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경주가 당황해서 소리쳤다. “이보세요, 뭐라고요? 늙어 보인다고요?!”소요공도 말을 보탰다. “맞아, 늙어 보여. 인자해 보인달까? 비록 수염은 나지 않았지만 딱 봐도 5~60세는 돼 보이는 게 경험이 많아 보이군.”주 재상의 둘의 말에 마음이 편안해져서 온화한 목소리로 원경주에게 집안 내력을 물었다. “자네 몇 살에 의원이 됐는가? 손자는 몇 살이고? 집안 사람들은 다 여기 있지? 북당으로 돌아간 적은 없고?”원경주는 많은 질문에 그만 슬퍼졌다.손자는 고사하고 원경주에게는 와이프마저도 없었기 때문이다.원경주는 얼른 몇 마디 얼버무리고는 밖으로 뛰쳐 나갔다.수술 전에 주진도 다가와 원경주에게 말했다. “조금 있다가 수술하려고 주 재상을 데리고 나갈 때 검사하러 간다고만 하세요. 다들 걱정하시게 수술 시작한다고 하지 마시고. 저분들은 걱정하면 가만히 앉아계시지 않고 나가서 난리를 치실 것 같아서요.”원경주도 마침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원경릉의 상태를 묻자 주진이 답했다. “수술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걱정은 마세요. 큰 문제 없을 거예요. 양 닥터는 이런 수술 경험이 많아요. 선배 수술은 당신이 주 재상 수술하는 것과 난이도는 같지만, 시간이 좀 더 오래 걸릴 뿐이에요.”원경주가 미간을 찌푸렸다. “안심하고 양 닥터에게 맡긴다고 해도 동생이 안전하다는 소식을 듣기전까지는 안심이 안 되네요.”“안심이 안 돼도 그 생각하실 틈이 있나요! 얼른 수술 준비하셔야죠!”“예! 알겠습니다!”간호사에게 주 재상을 휠체어에 태워 오는데 다시 검사를 받는 것으로 검사 시간이 어쩌면 약간 걸릴 수도 있으니, 검사를 마치면 곧 수술할 수 있도록 했다.세 사람은 믿겠다는 듯 고개글 끄덕였고, 간호사는 조심히 주 재상을 휠체어에 태워서 나왔다.두 사람한테 주 재상이 자리를 비운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지지 않도록 주진이 특별히 들어와 배달 음식을 먹이고 티비 보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병실엔 이미 티비가 있었지만 세 사람이 들어와서 그동안 줄곧
한편, 북당.우문호는 아이들과 이미 경성으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만두는 가는 길 내내 거의 잠들어 있었다. 우문호는 고생한 만두를 안고 때때로 혹여나 만두가 깼는지 잘 살폈다.만두가 뱉는 한마디 한마디가 우문호를 들었다 놨다 했기에 더 잘 보호해야 했다. 다른 아이들도 점점 졸음이 쏟아졌다. 한참 뒤 만두가 깨어나 눈을 비비자, 아이들이 전부 둘러싸고 만두를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바라봤다.그러자 만두가 입을 열었다. “재상과 엄마는 수술 중이고 엄마 이번 수술은 6시진동안 지속될 거래요. 이제 외할머니 곁에 있어 드려야 해서 제가 계속 이 곳에 있을 수 없어요. 외할머니 혼자 집에 계시거든요. 걱정돼요.”“그래, 우리 만두 효자네!” 우문호는 대견하다는 듯 만두를 꼭 안고 목이 메어 말했다.만두가 다시 자려고 하자 우문호가 한 마디 먼저 물었다. “수술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돕고 있어? 그 사람들 다 실력 좋은거지?”“그 얘기는 따로 없었어요, 하지만 주진이 우리보고 안심하랬어요. 엄마한테는 반드시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만두가 말했다.우문호는 알겠다고 답하고는 손을 뻗어 만두의 볼을 만졌다. “알겠어, 이제 자러 가자.”“아빠, 좀 쉬세요. 눈이 너무 빨개요!” 만두는 우문호의 눈이 온통 붉은 실핏줄로 가득한 것을 보자 마음이 아팠다.다른 아이들도 우문호에게 달라붙었다. 엄마가 없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아빠는 괜찮아. 얘들아, 자 자!” 우문호는 만두 등을 톡톡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만두는 외할머니가 걱정되는 마음에 눈을 감자마자 곧 바로 잠에 들었다.서일과 나 장군은 밖에서 마차를 모는데 바람 소리가 너무 커 안에서 하는 얘기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궁금해 미쳐버리겠는 서일이 가끔 가리개를 젖히고 반짝이는 눈빛으로 우문호를 쳐다봤다. 소식이 오면 우문호가 얘기할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말이다. 이번에 가리개를 젖히자 우문호가 드디어 작은 소리로 얘기해 주었다. “원 선생과 재상은 수술 중이고, 아직 자세한 상황은 알
태상황과 소요공이 티비에 대한 연구와 함께 식사를 마치자 어느덧 2시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검사하러 간 주 재상이 아직 돌아오지 않자 태상황과 소요공은 걱정돼서 티비 속에 소인이나 주진의 흥미 있는 얘기 따위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들은 연신 밖을 내다보며 주 재상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그러고는 불안한 마음에 주진에게 말했다. “너희들 몰래 재상 머리를 열기만 해봐. 우리가 같이 들어가서 곁이 있어야 해. 그 녀석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해. 심지어 늙은 데다 눈도 멀어서 무서울 거라고.”주진이 미소를 지으며 위로했다. “걱정 마세요, 같이 계실 수 있도록 꼭 얘기해 드릴 테니까요.”사실 태상황은 주진을 별로 신뢰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약간 교활하다는 생각이 드는 게 항상 그런 미묘한 눈빛으로 자신들을 바라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소 무서운 말투로 소리쳤다. “네가 감히 과인을 속인다면 과인이 네 목을 칠 것이다!”태상황은 주진에게 자신의 위엄을 알려야지, 그의 말을 잘 들을 것이라 생각했다. 여기 있으면서 아무도 자기한테 개의치 않을 뿐만 아니라 몰래 자신들을 비웃는 것이 영 체면이 구겨지는 기분이 들었었다. “속일 리가 있나요. 누가 감히 여러분들을 속이겠어요?” 주진이 달래며 속으로 몰래 쓴웃음을 지었다. 이 두 사람이 주 재상이 개두술 하는 걸 보면 깜짝 놀랄 건 말할 것도 없고 피를 보는 순간 원경주의 다리 몽둥이를 부러뜨려 놓을게 뻔했다. 직접 보느니 차라리 다른 사람을 통해 듣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태상황은 그제서야 안심이 되어서 티비로 눈을 돌렸다. 주진은 그들을 오래 속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몰래 메시지를 보내 로양에게 응급실에 사정 청취하는 교통경찰에게 전화하도록 했다. 그들이 빨리 와서 두 사람에게 질문을 유도하도록 말이다.역시 주진의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 태상황은 수도 없이 문밖에 주 재상이 왔는지, 안 왔는지 확인하다가 인내심의 한계를 느껴 결국 이불을 걷어차 버리고 침대에서 내려와 주진에게 물었다. “어떻
교통경찰은 오기 전에 상부로부터 미리 통지를 받았는데, 상해자 두 사람이 경증 혹은 중증도의 망상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두 사람의 행동을 보고도 경찰은 크게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했지만 아무리 알고 있었다고 해도 저들 상태는 이미 중도를 넘어 심각한 중증으로 보였다.경찰이 이름과 직업을 물을 때 소요공은 원경릉의 분부를 받들어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다. 원경릉이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다고만 하면 유효한 신분증을 꺼낼 필요가 없다고 했기 때문이었다.교통경찰은 점점 미간을 찡그리며 이 질문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 못 하는 사람들이 사건 발생 당시 상황을 기억할 수나 있겠어?’그들이 상황을 서술하자 경찰은 말없이 주요한 단어들을 기록했다. 말 없는 마차 2대가 전후로 그들을 쳤는데, 첫 번째 마차와 부딪혔을 때는 허리와 다리가 부러질 것 같았다고 했다. 두 번째 마차가 쳤을 때는 경공을 사용했으나 실패했다. 두 번째는 그렇게 아프지 않았으나 놀라서 일어날 수 없었으며, 또 마차에 치일까 봐 무서웠다고 했다. 그 뒤로 또 세 번째 말이 없는 큰 마차가 자기들에게 왔다고 했다.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많았는데 남녀가 다 있고 자신들을 들어서 차로 옮겼고 상대가 공격성 무기를 가지고 있고, 자신들에게 낯선 길이라 이곳엔 엄호할 근위병도 없어서 참고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했다. 나중에서야 흰옷을 입은 이들이 자신의 상처를 치료하려고 했다는 것을 듣고 분명 좋은 사람들이었을 거라고 말했다. 교통경찰은 한마디로 정하기 어려운 기록을 마치고 물었다. “두 분을 친 기사는 당신들을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병원비를 대신 지불하지 않고 도망갔어요. 그 사람들이 당신들에게 돈을 정산하고 돌아오겠다고 설명한 적이 있나요?”“없어. 그 두 사람은 아주 쓸데없이 말이 많아. 마차로 따라오는 내내 쓸데없는 소리만 지꺼렸다고! 그들은 돈이 없어 보였어.” 소요공이 옆에서 발굽 모양 금을 꺼내서 으쓱거리며 말했다. “그 사람들은 돈이 없지
교통경찰이 질문할 동안 의료진과 원경주가 주 재상을 데리고 병실로 돌아왔다.태상황과 소요공은 이제서야 주 재상 혼자 개두술을 받고 온 것을 확인하고는 화가 나서 뚜껑이 열렸다. 태상황은 원경주의 멱살을 잡고 주먹을 날리려는 찰나 교통경찰이 얼른 말리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냥 교통사고 따위 조사하러 와서 어쩌다가 도굴 사건과 의료진 폭행 건을 대처해야 하는 거냐고?’결국 원경주를 때리지는 못했지만, 태상황과 소요공 앞에서 원경주는 신용이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주진도 같이 블랙리스트에 올랐다.게다가 주 재상이 수술 후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 비록 정상적으로 호흡 했지만, 몸에 이렇게 많은 물건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게 너무 두려워서 태상황은 주 재상을 데리고 가겠다고 고집을 피우며 여기 남아있을 수 없다고 했다.원경주는 하는 수 없이 결국 원 교수에게 도움을 청했다. 어쨌든 나이 많은 노인이고 원 교수가 원경릉의 할머니 사진을 꺼내왔는데, 두 사람에게 자신이 사진 속에 이 나이 든 여자분의 아들이라고 하자 태상황이 그제서야 진정됐다. 태상황은 사진을 한동안 들여다보는데 비록 복식이 다르고 머리모양이 달라도 아무리 봐도 생긴 건 똑같았다.“자네가 주디 아들이라고? 그런데 자네는 대흥 사람이 아닌데? 여기가 설마 대흥인가?” 태상황이 의혹을 느끼며 물었다.“아니요, 대흥은 아닙니다. 사실 제 어머니도 원래는 이곳사람입니다.” 원 교수는 두 사람 마음이 안정되는 것을 보고 다행이다 싶었다. “이 일은두 분께 자세히 말씀드리기가 좀 그렇습니다. 어쨌든 경릉이가 수술을 마치면 두 분은 돌아가실 테고, 여기서 오래 머무실 필요가 없으시니까요. 하지만 얘기를 들어보니 경릉이 수술이 끝난 뒤 연구실에서 15일은 있어야 하고 15일 후에 반드시 좋아진다는 보장이 없으니 세 분께서는 우리가 있는 여기서 적어도 두세 달은 계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럼, 제 생각에 감춰서 좋을 게 없지, 싶어 얘기 드리는 겁니다.”소요공과 태상황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원 교수도 고개를 끄덕였는데, 긴장한 듯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혀 있었다. “예, 우리 곁에서 자랐죠.”“그러니까 태자비는 정후부와 자네 곁에서 동시에 자랐다? 그런가?” 태상황이 원 교수에게 말했다.원 교수가 땀을 닦으며 답했다. “에…. 예, 하지만 역시 아닌 것 같습니다.”원 교수는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한 걸 후회하기 시작했다. 어쩐지 딸이 얘기 안 했더라니, 이건 단박에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알고 보면 간단한 일이지만, 모를 땐 상식에 어긋난다며 오해하기 쉽고, 자신도 쉽게 상대를 오해하도록 만들 수 있었다.“둘은 사실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정후부에서 자란 것은 원경릉이고 제 곁에서 자란 아이는….”“자란 아이는.. 뭐?” 두 사람이 원 교수를 보고 날카로운 눈빛을 보냈다. ‘왜 말을 하다가 말아?’그러자 원 교수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말했다. “역시 원경릉입니다. 하지만 정후부의 원경릉이 아닙니다.”“그러니까 자네 말은 원경릉이 두 명이란 소리군. 그러면 어떤 원경릉이 태자비인가?”원 교수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둘다 입니다.”“그러니까 태자비가 둘이다?”원 교수가 당황해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주저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소요공과 태상황이 원 교수를 한동안 보더니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네!”“아셨다고요?”“응!” 태상황은 동정 어린 시선으로 원 교수를 바라봤다. 태상황은 주디의 아들이 머리가 좋지 않다는 걸 자연스럽게 눈치챈 것이다.원 교수는 약간 마음이 급해졌다. “정말 아시겠습니까?” ‘설명을 제대로 못 했는데 어떻게 바로 안다는 거지?’태상황이 원 교수의 어깨를 두드리며 이해했다는 듯 답했다. “이해했네. 우리가 자네와 주디 관계를 얘기해 보도록 하지. 자네는 주디의 아들이야? 주디는 대흥국 사람이 아니고. 주디는 여기 사람이지. 나중에 고향을 등지고 대흥으로 갔어. 이렇게 된 거 맞지?”원 교수는 어리둥절했으나 듣고보니 영 틀린 말도 아니라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게 된 겁
태상황이 약간 웃긴 듯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건 아마 자네가 아직 눈을 가리고 있어서 그런 것 같은데. 하하.”주 재상이 놀라서 천천히 손을 들어 눈을 만져보니 역시나 붕대가 감겨 있었다. 부끄러운 듯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 하하하.”마취에서 깨자, 주 재상은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태상황과 소요공은 곁에 있어주는 것 외에는아무것도 도와줄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원경주의 능력이 돋보였다. 원경주가 오면 항상 주 재상의 통증이 경감됐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약을 주거나 진통 주사를 놔서 주 재상의 상태가 호전되게 했다. 그런 원경주의 모습에 태상황과 소요공은 원경주에 대한 의심이 없어지고 상당히 신뢰하기 시작했다.원경주는 두 사람에게 주 재상의 상태를 얘기해 주었다. “시신경을 누르고 있던 핏덩어리를 포함해 핏덩어리를 완전히 제거해서 시력을 회복하실 겁니다. 내일 눈을 가린 붕대를 풀거니 두 분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태상황은 원경주의 이 말을 듣고 재상의 상황에 대해 안심했으나 원경릉의 상황이 걱정됐다. “태자비는 어디로 갔지? 몰래 수술받고 있는 거 아냐? 수술은 어떻게 됐어?”그러자 태상황은 느낌이 딱 왔다. 원경릉은 수술하러 갈 때 자신을 속일 거라고 짐작했기 때문에 그렇게 물었던 것이다. 원경주가 고개를 끄덕이고 사실 본인도 걱정이 되는 게 수술이 12시간이 아니라 지금까지 이미 15시간째가 지났기에 걱정되어 주진에게 전화를 해 봤지만, 아직 안 나왔다고 했다.“상황이 어때?” 셋이 이구동성으로 물었다.원경주는 그저 그들을 위로하는 수 밖에 없었다. “아직 모르겠어요. 수술이 안 끝나서. 동생 수술은 비교적 복잡한 거라 아마 이렇게 빨리 끝나지는 않을 거예요. 하지만 세 분 다 안심하셔도 되는 게 동생을 수술하는 사람은 신의라고 불리는 엄청 능력 있는 사람으로 세 분께서 이번에 오신 것도 전부 그 사람이 도와주신 덕택이거든요.”“태자비도 개두술을 하나?” 주 재상이 물었다.“네, 동생도 합니다.”“그럼, 아
주진은 크게 놀랍지 않았다. 사실 이식한 뒤에 나타난 일련의 문제는 주진도 처리한 적 있었다. ‘아이들이 다 자가 치유 능력이 있는데 원경릉한테 원래 몸의 주인이 어떻게 없을 수가 있겠어?’“사실 약물을 주사한 건 현대 원경릉인데 어째서 그쪽 아이들에게 유전된 거죠?” 주진이 물었다. 이 일에 대해 자신만의 견해가 있었지만 양여혜의 설명을 듣고 싶었다.“요 몇 년간 현대 원경릉이 북당의 원경릉의 신체를 제어했어요. 그래서 북당 원경릉의 유전자를 바꿔 북당 원경릉의 몸을 현대의 몸과 같이 되게 한 거죠. 유전자 돌연변이가 나타난 뒤 원경릉 본인이 유전자 암호 한 벌은 다시 쓴 거예요.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해 발생하는 질병을 전부 없앴지만 어쨌든 시공간이 떨어져 있으니 원경릉의 능력에 한계가 있어서 신체를 보호함과 동시에 북당 원경릉의 뇌세포를 완전히 제거할 수 없었던 거죠. 따라서 대뇌가 쇠약해지며 사망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이런 상황에서 이식하지 않으면 계속 쇠약해지다 죽는 거죠. 다행히 전에 두 번째 아이를 배면서 태아 대뇌가 발육하는 과정에서 탯줄을 통해 모체를 살릴 수 있는 세포가 나왔지만, 흡수하는 과정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원경릉이 쓰러졌고 흡수를 마치자 깨어났죠. 세 번째 임신했을 때는 대뇌가 상당히 심각하게 쇠약해졌고 현대 쪽에서 사고까지 일어나는 바람에 계속 지탱할 수 없었던 거죠. 이식만이 유일한 방법이었어요.”주진은 비록 이쪽 연구에 종사하는 인력이지만 양여혜의 말을 듣고 역시 좀 놀랐다.주진이 쓴웃음을 지었다. “전 계속 과학의 끝은 신학이라고 주장해 왔는데 보아하니 제가 틀렸네요. 과학은 과학이고, 예전 인류는 미지의 사건이나 영역에 대해 늘 신의 영역이라고 해 왔는데 저도 같은 실수를 범했어요.”양여혜가 미소를 지었다. “그 말이 꼭 틀린 것만은 아니에요!”“어째서요?”양여혜가 손을 내 저었다. “스스로 알아보세요!”깨달은 자의 말은 원래 한두 마디에 그치는 법이다. 주진이 알아듣고 더이상 묻지 않았다.한 사람의 능력엔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