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원제도 통 크게 요 부인에게 땅과 저택을 하사해 실질적으로 그들의 생활을 보장해 주었다. 이렇듯 명원제가 딸 시집보내듯 챙겨주는 행동들이 진심으로 첫째 며느리를 아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쨌든 요 부인은 여전히 군주의 어머니이다.혼례 전날 밤 원경릉과 동서들은 요 부인의 저택에 모여 신부를 도와주며 혼례 의식에 따라 진행했다.요 부인의 친정은 요 부인이 본가로 돌아와서 출가하기를 원했지만, 요 부인은 자신의 집에서 조금도 꿈적이지 않기에 그녀가 하자는 대로 하기로 했다.요 부인이 혼례복을 입자 아름다움이 조금도 없어지지 않고 얼굴은 행복으로 가득한 것이 모두가 기쁘기 그지 없었다.호명파를 불러 요 부인의 머리를 빗기게 한 뒤 모두 경단을 먹으러 나가서 원경릉과 요 부인만 방 안에 남았다.요 부인이 일어나 원경릉에게 정중하게 절을 하고 감격한 눈빛으로 고마움을 전했다.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로 태자비에 대한 고마움을 다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이 절 받으세요.”원경릉이 요 부인에게 손을 뻗어 팔목을 잡았다. “그런 말 말고 앉으시오. 우리 얘기 좀 합시다.”요 부인이 앉아서 부드러운 얼굴로 물었다. “태자비, 제 감사 인사는 진심입니다. 태자비가 아니었으면 난 벌써 죽었을 테니 오늘의 행복이 어디 있기나 하겠습니까?”“예전 일을 들먹여서 뭐해요? 앞으로가 새로운 시작인걸요.” 원경릉이 미소를 짓자 요 부인이 살짝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예전 일도 얘기해야죠. 이렇게 좋은 날이 있을 거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없어요. 솔직히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요. 사혼 성지가 내린 뒤로 실감이 나지 않아 결국 안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좋은 일은 항상 저와 인연이 없었으니까요..”“앞으로는 행복한 날만 있을 겁니다. 훼천은 요 부인을 사랑하니까, 앞으로 무슨 일이 있든 훼천은 늘 요 부인 곁을 지키며 사랑할 게 틀림없어요.”요 부인이 감동받아 눈물을 글썽였다. “누군가에게 보호받는다는 느낌은 정말 좋군요. 하늘이 무너져도 두려워할 필요
원경릉이 미색에게 정화 군주를 불러오라고 했다. “이런 경사에는 다 같이 있어야지.”“그래요, 제가 직접 다녀오죠. 안 온다고 하면 꽁꽁 묶어서라도 데려올게요!”항상 못 하는 일이 없는 미색이 말을 타고 금방 정화 군주를 데리고 돌아왔다.미색이 캄캄한 집에 정화 군주의 손목을 잡고 들어서자, 모두가 문 앞에서 서서 기쁜 표정으로 정화 군주를 맞이했다. 그러자 정화 공주는 마음이 따듯해지며 얼굴에 드리웠던 그림자가 사라지고 기쁜 웃음으로 미색과 들어갔다.두 군주도 마침 화장을 마친 참이라 때가 되면 같이 나갈 생각이였다.군주들은 지금 응어리 하나 없이 심지어 아주 기쁜 표정인 것이 훼천을 정말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훼천은 두 군주의 신임과 존경을 얻어낸 것과 다름 없었다.다음날 영친례가 시작되고 훼천이 있는 늑대파 형제들이 호탕한 걸음으로 풍악을 울리며 오는데 영친 대열이 어림잡아 못 되도 백 명은 넘는 것이 진용이 정말 대단했다.동서들은 손을 잡고 복도에 서 있었고, 요 부인은 수모의 부축을 받고 천천히 걸어 나갔다.햇살 좋은 날, 훼천은 신랑 예복을 입고 준마 위에 앉았다. 기쁨과 감격에 찬 훼천이 마침내 학수고대하던 오늘을 맞은 것이다. 사혼 성지가 내린 그날부터 모두 오직 이날만을 기다려 왔다.훼천은 가장 사랑하는 여인을 아내로 맞아 평생 기쁨과 슬픔도 함께 하며 생사를 같이 하겠다며맹세했다.요 부인은 붉은 면사포로 얼굴을 가려 붉은 비단신만 보였으나, 훼천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이글이글한 시선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가마에 오르려는 찰나, 갑자기 훼천의 발소리가 들렸고, 눈앞에 강력한 존재감이 느껴지며 훼천의 손이 요 부인의 손목을 딱 잡았다. “내가 아내를 가마에 태워 주겠소!”그러자 요 부인은 콧날이 시큰했다. 결국 가마를 타는 순간 눈물이 면사포 아래로 떨어지며 훼천의 손등을 타고 흘러 내렸다.훼천이 요 부인의 손을 잡고 담담한 목소리로 다짐했다. “앞으로 다시는 눈물 흘릴 일 없을 거야.”이 한마디 말이
원경릉이 우문호를 부축하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신랑은 술을 주고 당신은 아주 목숨을 준 것같네, 하여간 말려도 듣지를 않아.”“하하하. 좋아서 그래, 내가 너무 좋아서!” 우문호의 팔이 원경릉의 어깨에 걸쳐 있었는데 마차가 흔들리니 속이 울렁거려 또 토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몽롱한 눈으로 원경릉을 보며 아양을 떨었다. “원 선생, 나 지금 당신 입덧 때 느낀 고통을 느끼느 있는 것 같애.”원경릉은 약상자에서 약을 한 알 꺼내 우문호 입에 넣어주며, “꿀떡 삼켜!”우문호가 목을 길게 늘이고 약을 삼키더니 하하 웃으며 말했다. “천재 의원 아내를 두니까 진짜 좋네. 어떤 병에 걸려도 걱정할 필요가 없어!”원경릉이 우문호를 일으켜 앉히며 말했다. “훼천이 혼인한 게 그렇게 좋아?”원경릉은 우문호와 훼천이 이렇게 관계가 좋은 줄은 몰랐다.우문호가 이마를 받치고 말했다. “요 부인 혼례라 그래. 훼천 때문에 행복해서가 아니라. 요 부인 때문에 기분이 좋은 거라고. 자칫하면 평생을 우문군 때문에 망가질 뻔했잖아. 이제 행복해졌으니 안심이야.”원경릉은 다소 의외였다. 매사에 대충대충인 우문호가 갑자기 이렇게 섬세해지다니 말이다.“그래, 나도 안심이네.” 원경릉이 속삭였다.우문호가 일어나 원경릉을 덜썩 끌어안았다. “원 선생, 우리도 고진감래인 셈이야.”원경릉이 고개를 끄덕이려는 찰나 우문호가 크게 웃기 시작했다. “훼천 이 바보, 어쩌면 첫날밤까지 동정일지도 몰라. 이리 나리에게 들었는데 훼천은 전에 여인을 가까이 한 적이 없데.”원경릉도 따라 웃었다. “별걱정을 다 하네.”‘그 일을 할 줄 알고 모르고가 어딨어? 배우지 않아도 다 알아서 할 수 있는 거 아닌가?’한편 신방은 갓난아기 팔뚝만한 용봉화촉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훼천은 요 부인의 면사포를 걷어내더니 한없이 바라만 보고 있었다.반쯤 취한 훼천의 가슴은 기쁨으로 출렁였고 촛불은 바람에 일렁였다. 불빛이 막 타오르는 가운데 요 부인이 화난 얼굴이 슬그머니 보였다. “뭘 봐요?!”훼천
원경릉은 안 왕비 안색이 좋은 것을 보고 강북부 생활이 꽤 괜찮았구나 싶어 마음이 상당히 가벼워져 안왕의 근황은 어떤지부터 물었다.그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안왕에 대해 불신이 가득했기 때문에 안왕에게 대체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알고 싶었다.안 왕비가 말했다. “강북부의 나날은 정말 한가했어요. 남편도 할 일이 없었는데 어쩌다가 셋째 아주버님과 만나 황무지 일대를 개간해서 작물 재배에 관해 상의나 했어요.”“그거 좋네요!” 원경릉이 말했다.“확실히 그렇긴 하죠. 하루종일 무료하긴 했지만 안왕 전하가 이전보다 집에 있는 걸 더 좋아했던 건 어쩌면 안지의 공로일지도 모르겠네요.” 안 왕비가 부드럽게 안지를 바라봤다.안지는 귀엽고 예쁘게 자랐다. 우문씨 집안 특유의 긴 속눈썹으로 눈을 감고 잘 때 특히나 평안하고 고요해 보였다.안지는 정말 정말 침착하고 조용했으며 계란이와는 달랐다. 계란이는 겉으로는 차분하고 부드럽게 보이지만 눈을 뜨는 순간 고요한 작은 얼굴에 뜨거운 불길과 교활함을 숨기고 있는 것 같다는 착각마저 들게 했다.그래서 고요한 모습은 약간 위장이란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건 원경릉 생각일 뿐이고 우문호는 원경릉의 이런 생각에 완전 반대했다. 우문호에게 자신의 딸은 천하에서 제일 착한 아이로 울지도 않고 떼도 안 쓰고 심지어 쌍둥이보다 더 차분했기 때문이었다.‘맞아.” 안 왕비가 순간 뭐가 떠올랐는지 급히 말했다. “셋째 아주버님이 어쩌면 거기서 가정을 꾸릴지도 모르겠네요.”“뭐라고요?!” 원경릉이 놀라서 안 왕비를 노려 보았다. “혼인할 거란 말인가요?”안 왕비가 안지를 안고 살살 흔들어 주며 말했다. “왕야가 하시는 말을 들은 건데 강북부의 주 지부 딸이 셋째 아주버님한테 반해서 종일 쫓아다녔고 둘이 산에서 함께 이틀이나 보낸 적도 있어요. 젊은 남녀다 보니 주 지부는 이미 셋째 아주버님을 사위로 대하고 있고, 셋째 아주버님의 태도가 어떤지는 저도 잘 몰라요. 셋째 아주버님도 경성으로 돌아오시는 중인데 일이 있어 좀 지체된다고
안 왕비가 답했다. “확실한 건 아니고 집안의 가신이 하는 얘기를 들은 거예요. 셋째 아주버님께서 주 아가씨를 데리고 경성으로 오시면 정화 군주가 자신의 진짜 속마음은 사실 함께하고 싶다고 알아채실지도….”원경릉이 놀라 안 왕비 말을 끊었다. “셋째 아주버님이 만약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신다면 머리가 어떻게 된 게 분명해요!”안 왕비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럼, 아주버님이 정말 아가씨를 데리고 왔다면 태자비는 어떻게 할 거예요? 그 아가씨가 죽자 살자 매달리면 사람을 시켜 주 아가씨를 돌려보내야 하는 거 아닌가요?”“아주버님께서 상대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이상 상대도 쉽게 매달릴 수 없어요. 주 아가씨와 상관없으면 자기가 알아서 의심받을 일을 피하기 마련….” 원경릉이 말을 그만두고 잠시 생각해 보더니 안 왕비 말이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일은 그들이 간여할 수 있는 게 아니며 그저 감정적으로 정화 군주가 안타까울 뿐이었다. 사실 위왕이 재혼을 하려고 한다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었다.동서 둘은 마주 보고 하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저녁에 우문호가 돌아오자마자 원경릉이 이 얘기를 했고 우문호가 듣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셋째 형 머리가 진짜 어떻게 된 것인가? 여자를 데리고 와서 뭘 어쩌자는 거지? 안돼 절대, 안 된다!”우문호는 바로 문을 열고 서일을 찾아 사람을 보내 위왕이 주 아가씨를 데리고 경성으로 오고 있는지 물어보게 했고, 서일은 곧바로 귀영위를 보냈다.서일처럼 건성건성 사는 사람도 위왕이 여자를 데리고 오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원경릉이 우문호에게 제안했다. “이 일은 안 왕비도 확실한 게 아니라고 했으니 안왕에게 물어보는 게 어때? 안왕은 위왕이랑 있었던 시간이 많았으니까, 형제지간에 비밀을 숨기거나 하지 않았을 거야. 위왕이 정말 주 아가씨한테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좀 물어봐 줄래? 마음이 있는 거면 강북부에서 우리 모르게 혼인하면 되니까 정화 군주에게도 얘기하지 말라고 해.”“위왕이 다른 여자를 아
우문호가 열 받아서 소리쳤다. “그게 무슨 헛소리야! 내가 왜 셋째 형 생각을 안 해? 하지만 그 일이 있은 지 얼마나 됐다고. 셋째 형이 앞으로 혼인하고 첩을 다섯을 두든 일곱을 두든 내 알 바 아니지만 지금은 안 돼. 이 일이 조용히 그냥 지나갈 거 같아?”“어쨌든 이 일은 내가 관여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네가 직접 형이랑 얘기해. 난 물어볼 일 없으니까.”“가운데서 나쁜 짓 꾸미고 있는 거 아니지?” 우문호가 의심가는 표정으로 묻자 안왕이 불쾌한 듯 대답했다. “내가 무는 짓을 꾸미긴 뭘 꾸며! 왜? 내가 주 아가씨를 형 침상에 보낼까 봐? 넌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봐? 넌 태자지만 아직 황제가 아냐. 이렇게 남일에 참견하는 게 좋으면 초왕부나 잘 관리하셔. 다른 사람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말고.”우문호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그 말은 두 사람이 이미 엎어진 물이란 소리야?”안왕이 뒷짐을 지더니 모르는척 했다. “난 몰라,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셋째 형과 주 아가씨 일에 관해 내가 알고 있는 건 주 아가씨가 도망치는 형을 쫓아다니며 형이 아니면 혼인하지 않겠다고 한 것 뿐이야. 아, 주 지부도 나한테 중간에서 중매를 설 생각 없냐고 물어본 적이 있어. 한 번 그래 봤는데 그것 때문에 위왕한테 쫓겨났다고 했지.”“쫓겨났다고? 그럼 셋째 형은 그런 뜻이 아니라는 거네?” 우문호는 그제서야 마음이 좀 놓였다. 하지만 곧 눈살을 찌푸리며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물었다. “근데 본인한테 그럴 마음이 없으면 경성에는 왜 데리고 오는 건데?”“아마 주 아가씨가 쫓아올 거야. 셋째 형은 너도 알다시피 거절을 잘 못하잖아. 고작해야 거들떠보지 않는 정도지. 게다가 상경 길은 아가씨는 아가씨대로 형은 형대로라 쫓아 보내기 쉽지 않았을 거야. 그리고 이 일에 네가 뭘 그렇게 서둘러? 게다가 열까지 받을 필요가 있는 거야?” 안왕이 우문호의 말투가 누그러진 것을 듣고 태도를 약간 바뀌었다. 우문호가 안왕을 흘끔 보았다. “원 선생이
“알았으니까, 중간에서 선동이나 하지 마.” 셋째 형이 주 아가씨에게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안 우문호는 상당히 안심하고 안왕과 더는 말을 섞지 않은 채 일어나 나왔다.그러자 안왕이 입을 삐죽거렸다. 우문호 입에서 뭔가를 좀 캐내려고 할 생각이였는데 이렇게 되버리니 상심이 컸다.안왕은 솔직히 불안했다. 아바마마께서 뒤늦게 잘잘못을 따질 가능성이 그렇게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지난 난국을 거치며 안왕도 나라를 위해 힘을 보탰고 한 쪽 팔도 잃었으니, 아바마마께서도 과거의 일을 다시 들출 일은 없을 것이다.물론 안왕도 다른 상황은 일어나지 않길 바랬다. 빠르든 늦든 언젠가는 일어나긴하겠지만 아직 아바마마는 젊으시니까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이내 역시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장년의 황제가 스스로 퇴위하는 경우가 어딨어? 예전에 태상황 폐하도 병환이 중해서 아바마마께 선위를 하신 거잖아.’마음속이 번잡했다. 역시 경성은 강북부처럼 편하지 않다. 귀영위가 열심히 말을 달려 사정을 알아보고 이틀이 못 돼서 금방 소식을 가지고 왔다.“태자 전하께 아룁니다. 위왕 전하는 혼자 경성으로 돌아오고 계시나 뒤에 멀지 않은 곳에 확실히 여자가 말을 타고 따라오고 있으며 대략 400m정도 거리를 두고 있사옵니다.”“위왕께는 물어봤느냐?” 우문호가 물었다. 귀영위가 대답했다. “여쭤보았습니다. 위왕 전하께서 그 여자의 성은 주 씨라 하고 강북부 지부의 딸로 자신을 따라 경성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사옵니다.”“그런데도 쫓아내지 않았다고?”“쫓아냈었다고는 합니다. 하지만 주 아가씨께서 경성에 친척을 만나러 간다고 해서 어쩔 수 없으셨다고 합니다.” 그러자 우문호가 살짝 눈쌀을 찌푸렸다. ‘셋째 형은 어쩌자고 이렇게나 바람둥이가 된거야? 나도 안 그런데 말이야.’“위왕이 경성에 도착하려면 아직 얼마나 남았지?” 우문호가 물었다.“곧 도착하십니다. 그저 반나절 차이라 밤에는 경성에 도착하실 겁니다.”우문호는 귀영위를 내보내고 소월각으로 가서 원 선생
우문호가 다시 원경릉을 째려보며 물었다. “내가 지금 고민하는 거 안 보여?!”우문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끙끙 앓았다. 매번 원 선생과 큰 일을 앞두고 기대하고 있을있을 때 결국 흐지부지해지게 되어 얼마나 짜증 나는지 모른다. 우문호는 순탄하고 기쁘게 원 선생을 진정한 아내로 맞아들일 수 있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전에도 얘기했잖아? 인생에는 형식이 필요하다고. 우문호는 혼례라는 형식이 중요하다는데 어쩔 거야?’원경릉은 우문호의 걱정을 잘 알고 있었기에 우문호의 손을 꽉 잡고 위로를 건넸다. “쓸데없이 너무 걱정하지 마. 그냥 주 아가씨의 일방적인 사랑이잖아. 우리도 정화 군주의 수용력을 함부로 무시하지 말자. 위왕을 포기하고 아이들을 잘 키우기로 했으니 아마 쉽게 무너지지 않을 거야.”“그런데 당신은 왜 그렇게 화가 났는데?”“당연히 화가 나지! 위왕이 정말 여자를 데리고 경성으로 온다고 생각하니까. 솔직히 위왕이 정말 혼인하겠다면 우리도 관여할 수 없긴 하지만... 그저 경성으로 데려오지 말기를 바랄 뿐이야. 적어도 정화 군주에게 몇 년의 시간은 줘야 하는 거 아냐?”우문호가 동의한다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도 정화 군주가 걱정돼. 하지만 내가 제일 걱정하는 건 역시 우리 혼사에 마가 끼지 말았으면 하는 거야. 천지신명에게 빌고 싶다 진짜.”원경릉이 크게 폭소했다. “그냥 단순하게 생각해. 우리 현대에서도 이미 결혼했잖아.”그러자 우문호의 잘생긴 얼굴에 아주 커다랗게 ‘불만’이라고 쓰여 있었다. “원칙적으로 그건 혼례라고 할 수 없어. 그냥 일가가 같이 밥을 먹은 거지. 당신이 그랬잖아, 당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다 혼례에 참석하기를 바란다고. 그게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야.”그 누구도, 그 어떤 일도 우문호를 말릴 수 없었다.그리고 한 번쯤은 자신을 위해 이기적이게 굴어도 되니깐. 원경릉은 우문호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위왕이 경성에 도착하기 전에 얼른 정화 군주에게 이 사정을 알려 나중에 갑자기 남을 통해 듣
늑대파 사람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질질 끌고 나가는데, 소여쌍은 여전히 미친사람처럼 웃어대기만 했다.이리봉청은 그들이 끌려 나가는 것을 보자, 눈앞에 안지여가 자신을 데리고 소여쌍의 침대 앞으로 가서 소여쌍의 그 악랄한 말을 듣던 순간이 떠올랐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여리여리하고 아름답던 그녀가 이렇게 변해 버린 게 꿈처럼 느껴졌다.풍도성을 접수한 뒤 안풍 친왕은 관리들을 새롭게 임명했고, 더 이상 성주 같은 것을 두지 않고 조정과 이부에 적합한 인사를 선발해 풍도성 지부로 앉힐 것을 요청했다. 풍도성은 더 이상 이전의 독립 자치 지역이 아닌, 다른 주나 현과 마찬가지로 조정에 귀속되어 통일서 있게 다스리게 되었다.더불어 안풍 친왕은 별도로 서신을 써서 황제인 우문호에게 보냈는데, 풍도성을 추천하지만, 이건어디까지나 건의와 추천이니 황제가 생각하는 마땅한 사람이 있으면 안풍 친왕의 추천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동시에 안지여의 잔당들이 계속 나타났다.안풍 친왕이 이번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데려오고, 호랑이와 눈 늑대, 회색 늑대까지 출동시킨 건 바로 모든 세력을 강화하고, 신속하게 진압해 풍도성을 조정에 복귀시키고 보름 만에 비적을 토벌하며 기본적인 숙청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박원은 잔당의 남은 불씨가 다시 타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 안풍 친왕의 영패를 가지고 부근에 5천 명의 군사를 파견시켜 풍도성을 지켰다. 이리 나리는 자금을 지원해 천문 세가의 묘를 이장하였는데, 이전 무덤은 안지여가 고른 곳으로 폐허에 가까워, 그는 천문 세가 사람들이 그런 곳에서 안식을 취하기를 원하지 않았다.풍도성에 온지 거의 한 달가량 될 때쯤, 대군은 경성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돌아가기 전에 미색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보러 갔다가, 돼지우리에서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사는 것을 보고 그제야 비로소 맺혀 있던 한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미색은 이리 나리와 어머님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 두 사람은 이미 안지여가 누군지 잊은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리봉청에게 있어 모든 건 지나가지 않았고, 36년 전 일은 여전히 어제 일 같이 느껴졌다.“어머니, 그를 어떻게 처분하시겠어요?” 이리 나리는 이리봉청의 마음을 넘겨짚을 수 없어 함께 걷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생각은 어떠니?” 이리봉청이 다시 되묻자 이리 나리가 원한에 사무친 눈빛으로 말했다. “제게 처분하라고 하면 전 그를 죽여 버릴 겁니다.”이리봉청은 알았다며 대답만 했다가, 다시 30분쯤 걷다가 정자에 앉아 을 때 말을 덧붙였다. “난 안 죽일 거야.”이리 나리가 약간 놀라서 물었다. “어머니, 또 마음이 약해지신 겁니까?”이리봉청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 반대야. 그 인간을 죽이는 게 마음이 약해진 거지. 사실 며칠 동안 이전의 원한을 내려놓을 수 있을지 생각해 봤는데,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 인간을 백번이라도 죽이겠지만, 난 그럴 수 없더구나. 아들아, 게다가 오늘 천문 세가 대문을 들어서는 그 순간, 더욱 마음을 굳혔단다.”이리봉청이 일어나 집안을 둘러봤다. 이곳은 그녀의 가족들이 살아 원래 온통 사람 소리로 가득한 곳이였다. 그들의 웃던 광경이 눈앞에 비치는가 하더니, 눈 깜박할 사이에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천문 세가는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없는데 멸문지화를 당했고, 가엾게도 그 중엔 아이들이 많아서 제일 어린아이는 이제 태어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었다.이리봉청의 얼굴에 눈물이 타고 흐르며 가슴이 미어졌다. “그자와 소여쌍을 밖에 내버리고 사람을 시켜 지켜보도록 해. 죽게 두지 말고 계속 살려둬. 36년은 더 살면서 이 세상의 고생을 모두 겪어야, 내 마음에 맺힌 한이 풀리고 억울한 망자들도 안식에 들지!”이리 나리는 온몸으로 그 마음이 느껴져, 어머니가 눈물 흘리는 것을 더는 볼 수 없었다. “네, 전부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대로 할게요.”안지여와 소여쌍은 버려졌다. 짧은 며칠 사이에 안지여는 의기양양하던 성주에서 시궁창 쥐로 변해, 사람들이
안지여는 풍도성 지하감옥에 갇혔다. 빛 한 줄기 없는 지하감옥에서 사방에 끝없는 어둠과 절망만이 안지여를 삼키고 있었다.훼천의 형벌은 12 시진 후면 사라져서, 앞으로 안지여는 그저 한 명의 폐인일 뿐이었다.안지여의 결사대가 성으로 공격해 들어오기 전에, 이리봉청은 오 선생을 찾아내 안지여가 저지른 모든 죄를 고백하게 하고 안풍 친왕이 친필로 받아 적었다. 안지여가 당시 천문 세가를 해친 경위를 소상히 써 내려간 뒤, 오 선생과 안풍 친왕의 직인을 찍고 인쇄해서 대중에게 공개했다.안지여의 죄악은 하늘을 찔러 백성들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안지여의 결사대의 옛 부하들이 본래 성을 공격해 들어가 안지여를 구출할 계획을 세워놓았으나, 안지여의 죄상이 공포된 뒤로 많은 사람들이 해산하였다. 유일하게 무대장군만이 수천 명을 데리고 성으로 쳐들어왔지만, 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가 이미 대비해둔 덕분에, 경성에서 굴러온 돌이 무대장군의 박힌 돌을 빼내는 전투를 벌였다.풍도성에 온 지 7일째, 안풍 친왕은 풍도성을 접수하고 성에 살던 사람을 쫓아내며 서민으로 강등시켰다.안지여와 소여쌍에 대한 처분은 이리봉청에게 넘겼다.안지여는 캄캄한 지하감옥에서 6일을 지내는 동안, 처음엔 침착한 척 가장했으나 사흘째가 되자 울부짖으며 악독한 저주의 말을 내뱉더니, 나흘째가 되자 용서해달라고 애원하며 참회했다.손발의 힘줄이 끊어진 안지여는 일어나 걸을 수도 없고 심지어 스스로 몫숨을 끊을 힘도 없었다.그 와중에 매일 누군가가 먹고 마시도록 해주고, 상처도 치료해 주어 살 수 있다는 부질없는 희망을 품게 했다.훼천의 말에 따르면, 진정한 절망은 살아도 죽느니만 못하고,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것으로, 온 마음으로 죽기를 바라지만 살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가, 안간힘을 쓴 뒤 다시 절망에 빠지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으로, 사람을 한없이 죽였다 살렸다 괴롭힌다고 했다.결국 안지여를 죽일지 말지 여부는 이리봉청에게 달렸는데, 그녀는 안지여를 단번에 죽여 천문 세가
안지여의 이마에 파란 힘줄이 불끈불끈했으나 냉정을 가장했다. “내가 두려워할 줄 알았나 보지? 죽음도 두렵지 않은데 뭘 더 두려워하겠어?”“넌 두려울 것이야!” 이리봉청이 고개를 돌려 이리 나리를 보고 살짝 그의 팔을 잡았다. “내가 오는 길에 늑대파 사람이 그러던데, 천하에서 제일 잔혹한 형벌을 아는 사람이 늑대파에 있다고. 그게 사실인 것이냐?”이리 나리가 가볍게 답했다. “물론 사실이죠. 훼천이라고 합니다. 늑대골 출신이에요.”“안지여가 버틸 수 있는지 어디 한 번 보고 싶구나.” 이리봉청이 말했다.이리 나리가 엄숙한 태도로 명을 내렸다. “훼천!”그러자 훼천이 급히 나왔다. “이리 나리, 분부하시지요!”이리 나리는 그가 짐짓 냉정한 척하고 있으나 눈빛이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몸까지 부들부들 떠는 것이 아주 만족스러워 훼천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시작해!”안지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욕했다. “난 네 아버지거늘, 감히 나에게 손을 대다니, 천벌을 받아 마땅한 놈 같으니라고!”이리봉청이 이 말을 듣고 잠시 주저하는 눈빛으로 이리 나리를 바라봤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제 아버지는 오직 저를 키워주신 안풍 친왕뿐이십니다.”이리봉청이 살짝 안도했다. “저 인간이 단지 나만 해쳤으면 네 체면을 봐서 놔줬겠지만 천문 세가의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니 난 용서할 수 없구나.”“이리봉청, 너 언제 이렇게 악랄하게 변했어? 죽이려거든 그냥 죽여. 난 천문 세가 사람을 죽이긴 했어도 그들을 괴롭히진 않았어. 네가 날 죽이려거든 깨끗하게 단번에 죽여!”안지여가 크게 노해 몇 번 몸부림을 치다가 상처가 벌어지는 바람에 배에서 선혈이 흘러나오고, 훼천이 가까이 다가가자, 눈에 두려움이 깊어졌는데, 늑대골 출신 훼천은 온몸에서 피비린내가 뿜어져 나와 안지여를 덜덜 떨게 했다.“이리율!” 안풍 친왕비는 시ㅈ가하기 전에 이리 나리를 불렀다. “내가 여기서 네 엄마와 같이 있을 테니 넌 먼저 나가 있거라!”이리 나리가 안풍 친왕비에게
안지여에게 구원 병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리 나리 일행이 성을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대오가 경성에서 출발하기 전에, 안풍 친왕비가 미리 사람을 풍도성으로 보내 각처, 특히 성 수비군과 군대에 잠입시켜, 음식에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독을 풀어, 오늘 중독 증상이 나타나도록 독의 분량을 조절했다.적어도 내일까지는 안지여를 도우러 올 사람은 없었다. 독성은 적어도 이틀이 지나야 깨끗해지기 때문에 이틀 동안 그들은 설사와 전신 무기력으로 성에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아도 와서 도울 수 없었다.그리고 그들이 기력을 회복할 때쯤이면, 안지여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는 성을 통제하고, 안지여 부부를 제압해 두 사람을 줄로 묶고 지혈시켜 주었다.안지여는 요 몇 년 동안 자신이 상당히 대단하다고 여겼다. 이는 풍도성이 부유하기 때문으로, 돈으로 많은 사람을 살 수 있었으며, 여러 곳에서 추켜세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처절하게 패배한 적이 없었던 이유는 진정한 적이 없기 때문으로, 주변의 떠돌이 비적은 작은 마을 규모로 너무 작아서 소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그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적이 너무 약해서였다.조정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는 제대로 훈련받은 적 없는 비적었기에 일격도 감당할 깜냥이 못됐다.이리 나리는 둘을 중정에 묶어 두었다. 온 바닥에 남은 음식과 깨진 기와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본 안지여는 마음속 깊이 분노가 일었다. 자신의 생일날, 그를 다치게 한 것이 바로 그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욱이 오늘 이렇게 많은 고수가 현장에 있었는데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런 결말을 맞다니 너무 불쾌했다. 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을 부축하고 안지여 부부 앞으로 가서, 그녀가 안지여 부부를 내려다보자, 그들은 낭패에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이리봉청은 분노하는 마음과 함께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그들을 죽이면 커다란 복수는 이뤄 천문 세가 망자의 원혼은 달랠 수 있었다.하지만 저들을 이렇게 쉽게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이리 나리가 검을 휘두르며 안지여를 겨누자, 안지여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후퇴했다.공자들은 돕고 싶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에게 바로 제압당했다. 안지여는 이리율 것으로 그들은 주변 사람을 제압하기만 할 뿐 옆에 서서 전투를 관전하고 있었다.이리율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를 가르친 안풍 친왕 부부를 제외하고, 사실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이리율의 검법은 신속하고 맹렬해서 안지여는 상대하느라 쩔쩔매고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다. 성안의 호위들은 늑대 무리와 늑대파, 홍매문 사람들에게 막히는 바람에 안지여는 홀로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그래도 아직은 버틸 수 있었다.하지만 30분을 못 가서 안지여는 질게 틀림없었다.놀란 나머지 계속 실성해 있던 소여쌍이 갑자기 이리봉청을 향해 바싹 마른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조르며 광적인 집착과 분노에 사로잡혀 성질을 부렸다. “멈춰, 다들 멈추라고. 안 그러면 내가 이년을 죽여버릴 것이니까!”소여쌍은 무공을 할 줄 알았지만 잘하지 못한 것이 어릴 때부터 계속 중병을 앓아 무공 연습에 소홀했고 성주 부인이 된 뒤로는 더욱 병기에 가까이할 일이 없었지만, 공력만큼은 아직 약간 있었다.소여쌍은 증오의 힘으로 이리봉청의 목을 졸랐는데, 소여쌍이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이리봉청의 목을 부러뜨릴 것만 같았다.안풍 친왕이 차가운 눈빛으로 나서려 하자, 안풍 친왕비가 말리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는데, 그럴 필요 없다는 뜻으로 뒤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참으라는 눈짓을 하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모두가 이리봉청이 제압당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손가락으로 뭔가를 쥐고 있어 소여쌍의 어깨 위를 휘감고 팔을 눌러 소여쌍이 머리를 돌리게 했다. 이리봉청 손에 쥔 것은 바늘로, 그대로 소여쌍의 오른쪽 눈을 찌르고 들어갔다.소여쌍이 절규하며 이리봉청을 놔주고 선혈이 흐르는 눈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다 바닥에 쓰러져 데굴데굴 구르며 새된 소리를 지르는데, 원망과 저주의 말을 끊임없이 쏟아
풍도성 중정에는 안지여의 아들들과 사위가 그의 곁에 남았는데,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점점 공포에 질려가고 있었다.‘이 사람들, 아주 대단하구나!’안지여는 이리봉청을 보고 비록 조금 냉정해 보였지만, 여전히 놀라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갑자기 소여쌍이 큰 소리로 웃으며, 몸을 앞뒤로 흔들며 눈물을 찔끔거리더니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이리봉청을 가리키며 원망했다. “뜻밖에 네가 안 죽었단 말이지? 게다가 아들까지 있고. 참으로 황당하구나. 정말 너무 황당해. 원래 죽어야 했을 인간은 죽지 않고, 잘 살아야 할 사람은 36년간 괴로움을 당했어. 이리봉청 네가 날 비참하게 만들었으니 넌 이제 지옥에 떨어져야 해.”이리봉청은 소여쌍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했는데, 그녀 눈에는 지금 안지여만 들어왔다.안지여는 36년을 살아왔지만, 이리봉청에게 있어 36년은 마치 사라진 시간처럼 멸문지화의 원한이 어제 일 같았다.안지여도 이리봉청의 눈에서 분노와 악랄함을 보고, 처음으로 마음속에 두려움을 느꼈다.안지여는 억지로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네 사람을 데리고 가. 지난 일을 묻지 않을 테니. 그렇지 않으면 풍도성에서 곧바로 10만 대군이 올 것으로, 살아서 도망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아.”이리봉청의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 “우리는 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바로 네 성으로 쳐들어갈 수 있어. 넌 이미 졌어.”안지여가 웃었다. “졌다고? 그래?”안지여는 수하의 대장군이 믿음직해서, 그들을 당하게 놔줄 수도 있다고 여겼다. 대장군의 부대는 분명 치밀하게 준비되어 있을 것으로, 아마 지금쯤이면 궁수들이 이미 배치를 마치고 그들을 전부 쏴 죽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어머니, 저자와 말 섞으실 필요 없어요. 앉아서 지켜보시기만 하면 됩니다!”말을 마치고 의자를 올리더니 이리봉청을 부축해서 앉혔다.안지여가 이리 나리를 보는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안지여가 퍼뜩 눈을 돌려 이리 나리를 보았다.‘이리봉청이 저자를 아들이라고 불렀다는 건러니까?이리 나리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찬찬히 훑어보더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안 성주와 좀 오래된 원한을 따져야 하는데, 관련되기 싫으신 분은 자리를 피해 주시지요!”그때 한 사람이 검을 짚고 일어나 호통을 쳤다. “넌 도대체 어떤 놈이냐? 무슨 자격으로 자리를 피해라 마라야? 안 성주를 귀찮게 할 생각이면 일단 나부터 통과해 보시지!”그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장검을 뽑아 파죽지세로 이리 나리를 향해 휘둘렀다.이리 나리는 손을 살짝 움직여 손바닥으로 칼자루를 밀자, 검이 날아가며 그 사람의 귀를 베어 한 줄기 피가 공중에 뿌려지더니, 방금까지 기고만장하던 자가 비명을 지르고 귀는 바닥에 떨어졌다.검이 다시 이리 나리 수중으로 정확히 돌아왔다.이 모든 게 3초 안에 벌어진 일이었다.“회선검?” 검법을 아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외쳤다.현장은, 숨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았다.회선검은 검마의 검법으로, 그렇다는 건 저 사람이 검마의 계승자?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무리에서 검마를 찾았다. 과연 두 손으로 검을 안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도 차가운 안광이 느껴졌다.과연 진짜 검마구나, 사람들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검마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리 나리를 흘끔 보더니 속으로 의아해했다. ‘이 자식, 언제 내 비장의 검법을 배운 거야?’이리 나리의 검 끝에선 아직 선혈이 떨어지는데, 여전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말했다. “이 아수라장에 끼고 싶은 거라면, 제가 무례하다고 원망할 생각 마세요.”“무엄하도다!” 안지여가 몹시 놀랐다가 천천히 정신을 차리고 눈을 치켜뜨며 이리 나리를 노려봤다. “너는 내가 누구인 줄 아느냐? 내가 네 아버지다!”이리 나리가 코웃음을 쳤다!안지여의 몇몇 아들이 달려 나와 소리쳤다. “아버지, 저희가 지켜드리겠습니다.”안풍 친왕이 젓가락을 던지고 일어나 차갑게 명을 내렸다
오늘은 성주의 생일이기에 경사라 섣불리 피를 볼 수는 없으므로 칼은 빼 들었지만 먼저 나서서 늑대를 죽이는 사람은 없었다.안지여는 어두운 눈빛으로 ‘늑대 무리라고? 척후병의 보고로는 안풍 친왕이 늑대 무리를 끌고 온다고 했는데, 저들이 의외로 성으로 직접 쳐들어 왔다 이거지?’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안지여는 잔을 들고 꿈적도 하지 않은 채, 무너지기 직전까지 미동도 없는 태산처럼 냉정하고 침착했다. 늑대 무리는 안으로 들어온 뒤로 두 패로 나뉘어 서서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호시탐탐 엿보며 으르렁거렸다.“성주님, 성주님, 저들이 기어코 쳐들어오겠다고….” 문지기가 외치는 소리는 들렸으나 사람은 보이지 않더니, 그보다 조정에서 보낸 사람들이 먼저 들이닥쳤다.앞에 걸어들어오는 두 사람을 안지여는 본 적이 있었는데, 바로 안풍 친왕 부부로 예전에 그들이 천문 세가 사람들을 조사하러 왔을 때 그에게 속은 적이 있었다. 비록 당시 일면식 뿐이었으나 천문 세가 일을 캐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탓에 그들의 얼굴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어째서 별로 변한 게 없는 거지?’안풍 친왕 부부 뒤에 따라오는 10여 명의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은 그들의 호위 무사일 것으로, 주인인 안풍 친왕 부부는 별 표정이 없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들어와 고개를 들자 괴팍하고 악랄한 얼굴이 안지여 마음에 들지 않았다.안지여는 여전히 일어나지 않았고, 미소는 띠고 있었지만 매서운 눈빛으로 저들이 돌계단을 오르면 그때 일어나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게 그의 태도였다.하지만 안풍 친왕 부부는 돌계단을 오르지 않았고, 손님 중 건배를 권하느라 자리를 비운 사람들 의자에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차지하고 앉아, 그들을 대놓고 밀치더니 품에서 자기 젓가락을 꺼내 옆 사람 상관하지 않고 먹기 시작해 사람들이 다 경악했다.그들이 자리를 잡고 앉자 뒤따라 들어오는 사람들이 보였다.두 사람이 사람들에 둘러싸여 천천히 걸어들어오고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