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마치고 원경릉에게는 인사도 없이 계속 사람들을 데리고 안으로 짐을 옮겼다.그 모습을 보자 원경릉은 속으로 생각이 들었다. ‘힘든 임무는 무슨? 벌써 이사올 심산이었구만.’ 입궁해서 할부로 매화장을 다시 사겠다는 것도 그저 말한 것 뿐으로, 안풍친왕과 잔꾀 대결에서 태상황이 진 게 확연했다.권하는 말을 한 마디도 안했는데 와서 쓱 보기만 하고도 이사오겠다고 바로 동의한 건, 원래부터 그럴 심산이었을 것이 분명했다. 원경릉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났다. 어쨌든 잘된 셈이잖아? 태상황의 소원대로 만년에 동지들과 시끌벅적하게 자유롭고 즐거운 날을 보내게 되었으니 말이다.초왕부로 돌아가며 원경릉은 우문호에게 이 얘기를 했다.우문호가 잠시 생각한 뒤 말했다. “아마도 돈이 없고 살 곳이 없어 돌아온 것만은 아닐지도 몰라. 어쩌면 내가 보위에 오른 뒤에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시려는 걸꺼야. 물론 돈이 없는 게 가장 큰 이유겠지만.”원경릉이 말했다. “안풍친왕 부부는 왜 그렇게 가난해? 돌아오신 뒤에 분봉 안 받으셨어?”“돌아오신 뒤로 바로 숨었는데 분봉을 어떻게 받아?”“왜 숨으신 건데?”우문호가 설명했다. “어쨌든 민간에도 조정에도 두 분이 황위를 찬탈하려 한다는 사람이 있으니깐. 전에 그런 일도 있었으니 사람들이 오해할 만도 하지. 하지만 두분도 굳이 변명하지 않으셨어. 됐어, 내가 보위에 오른 뒤에 두 분을 마땅하게 모셔드릴 테니까. 남은 시간 더 잘 지내시도록.”막 이 말을 하는데 경호에서 봤던 검은 옷의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먹여살리려면 확실히 힘이 들거다. 아니다. 역시 이리율에게 생활비를 보내라고 하자. 그런데 그동안 이리율은 왜 생활비를 안 보냈지?’이 문제는 잘 기억했다가 나중에 이리 나리를 만나면 똑바로 물어봐야겠다.“아, 이리 나리하니까 생각났는데, 어제 일곱째가 이리 나리 아내가 임신했다고 했어.” 우문호가 말했다.“….” 원경릉은 완전 어이가 없어서 화가 나 물었다. “이리 나리 아내면 자기 동생이잖아
희상궁 의견은 일단 다른 왕비들이 요부인 혼수로 뭘 해주는지 보고, 격식보다 실용적인 걸 주는 게 제일 낫겠다고 했다. 요부인이 금은보석을 별로 귀히 여기지 않을뿐더러, 관건은 초왕부에 금은보석 자체가 없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원경릉은 왕비들을 전부 이리 나리 저택으로 불러들여 혼수를 어떻게 준비할까 상의했다. 그러나 원래 혼수란 것이 연장자가 손아랫사람에게 장만해 주는 것으로, 다들 요부인보다 어렸기 때문에 혼수란 이름으로 해 줄 수 없지만 성의란 게 있으니 못 할 것도 없었다. 그렇기에 혼수라는 명분이 아닌 그저 공주 쪽에서 적당히 챙겨 주는 것으로 했다.동서들이 이리 나리 저택에서 모인 이유는 시누이인 공주가 회임해 이동이 불편하므로 회합 장소를 옮겨 겸사겸사 공주도 보기로 한 것이었다.어린 시누이에게 다들 애착이 상당했지만 의외로 우문령이 회임한 사실을 원용의 외에 다른 왕비들은 전혀 몰랐다. 전에 시누이가 그렇게 이리 나리와 합방을 원해도 오래 걸려 힘들게 이루어졌으니, 임신도 금방 될 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매사에 느긋하고 합방도 몇 년이나 미루던 이리 나리 부부이니 애를 갖는데도 몇 년은 걸려야 정상인데 이렇게 덜컥 회임하리라곤 아무도 생각 못 해 모두 화들짝 놀랐다.원경릉이 우문령을 진찰하고 초기 임신 반응을 묻자 부끄러워하며 잠이 계속 쏟아지는 것만 제외하면 별다른 반응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입맛은 좀 변해서 신 것도 매운 것도 다 좋고 먹을 수 없으면 견디기 힘들다고 했다.“그래서 그이가 저에게 먹을 걸 장만해 주느라 늑대파 사람들을 다 달달 볶는 바람에 힘들어 하세요.” 우문령이 행복하게 웃었다.“이리 나리께서 전혀 이리 나리답지 않으시네요.” 미색이 말했다.“애처가인 거지.” 원용의가 웃으며 말했다. 원용의는 우문령과 이리 나리의 순수한 사랑을 좋아했다. 그리고 이리 나리는 걸핏하면 돈을 팍팍 들인 선물을 사서 령이에게 주는데 이 호탕함이 또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손 왕비가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집 그분이
명원제도 통 크게 요 부인에게 땅과 저택을 하사해 실질적으로 그들의 생활을 보장해 주었다. 이렇듯 명원제가 딸 시집보내듯 챙겨주는 행동들이 진심으로 첫째 며느리를 아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쨌든 요 부인은 여전히 군주의 어머니이다.혼례 전날 밤 원경릉과 동서들은 요 부인의 저택에 모여 신부를 도와주며 혼례 의식에 따라 진행했다.요 부인의 친정은 요 부인이 본가로 돌아와서 출가하기를 원했지만, 요 부인은 자신의 집에서 조금도 꿈적이지 않기에 그녀가 하자는 대로 하기로 했다.요 부인이 혼례복을 입자 아름다움이 조금도 없어지지 않고 얼굴은 행복으로 가득한 것이 모두가 기쁘기 그지 없었다.호명파를 불러 요 부인의 머리를 빗기게 한 뒤 모두 경단을 먹으러 나가서 원경릉과 요 부인만 방 안에 남았다.요 부인이 일어나 원경릉에게 정중하게 절을 하고 감격한 눈빛으로 고마움을 전했다.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로 태자비에 대한 고마움을 다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이 절 받으세요.”원경릉이 요 부인에게 손을 뻗어 팔목을 잡았다. “그런 말 말고 앉으시오. 우리 얘기 좀 합시다.”요 부인이 앉아서 부드러운 얼굴로 물었다. “태자비, 제 감사 인사는 진심입니다. 태자비가 아니었으면 난 벌써 죽었을 테니 오늘의 행복이 어디 있기나 하겠습니까?”“예전 일을 들먹여서 뭐해요? 앞으로가 새로운 시작인걸요.” 원경릉이 미소를 짓자 요 부인이 살짝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예전 일도 얘기해야죠. 이렇게 좋은 날이 있을 거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없어요. 솔직히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요. 사혼 성지가 내린 뒤로 실감이 나지 않아 결국 안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좋은 일은 항상 저와 인연이 없었으니까요..”“앞으로는 행복한 날만 있을 겁니다. 훼천은 요 부인을 사랑하니까, 앞으로 무슨 일이 있든 훼천은 늘 요 부인 곁을 지키며 사랑할 게 틀림없어요.”요 부인이 감동받아 눈물을 글썽였다. “누군가에게 보호받는다는 느낌은 정말 좋군요. 하늘이 무너져도 두려워할 필요
원경릉이 미색에게 정화 군주를 불러오라고 했다. “이런 경사에는 다 같이 있어야지.”“그래요, 제가 직접 다녀오죠. 안 온다고 하면 꽁꽁 묶어서라도 데려올게요!”항상 못 하는 일이 없는 미색이 말을 타고 금방 정화 군주를 데리고 돌아왔다.미색이 캄캄한 집에 정화 군주의 손목을 잡고 들어서자, 모두가 문 앞에서 서서 기쁜 표정으로 정화 군주를 맞이했다. 그러자 정화 공주는 마음이 따듯해지며 얼굴에 드리웠던 그림자가 사라지고 기쁜 웃음으로 미색과 들어갔다.두 군주도 마침 화장을 마친 참이라 때가 되면 같이 나갈 생각이였다.군주들은 지금 응어리 하나 없이 심지어 아주 기쁜 표정인 것이 훼천을 정말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훼천은 두 군주의 신임과 존경을 얻어낸 것과 다름 없었다.다음날 영친례가 시작되고 훼천이 있는 늑대파 형제들이 호탕한 걸음으로 풍악을 울리며 오는데 영친 대열이 어림잡아 못 되도 백 명은 넘는 것이 진용이 정말 대단했다.동서들은 손을 잡고 복도에 서 있었고, 요 부인은 수모의 부축을 받고 천천히 걸어 나갔다.햇살 좋은 날, 훼천은 신랑 예복을 입고 준마 위에 앉았다. 기쁨과 감격에 찬 훼천이 마침내 학수고대하던 오늘을 맞은 것이다. 사혼 성지가 내린 그날부터 모두 오직 이날만을 기다려 왔다.훼천은 가장 사랑하는 여인을 아내로 맞아 평생 기쁨과 슬픔도 함께 하며 생사를 같이 하겠다며맹세했다.요 부인은 붉은 면사포로 얼굴을 가려 붉은 비단신만 보였으나, 훼천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이글이글한 시선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가마에 오르려는 찰나, 갑자기 훼천의 발소리가 들렸고, 눈앞에 강력한 존재감이 느껴지며 훼천의 손이 요 부인의 손목을 딱 잡았다. “내가 아내를 가마에 태워 주겠소!”그러자 요 부인은 콧날이 시큰했다. 결국 가마를 타는 순간 눈물이 면사포 아래로 떨어지며 훼천의 손등을 타고 흘러 내렸다.훼천이 요 부인의 손을 잡고 담담한 목소리로 다짐했다. “앞으로 다시는 눈물 흘릴 일 없을 거야.”이 한마디 말이
원경릉이 우문호를 부축하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신랑은 술을 주고 당신은 아주 목숨을 준 것같네, 하여간 말려도 듣지를 않아.”“하하하. 좋아서 그래, 내가 너무 좋아서!” 우문호의 팔이 원경릉의 어깨에 걸쳐 있었는데 마차가 흔들리니 속이 울렁거려 또 토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몽롱한 눈으로 원경릉을 보며 아양을 떨었다. “원 선생, 나 지금 당신 입덧 때 느낀 고통을 느끼느 있는 것 같애.”원경릉은 약상자에서 약을 한 알 꺼내 우문호 입에 넣어주며, “꿀떡 삼켜!”우문호가 목을 길게 늘이고 약을 삼키더니 하하 웃으며 말했다. “천재 의원 아내를 두니까 진짜 좋네. 어떤 병에 걸려도 걱정할 필요가 없어!”원경릉이 우문호를 일으켜 앉히며 말했다. “훼천이 혼인한 게 그렇게 좋아?”원경릉은 우문호와 훼천이 이렇게 관계가 좋은 줄은 몰랐다.우문호가 이마를 받치고 말했다. “요 부인 혼례라 그래. 훼천 때문에 행복해서가 아니라. 요 부인 때문에 기분이 좋은 거라고. 자칫하면 평생을 우문군 때문에 망가질 뻔했잖아. 이제 행복해졌으니 안심이야.”원경릉은 다소 의외였다. 매사에 대충대충인 우문호가 갑자기 이렇게 섬세해지다니 말이다.“그래, 나도 안심이네.” 원경릉이 속삭였다.우문호가 일어나 원경릉을 덜썩 끌어안았다. “원 선생, 우리도 고진감래인 셈이야.”원경릉이 고개를 끄덕이려는 찰나 우문호가 크게 웃기 시작했다. “훼천 이 바보, 어쩌면 첫날밤까지 동정일지도 몰라. 이리 나리에게 들었는데 훼천은 전에 여인을 가까이 한 적이 없데.”원경릉도 따라 웃었다. “별걱정을 다 하네.”‘그 일을 할 줄 알고 모르고가 어딨어? 배우지 않아도 다 알아서 할 수 있는 거 아닌가?’한편 신방은 갓난아기 팔뚝만한 용봉화촉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훼천은 요 부인의 면사포를 걷어내더니 한없이 바라만 보고 있었다.반쯤 취한 훼천의 가슴은 기쁨으로 출렁였고 촛불은 바람에 일렁였다. 불빛이 막 타오르는 가운데 요 부인이 화난 얼굴이 슬그머니 보였다. “뭘 봐요?!”훼천
원경릉은 안 왕비 안색이 좋은 것을 보고 강북부 생활이 꽤 괜찮았구나 싶어 마음이 상당히 가벼워져 안왕의 근황은 어떤지부터 물었다.그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안왕에 대해 불신이 가득했기 때문에 안왕에게 대체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알고 싶었다.안 왕비가 말했다. “강북부의 나날은 정말 한가했어요. 남편도 할 일이 없었는데 어쩌다가 셋째 아주버님과 만나 황무지 일대를 개간해서 작물 재배에 관해 상의나 했어요.”“그거 좋네요!” 원경릉이 말했다.“확실히 그렇긴 하죠. 하루종일 무료하긴 했지만 안왕 전하가 이전보다 집에 있는 걸 더 좋아했던 건 어쩌면 안지의 공로일지도 모르겠네요.” 안 왕비가 부드럽게 안지를 바라봤다.안지는 귀엽고 예쁘게 자랐다. 우문씨 집안 특유의 긴 속눈썹으로 눈을 감고 잘 때 특히나 평안하고 고요해 보였다.안지는 정말 정말 침착하고 조용했으며 계란이와는 달랐다. 계란이는 겉으로는 차분하고 부드럽게 보이지만 눈을 뜨는 순간 고요한 작은 얼굴에 뜨거운 불길과 교활함을 숨기고 있는 것 같다는 착각마저 들게 했다.그래서 고요한 모습은 약간 위장이란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건 원경릉 생각일 뿐이고 우문호는 원경릉의 이런 생각에 완전 반대했다. 우문호에게 자신의 딸은 천하에서 제일 착한 아이로 울지도 않고 떼도 안 쓰고 심지어 쌍둥이보다 더 차분했기 때문이었다.‘맞아.” 안 왕비가 순간 뭐가 떠올랐는지 급히 말했다. “셋째 아주버님이 어쩌면 거기서 가정을 꾸릴지도 모르겠네요.”“뭐라고요?!” 원경릉이 놀라서 안 왕비를 노려 보았다. “혼인할 거란 말인가요?”안 왕비가 안지를 안고 살살 흔들어 주며 말했다. “왕야가 하시는 말을 들은 건데 강북부의 주 지부 딸이 셋째 아주버님한테 반해서 종일 쫓아다녔고 둘이 산에서 함께 이틀이나 보낸 적도 있어요. 젊은 남녀다 보니 주 지부는 이미 셋째 아주버님을 사위로 대하고 있고, 셋째 아주버님의 태도가 어떤지는 저도 잘 몰라요. 셋째 아주버님도 경성으로 돌아오시는 중인데 일이 있어 좀 지체된다고
안 왕비가 답했다. “확실한 건 아니고 집안의 가신이 하는 얘기를 들은 거예요. 셋째 아주버님께서 주 아가씨를 데리고 경성으로 오시면 정화 군주가 자신의 진짜 속마음은 사실 함께하고 싶다고 알아채실지도….”원경릉이 놀라 안 왕비 말을 끊었다. “셋째 아주버님이 만약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신다면 머리가 어떻게 된 게 분명해요!”안 왕비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럼, 아주버님이 정말 아가씨를 데리고 왔다면 태자비는 어떻게 할 거예요? 그 아가씨가 죽자 살자 매달리면 사람을 시켜 주 아가씨를 돌려보내야 하는 거 아닌가요?”“아주버님께서 상대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이상 상대도 쉽게 매달릴 수 없어요. 주 아가씨와 상관없으면 자기가 알아서 의심받을 일을 피하기 마련….” 원경릉이 말을 그만두고 잠시 생각해 보더니 안 왕비 말이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일은 그들이 간여할 수 있는 게 아니며 그저 감정적으로 정화 군주가 안타까울 뿐이었다. 사실 위왕이 재혼을 하려고 한다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었다.동서 둘은 마주 보고 하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저녁에 우문호가 돌아오자마자 원경릉이 이 얘기를 했고 우문호가 듣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셋째 형 머리가 진짜 어떻게 된 것인가? 여자를 데리고 와서 뭘 어쩌자는 거지? 안돼 절대, 안 된다!”우문호는 바로 문을 열고 서일을 찾아 사람을 보내 위왕이 주 아가씨를 데리고 경성으로 오고 있는지 물어보게 했고, 서일은 곧바로 귀영위를 보냈다.서일처럼 건성건성 사는 사람도 위왕이 여자를 데리고 오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원경릉이 우문호에게 제안했다. “이 일은 안 왕비도 확실한 게 아니라고 했으니 안왕에게 물어보는 게 어때? 안왕은 위왕이랑 있었던 시간이 많았으니까, 형제지간에 비밀을 숨기거나 하지 않았을 거야. 위왕이 정말 주 아가씨한테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좀 물어봐 줄래? 마음이 있는 거면 강북부에서 우리 모르게 혼인하면 되니까 정화 군주에게도 얘기하지 말라고 해.”“위왕이 다른 여자를 아
우문호가 열 받아서 소리쳤다. “그게 무슨 헛소리야! 내가 왜 셋째 형 생각을 안 해? 하지만 그 일이 있은 지 얼마나 됐다고. 셋째 형이 앞으로 혼인하고 첩을 다섯을 두든 일곱을 두든 내 알 바 아니지만 지금은 안 돼. 이 일이 조용히 그냥 지나갈 거 같아?”“어쨌든 이 일은 내가 관여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네가 직접 형이랑 얘기해. 난 물어볼 일 없으니까.”“가운데서 나쁜 짓 꾸미고 있는 거 아니지?” 우문호가 의심가는 표정으로 묻자 안왕이 불쾌한 듯 대답했다. “내가 무는 짓을 꾸미긴 뭘 꾸며! 왜? 내가 주 아가씨를 형 침상에 보낼까 봐? 넌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봐? 넌 태자지만 아직 황제가 아냐. 이렇게 남일에 참견하는 게 좋으면 초왕부나 잘 관리하셔. 다른 사람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말고.”우문호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그 말은 두 사람이 이미 엎어진 물이란 소리야?”안왕이 뒷짐을 지더니 모르는척 했다. “난 몰라,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셋째 형과 주 아가씨 일에 관해 내가 알고 있는 건 주 아가씨가 도망치는 형을 쫓아다니며 형이 아니면 혼인하지 않겠다고 한 것 뿐이야. 아, 주 지부도 나한테 중간에서 중매를 설 생각 없냐고 물어본 적이 있어. 한 번 그래 봤는데 그것 때문에 위왕한테 쫓겨났다고 했지.”“쫓겨났다고? 그럼 셋째 형은 그런 뜻이 아니라는 거네?” 우문호는 그제서야 마음이 좀 놓였다. 하지만 곧 눈살을 찌푸리며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물었다. “근데 본인한테 그럴 마음이 없으면 경성에는 왜 데리고 오는 건데?”“아마 주 아가씨가 쫓아올 거야. 셋째 형은 너도 알다시피 거절을 잘 못하잖아. 고작해야 거들떠보지 않는 정도지. 게다가 상경 길은 아가씨는 아가씨대로 형은 형대로라 쫓아 보내기 쉽지 않았을 거야. 그리고 이 일에 네가 뭘 그렇게 서둘러? 게다가 열까지 받을 필요가 있는 거야?” 안왕이 우문호의 말투가 누그러진 것을 듣고 태도를 약간 바뀌었다. 우문호가 안왕을 흘끔 보았다. “원 선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