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환술? 환술에 누가 능하다고?”위왕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환술…… 참 웃기죠? 저도 환술에 걸려봤지만, 그때도 저는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위왕비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바람에 일렁였다.“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위왕이 소리를 질렀다. 위왕비는 그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고지를 바라보았다.“고지야. 혹시 나한테 환술을 쓴 적이 있느냐?”고지는 눈물을 흘리며 “왕비, 없습니다. 제가 멍청하게 남의 남자를 넘본 것입니다. 미안합니다. 제발 저를 놓아주세요.”라고 말했다. “너는 멍청해서 내 남자를 넘본것이 아니다. 그리고 난 너와 위왕이 같이 살든 뭘 하든 상관없어…… 네가 멍청하다고? 너는 머리가 좋아. 처음에 내가 널 봤을 때 난 네가 그런 여우 같은 여자인 줄은 몰랐지, 내가 너에게 환술에 대해 물었을 때 네가 나에게 했던 말 기억나니?”위왕은 눈물을 흘리는 고지의 모습을 보고 격분하여 주머니에 있던 은 덩어리를 들어 위왕비에게 던졌고, 위왕비는 속수무책으로 위왕이 던진 은 덩어리에 맞아서 이마에 피가 줄줄 흘렀다. 그러나 그녀는 쓰러지지 않고 버텼다. 은덩어리가 땅에 떨어지자 밑에 있던 백성들이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그것을 줍기 위해 달려들었다. 그 순간 위왕비의 비녀가 고지의 손등을 찔렀다. 뾰족한 것이 피부를 관통하자 피가 튀었고 고지는 비명을 지르며 위왕비를 노려보았다. 위왕비는 표정하나 변하지 않은 채 까만 눈으로 고지의 눈을 응시했다.고지의 손목에서 난 피가 위왕비의 얼굴에 튀었는데도 위왕비는 눈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위왕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입을 떡 벌리고 위왕비에게 소리를 질렀다. “최씨, 네가 이렇게 악독한 사람인 줄 내가 꿈에도 몰랐구나! 본왕은 네가 인자하고 덕이 있는 사람으로 여겼어!”위왕의 말에 위왕비가 조소를 띄었다. “인자하고 덕이 있다고? 지난 몇 년간 전 그런 사람이었죠.”“쓸데없는 소리 말고 고지를 풀어주거라! 도대체 원하는 것이 뭐야!”위왕은
“최씨, 자기 손으로 닭 하나 못 잡을 것 같은 연약한 여인네들이 네 편이라 좋겠네?”위왕이 원경릉을 보며 비아냥거렸다. 그 말을 듣고 화가 난 원경릉이 빠른 걸음으로 위왕에게 다가가자 원경릉을 부축하던 만아가 “왕비, 조심하십시오.”라고 말했다. “위왕! 고지가 당신에게 환술을 썼다는 거, 위왕비가 다른 남자와 내통했다고 환술을 썼다는 거! 그걸 알고도 이런 태도를 보일 수 있겠습니까? 고지의 환술에 홀려서 자기 새끼를 죽이다니! 아비가 되어서 그게 할 짓입니까? 피해자인 척은 그만하세요! 여기서 가장 큰 피해를 본 사람은 저 벼랑 끝에 앉아있는 위왕비라고요!”“무슨 헛소리를 짓거리는 게야! 순진무구한 고지가 환술을 써서 본왕을 홀렸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지가 환술을 쓰지 않았다면, 위왕이 한순간에 이렇게 돌변했겠습니까? 당초 고지는 위왕비에게도 환술을 썼고, 미리 물색해 둔 남자를 그녀에게 붙였지만, 위왕비는 위왕에 대한 사랑이 강해서 그 환술을 이겨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고지의 환술에 홀려 위왕비가 다른 사람과 내통했다고 믿어버렸고, 위왕비에게 변명의 기회도 주지 않고 그녀의 아이를 죽이고 지금은 위왕비까지 죽이려 하잖아요!”“……”“우문위! 당신은 사람도 아닙니다!”“헛소리 그만해! 본왕은 너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한마디도 믿지 않을 것이야!”위왕과 말이 통하지 않자 원경릉은 고개를 돌려 위왕비를 보았다. “위왕비! 거기서 내려오세요! 일단 내려오셔서 이 문제를 해결합시다!”“초왕비, 여기까지 와줘서 고맙습니다…… 끝까지 내 편이 되어주어 정말 고마워요……”원경릉은 그녀의 절망적인 미소를 보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저 여린 몸으로 얼마나 아팠을까. 혼자 얼마나 많은 밤을 눈물로 지새웠을까.’“이렇게 죽기에는 억울하지도 않습니까? 이런 버러지 만도 못한 사람들 때문에 목숨을 희생하는 것은 옳지 않아요! 가족들과 부모님을 생각해 보세요. 그들은 당신을 아직도 사랑합니다. 당신이 죽으면 남은 가족들이 얼마나 슬퍼할지 생각하라고요!
백성들은 떨어지는 위왕비를 보고 재빨리 피했다.그 순간 흰 옷을 입은 사람이 나비처럼 날아올라 그녀가 바닥에 닿기 전에 바닥에 엎드려 자신의 몸으로 위왕비를 받았다. 잠시 후 누구 몸에서 나온 피인지 모를 검붉은 선혈이 땅 위에 퍼졌다.원경릉은 바닥에 퍼진 피를 보고 온몸이 얼어붙었다. 그녀는 소매에서 태상황이 하사한 어장을 꺼내 위왕에게 달려들었다. 위왕은 어장에 맞으면서도 떨어진 위왕비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였다. 원경릉은 온 힘을 다해 그의 머리를 내리쳤고 위왕은 피를 흘리며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왕야!” 고지가 깜짝 놀라 원경릉을 노려보았다.원경릉은 멈추지 않고 어장을 휘둘러 고지를 때렸다. 사실 원경릉은 그녀가 때리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몰랐다. 그녀는 위왕비가 자신의 눈앞에서 자살을 했다는 충격에 혼란스러워 어장을 꺼내 휘두른 것이다. 만아가 그녀를 끌어당겨 자리를 옮기고서야 원경릉은 바닥에 앉아 숨을 헐떡이며 터질듯한 가슴을 부여잡았다. 그녀는 처음 겪는 일에 충격이 가시지 않는 듯 눈을 질끈 감고 관자놀이를 붙잡았다.‘위왕비가 잘못한 게 뭐지? 그녀에게 죄가 있다면 한 남자를 진심으로 사랑한 죄밖에 없을 것이다.’원경릉은 너무 슬퍼서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왕비께서 아직 숨이 붙어 있으십니다!” 아래에서 사식이의 외침이 들렸다. 원경릉은 그 소리를 듣고 자신이 임산부라는 사실도 잊은 채 벌떡 일어나 뛰어가려고 했다. 만아는 놀라서 그녀를 부축하며 함께 내려갔다. 원경릉은 백성들이 보지 않게 성벽을 내려가며 몰래 약상자를 꺼냈다. 약상자가 순식간에 커지는 것을 본 만아는 하마터면 놀라서 자빠질 뻔했다.위왕비의 몸은 사식이의 품에 안겨 있었고, 위왕비의 아래에 깔려있던 흰 옷을 입은 남자는 온몸이 피로 물든 채 위왕비의 머리를 손으로 감싸고 있었다. 그 남자는 피를 많이 흘려 얼굴이 창백해진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위왕비를 더 신경 쓰고 있었다. 원경릉은 약상자를 내려놓고 재빨리 지혈침을 놓고 흰옷을 입
“우문위, 너는 이 여인과 혼인을 했으면 끝까지 소중하게 여겼어야지! 이 여인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너를 선택했다고! 네가 감히 이 여인을 버리고 다른 여인에게 눈을 돌려?”“안청양(安青陽)!”위왕이 청양군을 보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갔다.두 사람은 엎치락 뒤치락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싸웠다.흰 옷을 입은 남자가 위왕의 방해를 막자 원경릉은 사내들과 함께 들것으로 위왕비를 데리고 정후부로 갔다. 위왕비는 원경릉이 초기 대처를 잘해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청양군의 도움으로 원경릉은 안전하게 위왕비를 옮기고 원경릉은 위왕비의 옷을 벗기고 자세하게 진찰을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원경릉이 생각했던 것만큼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위왕비는 정신을 잃었고 그 옆에 원경릉은 지쳐서 손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손왕비가 위왕비와 원경릉을 보러 문안을 왔다가 조용히 위왕비를 상황을 살피고 원경릉에게 몇 마디를 했다. “위왕비가 살아있어 천만다행입니다.”손왕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위왕비는 살고 싶었습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위왕비가 연약하다고 생각할 텐데, 저는 그녀가 매우 강하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녀는 살려고 몸부림치고 있습니다.”“압니다. 위왕비가 고생했을 걸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손왕비가 눈물을 흘리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원경릉은 만약 우문호가 위왕처럼 원경릉을 오해하고 다른 여자에게 미혹되어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면 자신은 살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최씨네 집안사람들도 정후부로 찾아왔다. 집안 어른과 최대인도 들어와 원경릉에게 무릎을 꿇고 위왕비를 구해 준 은혜에 감사를 표했다. 원경릉은 키가 190cm정도 되는 중년 남자가 슬픈 얼굴로 원경릉에게 절을 하자 그녀는 마음 한편이 무거워졌다. ‘위왕의 죄가 크다……’최대인께서 무릎을 꿇자 최씨 집안사람들이 자세를 고쳐 앉았고, 나이가 지긋한 노부인까지도 원경릉 앞에 무릎을 꿇어앉았다. 최씨 집안 사람들 틈으로 울음소리가 간간이 들려 나왔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모셔오거라!”원경릉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잠시 후,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남자가 들어왔다. 원경릉은 들어오는 그 남자를 자세히 보았다. ‘풍채도 좋고 외모도 위왕보다 뛰어난 청양군을 놓치다니…… 위왕비도 참……’그의 눈동자가 깊고 풍겨오는 아우라가 어마어마한 남자였다. 원경릉은 청양군의 평판이 좋다는 서일의 말이 단박에 이해가 갔다.“초왕비를 뵙습니다!” 청양군이 말했다.“들어오세요. 청양군.” 원경릉이 고개를 숙이고 그를 맞이했다.청양군은 손을 저었다. “저도 집으로 돌아가 옷도 갈아입어야 하고 입궁도 해야 해서 앉아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전 그저 위왕비의 상태를 묻고자 한 겁니다. 위왕비는 괜찮으십니까?”“위왕비께서는 목숨을 부지했습니다. 어쩌면 금방 좋아질지도 모르겠네요. 한 번 들어가서 보시겠습니까?”청양군의 눈빛이 반짝였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아닙니다. 괜찮다는 것만 알면 됩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그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인사를 하고 떠났다. ‘저렇게 생각이 깊은 남자를 놓치다니…… 복을 제대로 걷어찼구나.’사식이가 원경릉의 속마음을 읽었다는 듯 조용히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위왕비께서 청양군과 혼인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원경릉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 세상에 여자는 시집가면 끝이구나. 이 시대에 좋은 신랑감을 만나서 혼인을 하는 게 팔자를 고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게 딱 맞아.”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위왕비가 성벽에 앉아 있을 때, 위왕은 왜 그녀를 자극했을까요? 도무지 알 수가 없네요. 비록 오해 때문이라고 하지만 위왕비는 위왕이 한 때 사랑했던 여인이잖아요.”라고 말했다.“왕비, 고지의 환술법은 팔찌 방울이 아니라 눈에 있었습니다. 위왕비가 뛰어내리기 전에 고지가 눈으로 환술을 쓴 것이지요.”만아가 말했다.“눈? 어떻게 눈으로 환술을 쓴 거지?”원경릉은 의아한 표정으로 만아를 보았다.만아는 환술이 자신이 알고있던 신장 최면술과 같다고 여겼으나 지금 보니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어난 고지만아가 고개를 흔들며, “몰라요.”사식이가 원경릉에게, “원언니 생각은요?” 원경릉이 추측하고 싶지 않아서: “자신만 알겠지.”사식이가 한숨을 쉬고 매정하게: “위왕비가 고지에게 독을 써서 조지가 죽은 건 조금도 안타깝지 않네요 뭐, 고지가 와서 심지어 환술로 위왕비를 해치려 했잖아요.”위왕부.고지가 침대에 누워 있는데, 의원이 와서 무슨 독인지 몰라 해독할 수 없고 침을 놔서 독이 퍼지는 걸 늦추고 있다고 했다.위왕도 의원이 지혈과 상처 치료를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둔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죽은 사람처럼 있다.지금 성루 위에서의 그 순간을 회상해보니 성루에서 떨어져 내릴 때 위왕의 심장이 하마터면 순간 멈춰버릴 것 같았다.위왕이 왜 그런 말을 해야 했는지 떠올려봤지만 모르겠다.원경릉의 말이 위왕의 귀에 맴돌며 머릿속엔 온통 환술이란 두 글자가 가득하다.최씨의 몸종 야야(雅雅)가 문을 열고 들어와 바닥에 꿇어 앉았는데 손에 약병이 들려 있다. 야야는 울었는지 눈이 심하게 부었다.야야가: “왕비마마께서 만약 그녀가 살아나거든 이 해독약을 왕야께 드리라고 했습니다.”“무슨 뜻이지?” 위왕이 차갑게 야야를 바라봤다.야야가 말했다. “왕비마마의 심리상태가 줄곧 안 좋으셔서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셨습니다. 하지만 마마께서는 살기위해 노력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결국 죽을 경우, 고지는 왕비마마께서 구해주신 목숨이니 그 목숨은 돌려받아 가져 가는 걸로. 만약 살아 나실 경우, 모든 건 다 지난 일로 하시겠다고.”야야가 엎드려 절하고 약을 바닥에 놓고: “쇤네 왕야께 작별인사 올립니다. 돌아가서 아가씨를 위해 물건을 정리해야 해서요. 아가씨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어떻게 되든 다시는 여기 돌아오시지 않겠다고요.”“그래서 처음부터 죽으려는 생각이 없었던 거였군.” 위왕이 쓴 웃음을 지으며, “연극을 했을 뿐이야.”야야가 답답하다는 듯이, “하지만 뛰어내리셨어요, 자신이 살아갈 이유를 찾고자 했지만 찾지 못했죠. 왕야의 마지막 말씀
손왕의 질책과 고지의 유혹고지의 눈알이 산채로 굴러 떨어졌다.고지는 고통으로 침대를 구르며 비명을 질렀다.위왕은 천천히 물러나 손에 피를 닦았다.하인이 달려 와 피비린내나는 현장을 보고 놀라서 그 자리에 우뚝 섰다.위왕이 아무렇지도 않게: “고지 아가씨가 실수로 눈을 다쳤으니 지혈해 주고 의원을 불러 주어라.”말을 마치고 위왕이 천천히 걸어 나가는데 귓가에 고지의 처참한 통곡소리가 들렸다. 위왕은 입술을 말아 올리며 쓴 웃음을 짓는데 눈이 얼음처럼 차갑다.위왕은 위왕부 본관에 앉아 최씨 집안 사람이 오길 기다렸다.하지만 날이 저물도록 기다려도 최씨 집안 사람이 오지 않고,손왕만 왔다.손왕이 궁에서 나오자마자 손왕부로 돌아가는 길에 이 일을 듣고 바로 말을 달려 위왕부로 온 것이다.문으로 들어와 뚱뚱한 주먹을 위왕 얼굴에 날리고, 연속으로 몇 대를 때리는데 위왕은 여전히 꼿꼿하게 앉아 있고 손왕 자신이 먼저 지쳐서 바닥에 나가떨어졌다. 혀를 빼물고 헥헥 숨을 몰아 쉬는 손왕은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한다고, “이 놈의 새끼야!” 욕은 잊지 않았다.위왕이 피를 닦고 떨떠름하게 묻길: “아직 살아있어요?”“당연히 살아 있지, 너는 설마 그녀가 죽었는 줄 알았어?” 손왕이 화를 냈다.위왕의 얼굴이 잿빛으로 썩어 들어 갔다.손왕이 일어나서 위왕의 멱살을 움켜쥐고 손바닥으로 당수를 내리치며, “어쩌자고 이런 병신 같은 짓을 저질렀어? 너 귀신 들렸냐?”위왕이 고집스럽게: “난 틀리지 않았어, 그녀가 먼저 나한테 잘못 했어.”“아직도 고집을 부려?” 손왕이 반대쪽 손으로 한 대 더 때리고, “고집 부려서 쓸데가 있어?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어?”“난 틀리지 않았어!” 위왕이 고개를 들자 편집증에 사로잡힌 미치광이 얼굴로 주먹을 꼭 쥐고, “난 틀리지 않았어.”손왕이 위왕의 이 모습을 보고 그를 놓아주며 고개를 젓더니: “네가 틀리지 않았어? 정말 그렇게 생각해? 셋째야, 잘못을 인정해. 그녀는 너한테 미안하다는 말 들을 자격이
손왕의 일갈“닥쳐!” 위왕이 튀어 오르며 소리를 질렀다. 미친 사람처럼 의자를 집어 들고 던지며, “당장 꺼져, 꺼지라고, 나가, 네 염불소리 듣고 싶지 않으니까, 천한 무당 계집!”고지는 날아온 의자에 맞아서 바닥에 넘어지며 슬픈 목소리로: “당신은 왜 자신의 마음을 똑바로 인정하지 못하죠? 당신 이렇게 하면 안돼요. 우린 아직 아이가 있잖아요.”아이라는 말에 위왕은 멈칫하더니 화산이 폭발하는 것처럼 불길이 치솟아 오른 눈으로 다가와 전신의 힘을 다해 고지의 목을 누르고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죽어버려.”손왕이 당수로 위왕의 뒷목에 일격을 가하자 위왕은 바닥에 픽 쓰러졌으며 고지는 풀려났다.고지도 바닥에 무너져 내려 숨을 헐떡였다.손왕이 명을 내려, “이리 오너라, 저 여자를 명월암으로 보내라.”손왕이 다시 명을 내려, “너희 집 왕야는 차가운 연못에 라도 빠뜨려서 정신 좀 들게 해라.”두 사람은 서둘러 끌려 나갔다.위왕을 차가운 연못에 빠뜨렸다가 다시 건져냈더니 정신을 차리고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정신이 드냐? 정신이 들었으면 얘기 좀 하자.” 손왕이 차갑게 위왕을 바라보며 잔을 하나 건넸다.위왕이 받아 들고 단숨에 털어 넣더니, 벽 귀퉁이에 쭈그리고 음산한 표정을 지었다.“저 여자가 눈을 사용해 환술을 부린다는 걸 어떻게 알았어?” 손왕이 물었다.위왕이 한동안 입술을 떨더니 냉랭하게: “고지가 깰 때 눈에 옅은 안개가 가득하고, 그녀가 그런 눈일때마다 내가 뭘 생각하든지 상관없이 빠르게 빨려 들어갔거든. 하지만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바닥으로 떨어지던 그 장면이 떠올라 말을 꺼내려던 찰나 고지의 눈에 또 그 안개가 생기더군. 매번 내가 고지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보여줄 땐 늘 같은 눈빛을 본 뒤야. 성벽에 있을 때도, 다섯째 제수씨가 그러더군, 고지가 환술을 쓰고 있다고. 환술이란 두 글자를 듣고 나니 마음속으로 번쩍하는 게 있었어, 많은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고 의심이 들었어. 고지를 봤을 때 모든 의심이 다시 나를 찔러 댔
위왕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혹시 복수하려는 것이냐?”“복수가 아니라, 그저 사실을 말할 뿐입니다.”안왕은 그에게 책임을 떠넘겨 혼자 감당하게 한 위왕을 보며 만족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위왕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어찌 다섯째에게 설명할지 생각해 보거라. 보책은 아직 네 손안에 있잖냐.”안왕은 여전히 두꺼운 보책을 손에 쥐고 있었다. 잃어버릴 수 없는 귀한 것이지만, 가만히 들고 있기도 거슬렸다.이렇게 골치 아픈 상황이 생길 줄 알았다면 차라리 꾀병을 부리고 위왕 혼자 오게 한 것이 더 나았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 각자 방으로 돌아가 목욕을 한 후, 막 침대에 누웠을 때 택란이 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두 사람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열고, 바로 택란을 만나러 나갔다.안왕은 보책을 가지려 했으나, 택란에게 넘겨받으면 곧 금나라 황후임을 인정하는 셈이 되므로, 절대 넘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적어도 어린 황제는 아직 그들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택란은 두 분 큰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린 후 자리에 앉아 말했다.“큰아버지, 오늘 일은 아바마마께 절대 말하지 마십시오.”안왕도 원하던 바였기에 다급히 답했다.“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먼저 네 아버지한테 숨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체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른다.”“예. 저도 그것이 걱정입니다.”택란의 가장 큰 걱정은 바로 아버지였다.“어린 황제도 참, 어린 시절의 약속마저 진지하게 받아들이다니… 설령 너와 혼사를 약속했다 해도, 네가 승낙하지 않을 것 아니더냐.”안왕이 말하자 택란은 잠시 머뭇거리며 말했다.“그때 이미 동의했었습니다.”다만 그때는 그저 그를 달래, 그의 상처가 심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 뿐이었다.“승낙했다니?”안왕과 위왕은 서로 놀란 표정으로 시선을 마주했다. 그러면 이 일은 전적으로 어린 황제의 탓도 아니다.“하지만 넌 그때 겨우 여덟, 아홉 살이었다. 그저 아이들의 장난일 뿐일 테니, 동의했다고 해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도 된다.”위왕이 재빨
“폐하, 공주께서 폐하가 드리신 선물을 받지 않으신 것입니까?”언제 올라온 건지, 진이는 어느새 그의 곁에 서 있었다.“응.”경천은 뒤돌아 상자와 두 개의 옥패를 바라보았다. 그가 오랜 시간 동안 배우며 수많은 옥을 망친 끝에 겨우 지금과 같은 모습을 조각해 낸 것이었다.하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속상해하지 마십시오. 공주께서 아직 어리셔서 폐하의 노고를 다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깐요.”진이가 위로하자 경천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니, 그녀는 아주 잘 알고 있어서 받지 않는 것이다.”진이가 잠시 멈칫했다.“너무 잘 안다니요? 그런 것 같진 않아 보였는데요.”경천은 이미 실망한 기분을 떨쳐버렸고, 대신 굳건한 의지를 다졌다.“진아, 나는 그녀의 뜻을 완전히 이해했다. 그녀는 먼저 좋은 황제가 되어주기를 바란단다. 이곳을 떠나기 전, 나에게 한 나라의 군주라 하지 않았냐? 황제로서 역할을 다하기를 바라는 것이다.”“아... 그런 것입니까!”진이는 비록 이해하지 못했지만, 황제가 속상해하지 않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택란 일행은 궁을 나섰다. 냉명여가 그녀에게 물었다.“누나, 어찌 황제가 주신 옥패를 받지 않으시나요? 그를 싫어하시는 것입니까?”택란은 웃으며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나는 절대 그를 싫어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강단 있는 황제이고, 뛰어난 통치로 금나라가 정권 이양 위기를 넘길 수 있도록 했다. 게다가 그는 두 나라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두 나라에 평화를 가져왔다.”“그럼, 어찌 그의 선물을 받지 않으셨습니까?”냉명여는 다른 사람의 선의를 함부로 거절하면 안 된다고 배웠기에, 그녀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택란이 답했다.“그 옥패가 약속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명여야, ‘약속’이라는 말은 무거운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만약 네가 그것을 이행할 능력이 없다면, 함부로 약속하지 말아야 하는 법이다.”“하지만 그도 누나와 혼사를 올리겠다고 한 말에 대한 약속을 지키려는 것 아닙니까?”“그래. 하지만 나
경천은 그녀의 말을 반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네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다."택란이 말했다."어쩌면 5년 후에는 오늘 한 모든 일이 어리석고 충동적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좋아하는 여인을 만나게 될 때, 그 감정이 단순한 사모인지 은혜 때문인지 알게 되실 것이고, 오늘의 행동을 후회하게 될지도 모릅니다."경천은 단 한 마디만 응한 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태도가 이렇게나 분명하니, 절대 그런 말로 그녀를 얽매여 부담을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오늘 한 모든 일은 그의 결정이며 그의 태도였다. 그녀는 몰라도 되고,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긴 하지만, 그는 언제나 그녀를 기다릴 것이었다.그리고 그녀의 인정을 얻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택란은 한숨 놓은 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해한다니 다행입니다.""알고 있다."경천의 얼굴은 약간 창백했지만, 애써 미소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삼 태감이 책자를 가져왔다. 경천은 그것을 택란에게 건넸고, 택란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았다. 그가 제시한 조건은 매우 공정했으며, 심지어 약도성에 이익을 양보한 정도였다.책자를 접은 후, 그녀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우리 약도성을 생각해 줘서 고맙습니다. 두 나라의 원한을 풀기 위해 애써줘서, 그리고 약도성의 백성과 조정이 화해할 수 있도록 도와줘서 고맙습니다.""알고 있었던 것이냐?"경천이 다소 놀라며 묻자, 택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예. 알아봤습니다.""오해하지 마라. 그저 너를 위하여 한 일이 아니니, 부담 갖지 않아도 된다."그는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해명했다.택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오해하지 마시지요. 저는 정말 부담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를 위해 이렇게 많은 일을 해줘서 고마울 뿐입니다. 오늘도 사실 많이 감동했습니다. 다만, 저는 아직 혼사에 대해 논할 나이가 아니고, 사적인 감정보다는 다른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 어리고, 앞으로 혼사를 하더라도 반드시 아바마마
손에 쥐니, 차가운 촉감이 느껴졌다. 그 옥의 차가운 느낌이 서서히 스며들자, 그녀는 기분이 좋았다.그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놀라운 표정을 지었을 때, 그는 미세하게 안도하며, 그녀가 좋아할 것이라 믿었다."직접 만든 것입니까?"택란은 마음에 든 듯 손에 꼭 쥐고 있었다. 그녀의 밝은 눈동자에는 존경이 가득했다."응!"그는 힘주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마음에 드냐?""예. 정말 마음에 듭니다!"택란도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더욱 빛나는 미소를 지었다.그러자 그가 약간 흥분된 표정으로 물었다."그럼, 이걸 직접 나에게 선물해 줄 수 있느냐?""예?"택란이 잠시 멈칫하며, 놀라 물었다."저에게 준 선물이 아닙니까?"그가 미세하게 떨리는 손끝으로 소매 주머니에서 또 다른 옥 조각을 꺼내 손바닥에 올려놓으며, 진지하게 말했다."이건 내가 네게 직접 주고 싶은 것이다."택란은 그가 손에 든 것을 바라보았다. 옥질도 동일하게 맑고 투명했고, 손바닥의 선도 보일 정도였는데, 그 조각에는 경천의 모양이 새겨져 있었다.옥에는 미소를 짓고 있는 준수한 그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고,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입고 있던 옷이 새겨져 있었다. 비록 색은 알 수 없었지만, 자수가 명확하게 새겨져 있었다.그녀는 기억력이 매우 좋았기에, 그때의 기억이 선명히 떠올랐다.그녀는 두 개의 옥을 손바닥에 놓았다. 그제야 그녀는 옥에 3년 전 그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가 시간을 되돌려 3년 전 만남을 담은 것이었다!경천은 택란을 바라보며, 애써 차분함을 유지하려 했다. 하지만 심장은 거의 목구멍까지 올라올 듯했다.택란이 두 개의 옥을 서둘러 상자에 다시 넣으며 말했다."두 개 모두 오라버니께서 먼저 가지고 있으세요."경천은 눈시울을 붉히며 다시 건네받은 상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눈을 내리깔며, 애써 실망이 드리운 눈빛을 숨겼다.삼 태감이 정교한 음식을 올려놓았고, 모두 택란이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그녀는 가볍게 숨을 내쉬며, 알 수 없는 작은 흥분을 억누르고, 표정을 고쳐서 천천히 돌아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북당 백성인 란이 언니와의 혼사는 다 거짓인 겁니까?"경천의 동공이 흔들렸다."혹시... 화가 난 것이냐?""아닙니다."택란이 고개를 젓자, 밝은 빛이 그녀의 깨끗한 얼굴에 비쳤고, 고르게 정리된 이마 밑의 눈동자는 다시 차분해졌다."그런데 어찌 사람을 시켜 저를 찾고 있다고 직접 저게 소식을 전하지 않으셨습니까? 만약 편지를 보냈다면, 저도 오라버니를 만나러 왔을 것입니다. 심지어 혼사에 하객까지 청하며 일을 이렇게나 크게 벌였는데, 대체 어떻게 수습하려고 하십니까?"그는 갑자기 결단을 내린 듯, 천천히 그녀 앞에 섰다. 그러고는 그녀의 까만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위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수습할 필요 없다. 나는 이미 천하에 나의 황후가 우문택란이라고 선언했다. 나는 그녀가 어서 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택란은 순간 놀라하며, 굳어진 얼굴로 물었다.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경천은 그녀가 화가 난 것 같아, 마음이 내려앉았다. 그의 눈동자엔 어두운 그림자가 깔렸고, 이내 조심스레 물었다."응할 수... 있겠느냐?"택란은 잠시 망설였다. 기억 속의 그 소년이 지금 별빛을 받으며 그녀 곁으로 돌아왔다. 이전의 그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10년 후 그가 죽지 않으면 돌아와서 그녀를 부인으로 맞겠다고 열정적으로 말했었다. 그 열정이 가득한 목소리는 지금도 그녀의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그런 과거와 현재가 얽혀 버리자, 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저는..."경천은 그녀가 망설이는 모습을 보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는 그녀의 반응이 너무 당황스러워서, 얼굴을 조금 숙이며 말했다."지금 바로 대답할 필요 없다. 몇 년 후라도, 10년, 아니 20년 후라도 괜찮다.""하지만...""아니, 말하지 말거라."그는 방금까지만해도 가득찼던 자신감을 더 이상 보여줄 수 없
냉명유는 팔짱을 낀 채 검을 가슴 앞으로 옮기며, 차갑게 말했다."누님께서 어디로 가든, 저도 무조건 함께 갈 것입니다."“하… 하지만."삼 태감이 무척 난감해했다."그래. 함께 가자. 이 거월통천각이 정말 달을 딸 수 있는지 어디 가서 보자꾸나!"그러자 택란이 웃으며 말했다.주 아가씨는 조금 의심스러웠다. 정말 공주가 만나고 싶다면, 어찌 공주한테 이렇게 높은 계단을 오르게 할 수 있는가?그러고는 계단 위에 새겨진 난초꽃을 힐끗 보고는 순간 멈칫했다. 시선을 위로 올려보니, 계단의 각 층마다 난초꽃이 새겨져 있었다.황제가 자신의 그리움을 돌계단에 새긴 것이었다!택란도 계단을 오르며, 이 사실을 눈치챘다.게다가 각 난초의 형태와 크기는 매우 똑같았다. 처음에는 선이 조금 거칠게 느껴지긴 했지만, 후에는 점점 더 섬세하고 부드러워 보였다.이건 분명 같은 사람이 새긴 것 같았다. 그가 직접 조각한 것일까? 금나라가 이곳으로 수도를 옮긴지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잠시 후, 그들은 거월통천각의 가장 높은 층에 도착했다. 다행히 냉명여는 문 앞에서 멈추고 안까지 들어가지 않았다.택란은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는데, 안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네개의 용 모양 기둥이 세워져 있었고, 네 모서리에는 각각 올라가 쉴 수 있는 정자가 있었다. 정자에는 난간이 둘러져 있었으며, 가운데에는 탁자와 두 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떠힌. 네 면에 걸려져 있는 대나무 커튼이 걷혀 있어, 사방에서 밖을 볼 수 있었다.그 사이에서 청색 비단옷 차림의 남자가 통천각 옆 난간에 기대어 택란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는 매우 긴장한 듯 손과 발을 살짝 떨고 있었다. 별빛처럼 맑은 눈동자에 약간 숨이 가쁜 듯 보였다. 그는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그녀를 보자마자 이내 눈시울을 붉혔다.재회를 위해 최선을 다하며 가장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에, 그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이 만남을 특별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반짝이는 별들도 그중 하나였다.하지만
손님들이 하나둘씩 떠나자, 경천 황제는 서둘러 궁으로 돌아가 푸른 비단옷으로 갈아입었다.옅은 청색 옷자락에, 소매 끝에는 난초꽃이 수놓아져 있었고, 나머지 부분은 어두운 구름 문양으로 수놓아져 있었다. 이 옷감은 북당에서 온 것이었다."폐하, 꼬마 은인께서 궁문에 도착하셨다고 합니다."삼 태감이 와서 보고했다."좋소."그는 거울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깊은숨을 내쉬었다."택수운천으로 가겠네."택수운천은 그가 즉위한 후, 궁궐 안에 지은 새 궁전으로, 세 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궁전 옆에는 거월통천각이 있었는데, 이는 량주성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거월통천각 안에 있으면 마치 손바닥에 달을 담을 수 있을정도로 웅장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거월통천각에서 멀게는 약도성과 량주가 인접한 산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녀가 생각날 때면, 늘 거월통천각의 가장 높은 층으로 올라가 풍경을 멀리 바라보곤 했다."진이야, 너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해 본 적이 있느냐?"그가 준수한 옷차림으로 난간에 기대어 먼 곳을 바라보며 물었다. 바람이 서서히 불며 청색 옷자락이 휘날리자, 옷자락의 네 끝에 박힌 고급스러운 야명주가 그의 선명하고 잘생긴 얼굴을 비추었다.그때, 저 멀리서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궁 시위를 따라, 아치과 복도를 지나 거월통천각으로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그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젊은 금군 통령 진이가 그의 모습을 보고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런 적 없습니다.""사모의 마음을 품어보거라. 떨리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느낌만큼 좋은 것이 없다."그는 그녀를 멍하니 보며 말했다. 천천히 다가오는 탓에 그녀의 얼굴이 자세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13세 전까지의 그의 인생에는 나라와 백성들 뿐이었지만, 13세 이후 그의 인새은 온통 그녀뿐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지금 그녀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진이는 황제의 시선을 따라, 천천히 다가오는 세 명을 보며
안왕은 보책을 받아 든 순간, 갑자기 무엇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정확히 어떤 점이 이상한지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일이 다 이상하게 느껴졌다.보책을 펼쳐 안에 적힌 이름을 본 순간 그는 드디어 이상한 점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게 되었다.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굳어진 표정으로 경천 황제를 바라보았다.경천 황제는 얼굴에 미소를 띠며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조사를 통해 드디어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되었소. 그녀의 이름은 우문택란이오. 금나라 황후의 이름은 우문택란이네. 난 반드시 그녀를 찾아낼 것이오. 만약 그녀가 황후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황후의 자리는 그녀를 위해 계속 비워둘 것이네.”위왕은 온몸에 식은땀을 흐르는 탓에 두 손을 급히 움켜잡았다. 방금 황제가 보책을 그의 손에 올리지 않아, 그가 받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정말 다섯째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다!안왕은 어두워진 안색으로 자리에서 물러나 이를 악물고 낮은 소리로 위왕에게 말했다.“방금까지도 어린 황제에게 어리석다고 했건만. 이렇게 계책에 능하고 이따위 교묘한 계책으로 우리 형제를 그와 같은 편에 서게 만들다니...!”위왕은 또 한 걸음 물러서며 아무런 표정 없이 말했다.“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방금 술을 두 잔 마셔 조금 취한 터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구나. 아니, 지금 들고 있는 그건 무엇이냐?”안왕은 단단한 그의 팔을 비틀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분노했다.하지만 이 상황 속에서 연회는 계속되었고, 사람들의 감정은 점점 고조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북당 황제의 작은 공주도 우문택란이라는 말을 꺼냈다.그 말에 다들 그 당시 금나라 황제를 구한 사람이 북당의 작은 공주가 맞는지 추측하기 시작했다.정말 북당 공주가 맞는다면, 금나라 황제도 참 배짱이 큰 것이다. 사실상 북당 황실이 금나라 황제를 구했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만약
경천은 위왕의 말을 듣자, 마치 마음속 큰 돌덩이가 내려간 듯 후련해 보였다. 그는 그러고는 궁인에게 술을 올리게 해 술잔을 여러 차례 돌린 후, 아래를 둘러보며 말했다.“오늘 여러분께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겠소. 이 이야기를 듣고 나면 오늘 정혼연이 어찌 열리게 되었는지 알게 될 것이오.”그러자 모두가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말에 당황을 금치 못하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정혼연이든 혼례든, 이런 자리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이때, 위왕이 안왕의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다섯째에게 서신을 보내야겠다. 금나라에서 실권을 쥐고 있는 자가 황제가 아닐 수도 있다. 진국왕이 아직 살아 있고, 이 황제가 꼭두각시일지도 모른다.”“맞소. 확실히 조금 병신같아 보이네.”안왕도 동의했다.참고로 ‘병신같다’는 표현은 안왕이 조카에게서 배운 단어였다.“이 이야기는 3년 전쯤에 있었던 일이오.”이내 경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의 목소리에는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 담겨져 있었다.“당시 금나라는 진국왕이 집권하고 있었는데, 그는 나를 대신해 금나라의 군주가 되려 했소. 이 사실은 여러분도 알고 있을 것이오. 그때 난 진국왕과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소. 진국왕이 왕위를 빼앗으려 나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민다고 하기에, 나도 어쩔 수 없이 반격에 나섰는데, 그 과정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소. 그때 나를 구해준 이가 바로 란이라는 소녀이오. 만약 그녀가 없었다면 난 이미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오. 그 당시 나는 란이의 정체도 몰랐고, 그저 약도성 사람이라는 것만 알았을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소. 상처를 치료하며 그녀와 며칠을 함께 보냈고, 황권을 되찾으면 그녀를 부인으로 맞이하겠다고 약속했네. 하지만 그녀가 나를 구했다는 사실이 진국왕에게 알려졌고, 진국왕이 사람을 보내 그녀의 집에 불을 질렀소. 그리고 그곳에서 시신이 발견되었소.”모두가 진국왕이 불을 질렀다는 말에 멈칫했다.금나라 황제가 이렇게 비극적인 황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