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명취의 자백과 최후의 부탁우문호가: “좋아, 수락하마.”“원경릉의 목숨을 걸고 맹세해요!” 주명취는 믿지 않았다.우문호의 안색이 냉담 해지며, “초왕비의 목숨을 걸고 맹세한다, 네가 죽을 때 네 곁에 있을 것이다.”주명취가 조용히 안도의 숨을 내쉬고, “당신을 마지막으로 이번엔 믿을 게요.”주명취는 두 손으로 땅을 디디고 앞으로 기대려고 노력했다. 성벽의 갈라진 틈으로 선홍색 핏자국이 희미한 불빛 아래 불규칙하게 꿈틀거리는 게 그야말로 공포스럽기 그지없다.“우리 할아버지!” 주명취는 우문호의 귓가에 있는 힘을 다해 6글자를 외쳤다.말을 마치고 주명취는 깊은 숨을 내쉬며 슬픔과 원망의 눈빛으로 우문호를 쳐다봤다.우문호는 입꼬리를 올리고 차가운 미소를 짓더니, “나도 그 사람을 생각 했어, 그 사람 말고 누가 이런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울 수 있겠어?”“맞아, 할아버지 말고 누가 모든 것을 전부 손에 쥐고 주무를 수 있겠어요?” 주명취의 눈에 실망이 감돌며, “사실, 할아버지는 저까지 죽이려고 한 거죠? 당초에 얘기한 건 제 목숨을 살려주고 원경릉이 죽기만 하면 할아버지가 일체를 깨끗이 처리해 주실 수 있다고, 전 여전히 재상 집안의 큰 딸로 있게 해주겠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들은 결국 저까지 죽이려고 했어요, 만약 당신들이 오지 않았으면 저도 배에서 죽었겠죠”“주재상 이 몰인정한 인간.” 우문호가 말했다.주명취가 비분강개 하며, “그래, 정말 몰인정한 인간이에요. 할아버지는 그렇게 엄마를 죽였죠. 뼈에 사무치도록 밉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우문호가 물었다: “그 산적 떼는 주재상이 찾아낸 거야?”“그래요.” 주명취가 말했다.“주재상이 어떻게 그런 산적이나 도적떼를 아는 거지?”주명취는 여전히 넋이 나간 상태지만 정신을 차리며: “당연하죠, 할아버지는 전에 병사를 이끌고 산적 떼를 토벌하셨잖아요, 산적 떼가 어디 숨었는지 짚이는 데가 있었을 테죠.”우문호가 주명취에게, “주재상이 전에 병사를 이끌고 도적떼를 토벌했다고?”주명취가
주명취 사건의 종결과 우문호의 판단우문호는 이렇게 가만히 쳐다보고 얼굴을 굳힌 채 움직이지 않았다.우문호가 비로소 작게: “네가 할아버지를 이용해 시선을 흐리게 했으나, 나도 알아챘어. 그에 대해선 이미 방비돼 있지. 너도 그가 널 위해 원경릉을 죽여 줄 수 있다는 생각 하지 마라.”주명취가 숨이 끊어지기 전에 우문호가 갑자기 다가와 주명취의 귀에 이름 하나를 소곤거렸다.주명취의 눈이 커지며 온 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목에서 낮게 으르렁 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전신이 경직되며 눈에는 분노와 미칠 듯한 슬픔이 가득했다.주명취는 편안히 눈을 감지 못했다.어두운 붉은색 비단 옷이 감옥 기둥을 쓸고 지나가며 우문호 얼굴의 냉담하고 쓸쓸한 빛이 사라져 갔다.오후에 형부와 합동 심리가 취소되었는데 감옥의 옥졸장의 보고 때문이었다. 옥졸장 말이 주명취가 자진하여 이미 죽었다는 것이다.주요 인물이 죽었다. 두 명의 산적의 자백도 특별히 가리키는 것이 없어 다시 심리할 필요 없이 모든 죄목은 주명취 혼자 지게 되었다.두명의 뱃사람은 살인에 참여하고 초왕비를 납치하였으므로 참수형에 처해졌다.우문호는 보좌관에게 오늘 누가 감옥에 갔고, 주명취를 만났는지 암암리에 수사를 명했다.보좌관이 조사한 후 보고하길: “손 포도대장입니다.”우문호의 담담한 표정으로, “이 일은 입 밖에 내지 마라, 넌 그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다.”보좌관이 묻길: “대인, 그럼 주명취의 자백은……”“찢어버리자.” 오늘 주명취에게 자백을 받을 때 보좌관이 옆 방 감옥에서 기록하고 있었다.“하지만, 주명취가 주재상을 자백하지……” 보좌관이 다소 망설였다.“주재상이 아니다.”보좌관이 놀라며, “왕야, 무슨 생각이라도?”“기왕이다!” 우문호가 보좌관에게, “그 손 포도대장은 과거에 기왕의 은혜를 입은 적이 있지.”보좌관이 깜짝 놀라, “의외로 기왕 전하셨습니까?”우문호가 분노해서, “아깝다, 증거가 없으니 일단 한번은 용서해줄 수 밖에.”보좌관이 우문호에게, “하지만 왕야께서 오
탕양은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창문으로 바람이 세차게 불어와 책상 위에 종이가 마구 날렸다. 우문호는 무거운 물건을 종이 위에 올려놓았다. “경릉이…… 보고 싶네.”“왕비가 자금탕을 먹었다는 소문이 돌자 벌써 밖에는 뱃속에 아이가 자금탕을 먹고살 수 있을지…… 사실 넉 달이나 지났으니 평탄한 시기입니다.”우문호가 차갑게 웃었다.“넷째는 도대체……”넷째, 안왕, 우문안의 귀비의 아들로 외조는 적위명(狄魏明) 대장군으로 귀영위의 수장이다.우문안과 우무호는 어릴 적에 군에 들어가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우문안 또한 전쟁에서 많은 공을 세웠고, 군사를 이끌고 토비를 숙청하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특공을 세웠다. 그는 갓 스무 살이 되어 보주를 하사한 첫 친왕이었기에 외부에서는 그를 보친왕(寶親王)이라고 불렀다.탕양이 우문호를 보았다.“줄곧 기왕을 경계해왔지만, 이렇게 은밀하게 계책을 마련했을 줄은 몰랐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불한당들이 나올지 모르겠습니다.”우문호는 탕양을 보며 담담하게 웃었다.“이미 형제간의 정은 없어.”그 말을 들은 탕양은 마음이 아팠다.“태상황께서는 적위명 대장군을 매우 신임하고 있기에 그를 귀영수의 사령탑으로 임명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아주 불리한 상황입니다. 귀영위는 본래 왕비님을 보호해야 합니다. 저쪽 악당들이 똘똘 뭉치면 왕비께서 위험해지실 겁니다.”우문호는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괜찮다. 일단은 적위명이 감히 귀영위를 이용해 원경릉을 해칠 수는 없을 것이야. 하지만 원경릉의 일거수일투족이 그의 손아귀에 있으니…… 본왕이 이 일은 다시 방법을 강구해 보겠다. 황조부께 귀영위를 해산하시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적위명을 지목할만한 증거도 없다. 본왕도 태상황 앞에서 그를 고발할 수는 없어. 그는 여러 해 동안 태상황의 옆에 있던 사람이다. 그저 우리가 조심할 수밖에……”“맞습니다. 아 맞다! 왕야! 왕비 곁을 지키는 사람이 더 늘어나야 하는 것 아닙니까? 만아는 어
사식이와 만아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고 원경릉이 우문호를 바라보았다.우문호는 소매를 풀며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었다.“만아는 내 생명의 은인이야.”“만아를 머무르게 하고 싶으면 그냥 둬.”그 말을 듣고 원경릉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의 어깨와 목을 감싸 안고는 웃었다.“참 잘됐다!”“네가 웃는 얼굴을 볼 수 있다면, 난 죽어도 좋다!”우문호는 기뻐하는 원경릉을 보고 귀여운 듯 볼을 꼬집었다.사식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우문호왕 원경릉을 보았다. “왕야께서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게 됐습니까?”사식이의 말을 듣고 우문호가 눈을 가늘게 떴다.“누가 너 들으라고 한 소리 같아? 내 여자가 행복하면 난 그것으로 됐다.”사식이는 귀를 막으며 고개를 저었다.“어휴 닭살 돋아!”원경릉은 사식이와 우문호의 대화를 듣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그녀는 우문호를 보면서 “사식이가 저렇게 말해서 기분 나빠?”라고 물었다.우문호는 약상자를 챙기며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 별로. 아 맞다! 요 며칠 동안 왕부에서 너와 함께 있을 거야. 관아엔 안 갈거야.”“왜?” 원경릉이 물었다.우문호는 빙그레 웃으며 그녀를 보았다.“경중에 이렇게 큰일이 났는데, 내가 경조부윤이잖아 부황께서 당연히 나를 정직시키시겠지.”“정직? 그럼 정직기간 동안 나랑 같이 왕부에 있으면 되겠네. 나도 맨날 너 퇴근하고 왕부로 오는 것만 목 빠지게 기다리기 힘들었는데 잘됐다!” 원경릉이 우문호의 팔을 잡고 즐거운 듯 방방 뛰었다.“나를 목 빠지게 기다렸다고?”우문호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임신기간 동안 자신이 원경릉에게 무심했던 것은 아닌가 마음이 아팠다. *다음날, 기왕비는 원경릉을 위해 태아를 보호하는 약을 가지고 왔다.기왕비가 여러 번 왕부에 다녀갔지만 약을 가지고 온 것은 처음이었다.“만약에 제가 독약을 가지고 왔다고 의심이 되신다면 안 드셔도 됩니다. 그냥 제 마음을 전하려고 가져온 것입니다.”“고맙습니다. 필요할 때 꼭 먹겠습니
기왕비는 원경릉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초왕비는 주명취 손에 죽을 뻔했습니다. 다섯째에게 그녀가 무슨 말을 했다면 그 말을 초왕비도 알아야죠. 죽을뻔했으면서 아직도 모르겠습니까?”원경릉은 그녀에게 주사를 놓으며 “저는 다섯째가 알아서 잘 처리했으리라 믿습니다.”라고 말했다.원경릉의 말을 듣고 기왕비가 코웃음을 쳤다. “남자를 믿어요?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짓이 남자를 믿는 겁니다. 지금은 초왕비에게 잘해주겠지만, 나중에 가봐요. 그 마음이 한결같은지. 가만 보면 초왕비는 참 순진합니다.” 때마침 우문호가 왕부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형수님 말씀에 따르면 세상에 모든 남자들은 나쁜 놈이네요?”우문호의 등장에 당황한 기왕비가 우물쭈물하더니 입을 열었다.“여자들은 어쩔 수 없이 악에 이용당하죠.”우문호는 원경릉 옆에 앉아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기왕비를 보았다.“어쩔 수 없다라…… 형수님께서는 여자의 욕망과 야심도 어쩔 수 없이 남자에 의해 강압적으로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이 말을 들은 기왕비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지금 저 들으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저는 주어를 말하지 않았는데요?”기왕비는 창백한 얼굴로 우문호를 바라보았다. “제가 초왕비 잘되라고 충고한 것 가지고 과민 반응하시는 건 초왕이신 것 같습니다. 저는 그저 초왕비가 걱정되어서 그런 말을 한 것뿐입니다.” “만약 걱정이 되어 그런 말씀을 하셨다면 본왕이 초왕비를 대신해 감사를 표하겠습니다. 하지만 저와 초왕비 사이의 감정을 흔드는 말을 하는 것은 듣고 싶지 않습니다.”“그럴 생각은 없었습니다.” 기왕비가 흥분한 듯 보였다.원경릉은 두 사람이 싸우기 전에 손을 저었다. “됐습니다. 다들 그만하세요. 부부간에 마음을 열고 서로를 신뢰하는 것도 행복이잖아요”그녀는 기왕비를 힐끗 쳐다보더니 우문호를 보며 말했다. “물론 그 말도 맞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초왕 내외 같지는 않죠.” 기왕비가 쓸쓸하게 말했다.“기왕비. 저는
“재상에게 화를 낼 필요는 없다는 거 잘 알아.” 우문호가 말했다.“응! 네가 복직을 하려면 재상이 부황께 말씀을 드려야 하잔하. 그러니까 지금은 재상에게 잘 보여야 할 때야. 좋게 좋게 말하고 와.” 원경릉은 까치발을 들어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어이구! 언제 이렇게 애교가 느셨을까?” 우문호가 웃었다.“입에 발린 말을 하기 싫어도 해야 할 때가 있어. 말 몇 마디 해준다고 손해 볼 건 없으니까. 그가 듣고 싶은 말 몇 마디 해주고 와.”“네가 말 안 해도 알아. 쪼꼬만 게!” 우문호는 정직 상태로 관아에 들어갈 수 없었지만, 관아 내에도 그가 경계하고 감시해야 할 사람들이 있었기에 복직이 필요한 상태였다. 원경릉은 문쪽에 서서 그의 망토가 하얀 눈으로 뒤덮이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하늘에 날리는 눈송이를 보았다. ‘예쁘네…… 시간 참 빠르다. 벌써 겨울이라니……’*서재 안에는 난로가 켜져 있어서 매우 따듯했다. 재상은 입고 온 두꺼운 솜 두루마기를 나한 침상 옆에 벗어두고는 희상궁이 내온 생강차를 마시며 앉아있었다. 그가 손에 들린 생강차를 호호 불자 따듯한 김이 코 끝을 촉촉하게 적셨다. 희상궁은 원래 밖에서 시중을 들어야 했지만 바깥바람이 매서운 관계로 재상이 안에서 시중을 들라고 명했다. 우문호가 들어온 후 희상궁이 자리에서 일어나 우문호의 잔에도 차를 따랐다. 주수보는 자신의 찻잔에 차를 다 마시고는 희상궁에게 차를 더 따르라고 했다. “늙어서 그런지 목이 더 타는 것 같네.”희상궁은 주수보의 잔을 가득 채우고 다시 문쪽으로 가서 서있었다. “재상어른께서는 오늘 사건에 대해 궁금하신 것이 있으셔서 오신 겁니까?”주수보는 잔을 내려놓고 두 손을 넓은 소매 속으로 넣은 채 우문호를 보았다.“예, 주명취가 죽기 전에 초왕께 무슨 말을 했다고 하던데……”“자백을 했습니다. 그녀가 말하길 모든 것이 재상의 뜻이라고 했습니다.”우문호의 말을 들은 주수보의 얼굴이 굳었고, 희상궁은 깜짝 놀라 우문호를 쳐다보았
주수보는 심증이 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생강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고개를 젖혀 희상궁에게 말했다.“생강차는 많이 마시면 속 아픈 것도 모르느냐? 먹을 것도 하나도 내어오지 않고, 속 쓰려 죽겠다.”“알겠어요. 왕야와 얘기 나누세요. 가서 음식을 만들어 오겠습니다.”희상궁이 그의 말을 알아채고 바쁘게 밖으로 나왔다.“말 다 했어.” 주수보가 말했다.그는 찻잔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요리를 하러 가야지.”그 말을 들은 희상궁이 놀라서 그를 쳐다봤다.우문호는 주수보가 주명취에 대해서 더 많은 질문을 할 것이라고 여겼다.*희상궁과 주수보가 밖으로 나왔다.“왕야께서는 재수가 없으시네.” 주수보가 말했다.희상궁은 깜짝 놀라서 물었다.“재수가 없다고요? 무슨 재수가 없는 일인데요? 겁주지 마세요!”“겁주는 게 아니라 진짜야.”“빨리 말해요. 뭐가 재수가 없다는 건지!” 희상궁이 그를 막아섰다.“희상궁 만두 빚을 줄 압니까?”주수보가 희상궁을 보았다.“압니다!”“그럼 먼저 만두부터 빚자고요. 지금 내가 너무 배가 고프니까 말이 안 나오니까.”희상궁이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만두 만들고도 말 안 해주면 다신 저를 볼 생각 마세요!”라고 말했다.그녀는 말은 한 후 성큼성큼 부엌으로 갔다.잠시후, 만두를 다 만든 희상궁에 주수보에게 만두를 들고 왔다.“어떱니까?”주수보는 젓가락으로 만두를 집어 한 입 먹더니 “음…… 좀 짜네.”라고 말했다.희상궁은 화가 난 표정으로 “빨리 왕야에 대해 얘기를 해보세요! 왕야께서 왜 재수가 없다는 겁니까?”라고 말했다.“폐하께서 왕야를 정직시키는 것 말이야.”“그건 압니다. 정직은 잠깐 일을 멈추는 거잖아요.”“안다고?” 주수보가 물었다.“안다고요! 세상 사람 다 아는 얘기를 뭘 그렇게 생색을 내면서 해요!”주수보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그는 왕부를 떠나면서 계속 초왕에게 재수 없는 일이 생겼다고 중얼거렸다.우문호와 원경릉은 손왕부에 가서 제왕을 보았다.불에
제왕은 고개를 저으며 분노를 삼켰다.“본왕은 그저 그 여자가 무슨 억하심정으로 나를 사지에 몰아넣었는지 알고 싶을 뿐이야.”“너무 뻔하지 않나요? 그냥 잊어버리세요.” 원용의가 말했다.제왕이 고개를 들어 원용의를 바라보며 “그래.”라고 말했다.“그래요 이제 잊어버리세요.”“그렇게 말 안해도 다 잊었어.”원용의는 그가 말로만 잊었다고 하는 것을 알았지만 되묻지 않았다.제왕은 원용의가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직감하고 그녀를 바라보았다.“난 그냥 그 여자가 나를 왜 나를 죽이려고 했는지 그게 이해가 안 된다. 꼭 그럴 필요는 없었을 것인데 말이야.”“악몽을 꿨다고 생각해요. 살다 보면 그런 쓰레기 같은 사람들 만날 수도 있죠.” 원용의가 위로했다.제왕은 원용의에 말대로 끔찍한 악몽을 꿨다고 생각하기로 했다.그가 불속에서 도망쳐 나와 깨어났을 때 원용의가 제왕에게 주명취가 불을 질러 제왕을 죽이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부부 사이에 어떠한 원망의 마음이 있더라도 서로의 생명을 앗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원경릉은 밖에서 손왕비와 위왕비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손왕비가 원경릉이 온 것을 보고 위왕비를 데려오라고 명했다. 위왕비의 몸이 좋지 않아 손왕비는 줄곧 원경릉을 불러 위왕비의 상태를 확인해보고 싶었다.원경릉이 위왕비를 진찰해보니 혈압이 낮고 빈혈이 있는 것 같았으며 정신 건강도 좋지 않아 보였다. 위왕비는 말을 할 힘도 없는 듯 원경릉을 보고도 처음부터 끝까지 주동적으로 말을 하지 않았다.“하늘이 무너져도 건강이 최고입니다. 몸을 잘 돌보세요. 위왕비.”손왕비는 위왕과 그 여인의 일을 알고 위왕비를 위로했다.위왕비는 힘없이 웃으며 “알고 있습니다. 손왕비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창백한 위왕비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역력했지만 하얀 피부에 붉은 입술이 백합처럼 고고하고 아름다웠다. 경국지색은 아니더라도 수수한 얼굴에 몽롱한 눈빛은 딱 고전미인형이었다.야리야리한 그녀가 인상을 조금만 써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이 뭉클하고
위왕이 거만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저는 돕지 않습니다. 택란이 폐하를 사모한다고 말하거나, 혼인을 하고 싶다고 하지 않는 한, 꿈도 꾸지 마십시오!”“그럼 난 기다리겠소!”경천이 답했다.위왕은 그의 눈빛에서 보이는 익숙하고도 강한 결단력을 보며 말했다.“정말 고집이 세시군요. 대체 어찌 말해야 할까요? 세상엔 수많은 여인이 있습니다. 택란보다 더 뛰어난 여인도 있을 텐데, 어찌 택란만 붙잡고 이러십니까?”경천의 목소리는 매우 부드러웠지만, 한 마디 한 마디가 확고하게 느껴졌다.“나는 오로지 하나만 바라볼 뿐이네. 내 생애 다른 여인을 얻을 생각도, 후궁을 들일 생각도 없소. 택란만 있으면, 나는 그 누구도 마음속에 두지 않네.”위왕과 안왕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경천의 말에 다소 감동하였다.그러나 약속을 하는 것은 쉽지만, 그것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스무살, 서른이 되어서도 오늘 한 말을 기억하길 바랍니다.”위왕이 말했다.그러자 경천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택란이 돌아오자, 다시 입을 열었다.“어제 내가 한 일은 조금 어처구니없었다. 그러니 신경 쓰지 말고, 전부 없던 일로 생각해라.”“예!”택란은 조금 어리둥절했다. 그는 여전히 시선을 마주하기도 힘들 정도로 뜨거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우리는 이제 좋은 벗이 될 수도 있지 않느냐? 나를 벗으로 생각해 줄 것이냐?”경천이 미소를 지으며 택란을 바라보자, 그녀가 웃으며 대답했다.“그럼요. 저희는 벗이니깐요.”위왕은 그제야 경천이 그렇게 나쁘진 않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는 택란에게 계속 압박을 가하지 않았다. 두 나라가 협력하는 상황이니, 요구를 제기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그들이 궁을 떠나려 하자, 경천은 말리지 않고 두둑한 선물을 준비해 그들을 궁 밖으로 모시도록 했다.그들이 떠난 후, 경천은 통천각에 올라가 그들이 멀어져 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찌푸리고 있던 미간을 천천
“이득을 취할 수는 있지만, 약속은 해줄 수 없다.”위왕이 웃으며 말하자, 택란또한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하하하. 참 현명하십니다!”“그럼! 국사는 국사, 개인적인 일과 섞여서는 안 된다.”택란도 동의했다.“그럼 저도 오늘 밤 장관에 머물겠습니다. 내일 저와 함께 궁으로 들어가시지요.”“그래, 걱정하지 마라. 내가 함께 가마.”안왕이 말했다.택란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하고 물러나, 주 아가씨와 냉명여를 데리고 나갔다.다음 날 그녀는 두 친왕과 함께 동행하였고, 궁에 도착하자마자 삼 태감이 직접 그들을 어서방으로 모셨다.경천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듯, 안색이 다소 어두워 보였다. 하지만 택란을 보자 눈동자, 그의 눈망울은 여전히 빛이 났다.협력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러 왔기에, 안왕과 위왕도 편견을 내려놓았다. 경천이 택란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며, 두사람은 못내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그들 역시 젊었었고 사랑에 빠졌던 적이 있었기에, 그 사람을 위해 유치하고 때로는 무서운 짓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경천이 한 일도 그저 좋아하는 사람을 얻기 위해 노력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비록 책략이 다소 대담하긴 했지만, 혈기 왕성한 나이니 이해할 만했다.경천은 상석에서 내려와 직접 두 친왕에게 사과를 올렸다.“어젯밤 내내 생각해 보니, 어제 일로 두 분께 큰 불편을 가져다주었을 것이오. 부디 용서해 주시오!”위왕은 급히 일어나 예를 올리며 말했다. “폐하, 그렇게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어젯밤 일은 저희도 이해합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앞으로 두 나라가 자주 오갈 것이라는 점입니다. 작은 일이니,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경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맞는 말이오. 앞으로도 자주 오가며 지낼 것이네.”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택란을 힐끗 쳐다보았다. 택란은 계획서를 들여다보고 있다가, 뜨거운 시선을 느낀듯 고개를 들었다.그와 시선이 마주치자 미소를 지었고, 하얀 볼도 살짝 불그스레해졌다.두 나라 모두 광물 채굴
위왕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혹시 복수하려는 것이냐?”“복수가 아니라, 그저 사실을 말할 뿐입니다.”안왕은 그에게 책임을 떠넘겨 혼자 감당하게 한 위왕을 보며 만족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위왕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어찌 다섯째에게 설명할지 생각해 보거라. 보책은 아직 네 손안에 있잖냐.”안왕은 여전히 두꺼운 보책을 손에 쥐고 있었다. 잃어버릴 수 없는 귀한 것이지만, 가만히 들고 있기도 거슬렸다.이렇게 골치 아픈 상황이 생길 줄 알았다면 차라리 꾀병을 부리고 위왕 혼자 오게 한 것이 더 나았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 각자 방으로 돌아가 목욕을 한 후, 막 침대에 누웠을 때 택란이 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두 사람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열고, 바로 택란을 만나러 나갔다.안왕은 보책을 가지려 했으나, 택란에게 넘겨받으면 곧 금나라 황후임을 인정하는 셈이 되므로, 절대 넘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적어도 어린 황제는 아직 그들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택란은 두 분 큰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린 후 자리에 앉아 말했다.“큰아버지, 오늘 일은 아바마마께 절대 말하지 마십시오.”안왕도 원하던 바였기에 다급히 답했다.“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먼저 네 아버지한테 숨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체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른다.”“예. 저도 그것이 걱정입니다.”택란의 가장 큰 걱정은 바로 아버지였다.“어린 황제도 참, 어린 시절의 약속마저 진지하게 받아들이다니… 설령 너와 혼사를 약속했다 해도, 네가 승낙하지 않을 것 아니더냐.”안왕이 말하자 택란은 잠시 머뭇거리며 말했다.“그때 이미 동의했었습니다.”다만 그때는 그저 그를 달래, 그의 상처가 심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 뿐이었다.“승낙했다니?”안왕과 위왕은 서로 놀란 표정으로 시선을 마주했다. 그러면 이 일은 전적으로 어린 황제의 탓도 아니다.“하지만 넌 그때 겨우 여덟, 아홉 살이었다. 그저 아이들의 장난일 뿐일 테니, 동의했다고 해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도 된다.”위왕이 재빨
“폐하, 공주께서 폐하가 드리신 선물을 받지 않으신 것입니까?”언제 올라온 건지, 진이는 어느새 그의 곁에 서 있었다.“응.”경천은 뒤돌아 상자와 두 개의 옥패를 바라보았다. 그가 오랜 시간 동안 배우며 수많은 옥을 망친 끝에 겨우 지금과 같은 모습을 조각해 낸 것이었다.하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속상해하지 마십시오. 공주께서 아직 어리셔서 폐하의 노고를 다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깐요.”진이가 위로하자 경천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니, 그녀는 아주 잘 알고 있어서 받지 않는 것이다.”진이가 잠시 멈칫했다.“너무 잘 안다니요? 그런 것 같진 않아 보였는데요.”경천은 이미 실망한 기분을 떨쳐버렸고, 대신 굳건한 의지를 다졌다.“진아, 나는 그녀의 뜻을 완전히 이해했다. 그녀는 먼저 좋은 황제가 되어주기를 바란단다. 이곳을 떠나기 전, 나에게 한 나라의 군주라 하지 않았냐? 황제로서 역할을 다하기를 바라는 것이다.”“아... 그런 것입니까!”진이는 비록 이해하지 못했지만, 황제가 속상해하지 않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택란 일행은 궁을 나섰다. 냉명여가 그녀에게 물었다.“누나, 어찌 황제가 주신 옥패를 받지 않으시나요? 그를 싫어하시는 것입니까?”택란은 웃으며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나는 절대 그를 싫어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강단 있는 황제이고, 뛰어난 통치로 금나라가 정권 이양 위기를 넘길 수 있도록 했다. 게다가 그는 두 나라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두 나라에 평화를 가져왔다.”“그럼, 어찌 그의 선물을 받지 않으셨습니까?”냉명여는 다른 사람의 선의를 함부로 거절하면 안 된다고 배웠기에, 그녀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택란이 답했다.“그 옥패가 약속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명여야, ‘약속’이라는 말은 무거운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만약 네가 그것을 이행할 능력이 없다면, 함부로 약속하지 말아야 하는 법이다.”“하지만 그도 누나와 혼사를 올리겠다고 한 말에 대한 약속을 지키려는 것 아닙니까?”“그래. 하지만 나
경천은 그녀의 말을 반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네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다."택란이 말했다."어쩌면 5년 후에는 오늘 한 모든 일이 어리석고 충동적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좋아하는 여인을 만나게 될 때, 그 감정이 단순한 사모인지 은혜 때문인지 알게 되실 것이고, 오늘의 행동을 후회하게 될지도 모릅니다."경천은 단 한 마디만 응한 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태도가 이렇게나 분명하니, 절대 그런 말로 그녀를 얽매여 부담을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오늘 한 모든 일은 그의 결정이며 그의 태도였다. 그녀는 몰라도 되고,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긴 하지만, 그는 언제나 그녀를 기다릴 것이었다.그리고 그녀의 인정을 얻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택란은 한숨 놓은 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해한다니 다행입니다.""알고 있다."경천의 얼굴은 약간 창백했지만, 애써 미소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삼 태감이 책자를 가져왔다. 경천은 그것을 택란에게 건넸고, 택란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았다. 그가 제시한 조건은 매우 공정했으며, 심지어 약도성에 이익을 양보한 정도였다.책자를 접은 후, 그녀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우리 약도성을 생각해 줘서 고맙습니다. 두 나라의 원한을 풀기 위해 애써줘서, 그리고 약도성의 백성과 조정이 화해할 수 있도록 도와줘서 고맙습니다.""알고 있었던 것이냐?"경천이 다소 놀라며 묻자, 택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예. 알아봤습니다.""오해하지 마라. 그저 너를 위하여 한 일이 아니니, 부담 갖지 않아도 된다."그는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해명했다.택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오해하지 마시지요. 저는 정말 부담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를 위해 이렇게 많은 일을 해줘서 고마울 뿐입니다. 오늘도 사실 많이 감동했습니다. 다만, 저는 아직 혼사에 대해 논할 나이가 아니고, 사적인 감정보다는 다른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 어리고, 앞으로 혼사를 하더라도 반드시 아바마마
손에 쥐니, 차가운 촉감이 느껴졌다. 그 옥의 차가운 느낌이 서서히 스며들자, 그녀는 기분이 좋았다.그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놀라운 표정을 지었을 때, 그는 미세하게 안도하며, 그녀가 좋아할 것이라 믿었다."직접 만든 것입니까?"택란은 마음에 든 듯 손에 꼭 쥐고 있었다. 그녀의 밝은 눈동자에는 존경이 가득했다."응!"그는 힘주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마음에 드냐?""예. 정말 마음에 듭니다!"택란도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더욱 빛나는 미소를 지었다.그러자 그가 약간 흥분된 표정으로 물었다."그럼, 이걸 직접 나에게 선물해 줄 수 있느냐?""예?"택란이 잠시 멈칫하며, 놀라 물었다."저에게 준 선물이 아닙니까?"그가 미세하게 떨리는 손끝으로 소매 주머니에서 또 다른 옥 조각을 꺼내 손바닥에 올려놓으며, 진지하게 말했다."이건 내가 네게 직접 주고 싶은 것이다."택란은 그가 손에 든 것을 바라보았다. 옥질도 동일하게 맑고 투명했고, 손바닥의 선도 보일 정도였는데, 그 조각에는 경천의 모양이 새겨져 있었다.옥에는 미소를 짓고 있는 준수한 그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고,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입고 있던 옷이 새겨져 있었다. 비록 색은 알 수 없었지만, 자수가 명확하게 새겨져 있었다.그녀는 기억력이 매우 좋았기에, 그때의 기억이 선명히 떠올랐다.그녀는 두 개의 옥을 손바닥에 놓았다. 그제야 그녀는 옥에 3년 전 그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가 시간을 되돌려 3년 전 만남을 담은 것이었다!경천은 택란을 바라보며, 애써 차분함을 유지하려 했다. 하지만 심장은 거의 목구멍까지 올라올 듯했다.택란이 두 개의 옥을 서둘러 상자에 다시 넣으며 말했다."두 개 모두 오라버니께서 먼저 가지고 있으세요."경천은 눈시울을 붉히며 다시 건네받은 상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눈을 내리깔며, 애써 실망이 드리운 눈빛을 숨겼다.삼 태감이 정교한 음식을 올려놓았고, 모두 택란이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그녀는 가볍게 숨을 내쉬며, 알 수 없는 작은 흥분을 억누르고, 표정을 고쳐서 천천히 돌아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북당 백성인 란이 언니와의 혼사는 다 거짓인 겁니까?"경천의 동공이 흔들렸다."혹시... 화가 난 것이냐?""아닙니다."택란이 고개를 젓자, 밝은 빛이 그녀의 깨끗한 얼굴에 비쳤고, 고르게 정리된 이마 밑의 눈동자는 다시 차분해졌다."그런데 어찌 사람을 시켜 저를 찾고 있다고 직접 저게 소식을 전하지 않으셨습니까? 만약 편지를 보냈다면, 저도 오라버니를 만나러 왔을 것입니다. 심지어 혼사에 하객까지 청하며 일을 이렇게나 크게 벌였는데, 대체 어떻게 수습하려고 하십니까?"그는 갑자기 결단을 내린 듯, 천천히 그녀 앞에 섰다. 그러고는 그녀의 까만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위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수습할 필요 없다. 나는 이미 천하에 나의 황후가 우문택란이라고 선언했다. 나는 그녀가 어서 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택란은 순간 놀라하며, 굳어진 얼굴로 물었다.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경천은 그녀가 화가 난 것 같아, 마음이 내려앉았다. 그의 눈동자엔 어두운 그림자가 깔렸고, 이내 조심스레 물었다."응할 수... 있겠느냐?"택란은 잠시 망설였다. 기억 속의 그 소년이 지금 별빛을 받으며 그녀 곁으로 돌아왔다. 이전의 그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10년 후 그가 죽지 않으면 돌아와서 그녀를 부인으로 맞겠다고 열정적으로 말했었다. 그 열정이 가득한 목소리는 지금도 그녀의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그런 과거와 현재가 얽혀 버리자, 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저는..."경천은 그녀가 망설이는 모습을 보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는 그녀의 반응이 너무 당황스러워서, 얼굴을 조금 숙이며 말했다."지금 바로 대답할 필요 없다. 몇 년 후라도, 10년, 아니 20년 후라도 괜찮다.""하지만...""아니, 말하지 말거라."그는 방금까지만해도 가득찼던 자신감을 더 이상 보여줄 수 없
냉명유는 팔짱을 낀 채 검을 가슴 앞으로 옮기며, 차갑게 말했다."누님께서 어디로 가든, 저도 무조건 함께 갈 것입니다."“하… 하지만."삼 태감이 무척 난감해했다."그래. 함께 가자. 이 거월통천각이 정말 달을 딸 수 있는지 어디 가서 보자꾸나!"그러자 택란이 웃으며 말했다.주 아가씨는 조금 의심스러웠다. 정말 공주가 만나고 싶다면, 어찌 공주한테 이렇게 높은 계단을 오르게 할 수 있는가?그러고는 계단 위에 새겨진 난초꽃을 힐끗 보고는 순간 멈칫했다. 시선을 위로 올려보니, 계단의 각 층마다 난초꽃이 새겨져 있었다.황제가 자신의 그리움을 돌계단에 새긴 것이었다!택란도 계단을 오르며, 이 사실을 눈치챘다.게다가 각 난초의 형태와 크기는 매우 똑같았다. 처음에는 선이 조금 거칠게 느껴지긴 했지만, 후에는 점점 더 섬세하고 부드러워 보였다.이건 분명 같은 사람이 새긴 것 같았다. 그가 직접 조각한 것일까? 금나라가 이곳으로 수도를 옮긴지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잠시 후, 그들은 거월통천각의 가장 높은 층에 도착했다. 다행히 냉명여는 문 앞에서 멈추고 안까지 들어가지 않았다.택란은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는데, 안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네개의 용 모양 기둥이 세워져 있었고, 네 모서리에는 각각 올라가 쉴 수 있는 정자가 있었다. 정자에는 난간이 둘러져 있었으며, 가운데에는 탁자와 두 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떠힌. 네 면에 걸려져 있는 대나무 커튼이 걷혀 있어, 사방에서 밖을 볼 수 있었다.그 사이에서 청색 비단옷 차림의 남자가 통천각 옆 난간에 기대어 택란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는 매우 긴장한 듯 손과 발을 살짝 떨고 있었다. 별빛처럼 맑은 눈동자에 약간 숨이 가쁜 듯 보였다. 그는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그녀를 보자마자 이내 눈시울을 붉혔다.재회를 위해 최선을 다하며 가장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에, 그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이 만남을 특별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반짝이는 별들도 그중 하나였다.하지만
손님들이 하나둘씩 떠나자, 경천 황제는 서둘러 궁으로 돌아가 푸른 비단옷으로 갈아입었다.옅은 청색 옷자락에, 소매 끝에는 난초꽃이 수놓아져 있었고, 나머지 부분은 어두운 구름 문양으로 수놓아져 있었다. 이 옷감은 북당에서 온 것이었다."폐하, 꼬마 은인께서 궁문에 도착하셨다고 합니다."삼 태감이 와서 보고했다."좋소."그는 거울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깊은숨을 내쉬었다."택수운천으로 가겠네."택수운천은 그가 즉위한 후, 궁궐 안에 지은 새 궁전으로, 세 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궁전 옆에는 거월통천각이 있었는데, 이는 량주성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거월통천각 안에 있으면 마치 손바닥에 달을 담을 수 있을정도로 웅장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거월통천각에서 멀게는 약도성과 량주가 인접한 산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녀가 생각날 때면, 늘 거월통천각의 가장 높은 층으로 올라가 풍경을 멀리 바라보곤 했다."진이야, 너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해 본 적이 있느냐?"그가 준수한 옷차림으로 난간에 기대어 먼 곳을 바라보며 물었다. 바람이 서서히 불며 청색 옷자락이 휘날리자, 옷자락의 네 끝에 박힌 고급스러운 야명주가 그의 선명하고 잘생긴 얼굴을 비추었다.그때, 저 멀리서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궁 시위를 따라, 아치과 복도를 지나 거월통천각으로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그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젊은 금군 통령 진이가 그의 모습을 보고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런 적 없습니다.""사모의 마음을 품어보거라. 떨리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느낌만큼 좋은 것이 없다."그는 그녀를 멍하니 보며 말했다. 천천히 다가오는 탓에 그녀의 얼굴이 자세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13세 전까지의 그의 인생에는 나라와 백성들 뿐이었지만, 13세 이후 그의 인새은 온통 그녀뿐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지금 그녀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진이는 황제의 시선을 따라, 천천히 다가오는 세 명을 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