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혹시 난간이 느슨해진 것은 아니냐?”우문호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난간을 흔들어보았지만, 침상에 고정된 난간은 꿈쩍하지 않았다.원경릉은 순간 머릿속의 주지의 말이 떠올랐다.‘혹시 유전……?’만약 실제로 뇌에 약물을 주입해 변이가 생겼다면, 이는 삼둥이에게도 유전될 수 있다. 그러나 유전됐다고 하더라도 기껏해야 뇌세포의 활동성이 좋거나 많은 정도, 또는 지능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것뿐일 것이다. ‘근육이나 신체능력 방면은…… 그래, 어쩌면 영향이 있었을 수도 있겠어.’대뇌는 온몸을 관할하는 곳으로 대뇌의 개발은 인체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준다.“왜 그래?” 우문호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원경릉을 보고 물었다.“별일 아니야. 그냥 이 상황이 안 믿겨서.” 원경릉은 웃었다.“나도 믿기지 않아. 하지만 우리 삼둥이들은 일반 아이들보다 똑똑하고 힘이 셀 거야. 어쨌든 부처님 오신 날에 태어난 아이들은 매우 특별하거든.” 우문호가 말했다.“응, 그래.” 이튿날, 원경릉은 우문호가 외출하자마자 유모 상궁을 시켜 삼둥이를 방으로 데리고 오라고 했다.그녀는 세 아이의 혈액, 심장, 맥박을 모두 검사했고 결과는 모두 정상이었다.‘뇌파를 스캔할 수도 없고, 겉으로 봐서는 어떤 이상이 있는지 알기 힘드네.’원경릉은 아이들이 걱정됐다. 그녀는 자신의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이 좋지 않았다. 그녀는 삼둥이들이 평범하게 자라길 바랐다.그제야 그녀는 이 과제를 연구하기 시작한 것을 후회했다. ‘내가 왜 이런 약을 개발했을까?’원경릉은 점점 마음이 불안해졌고, 하인을 불러 주지를 모셔오라고 했다.주지는 원경릉의 부름을 예상했다는 듯 그녀를 보자마자 종이 한 묶음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그 종이에는 여러 가지 복잡한 공식이 적혀있었는데, 그녀에게는 아주 익숙했다.“아이가 선배의 변이 유전자를 물려받았는지 알고 싶다면, 이 공식들을 이용해 계산해 보세요.” 주지가 말했다.“왜 그렇게 추측하는 겁니까? 주지는 지금 내
“그래요, 이 연구로 세상을 구해봅시다.” 원경릉이 억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선배의 연구를 부정할 필요 없어요. 이제는 투입량만 파악하고 통제한다면 인류의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주지가 말했다.과학자는 언제나 마음속에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웅대한 포부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물론 원경릉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녀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연구가 필요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인간은 이미 똑똑하다. 만약 똑똑한 인간이 더 똑똑해진다면 그에 따라 야망도 커질 것이고, 그렇다면 세상이 어떻게 되겠는가?주지를 돌려보낸 후 원경릉은 삼둥이를 빤히 보았다.“너희가 지금 내 말을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한 가지만 꼭 기억해. 항상 겸손해야 하고 특이한 행동은 하지 않는 게 좋다.” 원경릉이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삼둥이들은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동그랗게 벌린 채 주먹을 꼭 쥐고 있었다. 그 순간 만두의 엉덩이에서 ‘부웅-‘ 소리가 나더니 만두가 씩 웃었다.옆에 있던 경단이는 멍한 표정으로 만두를 보았고, 찰떡이는 ‘으앙’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원경릉은 아이들을 보니 걱정이 눈 녹듯 사라졌다. ‘지금 아이들의 행동을 보아하니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는 것 같구나.’설사 아이들이 조금 더 커서 돌발행동을 한다고 해도 세 아이 모두 원경릉의 자식이며, 원경릉이 단속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원경릉은 유모 상궁에게 아이들을 항상 예의주시하라고 하며, 조금이라도 이상한 행동을 할 경우에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고 반드시 자신을 찾아와 보고하라고 했다.“태자비, 혹시 아이들이 제천대전에 태어나서 특출난 능력을 타고났다고 생각하십니까?” 유모 상궁이 물었다.원경릉은 상궁의 물음에 대답 대신 미소를 보였다. 유모 상궁은 아이들을 24시간 내내 돌보는 상궁으로 만약 아이들이 이상한 행동을 한다면 제일 먼저 알아차릴 사람이다. “그런 것 같네요. 호국사 주지에게 물어보니 불력(佛力)을 타고났을 수도 있다네요. 그렇기에 이 일은 절대 다른 이에게 알려서는 안됩
원경릉이 우문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너한테 할 말이 있어. 일단 차분하게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 중간에 말 끊지 말고.” 원경릉이 말했다.“너 설마 이미 알고 있었어? 나는 비밀을 지키고 싶었는데.” 우문호가 의아해했다.“무슨 비밀?”“응……? 몰랐어? 보아하니 몰랐구나?”“무슨 소리야? 먼저 말해.” 원경릉이 물었다.우문호는 얼굴이 발그레해지더니 눈이 반달 모양이 됐다.“정정(靖廷)이 왔어.”“누가 왔다고?” 원경릉은 실눈이 된 우문호가 못마땅했다. “정정!” 우문호는 크게 대답했다. 그의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 보였다. 마치 첫사랑을 기다리는 소녀의 얼굴이랄까…… “정정? 그 사람이 왜 와?” 원경릉의 머릿속에는 종이 울렸다.‘대주(大周)의 진정정(陳靖廷)이 왜 온다는 거지?’우문호는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옷깃을 바로 세우고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태자 책봉 축하 자리에 참석하러 오는 거지! 다른 사람은 오든 말든 필요 없고, 정정은 꼭 와야 해.”원경릉은 눈을 가늘게 뜨고 우문호를 보았다.“오든 말든 필요 없는 다른 사람이 설마 나야?”“무슨 소리야! 다른 사람에 네가 왜 포함돼?” 우문호는 정정을 만날 생각에 흥분이 되는지 귀까지 빨개졌다.원경릉은 흥분한 우문호를 보고 순간 위기감을 느꼈다. ‘저러는 걸 보니, 정정이 오면 잘 감시해야겠어. 혹시 알아? 정정이 대주로 가자고 하면 홀라당 따라가 버릴지?’ 지금 우문호의 꼴을 보니 틀림없이 만사 다 내팽겨두고 짐 싸서 정정을 따라 대주로 갈 판이었다.“근데 정정 부인이 임신을 했다고 했잖아? 부인은 두고 온 거야?” 원경릉이 물었다. “부인도 같이 와.” “부인도 온다고? 가만, 지금 개월 수로 따지면 7개월이 됐을 텐데, 그 몸을 이끌고 온다고?”“무슨 상관이야.” 우문호는 정정의 부인에게는 관심 없었다.원경릉은 순간 정정 부인도 자신과 같은 생각임에 틀림없다고 여겼다. 정정도 우문호를 만날 생각에 설레고 있을 것이다
원경릉은 우문호의 눈을 보았다.“내가 예전하고 많이 다르다고 하지 않았어? 너도 솔직히 느꼈잖아. 왜 그런지 알고 싶지 않아?” 원경릉이 말했다.“전하고 차이는 있지만, 사람이 변할 수도 있는 거고……” 우문호는 그녀의 눈을 피하며 “이 얘기는 그만하고 나가서 산책이나 하자.”라고 말했다.원경릉은 똑똑한 우문호가 그녀의 변화에 대해 모를 리 없다고 생각했다.“우문호, 난 밖에 나가지 않을래. 하던 말을 마저 하고 싶어.” 원경릉이 말했다.“그럼 네 말을 듣기 전에 한 가지만 묻자.”“……”“네가 할 말이 우리를 헤어지게 할 수도 있어?” “왜 그렇게 생각해? 당연히 우리가 헤어질 일은 없지!” 원경릉이 놀란 표정으로 답했다.“정말 그럴 리 없다는 거지?” “응! 당연하지. 우리가 왜 헤어져, 너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원경릉은 급 피곤해졌다. 우문호는 원경릉을 보고 천천히 입을 뗐다.“사실 전에 탕양과 함께 너의 변화와 네 약상자에 대해 여러 번 논의를 했었어.”“그래?”“응, 논의 끝에 네가 요괴거나 도깨비라는 결론을 내렸다.”“뭐 요괴? 도깨비?” 원경릉은 손을 뻗어 우문호를 잡고는 “왜 선녀는 안 되는 거야?” 라고 물었다.우문호는 그녀를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경릉아, 나도 눈이라는 게 있잖아. 선녀랑 너는…… 어울리지 않아.”“하, 그래. 알겠다고!” 원경릉이 화를 냈다.“하지만, 탕양이 이 일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더라. 말을 하고 나서 큰 화를 입을 수 있다고.”“큰 화를 입는다고? 말도 안 돼.”“나는 탕양의 말을 완전히 신뢰하지 않아. 네가 요괴건 도깨비건 믿어도 그만 안 믿어도 그만 아니냐? 난 그냥 너와 함께 이렇게 재밌고 즐겁게 살면 그만이다. 난 진실을 알고 싶지도 않고 모험을 하고 싶지도 않아.”우문호는 원경릉을 끌어당겨 품에 안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경릉아, 내가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네가 약상자를 꺼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어. 내 생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
“죽은 시체에서 영혼만 빠져나온 거야?” 우문호가 물었다.원경릉은 우문호의 말에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어찌 보면 우문호의 말도 맞는 말이라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맞지? 네 죽은 영혼이 남의 몸 안으로 들어간 거잖아. 어쩐지 그럼 네 원래 얼굴은 지금 이 모습이 아니라는 거네? 어쩐지 생긴 게 영……”우문호는 마치 무거운 짐을 벗어던진 것처럼 홀가분해 보였다. 그는 속으로 원경릉이 요괴나 도깨비가 아닌 것에 감사했다. 만약 요괴나 도깨비였으면 언제든 그들의 세계로 도망갈 수 있었겠지만, 죽은 사람의 영혼이라면 도망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원경릉은 의외로 쉽게 받아들이는 우문호의 모습에 어리둥절했다. “아까 무슨 박사(博士)라고 했지? 차(茶) 박사? 술 박사? 차를 끓이는 솜씨를 보아하니 차 박사 맞지?”“박사는 학문이 뛰어난 사람을 가리키는 말 아니야?”“그건 그렇지만, 학문이 뛰어난 박사들은 다 남자인데…… 설마 너 혹시 남자야? 그래 이상하다 했어! 천문 지리를 알고, 태양의 흑점을 논하더니…… 원래 남자였구나!” 우문호가 기겁했다.“넌 내가 어떤 모습이든 사랑해 주는 거 아냐? 남자면 뭐 어쩔 건데?” 원경릉이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거짓말하지 마. 하나도 안 웃겨.” 우문호가 정색하고 원경릉을 보았다. “치, 아쉽게도 난 남자가 아니야. 나는 원래부터 여자였고, 현대에서는 의사이면서도 천문학도 잘 알았어.”“휴,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네.” 우문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근데, 내가 정말로 남자였다면 어땠을 것 같아?” 원경릉이 물었다.“상상하기도 싫어.”“왜 한 번 생각해 봐.”우문호는 눈을 감으며 “너를 들어다가 벽에 던져버렸을 수도?” 라고 말했다.“너무해.”“네가 남자인 게 더 너무한 일 아니야?” 우문호가 놀란 가슴을 쓸었다.“치, 말이라도 예쁘게 하지!”우문호는 원경릉을 보며 “근데 삼둥이에게 뭔가 이상한 게 있다며, 정확히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라고 물었다.“지금은 나도
“그럼 우리 삼둥이들이 모두 천부적인 마법의 힘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거네? 마법은 네 영혼에서 나온 것이고, 넌 그럼…… 삼둥이들의 영혼의 대장이라는 건가?” 우문호가 물었다.원경릉은 깜짝 놀라 그를 빤히 보았다. 그녀는 문득 이 몸이 내 것도 아닌데, 어떻게 삼둥이들에게 유전이 된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그럼 내 영혼이 이 몸으로 들어오면서, 내가 약상자를 조종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원주 원경릉의 원래 뇌에도 영향을 줬다는 건가? 아니면 내 원래 뇌파가 원경릉의 뇌파와 연결되면서 원경릉 본체에 영향을 끼친 건가? 그래서 삼둥이들에게도 유전이 된 건가?” 원경릉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네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저 삼둥이들이 건강하게만 자라면 소원이 없겠다.” 원경릉은 태연한 우문호의 표정에 마음이 놓였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답답한 느낌이 있었다. “내 얘기를 다 들었잖아. 뭐 또 궁금한 건 없어?”“궁금한 거?”“응, 내가 어디서 왔는지, 어떤 집안에서 태어났는지 가족은 몇 명인지 그런 거.”“너 가족이 있어?”“가족이 없는 사람도 있어?” 원경릉이 웃었다.“그럼 네 가족은 북당의 어디에 살아? 무얼 하는 집안이야?”“우리는 대대손손 의사 집안이고, 모든 가족은 대주로 이사를 갔어. 기회가 되면 한 번 보러 가자.”원경릉은 진실 반, 거짓 반으로 아무 말이나 했다.“그래!” 우문호가 말했다. 두 사람은 진실을 모두 털어놓은 후 서로 눈을 맞추며 웃었다. 그러나 원경릉의 마음속에는 삼키지 못할 정보가 하나 더 있었다. 만약 지금 우문호에게 말한다면 그는 정보 과부하에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원경릉이 그에게 더 궁금한 게 없냐고 물었을 때, 그가 묻지 않았으니 원경릉이 나서서 자신의 얘기를 주절거릴 이유가 없었다. 잠시 후, 우문호가 갑자기 그녀를 보며 “나 궁금한 거 생겼어.” 라고 물었다.“응. 말해.”우문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정정이 오면, 그를 우리 왕부에서 지내게 하면 안 될까?
탕양은 우문호와 원경릉 사이에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하고 밖에서 우문호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태자, 혹시 태자비께 말씀드렸습니까? 태자비께서는 뭐라고 하십니까?”우문호는 우울한 얼굴로 “말할 수 없어. 정정은 어디에 있어? 술집인가? 술집으로 가자.”라고 말했다.탕양은 급한 마음에 “태자, 왜 그러십니까? 말씀을 좀 해보세요.” 라고 말했다.우문호는 걸음을 멈추고 탕양을 보았다.“그녀가 말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지 말라고 했던 사람이 누구였더라?”“태자비께서 말씀을 하시긴 한 모양이네요? 뭐라고 하셨습니까?”“휴, 태자비가 자기는 시체에서 나온 영혼이라고 하더라고. 그러더니 자기가 의학 박사라며, 인간의 힘으로는 형용할 수 없는 마법 같은 게 있다고 했어. 난 처음부터 끝까지 열심히 들었다. 중간에 웃음이 나오려고 하는 것도 참고 말이야. 근데 열심히 들은 결과가 이게 뭐야? 정정을 왕부에 데리고 오면 안 되냐고 물었더니 나보고 꺼지래! 여자의 마음이란 참 알다가도 모르겠어!”탕양은 한숨을 내쉬며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합니까? 그럼 대장군을 모셔 술집으로 갈까요? 모처럼 오셨는데……”라고 말했다. “걱정 마, 내가 방법을 생각해 볼 테니.” 우문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이를 꽉 깨물었다. 그는 정정을 왕부에 머물게 하기 위해 혼심의 힘을 다할 예정이었다.*명월암. 고지는 아침 일찍 배가 아팠다. 출산 예정일이 아직 남아있었기에 기상궁과 정화군주는 그녀가 음식을 잘못 먹어 탈이 났다고 생각했다. 점심때가 되자 자궁 수축 증상과 비슷한 통증이 나타났다. 조산이었다. 누구도 고지가 이렇게 빨리 아이를 낳을 줄을 몰랐기에 산파를 구하지도 않았다. 정화군주는 무우산을 들고 와 고지에게 먹이고는 기상궁에게 고지가 먹을 죽을 준비하라고 했다. 고지가 사는 방은 어둡고 습해서 곰팡이 냄새가 났는데, 봄이 되어 날씨가 풀리자 그 냄새가 말도 못 하게 심해졌다. 고지는 고개를 돌려 정화군주를 보았다. “내가 아이를 낳자마자 나를 죽일
“왜 태자비를 믿지 않지?” 정화군주가 고지를 노려보았다.“내가 미쳤다고 그 여자를 믿어? 나는 너와 태자비 둘 다 믿지 않아!”“그래 믿지 않아도 좋아. 하지만 너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잖아?” 정화군주는 말을 마치고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기상궁이 안으로 들어갔고, 정화군주는 밖에 앉아 고지의 비명소리를 들었다. 봄의 기운이 물씬 풍기는 햇살을 따스했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나뭇잎 하나가 그녀의 콧잔등에 떨어졌다. 이 세상에 한 생명이 태어나는 것보다 경이로운 것은 없다. 고지가 낳은 아이는 앞으로 많은 기쁨과 슬픔, 만남과 이별을 겪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겪을 수 있도록 이 세상에 태어난 것 자체가 축복이다. 잠시 후 안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가 뚝 끊어졌다. 안에 있던 기상궁은 “미쳤어! 그 아이는 네 딸이라고!” 라며 소리를 질렀다. 정화군주가 빠른 걸음으로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고지가 피가 줄줄 흐르는 몸으로 갓 태어난 아이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광기가 보였다. “내 손으로 직접 죽일 것이야. 정화군주 이것 보라고! 내가 너 대신 복수를 했으니 내 목숨을 살려줘!”아기의 얼굴은 순식간에 새파랗게 변했다. 정화군주는 바닥에 놓인 작은 의자를 들어 고지의 머리를 세게 내리쳤다.머리를 맞은 고지는 그 자리에 쓰러졌고 그 틈에 기상궁이 아이를 안아들었다.“세상에, 저런 모진 어미가 어디 있습니까?” 기상궁이 분노했다. 기상궁은 재빨리 아이를 거꾸로 매달아 엉덩이를 두 번 두드렸다. 그제야 비로소 아이가 울음소리를 냈다. 정화군주와 기상궁은 그제야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그들은 미리 받아 둔 따듯한 물로 아이를 씻겼다. 여자아이의 몸집은 아주 작았으며 등에 푸른 반점이 있었다. 피부가 어찌나 얇은지 온몸의 혈관이 투명하게 보였다. 달도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태어난 아이는 송충이처럼 정화군주의 품에 안겨있었다.정화군주는 아이를 보며 마음이 아팠다. 기상궁은 조용히 정화군주의 어깨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