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왕비가 보낸 사람이 초왕비의 상태를 전하지 않았습니까? 그걸 알았으면 이 늙은이에게도 알려줬어야죠. 그러면 늙은이가 올 때 약을 가져왔을 거 아닙니까.”진국대장공주의 말투에는 기왕비를 향한 경책이 있었다.초왕비가 아이를 임신한 이후로 황실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살얼음을 걷는듯 긴장했다. 특히 진국대장공주는 마음이 줄곧 초조했다. “제가 보낸 하인이 돌아와서 이 소식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어쩌죠……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못했는데.” 원경릉은 그런 기왕비를 보고“걱정 마세요. 참 이전에 기왕비께서 보내주신 귀한 관음상은 제가 아주 좋아합니다.”라고 말했다.옆에 있던 희상궁이 웃으며 기왕비를 보며“맞습니다. 그 관음이 금만 가지 않았다면 더 좋았겠지요.”라고 말했다.그 말을 들은 진국대장공주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기왕비를 보았다.“관음을 보냈다고요? 그게 어떻게 금이 갈 수 있죠? 하인이 떨어뜨렸습니까?”“부중의 하인이 덜렁대는 바람에 그만…… 제가 이미 벌을 내렸습니다.” 기왕비는 담담하게 말했다.그 말을 들은 진국대장공주는 얼굴이 붉어졌다.“벌을 주면 그만입니까? 선물을 보내기 전에 검사를 두 번 세 번 했어야지! 보통 물건도 아니고 관음보살을! 게다가 임신한 친왕비에게 보내면서 그렇게 대충 하다니!”불교를 믿고 있는 진국대장공주는 관음보살이 손상되어 불교를 모욕하는 것도 화가 났고, 황실의 혈육이 탄생하는데 혹여 저주가 될까 걱정이 됐다. 그녀는 기왕비의 행동이 터무니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기왕비는 진국대장공주이 분노하는 것을 보고 불안해서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제가 여섯째를 돌보러 갔다가 부주의해 병에 걸려서…… 병을 치료하는 내내 기왕부의 하인을 잘 돌보지 못했습니다. 초왕비에게 일찍 와서 사과를 했어야 했는데 병을 고치느라 늦었습니다.”이 말을 들은 진국대장공주는 순간 마음이 약해졌다.“기왕비가 큰형수로 자애로운 마음을 가지고 여섯째를 돌보다가 그렇게 됐군요. 고의가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일단 몸을 잘 챙겨야
원경릉은 기왕비를 보며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왕비님, 제가 왕비님에게 약을 주기 싫어서가 아니라 약이 부족해서 그런 겁니다.”“신경 쓰지 마세요. 그렇다면 어떻게 약을 제조하는지는 압니까? 그걸 받으면 약을 만들면 될 텐데.”원경릉은 그제야 기왕비가 약 때문이 아니라 처방전을 받기 위해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다행히 그녀는 이 질문에 답을 가지고 있었다.“녹주야, 탁자 위에 있는 공책을 가지고 오거라.”녹주는 원경릉의 명령을 따라 공책을 가지고 왔다. 원경릉은 공책을 기왕비에게 건네 주었다. 그러자 기왕비는 원경릉의 태도가 예상 밖이라는 듯 눈이 동그래졌다.“이것이 처방전입니까?” 기왕비가 물었다.“예, 저는 이 처방전대로 약을 만들었습니다.” 원경릉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러자 기왕비는 반신반의하며 공책을 열었다.“이게 뭐죠?”기왕비는 공책 안에 적힌 글자를 한 글자도 알아보지 못했다. 글자는 세상에는 없는 기호 같았다.“이것이 처방입니다.”“이건 처방이 아닙니다.” 기왕비는 공책을 닫았다. “초왕비 주기 싫으면 주기 싫다고 말해요. 왜 이렇게 얼버무립니까?”대장공주는 사람을 불러 한번 보게 했지만 그도 공책 안의 글자를 도통 모르겠다며 원경릉을 보았다.“초왕비…… 이 처방은 어떻게 보시는 겁니까?”원경릉은 소매 주머니에서 약봉지를 하나 꺼내 대장공주 앞에 놓았다.“이 안에 있는 십여 가지의 약을 회왕이 복용하고 있습니다. 모든 약의 정제 과정은 매우 복잡합니다. 약의 성분은 약초에서 오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습니다. 여기 적힌 내용은 성분을 추출하고 약을 만드는 방정식입니다.”원경릉은 멍한 표정의 대장공주를 보고 한숨이 나왔다.“사실 이 공책을 어의에게 줘도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저 말고 도성에 이런 약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약에 인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약들은 모두 회왕의 몫이니까요.”원경릉의 말을 듣고 기왕비는 탄식했다.“결론은 나에게 약을 만들어주고 싶지 않다는 거네요?”
“전혀 영향이 없을 수는 없겠죠. 스스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원경릉은 일어나 뒷문을 꼭꼭 걸어 잠갔다. 지금부터 나누는 대화는 밖으로 세어 나가면 안 된다.대장공주는 한숨을 내쉬며 “스스로 잘 돌보세요. 여섯째는 나을 테니.”라고 말했다.“노비께서 저한테 약이 있다고 했습니까?” 원경릉이 살짝 떠보았다.“그날 자연스럽게 여섯째의 병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노비가 초왕비가 준 약을 복용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늙은이가 기왕비 생각이 났습니다. 자초지종이야 어떻든 기왕비도 회왕에게 옮은 병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약을 좀 달라고 하니 노비가 한 번 주는데 천 냥 은화를 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기왕비가 두 차례 약을 사서 먹었다고 합니다. 그 후로 금액이 부담이 돼서 혹시나 처방전이라도 얻을 수 있을까 초왕부로 온 겁니다.”대장공주의 말을 듣고 원경릉은 어안이 벙벙했다.“노비께서 약이 어디서 나서 줬답니까? 제가 준 약은 회왕이 먹을 만큼 밖에 없는데.”대장공주는 고개를 저으며“그건 모르겠습니다만 늙은이가 가서 보니 여섯째가 먹는 약과 노비가 기왕비에게 파는 약이 똑같더라고요.”라고 말했다.“불가능합니다! 혹시 여섯째의 약을 빼돌리는 것은 아니겠죠?”“세상에! 설마 그렇게 하겠습니까?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는데……” 대장공주가 깜짝 놀랐다.‘약을 복용한지 얼마나 됐다고 감히 제멋대로 약을 줄여? 이렇게 되면 정말 큰일 날 수도 있는데……’“한번 가서 확인해 볼까요?” 대장공주가 물었다.“꼭 가봐야 합니다.” 원경릉이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럼 이 늙은이가 같이 가주겠습니다.”원경릉은 급히 사람을 시켜 회왕부로 갈 준비를 하라고 했다. 그녀는 옷을 갈아입고 약 상자를 꺼내어 사식이에게 들고 있으라고 했다.대장공주와 원경릉 무리가 회왕부에 도착하자 노비가 허겁지겁 나와 둘을 맞이했다.원경릉은 안절부절하며 “저는 먼저 회왕의 상태를 살피겠습니다.”라고 말했다.노비는 웃으면서 “나오라고 해서 보시면 되죠. 왜 왕부로 들어가시
“왕야 제가 검사해 드리겠습니다.” 원경릉은 급히 회왕에게 다가갔다.회왕은 손을 뻗어 그녀를 막았다.“아니, 아니! 다섯째 형수님께서 임신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본왕에게 다가오지 마세요!”“괜찮아요. 왕야의 병은 이미 전염성이 사라졌습니다.”원경릉의 완강한 태도에 회왕도 어쩔 방법이 없었다.“좋아요. 그럼 병풍 뒤로 오세요.”회왕이 말했다.회왕부 정실에는 병풍이 있어 공간 분리가 가능했다. 원경릉이 들어가 검사를 해보니 폐부의 잡음이 전보다 뚜렷하게 들렸다. 그의 병이 이전보다 심각해졌다. 원경릉은 회왕과 함께 병풍 뒤에서 걸어 나오며 “왕야께서는 매일 규칙적인 시간에 정해진 양의 약을 드시지 않습니까?” 라고 물었다.“먹는 약이 있습니다. 매일 먹고 있고요.”“하루 세 번이요? 한 번에 8알씩?”그러자 노비가 빠르게 말을 가로채며 “하루에 한 번씩 먹습니다. 약을 많이 먹는 것은 몸에 좋지 않아요. 지금 회왕은 전보다 많이 좋아졌습니다.”라고 말했다.이 말을 듣고 원경릉은 화가 났으나 노비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이기에 한숨을 내쉬었다. “약을 줄인지 얼마나 됐습니까? 그리고 줄인 약은 무엇입니까?”이 상황을 보고 있던 대장공주가 입을 열었다.“기왕비한테 팔았고만”이 말을 들은 회왕이 경악하며 노비를 바라보았다.“모비 어떻게 다섯째 형수님이 준 약을 팔 수가 있습니까? 그리고 저에게는 다섯째 형수님이 약을 줄여도 된다고 해서 줄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노비는 웃으며 “지금 회왕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보세요! 전에 어의가 와서 말하길 지금 상태가 많이 호전됐다고 했잖아요! 전보다 훨씬 좋아졌으니 약을 좀 줄여도 문제없습니다. 그리고 그 약을 기왕비한테 팔면 그녀의 병세가 좋아질 수 있잖아요.”라고 말했다.원경릉은 기뻐하는 노비를 보며 웃을 수도 없었다. “노모비 제가 개인적으로 몇 마디 해도 되겠습니까?” 원경릉의 말에 노비가 대장공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대장공주는 손을 저으며 “두 사람 들어가서 얘기 나눠요.”라고 말
노비가 언짢은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이게 이렇게 화를 낼 일입니까? 초왕비는 예전에 기왕비가 사람을 시켜 당신을 암살하려고 했던 거 잊었나요? 기왕비가 불쌍합니까? 기왕비는 초왕비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나있어요! 초왕비는 보살입니까?”노비의 말에 원경릉은 화가 났다.“누가 기왕비가 불쌍하다고 합니까? 저는 회왕을 걱정해서 그런 거예요. 제가 약을 끊으면 안 된다고 누누이 말했잖습니까? 지금처럼 들쭉날쭉 약을 먹으면 안 됩니다. 노비께서 회왕을 죽이는 겁니다!”죽음이라는 원경릉의 말에 노비가 멍해졌다.“전보다 훨씬 좋아졌다면서요? 이제는 유지만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회왕은 전염성만 사라졌을 뿐 완벽히 낫지 않았습니다! 회왕은 약을 끊으면 안 됩니다! 솔직히 말해주세요. 약을 며칠 줄였습니까?”“며칠 안됐습니다. 사오일 정도 된 것 같습니다. 아예 안 먹은 것은 아니고 양만 줄였습니다. 그 정도는 괜찮지 않습니까?”“노비께서는 회왕이 지금 기침하는 거 안 보이십니까? 열도 나는데요?”“추워서 그런 거 아닙니까?” 노비가 담담하게 말했다.원경릉은 노비의 무지함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노모비 당신께서 계속 약을 줄이면 그의 병은 절대 낫지 않을 겁니다. 기억하세요. 기왕비의 죽음은 그녀의 업보고 하늘의 뜻입니다. 노비께서는 이를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우선 지금은 회왕의 목숨을 지키는 게 중요합니다. 회왕부터 살리고 그 후에 기왕비를 처리해도 늦지 않습니다.”노비는 그녀의 진지한 표정에 한순간 두려움이 몰려왔다.“그럼…… 내 아들이 죽을 수 있다는 겁니까?”“제가 앞으로 열흘 동안은 매일 와서 약을 드시는 걸 지켜보겠습니다. 그리고 필요하면 주사도 놓겠습니다. 회왕의 상태가 너무 나빠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본궁이 이번에 큰 실책을 했습니다. 어의가 많이 좋아졌다고 하기에 기왕비에게 약을 팔았습니다.”노비는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원경릉은 그녀에게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일이 이렇게 된 거 지금부터라도 회
우문호는 더는 반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시종일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녀가 매일 갑옷을 입고 회왕부에 간다고 하더라도 그의 마음은 놓이지 않을 것 같았다.그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원경릉을 보았다.“아니면 내가 궁으로 들어가 태상황님께 귀영위(鬼影卫)를 빌려달라고 할까?”“그렇게까지 할 일이야?”“당연하지!”우문호가 진실의 미간을 보여줬다.“마음대로 해라” 원경릉이 어깨를 으쓱였다.우문호는 문득 원경릉이 사식이를 신뢰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서일도 있는데 사식이를 언급하다니?’우문호는 사식이와 서일 둘 다 신임할 수 없었다. 사식이와 서일은 성격이 서글서글해서 좋지만 단점은 부주의하고 경계심이 낮아 사람을 쉽게 믿는 것이다. 그러나 태상황의 귀영위는 다르다.우문호가 큰 손바닥으로 그녀의 아랫배를 쓰다듬으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아기는 안에서 뭘 하고 있대?”“잠이나 자!” 원경릉이 그의 의도를 파악했다.“얘기 좀 더 하다가 자자. 졸려?” 우문호가 퉁명스럽게 말했다.원경릉은 몸을 기울여 그의 얼굴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글쎄, 아기는 안에서 자고 있겠지.”우문호는 오! 하고 소리를 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그럼 아기는 너무 심심하겠다! 안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아니야.”“아기는 심심하지 않을 거야.” 원경릉은 경고하는 듯한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 원경릉은 그의 눈빛에서 그의 생각이 읽혔다.“그럼 언제쯤 들어가서 아기가 뭐하나 볼 수 있을까?”우문호가 중얼거렸다.원경릉은 가슴에 올라온 그의 손을 떼어냈다.“아기가 태어난 이후에 볼 수 있지! 그리고 너의 그곳에…… 눈도 없잖아 들어와도 아기를 볼 수 없어!”그는 옥처럼 부드러운 그녀의 몸을 끌어안았다.“참기 너무 힘들다.”“죽는소리 하기는 일러!”우문호의 입술이 그녀의 하얀 뺨을 스치더니 귓가에 닿았다.“너 대신에 아기를 품을 수 있다면 내가 품어서 너의 고생을 덜어주고 싶다. 하…… 아직도 몇 달이나 남았다니.”“그래도 넌 내가 임
“너는? 아들이었으면 싶으냐 딸이었으면 싶으냐?”우문호가 물었다.원경릉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질문에 당황했다.“음…… 아들이길 바라지.”“어? 넌 딸을 더 좋아했잖아?”“아들이고 딸이고 다 좋지. 부모로서 성별로 차별한다는 것은 말이 안 돼.”“그런데 왜 아들이길 바라?” 우문호는 원경릉이 자신과 같은 이유로 아들을 원하는 게 아닐까 추측하며 한숨을 내쉬었다.“왜냐면 이 시대는 여성에게 우호적이지 않아. 여성의 삶이 남자에 의해 쥐락펴락 되는 이 세상에 내 딸이 그런 고통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어.”우문호는 순간 그녀의 얼굴에서 슬픔을 보았다.“여자의 행복이 혼인에 의해 결정되고 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시댁의 권세를 보고 혼인을 해야 하며, 혼인 후에도 시어머니 눈치를 봐야 하고 또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첩도 들여야 하고 아이를 낳아도 여자아이를 낳으면 안 되고…… 첩의 아이까지 내가 보듬어 키워야 하며 어휴…… 내가 비록 여자아이를 좋아하지만, 여자아이를 낳으면 복잡한 일이 너무 많아.”마지막 말을 하기 전에 그녀가 부드럽게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그리고 나처럼 운이 좋아서 너처럼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잖아.”현실적인 그녀의 말에 우문호가 깜짝 놀랐다. 그는 남자로 태어나 한 번도 여자들의 고충을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그녀가 말한 모든 것들은 여성의 미덕이라고 치부하며 여자가 이를 해내지 못한다면 자격이 없는 여자라는 둥 좋은 며느리가 아니라는 둥 험담을 했다.“만약에 내가 너를 만나지 않았다면, 내가 받은 교육, 내 생각, 그리고 내 성격상 이곳에서 지내는 매일이 비참했을 거야.”“너는 무슨 교육을 받았는데?” 우문호가 어리둥절해서 물었다.원경릉은 미소를 지으며 “나는 천문학도 알고 지리도 네 생각보다 많이 알고 있어.”라고 말했다.우문호는 실소를 지으며 “네가 천문과 지리를 안다고? 그럼 그날 가장 빛났던 별을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라고 물었다.“금성이지.
이튿날 우문호는 태상황에게 문안을 드릴 준비를 했다.남에게 무언가를 부탁할 때는 빈손으로 갈 수 없는 법. 그는 거리를 돌다가 좋은 담뱃잎 몇 개를 사서 궁으로 들어갔다. 우문호가 입궁하자 태상황은 그가 들고 온 담뱃잎을 곁눈질했다. 태상황은 상선에게 소요공이 보내온 담배를 꺼내더니 비교했다. 우문호는 태상황의 모습을 보며 뻔뻔한 표정으로 “잎담배는 색깔과 냄새만으로 비교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럼 어떻게 비교해야 하느냐?”태상황이 물었다.“비교라니요. 제 마음이라고 생각하고 받아주십시오. 그렇다고 너무 많이 피시지는 마시고요. 그래야 건강하게 오래 사시지요.” 우문호가 허리를 굽히고 태상황의 어깨를 주물렀다.“왜 이렇게 아첨하는 거냐? 무슨 일이야 말해봐.”우문호는 히죽히죽 웃으며 “혹시…… 한두 명만 빌려주시겠습니까?”라고 말했다.“누구를?”“귀영위 말입니다. 초왕비가 매일 회왕부에 가는데 태상황님의 귀영위가 보호해 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왜?”태상황이 놀랐다.우문호는 노비가 기왕비에게 약을 팔았다고 태상황에게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눈치가 빠른 태상황은 노비의 잘못으로 여섯째의 상태가 나빠졌다고 짐작했다.“날씨가 추워지면서 병이 더 나빠질까 봐 가는 겁니다.”낌새를 챈 우문호가 변명했다.태상황 손을 들어 상선을 불러 담배에 불을 붙였다. 노인은 살짝 눈을 감고 담배를 깊게 빨아들였다. 내뱉는 담배 연기에 우문호는 기침이 뿜어져 나왔다. 자욱한 연기 속에서 늙은이가 담담하게 말했다.“부탁할 필요 없다. 저번에 사고 났을 때, 과인이 이미 초왕비를 보호하도록 귀영위를 보냈다.”태상황의 말을 듣고 우문호가 깜짝 놀랐다.“그걸 손자는 왜 몰랐죠……?”늙은이는 콧방귀를 뀌었다.“네가 그걸 알았다면 귀영위를 보내달라고 부탁하러 왔겠느냐?”우문호는 멋쩍은 표정으로 “아…… 예.”라고 말했다. “됐다! 이제 그만 가보거라!” 태상황이 귀찮다는 듯 손을 저었다.우문호는 공손하게 절을 하고는 “손자가 황조부께 감사의 말씀
탕양은 자신이 여자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자부했었다. 특히 일곱째 아가씨처럼 강인한 성격을 가진 사람은 혼자 지내는 데 익숙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삶을 더 선호하기에 굳이 자신과 인연을 맺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는 그의 큰 착각이었다.여인의 마음은 늘 갈대처럼 변덕스럽고, 아무리 강인한 사람이라도 다정함이 필요한 순간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일곱째 아가씨는 오랫동안 혼자 외롭게 지내왔는데, 중년에 접어들며 그 외로움이 더욱 깊어진 것이다.누군가 곁에 있다면, 삶의 방식도 달라질 수 있지만, 물론 잘못된 연으로 나빠질 가능성도 있었다.원가의 가훈은 항상 군주에게 충실하며, 엄청난 용기도 있었다. 심지어는 원가에서 키운 닭조차 남의 집의 닭보다 더욱 용감할 정도였다.하지만 한 번의 좌절로 인해 사랑을 믿지 않겠다는 것이 과연 용기있는 행동 일까?물론 그녀가 반드시 탕양을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어울리는 사람을 만나 다시 한번 용기를 내볼 수도 있었다.하지만 탕양이 먼저 용기를 내어 말한다면, 그녀 역시 그에게 기회를 줄 것이다.여태껏 그녀의 마음에 들어온 사람은 오직 탕양뿐이었다.그리고 어쩌면 시도해 봐야만 서로 맞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탕양과 잘 맞는다고 느끼는 건 그녀가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아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착각일지도 모르니 말이다.경성으로 돌아간 후에도 탕양이 말을 꺼내지 않는다면, 그녀는 공개적으로 구혼에 나설 생각이었다. 한편, 택란이 주 아가씨와 함께 밖으로 나가며 물었다."탕 대인이 왜 나쁜 사람인 것이오?""여인을 훔쳐봤습니다.""탕 대인이 아가씨를 좋아하지 않소? 어찌 못 보는 것이오?"주 아가씨는 택란이 이런 부분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공주에게 가르쳐야겠다고 마음먹으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사내가 여인을 사모하면 상대의 시선을 바라보지, 다른 곳을 쳐다보지 않습니다. 그러니 탕 대인은 일곱째 아가씨를 사모하는 것이 아닙니다.""그
그녀는 탕양을 힐긋 바라보는데, 예전의 담담하고 온화한 모습 없이 뜨겁게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그녀는 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기에, 절대 먼저 말을 꺼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평생 그렇게 죽을 때까지 버틴다 해도, 제자리에 머물러 기다리지 않을 것이었다."탕 대인, 지금 어디를 보는 것이오?"그때, 냉정언이 물었다."예? 무슨 말이십니까?"탕양은 서둘러 정신을 차리고 냉정언을 바라보자, 냉정언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탕 대인께서 계속 일곱째 아가씨의 가슴팍을 보고 있었소.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것이오?"이 말이 끝나자마자, 모두가 술렁이며 이상한 시선으로 탕양을 바라보았다.그러자 주 아가씨가 급히 택란의 귀를 막으며 말했다."보지도, 듣지도 마십시오!"탕양은 크게 당황하며 두 손을 마구흔들었다."아닙니다! 전 그러지 않았습니다! 냉 대인께서 잘못 보신 겁니다.""아니오. 분명 아가씨의 옷깃과 가슴을 보고 있었소!"말을 마치자마자 냉 대인은 숭이를 안고 단호하게 밖으로 나갔고, 탕양은 얼굴을 붉히며 변명이라도 하기 위해 일곱째 아가씨를 쳐다봤다. 그러자 일곱째 아가씨는 기침을 하며 옷깃을 정리한 뒤 소리쳤다. "흥. 변태!"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도 돌아서 나가버렸다.탕양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당황한 얼굴로 주 아가씨와 홍엽을 보며 말했다."다들 보지 않았습니까? 제가 그런 게 아니라는..."홍엽이 소매를 휘두르며 말했다."눈이 자네 얼굴에 달려 있는데, 자네가 누굴 보고 어디를 보는지 우리가 어찌 알겠는가?"주 아가씨는 택란의 손을 잡고 나가며 말했다."마마, 이제 탕 대인 같은 사람하고 어울리지 마십시오. 인품이 좋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탕양은 여전히 몹시 당황한 상태였다. 냉정언의 한마디에 그의 처지가 아주 난감해져 버렸다.그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말이다. "명여야..."냉명여 또한 귀를 막고 밖으로 달려 나가며 외쳤다."탕 대인께서는 정말 나쁜 사람이십니다!"탕양은 그만 머리를 감싼
이처럼 독산은 마치 진실한 사람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처럼 가장 진솔한 생각을 감출 수 없게 만들었다.일곱째 아가씨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탕양을 바라보며 말했다."저를 배신한 것을 아직 기억하고 계십니까?"탕양은 그동안 일곱째 아가씨와 이 일을 얘기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항상 담담한 태도로 과거 이야기를 피하며 언급하지 않았었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이 말을 꺼내니, 탕양은 잠시 멍해졌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연히 기억하고 있지요..."일곱째 아가씨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기억하고 있다면, 제가 독산을 얻을 수 있게 잘 도우십시오. 독산을 개발할 수 있다면 앞으로 15년간의 수익은 전부 제 것이 될 겁니다. 그리고 15년 뒤에는 이익을 반으로 나누겠습니다. 절대 3할만 받을 수는 없습니다."탕양은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하지만 폐하께 이미 3할이라고 말씀드렸는 걸요.""그건 대인의 일이지요. 폐하를 오랫동안 모셔 왔으니, 대인의 공로를 인정하고 배려해 주실 것입니다. 이건 대인께서 누구의 이익을 우선시할지에 달린 것 아닙니까?"그러자 탕양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아가씨, 3할이라도 충분히 좋은 제안이지 않습니까? 그저 길만 새로 만들면 되고, 심지어는 조정에서 나서서 도와줄 것이니, 초반 투자 비용도 그렇게 많이 들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하면, 놀러 오는 자들에게 먹거리와 즐길 거리로 돈을 적잖이 벌 수 있습니다.""반으로 나누는 것까지만 양보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익을 중시하는 상인인 것을 잘 알지 않습니까."탕양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예. 폐하께 돌아가 말씀은 드리겠지만… 무조건 그 조건을 따내겠다고 장담할 순 없습니다.""못 따내도 그만입니다."일곱째 아가씨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앞으로 제가 독산에 몇 번이나 올 수 있겠습니까? 어차피 조정에서 독산을 얻는다고 해도, 굳이 그렇게 많은 돈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탕양이 웃으며 답했다."이곳에서 지내면서 머물어도 되지 않습니까? 늘
일곱째 아가씨는 산 입구에서 지옥의 불꽃을 보자마자 순간 홀린 듯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꿈속에서 본 그 꽃이 눈앞에 펼쳐지니,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할 수 없는 것 같았다.탕양이 손을 뻗어 꽃을 따려 하자, 일곱째 아가씨가 급히 소리쳤다."지금 뭐 하는 것입니까? 당장 멈추십시오!"하지만 탕양은 이미 지옥의 불꽃을 손에 쥔 채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이것이 바로 해독제입니다."그는 손바닥에서 꽃을 비벼 즙을 내고는 일곱째 아가씨의 손을 잡아 즙을 그녀의 손등에 묻혔다. 즙은 선혈처럼 선명한 붉은빛을 띠고 있어, 일곱째 아가씨의 손등에 피가 묻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자 그녀가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며 물었다."정말입니까? 이렇게 신기하단 말입니까…?"그제야 그녀는 과거 산속에서 넘어졌을 때, 얼굴이 지옥의 불꽃에 닿아 꽃 즙이 묻고 나니, 정신이 돌아왔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녀는 그때 자신의 강한 의지로 깨어난 것인줄 알고 있었다."이걸 어떻게 알게 되신 겁니까?"일곱째 아가씨가 호기심 어린 눈길로 묻자, 탕양은 숨기지 않고 답했다."안풍친왕이 말해준 것입니다. 예전에 독산에 와서 방 장군의 유해를 찾을 때 산을 드나든 적이 있었는데, 이 비밀을 알고 있었기에 독산을 드나드는 것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합니다. 지금 손등에 지옥의 불꽃 즙을 바른 이상, 산에 들어가도 환각에 휘말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독산의 절경을 마음껏 감상하실 수 있다는 말입니다!""그렇습니까? 독산의 비밀을 푸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고 여겼는데, 이렇게 쉽게 지옥의 불꽃으로 독성을 없앨 수 있었다니요…!"일곱째 아가씨가 중얼거리며 탄식하자, 탕양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예. 겉보기엔 어려운 일도, 걷기 힘든 길도, 내리기 힘든 결정도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의외로 쉽게 해결할 수 있답니다.""어찌 말 속에 다른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일곱째 아가씨가 담담한 눈빛으로 그를 힐끗 바라봤다.그러자 탕양이 당황한듯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독산은 약도성에서 ‘귀역’이라고도 불린다.약도성 백성들은 거의 독산에 들어가지 않는다. 해마다 보물을 찾아 벼락부자가 되길 꿈꾸며 산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무사히 나오는 사람은 극소수였기 때문이다.심지어 살아서 나온 사람 중에서도 정신이 나가거나 미쳐버린 자들이 적지 않다.그래서 조정 신하가 독산에 들어가겠다는 소식은 백성들의 큰 주목을 받았고, 심지어 일부는 관저로 직접 찾아와 독산이 위험하다고 경고하며 요괴와 귀신이 들끓으니 절대 들어가지 말라며 충고까지 했다.그러자 탕양은 그들에게 독산에 요괴나 귀신이 있는 곳이 아닌, 신령과 신선들이 지내는 신성한 곳이라 말했다. 그동안 산에 들어갔던 백성들이 그만 욕심에 사로잡혀 신령을 거슬렀기에 독산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경외심을 품고 신앙심을 가지고 들어가면 무사히 나올 수 있다며 설명까지 덧붙였다. 그리고 이 말은 당대 국사가 직접 언급한 것이라며, 이를 검증하기 위해 자신이 파견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탕양 또한 이 말을 하면서도 내심 불안했다. 사실은 이 이야기 모두 황제가 부유한 이들과 이웃 나라의 신도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근거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하지만 독산의 풍경은 북당에서의 유일무이한 절경이었기에 탕양은 결국 독산의 모습을 드러내고 개방하자는 제안에 동의했던 것이다. 탕양의 말을 믿는 사람은 그저 소수에 불과했고, 믿지 않는 사람, 의심하거나 반신반의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저 상황을 지켜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산에 들어가기 전, 탕양이 일곱째 아가씨에게 물었다.“정말 나와 함께 들어갈 셈입니까?”일곱째 아가씨는 젊은 시절 한 번 독산에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멀리 가기도 전, 산속에서 만난 지옥의 불꽃에 매료되었다. 그렇게 꽃밭에서 넘어진 후, 정신을 차리자마자 황급히 산을 빠져나왔던 것이다.하지만 산을 떠난 후에도 그 붉은 색의 꽃은 그녀의 마음속에 잊히지 않았고, 마치 주문에 걸린 듯 계속 머릿속에 떠올랐다.다시 독산에 오자, 과거의
“그렇다면 아버지 말씀을 잘 듣거라. 네 양아버지께서는 아바마마처럼 늘 칭찬하고 좋은 말만 해주시지 않느냐? 집안에서 누군가는 엄격하고 누군가는 따뜻한 법이다. 애정 어린 따스함을 즐겨도 되지만, 엄격한 가르침 또한 잘 따라야 한다.”하지만 냉명여는 아직 어려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대충 끄덕이며 말했다.“열심히 무술을 연마하여, 나중에 꼭 누나를 도와드리러 오겠습니다.”택란이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좋다. 그럼, 너를 기다리마!”냉명여는 뜨거워진 자신의 얼굴이 부끄러워져 고개를 돌리고 싶었지만, 그녀가 머리를 쓰다듬는 것이 못내 편안하게 느껴졌다.다른 한편, 탕 대인과 일곱째 아가씨도 약도성에 도착해, 약도성의 관저는 순식간에 북적이기 시작했다.호명은 이제 조정의 명을 받고 약도성의 관리로 임명되었는데, 조정에서 약도성을 시찰하러 온 사람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약도성에서 장사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기에 의부인 탕양과 일곱째 아가씨를 극진히 모셨다.일곱째 아가씨는 재력이 뛰어나니, 그녀가 약도성에서 장사를 시작한다면, 도성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독산이요?”이때, 그녀가 갑자기 독산에 관심을 보이자, 호명이 멈칫했다.“독산은 굉장히 위험한 곳입니다. 이곳 백성들조차 들어가기를 꺼리지요. 안에 미혼진이 있어,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고 합니다.”탕 대인이 말했다.“그건 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이틀 후, 우리는 독산에 따로 갈 계획이다. 그러니 그 전에 일곱째 아가씨를 잘 모시고, 도성 곳곳과 약도성을 보여주도록 하거라. 아가씨가 독산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50만 냥을 투자할 것이고, 그중 30만 냥은 약도성의 길을 만들고 발전을 위해 쓰이게 할 것이다.”그러자 호명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30만 냥이라니요! 정말 단비 같은 소식입니다! 지진으로 인해 많은 길이 끊기고, 집들이 무너졌습니다. 인근 주부에서 도움을 주고, 조정에서도 예산을 지원해 주었지만, 아직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만약
택란은 금나라 어린 황제의 의도를 들은 후 화들짝 놀랐다. 그는 택란이 금나라에서 죽었다고 생각해 시신을 찾을 수 없으니, 그녀의 가족에게 묘를 만들게 시켜 혼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전하러 왔던 것이었다.또한, 택란은 어린 황제가 정말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꽤 의외였다. 게다가 충직하게 그녀의 가족을 찾아다니며 길을 잃은 원혼이 되지 않도록 도와주려 했으니 말이다.“그가 실망하겠소. 이 도성에 다섯째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어도, 딸 이름이 택란인 자는 없을 테니.”그러자 주 아가씨가 웃으며 말했다.“하지만 정말 찾았지 뭡니까? 서자림 근처 마을에 다섯째라 불리는 자가 있었습니다. 마침 집안에 란이라는 딸아이가 6개월 전부터 종적을 감추었지요. 게다가 다섯째라는 사람은 지진으로 두 다리를 잃은 상태였고, 집안에 란이의 언니도 있어서 금나라 어린 황제가 사람을 보내 그들을 데려갔다고 합니다.”“정말 그런 우연이 있단 말이오?”택란이 놀라며 말했다.“예. 그 다섯째 사람도 딸이 죽은 줄 알고 슬피 울면서 상을 치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후에 딸과 함께 황제의 사람들을 따라갔습니다.”택란이 피식 웃었다. 정말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었다. 다만 그의 딸의 이름은 란이인데, 그녀는 금나라 어린 황제에게 자신의 이름이 택란이라고 했다.한 글자 차이로 생긴 오해였다. 어쨌든 금나라 어린 황제가 은혜를 갚기 위해 한 일이니,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었지만, 어린 황제가 이런 일까지 신경을 쓸 겨를이 있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설마 금나라에 무슨 변화가 생기기라도 한 걸까?해가 바뀌며 어린 황제도 이제 14살이 되었기에, 만약 조정 대신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권력을 되찾을 가능성도 있었다.그와의 짧은 인연을 생각하며, 택란은 그가 권력을 되찾기를 바랐다. 물론, 그가 권력을 잡으면 약도성에도 좋은 일일 것이기에, 만약 실현이 된다면, 택란은 금나라에 가서 두 나라 간 자원 채굴을 논의할 계획이었다.한편, 서일이 떠난 지
택란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마도 아닐 것이오. 아마 금나라 어린 황제가 보낸 사람일 것이오.”“그가 어찌 마마를 찾는 것입니까?”주 아가씨는 몹시 놀랐다. 금나라는 늘 진국왕이 주도하고 있어, 그 어린 황제는 존재감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건 나도 모르겠소.”그 어린 황제가 왜 갑자기 자신을 찾는 것인지 택란 또한 이해할 수 없었다. 전에 알아본 바로는 자기가 죽은 줄 알고, 어빙술을 사용해 진국왕을 공격했다고 했기에, 택란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들이 다섯째를 어찌 찾는 것인지 알아보시오.”“알겠습니다. 사람을 보내 알아보겠습니다. 이제 막 돌아오셨으니, 먼저 들어가서 쉬시지요. 오시느라 고되었을 것입니다.”주 아가씨는 밖에 서 있는 키 큰 남자를 힐끗 보더니 바로 알아차리곤 말했다.“저분이 바로 서 대인입니까? 그가 마마를 호위한 것입니까?”“맞소. 서일 삼촌이네. 거처를 마련하여 머물게 해주시게. 절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고, 누군가가 나를 찾아다닌다는 사실을 모르게 해야 하오. 이틀 후, 이곳을 떠나게 할 것이오.”서일은 입이 무거운 사람이 아니었기에, 그가 금나라 어린 황제가 자신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아마 북당 전체가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금나라의 어린 황제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가 이를 알게 해서는 절대로 안 되었다.주 아가씨가 호명에게 가서 서일을 잘 안배하라는 공주의 명을 전하자, 호명이 웃으며 말했다.“서 대인께서 오셨군요. 제가 술을 준비하여 잘 대접해야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제게 맡기십시오. 절대 밖으로 나가지 못할 것입니다.”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사람을 보내 약도성에서 가장 좋은 술을 사 오게 하고는, 일단 서일을 취하게 하기로 계획했다.서일은 오느라 고생을 많이 했지만, 강북부에 도착해 황자들과 헤어지자마자 특별히 택란을 약도성까지 데려다주었다. 택란과 작별 인사를 나눈 후, 약도성의 상황을 살폈다.처음에 그는 거처에 정착한
우문호는 즉시 얼굴에 기쁨을 띠며 종이를 구겼다.“뭘 가져왔는가? 한 잔 마시겠네. 지금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이네!”목여 태감이 바로 들어와 차를 올리며 말했다.“어의가 처방한 화기와 열을 내려주는 약입니다. 약간 달면서도 쓴맛이 나는데, 등심초와 하기초, 그리고 연심을 조금 넣어, 열을 내리기에 제일 맞을 겁니다. 폐하께서 쓴맛을 싫어하실까 봐 꿀대추도 하나 넣었습니다!”그는 약을 탁자 위에 놓고 부채를 찾아 부쳐주려 했지만, 우문호는 이미 손으로 약그릇을 들어 가까이 가져가 불며 천천히 마시기 시작했다.날씨가 조금 추운 탓에 약이 미지근한 상태로 전달되어, 몇 번 불어 마시기에 딱 적당했다.그는 약을 단번에 마시고 그릇을 내려놓은 후, 목여 태감을 바라보며 말했다.“역시 자네가 세심하군. 앞으로 짐의 기거와 음식은 자네가 더 신경 쓰게.”“이것은 소신의 본분입니다!”목여 태감은 다소 감격하며 말했다.“자네는 짐이 원로 신하들과 얼마나 격하게 싸웠는지 모르네. 앞으로 자네가 옆에 있으면서 짐을 도와 몇 마디 해주시게. 도통 그들을 이길 수 없을 것 같으니.”목여 태감이 안쓰럽게 말했다.“폐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앞으로 폐하가 계신 곳에는 항상 제가 함께하며 결코 폐하 홀로 싸우지 않게 하겠습니다.”우문호의 침울했던 눈빛이 갑자기 생기를 띠기 시작했다. 원 선생이 언제나 그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주었기에 큰 감사함을 느꼈다. 심지어 그녀는 늘 그의 삶에 후회가 남지 않게 하려 노력하고 있었다.우문호 부모님의 생신도 잊지 않았고 숙왕부의 어르신들도 그녀는 최선을 다해 돌보며 곁을 함께 했다. 그와 동시에 원경릉은 자기 일도 바쁘게 처리하고 있었다.가끔 피곤하다고 느낄 때 그녀를 떠올리면 모든 피로가 사라지곤 했다.“폐하? 지금 황후마마를 그리워하시는 것입니까?”목여 태감은 바로 그의 마음을 알아채고 웃으며 말했다.“시간도 조금 있으니, 소월궁으로 돌아가 황후마마와 함께 식사하시는 것은 어떻습니까?”“좋네. 어서 돌아가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