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았으니까, 중간에서 선동이나 하지 마.” 셋째 형이 주 아가씨에게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안 우문호는 상당히 안심하고 안왕과 더는 말을 섞지 않은 채 일어나 나왔다.그러자 안왕이 입을 삐죽거렸다. 우문호 입에서 뭔가를 좀 캐내려고 할 생각이였는데 이렇게 되버리니 상심이 컸다.안왕은 솔직히 불안했다. 아바마마께서 뒤늦게 잘잘못을 따질 가능성이 그렇게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지난 난국을 거치며 안왕도 나라를 위해 힘을 보탰고 한 쪽 팔도 잃었으니, 아바마마께서도 과거의 일을 다시 들출 일은 없을 것이다.물론 안왕도 다른 상황은 일어나지 않길 바랬다. 빠르든 늦든 언젠가는 일어나긴하겠지만 아직 아바마마는 젊으시니까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이내 역시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장년의 황제가 스스로 퇴위하는 경우가 어딨어? 예전에 태상황 폐하도 병환이 중해서 아바마마께 선위를 하신 거잖아.’마음속이 번잡했다. 역시 경성은 강북부처럼 편하지 않다. 귀영위가 열심히 말을 달려 사정을 알아보고 이틀이 못 돼서 금방 소식을 가지고 왔다.“태자 전하께 아룁니다. 위왕 전하는 혼자 경성으로 돌아오고 계시나 뒤에 멀지 않은 곳에 확실히 여자가 말을 타고 따라오고 있으며 대략 400m정도 거리를 두고 있사옵니다.”“위왕께는 물어봤느냐?” 우문호가 물었다. 귀영위가 대답했다. “여쭤보았습니다. 위왕 전하께서 그 여자의 성은 주 씨라 하고 강북부 지부의 딸로 자신을 따라 경성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사옵니다.”“그런데도 쫓아내지 않았다고?”“쫓아냈었다고는 합니다. 하지만 주 아가씨께서 경성에 친척을 만나러 간다고 해서 어쩔 수 없으셨다고 합니다.” 그러자 우문호가 살짝 눈쌀을 찌푸렸다. ‘셋째 형은 어쩌자고 이렇게나 바람둥이가 된거야? 나도 안 그런데 말이야.’“위왕이 경성에 도착하려면 아직 얼마나 남았지?” 우문호가 물었다.“곧 도착하십니다. 그저 반나절 차이라 밤에는 경성에 도착하실 겁니다.”우문호는 귀영위를 내보내고 소월각으로 가서 원 선생
우문호가 다시 원경릉을 째려보며 물었다. “내가 지금 고민하는 거 안 보여?!”우문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끙끙 앓았다. 매번 원 선생과 큰 일을 앞두고 기대하고 있을있을 때 결국 흐지부지해지게 되어 얼마나 짜증 나는지 모른다. 우문호는 순탄하고 기쁘게 원 선생을 진정한 아내로 맞아들일 수 있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전에도 얘기했잖아? 인생에는 형식이 필요하다고. 우문호는 혼례라는 형식이 중요하다는데 어쩔 거야?’원경릉은 우문호의 걱정을 잘 알고 있었기에 우문호의 손을 꽉 잡고 위로를 건넸다. “쓸데없이 너무 걱정하지 마. 그냥 주 아가씨의 일방적인 사랑이잖아. 우리도 정화 군주의 수용력을 함부로 무시하지 말자. 위왕을 포기하고 아이들을 잘 키우기로 했으니 아마 쉽게 무너지지 않을 거야.”“그런데 당신은 왜 그렇게 화가 났는데?”“당연히 화가 나지! 위왕이 정말 여자를 데리고 경성으로 온다고 생각하니까. 솔직히 위왕이 정말 혼인하겠다면 우리도 관여할 수 없긴 하지만... 그저 경성으로 데려오지 말기를 바랄 뿐이야. 적어도 정화 군주에게 몇 년의 시간은 줘야 하는 거 아냐?”우문호가 동의한다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도 정화 군주가 걱정돼. 하지만 내가 제일 걱정하는 건 역시 우리 혼사에 마가 끼지 말았으면 하는 거야. 천지신명에게 빌고 싶다 진짜.”원경릉이 크게 폭소했다. “그냥 단순하게 생각해. 우리 현대에서도 이미 결혼했잖아.”그러자 우문호의 잘생긴 얼굴에 아주 커다랗게 ‘불만’이라고 쓰여 있었다. “원칙적으로 그건 혼례라고 할 수 없어. 그냥 일가가 같이 밥을 먹은 거지. 당신이 그랬잖아, 당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다 혼례에 참석하기를 바란다고. 그게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야.”그 누구도, 그 어떤 일도 우문호를 말릴 수 없었다.그리고 한 번쯤은 자신을 위해 이기적이게 굴어도 되니깐. 원경릉은 우문호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위왕이 경성에 도착하기 전에 얼른 정화 군주에게 이 사정을 알려 나중에 갑자기 남을 통해 듣
원경릉은 정화 군주가 애처롭게 느껴졌지만 이렇게 얘기하는 걸 듣자 은근 위로가 되었다. “네, 그럼 제가 온 게 허탕은 아니었네요.”정화 군주가 미소를 지었다. “이 일로 다들 놀라셨죠? 지금 제 마음이 온통 아이들에게 가 있어요. 둘째 형수가 와서 우리 둘이 안타깝다고 얘기한 적이 있어요…. 지난 일은 되돌릴 수 없고 돌아갈 수 없다고요...”원경릉이 마음이 울컥해졌다. 평생이라고 생각하니 순간 침울한 기분이 들었다. “흠, 그래요. 혹시, 아직 과거로 돌아갈 수 있나요?”“그건 이제 불가능해요.” 정화 군주가 말했다.원경릉은 정화 군주의 담담한 얼굴을 보며 물었다. “제일 원망스러운 건 고지가 당신의 아이를 해치려는 걸 알면서도 위왕이 저지하지 않은 것 때문이에요. 그쵸?”“맞아요.” 정화 군주의 눈가가 붉어져 급히 고개를 돌렸다. “됐어요, 그 얘기는 그만해요. 사람을 시켜서 차 싸놓으라고 할 게요!”“네!” 원경릉이 밤도 깊어져서 더 머물지 않고 싸준 찻잎으로 들고나왔다.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불편했다.초왕부로 돌아오자 우문호가 물었다. “어떻게 됐어? 정화 군주 반응은 어때?”“나쁘지 않아, 받아들일 수 있대. 어쨌든 위왕이 정말 그 주 아가씨랑 잘 지내는 것도 아니니깐.” 원경릉이 억지로 웃으며 말하자 우문화가 걱정되어 물었다 “그럼 잘 된 거 아냐? 당신 영 마음이 무거운 얼굴인데?”원경릉이 우문호에게 기대 고개를 흔들었다. “그냥…. 위왕이 그때 왜 그랬을까 싶어서.. 길이 다 막혀서 조금의 여지도 남아있지 않았잖아.”우문호도 우울한 낯빛이였다. “어쩌면 두 사람은 반드시 만나지만 결코 함께 할 수 없는 운명인 거 아닐까? 그때 억지로 정화 군주를 데려온 걸 이제 와서 안타까워해 봤자 무슨 소용이야? 생각을 말아야지. 자자.”원경릉은 일단 알았다고는 했지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애써 억지로 눌러도 자꾸만 다시 떠올랐다.‘안 된다니까!’과거로 돌아가 사건을 바꾸는 건 나비효과를 일으켜 지금 많은 일이 달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난 우문호는 위왕이 밤중에 도착해 초왕부에 묵겠다고 했다는 서일의 말에 깜짝 놀랐다. “왜 초왕부에 묵는데?”“여기 묵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서일이 말했다.“위왕은?” 우문호가 물었다.“주무시고 있으세요. 아직 안 일어나셨습니다.”원경릉이 계란이를 안고 응접실로 와서 서일과 우문호의 대화를 듣고 물었다. “혼자 오셨지?”“혼자 오셨습니다. 시종도 안 데리고 오셨어요.” 서일이 나가며 살짝 계란이의 얼굴을 만지고 인사치레 미소를 띠며, “꼬마 군주님이 이슬같이 영롱하세요.”우문호가 서일의 손을 딱 쳤다. “눈으로만 봐 만지지 말고!” 우문호는 아기 볼이 살짝 눌리는 것도 싫었다. 감히 어딜?서일이 입을 삐죽거렸다. “참 쩨쩨하시네요. 전 사탕이 안아도 보시게 해 드렸는데!”“사탕이는 내 의붓딸인데 왜 못 안아?” 우문호가 서일에게 눈을 흘겼다. “가서 위왕을 깨워가지고 본관으로 오시라고 해. 마침 잘 됐으니 같이 입궐하자고.”“예!” 서일이 나갔다.“아주버님 좀 더 주무시라고 하지. 어젯밤 늦게 오셨을 테니 많이 피곤하실 거야.”“마침, 입궐하는 참이고 형도 경성에 왔으니 입궐해서 문안을 드려야 하니, 같이 가지 뭐. 아바마마께서 형한테 잔소리 좀 덜 하시게. 또 그 괴팍스러운 성격 나오면 아바마마한테 들이받을 거 아냐, 나도 강북부쪽 상황을 들어야 하고.” 우문호가 고개를 숙이고 계란이에게 뽀뽀하더니 달콤하게 아내의 볼에도 얼른 뽀뽀하고 방긋 웃었다. “순서 없이 똑같이 좋아해.”원경릉이 부끄러운듯 고개를 흔들었다. “이만 가봐!”본관에 가자 아침이 이미 차려져 있었는데, 우문호가 탕양과 앉아 같이 먹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위왕이 허겁지겁 본관으로 들어왔다.비록 수면 시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위왕은 활기가 넘쳤다. 외로운 늑대가 이럴 때는 또 좋다.“다섯째, 입궐해? 같이 가자.” 위왕이 앉으며 말했다.“안 그래도 같이 가자고 불렀어요. 왜 자기 집을 두고 초왕부에 와서 자요?” 우문호가 위왕에게
입맛이고 나발이고 없어요. 기억도 안 나. 어서 와서 먹어요, 빨리 먹고 나가게. 강북부 상황이랑 그쪽 도시 얘기도 들어야해서 바빠요.” 우문호가 말했다.위왕이 강북부와 그쪽 도시 사이에서 바쁘게 일하며 단출하게 살고 있었고 딱히 추구하는 것도 없었다. 위왕은 보따리 몇 개를 들고 벌떡 일어섰다. “가자, 가는 길에 먹으면 되지!”우문호는 위왕의 옷이 질박한 데가 행동도 극히 거친 것을 보고 그쪽 생활이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일단 천천히 먹어요, 먹고 가면 되니까.”“그럴 필요 없어. 우리 전에 행군할 때도 늘 이랬잖아.” 위왕이 우문호를 끌고 나갔다.길에서 위왕은 그쪽 도시의 현황을 대략 설명해 주었다. 풍습은 사납고 북당에 불만이 많아 원주민들은 계속 문제를 일으키는데 찢어지기에 가난하다 보니 그저 조정에 기대서 연명하고 있다고 했다.위왕이 마지막 말에 열이 받는지 씩씩거리며 얘기했다. “진짜 다 쫓아내고 싶다니까. 그냥 전부 북막으로 꺼지라고 할 걸, 이 도시를 얻어낸게 진짜 큰 손해야.”우문호가 말했다. “이건 일종의 과정이에요. 어쨌든 그 사람들은 북막 사람이잖아요. 그 도시를 받아들이고 다스리는 데 정책적 추진이 필요하죠. 지금 강북부랑 그쪽은 서로 통관돼요? 백성들이 그쪽으로 가려고 합니까?”“가려는 사람이 있기는 있어. 강북부도 어쨌든 조건이 안 좋으니까 그쪽에 가서 고산 식량을 재배할 수도 있고, 산림이 울창하니 산나물을 캐거나 사냥을 해서 팔 수도 있거든.”우문호가 말했다. “흠, 이참에 조정에서 정책적으로 통혼과 무역을 추진해야겠어요. 최대한 그들을 북당화하는 거죠. 어떤 나라 백성이든 잘 먹고 살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죠. 살기 좋아지면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도 줄어들 겁니다. 물론 그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30년~50년 동화돼서 지내다 보면 가능할 거예요.”그러자 위왕이 탄식했다. “그쪽은 상당히 살기 어려워. 사실 전에는 호 대장군도 속으로 불만이 있었지. 아바마마께서 처음엔
안왕과 위왕이 연달아 경성에 도착했고, 평남왕도 경성으로 와서 원래 살던 숙왕부에서 태상황 일행과 함께 묵었다. 우문호와 원경릉도 몇 번 갔지만 거기는 오래 머물 곳이 못 되는 게 하루가 멀다고 밤마다 음주·가무에 고기를 구워 먹어서 오래 있다가는 사람이 다 망가지기 십상이었다.하지만 태상황 일행은 만년을 즐기고 있어 손자뻘인 우문호 부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삼대 거두도 전처럼 과묵하지 않고 활기차고 가벼워졌고, 상선마저 움직임이 좋아져서 그날 갔을 때는 벽을 짚고 100m 정도나 혼자 걸어 의지력이 진짜 대단한 사람이구나 싶었다.늙을 만큼 늙었는데 두려울 게 뭐가 있나?그리고 우여곡절을 거쳐 명원제도 마침내 매화장에 비취가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명원제는 사람을 시켜 매화장을 수리하게 했는데 안풍 친왕이 팔기 전에 한번 새 단장을 했지만, 사용한 자재가 아무래도 좀 질이 떨어져서 우아하고 대범한 기운이 부족해 돈을 들여 고치기로 했다. 사람을 불러들이는 김에 비취 한 덩어리를 캐서 품질이 어떤지 살펴보고자 했다.그런데 나와 있던 담청색에 녹색을 띤 돌을 제외하고 땅에서 나온 건 전부 한백옥으로 심지어 담청색인 돌조차 염색이 지워져 큰비가 내린 뒤 희끄무레한 녹색만 남아 보는 사람 속이 쓰렸다.구사가 돌아와 명원제에게 보고할 때 명원제는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했다. 처음 든 느낌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큰아버지가 어떻게 이런 사기를 칠 수 있지? 큰아버지는 우문씨 집안에서 가장 능력자로 큰아버지 한마디면 나라도 좌지우지할 정도잖아.’명원제는 구사에게 더 파보라고 하며 한 덩이를 궁으로 가져오게 시켰다. 그리고 냉정언과 아들들, 궁 안의 옥 장인도 소집해서 확인했는데, 그렇게 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큰아버지가 자신에게 사기를 쳤을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결국 꺼내놓은 것만 돌 겉을 약간 조잡하게 염색한 것으로 쪼갠 뒤에도 그럴 거라는 확실한 보장은 없었다.조잡한 황색이 들어간 엷은 흰 돌이 흙도 아직 깨끗하게 씻기지 않
“예!” 목여 태감이 명을 받들었다.그제서야 다들 한시름 내려놓았다. 악역은 이리 나리에게 하라고 하면 되니까. 이리 나리를 기다리는 동안 명원제가 수라를 준비시켜 함께 먹자고 했다.그 모습에 모두 상당히 의외였다. ‘같이 먹는다고?’손왕은 과분한 총애에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아바마마와 함께 식사한 게 언제인지 까마득했다. 그가 함께 수라를 드는 일을 얼마나 바랬는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전에 태자비가 아바마마와 같이 수라를 들었다는 말에 손왕은 엄청나게 질투할 정도였다. 안왕은 의혹의 눈빛으로 아바마마의 이런 변화를 바라봤다. ‘변화가 너무 큰 거 아냐? 이거 정상이 아니야!’수라라고 해도 상당히 조촐했다. 명원제는 일관되게 최대한 간소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어떤 건 자신도 어쩔 수 없지만 할 수 있는 건 고집스럽게 지켰다.고기반찬 하나, 채소 반찬 몇 개에 국 하나, 한 사람에 쌀밥 한 공기씩, 향이 솔솔 나고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가운데 밥상에 둘러앉아 집밥을 먹으니 유달리 맛이 좋았다.수라를 들고 한쪽에서 차를 마시던 명원제는 자기도 모르게 아들들과 안풍 친왕의 인격에 대해 토론했다.“전에 헌제 시절에 주씨 집안과 우문로가 반란을 꾀했을 때 큰아버지와 태상황 폐하께서 같이 평정하셨지. 나중에 북막을 아주 꼼짝 못 하게 무찌르셨을 때도 큰아버지의 공이 지극히 컸어. 비록 수단이 좀…. 의외긴 했지만 큰 그림이 있으셨을 거야. 큰아버지 같으신 분은 덕이 높고 고상하시거든.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예, 그렇사옵니다!” 모두 맞장구를 쳤다. 솔직히 처음엔 다들 그렇게 생각했지만, 몇 번 사적으로 접촉한 뒤로, 가면 뒤에 가려진 본모습이 하나둘 벗겨지며 뼛속까지 비굴하고 계산적이라는 것을 알아 차렸다. 마치 여우처럼 말이다.명원제는 아들들이 대충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다는 것을 알고, 더욱 종잡을 수가 없어 코를 훌쩍였다. “감출 게 뭐가 있겠어? 짐이 최근까지 개인적으로 모아둔 돈이 없어서 집을 산 돈은 여기저기서 빌린 거야.”
그때 이리 나리 마음속에 ‘땡’하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황제라는 장인은 무슨 일이 생기지 않고서야 자신을 부르는 일이 없었기에 입궐하면서도 뭔가 이상하다 싶었다. 그런데 지금 큰처남얼굴의 간사한 미소와 다른 친왕들과 냉대인의 표정, 그리고 밖에 놓여 있는 돌덩어리를 보니 순간 연상되는 것이 있었다. 이리 나리는 대충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점점 직감했다.우선 장인과 처남들에게 예를 갖춰 인사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묻기로 했다. “아바마마, 매화장의 옥 광산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하문하고 싶으신 게 아닙니까?”이 물음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 놀란 표정으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역시 사업가라 담력과 베짱이 대단했다. 상대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모든 결과를 책임질 수 있으니 말이다. 명원제가 말했다. “맞네. 짐이 구사에게 돌을 하나 캐오라고 해서 마당에 뒀다네. 이리 와서 다 같이보세.”하지만 이리 나리는 고개를 저었다. “볼 필요 없습니다. 그건 그저 평범한 돌입니다. 매화장의 석산에서 제일 가치가 나가는 건 한백옥이지만 그것도 많지 않습니다.”명원제는 화들짝 놀라 순간 숨이 멎는듯 했다. “보통의 돌이라고? 근데 그렇게 한 번 쓱 보고 알수가 있나?”이리 나리가 단호하게 말했다. “한 번만 본 게 아닙니다. 매화장을 여러 차례나 갔었는데 매화장 전체와 모든 산에 값나가는 건 찾을 수 없었습니다. 만일 있었으면 이미 풀 한 포기 안 남기고 싹 털어갔겠죠. 가치 있는 옥 광산이 있는데 채굴하지 않았을 리가 없습니다.”명원제의 코에서 뜨거운 콧김이 뿜어져 나왔다. “하나, 큰아버지께서 직접 땅 밑에 있는 건 옥 광산이라고 하셨네. 그게 어떻게 거짓일 수가 있나?”이건 인품의 문제였기에 모두 순간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말문이 막혔다.그때 위왕이 입을 열었다. “아바마마, 어쩌면 큰할아버지께서도 속으신 거 아닌지요?”그러자 이리 나리가 허탈한 표정으로 웃었다. 때론 웃음만으로도 절망적인 태도를 표현할 수 있는데 지금 이리 나리가 그렇다. 명
소요공은 얼굴을 찌푸리며 무상황을 한 번 쏘아보았다.하지만 무상황은 신경 쓰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물었다."요부인이 아이를 낳는 것을 지지하지 않는 것이오?"원 할머니는 말했다."의사로서 저는 그저 의견만 드릴 수 있습니다. 아이를 지킬지 말지는 그들이 결정할 문제입니다."무상황도 이내 얼굴을 찌푸렸다."형식적인 말은 그만하고, 웃어른으로서 말해보라는 것이오."그러자 원 할머니는 자리에 앉아 잠시 생각한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지지하지 않습니다. 위험이 너무 크고, 목숨을 위협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아이를 포기한다면, 그녀는 후회할 것입니다."이것은 몹시 어려운 결정이었기에, 태상황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들이 결정을 내리도록 기다려야 하네. 만약 그들이 아이를 지키기로 결정하면, 최선을 다해 도와야 하네. 그 외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네. 이것도 어쩌면 지지하는 것이네."어른스러운 그의 말에 원 할머니가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그의 마음은 참 소중했다. 어쨌든 요부인은 더 이상 황실의 사람이 아니기에, 무상황은 사람을 보내 원경릉에게 명을 전했고, 원경릉은 곧바로 그 명에 응했다.사실 무상황이 말을 하지 않아도, 그녀는 최선을 다할 것이었다.약을 처방하긴 했지만, 그녀는 요부인이 훼천을 설득하여 이 아이를 지킬 것이라 생각했다.말솜씨에서 훼천은 요부인에게 한참 뒤떨어지기 때문이다.다음 날 아침, 그녀는 궁을 떠나 집으로 향했다. 역시나 요부인이 그녀에게 간절히 부탁한 것이었다."아이를 지켜보기로 결정을 내렸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시게. 아이를 지키려다가, 문제가 생기면 바로 아이를 포기할 것이니. 그 후에는 모든 것을 당신에게 맡기고, 절대로 무리하게 요구하지 않을 것이네."원경릉이 훼천을 바라보았는데, 훼천은 불안에 가득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 두 사람의 창백한 안색으로 보아, 어젯밤 밤새 격한 토론을 했고, 훼천이 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요부인이 애절하게 부탁하는 눈빛을 보며, 원경릉은
원 할머니는 요부인의 맥을 짚으며, 몇 가지 상황을 물었다.요부인은 숨기지 않고 모든 것을 털어놓았고, 원 할머니는 다시 맥을 짚은 후, 잠시 침묵을 지켰다. 무상황이 재촉하자, 그제야 원 할머니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상황이 정말 좋지 않구나. 기운과 폐기운이 부족하고 허약하며, 심장도 다쳤다. 몸이 찬 편이라 아이에게 큰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정말 낳고 싶다면..."요부인은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마지막 희망마저 끊어지자, 너무 슬펐다.훼천이 물었다."원 할머니, 그동안 몸조리를 잘 해왔는데 어찌 몸 상태가 이렇게 나쁠 수 있습니까?"기혈이 부족하고, 몸이 찬 편이라고 이야기하자, 그는 걱정으로 가득 찼다.원 할머니가 말했다. "워낙 허약하니, 쉽게 회복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몇 년 전, 지나치게 고생한 탓에 몸을 다쳤고, 그 후에 폐병에 걸려서 폐까지 상했다. 몸조리로 상황이 더 악회하진 않겠지만 나아지지도 않을 것이다. 몸이 건강하지 않으니, 무리하며 아이를 낳으면 결국 꼼짝없이 누워 지내야 할 것이고, 아이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치료받아야 할 것이다. 침대에서의 생활은 아이를 낳을 때까지, 아홉 달 동안 지속될 수도 있다."하지만 요부인의 눈에는 다시 희망의 빛이 떠올랐다."계속 누워 있으면, 이 아이를 지킬 수 있는 것입니까?""지킬 수 있다고 말할 수 없지만, 이 아이를 지키려면 꼭 그렇게 해야 한다. 하지만 확신이 있는 것은 아니다."원 할머니는 말하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황후를 찾아보았느냐?""예. 오늘 황후가 오셨습니다."요부인이 말했다."무엇이라 했느냐?"요부인은 말했다."너무 심각하게 말하진 않았습니다. 저희에게 결정을 내리라 했지만, 아이를 남기기를 원하지 않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황후의 약이 나의 약보다 나을 것이다. 하지만 황후도 그렇게 말했다면, 정말 위험한 것이다. 사실 의원으로서, 우리도 그저 조언만 할 수 있는 법이다. 아이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위
원경릉은 못내 조금 흥분했지만, 이내 다시 차분해졌다.약상자에 어떤 약이 나타났든, 지금 상황에는 여전히 위험이 컸다. 그리고 그 약들을 사용한다는 것은, 요부인의 길이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게다가 두 번째 층에는 출산 중 사용할 응급 약도 있었다.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뜻이었다."다 그들의 팔자니, 너무 걱정하지는 말게."우문호는 말하면서 손을 뻗어 그녀의 이마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어찌 고민할 때마다 이마를 찡그리는 것이오. 나보다 더 나이가 많아 보이면 안 되네. 그렇지 않으면 당신도 리프팅을 해야 하네.""당신은 리프팅 안 했소."원경릉은 웃으면서 말했다."난 괜찮소. 리프팅을 했든 안 했든, 예전보다 확실히 젊어 보이니 괜찮소."우문호는 자신의 얼굴을 만지며 스스로 만족해했다. 어쨌든, 원경릉이 좋아하면 되었다."정말 리프팅 안 했소. 다 그 약 덕분이오."원경릉이 말했다."정말이오?"우문호가 웃으며 말했다."그럼, 다행이오. 난 당신이 내가 늙었다고 싫어할 줄 알았소."원경릉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럴 리가 있소? 사랑하는 사람의 흰머리를 볼 수 있다는 건, 사실 행복한 일이네."우문호도 느끼는 바가 있었다."맞소."원경릉이 그의 품에 기대며 조용히 말했다."아마 오늘 밤 요부인과 훼천은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오."정말 그러했다.모두가 나가자마자, 요부인이 약을 보며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훼천은 그녀 곁에 있었지만, 위로는 서투른 사람이라, 그저 그녀의 손을 잡고 조용히 곁에 있었다.이 아이는 정말 예상치 못한 일이었고, 오지 말았어야 했다. 아이가 오지 않았으면 이런 슬픔도 없었을 것이고, 그들의 삶도 잘 흘러갔을 것이다.왔지만 떠나니, 정말 상처가 될 뿐이었다. 앞으로 이 일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아플 것이다."어르신을 찾으러 가겠네."요부인이 갑자기 그를 보며 말했다."어르신?"훼천은 누구를 말하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숙왕부에 가려 하니, 함께 가시게."요부인이 벌
원경릉은 한참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약을 다 처방한 후에 원경릉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내일부터 약을 드시게. 잊을 수도 있으니, 며칠 동안 자주 올 것이네. 게다가 또..."그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바로 그녀의 말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약을 먹는 과정에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까 봐 걱정하는 것이었다.그들은 이 나이에 아이를 낳든, 낙태하든, 모두 위험이 따른다는 것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당부를 마친 후, 훼천이 그녀들을 배웅했다.모두 지금은 그들이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했다. 아이와 함께, 셋이 하루를 보낼 시간이 필요했다. 그들에게는 오직 오늘 하루만이 남아 있었다.미색은 집을 나서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한참 뒤 눈물을 닦고 나서 원경릉에게 물었다."방법이 없는 것입니까? 정말 이렇게 해야만 합니까?""그저 지지하기로 하지 않았느냐."미색 또한 이 점에 대해서 어느 정도 잘 알고 있었기에, 원경릉은 더 이상 위험에 관해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그래도, 요부인의 목숨이 더 중요한 법이지요."미색은 말을 마친 후, 말을 타고 그곳을 떠났다."며칠 동안 계속 그녀의 곁을 지킬 셈 같아 보이니,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원용의가 말했다."그래. 나도 올 것이다."그러자 손왕비가 덧붙였다.한편, 궁에 돌아온 원경릉은 바로 실험실로 가지 않고, 창가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셨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슬픔에 가득 찬 요부인의 얼굴만이 떠올랐다.강한 여자의 눈물은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저녁 무렵, 다섯째가 돌아왔다. 그는 원경릉이 혼자 앉아 있는 것을 보고서는 대충 눈치챘다. 그는 다가가서 그녀를 안으며 물었다."요부인의 상태가 좋지 않소?""알아챈 것이오?""나이가 나이인지라."우문호가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물었다."결국 아이를 포기하기로 했소?""그렇소.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니..."원경릉은 비록 이렇게 말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요부인의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의 말은 항상 그녀의 불안을 사라지게 해주었다.그녀가 목이 멘 목소리로 말했다."아이가 정말 우리를 만나고 싶어 하고, 정말 행복할 것이라 생각하네. 이렇게 좋은 아버지를 두었으니. 아이가 우리 곁에 올 수 있기를 너무 바랐네."그가 아버지로서 얼마나 훌륭한지, 희열과 희성은 여러 번 그녀에게 말했었다.그들은 밖에서 모두 아무 말 없이 침묵하며, 두 사람의 결정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러다 마침내, 미색이 참다못해 물었다."나이가 좀 많다는 것 외에, 다른 위험이 있습니까?""나이가 많다는 것 자체가 큰 위험이다. 출혈도 있고, 다른 증상도 있을 텐데 말하지 않더구나.""무슨 증상이요?"미색이 잠시 멈칫했다."혹 어떤 증상이 나타납니까? 증상 때문에 아이를 지킬 수 없다면 그때 다시 아이를 포기해도 됩니까?""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가정할 수는 없다. 너무 많은 경우가 생겨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그저 지금의 상황과 몸 상태를 고려해 볼 뿐."나이가 많은 여인이 임신하면 정말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게다가 어머니뿐만 아니라 태아에게도 위험이 생길 것이다. 임신 중에는 자간, 경련, 두개내출혈, 태반 조기 박리가 있을 수 있고, 출산 후에는 선천적 결함이나 선천성 심장병 등이 있을 수 있었다. 물론, 임산부의 위험이 더 컸다. 임신성 고혈압, 당뇨병, 심장병, 그리고 신장병 등 여러 가지 질병이 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이 증상들이 꼭 나타난다는 뜻은 아니지만, 정상 연령대의 임산부보다는 확률이 훨씬 더 높고, 흔히 보는 증상이었다.원용의가 물었다."그럼, 가장 나쁜 결과는 무엇입니까?"원경릉이 고개를 흔들었다."가장 나쁜 결과는 모두가 예상한 것처럼 어머니와 아이 모두에게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문제가 클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고, 모든 것이 알 수 없지만, 아이를 지키기로 결정을 내린다면, 큰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바로 그때, 훼천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
미색은 오히려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정말 잘됐습니다! 정말 임신이라니요!"원용의와 손왕비는 서로 눈을 마주쳤을 뿐, 미색처럼 기뻐하지는 않았다. 사실 오늘, 이곳에 온 두 사람의 마음은 무거웠다.그들은 모두 요부인이 이 나이에 임신한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었다.특히, 요부인이 황후와 함께 걸어 나올 때, 황후의 눈빛에서도 기쁨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의술에 정통한 그녀마저도 낙관적이지 않으니, 다른 사람들은 더더욱 낙관할 수 없었다.원경릉이 미색과 나머지 사람들에게 말했다."요부인과 훼천이 할 이야기가 있으니, 먼저 나가자꾸나."미색은 잠시 멈칫했다."우리가 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입니까?""그래. 부부끼리 꼭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원경릉이 미색을 끌어당겼고, 미색은 워낙 눈치가 빨라 이 말을 듣자마자 단번에 깨달았다. 그녀는 놀란 눈으로 요부인에게 물었다."설마... 아이를 포기할 셈입니까? 왜요?""미색아, 헛소리하지 말고, 먼저 나가자."원경릉이 그녀의 손목을 잡고 문밖으로 향했다. 손왕비와 원용의도 이 모습을 보고는 함께 따라 나갔다.미색은 잠깐 머뭇거렸지만 결국 원경릉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계속 원경릉을 붙잡고 캐물었다."아이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것입니까?"뜰로 나와서 원경릉은 말했다."나이가 있으니, 지금 상태로는 위험할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이 잘 상의해서 결정해야 할 일이다."손왕비와 원용의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미색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그러니... 지금 두 분은 아이를 가질지 말지를 논의 중이신 것입니까?""이건 그들 부부의 일입니다. 어떤 결정을 하든, 우린 그저 지지해 주면 됩니다."원용의가 담담히 말했다.그러자 미색이 갑자기 마음이 아파왔다."예. 물론 지지합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저는 꼭 지지할 것입니다."그녀는 돌의자에 앉아 무릎 위에 손을 올려 천천히 문지르고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아이도 이 세상을 한번 보고 싶었을 텐데요."다들 아이
원경릉은 도무지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훼천이 자네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고, 심지어 이 아이보다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걸 안다고 하는데, 어찌 위험을 감수하려 하는 것인가? 자네가 없는 세상이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는가? 그에게 이 아이는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네."그들은 혼사 후 줄곧 행복하게 지냈다. 아이가 없어도 아주 만족스러워했다.만약 그녀의 몸이 견딜 수 있다면 문제 없겠지만, 이제 막 임신한 상태에기에 벌써 출혈이 생겼다. 게다가 이후에 그녀가 말하지 않은 다른 증상이 생길 가능성도 높았다.그러면 너무 위험해진다.요 부인이 아랫배를 어루만졌는데, 얼굴에는 모성애가 감돌고 있었다."처음 임신했다는 걸 알았을 때, 나도 이 아이를 포기해야 겠다고 생각했네. 내 몸이 임신과 출산을 견뎌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아이를 없애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순간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네. 난 간절하게 그와의 아이를 갖고 싶네. 너무 이기적인 걸 알지만, 그 바람이 나를 흔들었네. 그가 아버지가 되는 모습을 보고 싶었네.""그는 이미 아버지네. 훼천은 언제나 희열과 희성을 친자식처럼 여겼네."원경릉이 말했다."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했고, 심지어 그 이상으로 많은 것을 해왔다는 것을 알고 있네. 그래서 더욱 미안한 것이네. 다른 여인을 부인으로 맞이했더라면, 자식을 가질 수도 있었을 텐데. 나를 선택한 탓에, 그는 자신의 아이를 가질 수 없네. 그도 정말 아이를 원하는 것을 알고 있는가?""아이를 원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원한 적은 없네. 임신한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말할 용기가 없다는 건, 그도 위험을 감수하는 걸 원치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네."요 부인의 얼굴이 복잡하게 일그러졌다."나도 알지만... 참 아쉽네."그녀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사실 혼사를 올렸을 때, 그도 아이를 더 가질 필요 없이 희열과 희성만으로 충분하다고 했네. 하지만 두 딸은 그의 성을 따를 수 없네. 임신한 적
과거에 아이를 출산한 경험이 있는 미색은 풍부한 출산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훼천은 그녀의 경험이 필요했다.훼천은 미색을 한 대 쥐어박으려 튀어나오려는 손을 억누르며 원경릉에게 다가가 공손히 예를 올렸다."황후 마마, 부디 맥을 짚어 상태를 확인해 주시옵소서."원경릉이 물었다."이미 의원에게 진맥을 받지 않았는가? 회임이 확실한 것인가?""몸이 좋지 않다고 하니, 그제 돌아온 희열이가 맥을 짚어 보고는 임신했다고 했네. 나도 잘 모르겠네."요 부인은 살짝 얼굴을 붉혔다. 이 나이에 임신이라니, 정말 부끄러웠다.그녀는 원경릉을 불러 가까이 오라고 부르더니, 조용히 속삭였다."사실 아닐 수도 있네. 몇 달째 월경을 하지 않아서...""몇 달 동안 하지 않았다니요? 그럼… 임신이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내력이 깊은 미색은 요부인이 원경릉에게 바짝 다가가 낮게 말했지만, 여전히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말았다. 그리고 미색은 바로 입 밖으로 말을 꺼냈다."조용히 하거라!"원경릉이 웃으며 그녀를 나무랐다.‘미색도 참...’"정말 임신한 것인지, 어서 확인해 보게나."손 왕비가 말했다."그럼, 방으로 가세."원경릉은 요 부인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미색도 따라가려 했지만, 훼천이 그녀를 막았다."여기서 기다리시지요. 어차피 의술도 모르잖습니까.""나도 도우려는 것이다. 훼천아, 너도 참... 호의를 몰라주는구나."미색은 목을 길게 빼고 가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그녀는 지금 상황을 제일 먼저 알아내야 했다. 그러자 원용의가 그녀를 붙잡았다."그냥 앉아서 기다리시지요. 임신이 맞는다면 원 언니가 곧 알려줄 것이니."미색에는 다시 훼천을 바라보며 물었다."아이를 낳지 않기로 하지 않았느냐? 어찌 임신을 막는 약을 쓰지 않은 것이냐?"훼천은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그는 지금 너무 걱정되었다.이 나이에 아이를 가지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게다가 희열과 희성도 효심이 깊었고, 외손자까지 얻었기에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리 나리가 말했다."훼천이 집으로 왔는데, 기쁘면서도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소. 그래서 물으니 다 말해주었소. 석 달 동안 비밀로 하려 했지만, 그래도 사전에 검사도 하고 미리 대비하는 게 좋을 것 같아, 황후에게 알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소."목여 태감은 고개를 끄덕이고, 재빨리 원경릉을 찾아갔다.원경릉은 실험실에 틀어박혀 있다가 요 부인이 임신했다는 목여 태감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 손에 들고 있던 실험 도구를 급히 내려놓으며 물었다."정말인가?""부마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목여 태감이 대답하자, 원경릉이 말을 이었다."정말 큰 일이네. 요부인의 건강 상태가 원래 좋지 않았는데, 이제야 임신하다니. 그래도 큰 경사니, 내일 당장 찾아가야겠소."지금은 이미 오후였기에 다음 날 아침 일찍 출발하는 것이 좋았다.저녁이 되어 우문호가 궁으로 돌아오자, 원경릉이 말했다."내일 요부인을 만나러 갈 것이오. 아마 밤늦게 돌아오게 될지도 모르오.""다녀오시오."우문호가 말했다.그는 겉옷을 벗으며 물었다."이 나이에 임신해도 괜찮소?""아직 쉰 살은 안 됐지만, 고령 임산부인 건 맞소. 게다가 건강 상태가 원래부터 좋지 않아서 나도 좀 걱정되오.""그럼 당신이 곁에서 잘 챙겨주시오."우문호가 배려하며 말했다.그는 오래전부터 어디서든 원경릉의 도움이 필요하면 무조건 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오늘 저녁 여섯째도 궁에 왔소. 그래서 이 소식을 전했으니, 아마 내일 미색도 갈 것이오."우문호가 말했다."미색이 알게 됐다면 내일 아주 많은 사람이 몰리겠소."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미색은 비록 수다스럽지는 않았지만, 기쁜 일에는 지나치게 열정적이었다.다음 날 아침, 원경릉은 이른 아침부터 약상자를 들고 출발했다.요부인의 저택 앞에 도착하니, 역시 미색의 마차뿐만 아니라 원용의와 손 왕비의 마차까지 줄지어 서 있었다.문을 들어서자마자 미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언제부터입니까? 대체 언제부터 우리한테 비밀로 하고 있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