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지금 한약방 명성이 한의원보다 더 커요. 우리 과 마 교수님이 한약방을 소개해 주겠다고 했으니까 일단 거기 한번 가보려고요.”“수호 씨를 면접 봤던 그 영감 말하는 거에요?”“맞아요.”“그 영감은 수호 씨한테 잘해주나 봐요.”“흠, 잘해주긴 하죠. 근데 좀 아쉬워요. 제가 병원에 있는 동안 교수님한테 잘해 드리지 못했거든요. 지금 생각해 보면 많이 미안해요. 인턴 주제에 과 교수한테 그렇게 버릇없이 굴고, 그래도 저를 자른다고 안 했어요. 그리고 저한테 공적인 일로 복수하거나 하지도 않았고요. 제가 너무 어려서 뭘 몰랐던 거죠.”형수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그런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성장했다는 거예요. 나중에 기회 되면 꼭 고맙다고 인사 전해요.”“얼른 일어나요, 이따가 나가서 밥 먹어요.”형수는 기분 좋아 보였다.“형수, 오늘 우리 형이랑 검사받으러 간 건 어떻게 됐어요?”형수님은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저랑 수호 씨 형 모두 신체적으로 아무 문제 없대요. 심리적인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오후에 정신의학과 전문의를 보고 왔는데 형이 지금은 초기라고 하네요. 더 적극적으로 치료하면 나아질 수 있대요.”형수의 말을 들으니 나는 의외로 엄청 기뻤다.형이랑 형수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얼른 조카를 낳았으면 하는 바람까지 들었다.“그럼 너무 축하해요!”난 진심으로 축하해줬다.형수님은 웃으면서 말했다.“나도 축하할 일인 것 같아서 아까 형이랑 얘기했어요. 오늘 저녁은 외식하자고요.”“좋죠. 근데 저기... 형수, 먼저 나가 줄래요? 저 옷 좀 입어야 해서.”“알겠어요. 그럼 빨리 준비해요.”형수는 웃으면서 방문을 나갔다.나도 기분이 찢어질 듯 좋았다.얼른 옷을 입고 방문을 나섰더니 형도 기분이 좋은지 슈트까지 챙겨 입고 나왔다. 엄청 멋있었다.“형, 멋있는데!”난 기쁜 마음으로 칭찬해줬다.형은 확실히 멋있었다.내 말에 형이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이건 내가 금방 회사 차렸을 때 네
‘무슨 비밀인데, 형수는 모르시고 나는 무조건 알아야 되는 거지? 너무 수상한데?’난 형이 계속 말을 이어 가기를 기다렸다. 그때 마침 형수가 걸어왔다.“준비 다 됐지? 준비됐으면 출발해.”형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웃으면서 말했다.“준비됐어. 자기가 애교 씨한테 전화 한 통 넣어 어디 있는지 물어봐.”난 순간 형이 너무 존경스러웠다. 연기를 어찌나 잘하는지 연기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방금까지만 해도 나한테 말할 비밀이 있다고 해놓고 지금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형수랑 웃으면서 얘기를 하다니.난 형이 예전 우리 형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자꾸 들었다.예전보다 유해지고 말을 잘하는 것도 같았다.‘생각해 보면 한 회사의 수장이 너무 순박해서도 안 될 일이잖아?’‘형이 형수랑 잘 살려고 마음먹었고, 워낙 인품도 좋으니 그걸로 됐지 뭐.’형수는 밖으로 나가면서 말했다.“지금 애교한테 전화해 보려고. 어디 있는지 물어볼게.”“애교야, 너희 지금 어디 있어? 법무사 사무소라고? 일은 잘 마무리됐어? 아직이라고? 너무 조급해 말고 천천히 해결해.”“난 우리 남편이랑 서래 호텔에서 방을 잡아놨거든. 이따가 남주랑 같이 와. 그래, 그럼 이따가 만나서 얘기해.” 우리는 곧장 집을 나섰다. 형은 형수더러 운전하라고 하고 나랑 함께 뒤에 앉았다.차에 오른 뒤 형은 아까 못 다한 얘기를 계속하려는 듯했다.“수호야, 아까 내가 했던 말 기억나?”난 고개를 있는 힘껏 끄덕였다.‘당연히 기억하지. 궁금해 미칠 것 같은데.’난 너무도 궁금했다.“형한테 형수가 모르는 비밀이 있다니, 대체 뭐지?”형은 지갑에서 피검사 결과를 나한테 건네주면서 보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결과지에는 정자 활약도가 너무 낮아 난임이 의심된다고 쓰여있었다.난 두 눈을 번쩍 뜨고서 형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눈빛으로 물었다.“어떻게 이럴 수 있지? 형수가 모두 정상이라고 하지 않았어?”형은 차마 소리를 낼 수 없어 핸드폰을 꺼내 나한테 카톡을
그러니까 형은 내가 형을 대신해서 형수랑 잠자리를 해주길 원하는 것이었다.‘그런데 이건 완전한 사기잖아!’나는 다시 형한테 답장을 했다.[형,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잖아, 너무 어처구니없는 일이야!]형은 애원하는 눈빛으로 나를 보더니 답장을 보내왔다.[수호야, 형이 지금 처한 상황 너도 알잖아. 만약 너마저 형을 도와주지 않으면 형이랑 형수는 이혼할 수밖에 없어. 넌 나랑 네 형수가 이혼했으면 좋겠어?]당연히 아니다.[그런데 왜 솔직하게 형수한테 터놓고 얘기하면 안 돼? 형수가 이해해 줄 수도 있잖아.]나는 내 생각을 형한테 말했다.하지만 형은 단호한 태도로 말했다.[말도 안 돼. 네 형수는 나 없이는 살아도 애 없이는 못 살아. 애를 너무 낳고 싶어 해. 넌 모를 거야, 네 형수가 얼마나 애를 좋아하는지.][수호야, 나도 도저히 방법이 나지지 않아서 너한테 부탁하는 거야. 그냥 형 한번 도와준다 생각해. 형이 이렇게 빌게!]형이 이렇게까지 말한다는 건 상황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뜻이다.형은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고마워하는 사람이다.형한테 힘든 일이 생기면 난 무조건 도와줄 것이다.그런 형이 나한테 빌다니. 이건 정말 심각한 문제다.하지만 이건 너무도 어이없는 일이다. 왕정민이 나한테 자기 와이프 꼬시라고 한 일 보다 더.때문에 나는 수없이 고민해야 한다.그래서 형한테 답장을 보냈다.[형, 생각할 시간을 좀 줘.]드디어 형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는 나한테 답장을 보내왔다.[그래, 천천히 생각해. 재촉하지 않을 테니까.]난 무의식적으로 형수를 봤다.형수는 나랑 형이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고 있는지 모르기에 웃으면서 물었다.“두 사람 무슨 비밀 얘기를 하길래 그렇게 눈치를 봐? 내가 알면 안 되는 일이야?”형은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웃으면서 말했다.“남자들의 비밀은 알려고 하지 마!”하지만 그런 얘기들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너무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목적지에
“어쭈, 푸들, 감히 나한테 이런 식으로 말해? 너 아주 많이 컸다.”남주 누나는 내 귀를 쥐어뜯으며 나를 혼내려고 했다. 그게 너무 아픈 나머지 나는 연신 비명을 질렀다.“귀가 찢어질 것 같아요, 얼른 손 떼요.”하지만 남주 누나는 절대 손을 떼지 않았다.”“누나한테 사과해, 아니 확 뜯어버릴 거니까.”‘내 잘못도 아닌데 내가 왜 사과를 해야 해?’남주 누나가 나를 계속 괴롭히자 애교 누나랑 형수님이 나서서 나를 도와줬다.”그만해, 최남주. 동성 씨랑 내가 있는 자리에서 감히 우리 수호 씨를 괴롭혀? 좀 얌전히 굴면 안 돼?” 형수님은 잔뜩 화가 난 채로 말했다.애교 누나도 뒤이어 입을 열었다.“남주야, 그만하고 좀 봐줘, 어찌 됐든 간에 동생이잖아.”그러자 남주 누나가 드디어 내 귀에서 손을 뗐다.“너희 둘, 전부다 이놈 편을 들고 있는데, 너네 혹시 얘 얼굴에 빠진 거 아니야?”형수는 남주 누나를 죽일 듯 노려보며 말했다.“아주 못하는 말이 없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오라고 하지 말 걸 그랬네.”“흥, 네가 오지 말라고 했어도 나는 왔을 거야. 그래, 나 뻔뻔해, 그래서 뭐? 어떡할 건데?”이토록 뻔뻔한 여자를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우리 형수다.“확 잡아먹어 버리려고 그런다!”형수가 손을 뻗자 남주 누나는 깜짝 놀라 재빨리 두 손으로 가슴을 감쌌다.그러고는 식겁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고태연, 진짜 해보자는 거야 뭐야? 같은 여자로서 내가 있는 가슴 너도 있잖아, 왜 내걸 만지려고 하는 거야? 네 남편도 바로 네 옆에 앉아 있잖아, 만지고 싶으면 네 남편 걸 만져.”형은 이런 농담이 익숙하지가 않아 순간 얼굴이 빨개졌다.그에 반해 형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말투로 말했다.“그걸 내가 모를까 봐? 너야말로 왜 네 남자는 나 몰라라 하고 하루 종일 우리 곁을 맴돌아? 대체 무슨 꿍꿍이야? 경고하는데 여기 있는 남자들 건드릴 생각 하지도 마! 아니면 확 너네 남편한테 이를 거니까.”하지만 남주 누나는
하지만 애교 누나는 혹여 다른 사람이 볼까 봐 조심스럽게 행동했다.“안 돼요, 나 아직 이혼 안 했단 말이에요.”나는 애교 누나의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우리 잠자리까지 한 사이인데 손잡는 걸 무서워해요?”애교 누나는 순간 목까지 빨개지더니 쑥스러워하며 말했다.“그거랑은 다르죠, 그건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잖아요. 하지만 우리가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손을 잡고 있으면 우리가 사귀는 걸 사람들이 다 알아요.”“사람들 앞은 아니죠. 여기 지인이 없잖아요. 그냥 누나 손을 잡고 싶었을 뿐이에요, 손 좀 잡아줘요.”나는 애교부리며 말했다.왜인지 모르게 그냥 누나 옆에 찰싹 붙어있고 싶었다.애교 누나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더니 말했다.“그럼 잠깐만 잡고 있어요. 혹시 누구 만나면 빨리 이 손 놔야 해요.”말이 끝나기 바쁘게 나는 누나의 손을 꽉 잡았다.누나의 손은 엄청 말랑말랑하니 잡고 있기 편했다. 무엇보다도 애교 누나 손을 잡고 있으면 왠지 모를 안정감과 행복감이 밀려왔다.우리가 진정한 커플이 된 느낌이 들었다.나는 애교 누나랑 같이 화장실로 향했고 여자 화장실까지 따라가고 싶었지만 애교 누나가 매몰차게 거절했다.“안 돼요, 따라 들어오면 안 돼요, 만약 안에 사람이라도 있으면 우리를 이상하게 볼 거 아니에요.”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말했다.“아까 다 살펴봤어요. 지금 분명 아무도 없을 거예요, 나도 같이 들어가게 해줘요.”“그래도 안 돼요, 수호 씨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 다 알아요. 수호 씨, 난 이런 곳에서 수호 씨랑 할 생각 없어요, 그러니까 꿈 깨요.”‘애교 누나가 내 맘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니!’난 확실히 애교 누나가 말한 것처럼 생각했다.하지만 애교 누나가 저렇게 완강히 거절하니 나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알겠어요, 그럼 문밖에서 기다릴게요.”애교 누나는 발뒤꿈치를 들고 나의 볼에 가볍게 뽀뽀를 해줬다.난 화장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물론 조금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너무
‘분명 자기가 안 되는 거면서 나를 탓하다니’소민은 속으로 왕정민을 엄청 싫어하고 있었다.하지만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소민이 우는 걸 보자 왕정민은 이내 소민을 껴안으며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농담인 거 알지, 설마 진담으로 받아들인 건 아니지?”“사장님처럼 농담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난 가장 소중한 처음도 사장남한테 줬는데. 나라는 사람을 사장님한테 준 것과 같단 말이에요. 그런데 사람을 의심이나 하고 있고.”소민은 말하면 말할수록 억울하고 슬펐다그 모습은 너무 처연하고 불상했다. 사실 소민은 엄청 어리다. 올해 22살밖에 되지 않는 탱탱하고 젊은 아가씨다.왕정민이 애초에 소민을 마음에 들어 한 것도 이 때문이다.마지막에 만족감을 느꼈든 못 느꼈든 소민이랑 할 때 엄청 짜릿하고 흥분되는 건 사실이기에 왕정민은 아직은 이 여자랑 끝을 맺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계속 인내심을 갖고 타이르고 있었다.“알겠어, 내가 잘못했어. 사과의 의미로 내가 내일 진 부원장이랑 얘기해서 자기 정직원 시키라고 할게.”“정말요? 무르기 없기예요.”소민은 입술을 내밀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젊음이 좋긴 좋나 보다. 애교 떠는 모습마저도 왕정민을 미치게 만드니 말이다.왕정민은 다른 꿍꿍이가 있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당연하지, 내가 왜 자기를 속이겠어. 그런데 아까는 너무 빨리 끝나버려서 느끼지 못했어, 자기가 한 번만 도와줘...”“뭐예요. 미워요. 여기 공공장소잖아요,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떡해요.”소민은 얼굴이 빨개지며 부끄러운 듯 말했다. 하지만 왕정민의 손은 이미 소민의 몸을 훑고 있었다.“공공장소니까 더 짜릿한 거 아니야. 우리 애기 얼른! 나 지금 미칠 것 같단 말이야...”왕정민은 소민의 머리를 꾸욱 눌렀고 소민은 무릎을 꿇었다.다음 장면은 차마 내 입으로 묘사할 수가 없다.하지만 전부 나의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모든 과정을 찍은 뒤, 나는 조용히 자리를 떴다.이때 마침 애교 누나도 화장실에서 걸어 나왔다.나
“하지만 일단 생각을 잘해야 해요. 누나는 왕정민이 몰락했으면 하는 거예요, 아니면 누나의 재산을 가져오고 싶은 거예요?”“만약 이 동영상을 그 여자한테 보낸다면 그 여자는 분명 왕정민을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만약 왕정민도 화가 나서 눈이 돌면 누나한테 해코지할 수도 있어요.”“하지만 우리가 손에 든 증거로 왕정민이랑 협상을 한다면 누나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어요.”애교 누나는 화가 덜 풀린 듯했다.“하지만, 원래 나한테 속한 물질적인 것만 가져오면 그 인간 좋은 일만 한 거잖아요! 그 인간이 나한테 했던 일을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올라요.”난 누나의 말에 대꾸해 줄 수가 없었다. 나도 그 일에 가담했으니까.문득 나도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애교 누나는 그 순간 내 변화를 포착이라도 한 듯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수호 씨, 수호 씨 들으라고 한 말 아니에요. 난 그냥 왕정민을 탓할 뿐이에요. 난 수호 씨가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아요. 난 수호 씨를 탓한 적 한번도 없어요.”난 마음속으로 너무 고마웠다. 애교 누나가 나한테 준 믿음뿐만 아니라 나한테 보여준 관심과 배려 덕에 내가 사랑받고 있다고 느꼈으니까.“애교 누나, 난 진심으로 누나가 그 일에서 벗어나서 자기 삶을 즐겼으면 좋겠어요. 더 이상 왕정민의 영향을 받지 마요.”이건 나의 진심이다.애교 누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수호 씨 말 무슨 뜻인지 알아요. 나도 알고 있어요. 내가 왕정민이랑 빨리 이혼해야 우리가 함께할 수 있다는 걸. 나도 더 고민해 볼 게요!”애교 누나의 대답에 나는 안심이 되었다.“가요. 우리 먼저 룸으로 들어가요. 오늘 저녁 왕정민이랑 싸우고 싶지도 않고 그 인간 보고 싶지도 않아요!”“그래요!”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애교 누나랑 룸으로 향했다.“너네 둘 뭐야? 왜 이렇게 오래 있다가 와?”남주 누나는 심문하는 듯한 눈빛으로 우리 둘을 쳐다보았다.난 남주 누나가 분명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미리 그녀의
갑자기 생각난 건데 내 사진첩엔 남한테 보여줘서는 안 되는 사진들이 있었다.전부 지은이 보내준 사진들이었다.‘남주 누나가 지금 내 사진첩을 뒤지는 건 아니겠지?’난 너무 놀란 나머지 벌떡 일어나 말했다.“남주 누나, 다 봤어요? 다 봤으면 핸드폰 돌려줘요.”남주 누나는 고개도 쳐들지 않은 채 말했다.“아직 다 못 봤어. 다 보고 나서 돌려줄게.”불길한 예감은 점점 더 심해졌다.남주 누나는 지금 분명 나에 관한 걸 보고 있다.그리고 자기의 핸드폰을 꺼내 들고 내 핸드폰에 대고 찰칵찰칵 한참을 찍어 댔다.난 점점 더 불안해져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그대로 걸어갔다.“남주 누나, 진짜 너무 하는 거 아니에요, 내 핸드폰으로 뭘 뒤지고 있는 거예요?”남주 누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푸들, 왜 이렇게 긴장해? 설마 핸드폰에 남들한테 들켜서는 안 되는 비밀 같은 게 있는 거야?”“그런 거 없어요!”“없으면 왜 이렇게 긴장한 건데?”난 마음이 어지러워 대답했다.“누나의 이 행위가 내 사적인 영역을 침범했어요. 만약 내가 함부로 누나 핸드폰을 뒤지고 그러면 누나는 기분이 좋겠어요?”남주 누나는 자신의 핸드폰을 나한테 건네주며 말했다.”난 상관없어, 보고 싶으면 맘껏 봐, 난 전혀 상관없거든.”난 그냥 어이없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남주 누나는 악마인 게 틀림없어.’난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난 좀 화가 난 듯한 말투로 말했다.“누나 핸드폰 필요 없어요. 난 그저 누나가 내 핸드폰을 돌려줬으면 좋겠어요.”“거봐, 넌 나한테 네 핸드폰 속 비밀을 들킬까 봐 급급히 핸드폰을 가져가려는 거잖아?”“아주 순진한 청년인 줄 알았더니 내면엔 짐승이 살고 있었네? 네가 이러니까 더 궁금해지네, 네 핸드폰 속에 대체 무슨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남주 누나는 일부러 나를 화나게 만들었다.난 정말 남주 누나 때문에 화병이 날 지경이었다.룸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 그냥 달려들어 빼앗을 수도 없었다.‘하지만 뺏지 않으면 내 핸드폰 속
하지만 형수는 너무 오랫동안 침대에만 누워 있어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에 반해 양춘옥은 힘이 넘쳐나 손쉽게 형수를 제압했다.형수는 순간 폭발해 버렸다.“당, 당신 뭐 하는 거야?”양춘옥은 얼른 아들에게 말했다.“아들, 뭐 해? 얼른 밧줄을 찾아오지 않고. 이 여자 윗몸만 움직일 수 있고 아래는 못 움직여. 너한테 마침 좋은 기회잖아.”양춘옥의 아들은 얼른 벨트를 풀더니 형수의 손을 묶으려고 다가갔다.그 순간 나는 방으로 쳐들어가 그 남자를 발로 걷어찼다.양춘옥은 그 순간까지 현실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때 나는 양춘옥의 머리채를 잡고 그녀의 뺨을 내리쳤다.나는 양춤옥이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뺨을 후려갈겼다.형수는 위험한 순간에 나타난 나를 보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나 역시 형수가 깨어난 걸 보니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형수!”“수호 씨, 타이밍 너무 좋았어요. 이 둘은 인간도 아니에요! 감히...”형수는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했다.나는 얼른 형수의 두 손을 꼭 잡았다.“알아요. 다 알아요. 형수, 걱정하지 마요. 이 사람들이 한 짓 내가 모두 찍었어요. 지금 경찰에 신고할게요.”양춘옥은 경찰에 신고한다는 내 말에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마구 달려들어 내 손에 있는 핸드폰을 빼앗으려고 했다.나는 또다시 양춘옥의 뺨을 내리쳤다.그러자 이번에는 양춘옥의 아들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모자 둘이 달려들어도 내 상대는 아니었다.양춘옥은 더 이상 방법이 없자 그제야 무릎 꿇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정 사장님, 제발 신고하지 말아 주세요. 제 아들이 이제 막 출소했는데 또 잡히면 이번에는 끝장이에요.”나는 이를 악물며 양춘옥을 바라봤다.“당신 아들 생각하기 전에 우리 형수는 생각했어? 내가 마침 집에 오지 않았다면 당신과 당신 아들이 형수한테 끔찍한 짓을 저질렀을 거잖아.”“내가 아줌마를 얼마나 믿었는데, 이렇게 보답하는 거야? 정말 악독하기도 하지. 오늘 당신도 법의 처벌을 받게 될 거야.”“안 돼요. 정 사장
“뭐요? 너무 까다로운 거 아니에요?”“까다로운 게 아니라 원래부터 얌전하지 않은 여자인 것 같아. 남편과 잘 지내지 않고 별 같잖은 남자랑 바람이 났어. 정수호라는 사람인데, 매일 이 여자 몸을 닦아주러 와서 이 여자를 형수라고 불러...”“너무 막 나가는 거 아니에요? 이런 일이 다 있다니. 이 여자도 참 뻔뻔하네요.”아들의 말에 양춘옥이 말했다.“그러니까 내가 널 불러온 거잖아. 이 여자도 워낙 얌전하지 않은 여자니까 너도 욕구나 풀어보라고. 아들, 너 이제 막 감방에서 나와 많이 쌓였을 거 아니야?”“밖에서 아가씨 찾기보다 이 여자한테 욕구를 푸는 게 더 나아. 적어도 이 여자는 깨끗하잖아.”고태연은 두 모자의 대화를 들으면 들을수록 화가 치밀어 당장이라도 일어나 양춘옥의 뺨을 후려갈기고 싶었다.하지만 결국 그녀가 가장 걱정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것도 그녀가 혼자 집에 있을 때 말이다.이런 상황에서 당하면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모를 거다.고태연은 너무 무섭고 두려웠다. 심지어 이 두 모자에게 이토록 모욕당할 바에는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리고 그 시각 양춘옥과 아들의 대화를 들은 나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하지만 나는 서둘러 안으로 쳐들어가지 않았다.나는 우선 거실에 설치했던 감시 카메라를 찾았다. 그랬더니 카메라는 어느새 구석으로 옮겨졌다.‘이 아줌마가! 나는 그래도 믿고 매일 카메라를 돌려보지 않았는데, 이런 짓을 하다니.’나는 핸드폰 녹화 기능을 켜고 방 안을 몰래 촬영했다.탐정 사무소에서 일을 하게 된 이후로 나는 뭐든 증거싸움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 남자가 형수 몸에 바짝 붙어 다리에 코를 가져다 대며 냄새를 맡았다.“냄새 좋다. 식물인간한테서 이렇게 좋은 냄새가 나다니. 피부도 이렇게 좋고. 대박, 몸매도 완전 끝내주잖아.”양춘옥은 옆에서 키득거렸다.“당연하지. 그리고 무엇보다 이 여자는 깨끗해. 아들, 얼른 하지 않고 뭐 해?”“헤헤. 그럼 엄마는 밖에서 망 좀 봐...”양춘옥은
“나 그만 놀려요. 내가 보고 싶은데 왜 애교 누나 집에 와서 혼자 술을 마셔요?”나는 아직 어려 정치계 판을 잘 모른다지만 그렇다고 바보는 아니다.남주 누나는 내 말에 피식 웃었다.“우리 푸들 많이 똑똑해졌네? 예전처럼 타격감이 좋지 않아. 하지만 점점 더 귀여워.”나는 자꾸만 내 몸을 타고 올라오는 남주 누나의 손을 덥석 잡았다.“말해요. 대체 무슨 일이에요? 일에 무슨 문제 생겼어요?”“응. 이 세상에서 날 괴롭힐 수 있는 건 일밖에 없어.”“왜죠? 왜 혼인이나 가정 문제는 될 수 없어요?”“헛소리 아니야? 혼인과 가정이 나보다 중요할 리 없잖아.”‘맞다. 누나도 가정보다 자기 지위가 우선인 여자였지. 백연우처럼.’“그래서 일은 해결됐어요?”나는 그 말을 내뱉은 순간 후회했다. 해결되었으면 술로 기분을 달랠 리 없을 테니까.하지만 남주 누나는 의외의 답을 내놓았다.“해결된 셈이지. 하지만 강등됐어.”“얼마나요?”“아무 실권도 없는 말단직으로. 그래도 괜찮아. 이제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내 약점을 잡고 나 협박하는 사람 없을 테니까.”남주 누나는 강등된 건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건 아마도 자기 위로일 수 있었다.“이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시간도 아까운데 계속 즐겨볼까?”남주 누나는 또다시 나에게 다가왔다. 심지어 리듬 있는 음악을 틀어 놓아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며 나에게 또 충격을 안겨주었다.나와 남주 누나는 그사이 애교 누나가 집에 다녀갔다는 사실을 몰랐다.애교 누나는 내가 걱정되어 직접 와 봤다. 하지만 방에서 들리는 나와 남주 누나의 소리에 얼굴을 붉히며 물러났다.“남주였네. 다른데 좀 가지. 왜 우리 집에서 수호 씨를 꼬시는 거야?”애교 누나는 입을 삐죽거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뒤돌아섰다.나와 남주 누나는 한밤중까지 몸을 섞고 피곤한 몸을 한 채 잠이 들었다.오랜만에 푸는 욕구에 우리 둘 다 너무 흥분해 버린 탓이었다.심지어 남주 누나는 열정적이다 못해 심지어 내가 지금 동영상 촬영 현
남주 누나는 헤실 웃으며 말했다.“정수호네. 이리 와, 와서 한잔해.”나는 남주 주나 쪽으로 걸어갔다. 가까이 가봤더니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와인 두 병 중 한 병은 이미 텅 비어 있었고, 남주 누나도 이미 술에 취했는지 얼굴이 발그스름했다.“누나, 혼자 이렇게 마신 거예요?”남주 누나는 똑바로 앉아 내 팔을 감싸안았다.“너 아니면 애교를 불러 곁에 있어 달라고 부탁하려고 했는데 요즘 바쁘다고 해서 안 불렀어. 그런데 마침 이렇게 와 버렸네? 나랑 한잔해.”나는 지난번 남주 누나를 봤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 누나도 기분이 안 좋아 보였는데 아마도 일 때문인 것 같았다.그런데 이번에 이토록 취해 있는 걸 보니 일이 잘 안 풀리는 모양이었다.나는 남주 누나 손에 있는 와인을 빼앗았다.“그만 마셔요. 취했어요. 부축해 줄 테니 방에서 휴식해요.”“정수호, 예전에 너한테 장난치던 때가 그리워. 도 장난칠 테니까 내 장난 받아줘. 응? 나도 기분 좀 좋아지게.”남주 누나는 몽롱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그게 대체 뭐가 그립다는 건지.’나는 그때 너무 단순해 항상 남주 누나한테 농락당했다. 심지어 몇 번이나 나를 유혹하는 남주 누나를 눈앞에 두고 입맛만 다시며 마음을 졸였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가 조금도 그립지 않았다. 나는 하고 싶을 때면 마음대로 하는 지금이 더 좋다.“내가 네 소원 들어줄게.”남주 누나는 내 목을 끌어안고 취한 말투로 말했다.누나의 완벽한 몸매를 보니 나도 솔직히 몸이 달아올랐다. 하지만 남주 누나는 지금 많이 취한 상태고, 기분도 안 좋아 보이니 몸을 섞는다고 즐겁지는 않을 거다.“됐어요. 누나 지금 취했어요. 부축해 줄 테니 방에서 자요.”“나 많이 안 마셨어. 그냥 조금 알딸딸한 정도야. 나도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알아.”“있잖아. 나 요즘 너무 바빠서 남자 만날 시간도 없었어. 그러니 오늘 너 땡잡은 거야.”남주 누나는 말하면서 나를 자기 쪽으로 잡아당겼다.나는 술에 취한
“정 사장님, 물 바꿔드릴까요?”내가 형수의 팔을 닦아주는 동안 양춘옥이 방에 들어와 열정적으로 물었다.그 모습에 나는 간단히 말했다.“아니에요. 거의 다 닦아요.”나는 형수가 뭘 걱정하는지 몰랐다. 무엇보다 양춘옥이 문제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그때 양춘옥이 목적성이 다분한 질문을 했다.“정 사장님, 요즘 안 보이시던데 바쁘셨나요?”“네. 요즘 일이 바빠서 매일 오지 못해요. 그러니 이모님이 우리 형수님 잘 돌봐주세요. 참, 요즘도 제가 바쁘니 부탁드릴게요.”양춘옥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며 싱긋 웃었다.“정 사장님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무조건 잘 돌봐드릴게요.”“형수, 다 닦았어요. 형수가 깨끗한 걸 좋아하는 거 알고 특별히 피부 관리하는 스킨로션도 발라줬어요.”나는 형수를 돌본 뒤 옆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고아연이 돌아온 뒤에야 떠났다.고아연은 나를 집 앞까지 마중하며 물었다.“요즘 바빠?”“네, 왜 그래요?”“아니, 별 건 아니고. 지난번에 찍는다던 영상을 안 찍었길래 바쁜가 해서.”“요즘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었어요.”이건 단순한 오락이라 돈을 버는 것에 비하면 당연히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그래. 그럼 앞으로 안 찾을게. 내 연락처 삭제해.”고아연은 갑자기 말투가 날카로워졌다.그 말에 나는 순간 멍해졌다.“여자들은 다 이래요? 심심하면 연락처 삭제하고? 이런 거 엄청 예의 없는 거 알아요?”고아연은 팔짱을 낀 채 웃었다.“우리는 원래부터 아는 사이도 아니었어. 그런데 지금 바빠서 영상 찍을 시간도 없다는데 내가 네 연락처를 왜 남겨? 난 원래 이래. 연락 자주 하지 않는 사람은 삭제해. 수호 씨도 마찬가지야.”나는 일부러 고아연에게 맞섰다.“그럼 형수가 지금 이러니까 형수도 삭제했겠네요?”“그래.”“흥. 누가 믿을 줄 알고.”“믿든 말든.”고아연의 모습은 거짓 같지 않았다.나는 이 순간 고아연을 또다시 봤다.“바쁜 일 다 처리하면 도와줄게요. 연락처 삭제하지 마요. 앞으로 또다시 추가하
애교 누나 얘기를 언급하니 내 기분은 저절로 다운되었다.“난 누구랑 결혼할지도 모르겠어.”“왜? 애교 누나랑 사이가 틀어졌어?”민우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그런 건 아니야. 그냥 애교 누나랑 나는 결혼할 사이가 같지 않아. 애교 누나가 나한테 너무 관대하고 너무 풀어줘. 그래서 너무 진실감이 없어.”“헐. 여자 친구가 풀어주는 게 얼마나 좋은데? 네가 밖에서 다른 여자 만나도 뭐라 안 하고 오히려 응원해 준다며? 그렇게 좋은 여자 손전등 켜고 찾아도 없어.”현성과 민우는 나를 부러워했다.사실 나도 예전에는 똑같은 마음이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애교 누나는 너무 좋고 너무 관대하여 질투도 하지 않아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심지어 가끔 이 모든 게 허상이라는 생각도 들곤 한다.그에 반해 윤지은은 또 나에게 너무 현실을 체감하게 해준다. 좋아할 때도 질투할 때도 있어 오히려 더 커플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정수호, 너 진짜 쓰레기네. 너 설마 애교 누나 버리려고 그래?”현성이 갑자기 물었다.“헛소리. 내가 언제 버린다고 했어?”“그럼 아까 발언 무슨 뜻인데?”“난 그냥 애교 누나가 너무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뜻이지 버리겠다는 뜻 아니야. 함부로 누명 씌우지 마.”나는 바로 현성을 반박했다.하지만 그때 민우가 바로 끼어들었다.“사실 나도 네가 좀 쓰레기 같아. 아마 네가 만난 누나들이 다 너 같은 나쁜 남자를 좋아하나 보다.”“젠장. 내가 너희들한테서 무슨 좋은 말을 듣겠냐?”그날 저녁 퇴근 후 나는 형수네 집에 들렀다.그동안 너무 바빠 형수를 보러 오지도 못하고 몸을 닦아주지도 못했기에, 나는 얼른 따뜻한 물을 담아 형수 몸 곳곳을 닦아주었다.형수는 이렇게 오랫동안 누워만 있었지만 뺌은 여전히 발그스름하고 피부도 백옥 같은 피부에 핑크빛이 감돌았다.아마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그저 잠자고 있다고 생각할 거다.내가 형수의 몸을 닦아주는 동안 형수의 가슴은 사실 콩닥콩닥 북을 쳤다.‘수호 씨가 이제야 날
“이 얘기는 이쯤에서 하고. 말해요, 서나연 씨 일 외에 다른 볼 용건 있어요?”나는 화제를 다시 끌어왔다.그러자 소여정은 내 턱을 잡으며 생글생글 웃었다.“있지 그럼. 너 놀리러 왔어. 내가 너 놀리는 거 오랜만이잖아.”“미쳤어요?”나는 다급히 소여정의 손을 쳐냈다.“날 미친X 취급해? 내가 진짜 너 가만 안 둔다?”“못 믿겠어요. 나 이제 임천호도 안 두려운데 소여정 씨를 두려워하겠어요?”나는 소여정에게 계속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소여정은 대단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오호라. 며칠 새에 많이 컸네? 그런데 그런 모습 점점 더 좋아지는데?”소여정은 정말 역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매번 나타났다 하면 나에게 귀찮은 일을 던져주곤 한다.물론 내가 이제 임천호를 두려워하지 않는다지만 그렇다고 귀찮은 일에 휘말리고 싶지는 않았다.나는 그저 장사를 잘해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내가 소여정을 무시하자 소여정도 나를 보는 체도 하지 않고 스스로 가게 안을 둘러봤다. 그러다가 결국 몇 가지 선물 세트를 골랐다.소여정이 계산하려고 할 때 나는 다시 그녀에게 다가갔다.“선물 세트 사서 누구한테 주려고요?”“이젠 임천호 안 두렵다며? 내가 누구한테 주든 무슨 상관이야? 아니면 내가 이 선물을 가져갔다가 이 가게에서 샀다는 걸 들킬까 봐 그러는 거야?”소여정은 마치 내 배에서 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나를 빠삭하게 알았다.“찾아오겠으면 찾아오라고 해요. 소여정 씨는 정상적인 소비예요.”나는 말발로 소여정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에 바로 뒤돌아 떠나갔다.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후들거렸다.소여정은 물건을 구매한 뒤 가게에서 택배로 보낼 수 있는지 물었다. 그 질문에 점원 한 명이 가능하다고 대답했다.소여정은 주소 하나를 남기고 직원더러 선물 세트를 주소에 적인대로 보내달라고 당부했다.소여정이 떠난 뒤 나는 그 위에 적힌 주소를 확인했다. 주소는 H시로 되어 있고, 받는 이는 ‘소원규’로 되어 있었다.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이름에 한참을 떠
“누구한테 들었어?”“그건 상관하지 마요. 맞는지 아닌지만 대답해요.”나는 얼렁뚱땅 넘기려고 했다.다행히 소여정은 내 질문을 회피하지 않고 바로 인정했다.“맞아. 나도 예전에 윤지은과 임유미처럼 잘 사는 집 딸이었어. 안 그러면 우리 넷이 왜 친구가 됐겠어?”하긴. 소여정은 나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물었다.“뭐 하나만 물을게. 소씨 가문 사람들이 강북에 있지?”“그걸 어떻게 알아요?”나는 흠칫 놀랐다.그 말에 소여정이 대답했다.“어떻게 알았는지는 알려고 하지 마. 맞는지 아닌지만 말해.”소여정이 이렇게 묻는다는 건 이미 단서를 찾았다는 뜻이기에 나는 사실대로 대답했다.“맞아요. 임천호 아내가 강북에 와서 요즘 유미 사모님과 같은 동네인 백조의 호수에 살아요.”“백조의 호스? 보아하니 나도 그곳에 집을 마련해야겠네.”소여정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그 말에 내 눈은 휘둥그레졌다.“지금 제정신이에요? 소씨 가문 사람들이 그곳에 있는데 멀리 숨지는 못할망정, 같은 동네에 살겠다고요? 대체 무슨 생각인 거예요? 설마 서나연 씨를 쫓아내고 본인이 임천호 아내가 되려고 그래요?”소여정은 생글생글 웃으며 물었다.“안돼? 임천호가 얼마나 대단해. 나한테도 잘해주고.”“대단하긴 무슨. 부시장님과 윤 회장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더만.”나는 내가 임천호 뒷담화를 하는 날이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소여정은 나를 다시 봤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다.“정수호, 대단하네. 임천호를 그렇게 말하고. 임천호가 안 뒤 죽이려고 할까 봐 두렵지 않아?”“내가 임천호 산하의 대출 회사도 무너뜨렸는데, 임천호를 무서워하는 거로 보여요?”나도 비록 내가 너무 잘난체 한다는 걸 알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정말 참을 수가 없다.이 세상에 허영심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게다가 이건 내가 평생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닐 일이기도 하다.소여정은 입을 가리며 웃었다.“아주 어깨뽕이 하늘로 치솟는구먼? 그 대출 회사 임천호한테 엄청 중요한 회사인 건
“오, 오빠가 뭘 하려는지 알아요. 만약 하고 싶으면 날 오빠한테 줄 수 있어요.”주선영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옷자락을 잡고 긴장한 표정으로 고백했다.이건 현성에 대한 인정이었다. 현성은 너무 설레어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는 두말없이 주현영을 와락 끌어안았다.그러자 주현영이 이내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여, 여기서는 안 돼요. 우리... 호텔 가요.”“그래, 바로 가자.”나는 현성과 주현영이 손잡고 뛰쳐나오는 걸 본 순간, 현성이 오늘 소원을 이룰 거라는 걸 알았다.나는 싱긋 웃으며 현성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파이팅.”“당연하지.”현성은 헤헤 웃으며 말했다.이윽고 두 사람은 손을 잡고 기쁜 얼굴로 떠나갔다.나는 얼른 이 기쁜 소식을 민우에게 알려주려고 전화했다.[수호야. 왜 그래? 나 지금 바빠.]민우는 목소리를 한껏 낮추고 말했다.그 목소리에 나는 의아했다.“너 지금 뭐 해? 가게 보는 거 아니었어?”[설아가 점심에 나 찾아와서 지금 설아랑 호텔에 있어.]“헐, 너 뭐야? 임설아랑 결실을 보는 거야?”‘왜 친구들한테 버림당해 혼자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지?’민우는 헤실 웃었다.[이만 끊어. 설아가 샤워하러 갔다가 지금 나와. 우리 오늘 마지막까지 갈 거거든.]민우는 말을 마치자마자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이 상황에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대충 음식을 먹고 가게로 돌아가는 것뿐이었다.하지만 혼자 사무실에 앉아 있을수록 기분이 안 좋았다.예전에는 내가 민우와 현성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었는데, 현재는 내가 두 사람을 부러워하는 꼴이 되었으니.하지만 윤지은과 애교 누나한테는 연락할 엄두도 나지 않고 형수는 아직 혼미해 있으니 누구를 찾아야 할지 고민이었다.나는 주위에 여자가 끊이지 않다고 이렇게 외로이 혼자 남는 날이 오게 될 줄은 몰랐다.‘정수호 몰락했네. 몰락했어!’내가 속으로 감개무량해하고 있을 때 아래층에서 직원 한 명이 나를 불렀다.“정 사장님, 누가 찾아왔어요.”“알았어요. 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