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경릉이 미색에게 정화 군주를 불러오라고 했다. “이런 경사에는 다 같이 있어야지.”“그래요, 제가 직접 다녀오죠. 안 온다고 하면 꽁꽁 묶어서라도 데려올게요!”항상 못 하는 일이 없는 미색이 말을 타고 금방 정화 군주를 데리고 돌아왔다.미색이 캄캄한 집에 정화 군주의 손목을 잡고 들어서자, 모두가 문 앞에서 서서 기쁜 표정으로 정화 군주를 맞이했다. 그러자 정화 공주는 마음이 따듯해지며 얼굴에 드리웠던 그림자가 사라지고 기쁜 웃음으로 미색과 들어갔다.두 군주도 마침 화장을 마친 참이라 때가 되면 같이 나갈 생각이였다.군주들은 지금 응어리 하나 없이 심지어 아주 기쁜 표정인 것이 훼천을 정말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훼천은 두 군주의 신임과 존경을 얻어낸 것과 다름 없었다.다음날 영친례가 시작되고 훼천이 있는 늑대파 형제들이 호탕한 걸음으로 풍악을 울리며 오는데 영친 대열이 어림잡아 못 되도 백 명은 넘는 것이 진용이 정말 대단했다.동서들은 손을 잡고 복도에 서 있었고, 요 부인은 수모의 부축을 받고 천천히 걸어 나갔다.햇살 좋은 날, 훼천은 신랑 예복을 입고 준마 위에 앉았다. 기쁨과 감격에 찬 훼천이 마침내 학수고대하던 오늘을 맞은 것이다. 사혼 성지가 내린 그날부터 모두 오직 이날만을 기다려 왔다.훼천은 가장 사랑하는 여인을 아내로 맞아 평생 기쁨과 슬픔도 함께 하며 생사를 같이 하겠다며맹세했다.요 부인은 붉은 면사포로 얼굴을 가려 붉은 비단신만 보였으나, 훼천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이글이글한 시선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가마에 오르려는 찰나, 갑자기 훼천의 발소리가 들렸고, 눈앞에 강력한 존재감이 느껴지며 훼천의 손이 요 부인의 손목을 딱 잡았다. “내가 아내를 가마에 태워 주겠소!”그러자 요 부인은 콧날이 시큰했다. 결국 가마를 타는 순간 눈물이 면사포 아래로 떨어지며 훼천의 손등을 타고 흘러 내렸다.훼천이 요 부인의 손을 잡고 담담한 목소리로 다짐했다. “앞으로 다시는 눈물 흘릴 일 없을 거야.”이 한마디 말이
원경릉이 우문호를 부축하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신랑은 술을 주고 당신은 아주 목숨을 준 것같네, 하여간 말려도 듣지를 않아.”“하하하. 좋아서 그래, 내가 너무 좋아서!” 우문호의 팔이 원경릉의 어깨에 걸쳐 있었는데 마차가 흔들리니 속이 울렁거려 또 토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몽롱한 눈으로 원경릉을 보며 아양을 떨었다. “원 선생, 나 지금 당신 입덧 때 느낀 고통을 느끼느 있는 것 같애.”원경릉은 약상자에서 약을 한 알 꺼내 우문호 입에 넣어주며, “꿀떡 삼켜!”우문호가 목을 길게 늘이고 약을 삼키더니 하하 웃으며 말했다. “천재 의원 아내를 두니까 진짜 좋네. 어떤 병에 걸려도 걱정할 필요가 없어!”원경릉이 우문호를 일으켜 앉히며 말했다. “훼천이 혼인한 게 그렇게 좋아?”원경릉은 우문호와 훼천이 이렇게 관계가 좋은 줄은 몰랐다.우문호가 이마를 받치고 말했다. “요 부인 혼례라 그래. 훼천 때문에 행복해서가 아니라. 요 부인 때문에 기분이 좋은 거라고. 자칫하면 평생을 우문군 때문에 망가질 뻔했잖아. 이제 행복해졌으니 안심이야.”원경릉은 다소 의외였다. 매사에 대충대충인 우문호가 갑자기 이렇게 섬세해지다니 말이다.“그래, 나도 안심이네.” 원경릉이 속삭였다.우문호가 일어나 원경릉을 덜썩 끌어안았다. “원 선생, 우리도 고진감래인 셈이야.”원경릉이 고개를 끄덕이려는 찰나 우문호가 크게 웃기 시작했다. “훼천 이 바보, 어쩌면 첫날밤까지 동정일지도 몰라. 이리 나리에게 들었는데 훼천은 전에 여인을 가까이 한 적이 없데.”원경릉도 따라 웃었다. “별걱정을 다 하네.”‘그 일을 할 줄 알고 모르고가 어딨어? 배우지 않아도 다 알아서 할 수 있는 거 아닌가?’한편 신방은 갓난아기 팔뚝만한 용봉화촉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훼천은 요 부인의 면사포를 걷어내더니 한없이 바라만 보고 있었다.반쯤 취한 훼천의 가슴은 기쁨으로 출렁였고 촛불은 바람에 일렁였다. 불빛이 막 타오르는 가운데 요 부인이 화난 얼굴이 슬그머니 보였다. “뭘 봐요?!”훼천
원경릉은 안 왕비 안색이 좋은 것을 보고 강북부 생활이 꽤 괜찮았구나 싶어 마음이 상당히 가벼워져 안왕의 근황은 어떤지부터 물었다.그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안왕에 대해 불신이 가득했기 때문에 안왕에게 대체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알고 싶었다.안 왕비가 말했다. “강북부의 나날은 정말 한가했어요. 남편도 할 일이 없었는데 어쩌다가 셋째 아주버님과 만나 황무지 일대를 개간해서 작물 재배에 관해 상의나 했어요.”“그거 좋네요!” 원경릉이 말했다.“확실히 그렇긴 하죠. 하루종일 무료하긴 했지만 안왕 전하가 이전보다 집에 있는 걸 더 좋아했던 건 어쩌면 안지의 공로일지도 모르겠네요.” 안 왕비가 부드럽게 안지를 바라봤다.안지는 귀엽고 예쁘게 자랐다. 우문씨 집안 특유의 긴 속눈썹으로 눈을 감고 잘 때 특히나 평안하고 고요해 보였다.안지는 정말 정말 침착하고 조용했으며 계란이와는 달랐다. 계란이는 겉으로는 차분하고 부드럽게 보이지만 눈을 뜨는 순간 고요한 작은 얼굴에 뜨거운 불길과 교활함을 숨기고 있는 것 같다는 착각마저 들게 했다.그래서 고요한 모습은 약간 위장이란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건 원경릉 생각일 뿐이고 우문호는 원경릉의 이런 생각에 완전 반대했다. 우문호에게 자신의 딸은 천하에서 제일 착한 아이로 울지도 않고 떼도 안 쓰고 심지어 쌍둥이보다 더 차분했기 때문이었다.‘맞아.” 안 왕비가 순간 뭐가 떠올랐는지 급히 말했다. “셋째 아주버님이 어쩌면 거기서 가정을 꾸릴지도 모르겠네요.”“뭐라고요?!” 원경릉이 놀라서 안 왕비를 노려 보았다. “혼인할 거란 말인가요?”안 왕비가 안지를 안고 살살 흔들어 주며 말했다. “왕야가 하시는 말을 들은 건데 강북부의 주 지부 딸이 셋째 아주버님한테 반해서 종일 쫓아다녔고 둘이 산에서 함께 이틀이나 보낸 적도 있어요. 젊은 남녀다 보니 주 지부는 이미 셋째 아주버님을 사위로 대하고 있고, 셋째 아주버님의 태도가 어떤지는 저도 잘 몰라요. 셋째 아주버님도 경성으로 돌아오시는 중인데 일이 있어 좀 지체된다고
안 왕비가 답했다. “확실한 건 아니고 집안의 가신이 하는 얘기를 들은 거예요. 셋째 아주버님께서 주 아가씨를 데리고 경성으로 오시면 정화 군주가 자신의 진짜 속마음은 사실 함께하고 싶다고 알아채실지도….”원경릉이 놀라 안 왕비 말을 끊었다. “셋째 아주버님이 만약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신다면 머리가 어떻게 된 게 분명해요!”안 왕비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럼, 아주버님이 정말 아가씨를 데리고 왔다면 태자비는 어떻게 할 거예요? 그 아가씨가 죽자 살자 매달리면 사람을 시켜 주 아가씨를 돌려보내야 하는 거 아닌가요?”“아주버님께서 상대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이상 상대도 쉽게 매달릴 수 없어요. 주 아가씨와 상관없으면 자기가 알아서 의심받을 일을 피하기 마련….” 원경릉이 말을 그만두고 잠시 생각해 보더니 안 왕비 말이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일은 그들이 간여할 수 있는 게 아니며 그저 감정적으로 정화 군주가 안타까울 뿐이었다. 사실 위왕이 재혼을 하려고 한다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었다.동서 둘은 마주 보고 하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저녁에 우문호가 돌아오자마자 원경릉이 이 얘기를 했고 우문호가 듣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셋째 형 머리가 진짜 어떻게 된 것인가? 여자를 데리고 와서 뭘 어쩌자는 거지? 안돼 절대, 안 된다!”우문호는 바로 문을 열고 서일을 찾아 사람을 보내 위왕이 주 아가씨를 데리고 경성으로 오고 있는지 물어보게 했고, 서일은 곧바로 귀영위를 보냈다.서일처럼 건성건성 사는 사람도 위왕이 여자를 데리고 오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원경릉이 우문호에게 제안했다. “이 일은 안 왕비도 확실한 게 아니라고 했으니 안왕에게 물어보는 게 어때? 안왕은 위왕이랑 있었던 시간이 많았으니까, 형제지간에 비밀을 숨기거나 하지 않았을 거야. 위왕이 정말 주 아가씨한테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좀 물어봐 줄래? 마음이 있는 거면 강북부에서 우리 모르게 혼인하면 되니까 정화 군주에게도 얘기하지 말라고 해.”“위왕이 다른 여자를 아
우문호가 열 받아서 소리쳤다. “그게 무슨 헛소리야! 내가 왜 셋째 형 생각을 안 해? 하지만 그 일이 있은 지 얼마나 됐다고. 셋째 형이 앞으로 혼인하고 첩을 다섯을 두든 일곱을 두든 내 알 바 아니지만 지금은 안 돼. 이 일이 조용히 그냥 지나갈 거 같아?”“어쨌든 이 일은 내가 관여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네가 직접 형이랑 얘기해. 난 물어볼 일 없으니까.”“가운데서 나쁜 짓 꾸미고 있는 거 아니지?” 우문호가 의심가는 표정으로 묻자 안왕이 불쾌한 듯 대답했다. “내가 무는 짓을 꾸미긴 뭘 꾸며! 왜? 내가 주 아가씨를 형 침상에 보낼까 봐? 넌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봐? 넌 태자지만 아직 황제가 아냐. 이렇게 남일에 참견하는 게 좋으면 초왕부나 잘 관리하셔. 다른 사람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말고.”우문호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그 말은 두 사람이 이미 엎어진 물이란 소리야?”안왕이 뒷짐을 지더니 모르는척 했다. “난 몰라,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셋째 형과 주 아가씨 일에 관해 내가 알고 있는 건 주 아가씨가 도망치는 형을 쫓아다니며 형이 아니면 혼인하지 않겠다고 한 것 뿐이야. 아, 주 지부도 나한테 중간에서 중매를 설 생각 없냐고 물어본 적이 있어. 한 번 그래 봤는데 그것 때문에 위왕한테 쫓겨났다고 했지.”“쫓겨났다고? 그럼 셋째 형은 그런 뜻이 아니라는 거네?” 우문호는 그제서야 마음이 좀 놓였다. 하지만 곧 눈살을 찌푸리며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물었다. “근데 본인한테 그럴 마음이 없으면 경성에는 왜 데리고 오는 건데?”“아마 주 아가씨가 쫓아올 거야. 셋째 형은 너도 알다시피 거절을 잘 못하잖아. 고작해야 거들떠보지 않는 정도지. 게다가 상경 길은 아가씨는 아가씨대로 형은 형대로라 쫓아 보내기 쉽지 않았을 거야. 그리고 이 일에 네가 뭘 그렇게 서둘러? 게다가 열까지 받을 필요가 있는 거야?” 안왕이 우문호의 말투가 누그러진 것을 듣고 태도를 약간 바뀌었다. 우문호가 안왕을 흘끔 보았다. “원 선생이
“알았으니까, 중간에서 선동이나 하지 마.” 셋째 형이 주 아가씨에게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안 우문호는 상당히 안심하고 안왕과 더는 말을 섞지 않은 채 일어나 나왔다.그러자 안왕이 입을 삐죽거렸다. 우문호 입에서 뭔가를 좀 캐내려고 할 생각이였는데 이렇게 되버리니 상심이 컸다.안왕은 솔직히 불안했다. 아바마마께서 뒤늦게 잘잘못을 따질 가능성이 그렇게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지난 난국을 거치며 안왕도 나라를 위해 힘을 보탰고 한 쪽 팔도 잃었으니, 아바마마께서도 과거의 일을 다시 들출 일은 없을 것이다.물론 안왕도 다른 상황은 일어나지 않길 바랬다. 빠르든 늦든 언젠가는 일어나긴하겠지만 아직 아바마마는 젊으시니까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이내 역시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장년의 황제가 스스로 퇴위하는 경우가 어딨어? 예전에 태상황 폐하도 병환이 중해서 아바마마께 선위를 하신 거잖아.’마음속이 번잡했다. 역시 경성은 강북부처럼 편하지 않다. 귀영위가 열심히 말을 달려 사정을 알아보고 이틀이 못 돼서 금방 소식을 가지고 왔다.“태자 전하께 아룁니다. 위왕 전하는 혼자 경성으로 돌아오고 계시나 뒤에 멀지 않은 곳에 확실히 여자가 말을 타고 따라오고 있으며 대략 400m정도 거리를 두고 있사옵니다.”“위왕께는 물어봤느냐?” 우문호가 물었다. 귀영위가 대답했다. “여쭤보았습니다. 위왕 전하께서 그 여자의 성은 주 씨라 하고 강북부 지부의 딸로 자신을 따라 경성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사옵니다.”“그런데도 쫓아내지 않았다고?”“쫓아냈었다고는 합니다. 하지만 주 아가씨께서 경성에 친척을 만나러 간다고 해서 어쩔 수 없으셨다고 합니다.” 그러자 우문호가 살짝 눈쌀을 찌푸렸다. ‘셋째 형은 어쩌자고 이렇게나 바람둥이가 된거야? 나도 안 그런데 말이야.’“위왕이 경성에 도착하려면 아직 얼마나 남았지?” 우문호가 물었다.“곧 도착하십니다. 그저 반나절 차이라 밤에는 경성에 도착하실 겁니다.”우문호는 귀영위를 내보내고 소월각으로 가서 원 선생
우문호가 다시 원경릉을 째려보며 물었다. “내가 지금 고민하는 거 안 보여?!”우문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끙끙 앓았다. 매번 원 선생과 큰 일을 앞두고 기대하고 있을있을 때 결국 흐지부지해지게 되어 얼마나 짜증 나는지 모른다. 우문호는 순탄하고 기쁘게 원 선생을 진정한 아내로 맞아들일 수 있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전에도 얘기했잖아? 인생에는 형식이 필요하다고. 우문호는 혼례라는 형식이 중요하다는데 어쩔 거야?’원경릉은 우문호의 걱정을 잘 알고 있었기에 우문호의 손을 꽉 잡고 위로를 건넸다. “쓸데없이 너무 걱정하지 마. 그냥 주 아가씨의 일방적인 사랑이잖아. 우리도 정화 군주의 수용력을 함부로 무시하지 말자. 위왕을 포기하고 아이들을 잘 키우기로 했으니 아마 쉽게 무너지지 않을 거야.”“그런데 당신은 왜 그렇게 화가 났는데?”“당연히 화가 나지! 위왕이 정말 여자를 데리고 경성으로 온다고 생각하니까. 솔직히 위왕이 정말 혼인하겠다면 우리도 관여할 수 없긴 하지만... 그저 경성으로 데려오지 말기를 바랄 뿐이야. 적어도 정화 군주에게 몇 년의 시간은 줘야 하는 거 아냐?”우문호가 동의한다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도 정화 군주가 걱정돼. 하지만 내가 제일 걱정하는 건 역시 우리 혼사에 마가 끼지 말았으면 하는 거야. 천지신명에게 빌고 싶다 진짜.”원경릉이 크게 폭소했다. “그냥 단순하게 생각해. 우리 현대에서도 이미 결혼했잖아.”그러자 우문호의 잘생긴 얼굴에 아주 커다랗게 ‘불만’이라고 쓰여 있었다. “원칙적으로 그건 혼례라고 할 수 없어. 그냥 일가가 같이 밥을 먹은 거지. 당신이 그랬잖아, 당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다 혼례에 참석하기를 바란다고. 그게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야.”그 누구도, 그 어떤 일도 우문호를 말릴 수 없었다.그리고 한 번쯤은 자신을 위해 이기적이게 굴어도 되니깐. 원경릉은 우문호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위왕이 경성에 도착하기 전에 얼른 정화 군주에게 이 사정을 알려 나중에 갑자기 남을 통해 듣
원경릉은 정화 군주가 애처롭게 느껴졌지만 이렇게 얘기하는 걸 듣자 은근 위로가 되었다. “네, 그럼 제가 온 게 허탕은 아니었네요.”정화 군주가 미소를 지었다. “이 일로 다들 놀라셨죠? 지금 제 마음이 온통 아이들에게 가 있어요. 둘째 형수가 와서 우리 둘이 안타깝다고 얘기한 적이 있어요…. 지난 일은 되돌릴 수 없고 돌아갈 수 없다고요...”원경릉이 마음이 울컥해졌다. 평생이라고 생각하니 순간 침울한 기분이 들었다. “흠, 그래요. 혹시, 아직 과거로 돌아갈 수 있나요?”“그건 이제 불가능해요.” 정화 군주가 말했다.원경릉은 정화 군주의 담담한 얼굴을 보며 물었다. “제일 원망스러운 건 고지가 당신의 아이를 해치려는 걸 알면서도 위왕이 저지하지 않은 것 때문이에요. 그쵸?”“맞아요.” 정화 군주의 눈가가 붉어져 급히 고개를 돌렸다. “됐어요, 그 얘기는 그만해요. 사람을 시켜서 차 싸놓으라고 할 게요!”“네!” 원경릉이 밤도 깊어져서 더 머물지 않고 싸준 찻잎으로 들고나왔다.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불편했다.초왕부로 돌아오자 우문호가 물었다. “어떻게 됐어? 정화 군주 반응은 어때?”“나쁘지 않아, 받아들일 수 있대. 어쨌든 위왕이 정말 그 주 아가씨랑 잘 지내는 것도 아니니깐.” 원경릉이 억지로 웃으며 말하자 우문화가 걱정되어 물었다 “그럼 잘 된 거 아냐? 당신 영 마음이 무거운 얼굴인데?”원경릉이 우문호에게 기대 고개를 흔들었다. “그냥…. 위왕이 그때 왜 그랬을까 싶어서.. 길이 다 막혀서 조금의 여지도 남아있지 않았잖아.”우문호도 우울한 낯빛이였다. “어쩌면 두 사람은 반드시 만나지만 결코 함께 할 수 없는 운명인 거 아닐까? 그때 억지로 정화 군주를 데려온 걸 이제 와서 안타까워해 봤자 무슨 소용이야? 생각을 말아야지. 자자.”원경릉은 일단 알았다고는 했지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애써 억지로 눌러도 자꾸만 다시 떠올랐다.‘안 된다니까!’과거로 돌아가 사건을 바꾸는 건 나비효과를 일으켜 지금 많은 일이 달
손님들이 하나둘씩 떠나자, 경천 황제는 서둘러 궁으로 돌아가 푸른 비단옷으로 갈아입었다.옅은 청색 옷자락에, 소매 끝에는 난초꽃이 수놓아져 있었고, 나머지 부분은 어두운 구름 문양으로 수놓아져 있었다. 이 옷감은 북당에서 온 것이었다."폐하, 꼬마 은인께서 궁문에 도착하셨다고 합니다."삼 태감이 와서 보고했다."좋소."그는 거울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깊은숨을 내쉬었다."택수운천으로 가겠네."택수운천은 그가 즉위한 후, 궁궐 안에 지은 새 궁전으로, 세 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궁전 옆에는 거월통천각이 있었는데, 이는 량주성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거월통천각 안에 있으면 마치 손바닥에 달을 담을 수 있을정도로 웅장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거월통천각에서 멀게는 약도성과 량주가 인접한 산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녀가 생각날 때면, 늘 거월통천각의 가장 높은 층으로 올라가 풍경을 멀리 바라보곤 했다."진이야, 너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해 본 적이 있느냐?"그가 준수한 옷차림으로 난간에 기대어 먼 곳을 바라보며 물었다. 바람이 서서히 불며 청색 옷자락이 휘날리자, 옷자락의 네 끝에 박힌 고급스러운 야명주가 그의 선명하고 잘생긴 얼굴을 비추었다.그때, 저 멀리서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궁 시위를 따라, 아치과 복도를 지나 거월통천각으로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그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젊은 금군 통령 진이가 그의 모습을 보고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런 적 없습니다.""사모의 마음을 품어보거라. 떨리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느낌만큼 좋은 것이 없다."그는 그녀를 멍하니 보며 말했다. 천천히 다가오는 탓에 그녀의 얼굴이 자세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13세 전까지의 그의 인생에는 나라와 백성들 뿐이었지만, 13세 이후 그의 인새은 온통 그녀뿐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지금 그녀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진이는 황제의 시선을 따라, 천천히 다가오는 세 명을 보며
안왕은 보책을 받아 든 순간, 갑자기 무엇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정확히 어떤 점이 이상한지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일이 다 이상하게 느껴졌다.보책을 펼쳐 안에 적힌 이름을 본 순간 그는 드디어 이상한 점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게 되었다.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굳어진 표정으로 경천 황제를 바라보았다.경천 황제는 얼굴에 미소를 띠며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조사를 통해 드디어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되었소. 그녀의 이름은 우문택란이오. 금나라 황후의 이름은 우문택란이네. 난 반드시 그녀를 찾아낼 것이오. 만약 그녀가 황후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황후의 자리는 그녀를 위해 계속 비워둘 것이네.”위왕은 온몸에 식은땀을 흐르는 탓에 두 손을 급히 움켜잡았다. 방금 황제가 보책을 그의 손에 올리지 않아, 그가 받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정말 다섯째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다!안왕은 어두워진 안색으로 자리에서 물러나 이를 악물고 낮은 소리로 위왕에게 말했다.“방금까지도 어린 황제에게 어리석다고 했건만. 이렇게 계책에 능하고 이따위 교묘한 계책으로 우리 형제를 그와 같은 편에 서게 만들다니...!”위왕은 또 한 걸음 물러서며 아무런 표정 없이 말했다.“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방금 술을 두 잔 마셔 조금 취한 터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구나. 아니, 지금 들고 있는 그건 무엇이냐?”안왕은 단단한 그의 팔을 비틀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분노했다.하지만 이 상황 속에서 연회는 계속되었고, 사람들의 감정은 점점 고조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북당 황제의 작은 공주도 우문택란이라는 말을 꺼냈다.그 말에 다들 그 당시 금나라 황제를 구한 사람이 북당의 작은 공주가 맞는지 추측하기 시작했다.정말 북당 공주가 맞는다면, 금나라 황제도 참 배짱이 큰 것이다. 사실상 북당 황실이 금나라 황제를 구했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만약
경천은 위왕의 말을 듣자, 마치 마음속 큰 돌덩이가 내려간 듯 후련해 보였다. 그는 그러고는 궁인에게 술을 올리게 해 술잔을 여러 차례 돌린 후, 아래를 둘러보며 말했다.“오늘 여러분께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겠소. 이 이야기를 듣고 나면 오늘 정혼연이 어찌 열리게 되었는지 알게 될 것이오.”그러자 모두가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말에 당황을 금치 못하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정혼연이든 혼례든, 이런 자리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이때, 위왕이 안왕의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다섯째에게 서신을 보내야겠다. 금나라에서 실권을 쥐고 있는 자가 황제가 아닐 수도 있다. 진국왕이 아직 살아 있고, 이 황제가 꼭두각시일지도 모른다.”“맞소. 확실히 조금 병신같아 보이네.”안왕도 동의했다.참고로 ‘병신같다’는 표현은 안왕이 조카에게서 배운 단어였다.“이 이야기는 3년 전쯤에 있었던 일이오.”이내 경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의 목소리에는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 담겨져 있었다.“당시 금나라는 진국왕이 집권하고 있었는데, 그는 나를 대신해 금나라의 군주가 되려 했소. 이 사실은 여러분도 알고 있을 것이오. 그때 난 진국왕과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소. 진국왕이 왕위를 빼앗으려 나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민다고 하기에, 나도 어쩔 수 없이 반격에 나섰는데, 그 과정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소. 그때 나를 구해준 이가 바로 란이라는 소녀이오. 만약 그녀가 없었다면 난 이미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오. 그 당시 나는 란이의 정체도 몰랐고, 그저 약도성 사람이라는 것만 알았을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소. 상처를 치료하며 그녀와 며칠을 함께 보냈고, 황권을 되찾으면 그녀를 부인으로 맞이하겠다고 약속했네. 하지만 그녀가 나를 구했다는 사실이 진국왕에게 알려졌고, 진국왕이 사람을 보내 그녀의 집에 불을 질렀소. 그리고 그곳에서 시신이 발견되었소.”모두가 진국왕이 불을 질렀다는 말에 멈칫했다.금나라 황제가 이렇게 비극적인 황권
한편, 안왕과 위왕은 이미 명월전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부하들과 함께 말을 타고 달려왔기에 피곤하지는 않았지만, 몸 전체가 먼지투성이였다.하지만 오자마자, 쉬지도 못하고 바로 궁에 들어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정혼 연회가 예정보다 앞당겨 열리게 되었다고 했다.그들은 의아해하며 금나라가 막무가내라고 투덜거렸다. 처음에는 혼례라더니, 이제는 정혼식이라 하고, 심지어 약속했던 날도 지키지 않고 앞당겼으니 말이다.혼사라는 중대사가 이렇게 어린아이 장난처럼 진행될 수 있단 말인가?하지만 신부가 북당 사람이니, 그들은 신부의 친정과도 마찬가지였기에 금나라의 일정을 따르며, 금나라의 계획을 지지하는 것이 맞았다. 다른 나라 사절들이 함께 있었기에, 그들은 무관의 신분으로도 가능한 한 많은 사람과 친구를 사귀고 주변 무역 문제를 논의했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오래전에 다섯째가 특별히 당부한 적이 있었다. 그는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다른 나라의 사신을 만나면 국사를 논하지 않더라도, 상업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라고 말했었다. 장사는 대화로 시작되는 일이니, 이야기를 많이 나누다 보면 결국 성사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들은 비록 처음에 다섯째의 이런 태도가 약간 뻔뻔하다고 느꼈었지만, 지난 10여년간 나라 경제가 눈에 띄게 번영했다는 사실을 차마 부인할 수는 없었다.다섯째의 말처럼 경제를 앞서게 만들어 백성들의 생활 수준을 향상한 덕분에, 돈이 끊임없이 북당으로 흘러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렇게 그들이 다른 나라 신하와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황제가 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안왕과 위왕은 금나라의 황제에 대해 호기심이 가득했다. 이 젊은 황제는 올해 열여덟도 되지 않는 어린 나이라 들었다. 어린 나이에 유명한 진국왕을 몰락시켰으니, 얼마나 대단한 결단력과 꾀를 가졌을까?내시의 우렁찬 소리와 함께, 밝은 황금빛 용포를 입은 젊은 황제가 시위에게 둘러싸여 등장했다.혼례복이 아닌 용포를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역시나 혼례를 올리는 것은 아닌 듯했다
세 사람은 화려하게 차려입었다. 그 중, 택란은 베일을 쓴 채 궁에서 준비한 마차에 올랐다.때마침 불이 하나둘씩 밝혀질 시간이라, 거리는 무척 떠들썩했다. 금나라 수도의 번화함은 약도성이 비교할 수 없는 정도였다.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통행금지가 없어, 백성들이 밤늦게까지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택란은 마차의 가림막을 살짝 들어 올려 거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거리에는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장사에 열중하는 상인들, 주루나 주막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상인들로 북적이고 있었다.이런 활기 넘치는 모습은 그녀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그러고는 순간 어린 황제를 본 지 오래되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3년이나 지났으니, 지금은 얼마나 어떻게 달라졌을지 궁금해졌다. 그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3년 사이에 자신도 많은 변화를 겪었으니 말이다. 키도 훤칠해졌고 이제 얼굴도 아이 같은 모습이 아닌 한층 성숙하고 침착해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약도성이 지난 몇 년간 겪어온 일들이 많았기에 당연히 성숙해질 수밖에 없었다.한편, 금나라 황궁에서는 이미 정혼 연회의 준비를 마쳤으나, 중요한 두 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두 사람은 바로 안왕과 위왕이었다.북당의 두 친왕이 도착해야만 연회를 시작할 수 있었다.한편, 경천 황제는 내내 택란을 만나고 싶어 했다.지난 3년 동안, 그는 그녀와 재회할 순간만을 간절히 기다렸다.3년간 간절히 바랐던 그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에 그는 들떴지만, 첫 만남은 너무도 중요했다.그는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준비된 상태에서 그녀를 만나고 싶었다.그리고 지금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조차 모르는 상태였다. 그것이 사랑인지 아닌지도 정의할 수 없었다. 그저 그녀가 자신의 눈앞에 생생히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이었다.그는 사실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조정을 되찾아 그녀와 혼사를 올리겠다고 다짐했던 적이 있었다.물론 지금 그녀는 아직 어리기에, 혼담을 논하기엔 이르지만
어머니는 아버지처럼 아쉬워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생각이 훨씬 개방적이었고, 두 사람이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장 큰 행복이라 여겼기에 의식 자체를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그래도 아버지의 아쉬움을 덜어주기 위해 현대에서 한 번, 즉위 후에 또 한 번 의식을 치렀다.주 아가씨는 객사로 돌아오자마자, 객사 일꾼에게 소식을 물었다.그러자 일꾼은 황제가 곧 혼례를 올린다는 말을 듣고는 잠시 멈칫했다.“혼례요? 정혼 아니었습니까?”“정혼? 정혼이라니? 그럼 이미 혼사를 올릴 나이가 되었는데, 어찌 바로 혼례를 하지 않다는 것이냐?”“그건 모르겠습니다. 저희는 정혼한다는 소문만 들었습니다.”“미래의 황후가 북당 사람이 맞느냐?”일꾼이 말했다.“예. 북당 출신의 아가씨라고 합니다. 게다가 황제의 생명의 은인이라고 들었습니다.“택란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저으며 경천이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그가 정말 은인의 언니라는 말을 믿다니 말이다.설사 그렇다고 해도 굳이 그녀와 혼례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혼사를 어찌 장난처럼 다룰 수 있단 말인가?택란은 경천 황제에게 크게 실망했다. 그저 정치적인 판단에서만큼은 어리석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택란은 원래 이틀 정도만 량주를 둘러본 뒤 바로 궁으로 들어가 알현할 생각이었지만, 아직 혼례 날짜가 다가오지 않았으니 며칠 더 머물며 시간을 보냈다. 궁으로 들어가 정체를 드러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그리고 그녀가 생명의 은인인 것을 알아차리면, 정혼식을 진행할지 말지 애매해질 것이기에, 택란은 며칠 동안 객사에 머물며 량주의 풍습과 문화를 살펴보는 한편, 참고할 만한 것이 있는지 살펴보기로 했다.그렇게 살펴보던 중, 주 아가씨가 정보를 알아보러 나갔다가 안왕과 위왕이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며칠 동안 다른 나라 사절들은 계속 장관에 묵고 있었는데, 택란은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는 삼촌들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저녁 무렵 장관으로 갔다.그런데 도착하고 나서야 그들이 이미 황
량주는 금나라의 수도가 된 이후 지난 2년간 크게 발전했다. 또한,금나라와 북당이 우호적인 교류를 시작하면서, 북당 변방 도성의 백성들도 장사를 위해 많이 찾아왔다.이전에 택란도 자신의 목숨을 바치기 위해 금나라에 왔었다. 하지만 그때의 량주는 지금처럼 북당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 그래서 택란은 객사에 머문 뒤 주 아가씨와 냉명여를 데리고 거리로 나가 량주의 풍습과 문화를 살폈다.여기도 어쨌든 금나라의 수도 아닌가!진국왕은 물러나기 전까지 나라를 잘 다스렸고, 특히 발전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하지만 야망이 지나친 탓에 늘 약도성을 되찾겠다고 욕심을 부렸다.그리고 동시에 북막을 두려워하기도 했다.경천이 즉위한 후, 광산 자원 개발 외에도, 그는 농경지와 산지를 개간하려고 노력했다. 금나라의 서북부에는 농사에 적합한 땅이 있었지만, 사람이 드물었다. 그래서 그는 북당의 다른 도성을 본받아 사람들을 개간지로 보내고 그들에게 이익을 나누어주었다.나라가 상승세일 때, 그 분위기는 눈에 띄기 마련이다. 백성의 긍정적인 에너지는 숨길 수 없는 법이었다.택란은 경천이 황제로서 매우 적합하다고 느꼈기에, 그가 이끄는 금나라는 분명 빠르게 발전할 것이라 생각했다. 발전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기에,그가 광산을 함께 개발하자는 제안에 동의할 가능성이 높았다.택란은 이내 자신감을 얻었다. 궁에 들어가 알현하는 것을 서두르지 않고, 량주 백성들이 북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로 했다. 과거, 약도성과 량주의 관계는 다소 안 좋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금나라가 약도성에 사람을 침투시켜 많은 폭동을 일으켰기에, 약도성 백성들도 그들을 매우 싫어했다.그렇기에 지난 2년간의 교류를 통해, 택란은 그들의 원한이 천천히 사라지기만을 바란 것이었다.이제 북당 쪽은 문제가 없으니, 량주 백성들의 생각을 확인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기에, 택란은 물건을 사면서 점포 주인과 상인들에게 북당 약도성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곤 했다.그 중, 다
원경릉은 뒤에서 계산을 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대화를 듣고는 웃음을 터뜨렸다.그러고는 사식이가 정말 좋은 남자를 만난 것 같다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서일이 비록 평범한 사람이긴 하지만, 그의 마음과 눈에는 오직 사식이만 있었다.그야말로 진실한 남편이다.물건을 산 뒤, 서일은 계속 계산기를 두드리며, 여기서 쓴 금액을 북당으로 돌아가 황후에게 얼마만큼의 금으로 바꿔 드려야 할지 열심히 계산했다.계산을 마친 후, 지갑형편이 다소 여유롭다고 느껴지자, 그는 귀걸이와 금팔찌까지 더 구매했다. 이곳의 디자인은 북당보다 훨씬 아름다웠다.한편, 금나라에서는 완안경천이 혼사를 준비하고 있었고, 이웃 나라 사신들도 연이어 축하해주기 위해 도착했다.택란은 냉명여와 주 아가씨를 데리고 량주로 갔는데, 그들이 량주성에 도착하자마자, 누군가가 경천 황제에게 보고했다."폐하, 초상화 속의 아가씨가 이미 도착하여 객사에 머물고 있습니다. 근처에서 감시 중이며, 가까이 다가가 방해하지는 않았습니다."경천 황제는 어서방에 앉아 이 보고를 들으며 눈매를 약간 올리고는, 온화하고 잘생긴 얼굴에 빛을 발했다. "그녀가 왔구나. 마침내 그녀가 왔다!""폐하, 바로 부를까요?""아니. 사람을 보내 그녀를 계속 감시하도록 하거라. 절대 그녀를 놓쳐서는 안 된다."경천 황제 또한 손끝이 떨릴 정도로 감격했다. 수많은 밤, 그는 초상화를 보며 멍하니 그녀가 살아있기를 바라고 또 바랬기 때문이다.그 초상화는 그가 직접 그린 것이었다. 원래 그는 서화에 강하지 않았다. 하지만 화가에게 아무리 설명해도 화가의 그림이 그녀와 닮지 않아, 직접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었다.그렇게 늘 마음속에 품고 있던 그녀를 자신의 그림으로 완성했다.그는 그녀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사람을 보내 북당에서 한 부녀를 데려왔다. 그 중 딸이 자신이 란이의 언니라고 주장했지만, 그녀의 얼굴은 택란과 닮은 점이 조금도 없었다. 심지어 분위기도 전혀 닮지 않았다.친자매가 어찌 조금도 비슷한 부분이 없다는
원경릉은 병실로 돌아간 뒤, 서일을 따로 불러내서 물었다.당시에는 상황이 급박했던 탓에 서일이 어떻게 그 약을 가져왔는지, 약상자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에 대해 전혀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두 번째 약은 어디서 꺼낸 것이냐?"원경릉이 약상자를 열며 묻자, 서일이 약상자 두 번째 칸을 가리켰다."이쪽이였습니다. 그 당시 약이 이미 준비되어 있었고, 주삿바늘에 뚜껑도 씌워져 있었습니다."원경릉은 약을 세 번째 칸에 넣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세 번째 칸은 자동으로 수축하는 구조여서, 사용하지 않는 약을 넣고 약상자를 닫는 순간 아래로 내려가게 되어 있었다.반면 두 번째 칸은 평소 사용하는 약으로 꽉 차 있어, 추가로 주사를 넣을 공간조차 없었다.게다가 약상자를 10년 넘게 사용해 온 그녀였기에, 약을 어디에 두는지 몸이 기억할 정도로 익숙했다. 그녀가 약을 잘못 넣었을 가능성은 없다는 뜻이다. 설령 잘못 넣었다 하더라도, 약상자는 위험성을 자동으로 감지하는 기능이 있어, 그 약이 서일 앞에 나타날 리가 없었다.서일은 원경릉의 심각한 표정을 보고, 우문호의 병세가 다시 악화한 줄로 착각하며 구석에 쪼그려 앉아 얼굴을 감싸고 울기 시작했다. 그동안 참고 또 참아왔지만, 이제는 도저히 견딜수가 없었다. 그가 울기 시작하자, 원경릉이 깜짝 놀라 물었다."왜 그래? 설마 또 무슨 약이라도 먹인 것이냐?""아닙니다..."서일은 빨개진 눈에 머리도 헝클어진 채로 원경릉을 바라보며 처량하게 말했다."마마, 폐하께서 아직 낫지 않은 것입니까? 혹시 제가 폐하를 죽게 만든 것입니까?"원경릉은 웃음을 터뜨리며, 서일의 반응 속도가 정말로 느리다고 생각했다."그런 소리 하지 말거라. 그런 일 없다. 그저 사실을 알아보는 것뿐이니, 괜히 걱정하지 말거라. 다섯째도 아주 좋아졌다. 단지 조금 더 검사가 필요할 뿐이다."서일을 안심시키기 위해 그녀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서일은 우문호에게 가서 울며 모든 것을 털어놓았을 것이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