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상황의 선물서일이 한 손을 들어 올려 사람을 잔뜩 부른 뒤 상자를 열었다.모든 상자를 열고 우문호 앞에 늘어놓자 우문호는 입이 딱 벌어져서 몹시 상기된 목소리로, “하나님 맙소사!”“하나님 맙소사!” 탕양과 서일도 경탄을 금치 못하고, 그렇게 내성적인 탕양조차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것이 작금의 황실에, 태상황이, 상상밖에 이렇게 단순하고, 조악하며, 평범하다 못해 시대에 뒤떨어진 일을 하셨단 말인가?30개 상자 중 27개는 전부 찬란한 황금이었다.“국고의 황금을 털어 오신 거 아냐?” 우문호가 경악하며 말하더니, 곧바로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탕양에게: “어서, 무게 좀 재 봐.”탕양이 안에서 하사품 명세서를 가져오더니: “왕야, 여기 써 있습니다. 황금 십만 냥입니다.”우문호가 손가락을 꼽으며 중얼중얼 계산해보더니, “금 한 냥이면 은 열 냥이고, 은 한 냥이 엽전 10꾸러미, 엽전 1꾸러미는 엽전이 1,000개니까 여기 있는 게 얼마야?”서일이 지그시 우문호를 보고, “왕야, 황금 10만냥은 그냥 황금 10만냥입니다. 만약 은자로 바꾸시면 은자 100만냥이지요.”“맙소사, 쟤들 이제 막 태어났는데 벌써 부자 된 거야?” 우문호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미묘한 표정으로, “어마마마께서 그러셨는데 내가 태어났을 때 태상황폐하께서 나에게 금으로 된 무병장수 목걸이 하나 주셨다 던데.”우문호는 그 목걸이를 지금도 품에 간직하고 있다.꺼내서 황금 상자 위에 올려 두니 아이고 보잘 것 없네!너무 하찮아 보여서 울고 싶은 지경이다. 왜 이렇게 차이가 커?탕양이 위로하며: “됐어요 왕야, 어린 시절의 자신과 사랑 싸움하지 마세요. 태상황 폐하께서 중시하시니 잘된 일 아닙니까, 얼마나 좋은 일이예요.”“저 세 상자는 뭘까?” 우문호가 마음을 추스르고 다가가서 보는데 세 상자의 색이 다르고 상자에 구멍이 몇 개 있는데 통기구 같고 다른 상자들보다 약간 크다. “열어 보아라.”“아마도 황금일 겁니다.” 탕양이 사람을 시켜
이름은 어떻게 짓지?국고의 은자는 궁중에서 함부로 움직일 수 없고, 함부로 쓸 수도 없다.“몰라, 나도 이상해 하던 참이야.” 우문호가 말했다.금 10만냥이면 은 100만냥이다. 원경릉은 순식간에 자신이 갑부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원경릉이 주판을 튕겨보니 지금 자금도 충분하니 산후조리가 끝나는 대로 의대 건축을 시작해야 겠다.“맞다, 이름은 정했어?” 원경릉이 물었다,“아직.” 우문호도 실망해서, “속도가 너무 안 나네, 전례에 따르면 예부에서 일찌감치 좋은 이름을 몇 개 지어서 황조부에게 고르시라고 하는데, 태어나서 하루가 지났는데도 아직 이름도 못 지었어.”원경릉이 조금씩 몸을 움직여보니 두 다리가 쑤시다. 우문호가 얼른 안마해주는데 전에 주지스님이 얘기하길 그 뭐냐, 출산 후에 다리를 ‘마사지’해 줘야 한다고 했다.“차라리 우리가 먼저 애들 이름을 지으면 어때?” 원경릉이 말했다.우문호는 찬성했지만 작명 센스가 부족해서 난감하다.이름을 짓는 건 시를 쓰는 것만큼 어렵다.우문호가 원경릉을 보고 부드럽게: “천신만고 끝에 낳은 아이들이니, 이름 지을 권리는 너한테 줄게, 나는 네가 짓는 대로 따를 게.”원경릉이 기꺼이 받아들이고 아가들을 안고 오라고 했다.원경릉은 아직 앉을 수가 없어서 유모가 반쯤 무릎을 꿇고 아이들을 보여줬다.세 아가는 마치 이 사람이 자신들을 낳아주고 길러줄 엄마라는 걸 아는 듯이, 순하게 반짝이는 눈동자를 또록또록 굴리며 작은 주먹을 꼭 쥐고 있다.원경릉이 이 모습을 보고 눈가가 붉어졌다. 이 아이들이 뱃속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자신을 힘들게 했던 세 녀석이다.원경릉, 그녀는 이제 아들이 셋 있다.일년 전의 원경릉에게 누군가 ‘앞으로 일년 후 당신은 세 아들의 엄마가 됩니다.’ 하면 경찰에 신고했을 것이다.원경릉이 곧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얼굴을 한 것을 보고 우문호가 다독거리며: “이름이 생각 안 난다고 울 것까지는 없어, 서두르지 마, 나중에 정언이한테 지어 달라고 하면 돼, 정언이는 글을 많이
세 쌍둥이 이름이 설마?우문호가 서재로 가니 마침 서일이 종이 한 장을 들고 나가다 마주쳤는데 입으로 구절을 외우느라 하마터면 우문호와 부딪힐 뻔 했다.“왕야, 깜짝 놀랐습니다. 서재 가십니까?” 서일이 물었다.“응, 뭘 그렇게 중얼중얼 외우고 있어?” 우문호가 서일이 주변에 신경 안 쓰고 경솔한 모습을 질책했다.서일이 헤헤 웃으며, “희상궁이 저한테 식단 적어서 주방에 가져다 주라고 해서요, 있다가 각 집에 답례품 보낼 때 거렁뱅이들 불러 식혜에 떡이라도 먹여서 기쁨을 나누자고 하시네요. 식단 쪽지 써서 주방서 준비시키게요.”“가!” 서일이 웬일로 멀쩡한 일을 한다니 말리지 않고 얼른 쫓아 보냈다.“에 그럼 소신은 가보겠습니다.” 서일이 나갔다.우문호가 서재에 들어가니 탁자 위에 과연 종이가 한 장 놓여 있는데 얼핏 보니 삐뚤빼뚤 한 줄 써 있는게 한참을 들여다보고 서야 겨우 알아볼 수 있었다, “만두 경단 찰떡? 아명이 이렇게 간단한 거였어? 그럼 나도 할 수 있었네.”우문호는 아무리 봐도 글씨가 조잡해서, 다시 한 장 써서, “하지만 원 선생은 역시 머리가 좋아, 만두는 경단보다 크고, 경단은 찰떡보다 크니까 대중소가 딱 들어 맞네. 만두는 첫째, 경단은 둘째, 찰떡은 셋째. 딱 이야!”우문호가 다 쓰자마자 아직 이른 시각인데도 얼른 아명을 가지고 입궁했다.탁자 왼쪽 귀퉁이에 백옥지(白玉紙)로 화선지 한 장을 눌러 놓았는데, 위에 “공청(空青), 남성(南星), 인동(忍冬)” 6글자가 써 있다.지금 서재에 이 종이 한 장만 덩그러니 무척이나 고독해 보인다.공청, 남성, 인동 세가지는 전부 한약재로 원경릉이 머리를 쥐어짜서 생각해 낸 것이다. 앞으로 의대를 열어 세 쌍둥이가 자기와 같이 의학의 길을 가되, 전통 한의학을 포기하지 말라는 의미로 이것을 세 쌍둥이의 아명으로 정했다. 아이들이 의학의 길을 걷길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보낸 아명을 받아 들고 태상황이 쭉 훑어보더니 상당히 불쾌한 얼굴인데 우문호가: “이건 원 선생이 붙인 이름
아명이 기가 막혀우문호는 진심을 다해 예를 취하며 감사했다.문득 태상황이 하사한 황금이 떠올라 상선을 한쪽으로 끌고가서, “맞아, 상선, 한가지만 물어보세, 태상황 폐하께서 오늘 원 선생에게 하사한 10만냥은 어디서 난 거야? 국고에서 가져온 건 아니겠지?”상선이 푸하하하 웃으며, “그럴 리가요? 태상황 폐하께서 어찌 국고에서 금은을 가져다 왕비에게 하사 하시겠습니까? 그건 전부 폐하 본인 것입니다, 기억 안 나십니까? 퇴위하실 때 스스로에게 금광을 하나 내리셨습니다.”“아? 그런 일이 있었나?” 우문호가 경악하며 몰랐다고 했다.상선이: “예, 그런 일이 있었지요, 금광과 철광 다 있습니다. 태상황 폐하께서는 경성에 전장(錢莊)도 열어서 전부 사람을 시켜 살피고 있는데 매일 막대한 수입이 들어오고 있지요.”우문호는 심장에 약간 무리가 가면서, “그러니까 황조부가 여전히 부자란 말이지?”“부자 중에 부자가 아니고 뭐겠습니까?” 상선이 말했다.우문호가 구시렁거리며: “실례했네, 실례했어, 전에 황조부에게 노인네가 가난하네, 우리 황실은 왜 이렇게 가난하냐 했거든.”사실 우문호가 전공을 세웠을 때 상금을 받았는데 황금 오백 냥을 태상황에게 주고 노인네 생활비에 보태라고 했거든.궁에서 사용하는 돈은 항상 빠듯해서 태후가 매년 전례로 받는 게 은 삼천 냥에 태상황도 비슷하다. 비록 자기 돈 쓸 일이 없다고는 해도 여기 저기 뇌물을 주고, 상을 내리고 하는 것도 전부 돈이다.적어도 태후와 어마마마 쪽은 소씨 집안에서 매년 적지 않은 금액을 대 주고, 황후도 매년 주씨 집안에서 은자를 가져와서 가끔 아바마마를 원조해줄 정도지만 어쩔 수 없이 궁은 늘 돈이 쪼들린다.우문호는 어릴 때부터 집안이 가난하다고 생각해 와서 자신이 재벌 3세라는 걸 전혀 몰랐다.우문호는 구름위를 걷듯 기쁨에 들떠 출궁했다.상선이 입을 가리고 몰래 웃으며, 들아가서 이 일을 태상황에게 알렸다.태상황이 다 듣더니 화들짝 놀라며, “과인이 가난해? 이놈이 제대로 보지를 못 했
이름이 바뀐 걸 안 원경릉하지만 이거든 아니든 아명은 이렇게 정해졌다.초왕부 사람들은 내일이 태어난 지 삼일 째 되는 날이라 ‘삼일 목욕’ 준비에 바빴다.삼일 목욕은 대길(大吉)의 예식으로 이 일을 위해 태후가 미리 기별을 넣었으므로 황실의 친인척은 시간이 있던 없던 반드시 가야 했다.세시풍속을 대략 알고 있는 원경릉도 삼일 목욕 풍습을 알고 있다. 소위 삼일 목욕은 아이가 태어난 지 삼일 째 되는 날 일가 친척과 친구를 불러 몸을 닦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전생에서 가져온 더러움을 씻어 내고 이생은 평안하고 대길하길 기원하고, 몸을 청결이 해서 병을 예방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상당히 웅장한 의식이라 할 수 있다.정후부 쪽에서도 사람이 와서 삼일 목욕 의식에 출석한다.다음날 이른 아침 예친왕 부부가 와서 우문호에게 아가들의 아명이 이미 족보 옆에 기입이 되었고 본명이 정해지는 대로 위에 첨가할 것이라고 알렸다.원경릉이 침대에 누워 있고 예친왕비가 원경릉을 보러 들어왔다.들어가서 다독거리며 칭찬하길: “정말 대단해요, 황실 가문에 남자 아이 셋을 낳아 주다니, 가서 봤는데 셋 다 똑같이 복스럽고 부귀할 상이에요.”원경릉이 미소를 머금고: “지금 보면 못 생겼어요, 왕비마마 말씀대로 쟤들이 복스럽게 일생 평안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꼭 그럴 거예요!” 예친왕비가 원경릉의 손등을 톡톡 두드리며 생각해보더니 웃음을 지으며, ”걔들 아명을 초왕비가 붙였다면서요. 좀 특이하긴 하지만 착착 입에 붙기는 해요.”원경릉이 웃으며: “제가 의술을 알아서, 약초 이름으로 아이들의 아명을 지었어요, 걔들이 앞으로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면서요.”예친왕비가 당황해서, “그게 약 이름이라고요? 그거…… 떡 이름 아니고요?”“떡 이름이요?” 원경릉이 당황해서, “남성, 인동, 공청은 전부 약이름이에요.”예친왕비가 이상하다는 듯 원경릉을 보며, “아뇨…… 만두, 경단, 찰떡인데요?”원경릉이 눈앞이 아득해 지더니, “어떻게 만두 경단 찰떡이 될
만두 경단 찰떡“아가들 아명이 뭐야?” 원경릉이 우문호에게 물었다.우문소가 웃으며: “네가 붙였잖아, 기억 안나?”“뭐냐고? 왕야가 궁에 가져간 이름이 뭐냐고?” 원경릉이 웃고 있는 우문호의 얼굴을 보는데 조금도 웃고 싶지 않다.“그 종이에 써 있던 그대로지. 만두, 경단, 찰떡.” 우문호가 원경릉 곁에 앉아 말했다.원경릉이 힘없이 손을 떨구더니 우문호를 노려보며, “내가 지은 거 아냐.”“어?” 우문호가 놀라서, “네가 그랬잖아 서재 책상 위에 있다고? 내가 책상에서 집은 게 바로 그거야. 써 있는게 딱 3개였어. 네가 말한 게 이 3개 아니야? 그럼 네가 붙인 이름은 뭔데?”원경릉이 화가 나서: “내가 쓴 건 공청, 남성, 인동인데 왕야는 무슨 만두가 어쩌고 찐빵이 어쩌고, 도대체 어디서 본 거야?”우문호가 경악한 얼굴로, “너 이렇게 좋은 이름을 지은 거야? 하지만 진짜 그 종이를 봤다니까, 보니까 네가 글씨를 잘 못써서 내가 다시 한 장 썼다고. 못 믿겠으면 내가 가져다 줄게.”“가서 가져와!” 원경릉은 우문호가 명확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거짓은 아닌 것 같고, 자신이 기억상실이나 기억 착오를 일으킨 거 아닐까?무슨 만두, 찐빵 이게 정말 그녀가 지은 이름이라고?우문호가 일어나서 나가더니 밖에 소리쳐서, “서일아, 가서 서재 탁자에서 그 종이 가져와.”“예이!” 서일이 밖에서 답했다.우문호가 원경릉 곁에 앉아 틀림없다며: “진짜 널 속이는 게 아니야, 확실히 이 3개가 써 있었다니까.”원경릉이 풀이 죽어서, 아이들 이름은 짓는 건 사실 자신이 하고 싶었지만, 이 시대에선 자신이 나설 자리가 아닌지라 아명이라도 지어 줘서 자신에게 일말의 위로를 건네려 했었다.이 이름은 원경릉이 오랜 시간 고민한 끝에 결정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름 뒤에 자를 붙일 수 있고, 그래서 원경릉이 이 세 이름을 지으며 결국 그들의 자대로 되길 원했다.원경릉은 우문호가 좋은 이름을 생각해낼 재주가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건성으로 라도 일단은 물어봐야 했
삼일 목욕커다란 손이 서일의 뒤를 덮쳐와 어깨를 지나 가슴으로 떨어지며, 다섯 손가락을 펼쳐 서일의 옷을 비틀어 쥐자 서일이 뒤틀려서 휘장 안으로 내동댕이쳐지며 얼른 고개를 돌리고, “공자왈 예가 아니면 보지 말라고 했습니다!”우문호가 서일의 두 눈을 겨누고 주먹을 날린 뒤 성난 파도처럼, “미친 새끼가 잘못 쓴 종이 버릴 줄 몰라? 바닥에 쓰레기 바구니 있는 거 못 봤어? 엉? 버리진 못할 망정 고이 모셔서 탁자에 올려 놔? 너 일부러 내가 잘못 집게 한 거지? 결국 세 아이 아명을 서대인 너님께서 지어 주셨구나?”서일이 눈을 감싸 쥐고 줄줄이 죄를 인정하며, “오해예요, 오해입니다. 전부 오해예요, 아직 괜찮습니다. 왕야 어서 예친왕 전하를 찾아 가세요.”“찾긴 뭘 찾아, 벌써 족보에 다 올렸는데.” 우문호가 화가 치밀어 뚜껑이 열리고 손가락으로 서일의 이마를 가리키며, “넌 앞으로 일할 때 머리 좀 써 알겠어?”“예, 예, 예!” 서일이 서둘러 답했다.원경릉이 한숨을 쉬며, “됐어, 지금 서일한테 뭘 화내? 왕야가 잘못 집은 거지. 그 이름을 보고 뭔가 이상하면 왜 나한테 와서 물어보지 않았어?”우문호가 한 발로 서일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당장 꺼져.”서일이 광복절 특사라도 된 것처럼 얼른 꼬리를 말고 사라졌다.서일은 그 뒤로 한동안 세 아가들을 볼 때 자상하기 이를 데 없는 눈빛인 게, 이름을 지어준 게 자기기 때문이다.우문호는 분이 사그라지지 않는데 원경릉에게 죄스럽고 부끄러워서, “미안해, 이 일은 내가 잘못 했어.”원경릉이 얼굴을 갸웃거리더니 미소를 쥐어 짜내며, “괜찮아, 사실 만두든, 찐빵이든, 송편이든 확실히 예친왕비가 말한 대로 입에 착착 붙고 순서 구별하기도 편하네.”우문호가 감동해서, “원, 넌 정말 자상해.”하며 바로 원경릉을 안았다.원경릉이 울상을 지으며, 그럼 어떡하냐고? 널 죽여? 서일을 죽여?하지만 정말 서일에게 한마디 따끔하게 해야겠다. 쓰레기 분리 제대로 하라고 말이다.황실의 친인척이 속속 도착
아가를 둘러싼 궁중 여인들삼일 목욕은 정오 즈음에 있는데 이 때가 태양이 중천에 떠서 하루 중 제일 기온이 높아 목욕 할 때 아가가 동상에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정오가 다가오자 태후, 명원제, 주황후, 현비, 귀비, 덕비, 호비가 모두 도착했다.태상황은 오지 않고 상선을 보냈는데 오늘 초왕부에 사람이 많으니 흥을 깨지 않으려고 오지 않았다.마치 궁중에서처럼 성대하니 솔직히 부럽고 질투가 날 지경이었다.초왕부에 들어서자마자 태후는 아가들이 보고싶어 한시도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희상궁이 유모를 시켜 세 쌍둥이를 안고 와서 태후 앞에 두니 태후는 거의 모습이 똑같은 세 아가를 보고 기쁨으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정말 이보다 더 사랑할 수 없을 만큼 총애가 지극했다.태후가 안자 아가가 심지어 입을 벌리고 웃는데, 그 웃는 얼굴에 태후의 심장이 녹아 내렸다. 천지신명에 빌고 빌어 마침내 꿈에 그리던 증손자를 안았으니, 태후는 아가를 안고 조상의 영전 앞에 꿇어 앉아 조상님의 보우하심에 감사드리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어서 오너라, 와서 다들 좀 안아 봐!” 주황후는 별로 안고 싶지 않았다. 사실 속으로 기분이 나쁜 것이, 현비가 득의양양한 꼴이 보기 싫기 때문이다.그날 현비가 성지를 잘못 전한 일이 궁에 온통 알려졌지만 태후와 황제는 현비를 벌하지 않았는데 그래서 주황후 심기가 더욱 불편했다.하지만 막상 아가를 안으니 아가가 주황후를 보고 웃는데 마음에 가득하던 고뇌가 전부 사라지는 듯하며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서, “어마마마, 이제 태어난 지 사흘밖에 안된 아가인데 어쩜 웃을 줄 알아요. 신기하죠 그죠?”“신기하다, 신기하고 말고, 부처님 오신 날 태어난 아이니 당연히 특별하고 말고.” 태후는 모든 행운과 복이 모두 세 아가들에게 가득 머물길 간절히 바랄 뿐더러 아이들에게 믿을 만한 뒷배경을 찾아주려고 끊임없이 애를 쓰며, “부처님 오신 날 태어난 아이들이니 보살들이 살펴 주실 게야.”귀비와 덕비도 안아보더니 귀비가 웃으며: “오랫동안 이렇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