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군주에게 이 아이를 맡기는 것도 좋은 생각은 아니야. 자신의 아이도 아닌 자신을 망가뜨린 고지와 정후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키우게 하라고? 군주도 언제까지 명월암에서 지낼 수 없잖아.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 짝을 맺고 살아야지.” 우문호가 말했다.우문호는 황실의 사람으로 정화군주와 그녀의 가족인 최씨 집안이 그렇게 된 것에 대한 미안함을 느꼈다. 그는 진심으로 정화군주가 행복하게 살길 바랐다.“네 말이 맞아. 군주가 고지의 딸을 보면서 매일 괴로워할까 봐 그게 가장 큰 걱정이야.” 원경릉이 말했다.“맞아. 난 정화군주가 좋은 짝을 만나서 혼인했으면 좋겠어. 근데 애가 있으면 어떤 사내가 정화군주를 데리고 살겠어? 비록 총이? 충이라고 했던가? 뭐가 됐든 고지의 아이는 불쌍하지만, 군주에게 보내지 않아도 애 하나 키울 방법은 있을 거야. 최근에 최대감님하고 얘기를 나눴는데, 최대감 댁 노부인께서 병으로 쓰러져서 힘드시다고 하더라고. 그 말을 듣는데 마음이 안 좋더라. 참, 위왕이 정말 큰 죄를 지었지……”“근데 우문호 너참 이상해. 왜 정화군주가 혼인을 해야만 행복하다고 생각해? 꼭 남자와 같이 산다고 여자가 행복한 건 아냐.” 우문호가 말했다.“내 말 뜻은 그게 아니라. 다들 혼인을 하니까……”“왜 다들 한다고 해야 하냐고! 왜 그렇게 가부장적이야? 혼인은 원래부터 여자가 손해인 장사라고.”우문호는 그녀를 안았다.“그래, 내 생각이 짧았어. 나는 너와 혼인한 후에 너무 행복하니까. 정화군주도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지. 정화군주가 싫다면 혼인은 굳이 하지 않아도 돼.”“정말 행복해?” 원경릉이 고개를 들고 그를 쳐다보았다.“네가 있어 정말로 행복해.” 우문호가 웃으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열 달의 임신과 출산을 마친 후, 두 사람은 신혼 때보다 서로가 더 애틋했다. 원경릉은 그의 품 안으로 더 파고들어 그의 목에서 나는 향을 맡았다. “네 생각엔 정화군주가 고지를 죽일까?” 원경릉이 물었다.우문호는 그녀를 안고
원경릉은 우문호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만아를 불러서 물어봐야겠다.”“그래.”우문호가 밖으로 나가자 마침 서일이 마당으로 들어오고 있었다.“서일아. 가서 만아를 데리고 와.”“예!” 사실 서일은 일을 마치고 삼둥이를 보러 오는 길이었다. 우문호의 명령에 서일은 만아를 데리러 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만아가 우문호와 원경릉을 찾아왔다.“만아야, 흑마술에 대해 얘기해 보거라.” 원경릉이 물었다.“예? 태자비님 흑마술은 갑자기 왜 물어보십니까?” 만아가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네가 아는 대로 말해. 흑마술사는 도대체 뭘 하는 사람이냐?” 우문호가 물었다.“흑마술사는 남강의 성 대부(聖大夫)로 남강 최고 지위를 가진 사람입니다. 남강은 남과 북으로 나뉘지만 흑마술사는 남강 전체를 아우르는 사람이며, 흑마술사는 혼인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일단 흑마술사의 자리를 물려받으면 남강 내에 두 처녀를 물색해 양녀로 삼고 자신의 후계자로 선택합니다.” “그럼 남강의 흑마술사가 양녀로 삼은 처녀가 하나 죽었다는 걸 아느냐?”“태자비님, 쇤네는 잘 모릅니다. 남강을 떠나 산지 너무 오래됐습니다.” 만아가 답했다.“그럼 네가 말했듯, 남강의 흑마술사는 혼인을 할 수 없다는 건 변함없는 거지?”“예, 남강의 흑마술사는 신체를 온전하게 보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상속 자리를 잃게 됩니다.”“그럼 수년 동안 흑마술사가 되고 싶지 않은 후계자도 있었느냐?” 원경릉이 물었다.“쇤네, 정말 모르겠습니다. 흑마술사 내부의 일은 비밀로 전해져서 일반 사람들은 전혀 모릅니다. 설령 상속 자리를 거부했다고 하더라도 그 일은 흑마술사가 사적으로 해결하기에 일반 사람에게 공개되지 않습니다.”“흠, 그렇구나. 알겠다. 가보거라” 우문호가 말했다.“예!” 만아가 인사를 하고 나갔다.원경릉은 만아의 말을 곱씹더니 무언가 생각이 난 듯 우문호를 보았다.“혹시 고지가 흑마술사 자리를 상속받기 싫어서 도망간 게 아닐까? 그 사실을 안 안왕이 협박한 거지.”
고지와 목숨을 협상하는 정화군주“당신…… 당신 왜 여기 있는 거야? 뭘 하려는 건데?” 고지는 출산 후 바로 정신을 잃었다가 깨니 전신이 거대한 바위에 깔린 것처럼 아픈데 피곤에 배까지 고프다.하지만 그건 정화군주를 보고 경악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당신 전에는 나한테 묻지 않았어? 널 죽일 거냐고. 지금 답해 줄 수 있는데, 듣고 싶어?” 정화군주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고지는 몸이 딱딱해 지며 천천히 고개를 돌려 정화군주에게 미세하게 떨리는 입술로, “당신은 나를 죽일 수 없어.”정화군주가: “고지, 그럼 어디 이유를 말해봐, 내가 널 죽일 수 없는 이유를.”고지가 쇳소리로 허둥거리며: “원경릉이 그렇게 말 했어, 날 지켜줄 거라고, 날 남강(신장 남부지역)까지 호송해 줄거라고. 그러니 넌 날 죽일 수 없어, 네 입으로 반드시 원경릉 말을 듣겠다고 했잖아. 원경릉은 네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니까.”고지는 정화군주의 눈에 반짝이던 아득한 빛을 보지 못했다. 정화군주는 더할 나위 없이 평온한 얼굴로: “그래, 내가 전에 그렇게 말했지, 원경릉이 너를 구했고 내가 너를 죽이면 나는 그녀에게 목숨 하나를 빚진 셈이 되지.”“넌 날 못 죽여, 넌 날 죽일 수 없어!” 고지가 일어나 무거운 몸을 질질 끌고 옆으로 비키며, “아이 얼굴을 보아서라도 응? 내 아이를 원하지 않아? 아이를 가져가고 날 놔줘, 목숨만은 살려줘.”정화군주가 한숨을 쉬며, “난 정말 널 놔주고 싶지만, 널 용서해야 할 이유를 못 찾겠어. 생각해 봤어, 만약 아이가 태어난 후 네게 조금이라도 인간성이 남아 있으면 널 놔주자고.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자 네가 제일 먼저 한 일이 아이 목을 졸라 죽이려는 거였어. 고지, 난 널 죽이면 안되는 이유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아, 나도 두 손을 피로 물들이고 싶지 않아, 생명을 가장 귀하게 여기고 있어, 누구의 목숨이든 전부 소중한데 말이야. 내가 미쳐서 죽을 지경이었지만 널 용서 했어. 그런데 너는 왜 이렇게 사람을 실망시키니?”정화군주는
고지의 죽음고지는 사신이 이런 것이구나 느꼈다. 마음이 갈수록 황망해 졌다. 안왕은 조심성 있는 사람이라 고지와 접촉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고, 그러니 제아무리 머리를 쥐어 짜도 고지에게 별다른 정보가 나올 게 없다.고지는 한 사람이 떠올라서 얼른: “안왕과 선비족(鲜卑) 홍엽 공자(紅葉公子)가 빈번하게 내왕하는데 둘이 분명 은밀하게 모사를 꾸미고 있을 거야, 그리고 안왕이 선비족과 결탁해서 사람을 시켜 제왕을 죽이고 죄를 기왕에게 덮어 씌웠지. 기왕은 무고해. 기왕비를 찾아가서 선심을 사는게 어때, 기왕비가 너한테 잘해줄……”정화군주가 다 듣고 눈빛이 희미하게 빛나며, “고지, 네가 얘기한 거 난 하나도 관심 없어.”“그리고……” 고지는 겉으론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지만 속으론 울고 싶은 마음에 아무 말이나 주워섬기며, “위왕 일 듣고 싶지 안 그래? 위왕 마음 속엔 네가 있어, 정말, 그 사람 마음 속에…..”정화군주의 눈에 한줄기 증오가 스치며 살의가 떠올랐다. 그리고 비수의 싸늘한 날이 번뜩이는가 하더니 고자의 목을 긋고 지나갔다.정화군주는 애석하다는 듯: “고지, 넌 그 사람 얘기를 꺼내는 게 아니었어.”고지는 목이 차갑다는 생각에 무의식적으로 손을 목에 댔는데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고 피가 사방으로 뿜어져 나오자 경악해서 절규했지만, 목구멍이 잘려 나갔는지 목소리에 가슴에서 막혀버렸다.정화군주는 쓰러진 고지를 보니 두 눈은 마치 산산이 부서진 검은 눈동자처럼 빈 구멍만 휑하니 있다.고지가 바로 죽는 바람에, 정화군주는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빨리 죽어버릴 수 있나 생각했다.뒤를 돌아 비틀거리며 갔다.정화군주는 명월암에서 더이상 버틸 수 없었다. 피로 불문의 정토를 더럽히고 싶지 않았다.제 아무리 수많은 변명으로 자신을 위장해 봐도 사실 산꼭대기에서 고지와 마주친 그 순간 정화군주의 마음은 확실히 정해졌었다. 고지를 죽이겠다고 말이다.단지 중간에 망설였던 적도 있다.사식이가 다음날 명월암에 와서 본 것은 마당에 앉아 있는 정화군
고지의 죽음을 대하는 자세산이 커서 대충 진흙이 듬성듬성한 곳을 찾아 고지를 묻었다.사식이는 구덩이에 진흙을 메우고 아무렇지도 않게: “고지, 인과응보인 거야, 죽어서 가는 황천길, 돌아와서 귀찮게 할 생각하지 말아라. 네가 살았을 때 그렇게 나쁜 짓을 많이 했으니 죽어서 지옥에 가겠지, 돌아오고 싶어도 못 돌아올 거다. 다음 생에는 좋은 사람이 되라, 좋은 사람은 손해를 보더라도 마음은 편하거든.”사식이는 구명을 다 메우고 흙을 다지고 기억을 위해 위에 돌덩이 두개를 두더니 좀 피곤했는지 바로 봉분 위에 앉아 숨을 돌리며: “정화군주처럼 좋은 사람한테 어떻게 그렇게 모질 게 할 수 있어? 정화군주는 너한테 부탁까지 했는데, 사람의 탈을 쓰고 은혜를 모르면 죽은 사람과 다를 바 없지. 됐네, 잘 갔어.”말을 마치고 사식이는 삽을 메고 돌아갔다.정화군주는 방에서 물건을 정리한 뒤 고지의 침대와 침구는 전부 태웠다. 공기 중에 피비린내가 섞여서 났다.사식이가 도우려고 들어가서 태울 건 다 태운 정화군주에게, “돌아가시겠어요?”정화군주가 생각해 보더니, “같이 가서 그 아이 보고 싶어요.”“”그럼 앞으론 다시 여기 올 거예요?”“올 거야!” 정화군주가 눈을 내리깔고, “여기 사는게 익숙해서 너무 좋아, 불문은 날 필요로 할리 없지만 난 여기 의지해서 마음에 평정을 얻을 수 있어.”사식이가 한숨을 쉬고, “군주, 마음에 두지 마세요.”정화군주가 고개를 들고 사식이를 보니, 눈에 담담하고 온화한 웃음이 퍼져 사람을 산뜻하고 굳세게 해준다, “사식아, 난 괜찮아, 아마 최근 잘 지내진 못했지만 인생이란 것도 언제나 좋은 일만 겪을 순 없는 거니까, 좋은 날을 지냈듯 나쁜 날도 지낼 수 있을 거야. 살아있으니 됐어.” 사식이가 감동한 얼굴로, “그래요, 군주가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다니 잘됐습니다. 나쁜 날도 분명 지나갈 겁니다.”“괜찮아,” 정화군주가 밖으로 나가, “인생은 원래 수행인 걸, 내가 좋지 않은 일을 만났지만 내가 제일 비참한 사람이
정화군주의 결정사식이와 만아가 얼른 달려와 정화군주를 부축했다. 원경릉은 정화군주 마음이 과도하게 지쳐서 쓰러졌음을 알고 사랑채로 보내 좀 자게 뒀다.그리고 만아를 최씨 집안에 보내 걱정하지 마시고, 대신 일단은 오지 마시고 약한 모습을 드러낸 채로 좀 두자고 했다. 최씨 집안 사람이 오면 정화군주는 또 강한 척 할 테니 말다.하지만 정화군주와 손왕비는 사이가 좋아서 손왕비를 오라고 했다.손왕비가 와서 원경릉이 상황을 얘기하자 손왕비는 심지어 통쾌해 하며, “잘됐어, 잘 죽였어요, 죽어 마땅하지.”“이미 죽은 사람이니, 그만 탓해요.” 원경릉이 말했다.손왕비가 고개를 끄덕이며, “알아요, 이 일은 아무에게도 얘기 안 할 거예요. 여기 사람들도 다 비밀 시킬 수 있죠?”“이 일을 알고 있는 건 사식이와 만아 뿐이에요, 두 사람 모두 비밀을 지킬 겁니다.” 손왕비가 비록 말이 많지만 정화군주에 관한 일은 선을 지킨다는 것을 알기에 그녀가 알아도 걱정 없다.손왕비는 진짜 한시름 놨다.전에 정화군주가 고지를 거뒀을 때 정화군주가 너무 마음이 좋아서 매정하지 못하다고 했는데, 고지 같은 사람을 죽이지 않고 어떻게 정화군주를 구할 수 있겠어?고지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다시는 누구도 해치지 못할 거란 생각에 안심이 됐다.정화군주는 깨어나자 손왕비와 원경릉이 침대 곁에 앉아 다정한 눈빛으로 보고 있는 것을 봤다.정화군주의 얼굴에 창백한 미소가 떠오르며 따스한 눈빛으로, “다 있네.”손왕비의 눈이 촉촉하게 젖어서, “응, 막 왔어. 정화(靜和)야, 고생 했어.”정화군주가 더 웃으며, “고생했다고 하지 마, 내 자신도 그렇게 생각 안 해, 앞으로 잘 되겠지.”손왕비는 더 얘기하고 싶었지만 원경릉이 그녀의 손을 누르고 웃으며: “군주 말이 맞아요, 앞으로 더 좋아질 거예요.”손왕비가 작게 한숨을 쉬며, 원경릉의 눈짓을 보고 이번엔 뭔가 용기를 북돋아 주는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그럼, 앞으로 잘 될 거야.”정화군주가 기운을 내서, “아가를 보러
밀려 드는 선물 공세정화군주는 사람을 시켜 원경릉에게 편지를 한 장 보냈다.경성에 가족과 친구들은 누구나 자신이 고통의 바다에 빠졌다고 생각하고 보호해주려고 하는데, 자신은 그렇게 유약하지 않고, 만약 인생이 일종의 수련 같은 거라면 밖으로 나가 수련하며 자신의 목숨을 헛되지 않게 하고 싶다고 했다.원경릉은 이 편지를 읽고 사실 굉장히 기뻤다.비록 밖으로 나간 그녀가 고생길이 훤하다 해도 자신의 방식에 따라 스스로 인생길을 갈 수 있고 경성의 책임과 굴레를 벗어 던지는 건 역시 좋은 일이다.우문호는 소홍천에게 충이에게 가족을 찾아주도록 했다.소홍천이 금방 부모를 찾아냈는데, 무주(撫州)에 사는 지주로 결혼한지 몇 년 동안 자식이 없어 부인을 데리고 경성 의원에 와서 일 년이 넘게 치료 중이라고 했다. 만약 아이를 데리고 무주로 돌아가면 대외적으로 부인이 낳았다고 얘기할 수 있었다.소홍천이 원경릉을 안심시키며 이 지주는 소홍천이 몇 년이나 교제하며 알고 지낸 사이로 성품이 강직하고 인자할 뿐 아니라 쌓은 부로 마을을 이롭게 하고 인근에 크게 선을 베푸는 사람이라고 했다.원경릉은 마음에 들었다. 무주는 경성에서 거리도 멀지 않아 대략 이틀 길로 사람을 보내 살피기도 좋아서 동의했다.소홍천이 문하의 제자에게 명령해 가서 살펴볼 수 있고, 거기다 우문호도 소홍천이 찾은 사람이면 절대 믿어도 좋다고 보증하는 바람에 원경릉도 안심했다.충이를 보내고 나니 만두, 경단, 찰떡, 우리 떡 꼬마들 한달 축하연이 얼마 남지 않았다.각 가문에서 선물을 미리 보내기 시작했다. 이유는 한달 축하연 당일은 손님이 너무 많고 정확하게 ‘마음’을 전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또 선물을 미리 보내는 이유는 선물 사이즈가 크다는 뜻으로, 떡 꼬마들의 한달을 축하하기보다 우문호가 태자로 책봉된 것을 축하하는 쪽이라고 볼 수 있다.뭐 어떤 목적으로 보낸 선물이든 며칠간 막을 수 없는 기세로 밀려들었다.선물을 받기에 손이 부끄럽고 어쩌고는 이미 중요치 않게 되었고, 탕양이 특
우문호의 막강 멤버우문호가 탄식하며, “사실 나중에 비자금 금고가 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진정정이 곧 올 거잖아? 내가 너무 궁상맞게 있을 수는 없다고.”“그건, 그렇지요.” 탕양이 태자와 태자비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고 있다.초왕부는 내일 큰 일을 앞두고 일정대로 예행 연습을 시작했다.우선 새벽 자시 전후에 아이들의 배냇머리를 밀어주는데 이것을 ‘한달 축하’라 한다. 그 다음으로 우문호가 원경릉과 우리 떡들을 데리고 황실 종묘에서 향을 올리고 절을 한 뒤, 태상황, 태후, 황제, 황후에게 절을 한다.이 모든 것을 끝내고 정후부로 돌아가 인사를 올리는데 이것을 ‘한달 근친’이라 한다. 갔다고 치고 축하금과 축하물품을 받아서 폭죽을 터트리며 초왕부로 돌아와 각양 각처에서 온 손님들을 맞이 한다.정후부에도 주연 자리를 마련해 정후부의 친인척과 친구를 초대하는데 이 일은 원경릉이 일찌감치 사람을 보내 할머니와 상의했고 돈은 원경릉이 냈다.할머니가 가지고 있던 돈은 정후가 다 탕진해서, 체면이 설 만큼의 연회를 베풀 자금이 없다는 것을 원경릉은 알고 있었다.노마님은 거동이 불편하시지만 원경릉이 전에 출산용으로 준비했던 휠체어를 할머니께 드리고, 만 한달 산후조리가 끝나기만 하면 정성껏 물리치료는 물론, 어떤 수단을 쓰던 정후를 쫓아내서 정후부를 서서히 회복하시킬 것이다.초왕부의 인력이 부족해서 원래는 손왕부나 제왕부에서 사람을 빌려오려고 했으나 명원제가 허락하지 않고, 이틀 전에 궁중 사무를 담당하는 총책임자와 몇 십 명을 파견해 일을 돕게 했다.그리고 날짜 안에 일을 마쳐야 하고, 반드시 궁중의 법도에 따라야 했다.이렇게 하는 것이 정식이다.원경병은 하루 전에 와서 원경릉 곁에 있는데 왜냐면 내일 존재감이 큰 원경릉의 곁에서 말벗이라는 주요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서다.말벗을 무시해서는 안되는 것이, 원경릉은 궁중의 법도를 잘 모르는 태자비인 데다 내일은 매우 격식을 차린 연회로 공주와 귀부인들이 모두 올 것이 분명하다. 말벗이 손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