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취한 우문호기왕비가 폐병으로 죽어도 아무도 그녀의 사인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고 부모와 형제는 계속 기왕을 지지할 것이다. 혹시라도 기왕이 다시 한 번 상심할까 황제는 기왕을 더 측은하게 여겨 결국 기왕비는 회왕을 돌보다가 안타깝게 병을 얻은 것으로 될 것이다. 멀쩡하게 살인사건의 공로를 우문호에게 넘겨준 건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다.만약 이런 식으로 기왕을 압박하지 않으면 기왕비는 철저하게 이용 가치를 잃게 된다.기왕비를 잃으면 백배는 고통을 겪을 것이란 걸 끊임없이 상기시켜 줘야 기왕을 장악할 수 있다.경조부는 오늘밤 공로를 치하하는 분위기다.우문호는 술을 잔뜩 마셨는데 오늘 밤은 허물없이 경조부 관원들이 권하는 축하주를 마셔서 정신을 차리고 보면 과음상태로 과음도 이만저만 많이 마신 게 아니다.서일이 우문호를 초왕부 입구까지 데려다 주니 우문호는 마차를 내리자마자 문간에 있는 늙은 회화나무에 한바탕 토했다. 완전 인간 분수로 서일이 보고는 덜덜 떨린 정도로 사람이 토하다 죽을 수도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우문호가 다 토하더니 술이 좀 깨서 서일을 가리키며 호통을 치는데, “너……운전 그 따위로 할 거야?”서일이 우문호를 부축하며, “예, 예, 소인이 잘못했습니다. 소월각으로 돌아가십시다.”우문호는 서일의 손을 뿌리치며, 노기 충천해서: “부축할 필요 없다. 난 봉의각으로 갈 거야.”“예, 알겠습니다. 왕비마마께 가십시다.” 서일이 따라가면서 보니 우문호가 갈지자로 허위허위 걷는데 넘어질까 걱정이다.“가서 죄를 물을 것이다!” 우문호가 청천벽력같이 외쳤다. “지가 뭔 데? 날 그렇게 대할 수가 있어?”“왕야, 목소리 좀 줄이세요!” 서일이 차마 입을 틀어막지는 못하고 말했다.이 말을 왕비께서 들으시면 또 화를 내시겠네.우문호는 비틀비틀 소리를 지르며 봉의각 입구에 도착했다.문 앞의 나무를 붙들고 다시 한번 거하게 토하는데 다바오조차 슬금슬금 피해서 저 멀리 도망갔다.우문호는 다 토하고나서 계속 쩌렁쩌렁 소리를 치며, “
우문호는 머리를 움켜쥔 채 집중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관계없는 이들은 다 나가거라!”그가 손을 휘저으며 중얼거렸다. 그의 말을 듣고 기상궁과 기라가 황급히 문을 닫고 밖으로 나왔다. 우문호는 격동된 표정으로 원경릉을 바라보며 “너…… 화내지 마.”라고 말했다.“나 화 안 났어.” 원경릉이 답했다.“거짓말!”우문호는 그저께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원경릉이 화를 내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너 취했구나!”원경릉이 말했다.그는 탁자를 내리치더니 “본왕은 취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원경릉은 그의 부어오른 손바닥을 보며 “됐어. 나 화 안 났어.”라고 말했다.“난 네 말을 믿지 않아, 너는 분명히 화났다! 네가 물어보는 것에 대해 본왕이 말했지 않았느냐, 근데 넌 계속해서 또 물어보고 또 물어보고!”술기운 탓인지 그가 주절주절 계속 말을 했다.“그래, 내가 잘 못 했어. 내가 괜한 걸 물어봤네.”원경릉은 이틀 내내 괴로웠기에 지금, 이 순간 그와 입씨름하기 싫었다. “물어봐도 돼, 근데 지겹게 계속 묻지는 마. 본왕이 말했잖아 아니라고, 근데 넌 안 믿고, 또 물어보고.”우문호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러자 듣고 있던 그녀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나 계속 안 물어봤어, 너도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잖아.” “본왕이 말했잖아 아니라고!”그의 눈에는 원망스러움이 담겨있었다.아, 가소롭다. “솔직히 말해봐 맞잖아!”우문호는 노발대발하며“아니라고, 네가 나를 우습게 생각하니까 본왕이 그랬을 거라고 하는 거지.”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 원경릉은 어리둥절했다.“무슨 뜻이야? 내가 너를 우습게 생각한다고? 내가 너를 어떻게 생각한다는 건대?”“아!니!라!고!” 우문호는 한 글자 한 글자 원망의 눈빛을 담아 원경릉에게 내질렀다.“자세히 설명해봐!”원경릉이 그의 눈을 쳐다보자 우문호는 순간 흠칫하며 뒷걸음질을 칠 뻔했다. 술기운 때문인지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아무튼 아니야…….”원경릉은 손사래를 치며 “그래, 아니라고
우문호는 고개를 숙여 원경릉의 손목을 살짝 물었다. 그는 그녀를 다치게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렇게라도 그의 자존심은 지키고 싶었다. 그가 그녀를 깨문 자리에는 물린 자국도 남지 않았다.“우리 이제 그만 싸우자. 싸우면 마음만 다쳐.”그는 슬픈 얼굴로 그녀의 눈을 보았다.원경릉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래. 우리 그만 싸우자.”라고 말했다.“안아줘.”우문호가 두 팔을 벌려 그녀를 안더니, 한순간에 그의 무거운 몸이 그녀를 덮쳤다.원경릉은 웃으며 “바닥에서 이러지 말고 할 말 있으면 침상으로 올라가서 하자.”라고 말했지만, 그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우문호, 일어나!” 원경릉이 그의 등을 두드렸다. 그때, 그녀의 귓가에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원경릉은 그의 밑에 깔린 채 힘없이 두 팔을 늘어뜨렸다.‘좋아 잠들었다 이거지?’그녀는 하는 수없이 서일을 불러 그를 침상으로 옮겼다. 원경릉은 잠자는 그의 등을 토닥토닥 어루만졌다. 해장국이 도착해서 그를 깨우려고도 했지만, 그는 잠에 깊게 들었는지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녀는 하는 수없이 우문호를 자게 내버려 두었다.그녀는 잠옷을 입고, 그의 가슴에 기대 누웠다. 그의 말을 믿어도 될까? 정말 궁녀가 못생겨서 그랬다고? 그녀는 방금 전 상황을 생각하니 웃음이 터졌다. 원경릉이 화를 낼까 봐 거짓말을 한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가 원경릉을 많이 아끼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녀는 그의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정말 신경쓰지 않았다.‘근데 정말 그의 말이 맞을까?’누워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졸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하품을 연거푸 하더니 잠이 들었다.얼마나 잤을까 몸이 무겁게 느껴졌다. 그녀는 비몽사몽한 상태로 눈을 떴다가, 쏟아지는 졸음에 다시 눈을 감고 잠이 들었다.얼마 후 우문호는 정신이 들었다. 우문호는 원경릉을 안은 채 그녀의 귀에 자신을 입술을 가져다 댔다.피곤했던 원경릉은 “좀 더 자.”라고 말했다.“안 잘래, 안 졸려!”우문호는 입을 삐죽거리더니“네가 이틀 동안
“그럼 모비가 너한테 어의에게 진찰 받으라고 하지 않았어?”원경릉이 물었다.“어의를 매번 보냈지, 근데 내가 협조하지 않아서, 계속 화를 내셨어.”우문호가 답했다.우문호는 그녀에게 볼을 비비며 “화 안 낼거지?”라고 물었다.“원래 화 안 났어. 내가 그날 밤에 화 안 낸다고 말했잖아.”“거짓말 마. 난 더 이상 여자를 믿지 않아.”역시 탕양의 말이 맞다. 여자가 하는 말은 다 믿으면 안된다.우문호가 원경릉에게 말한 것에 반은 사실이고 반은 거짓이다. 당시 모비는 두 명의 궁녀를 데리고 와서 그에게 고르라고 했다. 그가 둘 중에 하나를 고르자, 모비는 그가 고른 궁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다른 궁녀로 바꿔버렸다. 그 당시 우문호는 모비가 자신의 의견을 묻지 않고, 궁녀를 바꾸자 반항심에 그 궁녀를 건드리지 않았다. 그리고 모비가 고른 그 궁녀는 못생겨도 너무 못생겼었다. 이 사실을 안 모비는 그에게 병이 있다고 여기고 몇 년 동안이나 그에게 치료를 권했지만, 그는 계속해서 거절했다. 만약 우문호가 어의를 만난다면, 그가 아무 병이 없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우문호가 그 동안 모비를 속여왔다는 것이 밝혀지게 된다. 그래서 우문호는 곁방 궁녀나 첩도 두지 않았다.공주부에 관한 소문이 돌자 모비는 우문호가 억울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모비는 그가 여자에게 관심이 없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자 그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뜨렸다.원경릉은 그의 해괴한 웃음소리에 깜짝 놀라 그를 보며 “뭐가 웃겨?”라고 물었다.“아무것도 아냐!”우문호가 웃음을 멈추었다.원경릉은 그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우문호의 말을 곱씹으며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똑똑한 신여성이었기에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않기로 결심했다. ‘과거는 과거일 뿐, 지금 중요한 것은 현재다. 현재에 집중하자!’다음날 우문호는 관아로 돌아갔고, 원경릉은 명원제에게 회왕의 상태를 보고하기 위해 궁으로 향했다. 이른
상선은 태상황을 모신 지 수십 년이 되었지만, 수십 년 동안 그의 눈치는 전혀 늘지 않았다.상선은 멋쩍은 표정으로“그럴 필요 없으십니다…….”라고 말했다.원경릉은 미소를 지으며 태상황의 관자놀이를 눌렀다.‘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점점 아이 같아진다고 하더니, 태상황도 관심이 고픈 어린아이 같구나.’얼마나 주물렀을까, 태상황이 그녀에게 앉으라고 하더니 떡을 하나 주었다.“다친건 다 나았느냐?”태상황이 물었다.“괜찮습니다!” 원경릉이 떡을 집어들고는 방글방글 웃으며 대답했다.“바보 같긴, 넌 단명하고 싶은거지?”태상황은 늘 그렇든 독설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다.원경릉은 입을 삐죽거리며 “소인. 그렇게 쉽게 안 죽습니다.”라고 말했다.그녀는 태상황이 모진 소리를 할 것을 예상했다는 듯 한 표정을 지었다.그러자 태상황은 소처럼 큰 눈을 부릅뜨고 그녀를 보았다.“이전에 네가 입궁했을 때, 과인이 너를 꾸짖으며, 모든 일에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라고 했던 거 기억하느냐? 설마 무뇌라서 잊은 건 아니겠지?”원경릉은 태상황의 말에 ‘무뇌’라는 말에 입이 떡 벌어졌다. 과거에도 저런 말이 있었다니.“알죠. 압니다. 제가 잠깐 방심했나 봅니다.” 원경릉은 욕을 먹어도 싸다. 회왕이 독을 먹고 죽을 뻔했던 그날, 그녀도 초왕부로 돌아갈 때, 마땅히 주위를 경계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적들이 회왕을 노리고 있다는 생각만 했지, 그녀까지 죽이려고 할 거라는 생각은 못 했다.“방심하면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태상황이 이런 말을 해봤자 뭐 하겠느냐는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 가끔 보면 머리는 좋은데 다른 방면으로 젬병인 부류가 있다. 원경릉이 그 부류에 속한다. 이런 부류들은 한 가지의 결말로 수렴하는데, 그 결과는 바로 죽음이다.태상황과 대화를 하고 있는데 어서방 태감이 와서는 “왕비, 황상께서 부르십니다.”라고 말했다.태감의 말을 듣고 원경릉은‘오’하고 일어나서 태상황에게 인사를 했다.“잠깐만!”태상황이 그녀를 불러 세웠다.원경릉이
“왕비님 어서 들고 가십시오. 정말 보기 드문 귀한 비취입니다. 이 비취는 소요후(逍遙侯)가 이틀 전에 입궁해 태상황님께 선물한 비취로서 태상황님께서 비취를 받고 나서 무척 기뻐하셨습니다. 허나 자신의 몫은 남기지 않고 왕비님께 드리는 겁니다.”상선이 말했다.이 말을 들은 원경릉은 큰 감동을 받았다. 그녀는 고민되는 듯 상자를 만지작거렸다. “도대체 어쩌자는 것이냐? 필요 없으면 그냥 두고 나가거라!”태상황이 답답하다는 듯 화를 냈다.원경릉은 한 손으로 나무 상자를 낚아채더니“손자며느리 나가보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몸을 굽혀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귀한 비취임을 알기에 부담스러워 거절할까 고민도 했지만, 그녀는 태상황이 자신을 생각해 주는 마음을 져버릴 수는 없었다.그녀는 상자를 손에 쥐고는 건곤전을 나와 명원제를 찾아갔다.명원제가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을 보고 놀라서 “이건 소요후가 태상황님에게 준 비취가 아니냐? 이걸 왜? 이걸 다 너에게 주신 거냐?”라고 물었다.“예 맞아요, 부황께서도 갖고 싶으신가요? 저도 받은 것이지만 생색 좀 낼게요. 여기요!”원경릉은 위풍당당한 표정으로 나무 상자에 든 비취를 내밀었다.명원제는 손을 저으며 “태상황님께서 너에게 준 물건이니 잘 가지고 있어라. 짐은 이런 돌에 관심이 없다. 보아하니 태상황님께서 너를 매우 아끼시는 것 같구나.”라고 말했다.‘태상황께서 제일 좋아하는 보석이 비취 아닌가……. 소요후에게 비취를 받자마자 급히 상선을 시켜 잘 보관하게 두시길래 뭘 하시려나 했더니……. 이 귀한 걸 원경릉에게 주다니? 보아하니 태상황님께서 이 아이를 보통 예뻐하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태상황님의 뜻은……’명원제는 곰곰이 생각했다.자신을 불러놓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명원제를 보고 원경릉은 멋쩍은 듯 서있었다.“여섯째의 병세가 어떻느냐? 말해보거라.” 명원제가 그녀에게 물었다.원경릉은 회왕의 치료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명원제는 그동안 사람을 시켜 회왕부의 소식을 들었지만, 이렇게 원경릉
“나가보거라. 오늘 짐이 말한 것은 다섯째와 잘 의논해 보거라.” 명원제가 말했다.원경릉은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명원제의 말을 곱씹을수록 그녀의 마음속엔 의심의 싹이 올라왔다.그날 저녁, 원경릉과 우문호는 부부로서 침전에서 해야 할 일은 제쳐두고 명원제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분석하기 시작했다.“부황은 왜 내가 자식을 낳는데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야?” 원경릉이 물었다.우문호는 그녀를 두 팔로 안고서 손가락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돌돌 말았다.“왜 그런 것 같은데?”“부황이 너를 태자로 책봉하려는 거 아니야?” 원경릉이 추측했다.우문호는 고개를 저으며 “그럴 리 없어. 부황께서는 올해 내게 실망도 많이 하셨고, 나에겐 늘 냉담하신거 너도 잘 알잖아.”라고 말했다.“그 공주부 사건은 나 때문에 그런 거잖아……. 그 사건 이전엔 부황께서 너를 중시하지 않았어?”“음……. 태자로 책봉되려면, 장남이거나 황후가 낳은 아들이어야 해.”우문호가 말했다.“현비가 낳은게 뭐 어때서?”원경릉이 물었다.우문호는 빙그레 웃으며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너는 내가 어질고 선한 재목이라고 생각해?”“아니!” 원경릉은 그의 말을 단칼에 부인했다. “선한건 모르겠고! 네 충성심과 용맹함은 내가 인정하지!”우문호는 두 손으로 뒤통수를 감싸고는 생각했다.‘정말 부황이 나를 염두에 두고 있는 걸까?’“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태자가 되고 싶어?”원경릉이 물었다.우문호는 웃으며 “싫다고 말하는 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태자가 되면 그에 따른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라고 말했다.원경릉은 침상에 엎드려 팔꿈치에 턱을 괴고 그를 보았다.“내 생각엔 말이야, 부황께서 태상황님의 마음을 캐고 계신 것 같아. 아무래도 태상황님께서는 너를 많이 아끼시잖아. 게다가 초왕비인 내가 태상황님의 마음을 얻기도 했고…….”이 말을 들은 우문호가 그녀를 쳐다보며 “그럼 네 말은 부황이 나를 태자로 책봉하려는 게, 어쩔 수 없이 태상황의 뜻에 순종해서
“그건 너 혼자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지, 그건 우리와 아이가 연이 닿아야 하는 거야.”그가 장막을 치자, 바람에 촛불이 꺼졌다.“오늘은 좀 쉬면 안 될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원경릉이 우문호에게 말했다.“쉬는 건 죽어서 쉬면 돼.”우문호는 그녀가 대답할 시간도 주지 않고 달려들었다.침전이 한순간에 달아올랐다.다음 날, 손왕 부부가 초왕부를 방문했다. 우문호는 일을 마치고 돌아와 손왕과 거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원경릉은 손왕비와 뜰에서 산책하고 있었다.손왕비의 얼굴이 어딘가 모르게 근심이 있는 것 같았다.“손왕비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원경릉이 손으로 자신의 허리를 두드리며 손왕비를 쳐다보았다.“별일 아닙니다.”손왕비가 그녀를 보며“그나저나 허리는 괜찮습니까? 왜 두드립니까?”라고 물었다.“괜찮습니다.”원경릉은 손을 거두며 대답했다.손왕비는 원경릉이 왜 그런지 알겠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아, 지금 좋을 때죠. 저도 다 겪어봤습니다.”“손왕비님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저는 그저 피곤할 뿐입니다!”원경릉이 멋쩍은 표정으로 대답했다.“어휴, 알겠어요!”손왕비는 손가락을 뻗어 앞에 있는 돌의자를 가리켰다.“저기 앉죠! 힘드니 좀 쉽시다.”원경릉은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자리에 앉자 손왕비는 갑자기 원경릉에게 “듣자 하니, 초왕비가 다섯째가 주명양(周明陽)과 혼인을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하던데.”라고 말했다.“예, 제가 들이지 말라고 했습니다.”손왕비는 깜짝 놀라서 “감히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손왕비는 제손으로 직접 손왕의 첩을 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래도 그럴 수는 없습니다. 왜 제 부군(夫君)을 다른 여인과 나눠가져야 합니까?”“다 그렇게 합니다.”손왕비가 조용히 말했다.“아무리 그래도 저는 싫습니다.”“초왕비가 싫다고 하는 게 무슨 소용 있습니까? 초왕비가 나서지 않는다면 다른 누군가가 나서서 다섯째의 첩을 준비할 것입니다. 차리리 부인인 내가 직접 고르는 게 낫지!”“그
안지여는 풍도성 지하감옥에 갇혔다. 빛 한 줄기 없는 지하감옥에서 사방에 끝없는 어둠과 절망만이 안지여를 삼키고 있었다.훼천의 형벌은 12 시진 후면 사라져서, 앞으로 안지여는 그저 한 명의 폐인일 뿐이었다.안지여의 결사대가 성으로 공격해 들어오기 전에, 이리봉청은 오 선생을 찾아내 안지여가 저지른 모든 죄를 고백하게 하고 안풍 친왕이 친필로 받아 적었다. 안지여가 당시 천문 세가를 해친 경위를 소상히 써 내려간 뒤, 오 선생과 안풍 친왕의 직인을 찍고 인쇄해서 대중에게 공개했다.안지여의 죄악은 하늘을 찔러 백성들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안지여의 결사대의 옛 부하들이 본래 성을 공격해 들어가 안지여를 구출할 계획을 세워놓았으나, 안지여의 죄상이 공포된 뒤로 많은 사람들이 해산하였다. 유일하게 무대장군만이 수천 명을 데리고 성으로 쳐들어왔지만, 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가 이미 대비해둔 덕분에, 경성에서 굴러온 돌이 무대장군의 박힌 돌을 빼내는 전투를 벌였다.풍도성에 온 지 7일째, 안풍 친왕은 풍도성을 접수하고 성에 살던 사람을 쫓아내며 서민으로 강등시켰다.안지여와 소여쌍에 대한 처분은 이리봉청에게 넘겼다.안지여는 캄캄한 지하감옥에서 6일을 지내는 동안, 처음엔 침착한 척 가장했으나 사흘째가 되자 울부짖으며 악독한 저주의 말을 내뱉더니, 나흘째가 되자 용서해달라고 애원하며 참회했다.손발의 힘줄이 끊어진 안지여는 일어나 걸을 수도 없고 심지어 스스로 몫숨을 끊을 힘도 없었다.그 와중에 매일 누군가가 먹고 마시도록 해주고, 상처도 치료해 주어 살 수 있다는 부질없는 희망을 품게 했다.훼천의 말에 따르면, 진정한 절망은 살아도 죽느니만 못하고,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것으로, 온 마음으로 죽기를 바라지만 살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가, 안간힘을 쓴 뒤 다시 절망에 빠지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으로, 사람을 한없이 죽였다 살렸다 괴롭힌다고 했다.결국 안지여를 죽일지 말지 여부는 이리봉청에게 달렸는데, 그녀는 안지여를 단번에 죽여 천문 세가
안지여의 이마에 파란 힘줄이 불끈불끈했으나 냉정을 가장했다. “내가 두려워할 줄 알았나 보지? 죽음도 두렵지 않은데 뭘 더 두려워하겠어?”“넌 두려울 것이야!” 이리봉청이 고개를 돌려 이리 나리를 보고 살짝 그의 팔을 잡았다. “내가 오는 길에 늑대파 사람이 그러던데, 천하에서 제일 잔혹한 형벌을 아는 사람이 늑대파에 있다고. 그게 사실인 것이냐?”이리 나리가 가볍게 답했다. “물론 사실이죠. 훼천이라고 합니다. 늑대골 출신이에요.”“안지여가 버틸 수 있는지 어디 한 번 보고 싶구나.” 이리봉청이 말했다.이리 나리가 엄숙한 태도로 명을 내렸다. “훼천!”그러자 훼천이 급히 나왔다. “이리 나리, 분부하시지요!”이리 나리는 그가 짐짓 냉정한 척하고 있으나 눈빛이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몸까지 부들부들 떠는 것이 아주 만족스러워 훼천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시작해!”안지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욕했다. “난 네 아버지거늘, 감히 나에게 손을 대다니, 천벌을 받아 마땅한 놈 같으니라고!”이리봉청이 이 말을 듣고 잠시 주저하는 눈빛으로 이리 나리를 바라봤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제 아버지는 오직 저를 키워주신 안풍 친왕뿐이십니다.”이리봉청이 살짝 안도했다. “저 인간이 단지 나만 해쳤으면 네 체면을 봐서 놔줬겠지만 천문 세가의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니 난 용서할 수 없구나.”“이리봉청, 너 언제 이렇게 악랄하게 변했어? 죽이려거든 그냥 죽여. 난 천문 세가 사람을 죽이긴 했어도 그들을 괴롭히진 않았어. 네가 날 죽이려거든 깨끗하게 단번에 죽여!”안지여가 크게 노해 몇 번 몸부림을 치다가 상처가 벌어지는 바람에 배에서 선혈이 흘러나오고, 훼천이 가까이 다가가자, 눈에 두려움이 깊어졌는데, 늑대골 출신 훼천은 온몸에서 피비린내가 뿜어져 나와 안지여를 덜덜 떨게 했다.“이리율!” 안풍 친왕비는 시ㅈ가하기 전에 이리 나리를 불렀다. “내가 여기서 네 엄마와 같이 있을 테니 넌 먼저 나가 있거라!”이리 나리가 안풍 친왕비에게
안지여에게 구원 병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리 나리 일행이 성을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대오가 경성에서 출발하기 전에, 안풍 친왕비가 미리 사람을 풍도성으로 보내 각처, 특히 성 수비군과 군대에 잠입시켜, 음식에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독을 풀어, 오늘 중독 증상이 나타나도록 독의 분량을 조절했다.적어도 내일까지는 안지여를 도우러 올 사람은 없었다. 독성은 적어도 이틀이 지나야 깨끗해지기 때문에 이틀 동안 그들은 설사와 전신 무기력으로 성에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아도 와서 도울 수 없었다.그리고 그들이 기력을 회복할 때쯤이면, 안지여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는 성을 통제하고, 안지여 부부를 제압해 두 사람을 줄로 묶고 지혈시켜 주었다.안지여는 요 몇 년 동안 자신이 상당히 대단하다고 여겼다. 이는 풍도성이 부유하기 때문으로, 돈으로 많은 사람을 살 수 있었으며, 여러 곳에서 추켜세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처절하게 패배한 적이 없었던 이유는 진정한 적이 없기 때문으로, 주변의 떠돌이 비적은 작은 마을 규모로 너무 작아서 소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그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적이 너무 약해서였다.조정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는 제대로 훈련받은 적 없는 비적었기에 일격도 감당할 깜냥이 못됐다.이리 나리는 둘을 중정에 묶어 두었다. 온 바닥에 남은 음식과 깨진 기와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본 안지여는 마음속 깊이 분노가 일었다. 자신의 생일날, 그를 다치게 한 것이 바로 그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욱이 오늘 이렇게 많은 고수가 현장에 있었는데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런 결말을 맞다니 너무 불쾌했다. 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을 부축하고 안지여 부부 앞으로 가서, 그녀가 안지여 부부를 내려다보자, 그들은 낭패에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이리봉청은 분노하는 마음과 함께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그들을 죽이면 커다란 복수는 이뤄 천문 세가 망자의 원혼은 달랠 수 있었다.하지만 저들을 이렇게 쉽게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이리 나리가 검을 휘두르며 안지여를 겨누자, 안지여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후퇴했다.공자들은 돕고 싶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에게 바로 제압당했다. 안지여는 이리율 것으로 그들은 주변 사람을 제압하기만 할 뿐 옆에 서서 전투를 관전하고 있었다.이리율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를 가르친 안풍 친왕 부부를 제외하고, 사실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이리율의 검법은 신속하고 맹렬해서 안지여는 상대하느라 쩔쩔매고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다. 성안의 호위들은 늑대 무리와 늑대파, 홍매문 사람들에게 막히는 바람에 안지여는 홀로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그래도 아직은 버틸 수 있었다.하지만 30분을 못 가서 안지여는 질게 틀림없었다.놀란 나머지 계속 실성해 있던 소여쌍이 갑자기 이리봉청을 향해 바싹 마른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조르며 광적인 집착과 분노에 사로잡혀 성질을 부렸다. “멈춰, 다들 멈추라고. 안 그러면 내가 이년을 죽여버릴 것이니까!”소여쌍은 무공을 할 줄 알았지만 잘하지 못한 것이 어릴 때부터 계속 중병을 앓아 무공 연습에 소홀했고 성주 부인이 된 뒤로는 더욱 병기에 가까이할 일이 없었지만, 공력만큼은 아직 약간 있었다.소여쌍은 증오의 힘으로 이리봉청의 목을 졸랐는데, 소여쌍이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이리봉청의 목을 부러뜨릴 것만 같았다.안풍 친왕이 차가운 눈빛으로 나서려 하자, 안풍 친왕비가 말리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는데, 그럴 필요 없다는 뜻으로 뒤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참으라는 눈짓을 하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모두가 이리봉청이 제압당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손가락으로 뭔가를 쥐고 있어 소여쌍의 어깨 위를 휘감고 팔을 눌러 소여쌍이 머리를 돌리게 했다. 이리봉청 손에 쥔 것은 바늘로, 그대로 소여쌍의 오른쪽 눈을 찌르고 들어갔다.소여쌍이 절규하며 이리봉청을 놔주고 선혈이 흐르는 눈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다 바닥에 쓰러져 데굴데굴 구르며 새된 소리를 지르는데, 원망과 저주의 말을 끊임없이 쏟아
풍도성 중정에는 안지여의 아들들과 사위가 그의 곁에 남았는데,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점점 공포에 질려가고 있었다.‘이 사람들, 아주 대단하구나!’안지여는 이리봉청을 보고 비록 조금 냉정해 보였지만, 여전히 놀라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갑자기 소여쌍이 큰 소리로 웃으며, 몸을 앞뒤로 흔들며 눈물을 찔끔거리더니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이리봉청을 가리키며 원망했다. “뜻밖에 네가 안 죽었단 말이지? 게다가 아들까지 있고. 참으로 황당하구나. 정말 너무 황당해. 원래 죽어야 했을 인간은 죽지 않고, 잘 살아야 할 사람은 36년간 괴로움을 당했어. 이리봉청 네가 날 비참하게 만들었으니 넌 이제 지옥에 떨어져야 해.”이리봉청은 소여쌍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했는데, 그녀 눈에는 지금 안지여만 들어왔다.안지여는 36년을 살아왔지만, 이리봉청에게 있어 36년은 마치 사라진 시간처럼 멸문지화의 원한이 어제 일 같았다.안지여도 이리봉청의 눈에서 분노와 악랄함을 보고, 처음으로 마음속에 두려움을 느꼈다.안지여는 억지로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네 사람을 데리고 가. 지난 일을 묻지 않을 테니. 그렇지 않으면 풍도성에서 곧바로 10만 대군이 올 것으로, 살아서 도망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아.”이리봉청의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 “우리는 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바로 네 성으로 쳐들어갈 수 있어. 넌 이미 졌어.”안지여가 웃었다. “졌다고? 그래?”안지여는 수하의 대장군이 믿음직해서, 그들을 당하게 놔줄 수도 있다고 여겼다. 대장군의 부대는 분명 치밀하게 준비되어 있을 것으로, 아마 지금쯤이면 궁수들이 이미 배치를 마치고 그들을 전부 쏴 죽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어머니, 저자와 말 섞으실 필요 없어요. 앉아서 지켜보시기만 하면 됩니다!”말을 마치고 의자를 올리더니 이리봉청을 부축해서 앉혔다.안지여가 이리 나리를 보는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안지여가 퍼뜩 눈을 돌려 이리 나리를 보았다.‘이리봉청이 저자를 아들이라고 불렀다는 건러니까?이리 나리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찬찬히 훑어보더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안 성주와 좀 오래된 원한을 따져야 하는데, 관련되기 싫으신 분은 자리를 피해 주시지요!”그때 한 사람이 검을 짚고 일어나 호통을 쳤다. “넌 도대체 어떤 놈이냐? 무슨 자격으로 자리를 피해라 마라야? 안 성주를 귀찮게 할 생각이면 일단 나부터 통과해 보시지!”그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장검을 뽑아 파죽지세로 이리 나리를 향해 휘둘렀다.이리 나리는 손을 살짝 움직여 손바닥으로 칼자루를 밀자, 검이 날아가며 그 사람의 귀를 베어 한 줄기 피가 공중에 뿌려지더니, 방금까지 기고만장하던 자가 비명을 지르고 귀는 바닥에 떨어졌다.검이 다시 이리 나리 수중으로 정확히 돌아왔다.이 모든 게 3초 안에 벌어진 일이었다.“회선검?” 검법을 아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외쳤다.현장은, 숨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았다.회선검은 검마의 검법으로, 그렇다는 건 저 사람이 검마의 계승자?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무리에서 검마를 찾았다. 과연 두 손으로 검을 안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도 차가운 안광이 느껴졌다.과연 진짜 검마구나, 사람들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검마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리 나리를 흘끔 보더니 속으로 의아해했다. ‘이 자식, 언제 내 비장의 검법을 배운 거야?’이리 나리의 검 끝에선 아직 선혈이 떨어지는데, 여전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말했다. “이 아수라장에 끼고 싶은 거라면, 제가 무례하다고 원망할 생각 마세요.”“무엄하도다!” 안지여가 몹시 놀랐다가 천천히 정신을 차리고 눈을 치켜뜨며 이리 나리를 노려봤다. “너는 내가 누구인 줄 아느냐? 내가 네 아버지다!”이리 나리가 코웃음을 쳤다!안지여의 몇몇 아들이 달려 나와 소리쳤다. “아버지, 저희가 지켜드리겠습니다.”안풍 친왕이 젓가락을 던지고 일어나 차갑게 명을 내렸다
오늘은 성주의 생일이기에 경사라 섣불리 피를 볼 수는 없으므로 칼은 빼 들었지만 먼저 나서서 늑대를 죽이는 사람은 없었다.안지여는 어두운 눈빛으로 ‘늑대 무리라고? 척후병의 보고로는 안풍 친왕이 늑대 무리를 끌고 온다고 했는데, 저들이 의외로 성으로 직접 쳐들어 왔다 이거지?’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안지여는 잔을 들고 꿈적도 하지 않은 채, 무너지기 직전까지 미동도 없는 태산처럼 냉정하고 침착했다. 늑대 무리는 안으로 들어온 뒤로 두 패로 나뉘어 서서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호시탐탐 엿보며 으르렁거렸다.“성주님, 성주님, 저들이 기어코 쳐들어오겠다고….” 문지기가 외치는 소리는 들렸으나 사람은 보이지 않더니, 그보다 조정에서 보낸 사람들이 먼저 들이닥쳤다.앞에 걸어들어오는 두 사람을 안지여는 본 적이 있었는데, 바로 안풍 친왕 부부로 예전에 그들이 천문 세가 사람들을 조사하러 왔을 때 그에게 속은 적이 있었다. 비록 당시 일면식 뿐이었으나 천문 세가 일을 캐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탓에 그들의 얼굴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어째서 별로 변한 게 없는 거지?’안풍 친왕 부부 뒤에 따라오는 10여 명의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은 그들의 호위 무사일 것으로, 주인인 안풍 친왕 부부는 별 표정이 없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들어와 고개를 들자 괴팍하고 악랄한 얼굴이 안지여 마음에 들지 않았다.안지여는 여전히 일어나지 않았고, 미소는 띠고 있었지만 매서운 눈빛으로 저들이 돌계단을 오르면 그때 일어나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게 그의 태도였다.하지만 안풍 친왕 부부는 돌계단을 오르지 않았고, 손님 중 건배를 권하느라 자리를 비운 사람들 의자에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차지하고 앉아, 그들을 대놓고 밀치더니 품에서 자기 젓가락을 꺼내 옆 사람 상관하지 않고 먹기 시작해 사람들이 다 경악했다.그들이 자리를 잡고 앉자 뒤따라 들어오는 사람들이 보였다.두 사람이 사람들에 둘러싸여 천천히 걸어들어오고 있었
풍도성 안은 술잔을 주고받고 건배하며 흥겨운 잔치가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안지여는 오늘 황금색 예복을 입었는데 예복에 거대한 이무기를 수놓았으며, 황실의 밝은 황색과는 약간 구별되었지만,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진짜 곤룡포로 착각할 만큼 거대한 이무기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형상이 구름을 뚫고 솟아오르는 용과 매우 흡사했다.안지여는 자신의 야심을 이미 조금도 감추지 않았다.당연히 안지여는 오늘도 야심을 감출 생각 없이 손님들에게 보란 듯이 자세를 잡았다. 심지어 인근 지역 조정 관리들이 손님으로 왔어도 안지여는 전부터 맺어온 관계였기에, 그들과 개인적인 친분이 매우 두터워 산 넘고 물 건너 저 멀리 있는 황제가 그들을 시시콜콜 관리할 수 없었다.그 자리 있던 사람들은 모두 오늘 황실에서 파견한 일행이 온다는 것을 알고, 연회석에서 큰 소리로 물었다. “성주님, 듣자하니 안풍 친왕 전하와 이리 부마께서 오늘 오신다던데 어째서 안 보입니까?”안지여가 잔을 들고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진심으로 생일을 축하한다면 결국 오겠지요.”“여정을 듣기론 오늘 분명 풍도성에 도착한다고 했는데, 어째서 밤이 되도록 아직 안 보입니까? 설마 성주님이 직접 나가서 맞이하셔야 하는 건 아니겠지요?”“성주님이 가서 맞이하셔야 한다고? 아주 허세가 대단한데? 퉤!”“누가 아니랍니까? 진심으로 생신을 축하하는 거였으면 며칠 전에 풍도성에 도착해 성의를 보여야지, 오늘까지 늑장을 부리다가 늦게서야 와서, 아직도 잔치에 오지 않은 건 분명 성주님의 체면을 안중에도 두지 않은 행태입니다. 제가 보기에 못 들어오게 막고 돌려보내시지요, 마음만 받은 셈 치고요. ”“맞습니다. 그동안 조정에서는 풍도성에서 받은 공물이 적지 않았으니, 만족한 줄도 알아야죠.”“풍도성은 더 이상 조공을 바칠 필요 없어요. 뭐 때문에 그럽니까? 수백 년 전에 풍도성은 원래 북당의 영토가 아니었어요. 선을 긋고 나와 독립해야 합니다.”모두 안지여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서, 몇 잔 들어가자, 비위를
소여쌍의 욕은 거의 반 시진 동안 계속되었다. 이것도 별로 드문 일이 아니라 무쌍거 사람들은 다 익숙해져 있었다. 성주가 오지 않거나 소여쌍이 아프기 시작해도 이렇게 욕을 해댔다.욕하다 지치기를 기다렸다가 늙은 몸종이 가서 달랬다. “부인 그러실 게 뭐가 있으십니까? 몸이 가장 중하십니다.”소여쌍이 의자에 기대 늘어졌다. 극도로 피곤해 풀린 눈으로 천정을 보며 비참함이 가슴 깊은 곳을 타고 내렸다. “오늘이 초엿새지?”“네!” 늙은 몸종이 대답했다.소여쌍이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곧 15일이구나. 또 내 명을 재촉하는 고통이 오겠지. 죽으면 죽었지 다시는 그 고통을 느끼고 싶지 않다.”그러자 늙은 몸종도 매우 괴로워했다. “부인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고통도 며칠이면 그럭저럭 지나가서, 그동안도 그렇게 지내셨잖아요?”“며칠이면 뭐 그럭저럭 지나가나?” 소여쌍이 잔인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건 네가 이 고통을 안 당해봐서 그래. 이게 다 이리봉청 그년 짓이야. 오빠가 그년을 쫓아가서 죽이게 한 걸 정말 후회해. 그년을 잡아 와서 가두고 내가 한 번씩 아플 때마다 그년을 갈기갈기 찢어발겨 나보다 수천 수백 배 고통스럽게 해야 했어.”늙은 몸종이 소여쌍의 손을 쥐었다. “부인 그런 생각 마세요. 벌써 죽은 사람을 이제 와서 생각해 봤자 아무 도움도 안 됩니다. 성주님과 자꾸 다투지 마세요. 자꾸 다투시다 보면 감정이 사라집니다.”소여쌍이 처연한 웃음을 지었다. “오빠는 진작부터 나한테 아무 감정 없어.”“성주님은 이리봉청에게 아무 감정 없으세요. 감정이 있을 리도 없고요. 안 그러면 당시 부인을 위해 이리봉청을 죽이고 천문 세가 사람을 다 죽이셨을 리가 없죠.”소여쌍이 고개를 돌리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전에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요 몇 년간, 성에 들어온 여자들 생긴 걸 보라고. 전부 이리봉청을 쏙 빼닮았잖아? 오빠는 역시 후회하고 있는 거야. 날 위해 이리봉청을 죽인 걸.”소여쌍은 늙은 몸종의 손을 잡는데 고여서 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