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 슬쩍 봤더니 모두 여자 사진이었다. ‘늙은 변태. 나이도 있으면서 이렇게 밝히다니.’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마동석 쪽으로 다가가 홍보 책자를 챙겨 로비에서 계속 책자를 나눴다.그게 효과가 있든 말든 나는 노력했다. 마동국처럼 아무것도 안 하거나 민규처럼 놀고먹으며 돈 벌어가는 게 싫었으니까.얼마 남지 않은 책자는 오후 3시쯤이 되니 모두 나눠주었다.결국 할 일이 없어진 나는 다시 진료실로 돌아갔지만 여전히 진료를 보러 찾아오는 환자가 없었다.결국 나는 의학 서적을 하나 챙겨 구석에서 열심히 보기 시작했다.그렇게 보다 보니 어느덧 퇴근 시간이 되었다.“겨우 퇴근 시간이네. 자네도 이만 가 봐.”마동국이 일어나 기지개를 켜며 말하는 말에 나는 그제야 퇴근 시간이 되었다는 걸 알았다.나는 의학서적을 책꽂이에 꽂고 대충 준비하고 퇴근했다.하지만 내가 진료실에서 나오자마자 민규가 헐레벌떡 달려와 내 앞을 막았다.“정수호, 너 아무 데도 못 가. 내 핸드폰 물어내기 전에 갈 생각하지 마!”“핸드폰을 물어내라니?”내가 일부러 모른 척 물었더니 민규는 버럭 소리쳤다.“핸드폰 물어내라고! 네가 내 핸드폰 변기로 내려보냈잖아. 그러면 배상해야 하는 거 아니야?”“내가 언제 민규 씨 핸드폰을 변기에 내려보냈다고 그래요? 증거 있어요? 증거 없으면서 남을 함부로 모함하지 마요.”나는 말하면서 민규를 밀치고 지나갔다.“야, 너 설마 모른 척하겠다는 거야? 경찰에 신고한다?”“마음대로 해요. 내가 그랬다는 증거 있으면 언제든 신고해요.”“안 돼, 못 가!”끝까지 내 팔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민규 때문에 나는 귀찮아 미칠 지경이었다.“그만하시죠? 계속 이러면 나도 안 봐줍니다.”“그딴 거 상관없어. 내 핸드폰이나 물어내.”민규는 말발도 없어 고작 몇 마디만 반복했다.그때 마동국이 진료실에서 나왔다.“왜들 이래? 두 사람 왜 실랑이를 벌이고 있나?”민규는 마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급히 달려가 고자질했다.“마 교수님, 마침 잘
민규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혼자 속앓이를 하다가 끝내 떠나가는 내 뒷모습을 보며 이를 갈았다.“젠장. 정수호, 내가 널 여기서 쫓아내지 못하면 앞으로 이름을 바꾼다!”퇴근한 뒤 나는 곧바로 형수의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속으로 남주 누나를 한시라도 빨리 보길 기대했다.이건 다 그 요물 같은 여자가 사람을 너무 잘 유혹하는 것 때문이다.나는 길에서 남주 누나에게 문자를 보냈다.[남주 누나, 저 곧 도착하니까 기다려요.]남주 누나는 내 문자에 답장하지 않았다.하지만 사람이 매 순간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 않고 있는 건 아니기에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그저 남주 누나가 너무 바빠 내 문자를 보지 못했을 거라고, 보면 반드시 답장할 거라고 생각했다.동네에 도착하자 나는 차를 세우고 잔뜩 신이 나서 위층으로 올라갔다.심지어 형수의 의심을 피하려고 먼저 형수 집에 들르기까지 했다.하지만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형수는 좀처럼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혹시 집에 없나?’형수에게 전화했더니 통화는 이내 연결되었다.“여보세요? 수호 씨.”“형수님, 지금 어디 있어요? 문 두드렸는데 왜 아무 반응도 없어요?”형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수호 씨 형 교통사고 났어요.”“네? 상태는 어때요? 지금 어디 있는데요?”나는 말하면서 곧바로 병원에 갈 준비를 했다.그래도 형이 다쳤다는데 걱정되는 건 사실이었으니까.“심각한 건 아니에요. 그냥 조금 놀란 것뿐이라 지금 교통경찰과 상대방과 합의 문제를 논의하고 있으니 올 필요 없어요. 정말 심각하지 않아요.”그 말에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하지만 여전히 형이 걱정되었다.형수는 나더러 걱정하지 말라면서 집에 바로 들어올 수는 없을 것 같으니 애교 누나 집에 있으라고 했다.“형수, 그럼 형 잘 돌봐줘요. 필요하면 언제든 전화하고요.”나는 형수와 통화를 끝내고 애교 누나 집으로 향했다.내 손에는 애교 누나 집 열쇠가 있었지만 그거로 문을 열지는 못했다.아직 애교 누나 집에 나주 누나도
“왕정민이 쓰레기인데, 내가 그런 사람과 똑같게 굴 수는 없잖아요.”“수호 씨, 난 우선 왕정민과 이혼하고 싶어요. 그러고 나서 우리 제대로 사귀고, 내 몸도 내어줄게요. 네?”애교 누나의 말에 나는 너무 어이없었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심지어 그날 좋은 분위기를 깨고 콘돔 사러 갔던 것도 후회됐다.만약 콘돔 사러 가지 않았다면 그날 바로 애교 누나를 안을 수 있었는데.물론 그 방면의 느낌을 이미 경험해 봤지만 윗집 여자와는 원나잇을 뿐이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애교 누나다.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와 몸을 섞고 싶은 건 모든 남자의 본능이다.게다가 나는 이제 고작 23살이고 한창 형기왕성할 나이기에 애교 누나 같은 매일 보기만 하고 만지지 못하는 게 너무 괴롭다.하지만 그렇다고 애교 누나를 강요하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끝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누나의 결정을 존중해요. 누나가 어떤 결정을 내리던 전 항상 지지해요. 하지만 지금 너무 하고 싶은데 도와줄 수 없나요?”내 말에 애교 누나는 목까지 빨갛게 달아올랐다.“안, 안 돼요. 이러다 남주가 오리가도 하면 어떡하려고.”애교 누나는 또 예전처럼 조심스러워졌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요구했다.“문 잠그면 되잖아요. 그러면 들어오기 전 문 두드리겠죠.”나는 말하면서 애교 누나에게 다가가 애교부렸다.“부탁이에요, 누나.”“그, 그럼 한 번만 도와줄게요. 앞으로 도와달라고 하면 안 돼요.”애교 누나의 얼굴을 사과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나는 그 모습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며 다급히 말했다.“그래요, 그렇게 할게요.”나는 애교 누나를 데리고 소파에 앉히고는 누나의 손을 내 옷 속으로 쑥 들이밀었다.하지만 애교 누나는 깊은 모순에 빠졌다.한편으로는 이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나를 보고 있으니 몸이 달아올랐다.“나, 이래도 돼요?”애교 누나는 아무리 고민해도 끝내 답을 차지 못했다.“애교 누나, 뭘 멍하니 있어요?”그때 애교 누나가 갑자기 손
“수호 씨, 미안해요. 일부러 이러는 게 아니에요. 그냥... 갑자기 너무 무서워서. 왕정민한테 복수하려다가 나조차도 모르는 사람으로 변해버릴까 봐, 와정민이 수호 씨를 시켜 나를 꼬셔라고 한 건 분명 꿍꿍이를 품고 꾸민 일일 텐데 나 때문에 수호 씨가 다칠까 봐 그것도 무서워요. 난 수호 씨가 다치는 걸 원치 않아요.”애교 누나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상심해하고 무서워했다.나도 순간 애교 누나가 뭘 걱정하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전에는 정말 왕정민이 바람피운 것 때문에 자극을 받아 복수하려고 했겠지만, 오늘 갑자기 자기가 본인도 모르는 사람으로 변한 것을 발견하고 무서웠을 거다.게다가 나한테 진짜 흔들려 보호해 주고 싶은데, 내가 왕정민한테 이용당하고 아무것도 모를까 봐 걱정된 모양이다.때문에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일 테고.”그걸 알고 나니 나는 마음이 아파 애교 누나를 꼭 끌어안았다.“알아요. 다 아니까 무서워하지 마요. 강요하지 않을 테니까. 누나가 이혼할 때까지 기다릴게요”애교 누나는 고개를 들어 글썽한 눈망울로 나를 봤다.“정말 기다릴 거예요? 내가 수호 씨보다 나이도 많고 결혼도 했었는데.”나는 애교 누나의 이마에 힘껏 입 맞추고 진지하게 대답했다.“내가 사랑하는 건 애교 누나 자체예요. 신분도, 나이도 상관없어요. 앞으로 내 앞에서 본인 나이가 많다는 둥, 결혼했던 사람이라는 둥 그런 말 하지 마요. 그런 걸 신경 썼으면 애초부터 누나한테 마음 흔들리지 않았을 거예요.”내 말에 애교 누나는 더 세게 울기 시작했고, 나는 마음 아파 애교 누나의 눈물을 닦아주었다.그렇게 한참이 지나자 애교 누나는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나를 보며 물었다.“수호 씨가 한의원에서 인턴 하는 게 혹시 왕정민이 배정해 준 거예요?”“네, 하지만 그런 거 조금도 받고 싶지 않았어요. 내가 거절하면 형과 형수가 난감해할까 봐 순응한 거예요.”내 말에 애교 누나가 귀띔해 줬다.“왕정민은 절대 손해 볼 사람이 아니에요. 그런데도 수호 씨더러 나를
“나 걱정하지 마요. 상대할 수 있으니까.”나는 가슴을 팡팡 치며 자신감 있게 말했다.이 순간 나는 애교 누나 앞에서 더는 동생이 아닌 남자니까.남자가 돼서 사랑하는 여자를 걱정하게 할 수는 없다.오히려 내 여자를 보호해야 하지.애교 누나는 내 말에 또 피식 웃었다.“수호 씨 나빴어요. 또 눈물 나잖아요.”“절대 울지 마요. 눈 부으면 어떡하려고요? 게다가 이따가 친구가 오면 내가 그런 줄 알 거 아니에요.”내 말에 애교 누나는 얼른 눈물을 참았다.우리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애교야, 문 열어. 나야, 남주.”‘참 귀신 같다니까.’‘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정말 귀신같이 딱 맞춰 오네.’애교 누나는 얼른 눈물을 닦았다.“나 운 것 같아 보여?”“너무 선명해요. 눈시울이 다 붉어졌어요.”내 솔직한 대답에 애교 누나는 당황했다.“어? 그럼 어떡하지?”“이따 제가 문 열 게요. 남주 누나가 물어보면 제가 화나게 했다고 해요.”“어떻게 그래요? 남주라면 분명 수호 씨가 나한테 나쁜 짓하려고 했다고 생각할 텐데.”“저에게 상대할 방법이 있으니까 제가 말한 대로만 해요.”“그래요, 그럼 수호 씨 말 대로 할게요.”나는 애교 누나와 상의가 끝난 뒤 문 열러 갔다.그랬더니 남주 누나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수호 씨가 왜 문 열어요? 여긴 무슨 일이에요?”나는 결국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형이 교통사고가 나서 형수가 형 보러 갔거든요. 잠시 집에 갈 수 없어 여기 왔어요.”남주 누나는 껌을 질겅질겅 씹고 있었고 가죽옷과 가죽 신발 차림이었는데 아주 카리스마 있어 보였다.심지어 내 말에 일말의 의심조차 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왔다.하지만 시뻘겋게 물든 애교 누나의 눈시울을 보더니 화들짝 놀랐다.“애교야, 왜 이래? 눈이 왜 이렇게 부었어?”애교 누나는 눈을 들어 나를 흘끗 봤고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아까 말한 대로 말하라는 사인을 보내자 입술을 짓 씹으며 대답했다.“수호
애교 누나는 역시나 똑똑한지라 곧바로 눈치채고 내 연기에 맞춰 주었다.심지어 더 슬프게 흐느끼기까지 했다.“나 올해로 31살이란 말이야. 이렇게 젊은 나이에 폐경이라니, 그럼 앞으로 아이는 어떻게 낳으라고? 남주야, 나 어떡해?”애교 누나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완벽한 연기를 해대니 좀처럼 허점을 찾을 수 없었다.나도 사전에 알고 있는 게 아니라면 깜빡 속아 넘어갔을 거다.그때 남주 누나가 깔깔 웃어댔다.“고작 이 일 때문에 그래? 어려운 거 아니네. 앞으로 남편더러 매일 집에 오라고 해. 남자 손을 타면 호르몬도 정상으로 돌아올 거고, 생리 주기도 점점 맞을 거야.”그 말에 애교 누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그런데 정민 씨가 반년 동안 집에 안 들어와 얼마 전에도 반년 만에 얼굴 처음 봤어.”“헐, 정말이야? 그렇다면 반년 동안 독수공방했다는 거야?”남주 누나는 믿기지 않는 듯 귀를 쫑긋 세웠다.그 말에 애교 누나는 얼굴만 붉힐 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어쩐지 갑자기 호르몬 이상 증세가 나타나고 생리 주기가 들쑥날쑥하다 했더니, 우리 나이대 여자는 남자의 손길이 가장 필요한데. 네 남편이란 인간은 전시품처럼 쓸모를 발휘하지 못했으니. 난 네 남편이 밖에 다른 여자도 있다고 봐.”애교 누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펄쩍 뛰었다.“그럴 리 없어. 정민 씨 그런 사람 아니야.”“애교야, 넌 남자를 너무 몰라. 이 세상에 바람 안 피우는 남자는 없어. 아무리 정직하고 점잖은 남자라도 똑같이 뒤에서 그 짓거리 하고 다닌다고.”남주 누나는 말하면서 나를 흘긋 바라봤다.이에 나는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따지고 보면 난 바람에 속하지도 않는다.내가 애교 누나와 정식으로 사귀는 것도 아니니, 이게 어떻게 바람이란 말인가?하지만 애교 누나는 여전히 왕정민을 무척 믿는 듯 연기했다.“난 증거 없는 일은 함부로 넘겨 집지 않아. 너도 그러지 마.”“그래, 알았어. 그럼 네 남편 말고 네 얘기할게. 이제 병의 근원도 찾아냈는데 제대로 된 처방
“애교야, 너도 잘 생각해 봐. 이름만 있고 실상은 없는 혼인 때문에 평생 독수공방할 건지, 아니면 네 인생 즐기며 살 건지.”솔직히 남주 누나의 생각은 너무 개방적이고 혁신적이다.물론 남주 누나의 상황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나는 이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그도 그럴 게, 남자든 여자든 결혼에 위기가 생기거나 껍데기일 뿐이라면 도덕을 지켜야 한다고 본인을 괴롭힐 필요가 없다.그럴 거면 차라리 본인을 위해 살고 말지.인생은 원래 짧은데, 이 사람 저 사람 다 챙기다 보면 자신을 위해 살날이 남지 않게 된다.게다가 누가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니고.나도 마침 남주 누나가 한 말을 하고 싶었기에 옆에서 맞장구쳤다.“애교 누나, 저도 남주 누나 말에 일리가 있다고 봐요. 우선 남편과 상의해서 상대가 매일 집에 오겠다고 하는지 물어봐요. 만약 상대가 원하면 당연히 좋은 거고, 대충 얼버무리면 누나도 생각해 봐요.”“올해 고작 31살이잖아요. 이렇게 말기 폐경이 오면 노쇠만 빨라져요.”애교 누나는 내가 이 핑계로 저를 설득한다는 걸 눈치챈 듯했다.결국 한참 동안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두 사람 호의 알겠어. 이따가 바로 남편한테 전화해 볼게.”그때 남주 누나가 애교 누나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너무 큰 기대는 품지 마. 내 경험으로 봤을 때, 네 남편 밖에 여자 있어.”“넌 좀 좋은 쪽으로 생각할 수는 없어?”애교 누나가 쓸쓸한 듯 말하자 남주 누나가 대답했다.“나도 네가 잘됐으면 해서 이렇게 말하는 거야. 왕정민의 어디가 좋길래 애초에 결혼했던 거야? 네 얼굴과 몸매면 수호 씨 같은 젊은 남자도 언제든지 구할 수 있어.”애교 누나는 이를 악물었다.“왕정민이 정말 나한테 잘못했다면 무조건 이혼할 거야.”“얼씨구? 난 그저 말했는데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 치는 거야?”애교 누나는 그제야 자기가 실수했다는 걸 눈치채고 다급히 화제를 돌렸다.“참, 오후에 뭐 하러 갔길래 지금 돌아와?”“말도 마. 일 때문에 다녀왔어. 난 분명
남주 누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공무원 시험 치고 싶으면 내가 도와줄 수도 있고.”“아니요. 공무원에는 관심 없어요. 저는 그래도 한의사가 될래요.”물론 한의사가 서의보다 전도가 좋지 않지만 그래도 이건 내 취미기에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우리는 한창 얘기하다가 이내 화제를 전환했고, 애교 누나도 위기를 넘겼다.“그런데 오늘 형과 형수가 언제 올지 모르니 오늘 여기서 자는 게 어때?”남주 누나가 생글거리며 말했다.나는 남주 누나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게다가 남주 누나의 눈빛은 마치 나를 집어삼키기라도 할 것 같아 나는 얼른 고개를 마구 저었다.“아니요. 형수가 말했는데 곧 돌아온댔어요.”“그럼 지금 전화해 물어봐. 돌아올 수 있는지.”남주 누나는 여전히 포기할 줄 몰랐다.이 요물 같은 여자에게 시달려 나는 결국 형수한테 전화하는 수밖에 없었다.“어, 수호 씨, 오늘밤 못 들어갈 것 같아요.”나는 그 말에 순간 걱정했다.“왜요? 형이 많이 다쳤어요?”“아니요. 사고 상대와 합의 문제 때문에 그래요. 사고 난 길목에 마침 신호등이 없어 누구 책임인지 정하기 어렵거든요. 20만 원 정도로 합의 보려고 했는데 상대가 2천만 원 내놓으래요!”“돈독에 빠졌는지 돈에 미친 것 같아요. 스크래치 조금 난 거로 2천만 원이라니, 뺨 한 대 때리고 싶더라니까요.”형수의 말에 내가 대답했다.“그럼 제가 갈까요? 사람 많으면 도움이 될 거잖아요.”“아니에요, 와도 소용없어요. 아직 교통정보 센터에 있거든요. 교통경찰이 협상 도와주고 있으니 정 안 되면 절차대로 하죠 뭐. 그런데 언제 집에 돌아갈지 모르니 오늘엔 애교네 집에서 자요.”옆에서 조용히 엿듣고 있던 남주 누나는 형수의 말에 슬그머니 미소 지으며 낮은 소리로 물었다.“거 봐, 내가 뭐랬어?”‘왜 또 이렇게 득의양양한 거지?’나는 형수와 몇 마디 나누고 전화를 끊었다.“이 집은 애교 누나 집이지 남주 누나 집도 아니잖아요. 애교 누나한테 물어봐야 해요.”“애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