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이는 큰 눈을 깜빡이며 강세헌의 인정을 받고 싶어서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강세헌은 소고기 한 조각을 깨물어 입에 넣고 씹으면서 진지하게 말했다.“괜찮아.”찬이가 눈을 깜빡이며 생각했다.‘지금 칭찬하는 거 맞지?’그러고는 하하하 웃으며 퐁퐁 뛰어갔다. 송연아는 찬이의 행복한 표정을 바라보며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윙윙...그때 호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이 울려 꺼내서 받았더니 한 남자의 목소리였다.“안이슬 씨의 친구 맞죠?”송연아는 목소리가 조금 낯익었는데 바로 그때 안이슬을 만나러 우신시에 갔을 때 만났던 양명섭 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말했다.“네, 맞는데요. 그런데 이슬 언니의 휴대폰을 왜 그쪽이 가지고 계신 거죠? 이슬 언니는요?”뭔가 이상한 느낌 들었다. 안이슬이 그녀를 찾는 거면 직접 전화를 했을 건데 왜...“이슬 씨가 다쳤어요.”송연아가 벌떡 일어서며 다급하게 물었다.“어쩌다가요? 얼마나 다쳤어요? 심각해요?”잠시 침묵이 흘렀다.“네, 심각해요. 하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송연아의 긴장된 마음이 조금은 내려앉았다.“지금 상황은 어때요?”“상황이 좋지 않아요...”그쪽에서 말을 더듬자, 송연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솔직하게 얘기해주세요.”“시간이 되시면 여기에 오셔서 이슬 씨를 설득할 수 있을까요?”그 말에 송연아는 조금 짐작이 가는 듯싶었다.“양명섭 씨 일 때문인가요? 그래서...”“네, 그 원인도 조금 있긴 한데 전부는 아니에요. 시간이 안 되시면 그냥 잊어버리세요. 저희가 잘 돌볼 거예요.”송연아는 잠시 생각에 잠겼는데, 가기 싫은 게 아니라 적어도 2~3일은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두 아이가 모두 여기에 함께 있어 프랑스에 데려가야 했다.“며칠만 시간을 주세요.”“네, 알았어요.”휴대폰을 끊자, 강세헌이 물었다.“무슨 일이 있어? 표정이 안 좋아 보여.”“아무것도 아니에요.”송연아는 다시 그의 어깨에 기대며 천천히 말했다.“이슬 언니요.”강
심재경이 숯불에 구운 버섯 꼬치를 들고 말했다.“이건 일본에서 공수해 온 송이버섯인데, 평소에 먹을 수 없는 버섯이야.”송연아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그냥 버섯이죠.”“먼저 먹어보고 얘기해. 절대로 일반 버섯이 아니야.”송연아도 한 꼬치를 들고 먹었는데 확실히 맛이 좋았다.윤이가 발을 헛디뎌 넘어지자, 송연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드세요. 난 윤이 보러 갈게요.”심재경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며 말했다.“왜 나는 연아가 일부러 자리를 피하는 것 같지?”강세헌이 담담하게 심재경을 보며 말했다.“네가 뭔데? 연아가 왜 너를 피하겠어?”“연아는 이슬이와 친하잖아. 이슬이 일을 많이 알면서 나에게 말하기 싫어하는 거잖아.”“...”강세헌은 할 말이 없어 일부러 말을 돌렸다.“원우에게 전화해서 언제 돌아갈 거냐고 물어봐.”이번에는 심재경이 어이없어 할 말을 잃었다.‘금방 결혼한 신혼 부부는 귀찮게 하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전화하라고?’“난 악인 하지 않을 거니까, 하고 싶으면 네가 해.”심재경은 맥주 한잔 마시고 계속 말했다.“바비큐가 맞긴 한 데 뭔가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식자재는 좋지만, 영혼적인 부재료가 없어서 캠핑 바비큐가 아니고 그냥 야외파티 같았다. 하지만 그냥 몇 사람이 빠졌을 뿐 그들은 아이도 있었다.강세헌이 눈썹을 치켜들며 말했다.“의사를 그만두더니 많이 변한 것 같다.”과거에 심재경은 말이 이 정도로 많지 않았다. 심재경이 한탄하며 말했다.“사람은 원래 다 변해.”강세헌은 심재경의 말에 호응하지 않고 멀리에 있는 송연아가 뭐 하고 있는지 잘 보이지 않아 궁금해하며 일어났다.“어디 가? 조금이라도 떨어져 있으면 안 돼? 결혼한 지도 오래되었는데도 그렇게 딱 붙어있고 싶어?”강세헌이 그를 힐끗 보며 말했다.“너 정말 말이 많은 거 알아?”심재경은 개의치 않는 표정으로 말했다.“너희들 이제 모두 행복해졌는데 내가 말로 좀 푸는 것도 안 돼? 너까지 가면 나 너무 심심하니까,
강세헌이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우리 지금 밖에 있어.”“어디요?”진원우가 물었다. 오늘은 그들의 신혼 첫날인데 구애린이 너무 심심하다고 송연아를 찾아가서 찬이를 데리고 놀러 가자고 해서 하는 수없이 그들의 숙소에 갔는데 아무도 없었다.강세헌이 대답 대신 되물었다.“신혼부부가 왜 그렇게 한가해?”“...”신혼부부는 둘만의 시간을 보내느라 바빠야 하는 거 맞지만, 그는 옆에 활기차게 지내고 싶어 하는 새신부 구애린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더니 웃으며 말했다.“네, 아주 한가해요.”강세헌이 주소를 알려주며 말했다.“그럼, 이쪽으로 와. 마침 할 얘기도 있으니까.”진원우가 유쾌하게 대답했다.“네.”진원우가 전화를 끊자마자 구애린이 기다렸다는 듯이 물었다.“집에 있지 않고 어디 갔대?”그는 고개를 돌려 구애린을 바라보며 말했다.“아니면 집에서 애린 씨 오기를 기다리겠어요?”구애린은 자기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생각하며 웃었다.진원우가 한 주소를 말하자, 구애린이 미간을 찌푸렸다.“그렇게 멀리 갔대? 거기는 뭐 하러 갔는데? 거기 예전에 한번 가본 적이 있는데 호수 외에 아무것도 없어. 그런 곳에 왜 애들을 데리고 간 거지?”그녀는 이해가 안 됐다.“그만 생각하고 운전이나 잘해요.”진원우의 말에 구애린은 입을 삐쭉거렸다.“원우 씨 다 나으면 내가 조수석에 탈 거니까 운전은 원우 씨가 해.”진원우가 웃으며 대답했다.“알았어요.”차가 순조롭게 지정 장소에 도착하자 주차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보이기 전에 맛있는 냄새부터 맡고 구애린이 물었다.“근데 바비큐 냄새가 나지 않아?”진원우도 똑같이 눈치챘다. 나무들 사이로 어렴풋이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자, 구애린은 발걸음을 재촉했는데 진원우의 다리가 아직 다 낫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고 멈춰서 그의 팔을 잡았다. 진원우는 그녀를 토닥거리며 말했다.“난 괜찮으니까 부축하지 않아도 돼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내가 늙어서 못 걷는다고 생각할 거예요.”“원우 씨 늙지 않았어.
활발한 구애린을 바라보는 송연아의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그 일 이후 구애린은 침울하고 과묵해졌었는데 오늘 다시 원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너무 좋았다.강세헌은 진원우와 얘기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돌아갈 시간을 얘기하는 것 같았다. 강세헌 일행은 괜찮지만 주요한 건 진원우와 구애린이 신혼이었기에 미국에서 좀 더 지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강세헌이 말하자 진원우가 자기 생각을 말했다.“저희도 대표님과 같이 돌아가겠습니다.”결혼식을 앞당긴 것도 빨리 돌아가서 일하기 위해서였는데 다리의 상처도 이제 거의 다 나았기에 같이 돌아가겠다고 했다. 게다가 오래전에 결혼식만 끝나면 돌아가기로 구애린과 의논했기에 며칠만 더 있다가 돌아갈 예정이었다.“돌아가는 건 제가 준비 할게요.”기존부터 이런 일은 그가 했었지만 이번에 강세헌은 그의 어깨를 두드리더니 말했다.“됐어. 내가 다른 사람 시킬 거야.”진원우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은 휴가를 주고 싶었다.“저 다 나았습...”“지훈이가 계속 불평하고 있어. 돌아가면 할 일이 많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강세헌이 보기 드문 미소를 보였다.사실 진원우도 회사 일이 많다는 걸 알고 있다. 게다가 그가 자리를 비워서 아마 임지훈이 더 많이 바쁠 것이다. 이제 몸이 많이 회복되었으니 다행이다.“제가 빨리 돌아가서 업무를 나눠야죠. 지훈이도 어찌 보면 불쌍해요. 가정도 없이 매일 일만 하잖아요.”진원우가 한숨을 쉬자, 강세헌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네 말은 내가 지훈이를 착취한다는 거야?”진원우가 해명하려던 찰나 강세헌이 말을 이었다.“돌아가면 지훈이 휴가 줄 거니까 모든 일은 네가 해.”“...”‘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한 거지? 왜 헛소리를 해서 일을 만들었지?’“대표님, 그게...”강세헌은 그의 해명을 듣지 않고 아들을 안고 자리를 떠났다.“...”진원우의 표정을 바라보는 심재경은 너무 기뻐서 웃다가 기절할 뻔했다. 그런 모습을 본 진원우는 심재경을 발로 차버리고 싶었다.“그렇게
강세헌이 대답하지 않자, 송연아는 일부러 장난치려고 그의 옷 안에 손을 넣고 가슴 앞에서 왔다 갔다 했다. 강세헌은 그녀의 행동에 고개를 돌려 보더니 휴대폰에 대고 한마디하고 전화를 끊었다.“가능하면 이틀 내로 준비해.”그는 몸을 돌려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고 딱 붙게 당겼다. 옷을 통해 서로의 체온을 느끼면서 송연아는 고개를 들었는데 머리가 아직 완전히 마르지 않은 채 젖어있었고 상큼한 샴푸 향기가 남아 있었다.“뭐를 가능한 이틀 내에 해요?”“빨리 돌아가자며? 그래서 이틀 내로 준비하라고 했어.”강세헌이 대답했다.송연아가 서둘러 돌아가려는 이유는 안이슬을 만나러 가기 위해서였는데 또다시 안이슬을 생각하니 마음속에 불안감이 밀려왔다. 저번 날 전화했던 사람이 말을 더듬으며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걱정이 태산이다.원래 주동적으로 강세헌을 유혹하려 했는데 순간 흥미를 잃었다.“가서 샤워해요. 저는 먼저 잘게요.”강세헌은 쉽게 그녀를 놔주지 않고 그녀를 꼭 껴안았는데 송연아는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강세헌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귓불에 입술을 대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나를 유혹하고 그냥 도망가려는 거야? 그럴 수는 없지.”강세헌의 뜨거운 입김이 그녀의 목에 닿자 송연아는 온몸으로 전율을 느꼈는데 이를 악물고 그를 밀어냈다.“이거 놔봐요.”“안 놔.”말이 떨어지자, 그의 입술이 그녀의 입을 누르고 있었다.“읍...”송연아는 순식간에 숨이 막혔는데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었다. 강세헌의 키스는 뜨겁고 깊었는데 매번 주도권은 그의 거였고 송연아는 피동적이었다. 그는 매번 아주 쉽게 그녀가 자신을 잃고 젖어 들게 만들었다. 송연아가 숨이 가빠지고 혼란스러워하는 사이에 강세헌의 손이 그녀의 허리에서 바로 앞쪽으로 왔는데 순간 그녀 가운의 끈이 풀였다. 송연아는 두 눈을 번쩍 뜨며 얼굴이 붉어졌는데 강세헌이 그의 가운을 벗겼다. 금방 샤워를 끝낸 송연아의 가운 안에 다른 옷이 없었기에 바로 알몸 그대로 그의 앞에 노출되었다
그때 심재경의 눈이 송연아 목의 붉은 자국에 닿았다. 그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순간 모든 것을 알아챘지만, 모르는 척했다.“아무것도 아니면 됐지, 왜 그렇게 말까지 더듬으며 긴장해? 무슨 다른 사람이 보면 안 되는 일이라도 들킨 것 같다.”“헛소리하지 마요.”그녀는 애써 침착한 척했다.“내 말이 헛소리인지, 아닌지는 네가 잘 알겠지. 이봐, 얼굴도 빨개졌어.”“...”송연아는 할 말을 잃었다.“심재경, 너 그렇게 한가해? 그만하지 못해?”강세헌이 다가오며 그를 노려보자, 심재경은 헛기침하고 말했다.“그냥, 부러워서 질투하는 거야.”진원우와 구애린은 얼마 전에 결실을 보았고 송연아와 강세헌도 행복해 보이니 자신의 아무것도 없는 구차한 처지가 생각났다. 아무것도 없는 건 아니다, 딸이 있다. 하지만 딸에게 엄마가 옆에 없다는 게 안타까웠다.“불쌍한 걸로 따지면 지훈이가 더 불쌍해.”강세헌이 한마디 끼어들어서 심재경을 웃겼다. 그렇다, 그는 예쁜 딸이라도 있지, 임지훈은 여자도, 아이도 없이 맨날 강세헌에게 착취당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임지훈이 더 가여웠다.“그게 또 그러네.”송연아가 의아해하며 물었다.“두 사람 무슨 얘기에요?”심재경이 대답 대신 말했다.“너 가서 옷이나 갈아입어.”“...”‘내 옷이 어떻다는 거지?’그녀는 강세헌을 바라보며 눈빛으로 물었다.“아무것도 아니야.”그들은 합법적인 부부로서 정상적인 부부 생활을 했을 뿐인데 뭐가 잘못된 거지? 남 부끄러운 거 없기에 숨길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준비해, 우리 오늘 오후에 출발할 거야.”“준비가 다 됐어요?”송연아의 물음에 강세헌이 대답했다.“응.”“그럼, 짐 쌀게요.”송연아가 방으로 짐을 싸러 들어가자, 강세헌은 진원우에게 전화해서 일정을 공유해주고 같이 출발할 거면 준비하라고 했다.방으로 돌아가 짐을 챙기던 송연아는 자기 목을 뚫어지게 보던 심재경이 생각나 화장실에 가서 거울에 비친 자기 목에 있는 붉은색 자국을 확인했다. 그녀는 얼굴은 붉히며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이어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사람들의 웃는 모습을 보며 찬이는 생각했다.‘도대체 왜 다들 웃는 거지? 내가 무슨 말을 잘못했나?’찬이가 크고 동그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왜 웃어요?”찬이는 자기가 비웃음을 당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왜 비웃는 거지?송연아가 찬이를 자기 자리에 앉히며 말했다.“찬이는 엄마랑 같이 있자.”“왜요?”송연아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를 때 심재경이 끼어들었다.“네가 방해 되니까 그렇지.”“제가 삼촌을 방해했어요?”찬이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내가 아니고 진원우의 일을 방해했어. 원우 삼촌이 금방 결혼했는데 네가 삼촌의 신부를 귀찮게 하니 방해가 된다는 거야.”“고모는 원우 삼촌의 와이프지만, 또 저의 고모잖아요. 그리고 고모도 저를 더 좋아한다고 했어요.”심재경이 웃었다.“원우 삼촌이 고모에게 줄 수 있는 것은...”“닥쳐!”심재경은 말이 끝나기 전에 제지당했다. 그의 말은 모두의 분노를 일으켰는데 다들 그를 노려보자, 그는 바로 꼬리를 내렸다.“그래, 그래. 내가 잘못했어.”송연아는 찬이를 안고 자고 일어나면 비행기가 착륙할 거니까 조금 자라고 했지만, 찬이가 전혀 자려고 하지 않아 간식과 그림책을 줬다. 그러다가 비행기가 착륙하는 시점에 잠이 들었는데 강세헌이 안고 비행기에서 내렸다.사전에 전화했기에 한혜숙은 이미 사람을 시켜 그들이 돌아오면 편안하게 쉴 수 있게 정리를 끝내고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먹을 것들도 많이 준비했다.송연아는 바로 강세헌을 방으로 불러들여 귀국 얘기를 했다. 이렇게 빨리 돌아온 것도 안이슬을 보러 가기 위한 거였기에 강세헌은 그녀를 말리지 않았다.“나랑 같이 가.”송연아가 말했다.“괜찮아요. 오래 자리를 비워서 회사 일 처리할 게 많을 거잖아요. 이영 씨가 같이 가면 돼요.”강세헌이 또 말하려할 때 송연아가 그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내 말대로 해요. 네?”강세헌은 그녀의 머리를 만지며 말했다
송연아는 병실 앞에 서서 경찰의 말을 듣자,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그렇게 심각해요?”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안이슬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기에 이렇게 말하는 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들어가 보시면 알게 될 거예요.”송연아는 직접 병실 문을 밀고 들어갔는데 1인실이고 창문 옆으로 침대가 한 개가 놓여 있었다. 그녀가 침대의 사람을 확인하고자 앞으로 걸어갔는데 안이슬이 잘못됐을까 봐 발걸음은 무거웠고 마음속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그런데...그녀는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침대에 누워 있는 사람은 온 얼굴이 거즈로 싸여 있어서 안이슬인지 전혀 알아볼 수가 없었다. 송연아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자 경찰이 한마디 했다.“안이슬 씨에요.”송연아는 소름이 돋았고 두 다리는 천근이라도 되는 듯 움직이기 힘들었다. 분명 가까이에 있는데 침대가 너무 멀게 느껴졌다. 어쩌면 거리 문제가 아니라 그녀가 감히 가까이에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송연아는 힘들게 숨을 쉬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 침대 옆에 도착했다.지금 병상에 누워 있는 사람이 안이슬이라는 말을 듣지 않았다면 전혀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믿을 수 없어서 입을 막았는데 심장이 너무 아파서 숨쉬기조차 힘들었다.‘도대체 어떤 일을 겪었으면 이 상태가 된 거지?’한참이 지나도 그녀는 감정을 진정시킬 수 없었고 심장도 튕겨 나올 것 같이 그녀의 몸에서 요동쳤다. 그때 문밖에 있던 경찰이 들어왔다.“송연아 씨를 부른 건 안이슬 씨를 설득해서 삶의 의지를 되찾아줬으면 해서입니다.”송연아가 물었다.“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예요?”“양팀장님이 임무로 희생하시고 안이슬 씨가 복수를 하기 위해 잠복 요원을 신청...”경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송연아가 끼어들었다.“그런다고 잠복 요원 하는 걸 동의했어요? 양명섭 씨가 희생하셨으면 그의 유가족을 잘 지켜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말을 하다가 그녀는 격동되여 목이 메었다. 그렇게 인품이 좋은 양명섭이 희생된 것도 모라자서 이제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