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명양과 기왕, 원경릉과 우문호기왕은 주명양의 눈물을 닦아주고 손가락으로 얼굴의 상처를 매만지며 가슴 아픈 듯이: “아프지?”주명양이 울면서: “아파요, 이 상처 흉터 남지 않겠죠? 왕야가 저 대신 갚아주세요.”기왕이 음흉한 눈빛으로, “걱정하지 마요, 이번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당신을 대신해서 단단히 따질 테니까.”기왕은 홱 돌아서서 냉정한 눈빛으로 기왕비를 노려보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몹쓸 계집, 잘 하는 짓이다.”기왕비는 입꼬리를 올리고 맑게 웃으며 비꼬는 빛이 가득한 눈으로, “왕야, 저를 내쫓고 싶으시면 그렇게 말씀하시면 될 것을, 뭐 이런 방법을 쓰셔서 명성을 더럽힙니까? 일이 이지경이니 괜히 사이좋은 척 가장할 필요 없겠죠. 오늘 당신이 내 털 한 오라기라도 건드리면 내가 가만 있지 않을 겁니다. 방금 큰오빠에게 소식을 전하라고 풍이를 보냈어요. 만약 내가 기왕부에서 어떤 재난이나 모욕을 당하면 내 수중에 있던 증거가 전부 큰오빠에게 전해져서 그 사람들과 당신이 서로 싸우게 할 겁니다. 그리고 그 십만 냥은 스스로 조달할 충분한 능력이 있어야 될 걸요. 제 도움을 빌리지 않으려면요. 일을 저지르기 전에 3번은 생각 하세요.”말을 마치고 기왕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싸늘하게 돌아서서 갔다.기왕이 열 받아서 한 발로 탁자를 차서 엎자 하인들이 놀라서 얼른 밖으로 숨었다.주명양도 안에서 우문호가 하는 요구를 들었지만 이 큰 기왕부에서 십만 냥도 못 낼까 생각했다.주명양은 우문호의 수작이 마음에 들지 않고 기왕비가 멋대로 날뛰는 게 더 불만이었다.원망을 담은 말투로: “왕야, 당신은 어쩜 이렇게 허술하게 일을 했어요?”주명양은 확실히 일이 이렇게 커질 줄 생각도 못했고, 만약 우문호 쪽까지 떠들썩하게 할 줄 알았으면 이렇게 허술하게 안 했을 거라고 생각했다.주명양은 주명취만큼 계산이 ‘빠삭’하진 않지만 생각이 없는 사람은 아니다.이번 계획을 보고 기왕에게 약간 실망했다.최근 주명양을 격하고 강압적인 형태로 총애하길래,
북적대는 초왕부와 주명양의 방문원경릉은 사실 기왕부를 나온 뒤로 이런 느낌이었다.왜냐면 기왕비가 없는 기왕은 이빨 없는 호랑이에 불과하다.이빨 없는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이나 써먹지, 살아서는 그냥 평범하고 무능할 뿐이다.하지만 황제는 한사코 기왕을 보호하면서 수차례 그에게 기회를 준다.과연 장자라는 신분 때문일까?“왕야가 이 일을 아바마마 앞에 가져가지 않는 것도 그래서야?” 원경릉이 물었다.우문호의 표정에 무력함이 가득해서, “맞아, 이 일을 아무리 크게 난리를 쳐도 설사 네가 기왕부에서 진짜 죽었다고 해도, 아바마마께서 큰형의 목숨은 뺏지 않으실 것이고 심지어 친왕이란 봉호도 빼앗지 않으실 테니까.”소위 은총을 입는 다는 게 언제 겉으로 노력한다고 됐나? 아바마마께서 원 선생을 예뻐 하는 것을 부인하는 게 아니라 이런 사랑은 한계가 있고, 아니나 다를까 우문호가 후궁을 맞는 것을 원 선생이 반대하자 아바마마께서는 안면을 몰수하셨다.하지만 큰형이 한 일이 어찌 이 뿐일까?우문호 자신은 애진작에 알아봐서 크게 상처받지 않는다.하지만 오늘처럼 원 선생 관련된 일을, 우문호는 떳떳하게 입궁해 아바마마께 시시비비를 가리지 못한다.우문호는 속에 천불이 나고 원 선생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우문호는 조용히 탄식하며, “억울하게 했지.”원경릉이 웃으며, “조금도 억울하지 않은데, 오늘 왕야의 솜씨를 봤는 걸. 확 숭배하게 됐어. 왕야, 나랑 살아갈 사람은 왕야지 다른 사람이 아니거든, 난 왕야가 나한테 잘하는 지만 관심있어. 다른 사람은 전혀 안중요해.”우문호는 원경릉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얼굴에 살포시 걸린 미소는 맑고 순수하면서도 투철하다.우문호가 손을 뻗어 끌어 안으며 원경릉이 우문호를 따른 이래 초왕부에선 거의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고, 오히려 정후부에 쫓겨나고 서야 조용한 나날을 보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쓴웃음이 나며 정후부로 쫓겨난 걸 감사해야 하는구나.초왕부가 북적대기 시작했다.사람이 줄줄이 드나들고 초왕비가
기왕비의 속마음이 십만 냥은 주명양이 팔만 냥, 기왕비가 만 냥 그리고 나머지를 기왕 자신이 마련한 것이다.주명양은 원경릉에게 딱 한 마디 하길, “같잖게 사람 깔보지 마요. 십만 냥은 나한테 별거 아니니까.”말을 마치고 약간 상처가 남은 얼굴을 들고 냉랭하게 떠났다.원경릉이 이 말을 듣고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기왕비는 가지 않고 약을 더 달라고 했다.이제 수액을 맞을 필요도 없어서 며칠 안 왔는지라 원경릉에게 검사를 받아야 했기에 그 참에 얘기를 나누었다.“주명양은 왜 따라 온 거예요?” 원경릉이 물었다.기왕비가 웃으며: “적당히 하인들을 시켜서 보낼 은자가 아니라고요. 기왕도 직접 오기 싫어서 나한테 맡겼는데 주명양은 그게 안심이 안된 거죠. 어쨌든 본인이 팔만 냥을 내고 난 겨우 만 냥을 냈을 뿐이니까.”“만 냥을 또 냈어요?” 원경릉이 의아해서, “왜 기왕을 도와줘요?”기왕비가 웃으며, “이 만 냥은 초왕비가 나에게 돌려줄 거라고 생각해서지요.”원경릉이 고개를 흔들며, “아뇨.”기왕비가 완전 불쌍하게, “내가 지금 모아 놓은 것도 별로 없고, 계속 친정에 달라고 할 수도 없어요. 이 만 냥은 돌려주세요.”“그럼 반드시 말해야 해요. 왜 기왕에게 만 냥을 줬는지.” 원경릉이 물었다.기왕비가 한숨을 쉬며, “좀 편히 지내볼까 하구요, 은자 만 냥을 주는 건 가슴 아픈 일이고 그럴 가치도 없지만 적어도 기왕이 계속 날 괴롭힐 수 없게 하는 힘은 발휘할 테니까, 나도 내 일을 할 시간을 벌 수 있죠.”기왕비의 마르고 약한 얼굴은 여전히 창백한 채 숨을 들이쉬며: “어쨌든 살아야 지요, 내 딸도 기왕부에 있고 난 갈 수 없어요.”아이를 위해서라면 원경릉은 이해가 갔다.이 시대의 합의 이혼은 이혼한 뒤에도 아이를 만날 수 있거나 아이의 양육권을 쟁취할 수 있는 현대와는 판이하게 달랐다.만약 기왕비가 합의 이혼한다면 다시는 자신의 딸을 볼 수 없게 된다.사람의 마음은 가지각색이지만 엄마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매한가지
허심탄회사실 기왕비가 이 얘기는 세번째다.원경릉은 아예 마음의 벽을 허물고 툭 터놓았다, “나와 다섯째는 그 자리에 별로 흥미가 없어요. 언젠가 우리가 쟁탈하려고 한다면 그건 그 자리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예요.”기왕비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죠? 왜 그 자리에 흥미가 없어요? 나한테 왜 이런 입에 발린 말을 해요?”원경릉이 진지하게 기왕비에게: “태자가 되고 황제가 되는 게 뭐가 좋아요?”기왕비가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앉아 원경릉을 보며: “진심으로 얘기하는 거예요?”“진심이예요.” 원경릉이 말했다.기왕비가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왜 태자가 되거나 황제가 되는 게 안 좋다고 생각해요? 권력이란 말이죠, 권력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당신들 사고방식이 이상한 거 아니에요?”원경릉이 배를 만지며 작게 한숨을 쉬며, “권력에 비해 전 한 식구가 잘 지내는 거, 충만한 삶을 살길 훨씬 원해요.”원경릉 원래가 일개 백성으로 원하는 연구를 하고 자기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했고, 그녀의 인생은 충실하게 채워져 있었다.이런 마음 상태를 20년 넘게 가져왔으니 시공을 초월해 이 권력의 중심에 떨어져서도 변함이 없다.권력다툼의 현장은 커다란 자기장으로 사람들을 비이성적으로 각축하게 만든다.원경릉 입장에서 봤을 때 상당히 병적인 상태다.눈 앞의 기왕비도 마찬가지다.기왕비는 원경릉의 말이 불가사의하게 들려서, “그 말은 다섯째가 태자가 되면 당신들은 잘 살 수 없다는 건가요? 황제가 되면 누가 감히 당신을 해칠 수가 있어요? 이거야 말로 가장 큰 보장이죠.”원경릉이 반문했다, “그럼 당신은 왜 다섯째를 도우려고 하죠?”“당연히 내 딸의 퇴로를 확보해 두는 거죠, 내가 당신들을 도우면 당신들은 내 딸과 사위를 홀대하지 않을 게 분명하니까요.” 기왕비가 말했다.원경릉이: “당신이 기왕을 도와서 그가 나중에 황제가 되면, 당신 딸은 공주가 되니 그게 훨씬 더 나은 거 아닌가요?”기왕비가 냉랭하게: “일단, 그는
짠순이 원경릉기왕비가 놀라서 문 쪽을 보니 문에 기댄 다섯째가 보이는데 얼굴색이 우수에 차 있다.기왕비가 머쓱해 하며: “돌아왔어요? 초왕 얘기가 아니라 천하의 남자들은 변할 수 있다는 일반론일 뿐이에요, 초왕 얘기 아니에요.”우문호가 자신의 특정 부위를 쳐다보며 작게 한숨을 쉬고: “형수는 제가 남자인 걸 의심하시는 겁니까?”기왕비가 얼른 손을 내저으며, “아뇨, 그런 뜻 절대 아니에요.”“이게 남자 게 아니란 건가요?”“그, 그 뜻 아니에요.”기왕비가 상당히 난처한데, 다른 부부사이 감정을 이간질하려다 딱 마주쳤으니. 확실히 난감하다. 기왕비는 집에 일이 있다고 핑계를 대고 서둘러 갔다.우문호가 답답한 표정으로 걸어 들어 오는 것을 보고 원경릉이 웃으며, “기왕비가 뭘 어쨌다고 그래? 당신을 포함해 늑대 같은 남자를 경계하라고, 그냥 좋은 뜻으로 얘기한 거야.”“원 선생,” 우문호가 걸어와서 원경릉의 볼을 꼬집더니 표독스럽게: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내가 어떻게 늑대 같은 남자야? 너와 네 뱃속에 세 쌍둥이 주변을 맴돌며 꼬리 흔드는 멍멍 강아지구만.”원경릉이 웃다가 눈물이 찔끔 나면서, “멍멍 강아지? 테디 베어야? 왜 아주 날 웃겨 죽이지? 맞다, 오늘 어떻게 이렇게 일찍 돌아왔어? 겨우 오시(午時 오전 11시~오후 1시) 지났는데.”“오늘이 기한이라 은자 받았는지 확인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우문호가 탁자 위의 한 무더기 은자를 보고 잔인한 눈빛으로, “전부 내 꺼야, 몰래 감추지 마.”원경릉이 한손으로 찰싹 때리며: “감히 한 장이라도 손 대면 끝인 줄 알아, 왕야는 매달 용돈이 은자 두 냥, 큰돈 쓰면 영수증 끊어와, 은자 어디에 썼는지 설명할 수 있게.”우문호가 입에 침을 튀기며: “하지만 이달은 내가 관아에 복직해서 접대도 좀 있고 은자 두 냥으로 부족해.”“접대해야 하면 나한테 얘기해, 내가 줄 테니까.” 원경릉이 어음을 전부 소매속에 넣는데 상당히 두툼해서 다 들어가질 않자 탕양에게 들어오라고 해서 가져가
원경릉의 화장을 돕는 우문호우문호는 원경릉이 농담한다고 생각했다. 의대라니? 그게 뭐야? 의술을 가르치는 건가? 원경릉 같은 의술은 여기 사람들은 배울 수 없어, 왜냐면 어쩌구 저쩌구 하는 도구가 없으니까.원경릉은 진지했다.이 생각도 지금 문득 든 게 아니다. 처음 우문호와 길을 걷다가 의원 앞에 길게 줄을 서 있는 것을 보고, 현재 의료 제도가 어떻게 이뤄져 있는지 물어본 뒤부터 이 생각을 품게 되었다.하지만 그때는 그저 생각 단계로 결국 가시화 시키려면 자본, 인력, 물자, 광고 등이 필요하다.옷을 갈아 입고 원경릉이: “오늘 기왕비가 그러는데 기왕비가 왕야를 태자 자리에 올라가는 걸 도와줄 수 있데.”우문호가 어렴풋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 얘기 처음은 아니잖아.”“그래서 왕야는 어떻게 생각해?” 원경릉이 화장대 앞에 앉아서 자기는 화장을 했다. 다섯째와 단둘이 방에 있을 때 원경릉은 누가 와서 시중들게 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우문호는 원경릉을 뒤에서 끌어 안으며: “넌 어떻게 생각해?”기왕비 인맥이 넓으니까 끌어 올 수 있으면 확실히 왕야에겐 유리하지. 당연히 이런 관계 구축은 왕야가 전에 말했던 대로 한바탕 싸운 다음을 전제로 하는 거지만. 여전히 그럴 생각인 거야?”우문호가 원경릉의 눈썹을 그려 주려고 돌아들어 갔다. 원경릉은 눈썹 모양이 예뻐서 끝에 약간 그려주면 완벽하다.“모르겠어, 내 마음도 왔다 갔다 해. 그 자리에 흥미가 없는데 계속 이렇게 눌려서 사는 것도 싫고.”원경릉이 ‘흠’하더니, “그래서 왕야도 거부하진 않겠다?”우문호가 눈썹 연필을 내려놓고 원경릉의 옷 매무새를 가다듬어 주며 손을 가슴팍에 올려놓아 원경릉의 질문을 회피하고자, “여기가 조여 드네.”원경릉이 우문호를 보고, “자기 아내를 왕야는 걸핏하면 어떻게 한번 할까만 궁리해?”우문호가 억울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그냥 하자는 것도 아니고, 지금도 내가 건드리지 못하게 철벽을 치고, 저녁에 좀 해 보려고 하면 내가 널 어떻게 하기라도 할 것처럼 맨날
밤일에 관하여원경릉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전혀, 그런 생각 안 해, 걸핏하면 나 동정하는 거 하지 마.”우문호가 약간 실망하며, “왜 생각 안 해? 이걸 어떻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어? 구사한테 물어봤어.”원경릉이 우문호에게 눈을 흘기며, “구사한테는 왜 물어봐? 구사가 여자 경험이 얼마나 많다고? 그리고 우리 부부문제를 왜 구사한테 상담을 해?”“구사한테 완전 다 털어놓은 건 아니고, 어쩌다가 탕양이랑 정언이랑 그 사람들도 애기하고.”원경릉은 아주 기가 막혀서, 우문호를 보고 아주 제대로 정색할 할 필요성이 확 들었다.“왕야, 앉아봐, 우리 얘기, 좀 해.” 원경릉 자신이 먼저 자리에 앉았다.원경릉은 우문호를 보며 자신이 임신한 기간에 왜 끊임없이 일이 터질까 생각해보니, 우문호가 이런 생각을 못하게 하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원경릉이: “앞으로 구사와 왕래하는 거 허락하지 않겠어. 더군다나 우리 그 일은 얘기하지 마.”우문호가 당황하며, “남자들이 같이 있으면서 이런 애기 아니면 무슨 얘기를 할 수 있는데? 내내 시나 악부를 토론할 수는 없잖아?”“다른 건? 조정은? 일은?”우문호가 고개를 흔들며, “그런 건 공적인 거고, 사적으론 얘기 안 해.”“얘기해봐, 구사랑 냉정언이랑 내 무슨 얘기 했어?” 원경릉이 아예 까놓고 물었다.우문호가 원경릉의 안색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이런 정도 지 뭐.”“다른 건 없었어?”우문호가 생각해 보더니, “다른 건 없었어.”그럼 이 화제로 무슨 얘기 했어?” 원경릉이 다시 물었다.우문호가: “그러니까 뭐를.”원경릉은 순간 그를 팰까 하는 충동을 느꼈다.원경릉은 화도 나고 창피하기도 해서 꾸물거리며 일어서는데, “당신들은 언제부터 이런 얘기를 한 거야? 얼마나 됐어?”“우리 사이가 좋아진 뒤부터지. 나만 말한 건 아니고 그들도 자기 얘기를 했다고.” 우문호가 우물쭈물하면서, “당신은 왜 이렇게 화를 내고 그래? 남자들이 같이 있으면 다 이런 얘기해. 다른 사람한테는 비밀로 한
망강루에서원경릉은 이 화제를 얼른 마무리 지었는데, 더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나가는데 단속을 받았다. 단속하는 자는 궁에서 파견되어 온 사람으로 태후 쪽인데 여러 금군을 대동해 왔다.원경릉이 문밖출입을 하는 대부분의 용도는 먹고 마시는 식기인데, 전부 가져왔다. 이는 태후의 엄명이었다.“참아, 참아.” 우문호가 위로하며 마차의 가리개를 내리고, “낳고 나면 총애를 잃었다는 실감이 날 거야.”원경릉이 고개를 흔들며, “아니, 그냥 이 사람들이 나 대신 세 쌍둥이를 둘러싸고 어쩌면 엄마인 내가 한 번 만져보지도 못하게 할 거 같아.”우문호가 낙천적으로, “그건 더 좋지, 애들 없이 우리 끼리 신나게 놀자.”원경릉이 웃으며 이 놈의 자식은 진짜……만나기로 한 곳은 망강루다.이 이름은 무협소설에 나올 확률이 높다.원경릉이 상상한 건 높다랗게 우뚝 솟은 주루 한 채가 강변에 위치해서 위로 올라가면 강가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바람이 선선하게 부는 가운데 한쪽에선 시를 읊고 한 쪽에선 검객이 무술을 논하는가 하면 한쪽에서 서생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하지만 어느 작은 집 문 앞에 다다라서 마차가 멈췄다.우문호의 부축을 받으며 내려와서 사방을 둘러보는데 낮은 건축물 뿐으로 초가집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높다란 건물은 전혀 아니었다.“다왔어?” 원경릉이 물었다.우문호가 원경릉의 오른쪽 어느 집을 가리키며: “다왔어, 여기야.”원경릉이 쓱 보니 흰 담장이 둘러쳐진 집으로 두 짝으로 된 나무 대문은 닫혀 있고, 문에는 대련이 붙어 있는데 필적은 이미 빗물에 씻겨 나간지 오래고 붉은 종이도 허옇게 변했다.벽에 간판으로 쓰는 편액이 걸려 있는데 “망강루’ 세 글자가 신들린 듯한 초서로 적혀 있어 종잡을 수 없지만 매우 아름답다.이건 원경릉이 생각한 것과 거리가 너무 먼 거 아닌가.우문호는 원경릉의 손을 잡아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문을 들어서자 오래된 우물 맞은 편에 당나귀 한 마리가 매어져 있는데 당나귀가 사람을 보고 발을 구르며 멋대
현대로 돌아가 가족과 한자리에 모이니 모두 즐거워 보였다. 원경릉은 집안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뒤, 아이들을 데리고 휘종제와 건종 태자를 알현하러 갔다.휘종제와 건종 태자도 매우 기뻐했는데, 특히 아이들이 유학하러 와서 앞으로 여기서 산다는 얘기에, 휘종제는 너무 좋아서 펄쩍펄쩍 뛰며 앞으로 아이들에게 드는 모든 비용은 전부 자기들이 대고 방학에 북당으로 보내고, 개학 때 맞이하는 것도 자기들이 하겠다고 큰소리쳤다. 외갓집엔 모두 출근하는 분들 뿐이라 불편할 거라는 것이었다.원경릉은 일단 감사드리고 북당에서 가져온 술과 검, 궁에서 가져온 흙 한 줌과 돌 하나를 꺼내놓았다. 이건 우문호가 준비한 것으로 고향을 오래 떠나 있는 사람은 고향의 흙과 돌이 그리운 법이라고 했다.휘종제와 건종 태자가 흙과 돌을 보더니 손에 들곤 통곡하기 시작했다.원경릉이 두 사람을 위로한 뒤, 그들은 슬퍼하며 ‘언제 한 번 가볼까, 딱 한 번 보더라도, 아무도 만날 수 없어도 좋을 텐데.’라고 한탄했다.“긴 세월 고향 강산을 꿈에도 잊지 못했으나 돌아갈 수는 없었네..”원경릉은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가슴이 시큰해졌다. 휘종제와 건종 태자의 슬픔을 원경릉은 아주 잘 아는 것이 자신도 전에 이방인이었기 때문이었다.단지 그들이 돌아갈 수 있을지 없을지 원경릉도 뭐라고 단정내리기 어려웠다. 어쨌든 이건 안풍 친왕이 진행한 일로 정말 돌아가고 싶으면 아마도 안풍 친왕이 준비해 줄 수 있었다. 북당으로 돌아가면 안풍 친왕에게 상황을 봐서 물어봐야겠다고 결심했다.입학 준비를 마친 뒤, 원경릉은 돌아갈 준비를 하는데 아이들과 떨어지기 싫었지만, 아이들은 새로운 생활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가 충만했기에 그녀와 헤어지는 걸 전혀 아쉬워하지 않았다. 원경릉은 그 점이 씁쓸했다.아이들이 크면 놔줘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얘들은 아직 다 안 컸잖아.돌아가기 전에 원경릉은 양여혜에게 만나자고 했는데 양여혜가 기화를 데리고 올 줄 몰랐다.원경릉은 기화를 보자 머리가 아픈 게, 기화는 또
‘이제 어머니가 계시니 술 먹으면 몸 상한다고 말해? 예전에는 왜 말 안 했어?’다행히 누군가 같이 마셔주는 사람이 있었다. 회왕은 벼슬에 오른 뒤로 술을 조금 하기 시작했는데, 많이는 안 마시고 한두 잔만 마실뿐, 석 잔째면 아내를 보러 집에 갔다.즐겁게 박원과 소홍천을 보낸 우문호와 원경릉은 만두와 아이들을 유학 보낼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비록 환타와 칠성이는 아직 어려서 2년 정도 더 남아있었지만, 유치원 다니고 싶다고 소리를 지르며,형들이랑 꼭 같이 가겠다고 하도 고집을 부려 원경릉과 우문호는 골치가 아파졌다.그나마 우문호에게 약간 위로가 된 건 딸만큼은 곁에 있다는 사실로, 칠성이와 환타가 하도 졸라대자,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가가가, 다 가.”아이들은 기뻐했으나 눈 늑대와 호랑이도 여전히 성깔을 부리며 따라가겠다며 소란을 피웠다.현대에서 어떻게 호랑이와 눈 늑대를 키울 수가 없으니 미칠 노릇이였다. 게다가 이 동물들은 아주 영민해서 사람 일을 이해해, 꼬마 주인들이 이번에 가면 열흘 보름이 아니라 몇 년 있다가 온다는 걸 알고 아무리 혼을 내도 말을 안 들을 게 분명했다. 그래도 만두가 이리저리 구슬려서, 동물들에게 자기들에겐 여름방학, 겨울 방학이 있고 학기 중에도 쉬는 날이 있어서 1년에 합치면 적어도 4개월은 이쪽으로 돌아올 수 있으니 적어도 1년에 절반 가까이는 같이 있는 거라고 위로하자 겨우 잠잠해졌다. 비록 시공간은 떨어져 있어도 같이 자라기를 원할 것이다. 유학을 가는 일이기 때문에 원경릉이 직접 따라가서 진학 문제를 처리해야 했다.이 일은 전에 현대에서 언급한 적이 있어, 로양이 아이들에게 호적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물론 아이들을 호적에 올리려면 원경릉 부부도 호적에 올려야 하는 것이, 아이들을 오빠 이름 아래 입적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었다.이 일은 로양이 원만하게 처리해 원경릉 가족 모두 호적을 가지게 되었다.게다가 원래 집을 사뒀기 때문에, 부근 학군에 진학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원경릉은 다섯
대오가 경성으로 돌아올 때 홍엽도 원숭이와 같이 돌아왔는데, 그도 풍도성에서 힘을 보탰다. 사실 홍엽이 안 가도 안풍 친왕이 모든 걸 다 준비해 둬서, 안풍 친왕 능력이면 안지여 정도 상대하기는 식은 죽 먹기였다.이리 나리 일행은 경성에 도착해, 우선 집으로 돌아가 공주와 천행이를 보고 가족이 함께 밥을 먹은 뒤 입궁해서 경과를 보고했다.사적인 원한은 한두 마디로, 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은 지금 받아야 할 벌을 받고 있으며 아직 죽이지 않았다고 했다남은 건 정사를 논하는 것이었다.“어머니와 같이 풍도성에서 보름 정도 지내며 기본적인 민심을 파악했는데, 천문 세가는 백성들 사이에서 아직 명망이 높아 보입니다. 풍도성 백성들은 사실 세금이 너무 많고 경제가 번영한 성과가 전부 안지여 수중에 떨어지는 구조로 되어 있어 안지여의 통치에 불만이 있었다고 합니다. 조정에서 풍도성을 접수한 것에 백성들 대부분은 찬성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천하태평이냐 하면 그럴 순 없는 것이, 일부는 성주가 자기들의 황제라 여기고, 조정이 풍도성을 접수한 것이 풍도성이 침략당했다고 여겨 나중에 약간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부를 임명하실 때 신중하셔야 할 것입니다.”우문호가 말했다. “흠, 큰할아버지께서 천거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박원이라네. 자네 생각은 어떤가?”그러자 이리 나리의 눈빛이 빛났다. “제 아버지가 추천한 사람이니 전 찬성입니다!”“아버지?” 우문호가 의아해하며 이리 나리를 쳐다봤다. ‘안풍 친왕비가 사부님이면 안풍 친왕은 사부의 남편 아닌가? 어떻게 아버지가 되지? 사부님의 배우자니 사모님이라고 부르는 게 더 맞지 않나?’“흠, 안풍 친왕은 제 아버지십니다!” 이리 나리는 더 설명할 생각이 없는지 어쨌든 그렇다고 주장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한 번도 그를 아버지라 부른 적 없지만, 마음속에서만큼은 진정한 아버지였다.“하하하!” 우문호도 그저 웃으며 더는 묻지 않았다.이리 나리가 퇴청할 때 우문호가 이리 나리를 부르자 고개를 돌렸다. “무
“우선 박원이랑 소홍천 의사부터 물어보자. 억지로 하게 하고 싶지 않아. 그동안 그들이 날 많이 도와줬으니 전부 원하는 대로 하자고.” 우문호가 말했다.“그러자!” 원경릉이 일어서며 말했다. “오늘 저녁 애들 데리고 어머님께 가서 수라를 들려면 빨리움직여야 해. 꾸물대면 늦을거야.”그러자 우문호도 계란이를 안고 일어섰다. “그래, 우리 황조모한테 가서 맘마 먹자.”우문호가 나가서 부르자 아이들이 달려와, 같이 왁자지껄하게 수라를 들러 황태후 전으로 갔다.황태후는 원래 우문호에게 할 말이 있었지만, 식사 자리에 아이들이 있어서 기다렸다가 저녁을 다 먹은 뒤 우문호와 아이들이 나가서 놀고, 원경릉이 황태후와 얘기를 나눌 때 말을 꺼냈다.“천행이가 태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부마를 풍도성으로 보낼 수가 있지.. 공주가 얼마나 괴로웠을까.”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공주는 사정을 훤히 알고 있어서, 이리 나리께서 풍도성에 가는 걸 지지하셨는걸요.”“말은 그렇게 해도, 출산 후에 여자 곁엔 남편이 있어야 하는 법이야. 하지만 이것도 단지 우리 가족끼리 하는 얘기일 뿐이고, 조정 일을 내가 함부로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는 노릇이지.”황태후는 이리 나리가 풍도성으로 간 진정한 목적을 전혀 몰랐으며, 단순히 어지러운 형국을 정리하러 갔다고만 알았기 때문에 순수하게 공주를 아끼는 마음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어마마마, 걱정하지 마세요. 이리 나리는 이미 돌아오는 중이래요.” 원경릉이 위로하자 황태후가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거 잘됐네!”온 가족이 별빛을 받으며 천천히 소월궁을 거닐었다.계란이는 아빠 품에서 잠이 들었고, 아이들은 놀다 지쳐서 아빠 엄마를 따라 천천히 걷고 있었으며, 목여 태감이 궁인 둘을 데리고 뒤에서 조용히 따라오는 가운데, 궁 안은 인적이 드물어 밤이 되자 상당히 고요했다.“어마마마께서 공주를 아끼셔서, 이리 나리가 하필 이때 풍도성에 보냈냐고 하셨어.” 원경릉이 말했다.“날 원망하셨어?” 우문호는 품에 있는 아이가 깰
늑대파 사람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질질 끌고 나가는데, 소여쌍은 여전히 미친사람처럼 웃어대기만 했다.이리봉청은 그들이 끌려 나가는 것을 보자, 눈앞에 안지여가 자신을 데리고 소여쌍의 침대 앞으로 가서 소여쌍의 그 악랄한 말을 듣던 순간이 떠올랐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여리여리하고 아름답던 그녀가 이렇게 변해 버린 게 꿈처럼 느껴졌다.풍도성을 접수한 뒤 안풍 친왕은 관리들을 새롭게 임명했고, 더 이상 성주 같은 것을 두지 않고 조정과 이부에 적합한 인사를 선발해 풍도성 지부로 앉힐 것을 요청했다. 풍도성은 더 이상 이전의 독립 자치 지역이 아닌, 다른 주나 현과 마찬가지로 조정에 귀속되어 통일서 있게 다스리게 되었다.더불어 안풍 친왕은 별도로 서신을 써서 황제인 우문호에게 보냈는데, 풍도성을 추천하지만, 이건어디까지나 건의와 추천이니 황제가 생각하는 마땅한 사람이 있으면 안풍 친왕의 추천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동시에 안지여의 잔당들이 계속 나타났다.안풍 친왕이 이번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데려오고, 호랑이와 눈 늑대, 회색 늑대까지 출동시킨 건 바로 모든 세력을 강화하고, 신속하게 진압해 풍도성을 조정에 복귀시키고 보름 만에 비적을 토벌하며 기본적인 숙청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박원은 잔당의 남은 불씨가 다시 타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 안풍 친왕의 영패를 가지고 부근에 5천 명의 군사를 파견시켜 풍도성을 지켰다. 이리 나리는 자금을 지원해 천문 세가의 묘를 이장하였는데, 이전 무덤은 안지여가 고른 곳으로 폐허에 가까워, 그는 천문 세가 사람들이 그런 곳에서 안식을 취하기를 원하지 않았다.풍도성에 온지 거의 한 달가량 될 때쯤, 대군은 경성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돌아가기 전에 미색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보러 갔다가, 돼지우리에서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사는 것을 보고 그제야 비로소 맺혀 있던 한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미색은 이리 나리와 어머님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 두 사람은 이미 안지여가 누군지 잊은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리봉청에게 있어 모든 건 지나가지 않았고, 36년 전 일은 여전히 어제 일 같이 느껴졌다.“어머니, 그를 어떻게 처분하시겠어요?” 이리 나리는 이리봉청의 마음을 넘겨짚을 수 없어 함께 걷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생각은 어떠니?” 이리봉청이 다시 되묻자 이리 나리가 원한에 사무친 눈빛으로 말했다. “제게 처분하라고 하면 전 그를 죽여 버릴 겁니다.”이리봉청은 알았다며 대답만 했다가, 다시 30분쯤 걷다가 정자에 앉아 을 때 말을 덧붙였다. “난 안 죽일 거야.”이리 나리가 약간 놀라서 물었다. “어머니, 또 마음이 약해지신 겁니까?”이리봉청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 반대야. 그 인간을 죽이는 게 마음이 약해진 거지. 사실 며칠 동안 이전의 원한을 내려놓을 수 있을지 생각해 봤는데,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 인간을 백번이라도 죽이겠지만, 난 그럴 수 없더구나. 아들아, 게다가 오늘 천문 세가 대문을 들어서는 그 순간, 더욱 마음을 굳혔단다.”이리봉청이 일어나 집안을 둘러봤다. 이곳은 그녀의 가족들이 살아 원래 온통 사람 소리로 가득한 곳이였다. 그들의 웃던 광경이 눈앞에 비치는가 하더니, 눈 깜박할 사이에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천문 세가는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없는데 멸문지화를 당했고, 가엾게도 그 중엔 아이들이 많아서 제일 어린아이는 이제 태어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었다.이리봉청의 얼굴에 눈물이 타고 흐르며 가슴이 미어졌다. “그자와 소여쌍을 밖에 내버리고 사람을 시켜 지켜보도록 해. 죽게 두지 말고 계속 살려둬. 36년은 더 살면서 이 세상의 고생을 모두 겪어야, 내 마음에 맺힌 한이 풀리고 억울한 망자들도 안식에 들지!”이리 나리는 온몸으로 그 마음이 느껴져, 어머니가 눈물 흘리는 것을 더는 볼 수 없었다. “네, 전부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대로 할게요.”안지여와 소여쌍은 버려졌다. 짧은 며칠 사이에 안지여는 의기양양하던 성주에서 시궁창 쥐로 변해, 사람들이
안지여는 풍도성 지하감옥에 갇혔다. 빛 한 줄기 없는 지하감옥에서 사방에 끝없는 어둠과 절망만이 안지여를 삼키고 있었다.훼천의 형벌은 12 시진 후면 사라져서, 앞으로 안지여는 그저 한 명의 폐인일 뿐이었다.안지여의 결사대가 성으로 공격해 들어오기 전에, 이리봉청은 오 선생을 찾아내 안지여가 저지른 모든 죄를 고백하게 하고 안풍 친왕이 친필로 받아 적었다. 안지여가 당시 천문 세가를 해친 경위를 소상히 써 내려간 뒤, 오 선생과 안풍 친왕의 직인을 찍고 인쇄해서 대중에게 공개했다.안지여의 죄악은 하늘을 찔러 백성들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안지여의 결사대의 옛 부하들이 본래 성을 공격해 들어가 안지여를 구출할 계획을 세워놓았으나, 안지여의 죄상이 공포된 뒤로 많은 사람들이 해산하였다. 유일하게 무대장군만이 수천 명을 데리고 성으로 쳐들어왔지만, 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가 이미 대비해둔 덕분에, 경성에서 굴러온 돌이 무대장군의 박힌 돌을 빼내는 전투를 벌였다.풍도성에 온 지 7일째, 안풍 친왕은 풍도성을 접수하고 성에 살던 사람을 쫓아내며 서민으로 강등시켰다.안지여와 소여쌍에 대한 처분은 이리봉청에게 넘겼다.안지여는 캄캄한 지하감옥에서 6일을 지내는 동안, 처음엔 침착한 척 가장했으나 사흘째가 되자 울부짖으며 악독한 저주의 말을 내뱉더니, 나흘째가 되자 용서해달라고 애원하며 참회했다.손발의 힘줄이 끊어진 안지여는 일어나 걸을 수도 없고 심지어 스스로 몫숨을 끊을 힘도 없었다.그 와중에 매일 누군가가 먹고 마시도록 해주고, 상처도 치료해 주어 살 수 있다는 부질없는 희망을 품게 했다.훼천의 말에 따르면, 진정한 절망은 살아도 죽느니만 못하고,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것으로, 온 마음으로 죽기를 바라지만 살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가, 안간힘을 쓴 뒤 다시 절망에 빠지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으로, 사람을 한없이 죽였다 살렸다 괴롭힌다고 했다.결국 안지여를 죽일지 말지 여부는 이리봉청에게 달렸는데, 그녀는 안지여를 단번에 죽여 천문 세가
안지여의 이마에 파란 힘줄이 불끈불끈했으나 냉정을 가장했다. “내가 두려워할 줄 알았나 보지? 죽음도 두렵지 않은데 뭘 더 두려워하겠어?”“넌 두려울 것이야!” 이리봉청이 고개를 돌려 이리 나리를 보고 살짝 그의 팔을 잡았다. “내가 오는 길에 늑대파 사람이 그러던데, 천하에서 제일 잔혹한 형벌을 아는 사람이 늑대파에 있다고. 그게 사실인 것이냐?”이리 나리가 가볍게 답했다. “물론 사실이죠. 훼천이라고 합니다. 늑대골 출신이에요.”“안지여가 버틸 수 있는지 어디 한 번 보고 싶구나.” 이리봉청이 말했다.이리 나리가 엄숙한 태도로 명을 내렸다. “훼천!”그러자 훼천이 급히 나왔다. “이리 나리, 분부하시지요!”이리 나리는 그가 짐짓 냉정한 척하고 있으나 눈빛이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몸까지 부들부들 떠는 것이 아주 만족스러워 훼천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시작해!”안지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욕했다. “난 네 아버지거늘, 감히 나에게 손을 대다니, 천벌을 받아 마땅한 놈 같으니라고!”이리봉청이 이 말을 듣고 잠시 주저하는 눈빛으로 이리 나리를 바라봤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제 아버지는 오직 저를 키워주신 안풍 친왕뿐이십니다.”이리봉청이 살짝 안도했다. “저 인간이 단지 나만 해쳤으면 네 체면을 봐서 놔줬겠지만 천문 세가의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니 난 용서할 수 없구나.”“이리봉청, 너 언제 이렇게 악랄하게 변했어? 죽이려거든 그냥 죽여. 난 천문 세가 사람을 죽이긴 했어도 그들을 괴롭히진 않았어. 네가 날 죽이려거든 깨끗하게 단번에 죽여!”안지여가 크게 노해 몇 번 몸부림을 치다가 상처가 벌어지는 바람에 배에서 선혈이 흘러나오고, 훼천이 가까이 다가가자, 눈에 두려움이 깊어졌는데, 늑대골 출신 훼천은 온몸에서 피비린내가 뿜어져 나와 안지여를 덜덜 떨게 했다.“이리율!” 안풍 친왕비는 시ㅈ가하기 전에 이리 나리를 불렀다. “내가 여기서 네 엄마와 같이 있을 테니 넌 먼저 나가 있거라!”이리 나리가 안풍 친왕비에게
안지여에게 구원 병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리 나리 일행이 성을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대오가 경성에서 출발하기 전에, 안풍 친왕비가 미리 사람을 풍도성으로 보내 각처, 특히 성 수비군과 군대에 잠입시켜, 음식에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독을 풀어, 오늘 중독 증상이 나타나도록 독의 분량을 조절했다.적어도 내일까지는 안지여를 도우러 올 사람은 없었다. 독성은 적어도 이틀이 지나야 깨끗해지기 때문에 이틀 동안 그들은 설사와 전신 무기력으로 성에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아도 와서 도울 수 없었다.그리고 그들이 기력을 회복할 때쯤이면, 안지여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는 성을 통제하고, 안지여 부부를 제압해 두 사람을 줄로 묶고 지혈시켜 주었다.안지여는 요 몇 년 동안 자신이 상당히 대단하다고 여겼다. 이는 풍도성이 부유하기 때문으로, 돈으로 많은 사람을 살 수 있었으며, 여러 곳에서 추켜세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처절하게 패배한 적이 없었던 이유는 진정한 적이 없기 때문으로, 주변의 떠돌이 비적은 작은 마을 규모로 너무 작아서 소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그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적이 너무 약해서였다.조정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는 제대로 훈련받은 적 없는 비적었기에 일격도 감당할 깜냥이 못됐다.이리 나리는 둘을 중정에 묶어 두었다. 온 바닥에 남은 음식과 깨진 기와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본 안지여는 마음속 깊이 분노가 일었다. 자신의 생일날, 그를 다치게 한 것이 바로 그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욱이 오늘 이렇게 많은 고수가 현장에 있었는데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런 결말을 맞다니 너무 불쾌했다. 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을 부축하고 안지여 부부 앞으로 가서, 그녀가 안지여 부부를 내려다보자, 그들은 낭패에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이리봉청은 분노하는 마음과 함께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그들을 죽이면 커다란 복수는 이뤄 천문 세가 망자의 원혼은 달랠 수 있었다.하지만 저들을 이렇게 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