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문위, 너는 이 여인과 혼인을 했으면 끝까지 소중하게 여겼어야지! 이 여인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너를 선택했다고! 네가 감히 이 여인을 버리고 다른 여인에게 눈을 돌려?”“안청양(安青陽)!”위왕이 청양군을 보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갔다.두 사람은 엎치락 뒤치락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싸웠다.흰 옷을 입은 남자가 위왕의 방해를 막자 원경릉은 사내들과 함께 들것으로 위왕비를 데리고 정후부로 갔다. 위왕비는 원경릉이 초기 대처를 잘해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청양군의 도움으로 원경릉은 안전하게 위왕비를 옮기고 원경릉은 위왕비의 옷을 벗기고 자세하게 진찰을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원경릉이 생각했던 것만큼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위왕비는 정신을 잃었고 그 옆에 원경릉은 지쳐서 손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손왕비가 위왕비와 원경릉을 보러 문안을 왔다가 조용히 위왕비를 상황을 살피고 원경릉에게 몇 마디를 했다. “위왕비가 살아있어 천만다행입니다.”손왕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위왕비는 살고 싶었습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위왕비가 연약하다고 생각할 텐데, 저는 그녀가 매우 강하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녀는 살려고 몸부림치고 있습니다.”“압니다. 위왕비가 고생했을 걸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손왕비가 눈물을 흘리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원경릉은 만약 우문호가 위왕처럼 원경릉을 오해하고 다른 여자에게 미혹되어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면 자신은 살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최씨네 집안사람들도 정후부로 찾아왔다. 집안 어른과 최대인도 들어와 원경릉에게 무릎을 꿇고 위왕비를 구해 준 은혜에 감사를 표했다. 원경릉은 키가 190cm정도 되는 중년 남자가 슬픈 얼굴로 원경릉에게 절을 하자 그녀는 마음 한편이 무거워졌다. ‘위왕의 죄가 크다……’최대인께서 무릎을 꿇자 최씨 집안사람들이 자세를 고쳐 앉았고, 나이가 지긋한 노부인까지도 원경릉 앞에 무릎을 꿇어앉았다. 최씨 집안 사람들 틈으로 울음소리가 간간이 들려 나왔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모셔오거라!”원경릉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잠시 후,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남자가 들어왔다. 원경릉은 들어오는 그 남자를 자세히 보았다. ‘풍채도 좋고 외모도 위왕보다 뛰어난 청양군을 놓치다니…… 위왕비도 참……’그의 눈동자가 깊고 풍겨오는 아우라가 어마어마한 남자였다. 원경릉은 청양군의 평판이 좋다는 서일의 말이 단박에 이해가 갔다.“초왕비를 뵙습니다!” 청양군이 말했다.“들어오세요. 청양군.” 원경릉이 고개를 숙이고 그를 맞이했다.청양군은 손을 저었다. “저도 집으로 돌아가 옷도 갈아입어야 하고 입궁도 해야 해서 앉아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전 그저 위왕비의 상태를 묻고자 한 겁니다. 위왕비는 괜찮으십니까?”“위왕비께서는 목숨을 부지했습니다. 어쩌면 금방 좋아질지도 모르겠네요. 한 번 들어가서 보시겠습니까?”청양군의 눈빛이 반짝였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아닙니다. 괜찮다는 것만 알면 됩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그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인사를 하고 떠났다. ‘저렇게 생각이 깊은 남자를 놓치다니…… 복을 제대로 걷어찼구나.’사식이가 원경릉의 속마음을 읽었다는 듯 조용히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위왕비께서 청양군과 혼인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원경릉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 세상에 여자는 시집가면 끝이구나. 이 시대에 좋은 신랑감을 만나서 혼인을 하는 게 팔자를 고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게 딱 맞아.”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위왕비가 성벽에 앉아 있을 때, 위왕은 왜 그녀를 자극했을까요? 도무지 알 수가 없네요. 비록 오해 때문이라고 하지만 위왕비는 위왕이 한 때 사랑했던 여인이잖아요.”라고 말했다.“왕비, 고지의 환술법은 팔찌 방울이 아니라 눈에 있었습니다. 위왕비가 뛰어내리기 전에 고지가 눈으로 환술을 쓴 것이지요.”만아가 말했다.“눈? 어떻게 눈으로 환술을 쓴 거지?”원경릉은 의아한 표정으로 만아를 보았다.만아는 환술이 자신이 알고있던 신장 최면술과 같다고 여겼으나 지금 보니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어난 고지만아가 고개를 흔들며, “몰라요.”사식이가 원경릉에게, “원언니 생각은요?” 원경릉이 추측하고 싶지 않아서: “자신만 알겠지.”사식이가 한숨을 쉬고 매정하게: “위왕비가 고지에게 독을 써서 조지가 죽은 건 조금도 안타깝지 않네요 뭐, 고지가 와서 심지어 환술로 위왕비를 해치려 했잖아요.”위왕부.고지가 침대에 누워 있는데, 의원이 와서 무슨 독인지 몰라 해독할 수 없고 침을 놔서 독이 퍼지는 걸 늦추고 있다고 했다.위왕도 의원이 지혈과 상처 치료를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둔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죽은 사람처럼 있다.지금 성루 위에서의 그 순간을 회상해보니 성루에서 떨어져 내릴 때 위왕의 심장이 하마터면 순간 멈춰버릴 것 같았다.위왕이 왜 그런 말을 해야 했는지 떠올려봤지만 모르겠다.원경릉의 말이 위왕의 귀에 맴돌며 머릿속엔 온통 환술이란 두 글자가 가득하다.최씨의 몸종 야야(雅雅)가 문을 열고 들어와 바닥에 꿇어 앉았는데 손에 약병이 들려 있다. 야야는 울었는지 눈이 심하게 부었다.야야가: “왕비마마께서 만약 그녀가 살아나거든 이 해독약을 왕야께 드리라고 했습니다.”“무슨 뜻이지?” 위왕이 차갑게 야야를 바라봤다.야야가 말했다. “왕비마마의 심리상태가 줄곧 안 좋으셔서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셨습니다. 하지만 마마께서는 살기위해 노력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결국 죽을 경우, 고지는 왕비마마께서 구해주신 목숨이니 그 목숨은 돌려받아 가져 가는 걸로. 만약 살아 나실 경우, 모든 건 다 지난 일로 하시겠다고.”야야가 엎드려 절하고 약을 바닥에 놓고: “쇤네 왕야께 작별인사 올립니다. 돌아가서 아가씨를 위해 물건을 정리해야 해서요. 아가씨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어떻게 되든 다시는 여기 돌아오시지 않겠다고요.”“그래서 처음부터 죽으려는 생각이 없었던 거였군.” 위왕이 쓴 웃음을 지으며, “연극을 했을 뿐이야.”야야가 답답하다는 듯이, “하지만 뛰어내리셨어요, 자신이 살아갈 이유를 찾고자 했지만 찾지 못했죠. 왕야의 마지막 말씀
손왕의 질책과 고지의 유혹고지의 눈알이 산채로 굴러 떨어졌다.고지는 고통으로 침대를 구르며 비명을 질렀다.위왕은 천천히 물러나 손에 피를 닦았다.하인이 달려 와 피비린내나는 현장을 보고 놀라서 그 자리에 우뚝 섰다.위왕이 아무렇지도 않게: “고지 아가씨가 실수로 눈을 다쳤으니 지혈해 주고 의원을 불러 주어라.”말을 마치고 위왕이 천천히 걸어 나가는데 귓가에 고지의 처참한 통곡소리가 들렸다. 위왕은 입술을 말아 올리며 쓴 웃음을 짓는데 눈이 얼음처럼 차갑다.위왕은 위왕부 본관에 앉아 최씨 집안 사람이 오길 기다렸다.하지만 날이 저물도록 기다려도 최씨 집안 사람이 오지 않고,손왕만 왔다.손왕이 궁에서 나오자마자 손왕부로 돌아가는 길에 이 일을 듣고 바로 말을 달려 위왕부로 온 것이다.문으로 들어와 뚱뚱한 주먹을 위왕 얼굴에 날리고, 연속으로 몇 대를 때리는데 위왕은 여전히 꼿꼿하게 앉아 있고 손왕 자신이 먼저 지쳐서 바닥에 나가떨어졌다. 혀를 빼물고 헥헥 숨을 몰아 쉬는 손왕은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한다고, “이 놈의 새끼야!” 욕은 잊지 않았다.위왕이 피를 닦고 떨떠름하게 묻길: “아직 살아있어요?”“당연히 살아 있지, 너는 설마 그녀가 죽었는 줄 알았어?” 손왕이 화를 냈다.위왕의 얼굴이 잿빛으로 썩어 들어 갔다.손왕이 일어나서 위왕의 멱살을 움켜쥐고 손바닥으로 당수를 내리치며, “어쩌자고 이런 병신 같은 짓을 저질렀어? 너 귀신 들렸냐?”위왕이 고집스럽게: “난 틀리지 않았어, 그녀가 먼저 나한테 잘못 했어.”“아직도 고집을 부려?” 손왕이 반대쪽 손으로 한 대 더 때리고, “고집 부려서 쓸데가 있어?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어?”“난 틀리지 않았어!” 위왕이 고개를 들자 편집증에 사로잡힌 미치광이 얼굴로 주먹을 꼭 쥐고, “난 틀리지 않았어.”손왕이 위왕의 이 모습을 보고 그를 놓아주며 고개를 젓더니: “네가 틀리지 않았어? 정말 그렇게 생각해? 셋째야, 잘못을 인정해. 그녀는 너한테 미안하다는 말 들을 자격이
손왕의 일갈“닥쳐!” 위왕이 튀어 오르며 소리를 질렀다. 미친 사람처럼 의자를 집어 들고 던지며, “당장 꺼져, 꺼지라고, 나가, 네 염불소리 듣고 싶지 않으니까, 천한 무당 계집!”고지는 날아온 의자에 맞아서 바닥에 넘어지며 슬픈 목소리로: “당신은 왜 자신의 마음을 똑바로 인정하지 못하죠? 당신 이렇게 하면 안돼요. 우린 아직 아이가 있잖아요.”아이라는 말에 위왕은 멈칫하더니 화산이 폭발하는 것처럼 불길이 치솟아 오른 눈으로 다가와 전신의 힘을 다해 고지의 목을 누르고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죽어버려.”손왕이 당수로 위왕의 뒷목에 일격을 가하자 위왕은 바닥에 픽 쓰러졌으며 고지는 풀려났다.고지도 바닥에 무너져 내려 숨을 헐떡였다.손왕이 명을 내려, “이리 오너라, 저 여자를 명월암으로 보내라.”손왕이 다시 명을 내려, “너희 집 왕야는 차가운 연못에 라도 빠뜨려서 정신 좀 들게 해라.”두 사람은 서둘러 끌려 나갔다.위왕을 차가운 연못에 빠뜨렸다가 다시 건져냈더니 정신을 차리고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정신이 드냐? 정신이 들었으면 얘기 좀 하자.” 손왕이 차갑게 위왕을 바라보며 잔을 하나 건넸다.위왕이 받아 들고 단숨에 털어 넣더니, 벽 귀퉁이에 쭈그리고 음산한 표정을 지었다.“저 여자가 눈을 사용해 환술을 부린다는 걸 어떻게 알았어?” 손왕이 물었다.위왕이 한동안 입술을 떨더니 냉랭하게: “고지가 깰 때 눈에 옅은 안개가 가득하고, 그녀가 그런 눈일때마다 내가 뭘 생각하든지 상관없이 빠르게 빨려 들어갔거든. 하지만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바닥으로 떨어지던 그 장면이 떠올라 말을 꺼내려던 찰나 고지의 눈에 또 그 안개가 생기더군. 매번 내가 고지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보여줄 땐 늘 같은 눈빛을 본 뒤야. 성벽에 있을 때도, 다섯째 제수씨가 그러더군, 고지가 환술을 쓰고 있다고. 환술이란 두 글자를 듣고 나니 마음속으로 번쩍하는 게 있었어, 많은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고 의심이 들었어. 고지를 봤을 때 모든 의심이 다시 나를 찔러 댔
배후의 안왕과 아라안왕부(安王府)!오늘밤 친왕들은 모두 궁중에서 진북후를 위해 개선의 피로를 푸는 연회를 하고 있다.안왕(安王)은 반쯤 취해서 돌아와 대문을 들어서자 마자 서재로 갔다.붉은 비단치마를 입은 여인이 서재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안왕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일어나 예를 취하는데, 얼굴 가득 미소가 번지며, “왕야, 돌아오셨습니까?”안왕이 문을 닫고 겉옷을 벗어 옷걸이에 걸더니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아라야, 어떤 상황이야?”아라라 불린 여자는 약간 근심이 서린 눈으로: “위왕비는 성벽에서 자진했으나 초왕비가 구해서 지금 정후부에 있습니다.”안왕이 자리에 앉으며 짙은 눈썹을 찡그리고, “초왕비가 구해?”“예, 계산 착오였습니다.” 아라가 말했다.안왕이 ‘흠’하더니: 그걸 것까진 아니고, 적어도 셋째는 이번 일로 철저하게 망가졌겠지, 최씨 집안의 지원을 잃으면 큰형도 셋째와 어울릴 필요 없고.”“예, 기왕은 위왕을 버릴 게 확실합니다.” 아라가 말했다.안왕이 옅은 냉소를 띠고, “큰형이 셋째를 버리는 걸로 끝나지 않고 아바마마도 셋째에게 벌을 내릴 게 틀림없어, 이것도 다 자업자득이지, 당초에 셋째가 큰형 편을 들 때부터 이럴 운명이었던 거야.”아라도 애석한듯: “그래요, 만약 위왕이 그때 황제 폐하 앞에서 기왕을 구명하지 않았으면, 호부가 도난 당한 일로 폐하께서 기왕의 죄를 다스렸을 텐데 말이죠. 위왕이 정에 호소하며 선처를 바라는 바람에 폐하께서 핏줄의 정에 이끌려 기왕을 풀어 주셨죠. 정말 아까운 큰 기회를 놓쳐버렸어요”안왕의 눈에 사악한 기운이 스치고 지나가며, “지금도 뭐 괜찮아, 최씨 집안 쪽에 사람을 시켜서 소문 좀 내. 고지는 큰형을 찾아갔다고, 그리고 고지를 죽여서 입을 막을 거라고, 쓸모가 없어졌으니까.”아라가 예를 취하며, “예!”조금 있다가 아라가 다시: “그런데, 왕야는 최씨 집안이 확실히 우리 쪽에 붙게 할 방법이 있으신 가요?”창으로 회오리 바람이 들어와 등불이 갑자기 흔들리고 안왕의 얼굴이 절반
위왕비를 살린 원경릉위왕비가 뛰어내리던 그 순간을 떠올리니, 원경릉은 또다시 심장이 오그라드는 기분이다.원경릉은 침대에서 잡다한 생각을 하는데 마음이 차분해지질 않는다.우문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원경릉은 얼른 두손으로 얼굴을 문지르고 따스하고 평화로운 미소를 만들어 낸 뒤 생기발랄한 척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우문호가 들어와서 얼른 앞으로 오더니 원경릉 표정을 훑어보고: “척하지 마라. 눈꺼풀도 못 들어올리면서.”원경릉이 얼굴에서 힘을 빼고 작게 내뱉듯이, “밥 먹었어?”“배 터지겠어, 셋째 형수는 정후부에 계셔?” 우문호가 앉아서 손가락으로 눈가에 근육을 풀어주었다.“응, 여기 계셔, 최씨 집안에서는 데려가고 싶다는데, 지금은 얘기 안 했어.” 원경릉이 말했다.우문호가: “상태가 심각해?”“심각해, 그런데 엄청 심각한 건 아니야.” 원경릉이 우문호의 손을 내리고 우문호에게, “진북후 봤어? 호 아가씨는 만났고?”우문호가: “호 아가씨는 데리고 입궁하지는 않았고, 진북후는 호공자(扈公子)를 데려 갔어, 보긴 봤지만 눈도 마주치지 못 했어.”“아마 그 사람이 왕야가 마음에 안 들었나 봐.” 원경릉이 위로했다.우문호가 풀이 죽은 얼굴로, “그럼 어쩔 수 없지, 나만큼 똑똑하고 잘생긴 사람이 눈에 안 찬다는 데 별 수 있나?”원경릉이 가볍게 우문호의 볼을 때리며, “너무 자만하지 말자, 잘 봐, 뒤에서 왕야를 유념해 두고 있을 걸, 아바마마께서 진북후의 딸을 왕야의 후궁으로 삼으려는 심산을 진북후가 틀림없이 아는데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을 리가 있겠어?”우문호가 웃으며: “진북후가 만약 살펴봤다면 나한테 사자처럼 흉폭한 아내가 있다는 걸 알아차렸을 거야. 딸이 시집와서 구박받는 게 두렵지 않았을까? 진북후가 딸을 엄청 사랑하거든.”원경릉이 시큰둥하게 마지못해서 웃었다.우문호가 원경릉을 보고, “이 얘긴 그만해, 오늘 성루에 올라갔어?”“올라갔어.”“무엄하다!”“’목숨이 먼저’라는 다섯 글자를 알아줬으면 해.”“’위험’이란 두
위왕비의 속마음원경릉은 위왕비와 잠깐 얘기를 나누고 싶어 노부인에게: “약간의 검사와 문진을 좀 해야 하는데, 여러분들께서는 잠시 나가셔서 야식이라도 좀 드시고 오시는 게 어떨까요?”노부인은 사리에 밝은 사람으로 손녀 마음의 괴로움을 헤아릴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이 여기 있으면 감정을 표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하지만 집안 여자들도 쉽게 나갈 분위기가 아닌 것이, 위왕비가 또 목숨을 끊을까 걱정해서다. 하지만 초왕비가 있으니 우리 다 큰 바보손녀를 진정시켜 주겠지.노부인은 모든 집안사람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과연 그들이 나가자 위왕비 얼굴에 미소가 스르륵 꺼지고 눈빛이 어두워졌다.“전부 갔어요.” 원경릉이 작게 말했다.위왕비가 외로운 표정으로, “그러네요, 전부 갔네요.”위왕비가 눈을 들어 원경릉을 보고: “오늘 놀라게 해서 미안해요.”“진짜 놀랐어요, 뛰어내리면 안돼요.” 원경릉이 아주 낮은 소리로 말했다: “만약 정말 죽었으면, 오늘밤 만난 이 사람들이 얼마나 슬퍼했겠어요?”위왕비의 눈가에 물기가 맺히며, “요 며칠 머리속이 복잡해서 자신을 통제할 수가 없어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다 가도 또 할 수 있는 게 뭔지 모르겠어요.”원경릉이: “정서에 문제가 생긴 거예요, 그건 병이에요, 치료가 필요한. 여전히 같은 말을 하지만, 만약 제가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제가 치료하게 해주세요. 치료를 마친 뒤에는 오늘 같은 그런 일을 다시는 생각도 하지 않을 게 확실해요.” 위왕비가 한동안 침묵하다가: “성루에 있을 때, 당신 눈빛을 봤어요. 아주 따뜻했어요. 한줄기 불꽃이 내 마음속에 불붙기 시작해 돌아가고 싶었어요, 결코 당신을 실망시킬 생각은……”“알아요.” 원경릉이 얼른 말하고 위왕비의 손을 잡으며, “그래서 계속 말하잖아요. 당신은 특히 용감하고, 특히 이성적이라고.”“이성적이면 그런 짓을 하지 말아야죠.” 위왕비는 쓴 웃음을 지으며, “사실 고지를 죽이고 싶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고지를 죽이는 건 식은 죽 먹기였
홍엽이 조용하고도 냉정한 말투로 물었다. “공무를 보러 가는 것이냐?”“저는 원래 공사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공무를 보러 가는 것도 여행이라 할 수 있죠.”냉정언이 온화한 눈빛으로 냉명여를 바라보았다. “손자도 이제 다 컸으니, 함께 데리고 나가 바깥세상을 경험해 볼 때가 되었지.”냉명여가 고개를 들었다. 냉정한의 눈빛은 다시 싸늘하게 변했다.이 집안에서 냉정한은 엄격했으며, 홍엽은 편애를 받았다. 그렇기에 둘은 서로 보완이 되었다.“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짐부터 싸야겠네요. 얼마나 가 있는 겁니까?”홍엽이 기쁜 목소리로 물었다.“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오면 되니 일수는 생각할 필요 없다. 어쨌든 우문호는 항상 나에게 짐을 지우고 있었으니, 우리도 즐길 때가 되었지.”냉정언이 복수하듯 말했다.홍엽이 웃었다. “정말 그럴 만도 합니다.”그의 수양딸을 만나러 가는 길이니, 무척이나 기뻤다.홍엽이 우문호에게 품고 있는 가장 큰 불만은 자신과 수양딸 사이를 막고 있는 것이었다. 분명 자신의 수양딸임에도 우문호가 독점하고 있으니, 너무나도 과한 처사였다.황제가 된 사람들의 성격은 대체로 좋지 않았다.세 명의 사람과 한 마리의 원숭이가 조용히 성을 빠져나갔다. 흠차라고는 하지만 어떠한 허례허식도 없었다.그들이 떠난 뒤, 탕양도 약도성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탕양은 최근 몇 년 동안 바쁘게 일하며 많이 늙었고, 머리카락은 흰머리가 수북했다.그는 이전에 우문호의 최측근 신하였으며 지금은 우문호의 전반적인 심부름꾼이었다. 관직이 내려져 고용된 것이 아닌, 그저 유용한 사람으로써 투입된 것이었다. 그는 우문호에게 직접 보고를 올렸으며, 어떤 관청에서도 그를 관리할 수 없었다.근래 몇 년 동안 그는 병부에서 군사를 정리하고 호부에서 전국의 땅과 세금을 다루며 새로운 정책을 세우는 데 도움을 주었다. 또한 이부에서 심사에 참여하고 형부에서 중대 사건을 옆에서 다루었다.황후는 탕대인이 벽돌과도 같아 필요한 곳 어디에서든 쓰일 수
“좋은 생각이십니다. 가능한 빠를 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조정의 은혜를 이어 갈 수도 있습니다.”냉정언은 그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 들였다.그리고 잠시 멈칫하고는 우문호를 바라 보았다.“그리고 공주님을 보살 피라는 말씀이시지요?”“역시 지혜로운 수보구나. 짐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꿰뚫어 보고 있어.”우문호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폐하께서 공주님을 아끼시는 건 궁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인이 궁에 들어오기 전에 폐하께서 갔다 오실 줄 알았습니다.”“짐이 생각 해보았지. 지금 때에 약도성에 들리면 이득이야. 조정을 향한 백성의 믿음도 생기고, 결코 짐이 백성을 버리지 않았다는 뜻이 될 테니 말이야. 하지만 내가 조정을 떠나면 나에게 반심을 가진 자들이 모여서 내란을 일으킬 수 있어. 자네를 수보의 신분으로 보내는 게 제일 안전한 방법이네.”냉정언이 고개를 끄덕였다.“옳으신 말씀입니다. 사실 소인은 폐하께서 직접 가실 것 같아 설득을 해볼 생각이었습니다.”우문호는 애매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짐이 자식들 때문에 나랏일을 뒤로 미루는 사람으로 보이는가.”“공주님이라면 그럴지도 모르지요.”냉정언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소인이 폐하를 너무 얕보았나 봅니다.”“짐도 구분은 할 줄 아네. 쉽게 위험 속에 몸을 던지는 사람이 아니야.”게다가 그는 집에서 제일 약한 사람이 아닌가. 냉정언이 답했다.“네, 알겠습니다. 홍엽 공자에게 일러 두겠습니다. 내일 출발 할 수 있게 말입니다.”“홍엽 공자도 가는 것인가?”우문호가 눈을 크게 떴다.“소인이 오랜만에 나가는 외출 입니다. 제 아들도 바깥 세상 한번 구경 시켜줘야 하지 않겠습니까.”우문호가 의미심장한 태도로 답했다.“그래, 명여도 데려가게. 사내 아이는 많이 둘러 보는 게 좋지.”“명어 그 아이는 홍엽 공자를 잘 따릅니다.”냉정언이 말했다.“그래, 네가 누굴 데려가든 상관없다.네가 가면 되는 것이니 말이다.”우문호는 허공에 손을 흔들었다.말을 끝나
하지만 새해의 기쁨도 초 닷새 날까지뿐이었다.초 엿샛날이 되자 각 부서들이 하나둘씩 출근하기 시작했다.우문호의 표정이 좋지 않다.출근 때문이 아니라 택란이 약도성에 다녀오겠다는 말 때문이다.약도성은 큰 화재 때문에 재건설을 했다.그녀는 직접 두 눈으로 봐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게다가 형제들도 곧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원경릉은 우문호를 하룻 밤 내내 설득하기 바빴다.곧이어 우문호는 위왕과 안왕에게 임무를 주었다. 강북부에 도착하면 즉시 그에게 보고를 하라는 내용이었다.위왕과 안왕은 억울하기 그지없었다.왕의 위치에 오르니 사람도 변한다는 사실이 와닿았다.우문호는 한 사람씩 배웅을 해주었다.하지만 아이들은 반겨 하지 않았다.그들의 삼촌을 지켜줘야 할 뿐만 아니라 속도가 현저히 느려지기 때문이다.하지만 우문호는 자신의 결정을 굽히지 않았다.옆에 있던 서일도 같이 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그 이유는 출장 비용을 황후가 흔쾌히 내어 주기 때문이다.아이들이 또다시 다른 지역으로 떠난다.역란은 자신이 벌써 열 살이라며 강조했다.나이가 어떻게 되든 10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것은 사실이다.“역란아, 아바마마가 마음이 아프다.궁에 남아 나와 더 놀아주지 않겠어?”마차가 지나가고, 경단이 역란에게 물었다.“이만하면 됐습니다. 조금만 더 지내면 싫어하실 거예요.”역란이 혀를 내밀고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아이고, 이 녀석아.”경단은 역란의 말에 무언가를 깨달은 듯했다.‘적당한 거리가 아련함을 만든다.’마차가 천천히 성 밖을 나갔다.한편, 어서방 안.30분 전, 우문호가 냉정언에게 바둑을 두자고 불렀다.몇 판을 졌지만 우문호는 화도 내지 않고, 바둑판을 엎지도 않았다.다음 판이 또 시작되자 냉정언이 그를 말렸다.“폐하, 무슨 일이 있으시면 말씀을 하세요. 계속하셔도 저한테 질 뿐입니다.”“지지 않을 걸세!”우문호가 그를 노려 보았다.냉정언이 차를 한 입 들이켰다.“그래서 무슨 일 이십니까?”우문호의 인내심
“매화장에서 새해를 보내고 정월 초이틀에 돌아오마. 세뱃돈은 한 사람당 하나씩이니, 욕심은 부리면 안 되느니라!”원경릉이 종이에 적힌 글을 소리내어 읽었다.“매화장에 가셨다고? 혼자서 보낸다고 하시지 않았나?”우문호는 이상하다고 생각이 들었다.‘매화장에 무슨 볼거리라도 생긴 걸까? 우린 초대도 못 받았는데.’“어쩔 수 없지요, 그만 갑시다.”원경릉이 말했다.그들이 자신들의 세뱃돈을 꺼냈다.돌아가려던 찰나, 다른 부부들과 마주쳤다.미색부부, 손왕 부부와 공주 부부도 온 것이다.그들의 손엔 선물을 들고 있었다.우문호는 반대로 아무것도 들고 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얼굴을 붉혔다.“다들 어디가신 겁니까?”미색이 성큼 들어와 그들에게 물었다.“매화장에 가셨어.”원경릉이 종이를 내보였다.곧이어 상자를 가리키며 말했다.“새뱃돈은 한 사람당 하나씩.”“너무 대충 준비 하셨네.”회왕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매년 새해에는 시끌벅적하게 보냈기 때문이었다.그는 어젯 밤,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하지만 어딘가 부족한 마음이 들어 아침 일찍 찾아온 것이다.새해에 숙왕이 없으니 무언가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모두 실망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그저 멀뚱멀뚱하게 서로를 바라볼 뿐이다.‘새해에 집에 있으면 새해의 느낌이 없지 않은가.’이때, 우문호가 의견을 내놓았다.“매화장에 가보는 게 어떻겠습니까?”“좋아, 지금 출발 하자구나.”손왕이 서둘러 답했다.한편, 매화장 안.전 명원제는 답답하기 그지 없었다.그는 그저 혼자 조용히 새해를 맞이하고 싶었다.어제까지만 해도 모두 각자 새해를 보낸 다는 소식에 그는 기뻐했다.광대짓을 안 해도 된다는 생각에 해방감을 느낀 것이다.하지만 기쁨도 잠시 순식간에 사람들이 몰려와 매화장을 꽉 채웠다.무상황이 나타나 노인들끼리 같이 새해를 보내자고 제안을 한 것이다.그는 공간이 넓고, 옆으로 산이 있다는 이유로 매화장을 택했다. 전 명원제는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그도 노인이기 때문이다.그리하여
원경릉은 그의 말에 마음이 아팠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각도 하기 싫은 문제였다.형제들과 다르게 그는 노화세포를 전혀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이 사실을 그에게 말한 적은 없지만 우문호는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었다.그도 자식들의 회복 능력을 보면서 알 수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원경릉에게 직접 말한 적은 없다.우문호는 그녀를 바라 보았다.부부라서 마음이 통한 것일까.그는 그녀의 마음을 대략 읽고 있었다.원경릉은 수술을 하고 나서 전혀 늙지 않았다.일부로 어두운 색깔의 옷을 입어도 여전히 젊어 보였다.반대로 우문호는 하얀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나기 시작했다.어쩌면 국가의 일을 처리하느라 노화가 빠른 것일지도 모른다.하지만 그는 그의 나이에 맞는 모습으로 점차 변해갔다.아직 눈가에 주름도 없고, 늙어 보이지 않지만 그는 곧 자신에게 닥칠 일이라고 생각했다.원경릉에게 주사를 맞겠다고 한 것도 그저 한순간의 충동일 뿐이다.사실 그는 그녀가 늙지 않고, 죽지 않는 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았다.하지만 몇십 년 뒤에 그녀의 인생에 자신이 사라진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생각하면 할수록 조급해질 수 밖에 없었다.그는 서둘러 생각을 접었다.'지금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같이 있는 시간을 즐겨야 한다.'요즘들어 우문호는 운명을 믿기 시작했다.원경릉이 자신에게 온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그 다음 날, 온 가족이 숙왕부에 도착했다.그들이 일찍 깨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대문이 닫혀 있었다.만두가 문을 두드렸다.아무런 대답이 없자 우문호가 바짝 긴장했다.“무슨 일 일어난 건 아니겠지?”“제가 들어가 보겠습니다!”곧이어 만두가 재빠르게 안으로 들어갔다.아들의 의외의 행동에 우문호가 깜짝 놀랐다.“만두가 언제 무술을 배운 거야?”원경릉은 무술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어제의 일이 떠올랐다.그리고 혹시 몰라 다르게 답했다.“저도 만두가 무술을 배웠을 줄은 몰랐습니다.”곧이어 만두가 안에서 문을 열었
“그래, 그래. 잘 된 일이야.”우문호가 기뻐했다.곧이어 손을 뻗어 딸의 이마를 어루만졌다.“내 딸이 그래도 제일 착하구나.”“아바마마, 편애하면 아니 되옵니다.”칠성은 우문호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편애라니?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그러고는 그의 그릇에 닭다리 하나를 올려 주었다.“자, 이건 칠성이거다.”“저희도 먹고 싶습니다!”옆에 있던 4명의 아들들이 우문호에게 그릇을 내밀었다.“닭다리는 딱 2개밖에 없구나. 칠성이에게 하나를 주었으니, 남은 하나는...”“아바마마! 저 주십시오.”택란이 그릇을 내밀었다.“어..”곧이어 원경릉도 그릇을 내밀었다.“저도 주십시오!”우문호는 한 손으로 닭다리를 잡은 채 자신의 앞에 놓인 그릇 6개를 바라보았다.잠시 고민하고는 원경릉의 그릇에 닭다리를 올렸다.“내 아내가 고생이 많지!”그리고 서둘러 닭 고기를 집어 다른 그릇에 올려 두었다. 그는 이마 위로 손을 올렸다.“내일 닭을 더 많이 잡으라고 해야겠구나, 한 사람에 닭다리 하나씩 먹을 수 있게 말이야.”그의 말이 끝나고 자리에는 웃음꽃이 피었다.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면서 웃어 보였다.좋은 아버지가 되기는 쉽지 않구나,라고 생각했다.만두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아바마마, 저희가 장난 좀 친 것뿐입니다.마음에 두지 마십시오.게다가 여자라고는 어마마마와 여동생뿐입니다.저희 남자형제들이 양보하는 게 맞지요.”나머지 형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큰 형의 말에 어떻게 동생들이 토를 달 수 있겠는 가.그리고 동생들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아바마마도 지켜 주셔야 합니다.아바마마가 저희 집안에서 제일 약한..”칠성은 닭다리를 뜯으면서 애매한 말을 내던졌다.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형제들이 반찬을 집어 그녀의 그릇에 두었다.만두가 입을 열었다.“그만 이야기하고 밥 먹어. 닭다리로도 부족한 거야?”칠성은 그의 말에 풀이 죽었다.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다시 닭다리를 뜯었다.우문호는 원경릉을 바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안 된다. 술은 19세부터 마실 수 있는 법이다.”만두는 약간 실망한 듯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예. 말을 따르겠습니다.”기분이 좋아진 우문호는 팔꿈치로 원경릉을 살짝 찌르며 말했다.“한 모금만 주오. 아직 어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리다고 하기도 훨씬 지난 나이네. 집에서 한 모금 정도는 괜찮소. 밖에서는 안 마시면 되지.”경단과 찰떡도 원경릉을 바라보며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기만을 기다렸다.원경릉은 아이들이 모두 아빠와 함께 술을 마시고 싶어 하는 걸 보며, 오늘처럼 즐거운 날은 한 번쯤 허락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직접 아이들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작은 잔에 술향이 은은하게 퍼졌고, 아이들은 금세 웃음을 터뜨렸다.세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우문호를 향해 잔을 높이며 말했다.“아바마마, 아바마마께 한 잔 올리겠습니다!”우문호는 아이들의 풋풋함을 간직한 똑같은 얼굴을 바라보았다. 성인이 되려고 애쓰는 그들을 보며 그는 뿌듯함과 감동이 교차했다. 그는 아이들과 잔을 부딪치며 말했다.“그래, 부자끼리 한잔하자!”참으로 묘한 느낌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품에 안겨 있던 작은 아이들이 지금은 그와 함께 잔을 부딪치고 있었다.현대에서 지내는 동안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줄어들다 보니, 아이들이 어느 순간 훌쩍 커버린 듯한 착각이 들었다.은은한 촛불이 아이들의 기뻐하는 얼굴을 비췄다. 탁자 아래, 우문호는 원경릉의 손을 잡고 서로 미소를 주고받았다.아이들은 부모님에게 열심히 음식을 챙겨주었다. 환타가 원경릉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어마마마, 드시지요. 아바마마도 손잡지 마시고 어서 드십시오.”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그래. 먹자, 다 같이 밥 먹자!”그녀는 그릇에 담긴 음식을 우문호의 그릇으로 조금 옮기며 말했다.“다 못 먹으니, 조금 먹어주시오.”우문호가 답했다.“그럼, 좋아하는 것만 먹고, 싫어하는 건 나한테 주시오.”그는 그릇을 내려놓고 새우를 까서 마늘장에 찍어
다섯째는 평소 아이들의 자잘한 일들에 항상 주목했다. 아이들을 자랑스러워하다가 금세 우울해지곤 했는데, 원경릉은 그의 모습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그게 그의 즐거움이었고, 그가 행복하다면 그걸로 충분했다.계란이의 길쭉한 팔다리가 앞으로 절대 키가 작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다만 아직 클 나이에 이르지 않았다.원경릉은 예전에 아이들이 빨리 자라길 바랐지만, 이제는 천천히 자라길 바랐다. 그래야 아이들이 곁에 머무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길어질 것이다.섣달그믐날 그들은 연회를 올렸다. 관례대로라면 숙왕부에서 무상황과 함께 보내야 했지만, 올해는 무상황이 미리 사람을 보내 섣달그믐날 숙왕부는 아무런 손님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명을 전했다. 어르신들끼리 다채롭게 보낼 준비가 되어 있으니, 아이들이 와서 방해하지 못하게 하라고 뜻을 전했다.다섯째는 오히려 이 소식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동안 어르신들 앞에서 태상황으로서 위엄을 세우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대우는커녕 오히려 재롱까지 부려야 했기에, 그는 항상 처지가 곤란했었다.무상황이 사람을 보내 궁에 있는 우문호에게 각자 알아서 새해를 보내고, 올해는 함께 모이지 않기로 소식을 전했다.황태후도 어린 공주를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갔다. 그동안 친정 식구들과 명절을 함께 보내본 적이 없다며 어린 공주를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갔다.우문호 역시 만족스러웠다. 항상 북적이는 설날을 보내다 보면, 기진맥진하게 되니 차라리 가족끼리 조용히 보내는 게 훨씬 편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게다가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여덟 식구끼리 쉴 수도 있었다.이 소식을 들은 후, 우문호는 아이와 원경릉이 좋아하는 음식을 해놓으라 미리 전했다. 원경릉은 원 할머니를 초대하려 했지만, 원 할머니는 한참 망설이다가 단호히 거절했다. 자주 그녀와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고 밥도 먹지만 숙왕부의 어르신들과는 그런 기회가 적으니, 이번에는 그들과 함께 명절을 보내겠다고 했다.원경릉은 이 말을 듣고 의아했다. 어르신들과
추 할머니의 건강 상태는 약을 먹은 후 많이 안정되었다. 이전에 폐종양이 신경을 압박해 유발했던 통증이 크게 완화되었고, 이제는 진통제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통증이 사라졌으니, 삶의 질도 개선되었다. 추 할머니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나자, 모두가 기뻐했다.숙왕부의 노인들은 갑자기 건강 관리에 눈을 뜬 것처럼 건강한 음식을 먹고, 매일 규칙적으로 운동하며, 햇빛을 쬐기 시작했다.운동은 늘 해왔던 일이지만, 과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적당한 운동을 하게 되었다.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그들의 전담 의원 역할을 하고 있었다. 정기적인 건강검진 외에도 식단을 짜고, 그에 따라 식사하도록 했다.다들 갑자기 이렇게 말을 잘 들으니,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의아해했다. 나중에야 그들이 회의를 열었고, 새로운 목표를 세운 것을 알게 되었다.그 목표는 바로 20년 후의 북당을 보는 것이었다. 안풍친왕과 무상황이 말하길, 20년 후의 북당은 지금과는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북당은 그들 심혈을 기울여 온 나라니, 더 나은 북당을 보기 위해 기꺼이 노력하고자 했다.원경릉과 우문호는 마음이 놓였다. 집안에 노인이 있으면 보물이 있는 것과 같고, 나라에 이런 노인들이 있다면 나라의 기반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우문호는 걱정 없이 북당을 힘차게 이끌 수 있었다.그렇게 북당의 경제 발전이 최우선 순위에 놓였다.이리 나리는 나라의 발전을 지휘하는 사람으로서 이전의 여유로운 삶을 지낼 수 없었다. 그는 바쁜 나날을 보내며 산업마다 노조를 설립하였고, 각 노조는 나라의 법에 따라 방향을 잡고 나아가고 있었다.그들은 주변 나라와 장사를 하며 자원을 구매했다.지금 우문호와 이리 나리는 약도성의 철광에 목표를 맞추고 있었다. 북당의 철광 자원은 충분하지 않아 그동안 계속 구매해 왔었다. 하지만 금속은 수출량이 제한적이었기에, 이를 극복하려면 자원을 개발해야 했다.약도성의 철광은 매우 풍부했다. 조사 결과, 금나라와 접경한 산맥 외에도 다른 광산 자원이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