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얼굴 두꺼워 괜찮겠지만 수호 씨는 부끄러울 거야.”“흥, 내가 왜 그딴 것까지 신경 써야 하는데? 아무튼 여기에 나를 아는 사람도 없는데.”남주 누나는 역시나 털털하고 시원시원하고 하고 싶은 말은 거리낌 없이 내뱉는 스타일인 것 같다.그런 남주 누나를 보니 나는 순간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됐어요, 남주 누나, 형수, 나 보러 왔어요? 아니면 싸우러 왔어요?”그제야 형수는 남주 누나와 싸우지 않았다.하지만 남주 누나는 나를 진지하게 바라보며 말했다.“나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오늘 밤 여기 남아서 보살펴줄까?”남주 누나는 말하면서 나에게 윙크했다.그 순간 나는 낮에 있었던 일이 생각 나 갑자기 흥분됐다.하지만 지금 문제는 형수가 여기 있다는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형수는 이미 여러 번 나한테 남주 누나를 어떻게 해볼 생각은 하지 말라고 경고했었다.때문에 나는 할 수 없이 고개를 저었다.“됐어요, 형수가 보살펴주면 돼요. 저와 남주 누나는 따지고 보면 아무 사이도 아니잖아요. 남녀가 단둘이 있는 게 소문이라도 나면 안 좋잖아요.”“그럼 형수가 남아 보살펴주는 건 뭐 얼마나 듣기 좋다고? 형수와 시동생 사이에 불꽃이 튈 확률이 더 높은 거 모르나?”형수는 순간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최남주, 그만하면 됐잖아.”남주 누나는 다급히 애교 누나 등 뒤에 숨었다.“아니면 이렇게 해. 나랑 태연은 갈 테니까 애교더러 보살펴 달라고 해. 우리 애교가 얼마나 보수적인지는 다들 아는 거니까 수호를 어떻게 할 리도 없고, 당할 리도 없고.”남주 누나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하지만 형수는 처음으로 남주 누나의 의견에 동의했다.“그거 좋네. 우리 셋 중에 애교가 남아야 그 누구도 의견이 없을 테니까.”나와 애교 누나는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당황함을 감추었다.우리의 목적은 두 사람이 하라는 대로 하지 않으려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거니까.그때 애교 누나가 다급히 말했다.“안돼, 오늘 우리 남편 돌아올
애교 누나의 말에 나는 어리둥절했다.‘왜 갑자기 형수는 끌어들이지?’[애교 누나, 그게 무슨 뜻이에요?][말 그대로예요. 애교와 관계를 맺어요.][왜요?]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나와 남주가 수호 씨랑 그런 관계가 되는 건 시간문제일 텐데. 만약 태연도 끌어들이지 않으면 무조건 우리가 수호 씨랑 같이 있는 걸 반대할 거예요.][하지만 수호 씨가 태연도 끌어들이면 우리 모두 서로의 약점을 잡고 있는 셈이라 서로 뭐라 할 수 없잖아요.]여자들의 생각은 정말 일반적인 사고방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듯싶다.‘남주 누나가 나를 얻으려고 나더러 먼저 애교 누나와 관계를 맺으라 하더니, 이제는 애교 누나마저 나랑 같이 있으려고 형수를 자빠뜨리라고 하네.’이렇게 되면 세 여자를 내가 모두 차지할 수 있게 되는 거다.이건 나에게는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애교 누나와 남주 누나는 그나마 쉬운데 상대가 형수라면 나는 자신이 없었다.형수는 형이 본인한테 어떻게 하는지 알면서도 나에게 넘어오지 않는 사람이니까.때문에 형수를 어떻게 내 여자로 만들어야 할지 나는 도저히 방향이 잡히지 않았다.형수의 마음속에는 엄지 못할 벽이 있는 것 같다.나는 형수를 흘긋 바라봤다. 형수는 방금 전에 따뜻한 물을 길러와 지금 내 몸을 닦아주고 있다.하지만 내가 몰래 훔쳐보는 걸 그대로 들키고 말았다.“수호 씨, 나는 왜 그렇게 봐요?”“벼, 별거 아니에요.”형수가 갑자기 나에게 다가오는 바람에 나는 형수의 흰 가슴을 볼 수 있었다.“수호 씨는 거짓말을 못 해요. 그러니 들키기 싫으면 하지 마요. 애교랑 한 얘기를 나한테 하지 못하겠어요?”형수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나는 바로 승인했다.“애교 누나가 저더러 형수를 제 여자로 만들래요.”“왜요?”“애교 누나도 뭔가 아는 거 아닐까요?”나는 마음이 찔려 진실을 말할 수 없었다.만약 나와 애교 누나가 진작 짜고 형수를 속였다는 걸 알면 형수는 분명 속상해할 테니까.때문에 급한대로 말을 지어냈다.내 말에 형
형수는 싱긋 웃으며 내 손등을 톡톡 쳤다.“수호 씨, 우리는 절대 안 돼요. 그러니까 좋은 여자 찾길 바라요. 애교한테 말해요. 만나도 되고, 난 반대 안 해요. 그러니까 나한테 신경 쓸 필요 없어요.”형수의 말에 난 만감이 교차했다.형수가 나와 애교 누나가 만나는 걸 동의하는 것에 아주 기뻤지만, 그건 형수한테 관심 갖지 말라는 뜻이기도 했다.내가 애교 누나와 결혼하고 싶은 건 맞지만 형수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특히 애교 누나와 만나면 형수와는 더 불가능해진다.하지만 형과 형수의 관계에 모순이 있다는 걸 아는데, 내가 혼자 해결하더라도 형수한테 손을 대지 않는다면 형수가 얼마나 힘들까?게다가 형수는 줄곧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데, 형이 형수를 만족시켜 주지 못하면 형수는 어떻게 하나?수만 가지 생각이 들며 형수가 너무 안쓰러워졌다.나는 참지 못하고 형수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그럼 형수는 어떡해요?”“내가 뭘요?”“형수와 형 말이에요. 형수 아이 갖고 싶어 했잖아요.”형수는 그 말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이혼은 안 할 거예요. 아이는 정말 안 되면 시험관 아기 가지면 되고.”“그거 하려면 주사 엄청 많이 맞아야 해서 엄청 고생한다던데.”그 말에 나는 형수가 더 안쓰러워졌다.그때 형수가 웃으며 말했다.“방법 없잖아요. 이게 우리의 명인데. 수호 씨는 좋은 사람이라 내가 수호 씨 해치는 일은 없을 거예요. 나랑 같이 있고 싶다면 애교랑은 같이 있을 수 없잖아요, 안 그래요? 안 그러면 두 사람이 몸을 섞을 때 나를 생각할 거 아니에요.”“애교 누나가 개의치 않다고 하면요?”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럴 리가 없어요. 애교도 최남주처럼 수호 씨와 재미 좀 보려는 거면 모를까. 결혼까지 생각하고 남은 인생 같이할 생각이라면 그 어떤 여자도 그런 걸 원하지 않아요.”형수의 말에 나는 매우 불안해졌다.심지어 애교 누나가 나와 정말 결혼하고 싶긴 한 건지 의심되었다.“됐어요,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요. 지금 가장 중요한
나는 다급히 옆으로 몸을 비켜 형수에게 자리를 내주었다.형수는 그런 나를 보며 얼굴을 붉혔다.“올라갈 수는 있는데, 나한테 이상한 짓 하지 마요.”“그래요, 약속할게요, 아무 짓도 안 할게요.”지금은 형수를 꼬드기는 게 목적이라 나는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남자의 말은 믿을 게 못 된다는 걸 아주 제대로 증명한 셈이다.형수는 내 약속에 결국 내 쪽을 바라봤다.형수가 내 이불 속으로 들어오는 순간 나는 피가 들끓는 기분이었다.“약속했어요. 나한테 손 안 댄다고?”형수가 나를 보며 부탁하는 말에 나는 흥분해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네, 안 그럴게요.”나는 말로만 이렇게 약속하면서 손은 슬그머니 형수의 허리를 만져댔다.그러자 형수가 다급히 내 손을 잡으며 나를 봤다.“지금 뭐 해요? 아까 안 그런다고 했잖아요. 함부로 만지지 마요.”“저 만지지 않았는데요? 그냥 손 얹은 거예요. 이 자세가 편해서요.”나는 엉겁결에 대답했다.“지금 어린애 놀려요? 먼저 허리에 손을 얹고 그다음은 만지고, 그다음은... 이렇게 하려는 생각 아니었어요?”사실 그렇게 많은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그저 형수를 끌어안고 싶었으니까.게다가 형수가 바로 옆에 누워있는데, 아무 짓도 안 하면 짐승보다 못한 거 아닌가?병원 침대는 고작 1인용이라 우리는 꼭 붙어 있어야 했다. 게다가 형수가 매력적인 데다 몸매까지 좋아 나는 점차 주체할 수 없었다.“형수, 손을 허리에만 얹고 있고, 아무 짓도 안 할 게요.”나는 불쌍한 목소리로 말하다가 형수가 화낼까 봐 두려워 손을 내렸다.그러자 형수가 내 모습에 결국 마음이 약해졌는지 말했다.“그럼 손만 얹고 있어야 해요. 절대 다른 걸 더 하면 안 돼요. 난 수호 씨 형수예요. 딴마음 품으면 안 돼요.”“그런데 어제 화장실에서 이렇게 말하지 않았잖아요.”나는 포기하지 않고 형수에게 매달렸다.“그때는 술에 취해서 헛소리한 거예요. 그것도 믿어요?”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정말 진짜라고 여겼으니까.그러고는 대담하게
형수와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기에 나는 형수의 따뜻한 숨결과 향긋한 체향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주체하지 못하고 형수를 와락 끌어안고 입을 맞췄다.“안 돼요, 이러면 안 돼요.”형수는 다급히 나를 밀어냈지만 나는 오히려 형수에게 작은 소리로 경고했다.“소리 낮춰요. 다른 사람이 듣는 걸 원하지 않으면.”내 말에 형수는 깜짝 놀라 입을 다물더니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수호 씨, 정말 안 돼요. 이러다 누가 보기라도 하면 우리 다 끝장이에요.”“작게 움직이면 발견할 리 없어요.”내가 포기를 모르고 말하자 형수는 내 벨트를 꽉 잡은 채 나에게 바지를 벗을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그래도 안 돼요. 다들 내가 수호 씨 형인 줄 아는데, 우리가 정말 뭐라도 하다가 발각되면 얼굴 어떻게 들고 다녀요?”“그럼 집에 돌아가면 해도 돼요?”나도 형수의 걱정을 알았기에 몰아붙이지는 않았다.내 말에 형수는 한참 동안 망설였다.이에 나는 아예 형수의 바지를 잡아당겼다.“됐어요. 형수가 집에 돌아가도 동의하지 않을 것 같으니 차라리 여기서 나를 만족시켜 줘요.”형수는 다급히 내 손을 잡았다.“수호 씨, 잠깐만 기다려요. 생각할 시간을 줘요.”나는 형수가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고민할 거 뭐 있어요? 고민할수록 머리만 복잡해지지. 형수, 제가 어렵게 참고 있는 거 알잖아요, 형수도 한 번만 제멋대로 하면 안 돼요? 저 정말 형수를 돕고 싶어요.”나는 형수의 귓가에 대고 헐떡이며 말했다.그 말에 형수도 얼굴이 빨개지며 헐떡였다.“하지만 내가 정말 그런 짓을 하면 수호 씨 형과는 계속할 수 없잖아요.”“형수와 제가 말하지 않으면 형도 모를 거예요. 게다가 그날 형수도 봤잖아요. 형 변심했어요. 그리고 오늘 아침 저와 형이 화장실에서 무슨 대화를 했는지 물었죠?”“지금 알려 줄게요. 그때 형이 화장실에서 동영상을 보며 자위하고 있었어요. 형수를 보면 아무 반응도 없어 마치 왼손으로 오른손을 만지는
“수호 씨는 애교와 결혼하겠다고 하지 않았어요?”형수는 내가 점점 달려들자 다급히 나를 제지했다.하지만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영원히 형수를 얻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형수의 반대에도 나는 계속했다.나는 곧바로 형수의 청바지 버클을 풀어 해쳤다.형수는 내가 너무 급박하게 밀어붙이자 애원하는 말투로 말했다.“수호 씨, 진정해요.”“형수, 제가 지금 이 상황에서 진정하게 생겼어요?”그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남자가 이런 순간 하는 생각은 단 하나, 바로 마음대로 하고 싶다는 거다.나는 강제로 손을 쑥 밀어 넣었다.그리고 순간 미끌미끌한 것이 느껴지자 싱긋 웃으며 형수를 바라봤다.“이렇게 됐으면서 왜 얌전한 척해요?”“얌전한 척하는 게 아니라 정신 차리려고 노력하는 거예요. 실수하는 건 쉽지만 실수를 만회하려면 너무 어려워요. 우리가 정말 그런 관계로 발전했다가 수호 씨 형한테 발각되면 어떻게 할지 생각해 봤어요?”찬물을 끼얹는 듯한 형수의 말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하지만 여전히 포기할 수 없어 끈질기게 몰아붙였다.“이번 한 번만이요. 형수와 저만 말하지 않으면 누구도 알 수 없어요.”“형수, 약속할게요. 오늘 저를 만족시켜 준다면 앞으로 더 이상 귀찮게 굴지 않을게요”“그런 말은 어린 여자애한테나 하는 거지 나한테는 안 통해요.”형수는 몸을 일으켜 앉았다.“수호 씨, 우리는 불가능해요. 그러니 아무 일도 일어나면 안 돼요. 애교랑 만나고 싶다면 애교랑만 만나요. 마음에 두지 말아야 할 사람을 마음에 두지 말고.”형수는 말을 마치자마자 침대에서 내리려고 했다.만약 형수가 이렇게 가버리면 난 앞으로 기회가 없게 된다.그 순간 나는 어디서 용기가 생겨났는지 형수를 내 쪽으로 끌어와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형수의 바지를 풀었다.형수는 소리가 나 옆 침대 환자가 깨어날까 봐 애써 소리를 참았다.하지만 형수가 그럴수록 나는 더 흥분됐다.그러다 내가 이성을 잃고 끝까지 가려고 할 때, 내 핸드폰이 진동했다.그 틈에 형수는 다
나는 너무 미안했다.“이건 사고잖아. 누가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했겠어? 몸조리 잘하고 있어? 다른 일은 생각하지 말고. 참, 네 형수는 저녁에 병원에 있는대? 아니면 호텔에 묵는대?”“오늘 밤은 병원에 묵는대. 내 병실에 빈 침대가 있거든. 형수는 그 빈 침대에서 지낸대.”“응, 형수가 남도 아니고 너무 내외할 거 없어. 내일 일 처리 다하면 병원에 너 보러 갈게.”왠지 모르겠으나 나는 자꾸만 형이 나를 시험하는 것만 같았다.‘설마 나와 형수 관계 의심하는 건가?’나는 너무 불안했다.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아직 형수와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했다.안 그랬으면 분명 들키고 말았을 테니. 그러면 어떻게 형을 본단 말인가?나는 형과 몇 마디 더 수다를 떨다가 전화를 끊었다.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형수가 밖에서 들어왔고, 나는 미안한 표정으로 형수를 바라봤다.“형수, 정말 죄송해요. 전 정말 사람이 아니에요.”“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는데요? 시간이 늦었으니 일찍 쉬어요.”형수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내 아래쪽에 누웠다.이번에 나는 더 이상 헛된 생각을 하지 못했다.하지만 내 몸이 형수와 꼭 붙은 순간 또 다시 괴로워졌다.‘이걸 해결하지 않으면 오늘 밤은 다 잤어.’나는 결국 형수의 몸을 느끼며 팔근육을 단련해야만 했다.내 아래쪽에 누운 형수는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 다 알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을 감은 채 애써 모든 걸 외면했다....그 시각, 애교의 집.왕정민은 정말 약속대로 집에 돌아왔지만 남주는 대놓고 왕정민을 쌀쌀맞게 대했다.이에 애교는 남주를 방으로 보내도 왕정민과 대화를 나눴다.“애교야, 나 먼저 들어간다. 무슨 일 있으면 꼭 나 불러.”남주는 말하면서 왕정민을 째려보더니 이내 객실로 들어갔다.그렇게 남주가 사라지자 왕정민은 바로 헤실거리며 애교를 끌어안았다.“여보, 이것 봐. 나 빨리 돌아왔어. 말 잘 듣지?”심지어 한편으로 애교의 몸을 이리저리 만져댔다.하지만
왕정민은 헤실 웃으며 말했다.“내가 어떻게 하면 믿어줄래?”“간단해. 은행카드 모두 나한테 맡겨, 이 집도 내 명의로 돌리고.”왕정민은 그 말에 얼굴이 백지장처럼 변했다.그걸 본 애교는 입가에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왜? 아까워?”왕정민은 겉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여보, 나 회사 운영하는 오너야. 손에 고정된 자금이 없어, 계속 융통해야 해서. 내가 당신한테 카드를 주면 급하게 돈이 필요할 때는 어떡해?”“나한테 말하면 언제든 송금할게. 카드를 나한테 맡기는 것뿐이잖아. 내가 그 돈을 갖고 당신한테 안 주겠다고 했어?”“그래, 당신 말이 맞아. 하지만 내 카드에 돈이 정말 별로 없어. 당신한테 준다고 해도 의미 없잖아. 이렇게 하자. 내가 큰돈 벌면 그 카드 당신한테 맡길게, 어때?”“큰돈이 뭐고 작은 돈은 또 뭔데? 당신 회사 지금 꽤 잘 돌아가잖아. 아무리 돈이 없어도 몇억 원 정도는 있을 거 아니야. 내가 예전에 당신한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은 건, 당신을 믿어서야.”“하지만 내 친구한테 발각됐으니 내가 당신을 믿을 가치가 없잖아. 그걸 보상해야겠다는 생각도 안 들어? 난 당신 돈을 원하는 게 아니라 단지 안정감을 원하는 거야. 이런 간단한 것도 만족해 줄 수 없어?”왕정민이 얼마나 능구렁이인데, 몇억쯤은 왕정민한테 큰 액수도 아니다. 소유한 카드 중에 아무거나 애교한테 줘도 되는 상황이다.왕정민은 아직 애교와 관계가 틀어지고 싶지 않았다. 아직도 원래 계획대로 수호더러 애교를 꼬시게 하여 불륜을 이유로 빈털터리로 쫓아낼 심산이었으니.그럼 지금은 우선 애교의 요구대로 몇억을 먼저 주는 것도 별거 아니었다.때문에 왕정민은 속으로 한참 계산기를 두드려 보다가 웃으며 은행카드를 꺼내 애교에게 건넸다.“몇억 정도는 당연히 있지. 그리고 당신은 내 아내인데, 당신한테 돈 맡기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내가 전에는 너무 바빠 시간을 내지 못한 것뿐이야. 앞으로 카드는 당신한테 맡길게.”“아직 집도 남았잖아?”“당신 명의로 하고 싶으면
윤미화는 다른 직원들을 먼저 돌려보내고 나와 함께 왕정민 회사로 향했다.얼마 뒤 윤지은도 나타났다.윤지은까지 직접 온 건 매우 의외였다.“왜 왔어요?”“네가 여기서 죽은 것도 모를까 봐.”윤지은은 언제 한번 말을 예쁘게 하는 법이 없다.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이런 농담을 하니 오히려 내 긴장감이 줄어들었다.게다가 윤지은이 나를 도와주러 왔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 용기와 마음에 무척 감사했다.“동준 형님은요? 같이 안 왔어요?”윤지은도 왔는데 양동준이 안 왔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양동준이 나서면 왕정민이 모습을 드러낼까?”보아하니 양동준은 부근에 몸을 숨긴 모양이었다. 양동준이 있다는 걸 생각하니 마음이 든든했다.“고마워요.”나는 진심으로 말했다.윤지은은 내 말에 흠칫 놀라더니 이내 눈을 홉뜨며 말했다.“갑자기 이렇게 예의 차린다고?”나는 너무 무안해서 머리를 긁적였다.“진심이에요. 정말 고마워요. 윤 사장님도 너무 고마워요. 두 분 모두 제 귀인이에요.”윤미화는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말로만 고마워하지 말고 나중에 밥 사.”“당연하죠.”나는 흔쾌히 동의했다. 무엇보다 밥 한 끼 같이 하는 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하지만 옆에 있던 윤지은의 낯빛은 매우 어두웠다.“종마.”윤지은의 목소리는 매우 작았지만 내 귀에 콕 박혔다.나는 순간 어이없어 반박했다.“갑자기 왜 또 욕하고 그래요?”“욕하면 뭐?”윤지은은 더 화가 나서 목소리를 높였다.윤지은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아까까지만 해도 살갑게 대하더니 갑자기 기차 통을 삶아 먹었는지 화를 내다니.나는 너무 어이없었지만 이 상황에 끝까지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됐어요. 싸우기 싫어요. 내가 남자니까 참을게요.”나는 결국 양보를 선택했다.옆에 있던 윤미화는 이상한 눈빛으로 우리 둘을 번갈아 봤다.한편 나는 또 실수로 윤지은 심기를 거스를까 봐 그녀와 거리를 두었다. 그때 윤미화가 다가와 내 옆에 앉았다.“저 아가씨가 수호 씨 좋아하는 것
전승빈이 제 딸을 속일 방법은 수백 가지도 더 된다. 왕정민 같은 쓰레기가 딸 옆에 없다면 오히려 더 잘된 일이 아닌가?만약 내가 전승빈이라면 오히려 왕정민이 영원히 사라져서 평생 나타나지 않기를 바랄 거다.전승빈은 내 말에 대답하기 싫은지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쓸데없는 건 묻지 말게. 화를 불러일으킬 테니.”윤미화는 더 이상 말하지 말라는 듯 조용히 내 팔을 잡아당겼다.그제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전승빈에게 말했다.“좋아요. 왕정민을 찾는 걸 도와드리죠. 그러면 제가 빚진 건 없었던 겁니다.”말을 마친 나는 윤미화를 데리고 회사를 나왔다.회사를 나오자마자 윤미화는 나한테 방법이 있는지 물었다.“왕정민은 분명 전승빈이 두려워서 숨었을 거예요. 그러니 찾는 건 쉽지 않을 거예요.”그건 거의 한양에서 김 서방 찾기나 마찬가지다.나는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다.“왕정민은 분명 제가 죽도록 미울 거예요. 내가 만나자고 하면 만나줄까요?”“미쳤어? 이 와중에 왕정민을 만났다가 왕정민이 진짜 살의라도 품으면 어쩌려고?”왕정민은 현재 나 때문에 궁지에 몰렸으니 분명 나를 죽이고 싶을 거다. 그런데 내가 지금 그를 만나면 확실히 화를 입을 수 있었다.다만 이게 왕정민을 끌어내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다.“안돼. 그건 너무 위험해. 내가 동의 못해!”나는 한참 생각하다가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방법이 떠올랐어요. 지금 왕정민은 버림받은 개나 마찬가지라 분명 진동성을 찾아갈 거예요. 제가 병원에서 진동성만 잘 감시하면 될 거예요.”‘안 되겠어. 지금 당장 병원에 가봐야 해. 안 그러면 늦을지도 몰라.’나는 얼른 윤지은에게 전화했다.“지금 외과 병동으로 가서 진동성이 있는지 봐줄래요?”[그럴 필요 없어. 진동성이 방금 가는 걸 봤거든.]“젠장. 결국 한발 늦었네.”나는 화가 나 이를 갈았다. 그러자 윤지은이 왜 그러냐고 물었다. 나는 이내 전승빈이 나한테 왕정민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는 걸 사실대로 말했다.윤지은은 내 말을 듣고
왕정민은 자기가 고용한 놈들이 저에게 반항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너희들 뭐야? 이게 무슨 짓이야? 지금 반항해?”왕정민은 버럭 소리치며 다급한 듯 발을 동동 굴렀다.그러자 꽃무늬 셔츠가 콧방귀를 뀌었다.“전 회장님이 오라고 하십니다.”왕정민이 아는 사람 중 전 회장이라 불릴만한 사람은 전승빈뿐이다. 때문에 그는 단번에 전승빈을 떠올렸다.왕정민은 그제야 이 모든 게 처음부터 함정이라는 걸 눈치챘다. 그것도 내가 전승빈과 손을 잡고 판 큰 함정.아쉽게도 왕정민은 그걸 이제야 알아차렸다.왕정민은 자신이 전승빈 손에 들어가면 어떤 신세가 될지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돌아갈 수 없었다. 돌아가지도 않을 거였고.“빌어먹을!”왕정민은 바닥에 있는 벽돌을 집어 들어 꽃무늬 셔츠에게 던지고는 신속히 밴에 뛰어들어 시동을 걸었다.그 누구도 왕정민이 도망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그제야 반응한 꽃무늬 셔츠는 다급히 소리쳤다.“당장 쫓아!”꽃무늬 셔츠는 필두로 한 무리는 다급히 밴을 쫓았다. 다만 사람이 차를 쫓아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 덕에 왕정민은 밴을 몰고 도망쳤다.“젠장.”꽃무늬 셔츠는 곧바로 전승빈에게 전화해 왕정민이 도망쳤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그러고 나서 제 무리를 데리고 떠났다.한참 뒤 내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를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전승빈이었다.[증거는 입수했나?]“네.”[왕정민은 왜 도망치게 뒀지?]전승빈은 화가 난 듯 따져 물었다.그 말에 나는 미간을 팍 구겼다.“저는 함정을 파서 왕정민이 뛰어들게 하는 것만 책임졌지 사람까지 잡겠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게다가 왕정민이 도망칠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왕정민이 도망치면 우리가 지금껏 한 게 뭔 의미가 있지? 지금 당장 내 부하 놈들과 협력해서 왕정민을 잡아와!]나는 전승빈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내가 제 사람인 줄 아나? 내가 왜 왕정민을 잡는 것까지 도와줘야 하지?’그때 윤미화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봤다.“전 회장
이로써 왕정민의 열등감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당장 저 자식 다리부터 분질러!”왕정민은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놈들에게 소리쳤다.그러자 건달들은 무기를 든 채 하나둘씩 나에게 달려들었다.그때 꽃무늬 셔츠를 입은 놈이 나더러 벽 쪽으로 가라고 눈빛을 보냈다. 그렇게 하면 상처를 줄일 수 있었다.나는 얼른 구석진 벽 쪽으로 달려갔다.건달 놈들은 멋모르고 나에게 달려왔다. 꽃무늬 셔츠는 내 앞에 막아서면서 나와 싸우는 척했지만 사실은 나를 보호해 주고 있었다.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반항하기 시작했다.나는 지금껏 쌓아왔던 울분을 모두 건달 놈들에게 풀었다.“아!”나는 소리 지르며 주먹을 날리고 발길질 해댔다.마음 같았으면 놈들을 모두 때려죽이고 싶었다.내 기세에 놀랐는지 기세등등하게 달려들던 놈들이 점차 뒷걸음치기 시작했다.나는 감정이 폭발해 놈들을 향해 소리쳤다.“이봐. 죽일 테면 죽여 봐! 덤벼!”하지만 나에게 덤비는 놈은 한 놈도 없었다.그러자 결국 왕정민이 몽둥이를 들고 달려왔다.“젠장. 쓸모없는 것들! 비켜. 내가 직접 한다.”왕정민은 몽둥이를 들어 내 다리를 내리쳤다.그 기회를 봐 내가 반격하려 할 때 갑자기 그림자 하나가 휙 하고 나타나더니 단번에 왕정민을 걷어찼다.나는 놀란 눈으로 내 앞에 나타난 변석훈을 바라봤다.“석훈 형님, 여긴 어떻게 왔어요?”“넌 윤 회장님 사람이야. 윤 회장님이 널 죽이지 않는 한 다른 놈이 널 죽일 수는 없어.”변석훈은 간단하게 온 이유를 설명했다.그때 윤미화가 탐정 사무소 직원들을 데리고 달려왔다.“수호 씨, 얼른 내려와. 이 증거로 저 자식들 잡을 수 있어.”나는 녹화된 영상을 확인했다. 영상은 매우 완벽했다. 특히 왕정민이 아주 선명하게 나왔다.“좋아요. 우리 가요.”그제야 왕정민은 뭔가를 눈치챘는지 버럭 소리쳤다.“정수호, 거기 서!”왕정민은 내 주변 사람들을 훑어보더니 결국 윤미화에게 시선이 떨어졌다.“윤미화, 감히 날 갖고 놀아?”윤미화는 싸늘
모든 준비가 완벽히 끝났다. 하지만 내 눈에 왕정민은 보이지 않았다.왕정민이 직접 나타나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었다. 때문에 나는 일부러 꽃무늬 셔츠를 입은 놈에게 물었다.“당신들 누구야? 뭐 하는 거야?”“누가 당신의 팔다리를 부러뜨리라네?”꽃무늬 셔츠는 나에게 협력해 정보를 흘렸다.나는 또 물었다.“누가 당신들 보냈어? 죽기 전에 어떻게 죽는지는 알아야 할 거 아니야?”나는 말하면서 밴 쪽을 쳐다봤다. 안에 왕정민이 있는지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기에 나는 이를 악물며 비아냥거렸다.“그런데 당신들 고용한 놈도 참 쫄보네. 직접 나서지도 못하는 거 보면.”“하. 정수호.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어?”왕정민이 겨우 참지 못하고 차에서 내렸다.그제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다행히 왕정민도 직접 왔네.’내 걱정은 그제야 말끔히 사라졌다. 나는 왕정민을 차갑게 노려봤다.“왕정민, 뭐 하려는 거야? 벌건 대낮에. 이거 불법이야.”왕정민은 담배에 불을 붙이더니 한 모금 크게 빨아들였다.“불법? 난 원래 법 안 지켜. 어쩔 건데?”“당장 저놈 핸드폰 빼앗아 와.”왕정민은 먼저 내 핸드폰부터 압수하고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여기 CCTV도 없어. 네가 아무리 신고해도 소용없어. 정수호, 내 말에 대답해. 너한테 왜 내 집 열쇠가 있는 거야?”나는 일부러 왕정민을 자극했다.“당연히 애교 누나가 줬지.”“어디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이태웅이 네 열쇠 압수한 거 다 알아.”“압수한 거 맞아. 하지만 나중에 다시 줬어.”사실 그런 적은 없지만 나는 왕정민을 자극하기 위해 일부러 지어냈다.이태웅한테 계속 무시당해 왔다는 건 왕정민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지뢰 같은 사실이다. 때문에 내가 일부러 이태웅이 나한테 잘해준다고 하면 왕정민은 분명 불만을 품을 게 뻔하다.아니나 다를까 왕정민은 내 자극에 바로 반응했다.“왜 줬는데? 이태웅 그 노인네를 내가 몇 년 동안 모셨는데 지금껏 날 인정하지 않았다고. 그런데 너는 뭔데 인정을 받
나는 겨우 걱정을 덜어내고 윤미화에게 전환해 모든 것을 자백했다.내 말을 들은 윤미화는 고막이 터질 정도로 나에게 욕설을 퍼부었다.“정수호, 미쳤어? 전승빈이 어떤 사람이고 왕정민은 또 어떤 사람인데? 감히 두 사람을 이용하려고 들어?”윤미화는 내가 왕정민이 전승빈 조사를 의뢰했다는 걸 누설했다고 탓하는 게 아니라 내 안위를 걱정했다.그 때문에 나는 윤미화에게 더 미안했다.“윤 사장님, 일은 이미 벌어져서 돌이킬 수 없어요. 제가 전화드린 건 장비 좀 빌려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예요. 오늘 저녁 제가 왕정민 약점을 잡을 거거든요.”“빌리긴 뭘 빌려? 내 직원한테 일이 생겼다는데 내가 설마 모른 척하겠어?”윤미화의 말에 나는 너무 감동하였다.“윤 사장님, 정말 너무 좋은 분이셨군요.”윤미화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알면 됐어. 앞으로 한 번만 더 속였다간 봐. 수호 씨는 내가 스카우트한 사람이니까 난 수호 씨 안전을 책임질 의무가 있어.”“왕정민한테 미움 살까 봐 두렵지 않아요?”“두렵지. 그걸 말이라고. 하지만 내가 탐정 사무소를 차린 건 내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야. 내 소원은 이미 이뤘으니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 내가 돈 벌 방법이 이것뿐인 것도 아니고.”그 말에 나는 더욱 감동했다.“사장님, 저 울고 싶어요.”윤미화는 그런 내가 쪽팔리다니는 듯 말했다.“남자가 울긴 뭘 울어? 난 그런 남자 제일 싫어.”윤미화는 오늘 밤 직접 오겠다면서 주소를 보내라고 했다.내 계획은 왕정민을 아무도 없는 골목으로 끌고 가는 거다. 그렇게 하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으니까.물론 왕정민이 무조건 나타나게 하기 위해 도관에서 나오기 전 나는 일부러 그에게 전화해 자극했다.“왕정민, 네가 뭘 모르는 게 하나 있는데. 나 지금껏 애교 누나네 집 열쇠를 가지고 있었어.”[개자식이 그걸 왜 나한테 말하는데?]왕정민은 분노에 차 버럭 욕설을 퍼부었다.예상했던 반응에 나는 피식 웃었다.“별 건 아니고. 그냥 네가 예전에 샀던 그 집은 지금 내가 살
변석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버렸다.한참 뒤 윤지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도 내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듯했다.“저 자식 얼마나 연습했어?”“아가씨, 벌써 3시간째 저러고 있어요.”“죽으려고 작정했나? 어제도 밤을 새웠으면서 오늘 이렇게 무리하면 어쩌자는 건지.”윤지은은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걸어왔다.“정수호, 지금 당장 휴식해.”나는 윤지은을 흘긋거리고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계속 연습했다.윤지은은 내 행동에 화가 났는지 내 뺨을 후려갈겼다.“네가 이런다고 누가 감동할 것 같아? 넌 지금 스스로 감동에 취해 있는 거야. 전에는 연습을 게을리하고 이제 와서 발등에 불이 떨어졌나 봐? 네가 뭐 소설 주인공인 줄 알아? 지금 당장 휴식해!”나는 화끈거리는 얼굴도 신경 쓸 새 없이 심호흡하며 말했다.“누구 감동하라고 이러는 거 아니에요. 이런 식으로 화를 풀려는 것도 아니고요. 그냥 짬 내서 연습해서 하루빨리 실력을 끌어올리려는 거예요.”변석훈은 나에게 고작 한 달이라는 시간밖에 주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서두르지 않으면 그 시간 안에 다 배우지 못할 거다.윤지은은 씩씩거리며 말했다.“벽석훈이 너 안 가르친다면 내가 양동준더러 너 가르치라고 하면 될 거 아니야. 뭐 그리 큰일이라고 이렇게 네 몸을 가혹하게 대해?”나는 너무 놀라 윤지은을 바라봤다.“뭐라고요? 동준 형님이 저 가르치는 거 동의하는 거예요?”“네가 내 말 잘 들으면.”윤지은의 요구에 나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지금 당장 휴식할게요.”나는 말을 마치자마자 두말없이 뒤돌아섰다.윤지은은 내가 이렇게 고분고분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예전에는 항상 개와 고양이처럼 만나면 싸워댔는데 내가 갑자기 고분고분해지니 윤지은은 익숙하지 않은 듯했다.윤지은은 이내 나에게 걸어와 나를 꿰뚫어 볼 것처럼 훑어봤다.“정수호. 너 아무 일 없는 거 맞지?”나는 물을 마시며 땀을 닦았다.“저한테 뭔 일 있겠어요? 보다시피 저 멀쩡해요.”“그렇다면 다행이고. 난
진소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만 봐도 흔들렸다는 걸 알 수 있었다.고작 몇 마디 사탕 발린 말에 흔들린다니, 이 여자가 참 한심했다. ‘머리가 비었나? 하긴, 그러니까 진동성한테 제대로 속았겠지.’하지만 예전의 나도 진소민과 다를 게 없었다.태어날 때부터 계략에 능하고 총명하며 위선과 악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은 없다.나는 진소민을 탓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쌍했다. 진동성의 눈빛만 보면 그가 진소민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그저 이 바보 같은 여자를 농락하고 있는 거였다.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내가 짐작이 맞았다.진동성이 진소민을 떠나지 못하게 한 건 그가 진소민한테서 만족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진소민은 워낙 민감한 몸이라 진동성의 사이즈가 아무리 작아도 쉽게 절정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런 느낌은 그동안 아내인 고태연한테서 느껴보지 못했다. 때문에 진소민을 만난 뒤에 그는 진정 자기가 남자가 된 것 같았다.진동성은 아직 사업에서도 큰 성공을 이룩하지 못하고 결혼도 실패했는데, 유독 진소민 앞에서만은 성취감을 얻을 수 있고 빈자리가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되든 그가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진동성의 목적은 이 바보 같은 여자를 붙잡는 거였다.나는 더 이상 끼어들지 않았다. 진소민이 떠나든 말든 관심 없었다. 난 오직 이런 방법으로 기름을 부어 진동성이 하루빨리 나를 처리하라고 왕정민을 꼬드기게 하고 싶었다.나는 진동성을 보며 냉소했다.“이 여자는 속이기 쉬워 참 좋겠어. 어디 평생 속여 봐. 하지만 네놈이 한 짓을 부모님이 알면 어떨지 궁금하네.”말을 마친 나는 일부러 깔깔거리며 떠나갔다.이 순간 진동성이 뒤에서 이를 갈며 나를 죽일 듯 노려볼 거라는 걸 알고 있다.이건 바로 내가 원하는 효과였다.진동성은 지금 병원에 입원해 있어 직접 움직일 수 없으니 분명 왕정민한테 연락할 거다.왕정민이 나에게 손을 쓴 순간 내 계획은 성공한 셈이다.나는 아무도 없는 구석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될 때 나는 부모님께 그 의서가 어디 있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부터 의서를 찾지 못했다.아마 그전에 진동성이 이미 몰래 훔쳐 갔을 거다.‘진동성 이 개 같은 자식. 진짜 뼛속까지 악질이네.'우리 가족은 너무 착해서 그놈의 가면에 깜빡 속아 넘어갔다.여진수가 형수의 상태를 확인한 뒤 나는 곧장 외과 병동으로 향했다.진소민이 와서 진동성을 간호하고 있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 진동성의 손은 진동성의 치마 속에 있었다.형수는 아직도 의식불명의 상태인데 이 개자식은 병원에서까지 여자와 꽁냥거리고 있다니. 이런 놈은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라 하는 게 맞다.진동성은 나를 보자마자 비아냥거렸다.“넌 또 왜 왔어? 내 마누라 돌보지 않고 내가 다른 여자랑 즐기는 거 구경 왔어?”나는 피식 웃었다.그러자 진동성의 미간이 푹 파였다.“뭘 웃어?”나는 의자 하나를 끌어와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사실 나는 핸드폰으로 영상을 찍고 있었다.난 형수가 갑자기 교통사고가 난 게 분명 단순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이 함께 교통사고가 났는데 형수는 크게 다쳐 의식불명이 되고 진동성은 고작 피부가 까진 전도로 끝났다는 게 너무 이상하다.게다가 이 자식은 형수가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동안에도 진소민과 어울리고 있다니. 이걸 찍어두면 분명 형수에게 유리한 증거가 될 거다.“네 놈 목숨이 참 질겨서 웃는다. 형수는 저렇게 됐는데 넌 고작 찰과상이라니. 어떻게 했어?”진동성은 이미 대답을 준비한 것처럼 빈틈없이 대답했다.“그걸 나한테 물으면 난 누구한테 물어봐? 교통사고가 갑자기 나서 나도 미처 반응하지 못했어. 내가 깨어났을 땐 이미 병원에 있었고. 그런데 나한테 어떻게 했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당연히 모른다지.”진동성이 이렇게 대답할 거라는 걸 난 진작 예상했다.때문에 나는 방법을 바꾸어 진소민을 바라봤다.“그럼 당신한테 묻지. 그쪽은 대체 무슨 신분으로 그 남자를 돌보는 거야?”진소민은 워낙 말주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