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애교 누나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더니 이내 말을 보탰다.“형수가 물으면 내가 몸이 불편해 가지 못한다고 해요. 알았죠?”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네.”“시간도 늦었는데 얼른 돌아가 쉬어요.”얼굴을 붉히며 말하는 애교 누나의 두 눈은 너무나도 부드러웠다.나는 웃으며 애교 누나한테 손을 흔들어 작별 인사를 한 뒤 문을 나섰다.하지만 형수 집 문 앞에 도착하고 나서야 형수 집 열쇠가 없다는 걸 알아차렸다.‘어떻게 들어가지?’‘이 시간에 전화해서 문 열어달라고 하면 무슨 일인지 물을 텐데.’하지만 난 두 사람한테 조금 전 일을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이건 나와 애교 누나의 비밀이니 우리 둘만 알아야 한다.이에 나는 다시 애교 누나 집에 돌아가 열쇠로 문을 열었다.내가 다시 돌아온 걸 보자 애교 누나는 잔뜩 긴장해서 이불로 제 몸을 덮었다.“수호 씨, 왜 다시 돌아왔어요?”그 시각 애교는 솔직히 수호가 저한테 뭘 하려고 한다고 생각했다.이렇게 늦은 야밤에 본인이 이렇게 섹시한 차림을 하고 있으니 남자가 마음이 동하지 않는 게 불가능 하기에.애교는 한 손으로 슬그머니 핸드폰을 잡으며 만약 수호가 저를 어떻게 하면 당장 신고하려고 했다.애교 누나가 그런 생각을 할 줄 몰랐던 나는 그저 헤실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저 형수 집 열쇠가 없어서 다시 베란다로 넘어가야 해요.”내 말에 애교 누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와 동시에 본인을 탓했다.‘수호 씨가 나를 그렇게 도와줬는데 의심하다니. 사람이 너무 속 좁은 거 아니야?’그러다 잠시 뒤, 애교 누나는 베란다를 흘긋거리더니 걱정스레 말했다.“그런데 저기를 넘어가는 건 너무 위험해요. 아니면... 오늘 밤은 여기서 지내는 게 어때요?”나는 애교 누나가 이런 말을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순간 심장이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세게 뛰었다.‘여기서 지내라고?’‘내가 얼마나 바라던 거였는데.’물론 오늘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거란 걸 알지만 애교 누나와 같은 지붕 아
“네.”옆방 객실로 온 나는 장롱에서 이불을 꺼내 침대 위에 폈다.그러고 바로 침대에 누웠는데 그때부터 마음이 들떠 잠을 이룰 수 없었다.애교 누나의 태도 변화가 너무 큰 것 같다.낮까지만 해도 나를 무시하더니 저녁에는 아예 집에서 지내라고 하다니.이 객실과 애교 누나의 방은 아주 가깝다.나는 일부러 방문을 살짝 열어두었다. 이렇게 하면 애교 누나가 나를 부를 때 바로 들을 수 있으니까.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애교 누나는 좀처럼 나를 부르지 않았다.그렇게 시간은 어느덧 새벽 3시를 가리켰고, 더 이상 버티지 못해 나는 잠이 들어버렸다....다음 날 아침.애교는 아침을 차려놓고 수호를 깨웠다.작은 소리로 깨우다가 수호가 듣지 못하는 것 같으니 문을 채 닫지 않은 수호의 방 안으로 들어왔다.하지만 딸랑 팬티 한 장 걸치고 이불도 덮지 않고 대자로 침대에 누워 자는 수호를 보자 부끄러워 얼른 고개를 돌렸다.그러고는 이내 다급한 목소리로 수호를 불렀다.“수호 씨, 수호 씨.”하지만 너무 깊이 잠든 수호가 듣지 못하자 애교는 방법이 없는 듯 얼굴을 붉히며 수호의 침대 앞으로 다가갔다.그리고 그 순간, 애교의 눈은 수호의 그곳에 멈췄다.왜냐하면 그곳이 불룩 솟아 있었기 때문이다.반년 넘도록 남자를 접하지 않은 터라 애교의 욕망은 순간 불 타올랐다.두 눈은 오롯이 그곳을 바라보며 움직이지 않았다. 심지어 머릿속에 한 번만 만져보자는 유혹의 목소리가 들렸다.결국 욕망을 이기지 못한 채 천천히 수호의 침대로 올라와 백옥 같은 손을 앞으로 뻗었다.너무 깊은 잠에 빠진 수호는 그걸 알 리 없었다.하지만 손이 수호에게 닿으려는 순간, 애교는 갑자기 현실을 깨달은 듯 다급히 손을 움츠렸다.‘내가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남편도 있는 사람이 이러면 남편은 어떻게 보려고?’애교는 비록 자책했지만 방을 나가지는 않았다.오히려 자꾸만 수호를 흘긋거렸다.너무 오랫동안 남자의 사랑을 받지 못한 탓에 이미 말라비틀어져 남자에게 받는 사랑을 너무 갈망
하지만 결국 그러지는 못했다. 일을 그르칠까 봐 무서웠으니까.나는 계속 지켜보려고 했다.애교 누나가 나한테 얼마나 더 대담한 짓을 벌일지.만약 애교 누나가 더 대담하게 하면 나는 그걸 빌미로 애교 누나를 덮칠 수 있으니까.그때 애교 누나의 행동이 순간 내 피를 끓어오르게 했다.애교 누나는 내 가슴 위에 살며시 기댔다.무게를 모두 싣지는 않고 내 가슴과 1, 2센티 정도 거리를 유지한 걸 보면 내가 깰까 봐 걱정됐던 모양이었다.물론 나는 진작 깨어 있었지만.애교 누나의 행동에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고,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침대 위에 놓인 손을 천천히 들며 언제든지 애교 누나를 덮칠 준비까지 했다.하지만 내 손이 애교 누나에게 거의 닿으려는 그때, 애교 누나가 갑자기 일어났다.너무 놀란 나는 다급하게 손을 움츠렸다.그와 동시에 실망감이 몰려왔다.“하, 내 남편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애교 누나도 나를 보면서 아쉽다는 듯 말했다.애교 누나가 여전히 이 벽을 넘지 못한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당장이라도 누나의 남편이 바람을 피운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누나의 남편이 그걸 밝히고 싶으면 진작 밝혔을 테니까. 내가 이렇게 갑자기 이 사실을 까발리면 오히려 형과 형수한테 누를 끼칠 수 있다.나는 그렇게 이기적인 행동을 할 수 없었다.그 시각, 애교는 멍하니 수호를 바라보고 있었다.나가고 싶었지만 수호의 튼실한 몸을 보니 못내 아쉬웠다.그러다 입술을 깨문 채로 얼굴을 붉히며 속으로 중얼거렸다.‘한 번만, 딱 한 번만 만져보고 갈 거야.’‘난 그냥 남자의 몸을 느껴보고 싶은 것뿐이야. 다른 방법이 없잖아.’애교는 욕망을 못 이기고 끝내 손을 내뻗었다.지금이라도 당장 수호를 꼭 안고 느껴보고 싶었다.한편, 나는 애교 누나가 나를 만지려 하는 걸 가만히 지켜봤다. 만약 이 기회를 잡지 않으면 나에게 더 이상 기회가 없을 것만 같아 애교 누나의 팔을 잡아당겨 내 몸 위로 당겼다.애교 누나는 미처 반응할 새도
나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왜요? 누나도 원하는 거 아니었어요?”“아니에요. 난 원하지 않아요.”“누나도 원하고 있잖아요. 아까 나를 만졌으면서, 나 다 알아요.”그 말에 애교 누나는 얼굴부터 목까지 빨갛게 물들었다.이윽고 화가 난 듯 고개를 홱 돌렸다.그런 누나의 모습에 나는 당황해 다급히 물었다.“왜요? 제가 또 뭐 말실수했나요?”“아까 진작 깼으면서 자는 척한 거 일부러 나 망신 주려고 그런 거죠?”나는 고개를 힘껏 저었다.“아니에요. 왜 그런 생각을 해요? 아까 누나가 들어왔을 때 저 정말 자고 있었어요. 누나가 나 만질 때 깬 거예요. 제가 그때 깨어나면 누나가 더 난감했을 거잖아요.”애교 누나는 여전히 나를 보지 않았다.“그럼 왜 계속 자는 척하고, 그런 짓을 저질렀는데요?”“누나를 원하니까.”나는 애교 누나를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나 누나 좋아해요. 그것도 아주 많이. 결혼하고 싶어요.”애교 누나는 그제야 나를 보며 예쁜 눈을 커다랗게 떴다.“지, 지금 무슨 말 하는 거예요?”나는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저 누나를 아내로 맞이하고 싶다고요.”“무슨 농담을 하는 거예요? 난 수호 씨 형수 친구예요. 수호 씨보다 나이도 엄청 많고, 남편도 있어요. 우리 남편 나한테 엄청 잘해줘요.”그 말에 나는 조급해 났다.“누나 남편이 그렇게 잘해주면 왜 반년 동안 코빼기도 안 보여요?”“그건 바빠서 그래요.”애교 누나가 설명했다.그 순간 나는 감정이 북받쳐 직설적으로 말했다.“누나는 남자를 참 모르네요.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하면 아무리 바빠도 계속 보고 싶어요. 우리 형을 봐요, 그렇게 바쁘면서 매일 집에 꼬박꼬박 들어오잖아요.”애교 누나는 내 말에 기분이 나빴는지 정색했다.“비켜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요.”하지만 나는 애교 누나를 품에 꼭 안은 채 말을 이었다.“싫어요. 누나가 너무 단순하고 착해서 남편한테 버림받은 것도 모르는 거라고요. 여자는 꽃과 같아 햇빛도 주고 물도 줘야 해요.
애교 누나가 나를 당장 쫓아버리지 않고 오히려 남아서 아침을 먹게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누나가 나를 그렇게 싫어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 너무 기뻤다.내가 다급히 식탁 앞에 앉아 애교 누나는 얼굴을 붉히며 나를 봤다.“먼저 가서 세수부터 해요.”“그래요. 바로 하고 올게요.”나는 말 잘 듣는 아이처럼 얼른 화장실로 달려가 세수했다.애교는 그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말아 올랐다.애교도 이러는 게 맞는지 모른다. 그저 수호가 어제 저를 구해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없으니, 생명의 은인을 밥도 안 먹여서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이건 그저 어제의 빚을 갚는 것뿐이야.’그 외의 것은 애교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나는 이내 세수를 다 하고 돌아왔다.애교 누나는 내 앞에 수저와 그릇을 놔주고, 나에게 반찬을 짚어 주었다.나는 애교 누나가 나에 대한 생각을 바꿨다고 생각했지만 애교 누나는 또다시 벽을 쳤다.“난 수호 씨 형수 친구예요. 앞으로 나한테 그런 생각은 하지 마요. 알았죠?”나는 또다시 실망했다.나한테 생각을 바꾼 게 아니었다니.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밥을 먹었다.그러자 애교 누나가 젓가락으로 내 밥그릇을 두드렸다.“말하고 있잖아요. 듣고 있어요?”나는 어디서 나온 배짱인지 화가 난 듯 툭 내뱉었다.“못 들었어요. 듣고 싶지도 않고.”“왜 그래요? 스무 살도 훌쩍 넘은 사내가 어쩜 어린애처럼 굴어요?”“저는 누나가 내 여자가 됐으면 좋겠으니까요.”내가 대담하게 말하자 애교 누나는 이번에 화내는 대쉬 차근차근 설명했다.“수호 씨, 수호 씨는 아직 어려서 사랑이 뭔지 몰라요. 결혼은 훨씬 더 이후의 일일 거고. 아직 여자 만난 적 없어서 여자에 대한 환상이 있는 것뿐이에요.”“누가 그래요? 제가 여자를 만나본 적 없는 건 맞지만 남자가 돼서 여자한테 책임져야 한다는 건 알아요. 누나 남편은 반년 동안 집에 돌아오지도 않았잖아요. 그러면 문제 있는 거예요. 저는 누나가 바보처럼 기다리는 게 싫어요.”
“애교 누나, 너무 속상해하지 마요. 사실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어요.”나는 애교 누나의 보수적인 생각을 바꾸려고 계속 설득했다.애교 누나가 스스로 생각을 바꿔야 나한테가 기회가 주어지니까.지금의 애교 누나는 너무 보수적이라 공략하기 어렵다.“혼자 있는 게 뭐가 좋아요? 외롭고 고독하고, 뭐든 혼자 해야 하고 대화할 사람도 없다고요. 게다가 분명 결혼했는데 이러는 건 과부와 뭐가 달라요?”나는 애교 누나가 지금의 생활에 불만을 품고 있다는 걸 보아낼 수 있었다.‘이러면 나야 좋지.’애교 누나가 생활에 불만을 가질수록 나한테 기회가 많아지니까.나는 슬그머니 애교 누나의 손을 잡았다.하지만 애교 누나는 눈치채지 못했는지 아니면 뭔지, 손을 빼지는 않았다.그러자 나는 더 대담하게 누나의 손을 꽉 잡으며 흥분해서 말했다.“그럼 제가 앞으로 누나 곁에 있을게요. 그러면 외롭지 않잖아요”“같이 있으면 있는 거지, 왜 손을 잡고 그래요? 이거 놔요.”애교 누나는 당황한 듯 얼른 내 손을 쳐냈다.물론 한순간이지만 그래도 애교 누나의 손을 잡았다는 것에 나는 기분이 좋았다.게다가 애교 누나가 예전처럼 나를 싫어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장족의 발전이었으니.나는 이내 젓가락을 휘저으며 그릇 하나를 비웠다.“더 줄까요? 더 담아줄게요.”“네. 이렇게 작은 그릇에 열 번도 더 먹을 수 있어요.”“잘 먹네요. 젊어서 그런가? 좋네요.”나는 형수가 늘 하던 식으로 일부러 장난쳤다.“어디 젊기만 해요? 튼실하기도 한데. 제 팔 봐요. 다 근육이에요.”그리고 말하면서 일부러 몸매를 자랑하는 듯 애교 누나에게 근육을 보여줬다.나도 내 몸매가 거의 완벽에 가깝다고 자부한다.젊고 튼튼하고 또 남성미가 넘친다고.그래서인지 애교 누나도 나를 보더니 얼굴을 붉혔다.“앞, 앞으로 다시는 이러지 마요.”이윽고 이 말을 하고는 그릇을 챙겨 뒤돌아섰다.한편, 애교는 너무 부끄러워 쥐구멍에 숨고 싶었다.‘뭐 하는 거야? 수호 씨 몸매가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만
“태연아, 수호 씨 어젯밤 나 도와주고 돌아가려 했는데 집에 들어가지 못해 내가 하룻밤 있으라고 했어. 그러니까 오해하지 마.”“난 오해하지 않았는데 왜 설명해?”형수가 웃으며 말하자 애교 누나는 찔린 듯 얼굴을 붉혔다.형수도 애교 누나를 너무 놀리면 안 된다는 걸 알기에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식사는 됐어. 수호 씨, 여기서 이미 먹기 시작했으니 마저 먹고 와요. 애교야, 이따 식사 다하고 우리 쇼핑 가자. 점심은 밖에서 먹고. 우리 남편이 오늘 점심 사주겠다고 뭐 먹고 싶은지 생각해 두래.”“아, 알았어.”애교 누나는 온 신경이 다른 데 팔린 듯 멍하니 대답했다.말을 마친 형수가 허리를 흔들며 떠나자 애교 누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도둑이 제 발 저린 것처럼 잔뜩 긴장한 애교 누나를 보니 왠지 웃음이 나고 귀여웠다.분명 아무 일도 없었는데 이렇게 부끄러워하다니.지금 이런 시대에 이렇게 단순한 여자가 아직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심지어 내가 살던 시골의 여자애들도 요즘에는 야릇한 방송을 하는데 말이다.나는 애교 누나와 다시 식탁 앞에 앉았다.“애교 누나,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요. 우선 밥부터 먹어요. 배가 불러야 쇼핑할 힘도 생기죠.”“그래요.”애교 누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식사가 끝나자 나는 자발적으로 설거지를 하겠다고 나섰다.“누나는 가서 화장해요. 여자들은 밖에 나가기 전 준비 오래 하잖아요.”심지어 다정하게 누나를 배려해 줬다.이건 내가 매너 있는 척 굴려는 게 아니라 현실을 아는 거다.나는 애교 누나가 예쁘게 치장하기를 바란다. 그러면 내 눈도 따라서 호강하니까.사람을 좋아하면 꽃을 가꾸는 것처럼 정성을 쏟아 부어야 한다.정성껏 가꿀수록 예쁘게 만개할 테니까.“수호 씨, 어떤 옷이 예쁜 것 같아요?”애교 누나는 선택 장애가 있는지 한참 동안 고르다가 끝내 나한테 의견을 물었다.내가 보기에 두 벌 다 비슷한데 말이다. 주요하게 애교 누나는 몸매가 예뻐 뭘 입든
“애교 누나, 너무 예뻐요. 뒷모습만 봐도 반할 것 같아요.”나는 애교 누나의 머리카락을 빼주며 참지 못하고 감탄했다.그랬더니 애교 누나는 화가 난 듯 투덜거렸다.“아무 짓 안 할 거라면서 뭐예요? 당장 나가요!”“애교 누나, 전 진심으로 칭찬한 건데. 절대 희롱하려는 거 아니에요.”나는 억울한 듯 설명했다.“여자들도 예쁜 꽃 보면 감탄하잖아요. 그거랑 같아요.”“정, 정말이에요? 나 속이는 거 아니죠?”“제가 왜 누나를 속여요? 제가 누나를 어떻게 할 생각이면 이렇게 조심스럽게 눈치 보겠어요? 당장 덮쳤지.”“흥, 속으로는 온갖 꿍꿍이를 다 품었으면서 그저 행동으로 옮길 담이 없는 건 아니고요?”물론 사실이지만 나는 절대 인정할 수 없었기에 오히려 당당하게 거짓말했다.“애교 누나, 누나 마음속에 제가 이렇게 저질이었어요?”“저질은 아니고, 그냥 남자들은 다 똑같잖아요.”“저는 다른 남자들이랑 다르다면요?”“어디가 다른데요?”“저는 누나를 좋아하지 어떻게 해볼 생각은 없어요.”애교 누나는 갑자기 뒤돌아 나를 봤다.“그럼 아침에 그건 뭐예요?”‘젠장, 설마 들킨 건 아니겠지?’나는 순간 당황해 조심스럽게 설명했다.“아침에 있은 일은 저를 탓하면 안 되죠. 그건 누나가 저를 만져서 반응이 온 거고, 그것 때문에 참을 수 없어서...”“그만해요.”애교 누나는 본능적으로 내 입을 막았다.누나의 나른하고 부드러운 손이 느껴지자 내 마음은 다시 두근댔다.하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고생스럽게 쌓은 이미지가 한순간에 무너질 테니까.애교 누나는 자기 행동이 너무 야릇하다고 생각됐는지 황급히 손을 움츠렸다.“아침에 있은 일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요. 수호 씨 형과 형수한테도. 알겠죠?”나는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애교 누나가 나를 한참 바라보다가 갑자기 ‘풉’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수호 씨는 얼굴도 잘생기고 몸매도 좋은데, 왜 이렇게 어리바리해요? 솔직히 말해 봐요, 대학교 다닐 때 정말 여자 친구 사
“남주 누나, 농담 아니죠? 형수가 감옥에 다녀왔다니요? 그럴 리가요.”‘형수처럼 좋은 분이 감옥에 다녀올 리가 있나?’나는 그 말을 조금도 믿을 수 없었다.그러자 남주 누나는 예상했다는 듯 싱긋 웃었다.“내 신분을 생각해 봐. 내가 왜 이런 일로 널 속이겠어?”남주 누나의 신분을 생각하니 나는 더 충격에 빠졌다.남주 누나의 신분이라면 이런 일을 조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그렇다는 건, 형수가 감옥에 다녀왔다는 건 진짜일 확률이 높다.“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형수가 왜 감옥에 다녀와요?”“사실 큰일은 아니었어. 네 형수가 결혼 전에 쫓아다니는 남자가 엄청 많았거든. 심지어 네 형수 미모에 반해 스토킹하고 강제로 몸을 취하려는 남자들도 적지 않았어. 그런데 네 형수 성격이 그 당시 너무 강해서 상대를 칼로 찍는 바람에 1년 수감되었어.”“그런 일은 여자한테 얼마나 큰 오점이자 상처야? 누가 감옥살이를 한 적 있는 여자와 결혼하려 하겠어? 그렇지 않으면 네 형수 몸매와 외모로 왜 진동성과 결혼했을까?”이렇게 말하니 나는 단번에 이해가 됐다. 하지만 난 형수가 잘못한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그런데 그게 이혼 안 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에요?”나는 의아해서 물었다.남주 누나는 손가락으로 내 머리를 찔렀다.“똑똑한 줄 알았는데 왜 이런 방면에서는 이렇게 둔해? 네가 스스로 생각해. 만약 이것도 모른다면 앞으로 너 안 찾아올 거야. 정말 그 정도 IQ라면 전염될까 봐 두렵네.”나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아주 무서운 가능성을 떠올렸다.“혹시 진동성이 형수랑 결혼할 때 그 약점으로 협박했어요?”나는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라 떨쳐내지 못 할 정도였다.남주 누나는 곧바로 긍정적인 눈빛을 보냈다.“음, 너무 바보는 아니네. 앞으로 계속 찾아와도 되겠어.”나는 일순 소름이 돋아 찬 공기를 들이마셨다. 순간 손끝부터 발끝까지 싸늘해지는 느낌이었다.이 순간 진동성의 이미지는 내 마음속에서 완전히
나는 몸이 짜릿했다.“어때? 기분 좋아?”남주 누나는 생긋 웃으며 내 가슴에 엎드리더니 긴 손톱으로 내 피부를 긁어내렸다.그때까지도 나는 방금 전 느낌에 깊이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남주 누나, 안 본 사이에 더 대단해졌네요. 어떻게 이렇게 잘해요? 숨 못 쉴 뻔했잖아요.”이런 느낌은 남주 누나와 할 때만 느낄 수 있다.그동안 수많은 여자들과 경험을 해봤지만 남주 누나를 이길 상대는 아무도 없다.남주 누나는 몸매가 끝내주는 것도 모자라 남자가 어떤 걸 원하는지 너무 잘 알아 욕망을 살살 건드리곤 한다. 게다가 어떻게 하면 남자가 흥분하는지, 어떻게 하면 미치는지, 어떻게 하면 기분 좋아지는지 너무 잘 알고 있다.남주 누나의 모든 자세는 그야말로 나에게 최고의 경험을 선사했다. 더욱이 이제는 걱정할 것도 없겠어 멘트마저 노골적으로 변했다.“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전생에 기녀였나 보지.”나는 너무 난감해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자기를 이렇게 형용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남주 누나는 내 가슴을 살짝 깨물었다.“또 할래? 다른 자세도 있는데.”“저...”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남주 누나는 다리를 쫙 벌린 채 내 몸에 올라탔다....그 시각 형수는 혼자 거실 소파에 앉아 화를 삭이고 있었다. 내가 분명 저를 보러 온다고 했으면서 남주 누나를 따라 나가버렸으니까.심지어 그것도 모자라 얼마 뒤 옆집에서 곧바로 19금 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딱 들어도 친구 남주가 낸 소리였다.형수는 곧바로 나와 남주 누나가 옆집에서 뭘 하고 있는지 눈치챘다. 게다가 남주 누나가 일부러 목소리를 높인 건 형수를 향한 도발이었다.형수는 소리를 들을수록 화가 나고 온몸이 불편했으며 아래가 축축해졌다. 하지만 내가 남주 누나와 하고 있다는 걸 생각하니 화를 참을 수 없었다.“정수호 씨, 이럴 줄 알았으면 수호 씨더러 애교를 꼬시라고 하지 않았을 거예요.”만약 형수가 애초에 나를 애교 누나에게 밀어주지만 않았어도 지금 나는 형수 혼
“없어요.”형수는 입을 꾹 다물고 아무것도 말하려 하지 않았다.남주 누나는 서두르지도 않고 느긋하게 말했다.“말하기 싫으면 말하지 마. 네가 뭐 수호 친형 와이프도 아니고. 솔직히 말하면 수호 씨 일 끼어들 자격 없잖아.”“푸들, 너한테 선택할 기회를 줄게. 이 집에 남아 있을래? 아니면 나랑 같이 나갈래?”남주 누나는 말을 마치자마자 작은 소리로 나에게 속삭였다.“나랑 같이 나가자. 네 형수가 왜 이혼하지 않으려 하는지 알려줄게.”남주 누나의 말은 너무 유혹적인 제안이라 내 마음은 흔들렸다.게다가 형수가 계속 이혼을 거부하는 게 무슨 어려운 사정이라도 있나 생각하던 참에, 마침 답을 너무 알고 싶었다.하지만 내가 정말 남주 누나와 함께 나가면 형수는 반드시 화낼 거다.그때 남주 누나가 일부러 형수의 화를 돋우려는 듯 계속 나를 향해 윙크했다.나는 마음으로는 이러고 싶지 않았지만 형수의 비밀을 알고 싶은 마음에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우리 나가요.”“수호 씨...”나를 보는 형수의 실망스러운 눈빛에 내 마음은 미어질 것만 같았다.나는 살짝 마음이 흔들려 형수에게 말했다.“형수한테 말 못 할 사정이 있다면 말해요. 우리가 도와줄 수 있어요.”“나한테 무슨 말 못 할 사정이 있겠어요? 갈 테면 가요. 이번에 가면 영원이 오지 마요.”형수는 질투한 게 틀림없었다.그걸 나는 당연히 눈치챘다. 하지만 남주 누나는 계속 내 팔을 잡아당기며 절대 마음 약해지면 안 된다는 사인을 보냈다.상황이 이 지경까지 왔는데 일을 그르칠 수 없었기에 나는 이를 악물고 남주 누나와 함께 밖을 나갔다.형수 집을 나온 뒤, 나는 얼른 남주 누나에게 물었다.“대체 뭘 아는 거예요? 말해줘요.”“급할 거 뭐 있어? 네 애교 누나 집에서 말해줄게.”“누나 애교 누나네 집 열쇠를 갖고 있어요?”“내가 애교한테 달라고 했어.”남주 누나는 손바닥을 활짝 펴며 쥐고 있던 열쇠 뭉치를 보여주었다.나는 무척 이해가 되지 않았다.“왜 애교 누나 집에 가려는 건
“나 아직 너한테 질리지 않았어. 내가 몇 번 더 해줄게. 나중에 내가 너한테 질리면 하고 싶어도 못 하게 될 거야.”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내 것을 잃어버리는 느낌이었다.나는 무의식적으로 남주 누나의 허리를 감싸안았다.“무슨 뜻이에요? 저 하나로는 만족 못 하고 다른 놈 만나겠다는 거예요?”남주 누나는 키득키득 웃으며 일어섰다.“너 하나로 어떻게 만족해? 난 역하렘이라도 만들어 매일 다른 남자와 즐겨보고 싶은데.”“누나 진짜 나쁜 여자네요. 전 허락 못 해요.”나는 남주 누나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그러자 남자 누나는 일부러 내 팔뚝을 물었다. 그게 너무 아프고 짜릿해 내 욕망은 단번에 솟아났다.“요물!”“요물이 네 정기 다 빨아먹고 싶다는데, 그래줄 수 있어?”남주 누나는 눈웃음치며 나를 바라봤다. 누나의 빨간 입술은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인 매력이 숨어 있었다.나는 화장실 쪽을 흘긋 바라봤다.“좋아요. 하지만 여기서는 싫어요.”“그럼 밖에 나가자. 나 제대로 만족시켜 줘.”남주 누나는 점점 더 요망해지는 것 같았다.이런 여자의 유혹을 견딜 수 있는 남자는 아마 없을 거다.내가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할 때, 형수가 갑자기 화장실에서 나왔다.그 순간 나는 잘못을 들킨 것처럼 발이 저렸다.하지만 남주 누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내 팔짱을 끼며 형수에게 말했다.“태연아, 나 네 남편 동생 따먹고 싶은데, 괜찮지?”형수는 예쁜 눈으로 내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그 눈빛에 나는 더 마음이 찔렸다.“형수, 저...”나는 뭔가를 설명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다.그때 형수의 낯빛이 어두워지더니 언짢은 말투로 말했다.“싫어! 최남주, 피해줄 거면 다른 놈 건드려. 수호 씨 건드리지 말고.”“피해준다니? 사랑을 나누려는 건데. 안 그래 수호야?”“수호 씨는 네 사랑 필요 없어.”“내가 아니면 누가 사랑해 주는데? 설마 너? 고태연, 난 지금 솔로야. 난 누구랑 하고 싶으면 해도 되지만 넌 달라. 너랑 진동성은
남주 누나는 절대 좋은 여자라고 할 수 없다. 진짜 좋은 여자는 애교 누나처럼 다정다감하고 결혼하기 적합한 조강지처 스타일이니까.하지만 나는 그걸 곧이곧대로 말할 수 없었다.남주 누나는 싱긋 웃었다.“형수 집에 가 봐. 이따 봐.”“네.”나는 사실 남주 누나가 형수네 집에 가는 걸 원하지 않았다. 형수랑 단둘이 있고 싶었으니까.하지만 남주 누나가 가겠다는 걸 내가 막을 수는 없었다. 남주 누나도 이제 막 이혼해 기분이 안 좋을 게 뻔했으니까.퇴근 후 나는 형수네 집으로 향했다. 남주 누나는 나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다.“수호 왔어? 얼른 와서 나 마사지 좀 해줘.”남주 누나는 내가 오자마자 소파에 엎드리며 마사지를 요구했다.오랜만에 보는 건 데도 남주 누나는 여전히 아름답고 요염했으며 고혹적이었다. 남주 누나를 본 순간 누나와 멀어져야겠다던 내 결심은 어느새 저 멀리 사라지고 말았다.남주 누나가 소파에 눕자 볼륨감 넘치는 콜라병 몸매는 내 눈앞에 고스란히 드러났다.“하고 싶어?”남주 누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난 확실히 하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 오기 전에 내가 생각했던 상대는 형수였다.남주 누나는 가늘고 흰 손가락으로 내 손등을 긁었다.“난 하고 싶은데.”남주 누나의 매혹적인 눈빛은 분명 나를 꼬시는 게 틀림없었다.어쩜 이리도 대담한 건지. 형수 집에서마저 이러다니.나는 다급히 손을 뒤로 뺐다.“안 돼요. 여긴 형수 집이에요.”“네 형수도 함께 부르는 건 어때?”남주 누나는 눈을 깜빡이며 나를 바라봤다.그 모습에 나는 충격을 받고 말았다.“누, 누나 그건 너무 대담한 거 아니에요?”“못 하겠어?”“네, 못 하겠어요.”나는 단번에 거절했다.무엇보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형수한테 맞을까 봐 겁이 났다.“쫄긴. 나도 무서워하지 않는데 네가 뭐가 무서워?”남주 누나는 내 팔을 살짝 꼬집었다.그 순간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내가 누나처럼 밝히는 것도 아닌데. 누나는 당연히 안 무섭겠죠.’“내가 왜 이혼했는지
더욱이 요즘은 마사지를 하면서 은근슬쩍 고객님한테 흘리며 암시했다.화인당에서는 그런 걸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때문에 나는 허심탄회하게 얘기해 보려고 안준희를 찾아갔다.사무실 안.안준희는 내 맞은편에 조용히 앉았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그에게 책임을 묻는 대신 빙빙 돌려 말했다.“정 사장님이 세운 규칙 잊었어요?”“아니요.”“그런데 왜 그래요?”“나도 수호 씨한테 시비 걸려는 거 아니에요. 다만 요즘 급전이 필요해서 어쩔 수 없었어요.”“왜요? 집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요?”나도 상대가 일부러 나에게 시비 거는 게 아닌 줄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토록 인내심 있게 상황 설명을 하지 않았을 테니까.안준희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는 인내심을 갖고 물었다.“말하기 싫으면 하지 마요. 하지만 가게 규칙을 어겼으니 다음번에 또 고객한테 은근슬쩍 암시하다가 걸리면 바로 해고할 거예요.”안준희는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사무실에 혼자 앉아 있는 나는 마음이 심란하고 짜증이 났다.사장님 일은 당분간 해결됐지만, 내 일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임천호가 나타난 뒤로 소여정도 더 이상 나를 만나러 오지 않고, 윤미화는 본인 일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사모님은 사장님을 매일 돌봐야 하고, 백연우는 하루 종일 학교에만 붙어 있고 애교 누나마저 집에 갇혀, 내 주변에 여자라곤 형수님 한 명 밖에 남지 않았다.미녀들한테 둘러싸이다가 갑자기 혼자가 되니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았다.결국 나는 핸드폰을 꺼내 형수한테 문자를 보냈다.[형수, 뭐 해요?][내가 뭐 할 게 있나요? 티브이 보고 있죠.][형수, 보고 싶어요.][보고 싶으면 우리 집에 와요. 진동성도 집에 없어요.]형수의 말에 나는 마음이 두근거렸다.며칠 동안 형수를 만나지 못했더니 정말 보고 싶었다.나는 형수네 집에 가려고 짐을 정리했다. 하지만 그때 핸드폰이 갑자기 울려 확인했더니 남주 누나의 이름이 액정에 떴다.나는
한지영의 말에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의 연기에 협조했다.하지만 주위를 빙 둘러봤지만 우리 쪽을 바라보는 남자는 아무도 없었다.‘전 남자 친구가 우리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나 보네.’나는 속으로 생각하며 한지영에게 물었다.“전 남자 친구는 어디 있는데요?”“사실 난 전 남자 친구가 없어요.”그 말을 들은 순간 내 얼굴은 어두워졌다.“미쳤어요? 사람 놀리니 재밌어요?”나는 짜증을 내며 한지영의 손을 뿌리쳤다.그랬더니 한지영이 애원하는 듯 말했다.“사실 나 연기자예요.”“그쪽이 연기자면 난 연기 천재예요.”나는 더 이상 한지영을 상대하기 싫어 뒤돌아 자리를 떠났다. 그러면서 속으로 봉섭 할아버지처럼 훌륭한 분이 어쩌다 이런 미친 손녀를 뒀는지 안 됐다고 생각했다.테이블 앞에 도착한 나는 애써 감정을 숨겼다. 무엇보다 내 언짢은 기분을 봉섭 할아버지한테 들키고 싶지 않았다.잠시 뒤, 한지영도 자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착석한 뒤로는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하며 계속 외할아버지와 이야기꽃을 피웠다.식사를 마친 뒤, 한지영은 곧장 계산하러 갔다. 하지만 사내대장부인 내가 여자더러 계산하게 하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말없이 한지영의 뒤를 따랐다.다만 내가 내겠다고 해도 한지영은 본인이 낸다며 한사코 거절했다. 그러다 계산할 때 신용카드 한 장을 집어 들었다.“이봐요, 돈도 없으면서 왜 돈 많은 척 연기해요?”딱 보니 한지영은 돈을 벌 능력도 없으면서 계속 돈 많은 척 자신을 속이고 다녔던 모양이었다.내 말에 한지영은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며 말했다.“작게 말해요. 할아버지가 들으면 안 되니까. 할아버지는 내가 밖에서 배우 활동하는 줄 안단 말이에요. 그런데 배우 되기 어디 그렇게 쉽나요? 그런데 난 언젠가 유명한 배우가 될 거라고 믿어요.”한지영은 돈이 없는 건 물론 자기가 대배우라는 착각속에 빠져 살고 있었다.그 순간 한지영이 겉보기에는 분명 화려해 보였는데 혼자 밖에서 얼마나 고생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방금까지
어여쁜 여자가 웃으며 달려오더니 봉섭 할아버지 품에 와락 안겼다.“할아버지, 오랜만이에요. 너무 보고싶었어요.”“다 큰 여자애가 왜 이렇게 점잖지 못해? 참, 네 동생도 이틀 전에 B시에 갔다던데. 둘이 만났어?”“네. 그 계집애가 글쎄 가슴 수술 하겠다는 걸 내가 호되게 혼냈어요. 그랬더니 삐쳐서는 같이 오자고 했는데도 거절하더라요.”“걔는 갑자기 왜 가슴 수술을 받겠다는 거야? 세상에 각양각색의 미녀가 얼마나 많은데. 다 똑같이 생기면 뭔 의미가 있어?”할아버지가 손녀와 얘기하는 도중에 끼어들 수 없었기에, 나는 살짝 거리를 두고 지켜봤다. 그러는 와중에 두 사람의 대화를 똑똑히 들었다.그때 한창 얘기하던 여자가 나를 보더니 누구냐고 물었다.봉섭 할아버지는 우리를 서로 소개해 주었다.“여긴 정수호라고 내 친구네 손자. 아까 이 친구가 나를 공항까지 데려다줬어. 수호야, 여긴 내 손녀 한지영이야.”“반가워요.”나는 아무 생각도 없이 예의 있게 인사를 건넸다.하지만 한지영이 나를 훑어보는 눈빛은 너무 불편했다.노골적인 시선에 나는 상대가 왜 이러나, 내 얼굴에 꽃이라도 있나 의심했다.한지영은 서둘러 돌아가지 않고 외할아버지께 식사를 대접하겠다며 초대했다.결국 나도 그 자리에 끼는 수밖에 없었다.우리는 고심 끝에 한 중식당에 도착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한지영은 수많은 음식을 주문했다. 그 모습만 봐도 상대가 얼마나 돈이 있는지 알 수 있었다.“수호 씨도 나랑 같이 음료수 선택하러 가지 않을래요?”나는 한지영이 왜 갑자기 나를 따로 불러내는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결국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녀를 뒤따라갔다.음료를 고를 때 한지영이 갑자기 물었다.“혹시 무슨 일 해요?”“한약관에서 마사지사로 일해요.”“몸매도 좋아 보이는데 혹시 모델에 관심 있어요?”나는 눈을 홉뜨며 단번에 거절했다.“없어요.”한지영은 아까부터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훑어봤는데, 그 시선은 사람을 매우 불편하게 했다.게다가 한의대를 졸업한 나더러 모델을 하라
임민수와 한영심은 나른하게 누워 나를 잡아먹을 듯 노려봤다.나도 내 행동이 너무 지나치고 무례했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한시가 급한 상황이라 나도 어쩔 수 없었다.나는 단지 봉섭 할아버지가 얼른 사장님 병을 치료하기를 바랄 뿐이었다.치료 과정에 나는 두 어르신 옆을 지키며 감각이 돌아오려고 할 때마다 협곡혈을 찔렀다.그 과정에 임민수의 눈빛은 나를 잡아먹으려던 데로부터 갈기갈기 찢어발기려는 것처럼 살의를 띄었다.사실 나도 너무 난감했다. 심지어 너무 무서워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시간은 1분 1초 흘러갔다.그러다 약 3시간이 지났을 때쯤 봉섭 할아버지의 입에서 겨우 끝났다는 말이 들렸다.나도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내 몸은 어느새 식은땀에 흠뻑 젖어 티셔츠가 몸에 찰싹 달라붙었다.나는 얼른 달려 나가 사장님 상태를 살폈다.“사장님, 어때요?”사장님은 힘에 부친 듯해 보였다.그때 봉섭 할아버지가 말했다.“치료가 방금 끝나 아직은 몸이 허약할 거야. 한동안은 몸조리해야 해.”이 선생님은 옆에서 연신 감탄했다.“어르신, 침술 실력이 참 대단하네요. 저도 30년 동안 의사로 일하면서 이렇게 안정적인 침술 수법은 처음 봐요.”봉섭 할아버지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자네도 내 침술 실력이 보통이 아닌 걸 눈치챈 걸 보면 실력이 만만치 않군.”사모님은 얼른 사장님 곁으로 다가가 땀을 닦아주었다.그사이 나는 봉섭 할아버지와 이 선생님의 대화를 열심히 엿들었다. 심지어 얼마나 집중했는지 침대에 있는 임민수 내외를 까맣게 잊어버렸다.그러다 무심코 고개를 돌렸을 때, 나를 잡아먹을 듯한 임민수의 눈과 딱 마주쳐 얼른 목을 움츠렸다.“어르신, 죄송합니다.”“죄송?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로 어물쩍 넘어가려고? 당장 나가! 당장!”임민수가 폭발한 모습은 너무 무서웠다. 나는 더 이상 이곳에 남아 있기 두려워 꽁지 빠지게 도망쳤다.봉섭 할아버지와 이 선생님도 잇따라 밖으로 나왔다.사모님 집에서 나오기 바쁘게 두려움은 싹 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