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한 쪽은 술잔이 오가며 형제간의 전우애로 흥청거렸고, 다른 한 쪽에서는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가운데 잡다한 집안 일을 얘기하느라 정신이 없었다.초왕부 하늘은 엷은 구름이 흩어졌다 뭉쳤다 하며 봄날의 습기는 완전히 사라지고 초여름이 성큼 모퉁이까지 닥쳐있었다.연회를 마치고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고 이미 해시가 되었을 무렵, 문지기가 와 냉정언과 홍엽이 왔다고 보고했다. 두 사람은 밤 그림자에 감싸며 들어왔다. 다급해 보이는 행색에 먼지가 풀풀 날렸다.우문호와 원경릉이 복도에 서서 맞이했다. 원경릉 어깨에 있던 원숭이는 홍엽이 문으로 들어오는 소리에 깍깍 울며 초조해 했다.홍엽이 보이자마자 원숭이는 한달음에 홍엽에게 뛰어들어 가슴에 안긴 채 감격해서 울부짖었다.홍엽은 처음에 불빛이 어스름해서 뭔가가 달려오는 걸 보고 개라고 생각했기에 그 개가 바로 자기 얼굴에 뛰어올라 머리를 끌어안아 깜짝놀랐다. 원숭이인줄은 꿈에도 모른 홍엽이 화가 나서 소리쳤다. “어서 내 머리에서 내려와!”홍엽이 원숭이의 꼬리를 잡고 밖으로 내던지려 하자 원숭이가 홍엽의 목을 꽉 붙잡고 슬픔과 기쁨의 눈물을 머금은 채 똘망똘망한 눈으로 홍엽을 바라봤다.그러자 홍엽이 놀라서 천천히 손을 놓고 원숭이를 보더니 순간 얼굴에 경악함은 어디가고 기쁨으로 가득차 있었다.비록 이 원숭이가 홍엽의 기억 속의 원숭이가 아니긴 했지만 눈이 마주쳤을 때의 익숙함으로 홍엽은 영혼 깊숙한 곳까지 참을 수 없이 떨려왔다. 홍엽은 어쩔 줄 몰라하며 원경릉을 쳐다봤다. 눈에서 눈물이 뿌옇게 차오르고 한 마디 답을 구했지만 물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원하는 답이 아닐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원경릉이 다가가서 홍엽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걔예요. 당신이 오래 기다렸던 원숭이가!”홍엽의 입술이 떨리고 눈물이 왈칵 터져나와 눈 앞에 사람도 사물도 구분할 수가 없을 정도가 되었다. 한손으로 원숭이를 안고 똑바로 보기 위해 노력했지만 눈물이 계속 흘러나와 모든 것을 덮어버려 도무지 자세히 볼 수가 없었
냉정언은 잠시 후 집으로 돌아가고 원경릉과 우문호는 살짝 안도의 숨을 내 쉰 뒤 손을 잡고 복도를 걸어 소월각으로 갔다.홍엽은 우문호와 원경릉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알게 해주는 비교대상 같은 존재였다.…다음날, 홍엽이 원숭이를 데리고 초왕부를 찾아왔다. 원숭이가 홍엽 어깨 위에 서 있는 모습이 꼭 원경릉 어깨 위에 있을 때랑 같았다. 홍엽의 얼굴에는 슬픈 빛이 없고 눈빛은 한껏 기쁨에 들뗘 있어 원경릉 앞에서 원숭이에게 말했다. “태자비 마마께서 도와주신 덕분에 우리가 다시 만났는데 뭐라고 감사드려야 할 지 모르겠어.”그리고 홍엽이 원경릉에게 예를 취하며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정말 고맙습니다!”원숭이가 이번엔 원경릉의 어깨에 올라 앉았다. 손을 뻗어 원경릉의 머리를 안고 팔로 한바퀴 감은 모습이 마치 원경릉이 이마에 띠를 두른 것 같았다.원경릉이 원숭이를 안아 내리는데 원경릉과 홍엽 앞에서 원숭이는 분명하게 다른 반응을 보였다. 원경릉 앞에서는 장난꾸러기였으나 홍엽 앞에서는 상당히 침착한 모습이었다.아마도 그들이 함께 겪은 나날이 기쁨보다는 고난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감사하실 것 없어요. 당연한 일인 걸요. 원숭이가 좋아진 게 제 공로도 아니고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원숭이의 진짜 은인께 함께 가요.” 원경릉이 미소지었다.두 사람이 원숭이와 함께 들어가는데 막 나오는 우문호와 마주쳐 우문호가 홍엽을 보고 멈칫햇다. “어, 이렇게 이른 시간에 여긴 왜?”“태자비 마마께 감사인사를 드리러 왔지!” 홍엽이 얘기하며 원숭이를 더 꽉 안아 들었다. 태자가위협적이진 않았지만 아직 약간의 경계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었다.“감사는 입으로만 하는 게 아니야. 실용적인 행동으로 해야 감사지.” 우문호가 장난을 걸었지만 홍엽은 들은척도 안 했다.하지만 우문호는 홍엽을 이렇게 어리버리 놓칠 리가 없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셈이야? 그래도 경성을 떠날 거야? 자네가 경성을 떠나면 원숭이가 따라갈 수 없는 건 아니지만, 원숭이는 약을 먹어야 하는데
그렇게 우문호가 열정적으로 주동해서 홍엽은 반쯤 떠밀려 서재로 들어갔다. 아마도 홍엽은 우문호의 손바닥에서 이제 벗어나지 못할것이다. 한편 명원제는 오늘 별장으로 가기 위해 아침 일찍 회의를 마치고 조정 중신들을 돌려보낸 뒤 마차를 준비시키고 구사와 목여 태감을 동행해 조용히 출행했다.별장으로 가는 명원제의 심정은 사실 불안하기 그지없었다.하지만 배수의 진을 치고 결사의 각오도 있긴 했다. 자신이 퇴위한 뒤 아바마마와 관계가 천천히 회복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있었고, 제일 중요한 건 역시 자신이 진심으로 쉬고 싶다는 사실이었다. 자신의 일생 대부분을 태자와 황제라는 임무를 잘 해내기 위해 노력하는데 보내왔으므로, 이제 잘했는지 여부는 후세의 평가를 기다리면 된다. 명원제는 사람을 시켜 미리 태상황에게 자신이 온다는 것을 알라지 않고 황실 별장 입구에 불현듯 나타났다.명원제는 마차에서 내려 구사와 목여 태감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지기가 태상황에게 명원제가 왔음을 보고하자 태상황은 다소 놀랐다. 명원제의 예전 습관에 따르면 이렇게 중대한 일을 자신에게 보고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묻고자 할 때 언제나 사나흘은 따져봐야했기 때문이었다.이 일이 그만큼 절박하고, 명원제가 진심으로 마음을 굳혔다는 뜻이기도 했다.사람을 시켜 명원제에게 서재에서 기다리게 한 뒤, 태상황은 차를 한 잔 마시고 서재로 갔다.가기 전에 주재상이 태상황에게 말했다. “잘 말씀하세요. 자연스럽게.”주재상은 사실 황제가 퇴위하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황제가 제대로 못해서가 아니라 북당이 발전의 길을 걷고자하는 이유였다. 명원제는 보수적이고 신중한 성격이라 황제도 피곤하고 신하들도 다 지친 상태였다. 부자는 서재에서 그렇게 두시간 동안이나 얘기를 나눴다.퇴위 외에도 명원제는 한 가지 일을 더 태상황에게 애기했는데, 바로 어제 저녁일로 안풍친왕이 입궁해서 매화장을 다시 살 수 있냐고 물어왔다는 것이다.태상황이 불쾌한듯 말했다. “이 일을 왜 과인에게 묻느냐?
태상황은 확실히 계획이 있었다. 명원제가 어리둥절한 상태로 돌아간 뒤 태상황은 소요공에게 이전에 휘종제의 저택인 숙왕부를 다시 수리하도록 시켰다. 아주 좋게 수리할 필요없이 살 수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소요공이 물었다. “그야 간단하죠. 며칠 정리하면 다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로요? 이사가시게요?”“휘형이 이사갈 것이다!” 태상황이 말했다.“가시려고 하겠어요? 안 될 거 같은데요?” 소요공이 고개를 저었다.“아니, 분명 그럴 거야!” 태상황이 틀림없다고 했다.현대에서 안풍친왕이 그랬다. 적성루 조직은 한번도 해산한 적이 없다고. 말을 뱉었으면 그대로 지켜야 한다. 안풍친왕도 반드시 서둘러 이 일을 성사시키려 노력할 게 틀림없다.훼천과 요부인의 혼례 전에 삼대 거두는 안풍친왕 부부를 데리고 숙왕부로 갔다. 뒤로는 떼버리지 못한 일련의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과 노부인 몇 명이 따르고 있었다.태상황은 또 특별히 원경릉을 오라고 해서 안풍친왕비와 같이 있으며 숙왕부에 사는 게 좋겠다고 설득하는 역할을 맡겼다. 낙엽이 떨어지면 흙이 되어 뿌리로 돌아가듯이, 만년이 되면 어린 시절에 살았던 곳에서 살기를 바라는 법이라고 했다. 그래서 원경릉은 흔쾌히 동의하고 최선을 다해 임무를 완수하겠다고 약속했다.하지만 태상황이 탄식하며 반대했다. “매화장을 팔더니 뜻밖에 다시 입궁해서 이번엔 황제에게 30개월 할부로 매화장을 다시 사겠다는 거야. 과인은 휘형 부부를 다시 산속에 살게 할 수 없어. 반드시 돌아와야 해. 이 강산에는 휘형 부부의 몫이 있는 걸.”“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꼭 안풍친왕비 마마를 설득할 게요. 왕비 마마께서 오시기만 하면 왕야는 반드시 오실 테니까요.”“그래, 하지만 빨리 해내야 해. 아니면 경성을 떠나버릴 지도 모르거든.”“예, 알겠어요!” 원경릉이 대답했다.간단하게 수리를 마친 숙왕부는 기억 속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문으로 들어가면 가림벽으로 가려져 있어 본관 대문이 보이지 않고 벽을 돌아가면 하늘을 찌를 듯한
말을 마치고 원경릉에게는 인사도 없이 계속 사람들을 데리고 안으로 짐을 옮겼다.그 모습을 보자 원경릉은 속으로 생각이 들었다. ‘힘든 임무는 무슨? 벌써 이사올 심산이었구만.’ 입궁해서 할부로 매화장을 다시 사겠다는 것도 그저 말한 것 뿐으로, 안풍친왕과 잔꾀 대결에서 태상황이 진 게 확연했다.권하는 말을 한 마디도 안했는데 와서 쓱 보기만 하고도 이사오겠다고 바로 동의한 건, 원래부터 그럴 심산이었을 것이 분명했다. 원경릉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났다. 어쨌든 잘된 셈이잖아? 태상황의 소원대로 만년에 동지들과 시끌벅적하게 자유롭고 즐거운 날을 보내게 되었으니 말이다.초왕부로 돌아가며 원경릉은 우문호에게 이 얘기를 했다.우문호가 잠시 생각한 뒤 말했다. “아마도 돈이 없고 살 곳이 없어 돌아온 것만은 아닐지도 몰라. 어쩌면 내가 보위에 오른 뒤에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시려는 걸꺼야. 물론 돈이 없는 게 가장 큰 이유겠지만.”원경릉이 말했다. “안풍친왕 부부는 왜 그렇게 가난해? 돌아오신 뒤에 분봉 안 받으셨어?”“돌아오신 뒤로 바로 숨었는데 분봉을 어떻게 받아?”“왜 숨으신 건데?”우문호가 설명했다. “어쨌든 민간에도 조정에도 두 분이 황위를 찬탈하려 한다는 사람이 있으니깐. 전에 그런 일도 있었으니 사람들이 오해할 만도 하지. 하지만 두분도 굳이 변명하지 않으셨어. 됐어, 내가 보위에 오른 뒤에 두 분을 마땅하게 모셔드릴 테니까. 남은 시간 더 잘 지내시도록.”막 이 말을 하는데 경호에서 봤던 검은 옷의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먹여살리려면 확실히 힘이 들거다. 아니다. 역시 이리율에게 생활비를 보내라고 하자. 그런데 그동안 이리율은 왜 생활비를 안 보냈지?’이 문제는 잘 기억했다가 나중에 이리 나리를 만나면 똑바로 물어봐야겠다.“아, 이리 나리하니까 생각났는데, 어제 일곱째가 이리 나리 아내가 임신했다고 했어.” 우문호가 말했다.“….” 원경릉은 완전 어이가 없어서 화가 나 물었다. “이리 나리 아내면 자기 동생이잖아
희상궁 의견은 일단 다른 왕비들이 요부인 혼수로 뭘 해주는지 보고, 격식보다 실용적인 걸 주는 게 제일 낫겠다고 했다. 요부인이 금은보석을 별로 귀히 여기지 않을뿐더러, 관건은 초왕부에 금은보석 자체가 없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원경릉은 왕비들을 전부 이리 나리 저택으로 불러들여 혼수를 어떻게 준비할까 상의했다. 그러나 원래 혼수란 것이 연장자가 손아랫사람에게 장만해 주는 것으로, 다들 요부인보다 어렸기 때문에 혼수란 이름으로 해 줄 수 없지만 성의란 게 있으니 못 할 것도 없었다. 그렇기에 혼수라는 명분이 아닌 그저 공주 쪽에서 적당히 챙겨 주는 것으로 했다.동서들이 이리 나리 저택에서 모인 이유는 시누이인 공주가 회임해 이동이 불편하므로 회합 장소를 옮겨 겸사겸사 공주도 보기로 한 것이었다.어린 시누이에게 다들 애착이 상당했지만 의외로 우문령이 회임한 사실을 원용의 외에 다른 왕비들은 전혀 몰랐다. 전에 시누이가 그렇게 이리 나리와 합방을 원해도 오래 걸려 힘들게 이루어졌으니, 임신도 금방 될 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매사에 느긋하고 합방도 몇 년이나 미루던 이리 나리 부부이니 애를 갖는데도 몇 년은 걸려야 정상인데 이렇게 덜컥 회임하리라곤 아무도 생각 못 해 모두 화들짝 놀랐다.원경릉이 우문령을 진찰하고 초기 임신 반응을 묻자 부끄러워하며 잠이 계속 쏟아지는 것만 제외하면 별다른 반응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입맛은 좀 변해서 신 것도 매운 것도 다 좋고 먹을 수 없으면 견디기 힘들다고 했다.“그래서 그이가 저에게 먹을 걸 장만해 주느라 늑대파 사람들을 다 달달 볶는 바람에 힘들어 하세요.” 우문령이 행복하게 웃었다.“이리 나리께서 전혀 이리 나리답지 않으시네요.” 미색이 말했다.“애처가인 거지.” 원용의가 웃으며 말했다. 원용의는 우문령과 이리 나리의 순수한 사랑을 좋아했다. 그리고 이리 나리는 걸핏하면 돈을 팍팍 들인 선물을 사서 령이에게 주는데 이 호탕함이 또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손 왕비가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집 그분이
명원제도 통 크게 요 부인에게 땅과 저택을 하사해 실질적으로 그들의 생활을 보장해 주었다. 이렇듯 명원제가 딸 시집보내듯 챙겨주는 행동들이 진심으로 첫째 며느리를 아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쨌든 요 부인은 여전히 군주의 어머니이다.혼례 전날 밤 원경릉과 동서들은 요 부인의 저택에 모여 신부를 도와주며 혼례 의식에 따라 진행했다.요 부인의 친정은 요 부인이 본가로 돌아와서 출가하기를 원했지만, 요 부인은 자신의 집에서 조금도 꿈적이지 않기에 그녀가 하자는 대로 하기로 했다.요 부인이 혼례복을 입자 아름다움이 조금도 없어지지 않고 얼굴은 행복으로 가득한 것이 모두가 기쁘기 그지 없었다.호명파를 불러 요 부인의 머리를 빗기게 한 뒤 모두 경단을 먹으러 나가서 원경릉과 요 부인만 방 안에 남았다.요 부인이 일어나 원경릉에게 정중하게 절을 하고 감격한 눈빛으로 고마움을 전했다.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로 태자비에 대한 고마움을 다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이 절 받으세요.”원경릉이 요 부인에게 손을 뻗어 팔목을 잡았다. “그런 말 말고 앉으시오. 우리 얘기 좀 합시다.”요 부인이 앉아서 부드러운 얼굴로 물었다. “태자비, 제 감사 인사는 진심입니다. 태자비가 아니었으면 난 벌써 죽었을 테니 오늘의 행복이 어디 있기나 하겠습니까?”“예전 일을 들먹여서 뭐해요? 앞으로가 새로운 시작인걸요.” 원경릉이 미소를 짓자 요 부인이 살짝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예전 일도 얘기해야죠. 이렇게 좋은 날이 있을 거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없어요. 솔직히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요. 사혼 성지가 내린 뒤로 실감이 나지 않아 결국 안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좋은 일은 항상 저와 인연이 없었으니까요..”“앞으로는 행복한 날만 있을 겁니다. 훼천은 요 부인을 사랑하니까, 앞으로 무슨 일이 있든 훼천은 늘 요 부인 곁을 지키며 사랑할 게 틀림없어요.”요 부인이 감동받아 눈물을 글썽였다. “누군가에게 보호받는다는 느낌은 정말 좋군요. 하늘이 무너져도 두려워할 필요
원경릉이 미색에게 정화 군주를 불러오라고 했다. “이런 경사에는 다 같이 있어야지.”“그래요, 제가 직접 다녀오죠. 안 온다고 하면 꽁꽁 묶어서라도 데려올게요!”항상 못 하는 일이 없는 미색이 말을 타고 금방 정화 군주를 데리고 돌아왔다.미색이 캄캄한 집에 정화 군주의 손목을 잡고 들어서자, 모두가 문 앞에서 서서 기쁜 표정으로 정화 군주를 맞이했다. 그러자 정화 공주는 마음이 따듯해지며 얼굴에 드리웠던 그림자가 사라지고 기쁜 웃음으로 미색과 들어갔다.두 군주도 마침 화장을 마친 참이라 때가 되면 같이 나갈 생각이였다.군주들은 지금 응어리 하나 없이 심지어 아주 기쁜 표정인 것이 훼천을 정말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훼천은 두 군주의 신임과 존경을 얻어낸 것과 다름 없었다.다음날 영친례가 시작되고 훼천이 있는 늑대파 형제들이 호탕한 걸음으로 풍악을 울리며 오는데 영친 대열이 어림잡아 못 되도 백 명은 넘는 것이 진용이 정말 대단했다.동서들은 손을 잡고 복도에 서 있었고, 요 부인은 수모의 부축을 받고 천천히 걸어 나갔다.햇살 좋은 날, 훼천은 신랑 예복을 입고 준마 위에 앉았다. 기쁨과 감격에 찬 훼천이 마침내 학수고대하던 오늘을 맞은 것이다. 사혼 성지가 내린 그날부터 모두 오직 이날만을 기다려 왔다.훼천은 가장 사랑하는 여인을 아내로 맞아 평생 기쁨과 슬픔도 함께 하며 생사를 같이 하겠다며맹세했다.요 부인은 붉은 면사포로 얼굴을 가려 붉은 비단신만 보였으나, 훼천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이글이글한 시선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가마에 오르려는 찰나, 갑자기 훼천의 발소리가 들렸고, 눈앞에 강력한 존재감이 느껴지며 훼천의 손이 요 부인의 손목을 딱 잡았다. “내가 아내를 가마에 태워 주겠소!”그러자 요 부인은 콧날이 시큰했다. 결국 가마를 타는 순간 눈물이 면사포 아래로 떨어지며 훼천의 손등을 타고 흘러 내렸다.훼천이 요 부인의 손을 잡고 담담한 목소리로 다짐했다. “앞으로 다시는 눈물 흘릴 일 없을 거야.”이 한마디 말이
늑대파 사람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질질 끌고 나가는데, 소여쌍은 여전히 미친사람처럼 웃어대기만 했다.이리봉청은 그들이 끌려 나가는 것을 보자, 눈앞에 안지여가 자신을 데리고 소여쌍의 침대 앞으로 가서 소여쌍의 그 악랄한 말을 듣던 순간이 떠올랐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여리여리하고 아름답던 그녀가 이렇게 변해 버린 게 꿈처럼 느껴졌다.풍도성을 접수한 뒤 안풍 친왕은 관리들을 새롭게 임명했고, 더 이상 성주 같은 것을 두지 않고 조정과 이부에 적합한 인사를 선발해 풍도성 지부로 앉힐 것을 요청했다. 풍도성은 더 이상 이전의 독립 자치 지역이 아닌, 다른 주나 현과 마찬가지로 조정에 귀속되어 통일서 있게 다스리게 되었다.더불어 안풍 친왕은 별도로 서신을 써서 황제인 우문호에게 보냈는데, 풍도성을 추천하지만, 이건어디까지나 건의와 추천이니 황제가 생각하는 마땅한 사람이 있으면 안풍 친왕의 추천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동시에 안지여의 잔당들이 계속 나타났다.안풍 친왕이 이번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데려오고, 호랑이와 눈 늑대, 회색 늑대까지 출동시킨 건 바로 모든 세력을 강화하고, 신속하게 진압해 풍도성을 조정에 복귀시키고 보름 만에 비적을 토벌하며 기본적인 숙청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박원은 잔당의 남은 불씨가 다시 타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 안풍 친왕의 영패를 가지고 부근에 5천 명의 군사를 파견시켜 풍도성을 지켰다. 이리 나리는 자금을 지원해 천문 세가의 묘를 이장하였는데, 이전 무덤은 안지여가 고른 곳으로 폐허에 가까워, 그는 천문 세가 사람들이 그런 곳에서 안식을 취하기를 원하지 않았다.풍도성에 온지 거의 한 달가량 될 때쯤, 대군은 경성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돌아가기 전에 미색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보러 갔다가, 돼지우리에서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사는 것을 보고 그제야 비로소 맺혀 있던 한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미색은 이리 나리와 어머님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 두 사람은 이미 안지여가 누군지 잊은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리봉청에게 있어 모든 건 지나가지 않았고, 36년 전 일은 여전히 어제 일 같이 느껴졌다.“어머니, 그를 어떻게 처분하시겠어요?” 이리 나리는 이리봉청의 마음을 넘겨짚을 수 없어 함께 걷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생각은 어떠니?” 이리봉청이 다시 되묻자 이리 나리가 원한에 사무친 눈빛으로 말했다. “제게 처분하라고 하면 전 그를 죽여 버릴 겁니다.”이리봉청은 알았다며 대답만 했다가, 다시 30분쯤 걷다가 정자에 앉아 을 때 말을 덧붙였다. “난 안 죽일 거야.”이리 나리가 약간 놀라서 물었다. “어머니, 또 마음이 약해지신 겁니까?”이리봉청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 반대야. 그 인간을 죽이는 게 마음이 약해진 거지. 사실 며칠 동안 이전의 원한을 내려놓을 수 있을지 생각해 봤는데,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 인간을 백번이라도 죽이겠지만, 난 그럴 수 없더구나. 아들아, 게다가 오늘 천문 세가 대문을 들어서는 그 순간, 더욱 마음을 굳혔단다.”이리봉청이 일어나 집안을 둘러봤다. 이곳은 그녀의 가족들이 살아 원래 온통 사람 소리로 가득한 곳이였다. 그들의 웃던 광경이 눈앞에 비치는가 하더니, 눈 깜박할 사이에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천문 세가는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없는데 멸문지화를 당했고, 가엾게도 그 중엔 아이들이 많아서 제일 어린아이는 이제 태어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었다.이리봉청의 얼굴에 눈물이 타고 흐르며 가슴이 미어졌다. “그자와 소여쌍을 밖에 내버리고 사람을 시켜 지켜보도록 해. 죽게 두지 말고 계속 살려둬. 36년은 더 살면서 이 세상의 고생을 모두 겪어야, 내 마음에 맺힌 한이 풀리고 억울한 망자들도 안식에 들지!”이리 나리는 온몸으로 그 마음이 느껴져, 어머니가 눈물 흘리는 것을 더는 볼 수 없었다. “네, 전부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대로 할게요.”안지여와 소여쌍은 버려졌다. 짧은 며칠 사이에 안지여는 의기양양하던 성주에서 시궁창 쥐로 변해, 사람들이
안지여는 풍도성 지하감옥에 갇혔다. 빛 한 줄기 없는 지하감옥에서 사방에 끝없는 어둠과 절망만이 안지여를 삼키고 있었다.훼천의 형벌은 12 시진 후면 사라져서, 앞으로 안지여는 그저 한 명의 폐인일 뿐이었다.안지여의 결사대가 성으로 공격해 들어오기 전에, 이리봉청은 오 선생을 찾아내 안지여가 저지른 모든 죄를 고백하게 하고 안풍 친왕이 친필로 받아 적었다. 안지여가 당시 천문 세가를 해친 경위를 소상히 써 내려간 뒤, 오 선생과 안풍 친왕의 직인을 찍고 인쇄해서 대중에게 공개했다.안지여의 죄악은 하늘을 찔러 백성들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안지여의 결사대의 옛 부하들이 본래 성을 공격해 들어가 안지여를 구출할 계획을 세워놓았으나, 안지여의 죄상이 공포된 뒤로 많은 사람들이 해산하였다. 유일하게 무대장군만이 수천 명을 데리고 성으로 쳐들어왔지만, 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가 이미 대비해둔 덕분에, 경성에서 굴러온 돌이 무대장군의 박힌 돌을 빼내는 전투를 벌였다.풍도성에 온 지 7일째, 안풍 친왕은 풍도성을 접수하고 성에 살던 사람을 쫓아내며 서민으로 강등시켰다.안지여와 소여쌍에 대한 처분은 이리봉청에게 넘겼다.안지여는 캄캄한 지하감옥에서 6일을 지내는 동안, 처음엔 침착한 척 가장했으나 사흘째가 되자 울부짖으며 악독한 저주의 말을 내뱉더니, 나흘째가 되자 용서해달라고 애원하며 참회했다.손발의 힘줄이 끊어진 안지여는 일어나 걸을 수도 없고 심지어 스스로 몫숨을 끊을 힘도 없었다.그 와중에 매일 누군가가 먹고 마시도록 해주고, 상처도 치료해 주어 살 수 있다는 부질없는 희망을 품게 했다.훼천의 말에 따르면, 진정한 절망은 살아도 죽느니만 못하고,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것으로, 온 마음으로 죽기를 바라지만 살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가, 안간힘을 쓴 뒤 다시 절망에 빠지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으로, 사람을 한없이 죽였다 살렸다 괴롭힌다고 했다.결국 안지여를 죽일지 말지 여부는 이리봉청에게 달렸는데, 그녀는 안지여를 단번에 죽여 천문 세가
안지여의 이마에 파란 힘줄이 불끈불끈했으나 냉정을 가장했다. “내가 두려워할 줄 알았나 보지? 죽음도 두렵지 않은데 뭘 더 두려워하겠어?”“넌 두려울 것이야!” 이리봉청이 고개를 돌려 이리 나리를 보고 살짝 그의 팔을 잡았다. “내가 오는 길에 늑대파 사람이 그러던데, 천하에서 제일 잔혹한 형벌을 아는 사람이 늑대파에 있다고. 그게 사실인 것이냐?”이리 나리가 가볍게 답했다. “물론 사실이죠. 훼천이라고 합니다. 늑대골 출신이에요.”“안지여가 버틸 수 있는지 어디 한 번 보고 싶구나.” 이리봉청이 말했다.이리 나리가 엄숙한 태도로 명을 내렸다. “훼천!”그러자 훼천이 급히 나왔다. “이리 나리, 분부하시지요!”이리 나리는 그가 짐짓 냉정한 척하고 있으나 눈빛이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몸까지 부들부들 떠는 것이 아주 만족스러워 훼천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시작해!”안지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욕했다. “난 네 아버지거늘, 감히 나에게 손을 대다니, 천벌을 받아 마땅한 놈 같으니라고!”이리봉청이 이 말을 듣고 잠시 주저하는 눈빛으로 이리 나리를 바라봤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제 아버지는 오직 저를 키워주신 안풍 친왕뿐이십니다.”이리봉청이 살짝 안도했다. “저 인간이 단지 나만 해쳤으면 네 체면을 봐서 놔줬겠지만 천문 세가의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니 난 용서할 수 없구나.”“이리봉청, 너 언제 이렇게 악랄하게 변했어? 죽이려거든 그냥 죽여. 난 천문 세가 사람을 죽이긴 했어도 그들을 괴롭히진 않았어. 네가 날 죽이려거든 깨끗하게 단번에 죽여!”안지여가 크게 노해 몇 번 몸부림을 치다가 상처가 벌어지는 바람에 배에서 선혈이 흘러나오고, 훼천이 가까이 다가가자, 눈에 두려움이 깊어졌는데, 늑대골 출신 훼천은 온몸에서 피비린내가 뿜어져 나와 안지여를 덜덜 떨게 했다.“이리율!” 안풍 친왕비는 시ㅈ가하기 전에 이리 나리를 불렀다. “내가 여기서 네 엄마와 같이 있을 테니 넌 먼저 나가 있거라!”이리 나리가 안풍 친왕비에게
안지여에게 구원 병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리 나리 일행이 성을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대오가 경성에서 출발하기 전에, 안풍 친왕비가 미리 사람을 풍도성으로 보내 각처, 특히 성 수비군과 군대에 잠입시켜, 음식에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독을 풀어, 오늘 중독 증상이 나타나도록 독의 분량을 조절했다.적어도 내일까지는 안지여를 도우러 올 사람은 없었다. 독성은 적어도 이틀이 지나야 깨끗해지기 때문에 이틀 동안 그들은 설사와 전신 무기력으로 성에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아도 와서 도울 수 없었다.그리고 그들이 기력을 회복할 때쯤이면, 안지여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는 성을 통제하고, 안지여 부부를 제압해 두 사람을 줄로 묶고 지혈시켜 주었다.안지여는 요 몇 년 동안 자신이 상당히 대단하다고 여겼다. 이는 풍도성이 부유하기 때문으로, 돈으로 많은 사람을 살 수 있었으며, 여러 곳에서 추켜세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처절하게 패배한 적이 없었던 이유는 진정한 적이 없기 때문으로, 주변의 떠돌이 비적은 작은 마을 규모로 너무 작아서 소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그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적이 너무 약해서였다.조정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는 제대로 훈련받은 적 없는 비적었기에 일격도 감당할 깜냥이 못됐다.이리 나리는 둘을 중정에 묶어 두었다. 온 바닥에 남은 음식과 깨진 기와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본 안지여는 마음속 깊이 분노가 일었다. 자신의 생일날, 그를 다치게 한 것이 바로 그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욱이 오늘 이렇게 많은 고수가 현장에 있었는데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런 결말을 맞다니 너무 불쾌했다. 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을 부축하고 안지여 부부 앞으로 가서, 그녀가 안지여 부부를 내려다보자, 그들은 낭패에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이리봉청은 분노하는 마음과 함께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그들을 죽이면 커다란 복수는 이뤄 천문 세가 망자의 원혼은 달랠 수 있었다.하지만 저들을 이렇게 쉽게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이리 나리가 검을 휘두르며 안지여를 겨누자, 안지여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후퇴했다.공자들은 돕고 싶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에게 바로 제압당했다. 안지여는 이리율 것으로 그들은 주변 사람을 제압하기만 할 뿐 옆에 서서 전투를 관전하고 있었다.이리율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를 가르친 안풍 친왕 부부를 제외하고, 사실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이리율의 검법은 신속하고 맹렬해서 안지여는 상대하느라 쩔쩔매고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다. 성안의 호위들은 늑대 무리와 늑대파, 홍매문 사람들에게 막히는 바람에 안지여는 홀로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그래도 아직은 버틸 수 있었다.하지만 30분을 못 가서 안지여는 질게 틀림없었다.놀란 나머지 계속 실성해 있던 소여쌍이 갑자기 이리봉청을 향해 바싹 마른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조르며 광적인 집착과 분노에 사로잡혀 성질을 부렸다. “멈춰, 다들 멈추라고. 안 그러면 내가 이년을 죽여버릴 것이니까!”소여쌍은 무공을 할 줄 알았지만 잘하지 못한 것이 어릴 때부터 계속 중병을 앓아 무공 연습에 소홀했고 성주 부인이 된 뒤로는 더욱 병기에 가까이할 일이 없었지만, 공력만큼은 아직 약간 있었다.소여쌍은 증오의 힘으로 이리봉청의 목을 졸랐는데, 소여쌍이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이리봉청의 목을 부러뜨릴 것만 같았다.안풍 친왕이 차가운 눈빛으로 나서려 하자, 안풍 친왕비가 말리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는데, 그럴 필요 없다는 뜻으로 뒤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참으라는 눈짓을 하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모두가 이리봉청이 제압당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손가락으로 뭔가를 쥐고 있어 소여쌍의 어깨 위를 휘감고 팔을 눌러 소여쌍이 머리를 돌리게 했다. 이리봉청 손에 쥔 것은 바늘로, 그대로 소여쌍의 오른쪽 눈을 찌르고 들어갔다.소여쌍이 절규하며 이리봉청을 놔주고 선혈이 흐르는 눈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다 바닥에 쓰러져 데굴데굴 구르며 새된 소리를 지르는데, 원망과 저주의 말을 끊임없이 쏟아
풍도성 중정에는 안지여의 아들들과 사위가 그의 곁에 남았는데,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점점 공포에 질려가고 있었다.‘이 사람들, 아주 대단하구나!’안지여는 이리봉청을 보고 비록 조금 냉정해 보였지만, 여전히 놀라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갑자기 소여쌍이 큰 소리로 웃으며, 몸을 앞뒤로 흔들며 눈물을 찔끔거리더니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이리봉청을 가리키며 원망했다. “뜻밖에 네가 안 죽었단 말이지? 게다가 아들까지 있고. 참으로 황당하구나. 정말 너무 황당해. 원래 죽어야 했을 인간은 죽지 않고, 잘 살아야 할 사람은 36년간 괴로움을 당했어. 이리봉청 네가 날 비참하게 만들었으니 넌 이제 지옥에 떨어져야 해.”이리봉청은 소여쌍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했는데, 그녀 눈에는 지금 안지여만 들어왔다.안지여는 36년을 살아왔지만, 이리봉청에게 있어 36년은 마치 사라진 시간처럼 멸문지화의 원한이 어제 일 같았다.안지여도 이리봉청의 눈에서 분노와 악랄함을 보고, 처음으로 마음속에 두려움을 느꼈다.안지여는 억지로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네 사람을 데리고 가. 지난 일을 묻지 않을 테니. 그렇지 않으면 풍도성에서 곧바로 10만 대군이 올 것으로, 살아서 도망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아.”이리봉청의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 “우리는 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바로 네 성으로 쳐들어갈 수 있어. 넌 이미 졌어.”안지여가 웃었다. “졌다고? 그래?”안지여는 수하의 대장군이 믿음직해서, 그들을 당하게 놔줄 수도 있다고 여겼다. 대장군의 부대는 분명 치밀하게 준비되어 있을 것으로, 아마 지금쯤이면 궁수들이 이미 배치를 마치고 그들을 전부 쏴 죽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어머니, 저자와 말 섞으실 필요 없어요. 앉아서 지켜보시기만 하면 됩니다!”말을 마치고 의자를 올리더니 이리봉청을 부축해서 앉혔다.안지여가 이리 나리를 보는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안지여가 퍼뜩 눈을 돌려 이리 나리를 보았다.‘이리봉청이 저자를 아들이라고 불렀다는 건러니까?이리 나리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찬찬히 훑어보더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안 성주와 좀 오래된 원한을 따져야 하는데, 관련되기 싫으신 분은 자리를 피해 주시지요!”그때 한 사람이 검을 짚고 일어나 호통을 쳤다. “넌 도대체 어떤 놈이냐? 무슨 자격으로 자리를 피해라 마라야? 안 성주를 귀찮게 할 생각이면 일단 나부터 통과해 보시지!”그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장검을 뽑아 파죽지세로 이리 나리를 향해 휘둘렀다.이리 나리는 손을 살짝 움직여 손바닥으로 칼자루를 밀자, 검이 날아가며 그 사람의 귀를 베어 한 줄기 피가 공중에 뿌려지더니, 방금까지 기고만장하던 자가 비명을 지르고 귀는 바닥에 떨어졌다.검이 다시 이리 나리 수중으로 정확히 돌아왔다.이 모든 게 3초 안에 벌어진 일이었다.“회선검?” 검법을 아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외쳤다.현장은, 숨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았다.회선검은 검마의 검법으로, 그렇다는 건 저 사람이 검마의 계승자?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무리에서 검마를 찾았다. 과연 두 손으로 검을 안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도 차가운 안광이 느껴졌다.과연 진짜 검마구나, 사람들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검마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리 나리를 흘끔 보더니 속으로 의아해했다. ‘이 자식, 언제 내 비장의 검법을 배운 거야?’이리 나리의 검 끝에선 아직 선혈이 떨어지는데, 여전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말했다. “이 아수라장에 끼고 싶은 거라면, 제가 무례하다고 원망할 생각 마세요.”“무엄하도다!” 안지여가 몹시 놀랐다가 천천히 정신을 차리고 눈을 치켜뜨며 이리 나리를 노려봤다. “너는 내가 누구인 줄 아느냐? 내가 네 아버지다!”이리 나리가 코웃음을 쳤다!안지여의 몇몇 아들이 달려 나와 소리쳤다. “아버지, 저희가 지켜드리겠습니다.”안풍 친왕이 젓가락을 던지고 일어나 차갑게 명을 내렸다
오늘은 성주의 생일이기에 경사라 섣불리 피를 볼 수는 없으므로 칼은 빼 들었지만 먼저 나서서 늑대를 죽이는 사람은 없었다.안지여는 어두운 눈빛으로 ‘늑대 무리라고? 척후병의 보고로는 안풍 친왕이 늑대 무리를 끌고 온다고 했는데, 저들이 의외로 성으로 직접 쳐들어 왔다 이거지?’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안지여는 잔을 들고 꿈적도 하지 않은 채, 무너지기 직전까지 미동도 없는 태산처럼 냉정하고 침착했다. 늑대 무리는 안으로 들어온 뒤로 두 패로 나뉘어 서서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호시탐탐 엿보며 으르렁거렸다.“성주님, 성주님, 저들이 기어코 쳐들어오겠다고….” 문지기가 외치는 소리는 들렸으나 사람은 보이지 않더니, 그보다 조정에서 보낸 사람들이 먼저 들이닥쳤다.앞에 걸어들어오는 두 사람을 안지여는 본 적이 있었는데, 바로 안풍 친왕 부부로 예전에 그들이 천문 세가 사람들을 조사하러 왔을 때 그에게 속은 적이 있었다. 비록 당시 일면식 뿐이었으나 천문 세가 일을 캐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탓에 그들의 얼굴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어째서 별로 변한 게 없는 거지?’안풍 친왕 부부 뒤에 따라오는 10여 명의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은 그들의 호위 무사일 것으로, 주인인 안풍 친왕 부부는 별 표정이 없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들어와 고개를 들자 괴팍하고 악랄한 얼굴이 안지여 마음에 들지 않았다.안지여는 여전히 일어나지 않았고, 미소는 띠고 있었지만 매서운 눈빛으로 저들이 돌계단을 오르면 그때 일어나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게 그의 태도였다.하지만 안풍 친왕 부부는 돌계단을 오르지 않았고, 손님 중 건배를 권하느라 자리를 비운 사람들 의자에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차지하고 앉아, 그들을 대놓고 밀치더니 품에서 자기 젓가락을 꺼내 옆 사람 상관하지 않고 먹기 시작해 사람들이 다 경악했다.그들이 자리를 잡고 앉자 뒤따라 들어오는 사람들이 보였다.두 사람이 사람들에 둘러싸여 천천히 걸어들어오고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