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만 냥을 내 놓던지우문호가 이 말을 듣고 고집스럽게 웃으며, “큰형이 인정하게 만드는 거 어렵네요. 동생인 제가 한바탕 칼부림을 해야 하니 말입니다. 기왕 큰형이 인정하셨으니 잘됐네요. 형이 전에 말끝마다 어떻게 책임질 거냐고 따지셨는데, 지금 묻지요. 큰형은 이 일을 어떻게 책임 지시겠습니까?”기왕은 부글부글 끓어서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나, 꾹 참고 우문호와 얘기하는데 소위 말하는 변명도 마땅한 게 없다.기왕이 손을 들어 왕부의 병사를 앞으로 나오게 하고 우문호에게 사죄하게 했다.기왕부의 병사들이 일제히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우문호는 원경릉의 손을 잡고 앉아서 냉엄한 자세로, “큰형, 쓸데없는 말 하지 말죠, 책임진다는 게 고작 병사들이 무릎 꿇고 사죄하는 거면 전혀 필요 없습니다.”기왕은 오늘 꼼짝 없이 우문호의 수중에 잡혀 있어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도 어쩔 도리 없이, “그럼 너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아바마마 앞에라도 가서 떠들고 싶으냐?”우문호가 차갑게 기왕을 노려보며, “아바마마께서 제일 싫어하시는 게 이런 일인데, 저도 당연히 아바마마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그럼 어떻게 하고 싶은 거야?” 기왕이 몰래 안도하며 아바마마 앞에서 거론하는 것만 아니면 다 괜찮다.우문호는 마치 전부터 다 생각이 있었다는 듯: “십만 냥, 원 선생이 선행으로 공덕을 쌓아서 형의 저주를 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기왕이 얼굴이 하얘져서: “십만 냥이라니? 아예 도둑질을 하지 왜?”우문호가 입꼬리를 올리며 비꼬듯이: “이렇게 큰 기왕부에서 고작 십만 냥도 못 만드는 건 아니겠죠?”기왕비는 한편으로 들으며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십만 냥, 기왕은 낼 수 없다, 주명양이 내주지 않으면.하지만 주명양이 한번에 십만 냥을 낼까?십만 냥이라면 주명양이 시집올 때 패물과 함께 가져온 전액일 것이다.재상이 손녀를 결혼시키면서 비록 십리를 뻗친 행렬만은 못해도 십만 냥은 혼수로 전해줬을 거라고 외부 사람들도 다 알고 있다.다섯째
주명양과 기왕, 원경릉과 우문호기왕은 주명양의 눈물을 닦아주고 손가락으로 얼굴의 상처를 매만지며 가슴 아픈 듯이: “아프지?”주명양이 울면서: “아파요, 이 상처 흉터 남지 않겠죠? 왕야가 저 대신 갚아주세요.”기왕이 음흉한 눈빛으로, “걱정하지 마요, 이번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당신을 대신해서 단단히 따질 테니까.”기왕은 홱 돌아서서 냉정한 눈빛으로 기왕비를 노려보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몹쓸 계집, 잘 하는 짓이다.”기왕비는 입꼬리를 올리고 맑게 웃으며 비꼬는 빛이 가득한 눈으로, “왕야, 저를 내쫓고 싶으시면 그렇게 말씀하시면 될 것을, 뭐 이런 방법을 쓰셔서 명성을 더럽힙니까? 일이 이지경이니 괜히 사이좋은 척 가장할 필요 없겠죠. 오늘 당신이 내 털 한 오라기라도 건드리면 내가 가만 있지 않을 겁니다. 방금 큰오빠에게 소식을 전하라고 풍이를 보냈어요. 만약 내가 기왕부에서 어떤 재난이나 모욕을 당하면 내 수중에 있던 증거가 전부 큰오빠에게 전해져서 그 사람들과 당신이 서로 싸우게 할 겁니다. 그리고 그 십만 냥은 스스로 조달할 충분한 능력이 있어야 될 걸요. 제 도움을 빌리지 않으려면요. 일을 저지르기 전에 3번은 생각 하세요.”말을 마치고 기왕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싸늘하게 돌아서서 갔다.기왕이 열 받아서 한 발로 탁자를 차서 엎자 하인들이 놀라서 얼른 밖으로 숨었다.주명양도 안에서 우문호가 하는 요구를 들었지만 이 큰 기왕부에서 십만 냥도 못 낼까 생각했다.주명양은 우문호의 수작이 마음에 들지 않고 기왕비가 멋대로 날뛰는 게 더 불만이었다.원망을 담은 말투로: “왕야, 당신은 어쩜 이렇게 허술하게 일을 했어요?”주명양은 확실히 일이 이렇게 커질 줄 생각도 못했고, 만약 우문호 쪽까지 떠들썩하게 할 줄 알았으면 이렇게 허술하게 안 했을 거라고 생각했다.주명양은 주명취만큼 계산이 ‘빠삭’하진 않지만 생각이 없는 사람은 아니다.이번 계획을 보고 기왕에게 약간 실망했다.최근 주명양을 격하고 강압적인 형태로 총애하길래,
북적대는 초왕부와 주명양의 방문원경릉은 사실 기왕부를 나온 뒤로 이런 느낌이었다.왜냐면 기왕비가 없는 기왕은 이빨 없는 호랑이에 불과하다.이빨 없는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이나 써먹지, 살아서는 그냥 평범하고 무능할 뿐이다.하지만 황제는 한사코 기왕을 보호하면서 수차례 그에게 기회를 준다.과연 장자라는 신분 때문일까?“왕야가 이 일을 아바마마 앞에 가져가지 않는 것도 그래서야?” 원경릉이 물었다.우문호의 표정에 무력함이 가득해서, “맞아, 이 일을 아무리 크게 난리를 쳐도 설사 네가 기왕부에서 진짜 죽었다고 해도, 아바마마께서 큰형의 목숨은 뺏지 않으실 것이고 심지어 친왕이란 봉호도 빼앗지 않으실 테니까.”소위 은총을 입는 다는 게 언제 겉으로 노력한다고 됐나? 아바마마께서 원 선생을 예뻐 하는 것을 부인하는 게 아니라 이런 사랑은 한계가 있고, 아니나 다를까 우문호가 후궁을 맞는 것을 원 선생이 반대하자 아바마마께서는 안면을 몰수하셨다.하지만 큰형이 한 일이 어찌 이 뿐일까?우문호 자신은 애진작에 알아봐서 크게 상처받지 않는다.하지만 오늘처럼 원 선생 관련된 일을, 우문호는 떳떳하게 입궁해 아바마마께 시시비비를 가리지 못한다.우문호는 속에 천불이 나고 원 선생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우문호는 조용히 탄식하며, “억울하게 했지.”원경릉이 웃으며, “조금도 억울하지 않은데, 오늘 왕야의 솜씨를 봤는 걸. 확 숭배하게 됐어. 왕야, 나랑 살아갈 사람은 왕야지 다른 사람이 아니거든, 난 왕야가 나한테 잘하는 지만 관심있어. 다른 사람은 전혀 안중요해.”우문호는 원경릉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얼굴에 살포시 걸린 미소는 맑고 순수하면서도 투철하다.우문호가 손을 뻗어 끌어 안으며 원경릉이 우문호를 따른 이래 초왕부에선 거의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고, 오히려 정후부에 쫓겨나고 서야 조용한 나날을 보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쓴웃음이 나며 정후부로 쫓겨난 걸 감사해야 하는구나.초왕부가 북적대기 시작했다.사람이 줄줄이 드나들고 초왕비가
기왕비의 속마음이 십만 냥은 주명양이 팔만 냥, 기왕비가 만 냥 그리고 나머지를 기왕 자신이 마련한 것이다.주명양은 원경릉에게 딱 한 마디 하길, “같잖게 사람 깔보지 마요. 십만 냥은 나한테 별거 아니니까.”말을 마치고 약간 상처가 남은 얼굴을 들고 냉랭하게 떠났다.원경릉이 이 말을 듣고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기왕비는 가지 않고 약을 더 달라고 했다.이제 수액을 맞을 필요도 없어서 며칠 안 왔는지라 원경릉에게 검사를 받아야 했기에 그 참에 얘기를 나누었다.“주명양은 왜 따라 온 거예요?” 원경릉이 물었다.기왕비가 웃으며: “적당히 하인들을 시켜서 보낼 은자가 아니라고요. 기왕도 직접 오기 싫어서 나한테 맡겼는데 주명양은 그게 안심이 안된 거죠. 어쨌든 본인이 팔만 냥을 내고 난 겨우 만 냥을 냈을 뿐이니까.”“만 냥을 또 냈어요?” 원경릉이 의아해서, “왜 기왕을 도와줘요?”기왕비가 웃으며, “이 만 냥은 초왕비가 나에게 돌려줄 거라고 생각해서지요.”원경릉이 고개를 흔들며, “아뇨.”기왕비가 완전 불쌍하게, “내가 지금 모아 놓은 것도 별로 없고, 계속 친정에 달라고 할 수도 없어요. 이 만 냥은 돌려주세요.”“그럼 반드시 말해야 해요. 왜 기왕에게 만 냥을 줬는지.” 원경릉이 물었다.기왕비가 한숨을 쉬며, “좀 편히 지내볼까 하구요, 은자 만 냥을 주는 건 가슴 아픈 일이고 그럴 가치도 없지만 적어도 기왕이 계속 날 괴롭힐 수 없게 하는 힘은 발휘할 테니까, 나도 내 일을 할 시간을 벌 수 있죠.”기왕비의 마르고 약한 얼굴은 여전히 창백한 채 숨을 들이쉬며: “어쨌든 살아야 지요, 내 딸도 기왕부에 있고 난 갈 수 없어요.”아이를 위해서라면 원경릉은 이해가 갔다.이 시대의 합의 이혼은 이혼한 뒤에도 아이를 만날 수 있거나 아이의 양육권을 쟁취할 수 있는 현대와는 판이하게 달랐다.만약 기왕비가 합의 이혼한다면 다시는 자신의 딸을 볼 수 없게 된다.사람의 마음은 가지각색이지만 엄마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매한가지
허심탄회사실 기왕비가 이 얘기는 세번째다.원경릉은 아예 마음의 벽을 허물고 툭 터놓았다, “나와 다섯째는 그 자리에 별로 흥미가 없어요. 언젠가 우리가 쟁탈하려고 한다면 그건 그 자리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예요.”기왕비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죠? 왜 그 자리에 흥미가 없어요? 나한테 왜 이런 입에 발린 말을 해요?”원경릉이 진지하게 기왕비에게: “태자가 되고 황제가 되는 게 뭐가 좋아요?”기왕비가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앉아 원경릉을 보며: “진심으로 얘기하는 거예요?”“진심이예요.” 원경릉이 말했다.기왕비가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왜 태자가 되거나 황제가 되는 게 안 좋다고 생각해요? 권력이란 말이죠, 권력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당신들 사고방식이 이상한 거 아니에요?”원경릉이 배를 만지며 작게 한숨을 쉬며, “권력에 비해 전 한 식구가 잘 지내는 거, 충만한 삶을 살길 훨씬 원해요.”원경릉 원래가 일개 백성으로 원하는 연구를 하고 자기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했고, 그녀의 인생은 충실하게 채워져 있었다.이런 마음 상태를 20년 넘게 가져왔으니 시공을 초월해 이 권력의 중심에 떨어져서도 변함이 없다.권력다툼의 현장은 커다란 자기장으로 사람들을 비이성적으로 각축하게 만든다.원경릉 입장에서 봤을 때 상당히 병적인 상태다.눈 앞의 기왕비도 마찬가지다.기왕비는 원경릉의 말이 불가사의하게 들려서, “그 말은 다섯째가 태자가 되면 당신들은 잘 살 수 없다는 건가요? 황제가 되면 누가 감히 당신을 해칠 수가 있어요? 이거야 말로 가장 큰 보장이죠.”원경릉이 반문했다, “그럼 당신은 왜 다섯째를 도우려고 하죠?”“당연히 내 딸의 퇴로를 확보해 두는 거죠, 내가 당신들을 도우면 당신들은 내 딸과 사위를 홀대하지 않을 게 분명하니까요.” 기왕비가 말했다.원경릉이: “당신이 기왕을 도와서 그가 나중에 황제가 되면, 당신 딸은 공주가 되니 그게 훨씬 더 나은 거 아닌가요?”기왕비가 냉랭하게: “일단, 그는
짠순이 원경릉기왕비가 놀라서 문 쪽을 보니 문에 기댄 다섯째가 보이는데 얼굴색이 우수에 차 있다.기왕비가 머쓱해 하며: “돌아왔어요? 초왕 얘기가 아니라 천하의 남자들은 변할 수 있다는 일반론일 뿐이에요, 초왕 얘기 아니에요.”우문호가 자신의 특정 부위를 쳐다보며 작게 한숨을 쉬고: “형수는 제가 남자인 걸 의심하시는 겁니까?”기왕비가 얼른 손을 내저으며, “아뇨, 그런 뜻 절대 아니에요.”“이게 남자 게 아니란 건가요?”“그, 그 뜻 아니에요.”기왕비가 상당히 난처한데, 다른 부부사이 감정을 이간질하려다 딱 마주쳤으니. 확실히 난감하다. 기왕비는 집에 일이 있다고 핑계를 대고 서둘러 갔다.우문호가 답답한 표정으로 걸어 들어 오는 것을 보고 원경릉이 웃으며, “기왕비가 뭘 어쨌다고 그래? 당신을 포함해 늑대 같은 남자를 경계하라고, 그냥 좋은 뜻으로 얘기한 거야.”“원 선생,” 우문호가 걸어와서 원경릉의 볼을 꼬집더니 표독스럽게: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내가 어떻게 늑대 같은 남자야? 너와 네 뱃속에 세 쌍둥이 주변을 맴돌며 꼬리 흔드는 멍멍 강아지구만.”원경릉이 웃다가 눈물이 찔끔 나면서, “멍멍 강아지? 테디 베어야? 왜 아주 날 웃겨 죽이지? 맞다, 오늘 어떻게 이렇게 일찍 돌아왔어? 겨우 오시(午時 오전 11시~오후 1시) 지났는데.”“오늘이 기한이라 은자 받았는지 확인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우문호가 탁자 위의 한 무더기 은자를 보고 잔인한 눈빛으로, “전부 내 꺼야, 몰래 감추지 마.”원경릉이 한손으로 찰싹 때리며: “감히 한 장이라도 손 대면 끝인 줄 알아, 왕야는 매달 용돈이 은자 두 냥, 큰돈 쓰면 영수증 끊어와, 은자 어디에 썼는지 설명할 수 있게.”우문호가 입에 침을 튀기며: “하지만 이달은 내가 관아에 복직해서 접대도 좀 있고 은자 두 냥으로 부족해.”“접대해야 하면 나한테 얘기해, 내가 줄 테니까.” 원경릉이 어음을 전부 소매속에 넣는데 상당히 두툼해서 다 들어가질 않자 탕양에게 들어오라고 해서 가져가
원경릉의 화장을 돕는 우문호우문호는 원경릉이 농담한다고 생각했다. 의대라니? 그게 뭐야? 의술을 가르치는 건가? 원경릉 같은 의술은 여기 사람들은 배울 수 없어, 왜냐면 어쩌구 저쩌구 하는 도구가 없으니까.원경릉은 진지했다.이 생각도 지금 문득 든 게 아니다. 처음 우문호와 길을 걷다가 의원 앞에 길게 줄을 서 있는 것을 보고, 현재 의료 제도가 어떻게 이뤄져 있는지 물어본 뒤부터 이 생각을 품게 되었다.하지만 그때는 그저 생각 단계로 결국 가시화 시키려면 자본, 인력, 물자, 광고 등이 필요하다.옷을 갈아 입고 원경릉이: “오늘 기왕비가 그러는데 기왕비가 왕야를 태자 자리에 올라가는 걸 도와줄 수 있데.”우문호가 어렴풋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 얘기 처음은 아니잖아.”“그래서 왕야는 어떻게 생각해?” 원경릉이 화장대 앞에 앉아서 자기는 화장을 했다. 다섯째와 단둘이 방에 있을 때 원경릉은 누가 와서 시중들게 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우문호는 원경릉을 뒤에서 끌어 안으며: “넌 어떻게 생각해?”기왕비 인맥이 넓으니까 끌어 올 수 있으면 확실히 왕야에겐 유리하지. 당연히 이런 관계 구축은 왕야가 전에 말했던 대로 한바탕 싸운 다음을 전제로 하는 거지만. 여전히 그럴 생각인 거야?”우문호가 원경릉의 눈썹을 그려 주려고 돌아들어 갔다. 원경릉은 눈썹 모양이 예뻐서 끝에 약간 그려주면 완벽하다.“모르겠어, 내 마음도 왔다 갔다 해. 그 자리에 흥미가 없는데 계속 이렇게 눌려서 사는 것도 싫고.”원경릉이 ‘흠’하더니, “그래서 왕야도 거부하진 않겠다?”우문호가 눈썹 연필을 내려놓고 원경릉의 옷 매무새를 가다듬어 주며 손을 가슴팍에 올려놓아 원경릉의 질문을 회피하고자, “여기가 조여 드네.”원경릉이 우문호를 보고, “자기 아내를 왕야는 걸핏하면 어떻게 한번 할까만 궁리해?”우문호가 억울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그냥 하자는 것도 아니고, 지금도 내가 건드리지 못하게 철벽을 치고, 저녁에 좀 해 보려고 하면 내가 널 어떻게 하기라도 할 것처럼 맨날
밤일에 관하여원경릉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전혀, 그런 생각 안 해, 걸핏하면 나 동정하는 거 하지 마.”우문호가 약간 실망하며, “왜 생각 안 해? 이걸 어떻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어? 구사한테 물어봤어.”원경릉이 우문호에게 눈을 흘기며, “구사한테는 왜 물어봐? 구사가 여자 경험이 얼마나 많다고? 그리고 우리 부부문제를 왜 구사한테 상담을 해?”“구사한테 완전 다 털어놓은 건 아니고, 어쩌다가 탕양이랑 정언이랑 그 사람들도 애기하고.”원경릉은 아주 기가 막혀서, 우문호를 보고 아주 제대로 정색할 할 필요성이 확 들었다.“왕야, 앉아봐, 우리 얘기, 좀 해.” 원경릉 자신이 먼저 자리에 앉았다.원경릉은 우문호를 보며 자신이 임신한 기간에 왜 끊임없이 일이 터질까 생각해보니, 우문호가 이런 생각을 못하게 하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원경릉이: “앞으로 구사와 왕래하는 거 허락하지 않겠어. 더군다나 우리 그 일은 얘기하지 마.”우문호가 당황하며, “남자들이 같이 있으면서 이런 애기 아니면 무슨 얘기를 할 수 있는데? 내내 시나 악부를 토론할 수는 없잖아?”“다른 건? 조정은? 일은?”우문호가 고개를 흔들며, “그런 건 공적인 거고, 사적으론 얘기 안 해.”“얘기해봐, 구사랑 냉정언이랑 내 무슨 얘기 했어?” 원경릉이 아예 까놓고 물었다.우문호가 원경릉의 안색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이런 정도 지 뭐.”“다른 건 없었어?”우문호가 생각해 보더니, “다른 건 없었어.”그럼 이 화제로 무슨 얘기 했어?” 원경릉이 다시 물었다.우문호가: “그러니까 뭐를.”원경릉은 순간 그를 팰까 하는 충동을 느꼈다.원경릉은 화도 나고 창피하기도 해서 꾸물거리며 일어서는데, “당신들은 언제부터 이런 얘기를 한 거야? 얼마나 됐어?”“우리 사이가 좋아진 뒤부터지. 나만 말한 건 아니고 그들도 자기 얘기를 했다고.” 우문호가 우물쭈물하면서, “당신은 왜 이렇게 화를 내고 그래? 남자들이 같이 있으면 다 이런 얘기해. 다른 사람한테는 비밀로 한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