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겠네, 바로 가지.”이 선생님은 호주머니 안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쓰더니 단번에 맹인으로 변신했다.나는 그런 이 선생님의 연기력에 감탄했다. 어쩜 진짜처럼 연기할 수 있는지.게다가 이제 막 영업을 시작했는데 벌써 손님이 찾아왔다는 게 너무 놀라웠다.‘여기 장사가 이렇게 잘 되나?’나는 신입인지라 찾아오는 단골이 없어 아직은 한가했다.때문에 선글라스를 낀 채로 옆에 서서 열심히 배웠다.맹인 마사지는 침술 치료와 한약 구매보다 장사가 훨씬 잘 되었다.이제 고작 1시간이 지났는데, 벌써 손님이 3명이나 왔으니 말이다.맹인 마사지사는 도합 5명인데, 한 사람이 룸 한 칸씩 차지하고 있었다.그리고 현재는 나와 한 키 큰 중년 남자만 손님이 없었다.어차피 한가하니 나는 상대와 대화를 하며 친해지려고 결심했다.이에 나는 그 사람 룸으로 가서 웃으며 인사했다.“안녕하세요, 저는 새로 온 맹인 마사지사 정수호라고 해요.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나는 예의를 차려 정중하게 물었다.이 사람의 룸은 유난히 향긋하고 여러 가지 꽃과 식물로 꾸며져 엄청 예뻤다.하지만 예쁜 룸과 달리 주인 성격은 좋지 못했다.그 사람은 싸늘한 태도로 말했다.“바닥 금방 닦았는데 그쪽이 밟아서 자국났잖아요.”나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바닥에는 발자국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도 그럴 게, 우리는 가게 안에서 미리 준비된 전용 신발을 신기 때문이다. 게다가 청소부 아주머니가 신발 바닥을 매일 닦기에 바닥에 자국이 남을 리가 없다.나는 순간 상대가 나를 못마땅해한다는 걸 깨달았다.그렇다면 나도 이곳에서 상대의 눈치나 보고 있을 필요 없기에 얼른 뒤돌아 떠났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 중년 남자도 바로 손님을 받았다.그 손님은 심지어 귀부인이었는데, 옷차림이 화려한 데다, 보석을 치렁치렁 달고 있고 품에는 귀한 품종의 고양이를 안고 있었다.사모님은 문 앞에 서 있는 나를 보고는 무의식적으로 물었다.“가게에 신입이 들어왔네? 그것도 잘생긴 총각이?”그 말
나는 선글라스 뒤에서 그 기사를 째려보며 속으로 멍청이라고 욕설을 퍼부었다.심지어 고양이도 다시 돌려줄 생각이었다. 내가 마사지해 주는 손님은 사람이지 고양이고 아니니까.하지만 그때, 정 사장님이 걸어 나오더니 웃으며 말했다.“수호 씨, 이분은 성운 호텔 안주인, 윤 사모님이셔. 이 페르시아고양이는 윤 사모님이 해외에서 데려온 거라 무척 비싸.”“수호 씨는 첫 출근이니까 고양이로 연습해. 잘하면 윤 사모님이 팁도 많이 주실 거니까.”내가 아무리 사회 경험이 없는 새내기라도 정 사장님이 나를 위해 나서줬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눈앞에 있는 이 여자의 신분은 절대 무시할 수 없기에, 이분의 심기를 거스르면 분명 호되게 당할 거다.결국 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네, 사장님, 알겠어요.”나는 페르시아고양이를 안고 내 룸으로 향했다.고양이를 침대 위에 눕힌 순간 나는 너무 어이없어 웃음이 나왔다.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참 슬픈 일이었다.고양이가 나보다 더 잘살고 있다는 게 말이다.이 고양이는 몸에 금은 장신구를 주렁주렁 단 것도 모자라 마사지도 받고 있는데, 나는 남자가 돼서 고양이 마사지나 하고 있으니.그때, 정 사장님이 내 룸으로 들어왔다.“윤 사모님이 고양이 마사지를 하라고 해서 기분 안 좋았나?”나는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고객님이 시키는 대로 해야죠. 저는 돈만 벌면 되니까.”정 사장님은 웃으며 옆에 앉았다.“내 앞에서는 숨길 거 없네. 자네처럼 어린 총각들이 뭘 생각하는지 보기만 하면 다 아니까. 나도 자네처럼 젊었을 때가 있었기에 자네 마음을 아네. 이제 막 사회에 나와 아직 경험이 모자라겠지만, 이제 차츰 이 세상을 알게 될 테고, 본인이 너무 불행한 건 아니구나 생각할 걸세.”“열심히 해 봐. 어차피 돈만 벌면 되니까. 게다가 이렇게 돈 많은 사모님들은 돈 씀씀이가 헤프다네. 부자들을 모신다고 생각하지 말고, 부자들 주머니에 있는 돈을 모신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편할 거네.”나는 감사한 눈
내가 한창 고양이를 마사지하고 있을 때, 갑자기 옆 룸에서 여자의 교성이 들려왔다.‘무슨 상황이지?’‘옆에는 김진호와 윤 사모님인데, 두 사람이 설마...’나는 얼른 귀를 벽에 바싹 붙이고 옆방 기척을 엿들었다.그때 윤 사모님, 윤미화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김진호 씨, 너무 나빴어. 일부러 그 혈 자리 누른 거지?”김진호는 헤실 웃으며 말했다.“윤 사모님, 오해하지 마세요. 요즘 혈색이 안 좋은 것 같아 마사지해 드린 거예요. 그런데 의아해서 묻는 건데, 제가 매일 마사지도 해드리고, 평소 보신탕도 드시고 있으니 혈색이 좋아야 하는데 왜 오히려 어둡고 칙칙한가요? 충분한 사람을 받지 못해 기력이 없는 것처럼요.”그 말에 윤미화의 표정은 일순 어색해지더니 다리를 한데 모았다.김진호는 윤미화의 행동을 모두 눈에 새겼다.사실 김진호는 그녀가 욕구 불만이라는 걸 이미 눈치챘다.아마도 남편한테 오랫동안 사랑을 받지 못한 탓일 거다.김진호는 사실 윤미화의 정부가 되고 싶은데, 자기의 신분이 너무 미천한 게 걱정되고 두려워 그녀가 올 때마다 이런 방식으로 은근슬쩍 암시하곤 했다.하지만 윤미화는 매번 걱정이 되는지 김진호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내가 남편 사랑 받았는지 아닌지도 보아낼 수 있다고? 김 쌤이 그렇게 대단해?”윤미화는 언짢은 듯 말했지만 마음이 간질거려 직접적으로 거절하지는 않았다.사실 윤미화의 남편은 벌써 반년 동안 그녀에게 손도 대지 않았다. 그러니 매일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난 뒤, 혼자 집에서 외로울 수밖에 없다.하지만 그렇다고 밖에서 하고 싶은 대로 하지는 못했다. 어찌 됐든 윤미화가 누리는 모든 게 남편 덕이니까.만약 밖에서 함부로 몸을 굴렸다가 발각되기라도 하면 그녀는 끝장이다.하지만 김진호는 좀처럼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진작 윤미화를 제 백으로 둘 꿍꿍이를 꾸미고 있었다.그렇다면 앞으로 고생하면서 마사지사 일을 할 필요도 없으니까.김진호는 윤미화한테 말하면서 한편으로 그
“윤 사모님, 제가 사랑을 듬뿍 줄 수 있게 허락해 주세요.”김진호가 대담하게 말했다.그러자 윤미화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싸늘하게 말했다.“건방진 것! 어디서 감히!”김진호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윤미화를 자기 여자로 만들거나 이곳에서 떠나는 것뿐이었다.이건 그야말로 배짱을 시험하는 기회였다.워낙 윤미화를 자기 여자로 만들고 싶었던 김진호는 현재 더 열이 치밀어 자신을 억제하지 못했다.때문에 아예 달려가 윤미화를 와락 껴안았다.“윤 사모님, 저 정말 사모님을 사모합니다. 사모님 남편이 오랫동안 사모님을 건드리지 않은 걸 압니다. 지금 많이 외로우시죠?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윤미화는 다급히 김진호를 밀어내며 그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그 뺨 한 대에 김진호는 멍해졌다.그때 윤미화가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감히 네까짓 게 나를 좋아해?”말을 마친 뒤, 윤미화는 곧장 화가 난 듯 뒤돌아 룸을 나섰다. 그녀는 문 앞까지 나갔다가 문득 자기 고양이가 아직 남아있는 게 생각났는지 다시 내 룸이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나는 얼른 본분을 잊지 않고 고양이를 마사지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조마조마해서 중얼거렸다.‘저 사람도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군, 감히 고객을 마음에 두다니.’내가 고양이를 마사지하고 있을 때, 윤미화가 내 룸으로 쳐들어왔다.나는 여자가 뜬금없이 나에게 화를 낼까 봐 두려웠지만, 여자는 오히려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됐으니 그만해. 얼른 우리 애기 안아와.”나는 고양이를 품에 안고 일부러 더듬거리며 조심스럽게 윤미화에게 다가갔다.내 착각일지 모르겠으나 윤미화는 내 왼쪽에 서 있다가 갑자기 오른쪽으로 이동했다.그 결과 내 손이 마침 여자의 가슴에 닿고 말았다.나는 너무 놀라 얼른 손을 뒤로 빼며 다급히 사과를 거듭했다.“윤 사모님, 죄송합니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닙니다.”“뭐 하는 거야? 내가 사장 불러내서 자르라고 하는 수가 있어!”윤미화는 버럭 소리치며 호통쳤다. 하지만
‘부자들 돈 벌기 참 쉽네.’“감사합니다. 윤 사모님.”나는 돈을 받아 들고 일부러 맹인 행세를 하며 한참 동안 만져보고는 그제야 놀란 표정을 지었다.“이렇게 많아요? 사모님, 너무 많은 거 아니에요?”윤미화는 만족스러운 듯 나를 바라봤다.“많은 것도 아니야, 우리 애기가 기분 좋았다면 얼마든 아깝지 않아. 참, 여기 방문 서비스도 받ㅇ냐?”그때 윤미화가 갑자기 물었다.어떻게 답해야 하는지 몰라서 고민중인 때, 정 사장님이 들어와 대답했다.“네, 받습니다. 여기 있는 맹인 마사지사 모두 방문 서비스를 가능합니다. 윤 사모님 고양이도 서비스가 필요하면 언제든 전화 주세요. 제가 집까지 마사지사를 보내드리겠습니다.”윤 사장님의 대답을 아주 완벽하다. 이 대답은 윤미화의 궁금증을 해결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체면까지 지켜주었다.아니나 다를까, 윤미화는 만족스러운 듯 웃으며 말했다.“그럼 우리 애기가 필요하면 연락할게요.”“네.”정 사장님은 직접 윤미화를 마중했다.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왠지 불안했다.‘방문 서비스가 특별 서비스는 아니겠지? 정 사장님이 직원들한테 이런 일도 시키나?’윤미화가 떠난 뒤 나는 다급히 정 사장님께 물었다.“정 사장님, 방금 그게 무슨 뜻이에요?”내 질문에 사장님은 나를 사람이 없는 뒷마당으로 끌고 가더니 말했다.“수호 씨, 미리 말해둬야 할 게 있네. 우리는 확실히 정상적인 방문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고객님의 집에서 마사지해 주면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우리가 통제할 수 없어.”“어떤 서비스를 제공할지도 본인 의지에 맡기는 거고. 알겠니?”나는 당연히 알아들었다. 정 사장님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했고.방문 서비스는 당연히 일반 서비스보다 돈을 많이 벌 거다. 하지만 고객님의 집에서 어떤 서비스를 제공할지는 사장님은 관여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정 사장님이 나에게 미리 언질을 주는 건 내가 어떤 선택을 할지 미리 선택하라는 뜻이기도 했다.“알겠어요, 사장님.”나는 속으로 안도의
김진호는 두 눈에서 불을 내뿜고 있었지만, 정 사장님이 나서자 경솔하게 행동하지 못했다.하지만 나를 보는 김진호의 두 눈에는 악의가 가득 담겨 있었다.“정 사장님, 이 일은 저를 탓하시면 안 되죠. 가게 방침상, 마사지사들끼리 손님을 빼앗지 말라고 되어 있는데 정수호는 오늘 첫 출근이면서 고참인 제 손님을 빼앗아 갔어요. 첫날부터 이러는데 나중에는 어떻게 하겠어요?”그 말에 정 사장님이 덤덤하게 말했다.“우선 그 고양이는 김 쌤 고객이 아니잖아. 윤 사모님이 그 고양이를 수호 씨한테 맡겼으니, 그 고양이는 수호 씨 고객이야.”“그리고, 윤 사모님이 왜 수호 씨를 선택하고 김 쌤을 선택하지 않았는지 정말 모르겠나? 김 쌤이 고참이라서 말하지 않았는데, 눈치껏 행동해.”“고참이면 고참답게 모범을 보여야지 자네처럼 마음대로 행동하는 게 어디 있어?”정 사장님이 제 편을 들어주기는커녕 오히려 꾸짖어 다른 직원들마저 모여든 바람에, 김진호는 체면이 단단히 깎였다.아무리 그래도 고참인데, 체면이 있지.하지만 상대는 사장이기에 김진호는 모든 화를 나한테 돌렸다.김진호가 나를 죽일 듯 노려보는 눈빛을 본 순간, 나는 이 자식과 단단히 척을 졌다고 짐작했다.문제는 뭐 잘못한 것도 없이, 건드린 적도 없는데 이렇게 되었다는 게 너무 억울했다.김진호가 씩씩거리며 뛰쳐나가자 구경하던 직원들도 서서히 흩어졌다.하지만 나는 너무 답답하고 억울했다.‘앞으로 일할 때 김진호한테 꼬투리 잡히지 않게 조심해야겠네.’“김진호는 내 동창인데 워낙 성격이 안 좋네. 하지만 내가 잘 타이를 수 있으니,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생기면 나한테 찾아오게.”정 사장님은 내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나도 정 사장님이 참 좋은 분이고, 나에게 관심을 주는 것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정 사장님을 귀찮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문제만 있으면 고발하는 것 또한 남자다운 행동이 아니고.때문에 나는 얼른 대답했다.“걱정해 주셔서 감사하지만 그러실 필요 없어요. 저 혼자 해결할 수 있어
“고객님, 어디가 불편하세요?”내 고객은 30대 돼 보이는 여성이었는데, 옷차림은 평범해도 키가 크고 몸매가 늘씬한 미녀였다.게다가 안마의자에 누워 있는 데도 가슴 앞 봉우리가 봉긋 솟아 있었다.나는 마사지를 하기 전, 고객한테 어디가 불편한지 묻는 게 습관이다. 그래야 마사지할 때 고객의 아픔을 덜어주고 적절하게 처방할 수 있으니까.여자는 자기 배를 가리키며 말했다.“배가 자꾸만 쿡쿡 찌르는 듯 아파요. 병원에도 가봤는데 무슨 문제인지 알아내지 못했어요. 그래서 한번 시도해 보는 심정으로 여기 찾아온 거고요.”“옷 좀 걷어주실래요? 잠깐 검사 좀 해보겠습니다.”여자는 고분고분 옷을 들어 새하얀 배를 드러냈다.내가 여자의 배 몇 곳을 누르자 여자는 이내 눈살을 찌푸렸다.“아파요, 찌르는 것 같아요.”“여기예요?”“네, 맞아요. 아, 아파요.”“고객님, 혹시 피임링하고 계신가요?”“네, 왜요?”“피임링 위치가 잘못됐을 수 있어요. 병원에서 검사해 보세요.”“그럼, 여기서 고칠 수 없다는 뜻인가요?”나는 사실대로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 그럼 병원에 가봐야겠네요.”여자는 말을 마친 뒤 바로 떠나버렸다.그 결과 나는 또 손님이 한 명도 없게 되었다.그에 반해 다른 직원의 손님은 끊기지 않았다.점심시간이 되자, 김진호는 일부러 내 곁에 앉았다.“오전에 고객 한 명도 못 받았다면서? 아, 아니지, 첫 고객은 받았지. 윤 사모님 고양이.”김진호는 일부러 나를 조롱하고 염장 지는 게 틀림없었다.하지만 나는 그를 무시한 채 계속 식사를 했다.내가 자신을 무시하자 김진호는 내 젓가락을 빼앗아 바닥에 떨어뜨렸다.그 동작은 다른 직원들의 시선까지 한데 끌어모았다.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싸늘한 눈빛으로 김진호를 바라봤다.“내 젓가락 주워요.”김진호는 박장대소하며 나를 비꼬았다.“나더러 주우라고? 꿈 깨! 이게 나한테 맞선 결과야!”나는 말하는 대신 김진호를 발로 걷어찼다. 그러자 그는 이내 바닥에 나뒹굴었다. 심지어
이 선생님은 한숨을 푹 쉬었다.“고마워할 거 없네. 김진호는 내 제자인데, 다 내가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탓이니.”“아, 김진호 씨도 이 선생님 제자였어요?”이건 나도 의외였다.이 선생님과 그의 다른 제자는 모두 다정한데, 유독 김진호만 다른 세상 사람 같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이 선생님도 답답한 듯 고개를 저었다.“사실 김진호뿐만 아니라 정 사장도 내 제자라네.”“그렇다는 건 이 선생님이 실력 있다는 뜻이죠. 이 선생님 덕분에 이 가게 매출도 좋은 거고요.”이 선생님은 내 말에 피식 웃었다.“실력은 나도 부정하지는 않겠네. 내가 이 일을 하기 전에 마사지사 자격증까지 취득했으니까. 하지만 이젠 늙어서 예전만 많이 못 하네.”“이 선생님 솜씨는 계속 전해질 거예요. 게다가 모든 사람이 이 선생님을 영원히 기억할 거라고 믿어요.’내 말에 이 선생님은 허허 웃으며 나와 몇 수다를 덜었다.그 덕에 나도 방금 전 있었던 기분 나쁜 일을 바로 잊어버렸다.우리가 한창 재밌게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직원 한 명이 갑자기 고객이 찾는다면서 나를 불렀다.‘엥? 내가 출근한 지 반나절인데 나를 찾는 고객이 있다고?’“이 선생님, 선배님들, 천천히 드세요. 저 먼저 가볼게요.”나는 인사를 마치고 바로 떠났다.로비에 도착해 보니 마스크와 캡 모자를 쓰고 검은색 트렌치코트를 입은 여자가 서 있었다.“저기요, 혹시 저를 찾으시나요?”나는 여자의 얼굴을 보려고 가까이 다가갔다.하지만 여자는 선글라스까지 끼고 있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이 여자 뭐야? 뭐 하러 이렇게 꽁꽁 싸맸대? 파파라치한테 쫓기는 여자 연예인인가?’‘에이, 설마. 여자 연예인이 나를 알 리가 없잖아.’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여자가 갑자기 내 허벅지를 꼬집었다.그 순간 나는 참지 못하고 비명 질렀다.“수호 씨, 무슨 일 있어요?”정 사장님은 내 소리에 헐레벌떡 달려 나왔다.그때, 여자가 끝내 입을 열었다.“당장 저 남자 보내.”여자의 목소리를 듣는
하지만 형수는 너무 오랫동안 침대에만 누워 있어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에 반해 양춘옥은 힘이 넘쳐나 손쉽게 형수를 제압했다.형수는 순간 폭발해 버렸다.“당, 당신 뭐 하는 거야?”양춘옥은 얼른 아들에게 말했다.“아들, 뭐 해? 얼른 밧줄을 찾아오지 않고. 이 여자 윗몸만 움직일 수 있고 아래는 못 움직여. 너한테 마침 좋은 기회잖아.”양춘옥의 아들은 얼른 벨트를 풀더니 형수의 손을 묶으려고 다가갔다.그 순간 나는 방으로 쳐들어가 그 남자를 발로 걷어찼다.양춘옥은 그 순간까지 현실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때 나는 양춘옥의 머리채를 잡고 그녀의 뺨을 내리쳤다.나는 양춤옥이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뺨을 후려갈겼다.형수는 위험한 순간에 나타난 나를 보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나 역시 형수가 깨어난 걸 보니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형수!”“수호 씨, 타이밍 너무 좋았어요. 이 둘은 인간도 아니에요! 감히...”형수는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했다.나는 얼른 형수의 두 손을 꼭 잡았다.“알아요. 다 알아요. 형수, 걱정하지 마요. 이 사람들이 한 짓 내가 모두 찍었어요. 지금 경찰에 신고할게요.”양춘옥은 경찰에 신고한다는 내 말에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마구 달려들어 내 손에 있는 핸드폰을 빼앗으려고 했다.나는 또다시 양춘옥의 뺨을 내리쳤다.그러자 이번에는 양춘옥의 아들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모자 둘이 달려들어도 내 상대는 아니었다.양춘옥은 더 이상 방법이 없자 그제야 무릎 꿇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정 사장님, 제발 신고하지 말아 주세요. 제 아들이 이제 막 출소했는데 또 잡히면 이번에는 끝장이에요.”나는 이를 악물며 양춘옥을 바라봤다.“당신 아들 생각하기 전에 우리 형수는 생각했어? 내가 마침 집에 오지 않았다면 당신과 당신 아들이 형수한테 끔찍한 짓을 저질렀을 거잖아.”“내가 아줌마를 얼마나 믿었는데, 이렇게 보답하는 거야? 정말 악독하기도 하지. 오늘 당신도 법의 처벌을 받게 될 거야.”“안 돼요. 정 사장
“뭐요? 너무 까다로운 거 아니에요?”“까다로운 게 아니라 원래부터 얌전하지 않은 여자인 것 같아. 남편과 잘 지내지 않고 별 같잖은 남자랑 바람이 났어. 정수호라는 사람인데, 매일 이 여자 몸을 닦아주러 와서 이 여자를 형수라고 불러...”“너무 막 나가는 거 아니에요? 이런 일이 다 있다니. 이 여자도 참 뻔뻔하네요.”아들의 말에 양춘옥이 말했다.“그러니까 내가 널 불러온 거잖아. 이 여자도 워낙 얌전하지 않은 여자니까 너도 욕구나 풀어보라고. 아들, 너 이제 막 감방에서 나와 많이 쌓였을 거 아니야?”“밖에서 아가씨 찾기보다 이 여자한테 욕구를 푸는 게 더 나아. 적어도 이 여자는 깨끗하잖아.”고태연은 두 모자의 대화를 들으면 들을수록 화가 치밀어 당장이라도 일어나 양춘옥의 뺨을 후려갈기고 싶었다.하지만 결국 그녀가 가장 걱정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것도 그녀가 혼자 집에 있을 때 말이다.이런 상황에서 당하면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모를 거다.고태연은 너무 무섭고 두려웠다. 심지어 이 두 모자에게 이토록 모욕당할 바에는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리고 그 시각 양춘옥과 아들의 대화를 들은 나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하지만 나는 서둘러 안으로 쳐들어가지 않았다.나는 우선 거실에 설치했던 감시 카메라를 찾았다. 그랬더니 카메라는 어느새 구석으로 옮겨졌다.‘이 아줌마가! 나는 그래도 믿고 매일 카메라를 돌려보지 않았는데, 이런 짓을 하다니.’나는 핸드폰 녹화 기능을 켜고 방 안을 몰래 촬영했다.탐정 사무소에서 일을 하게 된 이후로 나는 뭐든 증거싸움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 남자가 형수 몸에 바짝 붙어 다리에 코를 가져다 대며 냄새를 맡았다.“냄새 좋다. 식물인간한테서 이렇게 좋은 냄새가 나다니. 피부도 이렇게 좋고. 대박, 몸매도 완전 끝내주잖아.”양춘옥은 옆에서 키득거렸다.“당연하지. 그리고 무엇보다 이 여자는 깨끗해. 아들, 얼른 하지 않고 뭐 해?”“헤헤. 그럼 엄마는 밖에서 망 좀 봐...”양춘옥은
“나 그만 놀려요. 내가 보고 싶은데 왜 애교 누나 집에 와서 혼자 술을 마셔요?”나는 아직 어려 정치계 판을 잘 모른다지만 그렇다고 바보는 아니다.남주 누나는 내 말에 피식 웃었다.“우리 푸들 많이 똑똑해졌네? 예전처럼 타격감이 좋지 않아. 하지만 점점 더 귀여워.”나는 자꾸만 내 몸을 타고 올라오는 남주 누나의 손을 덥석 잡았다.“말해요. 대체 무슨 일이에요? 일에 무슨 문제 생겼어요?”“응. 이 세상에서 날 괴롭힐 수 있는 건 일밖에 없어.”“왜죠? 왜 혼인이나 가정 문제는 될 수 없어요?”“헛소리 아니야? 혼인과 가정이 나보다 중요할 리 없잖아.”‘맞다. 누나도 가정보다 자기 지위가 우선인 여자였지. 백연우처럼.’“그래서 일은 해결됐어요?”나는 그 말을 내뱉은 순간 후회했다. 해결되었으면 술로 기분을 달랠 리 없을 테니까.하지만 남주 누나는 의외의 답을 내놓았다.“해결된 셈이지. 하지만 강등됐어.”“얼마나요?”“아무 실권도 없는 말단직으로. 그래도 괜찮아. 이제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내 약점을 잡고 나 협박하는 사람 없을 테니까.”남주 누나는 강등된 건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건 아마도 자기 위로일 수 있었다.“이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시간도 아까운데 계속 즐겨볼까?”남주 누나는 또다시 나에게 다가왔다. 심지어 리듬 있는 음악을 틀어 놓아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며 나에게 또 충격을 안겨주었다.나와 남주 누나는 그사이 애교 누나가 집에 다녀갔다는 사실을 몰랐다.애교 누나는 내가 걱정되어 직접 와 봤다. 하지만 방에서 들리는 나와 남주 누나의 소리에 얼굴을 붉히며 물러났다.“남주였네. 다른데 좀 가지. 왜 우리 집에서 수호 씨를 꼬시는 거야?”애교 누나는 입을 삐죽거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뒤돌아섰다.나와 남주 누나는 한밤중까지 몸을 섞고 피곤한 몸을 한 채 잠이 들었다.오랜만에 푸는 욕구에 우리 둘 다 너무 흥분해 버린 탓이었다.심지어 남주 누나는 열정적이다 못해 심지어 내가 지금 동영상 촬영 현
남주 누나는 헤실 웃으며 말했다.“정수호네. 이리 와, 와서 한잔해.”나는 남주 주나 쪽으로 걸어갔다. 가까이 가봤더니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와인 두 병 중 한 병은 이미 텅 비어 있었고, 남주 누나도 이미 술에 취했는지 얼굴이 발그스름했다.“누나, 혼자 이렇게 마신 거예요?”남주 누나는 똑바로 앉아 내 팔을 감싸안았다.“너 아니면 애교를 불러 곁에 있어 달라고 부탁하려고 했는데 요즘 바쁘다고 해서 안 불렀어. 그런데 마침 이렇게 와 버렸네? 나랑 한잔해.”나는 지난번 남주 누나를 봤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 누나도 기분이 안 좋아 보였는데 아마도 일 때문인 것 같았다.그런데 이번에 이토록 취해 있는 걸 보니 일이 잘 안 풀리는 모양이었다.나는 남주 누나 손에 있는 와인을 빼앗았다.“그만 마셔요. 취했어요. 부축해 줄 테니 방에서 휴식해요.”“정수호, 예전에 너한테 장난치던 때가 그리워. 도 장난칠 테니까 내 장난 받아줘. 응? 나도 기분 좀 좋아지게.”남주 누나는 몽롱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그게 대체 뭐가 그립다는 건지.’나는 그때 너무 단순해 항상 남주 누나한테 농락당했다. 심지어 몇 번이나 나를 유혹하는 남주 누나를 눈앞에 두고 입맛만 다시며 마음을 졸였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가 조금도 그립지 않았다. 나는 하고 싶을 때면 마음대로 하는 지금이 더 좋다.“내가 네 소원 들어줄게.”남주 누나는 내 목을 끌어안고 취한 말투로 말했다.누나의 완벽한 몸매를 보니 나도 솔직히 몸이 달아올랐다. 하지만 남주 누나는 지금 많이 취한 상태고, 기분도 안 좋아 보이니 몸을 섞는다고 즐겁지는 않을 거다.“됐어요. 누나 지금 취했어요. 부축해 줄 테니 방에서 자요.”“나 많이 안 마셨어. 그냥 조금 알딸딸한 정도야. 나도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알아.”“있잖아. 나 요즘 너무 바빠서 남자 만날 시간도 없었어. 그러니 오늘 너 땡잡은 거야.”남주 누나는 말하면서 나를 자기 쪽으로 잡아당겼다.나는 술에 취한
“정 사장님, 물 바꿔드릴까요?”내가 형수의 팔을 닦아주는 동안 양춘옥이 방에 들어와 열정적으로 물었다.그 모습에 나는 간단히 말했다.“아니에요. 거의 다 닦아요.”나는 형수가 뭘 걱정하는지 몰랐다. 무엇보다 양춘옥이 문제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그때 양춘옥이 목적성이 다분한 질문을 했다.“정 사장님, 요즘 안 보이시던데 바쁘셨나요?”“네. 요즘 일이 바빠서 매일 오지 못해요. 그러니 이모님이 우리 형수님 잘 돌봐주세요. 참, 요즘도 제가 바쁘니 부탁드릴게요.”양춘옥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며 싱긋 웃었다.“정 사장님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무조건 잘 돌봐드릴게요.”“형수, 다 닦았어요. 형수가 깨끗한 걸 좋아하는 거 알고 특별히 피부 관리하는 스킨로션도 발라줬어요.”나는 형수를 돌본 뒤 옆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고아연이 돌아온 뒤에야 떠났다.고아연은 나를 집 앞까지 마중하며 물었다.“요즘 바빠?”“네, 왜 그래요?”“아니, 별 건 아니고. 지난번에 찍는다던 영상을 안 찍었길래 바쁜가 해서.”“요즘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었어요.”이건 단순한 오락이라 돈을 버는 것에 비하면 당연히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그래. 그럼 앞으로 안 찾을게. 내 연락처 삭제해.”고아연은 갑자기 말투가 날카로워졌다.그 말에 나는 순간 멍해졌다.“여자들은 다 이래요? 심심하면 연락처 삭제하고? 이런 거 엄청 예의 없는 거 알아요?”고아연은 팔짱을 낀 채 웃었다.“우리는 원래부터 아는 사이도 아니었어. 그런데 지금 바빠서 영상 찍을 시간도 없다는데 내가 네 연락처를 왜 남겨? 난 원래 이래. 연락 자주 하지 않는 사람은 삭제해. 수호 씨도 마찬가지야.”나는 일부러 고아연에게 맞섰다.“그럼 형수가 지금 이러니까 형수도 삭제했겠네요?”“그래.”“흥. 누가 믿을 줄 알고.”“믿든 말든.”고아연의 모습은 거짓 같지 않았다.나는 이 순간 고아연을 또다시 봤다.“바쁜 일 다 처리하면 도와줄게요. 연락처 삭제하지 마요. 앞으로 또다시 추가하
애교 누나 얘기를 언급하니 내 기분은 저절로 다운되었다.“난 누구랑 결혼할지도 모르겠어.”“왜? 애교 누나랑 사이가 틀어졌어?”민우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그런 건 아니야. 그냥 애교 누나랑 나는 결혼할 사이가 같지 않아. 애교 누나가 나한테 너무 관대하고 너무 풀어줘. 그래서 너무 진실감이 없어.”“헐. 여자 친구가 풀어주는 게 얼마나 좋은데? 네가 밖에서 다른 여자 만나도 뭐라 안 하고 오히려 응원해 준다며? 그렇게 좋은 여자 손전등 켜고 찾아도 없어.”현성과 민우는 나를 부러워했다.사실 나도 예전에는 똑같은 마음이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애교 누나는 너무 좋고 너무 관대하여 질투도 하지 않아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심지어 가끔 이 모든 게 허상이라는 생각도 들곤 한다.그에 반해 윤지은은 또 나에게 너무 현실을 체감하게 해준다. 좋아할 때도 질투할 때도 있어 오히려 더 커플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정수호, 너 진짜 쓰레기네. 너 설마 애교 누나 버리려고 그래?”현성이 갑자기 물었다.“헛소리. 내가 언제 버린다고 했어?”“그럼 아까 발언 무슨 뜻인데?”“난 그냥 애교 누나가 너무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뜻이지 버리겠다는 뜻 아니야. 함부로 누명 씌우지 마.”나는 바로 현성을 반박했다.하지만 그때 민우가 바로 끼어들었다.“사실 나도 네가 좀 쓰레기 같아. 아마 네가 만난 누나들이 다 너 같은 나쁜 남자를 좋아하나 보다.”“젠장. 내가 너희들한테서 무슨 좋은 말을 듣겠냐?”그날 저녁 퇴근 후 나는 형수네 집에 들렀다.그동안 너무 바빠 형수를 보러 오지도 못하고 몸을 닦아주지도 못했기에, 나는 얼른 따뜻한 물을 담아 형수 몸 곳곳을 닦아주었다.형수는 이렇게 오랫동안 누워만 있었지만 뺌은 여전히 발그스름하고 피부도 백옥 같은 피부에 핑크빛이 감돌았다.아마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그저 잠자고 있다고 생각할 거다.내가 형수의 몸을 닦아주는 동안 형수의 가슴은 사실 콩닥콩닥 북을 쳤다.‘수호 씨가 이제야 날
“이 얘기는 이쯤에서 하고. 말해요, 서나연 씨 일 외에 다른 볼 용건 있어요?”나는 화제를 다시 끌어왔다.그러자 소여정은 내 턱을 잡으며 생글생글 웃었다.“있지 그럼. 너 놀리러 왔어. 내가 너 놀리는 거 오랜만이잖아.”“미쳤어요?”나는 다급히 소여정의 손을 쳐냈다.“날 미친X 취급해? 내가 진짜 너 가만 안 둔다?”“못 믿겠어요. 나 이제 임천호도 안 두려운데 소여정 씨를 두려워하겠어요?”나는 소여정에게 계속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소여정은 대단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오호라. 며칠 새에 많이 컸네? 그런데 그런 모습 점점 더 좋아지는데?”소여정은 정말 역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매번 나타났다 하면 나에게 귀찮은 일을 던져주곤 한다.물론 내가 이제 임천호를 두려워하지 않는다지만 그렇다고 귀찮은 일에 휘말리고 싶지는 않았다.나는 그저 장사를 잘해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내가 소여정을 무시하자 소여정도 나를 보는 체도 하지 않고 스스로 가게 안을 둘러봤다. 그러다가 결국 몇 가지 선물 세트를 골랐다.소여정이 계산하려고 할 때 나는 다시 그녀에게 다가갔다.“선물 세트 사서 누구한테 주려고요?”“이젠 임천호 안 두렵다며? 내가 누구한테 주든 무슨 상관이야? 아니면 내가 이 선물을 가져갔다가 이 가게에서 샀다는 걸 들킬까 봐 그러는 거야?”소여정은 마치 내 배에서 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나를 빠삭하게 알았다.“찾아오겠으면 찾아오라고 해요. 소여정 씨는 정상적인 소비예요.”나는 말발로 소여정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에 바로 뒤돌아 떠나갔다.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후들거렸다.소여정은 물건을 구매한 뒤 가게에서 택배로 보낼 수 있는지 물었다. 그 질문에 점원 한 명이 가능하다고 대답했다.소여정은 주소 하나를 남기고 직원더러 선물 세트를 주소에 적인대로 보내달라고 당부했다.소여정이 떠난 뒤 나는 그 위에 적힌 주소를 확인했다. 주소는 H시로 되어 있고, 받는 이는 ‘소원규’로 되어 있었다.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이름에 한참을 떠
“누구한테 들었어?”“그건 상관하지 마요. 맞는지 아닌지만 대답해요.”나는 얼렁뚱땅 넘기려고 했다.다행히 소여정은 내 질문을 회피하지 않고 바로 인정했다.“맞아. 나도 예전에 윤지은과 임유미처럼 잘 사는 집 딸이었어. 안 그러면 우리 넷이 왜 친구가 됐겠어?”하긴. 소여정은 나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물었다.“뭐 하나만 물을게. 소씨 가문 사람들이 강북에 있지?”“그걸 어떻게 알아요?”나는 흠칫 놀랐다.그 말에 소여정이 대답했다.“어떻게 알았는지는 알려고 하지 마. 맞는지 아닌지만 말해.”소여정이 이렇게 묻는다는 건 이미 단서를 찾았다는 뜻이기에 나는 사실대로 대답했다.“맞아요. 임천호 아내가 강북에 와서 요즘 유미 사모님과 같은 동네인 백조의 호수에 살아요.”“백조의 호스? 보아하니 나도 그곳에 집을 마련해야겠네.”소여정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그 말에 내 눈은 휘둥그레졌다.“지금 제정신이에요? 소씨 가문 사람들이 그곳에 있는데 멀리 숨지는 못할망정, 같은 동네에 살겠다고요? 대체 무슨 생각인 거예요? 설마 서나연 씨를 쫓아내고 본인이 임천호 아내가 되려고 그래요?”소여정은 생글생글 웃으며 물었다.“안돼? 임천호가 얼마나 대단해. 나한테도 잘해주고.”“대단하긴 무슨. 부시장님과 윤 회장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더만.”나는 내가 임천호 뒷담화를 하는 날이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소여정은 나를 다시 봤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다.“정수호, 대단하네. 임천호를 그렇게 말하고. 임천호가 안 뒤 죽이려고 할까 봐 두렵지 않아?”“내가 임천호 산하의 대출 회사도 무너뜨렸는데, 임천호를 무서워하는 거로 보여요?”나도 비록 내가 너무 잘난체 한다는 걸 알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정말 참을 수가 없다.이 세상에 허영심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게다가 이건 내가 평생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닐 일이기도 하다.소여정은 입을 가리며 웃었다.“아주 어깨뽕이 하늘로 치솟는구먼? 그 대출 회사 임천호한테 엄청 중요한 회사인 건
“오, 오빠가 뭘 하려는지 알아요. 만약 하고 싶으면 날 오빠한테 줄 수 있어요.”주선영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옷자락을 잡고 긴장한 표정으로 고백했다.이건 현성에 대한 인정이었다. 현성은 너무 설레어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는 두말없이 주현영을 와락 끌어안았다.그러자 주현영이 이내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여, 여기서는 안 돼요. 우리... 호텔 가요.”“그래, 바로 가자.”나는 현성과 주현영이 손잡고 뛰쳐나오는 걸 본 순간, 현성이 오늘 소원을 이룰 거라는 걸 알았다.나는 싱긋 웃으며 현성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파이팅.”“당연하지.”현성은 헤헤 웃으며 말했다.이윽고 두 사람은 손을 잡고 기쁜 얼굴로 떠나갔다.나는 얼른 이 기쁜 소식을 민우에게 알려주려고 전화했다.[수호야. 왜 그래? 나 지금 바빠.]민우는 목소리를 한껏 낮추고 말했다.그 목소리에 나는 의아했다.“너 지금 뭐 해? 가게 보는 거 아니었어?”[설아가 점심에 나 찾아와서 지금 설아랑 호텔에 있어.]“헐, 너 뭐야? 임설아랑 결실을 보는 거야?”‘왜 친구들한테 버림당해 혼자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지?’민우는 헤실 웃었다.[이만 끊어. 설아가 샤워하러 갔다가 지금 나와. 우리 오늘 마지막까지 갈 거거든.]민우는 말을 마치자마자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이 상황에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대충 음식을 먹고 가게로 돌아가는 것뿐이었다.하지만 혼자 사무실에 앉아 있을수록 기분이 안 좋았다.예전에는 내가 민우와 현성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었는데, 현재는 내가 두 사람을 부러워하는 꼴이 되었으니.하지만 윤지은과 애교 누나한테는 연락할 엄두도 나지 않고 형수는 아직 혼미해 있으니 누구를 찾아야 할지 고민이었다.나는 주위에 여자가 끊이지 않다고 이렇게 외로이 혼자 남는 날이 오게 될 줄은 몰랐다.‘정수호 몰락했네. 몰락했어!’내가 속으로 감개무량해하고 있을 때 아래층에서 직원 한 명이 나를 불렀다.“정 사장님, 누가 찾아왔어요.”“알았어요. 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