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는 절대적으로 희귀한 물품이기 때문에 특히 파운데이션과 립스틱은 다들 써보더니 엄청 좋다며 기뻐했다원경릉은 기뻐하는 모두를 바라보며 앞으로 현대에 갔다오면 선물을 열심히 사야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모인지 한 시간쯤 됐을 때 우문호가 사람을 보내 원경릉에게 입궁하라고 했다.원경릉은 그제서야 오랜 기간 출타했는데 입궁해서 문안도 드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그러자 모두 원경릉이 돌아오면 같이 밥을 먹자며 기다리겠다고 했다. 원경릉은 엄청 사랑받는 응석받이처럼 기뻐했다. “제가 지금 이렇게 환영받는 입장이 된 거죠?”“됐거든요, 태자비 마마께서 안 계시면 다들 모일 데가 없어서 그런 거예요.” 미색이 웃으며 말했는데 이 말에 다들 한숨을 쉬었다. 사람은 다 똑같은 사람인데 왜 태자비가 없으면 모일 수 없겠는가. 중심엔 역시 태자비가 있어야 한다.원경릉이 웃으며 밖으로 나가 옷을 갈아입고 희상궁에게 가발을 빗겨달라고 했다. 앞으로 몇 달간 이 가발은 필수불가결이다.우문호도 그쪽에서 머리를 짧게 잘라 지금 묶어서 올릴 수가 없으므로 가발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오히려 세 어르신들은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짧은 머리에 새로운 스타일의 모자를 썼다.부부는 아이들을 데리고 마차를 탔다. 마차가 서서히 움직이자 우문호는 문득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느려, 마차는 너무 느리다고. 아무리 타도 적응이 안 되네!”현대에서 외출할 때는 차를 탔다. 차가 안 막힐 때는 거의 날아다니는 수준인데 여기 마차는 빠르면 너무 흔들리고 천천히 가면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들고 만다.현대를 여행하고 돌아온 후유증이 처음엔 머문 시간이 너무 짧아 없었는데, 이번은 보름이 넘게 있으며 그쪽에 익숙해졌다가 갑자기 또 돌아오니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아빠, 다음번엔 제가 자전거를 가져다 드릴게요!” 만두가 자상하게 말했다.“탈 줄 몰라!” 우문호가 머쓱하게 말했다. 자전거를 현대에서 한번 타봤는데 못 타겠다.만두가 말했다. “두발 자전거를 못 타도 세발 자전거는
입궐하자 명원제가 아이들을 보고 너무 기쁜 나머지 한동안 아이들과 얘기를 나누고 나서야 부부에게 태상황과 주재상의 상태가 어떤지 물었다.태상황은 경성으로 돌아와 바로 별장으로 가서 명원제는 아직 태상황한테 문안을 드리지 못했다. 일단 아들과 먼저 마무리 지어야 할 문제가 하나 있어 그걸 마치고 용기를 내서 태상황에게 말할 예정이었다. 그래서 명원제는 손자 손녀들과 잠시 환담을 나눈 후 원경릉에게 말했다. “너는 아이들을 데리고 황귀비에게 문안가거라. 짐은 다섯째와 할 말이 있다.”원경릉은 마침 황귀비를 보고 싶던 참이라 명원제의 분부를 듣고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다가, 물러가겠다는 인사를 빼먹을 것을 문앞에서 비로소 떠올리고 얼른 돌아서서 인사를 올렸다.다행히 명원제도 그곳엔 신경쓰지 않다. 머리속엔 온통 다섯째에게 뭐라고 말을 꺼낼까 하는 생각뿐이었다.원경릉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자 명원제는 목여 태감에게 밖에 나가 입구를 지켜달라고 했다. 태자와 단둘이 얘기를 나누고 싶다는 뜻이었다.우문호는 이미 짚이는 데가 있었지만 모르는 척 했다. 아바마마는 보수적이고 신중한 사람이라 눈 앞에 있어도 자신이 인지하는 범위를 넘어선 일에 대해서는 받아들지 못하는 경향이 있어서 우문호가 안풍친왕과 현대에 간 것이나 안풍친왕이 아바마마에게 퇴위하도록 밀어붙인 일을 쉽게 말할 수 없었다.명원제가 우문호에게 물었다. “왕강이 상소를 보내 회강 하류 북강현에 제방을 쌓자고 하는데 네 생각은 어떠냐?”우문호가 물었다. “북강현이 혹시 어디입니까?”“괴고묘진의 강단 이라는 곳이야.”우문호가 잠시 생각해보더니 답했다. “소신이 생각하기로는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왕강이 왜 거기에 제방을 쌓자고 했을까요? 괴고묘진은 지대가 가파르고 높습니다. 강바닥이 깊어 물길이 10리를 벗어나지 않고 나뉘어 흘러 더 이상의 조치를 취할 필요가 없지만 목면진은 지세가 낮아 걸핏하면 물난리가 나서 거기에 제방을 세우는 건 그래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사실 목면진 부근에서 강물을 끌어
우문호는 순간 안풍친왕이 자신에게 이 일을 지금 알려준 사실에 약간 원망하는 마음이 들었다. 사전에 몰랐더라면 지금 분명 굉장히 경악하며 펄쩍 뛰었을 것이다.하지만 우문호는 경악한 척을 할 줄 몰랐다. 그저 묵묵히 아바마마를 보며 순간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몰랐다. 하지만 우문호의 이런 반응이 명원제에게는 너무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으로 비쳐져 설득하기 시작했다. “짐도 너무 바로 이 일이 결정된 것을 잘 안다. 분명 당분간 네가 받아들이기 힘들겠지. 하지만 걱정하지 말거라. 짐이 바로 네게 보위를 넘기는 게 아니라 네게 3개월의 시간을 줄 거야. 짐도 모든 일을 잘 대비해 놓고 널 위해 장애물을 깨끗히 치워 줄 거다.”우문호는 아바마마의 말을 듣고 마음 속으로 감동과 함께 복잡한 감정이 밀려들었다. 아바마마도 자신을 위해 전심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아바마마께서 아직 이렇게나 젊으시니 급하게 퇴위하실 필요는 없다고 사료됩니다.” 우문호가 말했다. 명원제가 우문호를 그윽하게 바라보더니 눈가에 은은하게 자랑스러움이 넘쳤다. “아바마마는 젊지 않아. 요 몇년 점점 몸이 따라주지 않는구나. 노년에 우둔하고 어리석은 행동을 하기 전에 지금이 퇴위하기에 가장 적합한 시기야. 넌 걱정하지 마라. 짐이 퇴위한다고 해도 늘 너를 볼 수 있고 조정 일은 네가 원한다면 짐과 언제든 얘기할 수 있어. 네가 원하지 않으면 짐은 널 믿는다.”명원제가 황제로 있던 10여년 내내 배후에 태상황이 있었다. 비록 자신에게는 태상황이 필요했지만 다섯째는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을 거라고 명원제는 생각했다. 그래서 정말 권력을 완전히 넘겨주는 것이야말로 다섯째에 대한 가장 큰 신뢰였다.명원제는 말을 마치고 가볍게 우문호의 어깨를 두드리며 살짝 촉촉한 눈빛으로 우문호를 바라봤다. “짐은 너를 믿는다. 네가 북당에 전에 없는 번영과 영화, 강성함을 천추 만대에 가져올 것이라 생각한다!”우문호는 콧잔등이 시큰해 지며 서서히 무릎을 꿇고 고개를 들어 정중하고도 장엄한 표정을 지
청란대가를 지나는데 한 사람이 당나귀를 타고 원경릉의 마차를 스치고 지나갔다. 우문호가 마침 가리개를 젖히고 ‘경성의 변화를 못 본지도 오래됐구나’라고 생각하며 밖을 바라보고 있었는는데, 순간 당나귀를 탄 사람과 눈이 마주치자 경악하고 말았다. ‘안풍친왕? 어, 현대에서 오픈카를 타고 달리던 품격은 어디가고 여기서는 당나귀를 타는 거지?’ 게다가 안풍친왕가 당나귀가 정말 어울리지 않았다. 안풍친왕은 기골이 장대하기에 비실거리는 당나귀를 타고 있으니 왠지 당나귀를 괴롭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큰 할아버지?” 원경릉이 물어봤다. 얼핏 본 게 그런 것 같았다.“응, 분명 입궁하시는 길일 거야.” 우문호가 말했다. 이 길은 궁으로 향하는 길로 매화장의 일은 아바마마와 잘 얘기가 됐는지 모르겠다.초왕부로 돌아오니 냉정언과 홍엽은 아직 오지 않았다. 냉정언은 성 밖에서 일을 보고 있고 홍엽은 형부 관할 사건을 하나 처리하고 있었다. 그 사건은 상당히 괴이해서 형부에서 직접 접수해 며칠을 진행했으나 뾰족한 수가 없었다. 결국 형부는 냉재상에게 지원을 요청했고 냉재상이 홍엽을 파견한 것이다.하지만 이미 홍엽에게 연락을 취해 둘 다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때 구사가 한 마디 했다. “괜찮아, 그 사람들은 천천히 오라고 하고 우리 먼저 천륜의 기쁨을 즐기자고, 어차피 아이들 얘기에 두 사람은 할 얘기가 없잖아!”바꿔 말해 공통의 화제가 없다는 것이었다!이제 초왕부는 유치원 학부모 모임이 되었다. 구사는 한 아이의 아버지로 순조롭게 아이를 기른 경험을 가진 자이다. 이 많은 남자들 중 경험이 제일 풍부했으나, 기저귀 갈고 대소변 누이고 밥을 먹이는 것은 잘하지만 교육은 소리지르거나 호통치는 것에 의존하고 있었다.다들 아이들에 대한 얘기를 하고 이어지는 화제는 서일의 이빨이었다.제왕까지 얘기에 참여했다. “이거 말하지 않을 수가 없군. 서일이 앞니가 생긴 뒤로 사람이 완전 달라 보이는 것 같다네. 이전보다 똑똑해 보인단 말이지! 제일 중요한 건 이제 보기에 그
그렇게 한 쪽은 술잔이 오가며 형제간의 전우애로 흥청거렸고, 다른 한 쪽에서는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가운데 잡다한 집안 일을 얘기하느라 정신이 없었다.초왕부 하늘은 엷은 구름이 흩어졌다 뭉쳤다 하며 봄날의 습기는 완전히 사라지고 초여름이 성큼 모퉁이까지 닥쳐있었다.연회를 마치고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고 이미 해시가 되었을 무렵, 문지기가 와 냉정언과 홍엽이 왔다고 보고했다. 두 사람은 밤 그림자에 감싸며 들어왔다. 다급해 보이는 행색에 먼지가 풀풀 날렸다.우문호와 원경릉이 복도에 서서 맞이했다. 원경릉 어깨에 있던 원숭이는 홍엽이 문으로 들어오는 소리에 깍깍 울며 초조해 했다.홍엽이 보이자마자 원숭이는 한달음에 홍엽에게 뛰어들어 가슴에 안긴 채 감격해서 울부짖었다.홍엽은 처음에 불빛이 어스름해서 뭔가가 달려오는 걸 보고 개라고 생각했기에 그 개가 바로 자기 얼굴에 뛰어올라 머리를 끌어안아 깜짝놀랐다. 원숭이인줄은 꿈에도 모른 홍엽이 화가 나서 소리쳤다. “어서 내 머리에서 내려와!”홍엽이 원숭이의 꼬리를 잡고 밖으로 내던지려 하자 원숭이가 홍엽의 목을 꽉 붙잡고 슬픔과 기쁨의 눈물을 머금은 채 똘망똘망한 눈으로 홍엽을 바라봤다.그러자 홍엽이 놀라서 천천히 손을 놓고 원숭이를 보더니 순간 얼굴에 경악함은 어디가고 기쁨으로 가득차 있었다.비록 이 원숭이가 홍엽의 기억 속의 원숭이가 아니긴 했지만 눈이 마주쳤을 때의 익숙함으로 홍엽은 영혼 깊숙한 곳까지 참을 수 없이 떨려왔다. 홍엽은 어쩔 줄 몰라하며 원경릉을 쳐다봤다. 눈에서 눈물이 뿌옇게 차오르고 한 마디 답을 구했지만 물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원하는 답이 아닐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원경릉이 다가가서 홍엽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걔예요. 당신이 오래 기다렸던 원숭이가!”홍엽의 입술이 떨리고 눈물이 왈칵 터져나와 눈 앞에 사람도 사물도 구분할 수가 없을 정도가 되었다. 한손으로 원숭이를 안고 똑바로 보기 위해 노력했지만 눈물이 계속 흘러나와 모든 것을 덮어버려 도무지 자세히 볼 수가 없었
냉정언은 잠시 후 집으로 돌아가고 원경릉과 우문호는 살짝 안도의 숨을 내 쉰 뒤 손을 잡고 복도를 걸어 소월각으로 갔다.홍엽은 우문호와 원경릉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알게 해주는 비교대상 같은 존재였다.…다음날, 홍엽이 원숭이를 데리고 초왕부를 찾아왔다. 원숭이가 홍엽 어깨 위에 서 있는 모습이 꼭 원경릉 어깨 위에 있을 때랑 같았다. 홍엽의 얼굴에는 슬픈 빛이 없고 눈빛은 한껏 기쁨에 들뗘 있어 원경릉 앞에서 원숭이에게 말했다. “태자비 마마께서 도와주신 덕분에 우리가 다시 만났는데 뭐라고 감사드려야 할 지 모르겠어.”그리고 홍엽이 원경릉에게 예를 취하며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정말 고맙습니다!”원숭이가 이번엔 원경릉의 어깨에 올라 앉았다. 손을 뻗어 원경릉의 머리를 안고 팔로 한바퀴 감은 모습이 마치 원경릉이 이마에 띠를 두른 것 같았다.원경릉이 원숭이를 안아 내리는데 원경릉과 홍엽 앞에서 원숭이는 분명하게 다른 반응을 보였다. 원경릉 앞에서는 장난꾸러기였으나 홍엽 앞에서는 상당히 침착한 모습이었다.아마도 그들이 함께 겪은 나날이 기쁨보다는 고난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감사하실 것 없어요. 당연한 일인 걸요. 원숭이가 좋아진 게 제 공로도 아니고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원숭이의 진짜 은인께 함께 가요.” 원경릉이 미소지었다.두 사람이 원숭이와 함께 들어가는데 막 나오는 우문호와 마주쳐 우문호가 홍엽을 보고 멈칫햇다. “어, 이렇게 이른 시간에 여긴 왜?”“태자비 마마께 감사인사를 드리러 왔지!” 홍엽이 얘기하며 원숭이를 더 꽉 안아 들었다. 태자가위협적이진 않았지만 아직 약간의 경계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었다.“감사는 입으로만 하는 게 아니야. 실용적인 행동으로 해야 감사지.” 우문호가 장난을 걸었지만 홍엽은 들은척도 안 했다.하지만 우문호는 홍엽을 이렇게 어리버리 놓칠 리가 없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셈이야? 그래도 경성을 떠날 거야? 자네가 경성을 떠나면 원숭이가 따라갈 수 없는 건 아니지만, 원숭이는 약을 먹어야 하는데
그렇게 우문호가 열정적으로 주동해서 홍엽은 반쯤 떠밀려 서재로 들어갔다. 아마도 홍엽은 우문호의 손바닥에서 이제 벗어나지 못할것이다. 한편 명원제는 오늘 별장으로 가기 위해 아침 일찍 회의를 마치고 조정 중신들을 돌려보낸 뒤 마차를 준비시키고 구사와 목여 태감을 동행해 조용히 출행했다.별장으로 가는 명원제의 심정은 사실 불안하기 그지없었다.하지만 배수의 진을 치고 결사의 각오도 있긴 했다. 자신이 퇴위한 뒤 아바마마와 관계가 천천히 회복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있었고, 제일 중요한 건 역시 자신이 진심으로 쉬고 싶다는 사실이었다. 자신의 일생 대부분을 태자와 황제라는 임무를 잘 해내기 위해 노력하는데 보내왔으므로, 이제 잘했는지 여부는 후세의 평가를 기다리면 된다. 명원제는 사람을 시켜 미리 태상황에게 자신이 온다는 것을 알라지 않고 황실 별장 입구에 불현듯 나타났다.명원제는 마차에서 내려 구사와 목여 태감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지기가 태상황에게 명원제가 왔음을 보고하자 태상황은 다소 놀랐다. 명원제의 예전 습관에 따르면 이렇게 중대한 일을 자신에게 보고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묻고자 할 때 언제나 사나흘은 따져봐야했기 때문이었다.이 일이 그만큼 절박하고, 명원제가 진심으로 마음을 굳혔다는 뜻이기도 했다.사람을 시켜 명원제에게 서재에서 기다리게 한 뒤, 태상황은 차를 한 잔 마시고 서재로 갔다.가기 전에 주재상이 태상황에게 말했다. “잘 말씀하세요. 자연스럽게.”주재상은 사실 황제가 퇴위하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황제가 제대로 못해서가 아니라 북당이 발전의 길을 걷고자하는 이유였다. 명원제는 보수적이고 신중한 성격이라 황제도 피곤하고 신하들도 다 지친 상태였다. 부자는 서재에서 그렇게 두시간 동안이나 얘기를 나눴다.퇴위 외에도 명원제는 한 가지 일을 더 태상황에게 애기했는데, 바로 어제 저녁일로 안풍친왕이 입궁해서 매화장을 다시 살 수 있냐고 물어왔다는 것이다.태상황이 불쾌한듯 말했다. “이 일을 왜 과인에게 묻느냐?
태상황은 확실히 계획이 있었다. 명원제가 어리둥절한 상태로 돌아간 뒤 태상황은 소요공에게 이전에 휘종제의 저택인 숙왕부를 다시 수리하도록 시켰다. 아주 좋게 수리할 필요없이 살 수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소요공이 물었다. “그야 간단하죠. 며칠 정리하면 다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로요? 이사가시게요?”“휘형이 이사갈 것이다!” 태상황이 말했다.“가시려고 하겠어요? 안 될 거 같은데요?” 소요공이 고개를 저었다.“아니, 분명 그럴 거야!” 태상황이 틀림없다고 했다.현대에서 안풍친왕이 그랬다. 적성루 조직은 한번도 해산한 적이 없다고. 말을 뱉었으면 그대로 지켜야 한다. 안풍친왕도 반드시 서둘러 이 일을 성사시키려 노력할 게 틀림없다.훼천과 요부인의 혼례 전에 삼대 거두는 안풍친왕 부부를 데리고 숙왕부로 갔다. 뒤로는 떼버리지 못한 일련의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과 노부인 몇 명이 따르고 있었다.태상황은 또 특별히 원경릉을 오라고 해서 안풍친왕비와 같이 있으며 숙왕부에 사는 게 좋겠다고 설득하는 역할을 맡겼다. 낙엽이 떨어지면 흙이 되어 뿌리로 돌아가듯이, 만년이 되면 어린 시절에 살았던 곳에서 살기를 바라는 법이라고 했다. 그래서 원경릉은 흔쾌히 동의하고 최선을 다해 임무를 완수하겠다고 약속했다.하지만 태상황이 탄식하며 반대했다. “매화장을 팔더니 뜻밖에 다시 입궁해서 이번엔 황제에게 30개월 할부로 매화장을 다시 사겠다는 거야. 과인은 휘형 부부를 다시 산속에 살게 할 수 없어. 반드시 돌아와야 해. 이 강산에는 휘형 부부의 몫이 있는 걸.”“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꼭 안풍친왕비 마마를 설득할 게요. 왕비 마마께서 오시기만 하면 왕야는 반드시 오실 테니까요.”“그래, 하지만 빨리 해내야 해. 아니면 경성을 떠나버릴 지도 모르거든.”“예, 알겠어요!” 원경릉이 대답했다.간단하게 수리를 마친 숙왕부는 기억 속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문으로 들어가면 가림벽으로 가려져 있어 본관 대문이 보이지 않고 벽을 돌아가면 하늘을 찌를 듯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