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애린이 기대하는 눈빛으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뭐에요?”“신혼 방에서 첫날밤을 보내면 볼 수 있어요.”찬이도 궁금했는지 송연아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물었다.“엄마, 어떤 선물이에요?”송연아는 찬이의 코를 쓸어주며 말했다.“어린이들은 몰라도 돼. 이제 엄마와 함께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밖에는 결혼식 연회가 시작되었다.“애린 씨 배고프지 않아요? 먹을 것들 조금 가져다줄가요?”“아직 괜찮아요. 배고프지 않아요.”송연아가 웃으며 말했다.“그럼, 찬이랑 먼저 가볼게요.”구애린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좀 있다가 봐요.”...송연아는 연회장에서 강세헌이 보이지 않아 두리번거렸는데 오은화가 구진학이 불러서 갔다고 알려줬다. 그녀가 윤이를 받아 안자 윤이가 꾸물댔다.“엄마, 엄마...”아직 말도 잘 못하는 윤이의 손에 뽀뽀하며 송연아가 말했다.“가만히 있어.”“지금 윤이는 제일 분주할 때예요. 윤이는 저한테 주고 식사해요.”오은화가 말하며 손을 내밀자, 송연아가 손을 저었다.“아주머니가 찬이 데리고 먼저 식사하세요. 저는 윤이를 데리고 밖에 나가 있을게요.”윤이는 계속 진정하지 못했다.오은화는 가정부로서 주인보다 먼저 먹기가 미안했다.“사모님...”송연아는 진작에 오은화를 가정부가 아닌 가족으로 생각했기에 누가 먼저 먹든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며 윤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자, 오은화도 더 이상 거절하지 않았다.결혼식의 음식들은 미국식으로 아주 고품격으로 차렸는데 신선한 재료만 사용하여 호화롭고 푸짐했다. 천이는 맛있는 거만 있으면 되기에 오은화의 옆에서 신나 하며 맛있게 먹었다. 오은화는 재빨리 몇 입 먹었는데 이런 자리는 시간 여유가 없고 또 조금 있으면 신랑 신부가 건배하러 오는 시간이기에 신부의 언니인 송연아가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윤이는 이런 환경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에 빨리 먹고 가서 송연아를 바꿔주려고 했다.신랑 신부와 건배할 때 송연아는 강세헌을 보았는데 그의 옆에 다른 사람들이 있어서 가까이
신혼 방은 아주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는데 진원우는 구애린이 여기저기 뒤지는 모습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뭐 해요?”그 순간 구애린은 자기가 오늘의 신부라는 사실을 잊은 듯 신랑인 진원우를 돌아보지도 않고 웃으며 말했다.“언니가 결혼 선물을 여기에 뒀다고 했는데 뭔지 빨리 보고 싶어서 그래.”진원우가 말했다.“그럼 찾아요. 나는 먼저 샤워할게요.”구애린은 진원우를 등지고 손만 흔들었다.“가.”“...”‘선물이 나보다 중요하다는 건가? 나를 보지도 않네.’그는 참다못해 구애린의 앞에 가서 물었다.“내가 선물보다 더 좋지 않아요?”구애린이 당황한 듯 거의 1분 동안 진원우를 올려다보자 오히려 진원우가 쑥스러워하며 말했다.“애린 씨, 왜 그렇게 봐요? 내 얼굴에 먼지라도 묻었어요?”구애린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얼굴에 먼지가 묻은 건 아니고 다른 게 없어.”진원우가 물었다.“그게 뭔데요?”“쑥스러움이 없어. 언제부터 그렇게 얼굴이 두꺼워졌어?”진원우가 반응하기도 전에 구애린이 말을 이었다.“당연히 선물이 더 좋지. 우리 오빠가 뭘 선물했는지 잊었어? 원우 씨보다 더 좋아.”그 선물은 그녀가 평생 돈을 벌지 않고 먹고 마시고 놀고 해도 남을 충분한 돈이었다.‘내가 바보도 아니고 당연히 돈이 좋지! 남자는 배신할 수 있지만, 돈은 절대 배신하지 않거든. 요즘 세상에 돈만큼 믿을 만한 것은 없어.’“...”진원우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까먹은 거 있는 것 같은데 형수님은 형님만큼 돈이 많지 않아요. 절대 평생 써도 남는 돈을 주지 않았을 거예요.”“언니가 특별히 얘기해 줬다는 건 분명 특별한 선물이기 때문이야. 돈 같은 그런 평범한 건 아닐 거야. 내가 찾을 동안 얼른 가서 샤워해.”“...”진원우는 지금 자기가 무슨 말을 하든 다 잘못이라는 걸 깨달았다.‘오늘은 결혼 첫날밤인데 이렇게 지내야 한단 말인가?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그래요, 꼭 찾아요.”그는 일어나면서 방를 뒤지는 구애
구애린이 집어 들자, 옷은 활짝 펴졌는데 한눈에 아주 섹시한 잠옷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잠옷 스타일은 그녀가 한 번도 입어본 적이 없는 노출이 꽤 심한 섹시한 옷이었다. 그녀는 행복하면서도 흥분한 표정을 지었다.‘원우 씨는 내가 이 옷을 입은 모습을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그녀는 진원우의 반응을 생각만 해도 설레었다. 그리고 진원우에게 깜짝 서프라이즈를 하려고 옷을 밖에 내놓았다.그때 진원우가 샤워를 마치고 나오며 물었다.“선물은 찾았어요?”구애린이 담담하게 대답했다.“찾았어.”“뭐예요?”진원우는 송연아가 여자니까 보석이 박힌 목걸이, 팔찌 등 액세서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하며 물었다.“별거 아니야.”구애린의 대답에 진원우는 호기심이 더 생겼다.“별거 아니면 뭔데요?”“나 샤워하러 갈게.”구애린이 욕실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진원우가 웃으며 물었다.“왜 그래요? 결혼하자마자 벌써 숨기는 게 있어요? 대체 얼마나 귀한 건데 보여주지도 않아요?”“아무리 많은 돈을 줘도 살 수 없는 거라서 쉽게 보여 줄 수 없어.”구애린은 진원우를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내고 침실을 나갔다. 진원우는 더 이상 따져 묻지 않고 그냥 웃어넘겼다. 진원우는 침대에 누워 구애린을 기다리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와 구애린은 오랫동안 함께 하였지만, 두 사람은 지금까지 친밀한 행동을 하지 않고 자제해 왔다. 한편으로는 그의 부상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구애린이 그때 일로 인해 마음속에 그늘이 남아있어서 그녀의 아픔을 자극할까 봐 쉽게 다가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구애린도 예전의 성격이 어느 정도 돌아와서 조금씩 회복되고 있는 것 같았다. 진원우는 구애린이 예전의 소박하고 솔직하고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모습으로 돌아가기를 바랐다. 예전에 구애린과 함께 있었던 모습이 떠올랐는지 진원우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샤워를 아무리 오래 한다고 해도 이젠 끝나야 할 시간인데 구애린이 욕실에서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아 진원우는 일어나 방에서 나왔는데
진원우는 구애린을 보는 순간 얼어붙었다! 자기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애린 씨...”구애린은 가슴을 두 손을 올리며 물었다.“나 어때?”진원우는 고개를 숙여 웃었는데 그는 구애린이 오늘 첫날밤을 이렇게까지 섹시하고 도발적으로 준비해서 자기를 유혹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안 예뻐?”구애린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면서 물었는데 본인이 봤을 때는 괜찮아 보였는지 자신에게 만족감을 느꼈다.진원우가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예뻐요.”사실 예쁘다는 말보다 섹시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지금 그녀에게서 전에 보지 못했던 매력이 풍겼는데 남자로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정상이 아니다. 진원우가 구애린을 가로 안자, 그녀가 놀라 하며 외쳤다.“내려줘.”진원우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당신은 내 신부에요.”“원우 씨, 다리가 아직 다 안 나았...”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원우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을 막았다. 그녀의 말은 목구멍에 막혀 버렸고 그 뒤의 첫날밤 대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대사를 마친 후, 구애린은 진원우의 팔을 베고 그의 품에 안겨 고개를 기울이며 얼굴은 분홍빛으로 붉어진 채 물었다.“내가 입었던 옷 누가 준비해 줬는지 알아?”진원우가 고개를 숙여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누군데요?”“언니야.”구애린은 송연아가 자기에게 그런 옷을 준비해 줄 거라고 생각도 못 했다. 진원우도 역시 뜻밖이라는 생각에 눈썹을 치켜올렸다.“이런 건 보통 절친들이 준비해 주는 건데, 언니가 나한테 이런 거 준비해 주니 정말로 친한 친구 같은 느낌이 들어.”진원우도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이런 친밀한 일은 아주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난 정말 운이 좋은 것 같아.”비록 고아로 버림을 받았었지만, 입양한 양부모는 그녀를 친자식처럼, 아니 친자식보다 더 아껴주었고 강세헌도 혈연이 섞여 있지 않고 명의상 오빠라고 하기도 애매했지만 그녀에게 회사 지분까지 양도해 주고 가족으로 대해주었다
이렇게 네 식구가 함께 여행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기에 송연아는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기분 좋아?”찬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품에 기어들었다.“우리 어디 가요?”송연아도 목적지는 모르기에 앞에서 운전하는 남자를 보며 물었다.“우리 어디 가요?”그녀는 윤이도 챙겨야 했기에 조수석에 앉지 않고 뒷좌석에 앉았고 강세헌이 앞에서 운전했다. 강세헌이 오늘은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고 하자, 송연아가 웃으며 대답했다.“좋아요.”미국에는 볼거리가 많기는 하지만 모두 거의 비슷하기에 강세헌은 그런데 별 관심이 없었다. 또한 애들이 좋아할 만한 곳도 아니어서 그는 특별히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곳을 찾았다. 미국은 땅이 넓고 인구는 적어서 괜찮은 곳들이 많다. 차로 한참을 달려 몇 개 지역을 지났는데 대부분 단독 주택이었다. 여기에는 국내의 그런 혼잡함이 없었는데 나라가 좋고 나쁨은 떠나서 생활 환경은 정말 좋은 것 같다. 그러니까 구진학이 여기에 습관 되어 다른 데는 가지 않으려고 하나 보다.드디어 차는 나무가 무성하고 공기가 상쾌한 지역에 멈췄다. 윤이가 최근 많이 무거워졌고 더 중요한 건 진정하지 못하고 안겨있지 않으려고 하고 저절로 걷겠다고 하는데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고 빠르지도 않아 돌보기가 너무 힘든데 강세헌만이 안을 수 있어서 그가 담당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윤이는 강세헌이 안고, 송연아는 찬이의 손을 잡고 같이 걸어가는데 아주 행복한 네 식구의 모습이었다. 둘째가 딸이었으면 더 완벽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너무 부러워했다.“여기는 어디...”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들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넋을 잃었다. 그리고 넓지 않은 숲을 지나자, 눈앞에 맑은 호수가 펼쳐졌고 옆으로는 에메랄드빛 잔디가 넓게 펼쳐져 있었는데 간단히 피크닉을 즐기기에 딱 좋은 곳이었다.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은 공기를 상쾌하게 만들었다.찬이는 송연아의 손을 놓고 호수를 향해 신나게 뛰어갔다. 찬이도 야외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송연아가 웃
송연아는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심재경을 놀렸다.“결혼했었던 게 뭐 그리 자랑할 일이라고?”“...”자기의 흑역사를 직접 말하고 나니 본인도 기분이 이상했는지 황급히 말을 바꿨다.“포도 먹을래? 다 씻어서 가져온 거야. 내가 가져다줄게.”송연아는 그의 옷자락을 잡으며 말했다.“이제 다시 결혼하면 그럼 재혼이겠네요?”“휴, 연아야, 예전에 선배를 존경하던 연아는 지금 어디에 간 거니? 왜 점점 못돼먹은 강세헌을 닮아가는 거야?”강세헌이 마침 담담한 눈길을 보내며 경고가 섞인 눈빛으로 말했다.“말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어디가 덧나?”‘어디가 덧나는 게 아니라 심심하거든.’“나까지 입을 꼭 다물고 있으면 너희들이 얼마나 심심하겠어. 이런 좋은 풍경과 날씨에 아무 얘기도 안 하고 있으면 그거야말로 좋은 시간을 낭비하는 거 아니겠어?”심재경의 말은 부드러웠고 조금은 무력했다.“나도 괴롭지만 즐기려고 하는 거야.”“뭐가 괴로운데?”강세헌은 아직도 그가 딸 자랑을 늘어놓던 일을 맘에 담아두고는 그를 힐끗 보더니 물었다.“넌 딸도 있는데 뭘 더 바라는 거야?”심재경이 한숨을 내쉬었다.“내 딸은 엄마가 없잖아.”아이에게 건강한 가정을 꾸려주지 못하는 것은 그의 가장 큰 아쉬움이었다. 송연아는 그제야 심재경이 말을 많이 하는 건 속마음을 숨기기 위한 거라는 것을 눈치챘다. 심재경은 딸이 생겨서 너무 행복했지만, 아이가 엄마가 없어서 항상 마음이 아팠다. 이런 것을 다 이해하고 다시 심재경을 보니 그의 미소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미소가 아닌 것 같았다. 송연아는 순간 자기가 심재경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배이고 친구로서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바비큐를 하고 싶다면서요? 사람들에게 도구와 재료를 보내달라고 하면 돼요.”심재경이 말했다.“그리고 시원한 맥주도 있어야 해.”송연아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생각했다.‘잘해주니 한술 더 뜨네.’“딸이 있다는 거 항상 명심해요. 너무 과한 건 안 좋은 거예요.
찬이는 큰 눈을 깜빡이며 강세헌의 인정을 받고 싶어서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강세헌은 소고기 한 조각을 깨물어 입에 넣고 씹으면서 진지하게 말했다.“괜찮아.”찬이가 눈을 깜빡이며 생각했다.‘지금 칭찬하는 거 맞지?’그러고는 하하하 웃으며 퐁퐁 뛰어갔다. 송연아는 찬이의 행복한 표정을 바라보며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윙윙...그때 호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이 울려 꺼내서 받았더니 한 남자의 목소리였다.“안이슬 씨의 친구 맞죠?”송연아는 목소리가 조금 낯익었는데 바로 그때 안이슬을 만나러 우신시에 갔을 때 만났던 양명섭 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말했다.“네, 맞는데요. 그런데 이슬 언니의 휴대폰을 왜 그쪽이 가지고 계신 거죠? 이슬 언니는요?”뭔가 이상한 느낌 들었다. 안이슬이 그녀를 찾는 거면 직접 전화를 했을 건데 왜...“이슬 씨가 다쳤어요.”송연아가 벌떡 일어서며 다급하게 물었다.“어쩌다가요? 얼마나 다쳤어요? 심각해요?”잠시 침묵이 흘렀다.“네, 심각해요. 하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송연아의 긴장된 마음이 조금은 내려앉았다.“지금 상황은 어때요?”“상황이 좋지 않아요...”그쪽에서 말을 더듬자, 송연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솔직하게 얘기해주세요.”“시간이 되시면 여기에 오셔서 이슬 씨를 설득할 수 있을까요?”그 말에 송연아는 조금 짐작이 가는 듯싶었다.“양명섭 씨 일 때문인가요? 그래서...”“네, 그 원인도 조금 있긴 한데 전부는 아니에요. 시간이 안 되시면 그냥 잊어버리세요. 저희가 잘 돌볼 거예요.”송연아는 잠시 생각에 잠겼는데, 가기 싫은 게 아니라 적어도 2~3일은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두 아이가 모두 여기에 함께 있어 프랑스에 데려가야 했다.“며칠만 시간을 주세요.”“네, 알았어요.”휴대폰을 끊자, 강세헌이 물었다.“무슨 일이 있어? 표정이 안 좋아 보여.”“아무것도 아니에요.”송연아는 다시 그의 어깨에 기대며 천천히 말했다.“이슬 언니요.”강
심재경이 숯불에 구운 버섯 꼬치를 들고 말했다.“이건 일본에서 공수해 온 송이버섯인데, 평소에 먹을 수 없는 버섯이야.”송연아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그냥 버섯이죠.”“먼저 먹어보고 얘기해. 절대로 일반 버섯이 아니야.”송연아도 한 꼬치를 들고 먹었는데 확실히 맛이 좋았다.윤이가 발을 헛디뎌 넘어지자, 송연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드세요. 난 윤이 보러 갈게요.”심재경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며 말했다.“왜 나는 연아가 일부러 자리를 피하는 것 같지?”강세헌이 담담하게 심재경을 보며 말했다.“네가 뭔데? 연아가 왜 너를 피하겠어?”“연아는 이슬이와 친하잖아. 이슬이 일을 많이 알면서 나에게 말하기 싫어하는 거잖아.”“...”강세헌은 할 말이 없어 일부러 말을 돌렸다.“원우에게 전화해서 언제 돌아갈 거냐고 물어봐.”이번에는 심재경이 어이없어 할 말을 잃었다.‘금방 결혼한 신혼 부부는 귀찮게 하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전화하라고?’“난 악인 하지 않을 거니까, 하고 싶으면 네가 해.”심재경은 맥주 한잔 마시고 계속 말했다.“바비큐가 맞긴 한 데 뭔가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식자재는 좋지만, 영혼적인 부재료가 없어서 캠핑 바비큐가 아니고 그냥 야외파티 같았다. 하지만 그냥 몇 사람이 빠졌을 뿐 그들은 아이도 있었다.강세헌이 눈썹을 치켜들며 말했다.“의사를 그만두더니 많이 변한 것 같다.”과거에 심재경은 말이 이 정도로 많지 않았다. 심재경이 한탄하며 말했다.“사람은 원래 다 변해.”강세헌은 심재경의 말에 호응하지 않고 멀리에 있는 송연아가 뭐 하고 있는지 잘 보이지 않아 궁금해하며 일어났다.“어디 가? 조금이라도 떨어져 있으면 안 돼? 결혼한 지도 오래되었는데도 그렇게 딱 붙어있고 싶어?”강세헌이 그를 힐끗 보며 말했다.“너 정말 말이 많은 거 알아?”심재경은 개의치 않는 표정으로 말했다.“너희들 이제 모두 행복해졌는데 내가 말로 좀 푸는 것도 안 돼? 너까지 가면 나 너무 심심하니까,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