롭힘을 당하는데 분명히 도와줄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서 안 도와주고 있어요. 누나라는 사람이!”한편, 송연아는 차가운 눈으로 백수연의 기막힌 연기를 감상하고 있었으며 무릎을 꿇은 그녀를 뒤로한 채, 돌아서서 떠나려고 했다.이때, 백수연이 송연아의 다리를 부둥켜안고 끝까지 그녀를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