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식이와 만아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고 원경릉이 우문호를 바라보았다.우문호는 소매를 풀며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었다.“만아는 내 생명의 은인이야.”“만아를 머무르게 하고 싶으면 그냥 둬.”그 말을 듣고 원경릉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의 어깨와 목을 감싸 안고는 웃었다.“참 잘됐다!”“네가 웃는 얼굴을 볼 수 있다면, 난 죽어도 좋다!”우문호는 기뻐하는 원경릉을 보고 귀여운 듯 볼을 꼬집었다.사식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우문호왕 원경릉을 보았다. “왕야께서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게 됐습니까?”사식이의 말을 듣고 우문호가 눈을 가늘게 떴다.“누가 너 들으라고 한 소리 같아? 내 여자가 행복하면 난 그것으로 됐다.”사식이는 귀를 막으며 고개를 저었다.“어휴 닭살 돋아!”원경릉은 사식이와 우문호의 대화를 듣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그녀는 우문호를 보면서 “사식이가 저렇게 말해서 기분 나빠?”라고 물었다.우문호는 약상자를 챙기며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 별로. 아 맞다! 요 며칠 동안 왕부에서 너와 함께 있을 거야. 관아엔 안 갈거야.”“왜?” 원경릉이 물었다.우문호는 빙그레 웃으며 그녀를 보았다.“경중에 이렇게 큰일이 났는데, 내가 경조부윤이잖아 부황께서 당연히 나를 정직시키시겠지.”“정직? 그럼 정직기간 동안 나랑 같이 왕부에 있으면 되겠네. 나도 맨날 너 퇴근하고 왕부로 오는 것만 목 빠지게 기다리기 힘들었는데 잘됐다!” 원경릉이 우문호의 팔을 잡고 즐거운 듯 방방 뛰었다.“나를 목 빠지게 기다렸다고?”우문호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임신기간 동안 자신이 원경릉에게 무심했던 것은 아닌가 마음이 아팠다. *다음날, 기왕비는 원경릉을 위해 태아를 보호하는 약을 가지고 왔다.기왕비가 여러 번 왕부에 다녀갔지만 약을 가지고 온 것은 처음이었다.“만약에 제가 독약을 가지고 왔다고 의심이 되신다면 안 드셔도 됩니다. 그냥 제 마음을 전하려고 가져온 것입니다.”“고맙습니다. 필요할 때 꼭 먹겠습니
기왕비는 원경릉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초왕비는 주명취 손에 죽을 뻔했습니다. 다섯째에게 그녀가 무슨 말을 했다면 그 말을 초왕비도 알아야죠. 죽을뻔했으면서 아직도 모르겠습니까?”원경릉은 그녀에게 주사를 놓으며 “저는 다섯째가 알아서 잘 처리했으리라 믿습니다.”라고 말했다.원경릉의 말을 듣고 기왕비가 코웃음을 쳤다. “남자를 믿어요?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짓이 남자를 믿는 겁니다. 지금은 초왕비에게 잘해주겠지만, 나중에 가봐요. 그 마음이 한결같은지. 가만 보면 초왕비는 참 순진합니다.” 때마침 우문호가 왕부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형수님 말씀에 따르면 세상에 모든 남자들은 나쁜 놈이네요?”우문호의 등장에 당황한 기왕비가 우물쭈물하더니 입을 열었다.“여자들은 어쩔 수 없이 악에 이용당하죠.”우문호는 원경릉 옆에 앉아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기왕비를 보았다.“어쩔 수 없다라…… 형수님께서는 여자의 욕망과 야심도 어쩔 수 없이 남자에 의해 강압적으로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이 말을 들은 기왕비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지금 저 들으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저는 주어를 말하지 않았는데요?”기왕비는 창백한 얼굴로 우문호를 바라보았다. “제가 초왕비 잘되라고 충고한 것 가지고 과민 반응하시는 건 초왕이신 것 같습니다. 저는 그저 초왕비가 걱정되어서 그런 말을 한 것뿐입니다.” “만약 걱정이 되어 그런 말씀을 하셨다면 본왕이 초왕비를 대신해 감사를 표하겠습니다. 하지만 저와 초왕비 사이의 감정을 흔드는 말을 하는 것은 듣고 싶지 않습니다.”“그럴 생각은 없었습니다.” 기왕비가 흥분한 듯 보였다.원경릉은 두 사람이 싸우기 전에 손을 저었다. “됐습니다. 다들 그만하세요. 부부간에 마음을 열고 서로를 신뢰하는 것도 행복이잖아요”그녀는 기왕비를 힐끗 쳐다보더니 우문호를 보며 말했다. “물론 그 말도 맞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초왕 내외 같지는 않죠.” 기왕비가 쓸쓸하게 말했다.“기왕비. 저는
“재상에게 화를 낼 필요는 없다는 거 잘 알아.” 우문호가 말했다.“응! 네가 복직을 하려면 재상이 부황께 말씀을 드려야 하잔하. 그러니까 지금은 재상에게 잘 보여야 할 때야. 좋게 좋게 말하고 와.” 원경릉은 까치발을 들어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어이구! 언제 이렇게 애교가 느셨을까?” 우문호가 웃었다.“입에 발린 말을 하기 싫어도 해야 할 때가 있어. 말 몇 마디 해준다고 손해 볼 건 없으니까. 그가 듣고 싶은 말 몇 마디 해주고 와.”“네가 말 안 해도 알아. 쪼꼬만 게!” 우문호는 정직 상태로 관아에 들어갈 수 없었지만, 관아 내에도 그가 경계하고 감시해야 할 사람들이 있었기에 복직이 필요한 상태였다. 원경릉은 문쪽에 서서 그의 망토가 하얀 눈으로 뒤덮이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하늘에 날리는 눈송이를 보았다. ‘예쁘네…… 시간 참 빠르다. 벌써 겨울이라니……’*서재 안에는 난로가 켜져 있어서 매우 따듯했다. 재상은 입고 온 두꺼운 솜 두루마기를 나한 침상 옆에 벗어두고는 희상궁이 내온 생강차를 마시며 앉아있었다. 그가 손에 들린 생강차를 호호 불자 따듯한 김이 코 끝을 촉촉하게 적셨다. 희상궁은 원래 밖에서 시중을 들어야 했지만 바깥바람이 매서운 관계로 재상이 안에서 시중을 들라고 명했다. 우문호가 들어온 후 희상궁이 자리에서 일어나 우문호의 잔에도 차를 따랐다. 주수보는 자신의 찻잔에 차를 다 마시고는 희상궁에게 차를 더 따르라고 했다. “늙어서 그런지 목이 더 타는 것 같네.”희상궁은 주수보의 잔을 가득 채우고 다시 문쪽으로 가서 서있었다. “재상어른께서는 오늘 사건에 대해 궁금하신 것이 있으셔서 오신 겁니까?”주수보는 잔을 내려놓고 두 손을 넓은 소매 속으로 넣은 채 우문호를 보았다.“예, 주명취가 죽기 전에 초왕께 무슨 말을 했다고 하던데……”“자백을 했습니다. 그녀가 말하길 모든 것이 재상의 뜻이라고 했습니다.”우문호의 말을 들은 주수보의 얼굴이 굳었고, 희상궁은 깜짝 놀라 우문호를 쳐다보았
주수보는 심증이 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생강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고개를 젖혀 희상궁에게 말했다.“생강차는 많이 마시면 속 아픈 것도 모르느냐? 먹을 것도 하나도 내어오지 않고, 속 쓰려 죽겠다.”“알겠어요. 왕야와 얘기 나누세요. 가서 음식을 만들어 오겠습니다.”희상궁이 그의 말을 알아채고 바쁘게 밖으로 나왔다.“말 다 했어.” 주수보가 말했다.그는 찻잔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요리를 하러 가야지.”그 말을 들은 희상궁이 놀라서 그를 쳐다봤다.우문호는 주수보가 주명취에 대해서 더 많은 질문을 할 것이라고 여겼다.*희상궁과 주수보가 밖으로 나왔다.“왕야께서는 재수가 없으시네.” 주수보가 말했다.희상궁은 깜짝 놀라서 물었다.“재수가 없다고요? 무슨 재수가 없는 일인데요? 겁주지 마세요!”“겁주는 게 아니라 진짜야.”“빨리 말해요. 뭐가 재수가 없다는 건지!” 희상궁이 그를 막아섰다.“희상궁 만두 빚을 줄 압니까?”주수보가 희상궁을 보았다.“압니다!”“그럼 먼저 만두부터 빚자고요. 지금 내가 너무 배가 고프니까 말이 안 나오니까.”희상궁이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만두 만들고도 말 안 해주면 다신 저를 볼 생각 마세요!”라고 말했다.그녀는 말은 한 후 성큼성큼 부엌으로 갔다.잠시후, 만두를 다 만든 희상궁에 주수보에게 만두를 들고 왔다.“어떱니까?”주수보는 젓가락으로 만두를 집어 한 입 먹더니 “음…… 좀 짜네.”라고 말했다.희상궁은 화가 난 표정으로 “빨리 왕야에 대해 얘기를 해보세요! 왕야께서 왜 재수가 없다는 겁니까?”라고 말했다.“폐하께서 왕야를 정직시키는 것 말이야.”“그건 압니다. 정직은 잠깐 일을 멈추는 거잖아요.”“안다고?” 주수보가 물었다.“안다고요! 세상 사람 다 아는 얘기를 뭘 그렇게 생색을 내면서 해요!”주수보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그는 왕부를 떠나면서 계속 초왕에게 재수 없는 일이 생겼다고 중얼거렸다.우문호와 원경릉은 손왕부에 가서 제왕을 보았다.불에
제왕은 고개를 저으며 분노를 삼켰다.“본왕은 그저 그 여자가 무슨 억하심정으로 나를 사지에 몰아넣었는지 알고 싶을 뿐이야.”“너무 뻔하지 않나요? 그냥 잊어버리세요.” 원용의가 말했다.제왕이 고개를 들어 원용의를 바라보며 “그래.”라고 말했다.“그래요 이제 잊어버리세요.”“그렇게 말 안해도 다 잊었어.”원용의는 그가 말로만 잊었다고 하는 것을 알았지만 되묻지 않았다.제왕은 원용의가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직감하고 그녀를 바라보았다.“난 그냥 그 여자가 나를 왜 나를 죽이려고 했는지 그게 이해가 안 된다. 꼭 그럴 필요는 없었을 것인데 말이야.”“악몽을 꿨다고 생각해요. 살다 보면 그런 쓰레기 같은 사람들 만날 수도 있죠.” 원용의가 위로했다.제왕은 원용의에 말대로 끔찍한 악몽을 꿨다고 생각하기로 했다.그가 불속에서 도망쳐 나와 깨어났을 때 원용의가 제왕에게 주명취가 불을 질러 제왕을 죽이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부부 사이에 어떠한 원망의 마음이 있더라도 서로의 생명을 앗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원경릉은 밖에서 손왕비와 위왕비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손왕비가 원경릉이 온 것을 보고 위왕비를 데려오라고 명했다. 위왕비의 몸이 좋지 않아 손왕비는 줄곧 원경릉을 불러 위왕비의 상태를 확인해보고 싶었다.원경릉이 위왕비를 진찰해보니 혈압이 낮고 빈혈이 있는 것 같았으며 정신 건강도 좋지 않아 보였다. 위왕비는 말을 할 힘도 없는 듯 원경릉을 보고도 처음부터 끝까지 주동적으로 말을 하지 않았다.“하늘이 무너져도 건강이 최고입니다. 몸을 잘 돌보세요. 위왕비.”손왕비는 위왕과 그 여인의 일을 알고 위왕비를 위로했다.위왕비는 힘없이 웃으며 “알고 있습니다. 손왕비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창백한 위왕비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역력했지만 하얀 피부에 붉은 입술이 백합처럼 고고하고 아름다웠다. 경국지색은 아니더라도 수수한 얼굴에 몽롱한 눈빛은 딱 고전미인형이었다.야리야리한 그녀가 인상을 조금만 써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이 뭉클하고
손왕비는 창백한 위왕비의 얼굴을 보고 화가 치밀었다.“위왕비는 뭐가 그렇게 두려운 겁니까? 그 늙은 여자랑 제대로 붙어보라고요!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아니겠어요? 셋째랑 결혼을 하겠다고 혼사도 거부했던 그 용기는 어디 갔어요? 왜 이렇게 나약해졌습니까?”손왕비는 말하다가 돌아서서 원경릉을 보았다.“초왕비 이리와서 위왕비 좀 설득해봐요. 이러다가 화병으로 내가 죽을 것 같으니까!”사실 위왕비 손목의 상처는 원경릉이 검사를 할 때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원경릉은 위왕비가 사연이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모르는 체 했으며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게 하려고 말도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우연히 손왕비가 손목의 상처를 알아버렸고 일이 커졌다. “손왕비님 너무 흥분하지 마세요. 위왕비가 설마 셋째 아주버님 때문에 자살을 하려고 했겠습니까?”손왕비는 자살이라는 말에 화가 잔뜩 났다.“셋째 때문이 아니라면 왜겠냐고요!”원경릉이 앞으로 나와 위왕비와 손왕비를 끌어당겨 앉혔다.위왕비는 다크서클이 축 내려온 공허한 눈빛으로 생기 없이 원경릉을 보았다.“위왕비, 요즘 잠을 잘 못 잤죠?”“예. 못 잤어요.”“잠을 못 자는 것 빼고 또 불편한 게 있습니까?”“초왕비님 뭘 물으시려는 겁니까?”“빈맥, 두통, 호흡곤란, 환각 이런 증상이 있어요? 어디 아픈 곳은 없습니까?”위왕비는 넋 나간 표정으로 원경릉을 보았다.“초왕비…… 어떻게 아셨어요?”손왕비는 깜짝놀란 표정으로 “설마 위왕비에게 누가 독을 쓴 게 아닙니까?”라고 물었다.원경릉은 손왕비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위왕비를 보며“위왕비, 언제부터 그랬습니까?”라고 물었다.위왕비는 잠시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글쎄요…… 제가 유산한 후 한 달 넘게 요양했는데, 하지만 몸이 계속 회복이 안됐습니다. 머리도 아프고 어지럽고 요통이 있었어요. 그 후에는 약간 환각이 보였고 눈을 감아도 귀에 아이 우는 소리가 들렸어요.”“손목을 그었을 때, 환각이 보였나요?”원경릉이 물었다.“맞아요. 아이가 제 앞에서
“어우 머리 아파.” 손왕비가 말했다.“왜 아픕니까? 전에 어의에게 약을 처방받았잖아요. 다 나은 거 아닙니까?”위왕비가 물었다.손왕비는 자리에 앉아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저었다.“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초왕비가 납치되어 간 이틀 후부터 아프기 시작했습니다.”“어디가 어떻게 아픕니까?” 원경릉이 물었다.“엉덩이 쪽이 아픕니다.”손왕비의 얼굴이 빨개졌다.“좌골신경? 앉아 있으면 아픈가요? 혹시 여기가 아픕니까?” 원경릉이 손을 뻗어 그녀의 좌골신경을 눌렀다.“아뇨. 거긴 아닙니다. 근데 이따금 통증이 느껴져서 온몸이 떨리고 가슴이 벌렁거립니다.”원경릉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어찌하여 가슴이 벌렁거리죠? 정확히 어디가 아픈가요?”라고 물었다.손왕비는 안팎에 있는 하녀들을 다 내보내고는 얼굴을 붉히며 멋쩍은 표정으로 원경릉을 보았다.“그…… 그곳이 아픕니다.”“어디요?” 원경릉이 되물었다.“바로 그……”원경릉이 번뜩 깨닫고 웃으며 물었다. “아, 혹시 혈변을 보셨어요?”“이틀 정도 혈변을 봤습니다. 이것 때문에 제가 어의도 봤는데, 화독약 처방을 받고 오래 앉지 말라고 했습니다.” 손왕비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원경릉은 조용히 약상자를 떠올리며 치질 연고를 생각했다. ‘오늘은 치질 연고를 쓸 수 있겠군. 약상자에 치질 연고가 있던 이유가 바로 손왕비 때문이었구나.’임신 당시에 그녀는 임산부가 치질에 걸릴 가능성이 높기에 약상자가 미리 알고 치질 연고를 준비해 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치질은 생기지 않았고, 아직 아이를 낳은 것도 아니다. 그녀는 약상자에 있는 치질 연고를 보면서 이건 도대체 왜 여기 있는 거지 고민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저에게 종기에 특효가 있는 약이 있습니다. 꺼내드리겠습니다.” 원경릉은 위왕비를 검사할 때 꺼내 둔 약상자를 넣지 않았기에 그 안에서 바로 약을 꺼낼 수 있었다.그녀는 치질 연고를 찾아 손왕비의 손에 쥐어주었다.“안으로 꾹 눌러 넣으세요. 5일 동안 꾸준히 쓰면 괜찮아지실
위왕비는 강단 있고 매사에 적극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곁에서 그녀를 지지해줄 사람이 없고, 가장 가까운 배우자마저 그녀에게 등을 돌린 상황이다. 그녀의 우울증의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대체로 사람들은 외유내강인 위왕비같은 사람이 우울증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람이 큰 충격을 받으면 갑자기 없던 우울증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위왕비는 자신의 병이 진행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애를 썼고 그녀의 노력을 원경릉이 느꼈다.“내일 왕부에서 눈놀이 연회를 열 텐데, 그때 와주세요.”갑작스러운 초왕비의 초대에 당황한 위왕비가 손왕비를 쳐다보자 손왕비가 고개를 끄덕이며 가겠다고 했다.위왕비가 은은하게 웃으며 “네 알겠습니다. 꼭 갈게요.”라고 말했다.원경릉이 떠난 후 사람을 사람을 시켜 손왕비에게 편지를 전했다. [손왕비, 내일 말고 다음에 왕부에 와주세요. 내일은 제가 개인적으로 위왕비와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게 있습니다.]손왕비는 눈치가 있는 사람이기에 이 편지를 보고 알겠다고 답장을 보냈다.*우문호는 원경릉이 셋째 위왕부의 일에 참견하는 것이 못마땅했다.“남의 집안일에 관여하는 거 아니다. 물론 본왕이 위왕을 옹호하는 건 아니지만…… 위왕이 그렇게 하겠다는데 뭐 어쩌겠어.”“난 그 집안일에 관여하겠다는 게 아니야. 그저 위왕비랑 단둘이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야.”“약속을 잡았으니 어쩔 수 없지. 셋째와 넷째는 왕래가 잦고 사이가 좋으니 앞으로는 최대한 엮이지 마.”“셋째랑 넷째가 친하게 지내는 게 뭐 어때서?” 원경릉이 의아했다.우문호는 가볍게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셋째와 넷째가 많이 가까워졌어. 우리가 그들과 가까워진다면 부황께서는 형제끼리 작당모의를 한다고 생각하실 거야.”라고 말했다.원경릉은 그의 말에 수긍하고 더 이상 꼬치꼬치 캐묻지 않았다.*오후에 태상황제가 초왕부로 유산 방지약을 보내왔다. 원경릉이 보니 그중 많은 처방이 기왕비가 보내온 것과 겹쳤다. 우문호가
사식이는 다들 일곱째 고모의 안부를 걱정하지 않는 것이 이상해 의아해하며 물었다.“일곱째 고모께서 편지를 보내신 겁니까?”그러자 셋째 부인이 웃으며 말했다.“그래. 편지가 왔단다. 며칠 놀다가 곧 경성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구나.”사식이는 그제서야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럼, 일곱째 고모께서 돌아오고 나서 혼담을 꺼내는 것이 어떻습니까? 일곱째 고모가 동의하지 않으면 일이 난감해질 텐데요.”노태군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이미 모든 일을 저질렀느넫 이제 와서 동의하지 않는다니? 감히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냥 목을 매겠다!”노태군은 일곱째 고모가 열여덟 살이 되던 때부터 그녀의 혼사를 기다려 왔다. 계속 기다리다가 이미 머리카락이 다 하얘져 버렸지만, 그녀는 아직 혼인 기약조차 없었다. 이번에도 혼사를 정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는게 더 나았다.그녀 뿐만 아니라 모두가 일곱째 아가씨가 빨리 시집가기를 바라고 이씩 때문에, 이 일은 서둘러 진행하기로 했다.“사식아, 네 고모에게 편지를 보내, 내가 갑작스레 병에 걸려 거의 죽게 생겼다고 전해라!”노태군이 단호히 명령했다.딸을 집으로 불러들이기 위해서 스스로 저주까지 불사하는 그녀는 정말 독한 늙은이었다.서일은 탕양을 데리고 서둘러 궁으로 향했다. 중매인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기에, 바로 황후를 찾아가야 했다.소월궁에서 우문호 부부는 탕양의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라,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한참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우문호의 표정은 복잡해 보였다.“짐이 보기엔, 일찍 일곱째 아가씨에게 네 마음을 고백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이리 일을 저지를 줄은 꿈에도 몰랐구나!”탕양은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았고, 마음속에는 불안감이 점점 커져갔다. 하루라도 빨리 그녀를 만나지 못한다면 불안에 휩싸여 버릴 것 같았다. 그는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폐하, 지금은 이런 이야기를 하실 때가 아닙니다… 제발 사람을 보내 그녀가 어디 있는지
오래전의 악몽이 마음속에서 되살아나, 탕양은 너무나도 두려웠다. 그녀가 혹시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을까 걱정되어, 스스로 뺨을 몇 대 때리고는 다시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아무 일이 없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으면 죽어도 죄를 씻을 수 없을 것이다.’하지만 그녀를 따라잡으려 죽자고 달려도, 끝내 그녀를 볼 수 없었다.그렇게나 빨리 도망간 건가?그렇게 경성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쉬지도 않고 곧장 원가로 달려갔다.마침 서일과 사식이가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와 있던 참이었는데, 대문 앞에 도착하니, 탕 대인이 거지처럼 문지기 앞에 쓰러지다시피 주저앉아 먼지투성이의 얼굴에 새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문지기의 옷깃을 움켜쥔 채 다급히 묻고 있었다. “일곱째 아가씨는? 너희 일곱째 아가씨는 대체… 어디 있느냐?”그러자 문지기는 놀라 얼어붙고 말았다. 그는 이렇게나 사나운 탕 대인을 본 적이 없어 더듬거리며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일곱... 일곱째 아가씨께서... 탕 대인과 함께 약도성에 가신 거 아니셨습니까…?”“그럼 아직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탕양이 소리쳤다.“아직... 아직 못 뵈었습니다…!”바로 그때, 서일이 다가와 문지기한테서 탕 대인을 떼어놓으며 말했다.“무슨 일이십니까?! 우선 손부터 놓으십시오. 옷이 다 찢어지겠습니다.”탕 대인은 그만 바닥에 주저앉아 머리를 감싸며 괴로운 얼굴로 말했다.“큰일이야… 내가 그녀를 망쳐 버렸네! 죽어도 이 죄를 씻을 수 없을 것이네…!”“무슨 일입니까? 저희 고모께서 지금 어디 계십니까?”사식이가 다급히 물었다.“그녀는...“탕 대인은 비참한 표정을 지으며, 눈물 투성이가 된 얼굴을 닦으며 말을 이었다. “그녀가 어디 있는지는 나도… 모르네… 나는 돌아온 줄 알고 있었네...”바로 그때, 무거운 발소리와 함께 지팡이가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원가의 노태군이 부축을 받으며 다가오는 것이었다! 탕양이 고개를 들자, 노태군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탕
냉정언은 자기도 모르게 죄책잠이 들어 미간을 찌푸렸다.‘이번에 정말 큰일을 저지른 것인가?’그는 그저 탕양에게 술을 먹여 일곱째 아가씨에게 진심 어린 말을 꺼낼 용기를 주고자 했을 뿐이었다. 그동안 탕양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황제뿐만 아니라 모두가 알고 있었고, 다들 그를 안타까워했었다.탕양은 다섯째가 초왕이었을 때부터 초왕부와 다섯째, 그리고 나라와 백성을 위해 많은 일을 해왔다. 그렇게 반평생을 북당을 위해 헌신했으나, 그를 진정으로 주목한 이는 많지 않았다. 특히 과거에 자신도 용납할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 탓에 평생을 스스로도 용서하지 못한채, 조정을 위해 뛰어난 공을 세우고도 관직이나 봉록을 거절하며 죄를 속죄하듯 살았다. 하지만 진심으로 그를 아끼는 사람들은 그를 탓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는 누구나 실수를 범할 수 있는 법이니까. 탕양은 이미 그 누구보다 훌륭히 잘해왔고, 게다가 정과 의리에 발목 잡힌 것은 많은 영웅이 저지르는 흔한 실수였다. 고금의 역사를 통틀어, 결코 그 혼자만이 저지른 행동이 아니었다.탕양은 일곱째 아가씨와 벗이라는 관계를 유지하려 했지만, 그의 마음속에서는 늘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니 술에 취하지 않은 이상, 맑은 정신으로는 절대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을 것이기에, 술에 취하게 하면, 경성이 아닌 변방의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몇 마디 속마음 정도는 털어놓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하지만 예상외로, 탕 대인의 마음속에 얼마나 많은 감정이 쌓였던 건지... 만취 상태에서 무슨 일을 저지른 것 같았다. 대체 이 마음을 얼마나 오랫동안 품었던 것일까?상황이 아주 복잡해졌다.‘탕 대인 아주 못 쓰겠구먼! 이를 어찌 마무리 짓는단 말이냐…?!’원가의 상대하기 쉽지 않은 여장군들을 떠올리니, 냉정언은 순간 뒷골이 땡겨 머리를 쥐어뜯었다.그러고 나서 고개를 돌리니, 냉명여가 눈 앞에 서 있었다. 냉명여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아버지, 탕 대인은 어찌 일곱째 아가씨와 그런 일을 벌인
탕양은 지금까지 살면서 술에 취해 저지른 잘못이 단 하나뿐이었다. 비록 그 일도 나중에 사실이 아니었음이 밝혀졌지만, 그 일로 그는 술에 취하면 정말로 이성과 기억을 잃게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렇기에 그 후로 술을 마시더라도 되도록이면 취하지 않게 애썼다. 하지만 어젯밤은 예외였다. 그는 이곳 사람 모두를 믿고 있었기에 경계를 풀었던 것이다.남녀 간의 일도 이제는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가 되어서 어젯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차 알 수 없었다."의부님! 의부님!"바로 그때, 문밖에서 호명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탕양은 화들짝 놀라며 재빨리 호통쳤다."일단 들어오지 말거라!"그는 급히 이불을 걷어내고, 바닥에서 옷을 찾아 황급히 입은 후, 이마를 문지르며 정신을 가다듬은 뒤에야 문을 열어 주었다.문밖에서 호명이 물었다."이제 막 일어나신 겁니까? 아직도 취기로 힘드십니까?"탕양은 머릿속이 어지럽고 복잡했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답했다."괜찮다. 무슨 일이더냐?""식사하시라고 부르러 왔습니다. 아! 일곱째 아가씨께서 경성으로 돌아간 것을 알고 계십니까? 같이 가실 줄 알았는데 먼저 떠나셨더군요.""… 돌아갔다고?!"탕양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예!"호명이 그의 얼굴을 보다가 잠시 멈칫하며 말했다."의부님… 혹시 어젯밤 누구에게 맞으셨습니까?"탕양은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만져 보았는데, 그제야 얼굴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그는 황급히 동경을 찾아 얼굴을 비춰보았는데, 왼쪽 뺨에 여러 개의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 누군가에게 뺨을 맞은 것 같았다.그러자 어렴풋이 한 여인이 세게 뺨을 때리며 욕설을 퍼붓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떠올랐다.하지만 여전히 머릿속이 텅 비어 있어 창백해진 안색으로 생각에 잠겼다.‘설마 내가 취기를 빌어... 그래서 떠난 것이었구나...’이번 사건은 목숨을 내놓고 속죄해도 부족할 정도였다."말을 준비하거라! 어서!"탕양이 갑자기 눈을 번쩍 뜨며 소리
연회는 계속 진행되었고, 냉정언은 술잔을 들고 계속 탕양에게 술을 권했다. 잔을 몇 번이나 주고 받자, 탕양은 머리가 머리가 어지러워져 말조차 똑바로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연회가 끝난 후, 냉정언이 일곱째 아가씨에게 말했다."술을 꽤 마셨다 보니, 탕양이 좀 취한 것 같네. 정원에 나가 산책을 조금 하면서 술기운을 가시는 것이 어떻소?"일곱째 아가씨도 약간 취한 상태였기에, 바람을 쐬며 땀을 내면 술이 깰 것 같다며 동의했다."예. 그럼 다들 돌아가서 쉬시지요. 제가 호명과 함께 탕 대인을 돌보겠습니다.""좋소. 수고하시게나!"냉정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자, 어서 돌아가시게!"그렇게 사람들은 모두 새가 흩어지는 것 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일곱째 아가씨는 호명과도 함께 산책할 생각이었는데, 빠르게 사라지는 그들의 모습이 어이가 없는듯 웃음을 터뜨렸다.그러고는 탕양의 붉게 상기된 얼굴을 보고 물었다."괜찮습니까? 걸을 수 있겠습니까?"그러자 탕양이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났는데, 술에 많이 취한듯 몸을 심하게 휘청거렸다."어찌 못 걷겠습니까? 취하지 않았습니다!""예. 그럼, 몇 걸음 더 걸어보시지요. 정말 못 걸으시겠으면 방으로 돌아가 쉬시고요. 취기를 덜어줄 탕을 준비하라고 하겠습니다."그러자 탕양은 허리에 손을 얹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걸어나갔다. 곧게 뻗은 직선을 그리며 터벅터벅 걷고는 뒤돌아 일곱째 아가씨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보시지요. 얼마나 똑바로 걷는지! 안 취했습니다. 이제 믿을 수 있습니까?"일곱째 아가씨는 그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하하하. 예, 안 취하셨네요. 그럼 이만 나가서 함께 산책하시지요."그녀는 그가 오래 걷지 못할거라고 생각해, 방으로 데려가 쉬게 하기로 했다.역시나 문을 나서자마자 탕양은 난간을 붙잡고 비틀비틀 걷기 시작했다. 하도 휘청거리는 탓에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기에, 일곱째 아가씨는 결국 어쩔 수 없이 그를 부축했다.그러자
"탕 대인이 저를 예쁘다고 말해 주셔서 정말 기쁩니다. 그러니 일곱째 아가씨께도 예쁘다고 말해 보십시오. 분명히 기뻐하실 것입니다!"하지만 탕 대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다를 겁니다. 일곱째 아가씨는 이제 그런거에 좋아할 나이를 지났습니다. 지금 그녀에게 예쁘다고 말하면, 그저 무미건조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어찌 그럴 리 있습니까? 누구나 칭찬받는 것을 좋아하는 법입니다. 탕 대인, 대인께서 정말 재능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십니까?"탕 대인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예? 하하하. 그렇습니까?""예! 모두가 그렇게 말했습니다!"탕 대인은 자기도 모르게 어깨를 으쓱거리며 미소를 지었다."과찬입니다.""기분 좋으십니까?"택란이 묻자 탕 대인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다, 이내 뜻을 알아차리고 멈칫하며 말했다."이 녀석!"택란은 그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탕 아저씨도 누군가에게 꼭 사랑받으시길 바랍니다."탕 대인은 이 말에 크게 감동해서 택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했다."예. 고맙습니다."저녁엔 계약이 성공한 기념으로 연회가 열렸다.소박한 술자리긴 했지만, 커다란 술통들이 준비되어 있어 모두 마음껏 마시며 즐길수 있었다.택란은 술을 마시지 않기에, 주 아가씨가 매실청을 대신 준비해 주었다. 새콤달콤한 맛이 택란의 마음에 쏙 들었다.술잔을 주고받으며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르자, 모두 패기 있게 약도성을 북당에서 제일가는 도성으로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다.일곱째 아가씨는 벌써 독산을 어떻게 개발할지부터 고민하고 있었는데, 독산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막막했기에 사람들에게 의견을 구하기 시작했다.각자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지만 대부분이 경치를 개발하자는 내용이었다.반면, 택란은 새로운 생각을 제안했다. 독산에 온천이 있으니 오두막을 지어 온천을 끌어들여 돈을 받고 여러 개의 탕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어떻겠냐며, 온천수가 몸에 좋다는 점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자고 제의하였다.택란의 생각은 이 시절
탕양은 자신이 여자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자부했었다. 특히 일곱째 아가씨처럼 강인한 성격을 가진 사람은 혼자 지내는 데 익숙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삶을 더 선호하기에 굳이 자신과 인연을 맺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는 그의 큰 착각이었다.여인의 마음은 늘 갈대처럼 변덕스럽고, 아무리 강인한 사람이라도 다정함이 필요한 순간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일곱째 아가씨는 오랫동안 혼자 외롭게 지내왔는데, 중년에 접어들며 그 외로움이 더욱 깊어진 것이다.누군가 곁에 있다면, 삶의 방식도 달라질 수 있지만, 물론 잘못된 연으로 나빠질 가능성도 있었다.원가의 가훈은 항상 군주에게 충실하며, 엄청난 용기도 있었다. 심지어는 원가에서 키운 닭조차 남의 집의 닭보다 더욱 용감할 정도였다.하지만 한 번의 좌절로 인해 사랑을 믿지 않겠다는 것이 과연 용기있는 행동 일까?물론 그녀가 반드시 탕양을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어울리는 사람을 만나 다시 한번 용기를 내볼 수도 있었다.하지만 탕양이 먼저 용기를 내어 말한다면, 그녀 역시 그에게 기회를 줄 것이다.여태껏 그녀의 마음에 들어온 사람은 오직 탕양뿐이었다.그리고 어쩌면 시도해 봐야만 서로 맞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탕양과 잘 맞는다고 느끼는 건 그녀가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아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착각일지도 모르니 말이다.경성으로 돌아간 후에도 탕양이 말을 꺼내지 않는다면, 그녀는 공개적으로 구혼에 나설 생각이었다. 한편, 택란이 주 아가씨와 함께 밖으로 나가며 물었다."탕 대인이 왜 나쁜 사람인 것이오?""여인을 훔쳐봤습니다.""탕 대인이 아가씨를 좋아하지 않소? 어찌 못 보는 것이오?"주 아가씨는 택란이 이런 부분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공주에게 가르쳐야겠다고 마음먹으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사내가 여인을 사모하면 상대의 시선을 바라보지, 다른 곳을 쳐다보지 않습니다. 그러니 탕 대인은 일곱째 아가씨를 사모하는 것이 아닙니다.""그
그녀는 탕양을 힐긋 바라보는데, 예전의 담담하고 온화한 모습 없이 뜨겁게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그녀는 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기에, 절대 먼저 말을 꺼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평생 그렇게 죽을 때까지 버틴다 해도, 제자리에 머물러 기다리지 않을 것이었다."탕 대인, 지금 어디를 보는 것이오?"그때, 냉정언이 물었다."예? 무슨 말이십니까?"탕양은 서둘러 정신을 차리고 냉정언을 바라보자, 냉정언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탕 대인께서 계속 일곱째 아가씨의 가슴팍을 보고 있었소.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것이오?"이 말이 끝나자마자, 모두가 술렁이며 이상한 시선으로 탕양을 바라보았다.그러자 주 아가씨가 급히 택란의 귀를 막으며 말했다."보지도, 듣지도 마십시오!"탕양은 크게 당황하며 두 손을 마구흔들었다."아닙니다! 전 그러지 않았습니다! 냉 대인께서 잘못 보신 겁니다.""아니오. 분명 아가씨의 옷깃과 가슴을 보고 있었소!"말을 마치자마자 냉 대인은 숭이를 안고 단호하게 밖으로 나갔고, 탕양은 얼굴을 붉히며 변명이라도 하기 위해 일곱째 아가씨를 쳐다봤다. 그러자 일곱째 아가씨는 기침을 하며 옷깃을 정리한 뒤 소리쳤다. "흥. 변태!"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도 돌아서 나가버렸다.탕양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당황한 얼굴로 주 아가씨와 홍엽을 보며 말했다."다들 보지 않았습니까? 제가 그런 게 아니라는..."홍엽이 소매를 휘두르며 말했다."눈이 자네 얼굴에 달려 있는데, 자네가 누굴 보고 어디를 보는지 우리가 어찌 알겠는가?"주 아가씨는 택란의 손을 잡고 나가며 말했다."마마, 이제 탕 대인 같은 사람하고 어울리지 마십시오. 인품이 좋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탕양은 여전히 몹시 당황한 상태였다. 냉정언의 한마디에 그의 처지가 아주 난감해져 버렸다.그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말이다. "명여야..."냉명여 또한 귀를 막고 밖으로 달려 나가며 외쳤다."탕 대인께서는 정말 나쁜 사람이십니다!"탕양은 그만 머리를 감싼
이처럼 독산은 마치 진실한 사람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처럼 가장 진솔한 생각을 감출 수 없게 만들었다.일곱째 아가씨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탕양을 바라보며 말했다."저를 배신한 것을 아직 기억하고 계십니까?"탕양은 그동안 일곱째 아가씨와 이 일을 얘기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항상 담담한 태도로 과거 이야기를 피하며 언급하지 않았었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이 말을 꺼내니, 탕양은 잠시 멍해졌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연히 기억하고 있지요..."일곱째 아가씨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기억하고 있다면, 제가 독산을 얻을 수 있게 잘 도우십시오. 독산을 개발할 수 있다면 앞으로 15년간의 수익은 전부 제 것이 될 겁니다. 그리고 15년 뒤에는 이익을 반으로 나누겠습니다. 절대 3할만 받을 수는 없습니다."탕양은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하지만 폐하께 이미 3할이라고 말씀드렸는 걸요.""그건 대인의 일이지요. 폐하를 오랫동안 모셔 왔으니, 대인의 공로를 인정하고 배려해 주실 것입니다. 이건 대인께서 누구의 이익을 우선시할지에 달린 것 아닙니까?"그러자 탕양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아가씨, 3할이라도 충분히 좋은 제안이지 않습니까? 그저 길만 새로 만들면 되고, 심지어는 조정에서 나서서 도와줄 것이니, 초반 투자 비용도 그렇게 많이 들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하면, 놀러 오는 자들에게 먹거리와 즐길 거리로 돈을 적잖이 벌 수 있습니다.""반으로 나누는 것까지만 양보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익을 중시하는 상인인 것을 잘 알지 않습니까."탕양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예. 폐하께 돌아가 말씀은 드리겠지만… 무조건 그 조건을 따내겠다고 장담할 순 없습니다.""못 따내도 그만입니다."일곱째 아가씨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앞으로 제가 독산에 몇 번이나 올 수 있겠습니까? 어차피 조정에서 독산을 얻는다고 해도, 굳이 그렇게 많은 돈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탕양이 웃으며 답했다."이곳에서 지내면서 머물어도 되지 않습니까? 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