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자 태상황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이렇게 싸울 필요 없어. 과인은 이미 마음을 정했네. 이번 출타는 우리 셋이 같이 가는 것으로 하고 아무도 안 빠뜨릴 거야. 정말 위험을 만나면 우리 셋이 같이 죽으면 돼.”“안 됩니다!” 주재상이 급히 반대하며, “그럴 가치가 있나요? 아뇨 없습니다. 둘다 따라 오지 마세요.”“자신을 너무 과대평가 하는 거 아니야? 너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태자비 마마를 모시러 가는 거야.” 소요공이 말했다.한편, 원경릉은 눈만 멀뚱멀뚱 뜨며 싸우는 것을 가만히 구경했다. ‘뭐? 지금 저들을 우르르 다 데려가야만 하는 건가? 왜 정작 모두를 데려가야하는 내 뜻은 안 물어보는 거지?’잠시 후, 원경릉이 태상황에게 말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갈 필요는 없어요. 저랑 재상이......”태상황이 원경릉을 살벌하게 노려보았다. “조용히 해, 네가 낄 자리가 아니야!”이 말에 우문호는 정말 어이가 없었다. ‘어라... 그럼 원 선생이 지금 저 셋을 데리고 가야 하는 거야? 그럼 원 선생 책임이 너무 막중할텐데.’주재상은 두 사람의 뜻을 차마 꺾지 못해 말 없이 한숨만 쉬었다. “자네들이 간다고 하면 희야도 분명 따라 나설 텐데? 어떻게 희야를 나랑 같이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있나? 아이고, 내 말 좀 들어. 안 가면 안 되나?”“안 돼. 희야가 가는 게 싫으면 우리가 이번에 가는 여정이 위험하다고 알리지 않으면 되잖아. 그냥 태자비를 데리고 병 치료하러 간다고. 우리는 호위하러 따라가는 거고. 초왕부에 와서 애들 보라고 해.” 소요공이 말했다.“다 안 먹힌다니까......” 태상황이 참지 못하고 짜증을 냈다. “됐어, 더 언급할 필요 없으니까 이렇게 정해진 것으로 해.”“하지만......”“시끄러워!” 태상황이 또 주재상을 째려보고는 원경릉에게 물었다. “언제 출발하지?”원경릉이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원래는 오늘 밤 출발하려 했습니다.”“그럼 원래대로 오늘 밤에 출발해. 다른 건 됐고, 오늘밤 유시(
초왕부로 돌아오니 집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오늘 일찍 탕양이 사람을 시켜 왕야들 집에 서신을 보내 태자비 마마가 곧 멀리 출타하실 예정이라 오늘 점심 연회에 모두를 초대한다고 알렸다. 이 소식은 바람 같이 퍼져 모두 무슨 일이 생긴 건지는 모르지만 일을 제치고 왔다. 심지어 정화군주까지 아이들을 떼어놓고 서둘러 달려왔다.여러 왕야들과 왕비, 냉대인, 홍엽, 이리 나리 부부, 소홍진과 박원, 구사 부부, 전진장군과 사촌 소형까지 왔다.탕양이 정후부에도 사람을 보내 정후부 노마도 오셨다.노마는 걱정이 되어 원경릉과 우문호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는 얼른 물었다. “어떻게 된 건가? 어디를 간다는 것이지?”원경릉은 할머니 곁으로 와서 걱정스럽게 자신을 바라보는 모두에게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번에 출타하면 돌아올 때까지 한 달이 될 지, 일 년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위험하지는 않으니 걱정 마세요. 전 그냥 주재상을 모시고 치료하러 가는 것으로 치료 마치면 돌아올 겁니다.”요 부인이 원경릉에게 물었다. “어디서 치료한다는 거야? 동서가 재상을 치료할 수는 없어?”“재상의 상처가 심해서 다시 실명한 상태로 할 수 있는 방도는 벌써 다 취했어요. 이제 사부님이 나서시는 수밖에 없습니다.”“사부님이라고?” 노마는 의아해 했다. 사실 자신의 손녀가 의술을 아는 일도 이전부터 계속 기이하게 여겨왔으나 오래 살다보니 별별 일이 다 있는 지라 기연을 얻어 하늘에서 은사로 받았다 생각하고 더는 묻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원경릉 얘기를 듣고 나니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사부님께서 연로하셨고, 지금 외딴 곳에 계셔서 저 아니면 아무나 쉽게 만나주지 않으세요. 그래서 제가 반드시 재상을 데리고 가야 해요. 그리고 꼭 사부님께서 재상을 낫게 하시도록 할 겁니다.” 원경릉은 이렇게 말하는 자신에게 감탄해 마지 않았다. 이런 얼토당토 않는 소리를 천연덕스럽게 하다니!원경릉이 일어나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모두의 눈빛을 뒤로 하고 웃으며 말헀다.
“미친 거 아니에요?” 원경릉이 기가 찬다는 듯 말했다.홍엽이 대꾸했다. “내가 이 기회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기나 해요? 저는 꼭 갈 겁니다.”원경릉이 역정을 냈다. “어디 쓸모가 있다고 가는 데요? 그냥 혼란만 주는 거잖아요? 솔직히 이번에 가는 거 살아서 돌아올 수 있을지 없을지 잘 모르는데 그냥 우리랑 같이 죽을 거예요? 괜히 설치지 말아 줄래요? 원숭이에게 관심 많은 거 알아요. 그러니 만약 제가 돌아올 수 있다면 원숭이에게 잔류 의식이 아직 남아있는지 여부를 조사하는 거 도와드릴게요. 원숭이를 살릴 수 있으면 반드시 최선을 다할 거고요.”홍엽이 원경릉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물었다. “이게 무슨 뜻이에요? 살아서 돌아올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니? 이번에 가는 게 위험한 겁니까?”원경릉은 마음이 너무 괴로웠다. 안에서 기쁜 얼굴을 가장해 왔지만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은 충동이 일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위험하지 않으면 왜 다들 가자고 안 하겠어요? 지금 사람들과 잘 이별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중이니까 건드리지 마세요. 완전히 무너져 버릴지도 모르니까.”원경릉의 다소 센 말에 홍엽이 당황했다. “위험한데 왜 꼭 가야 하죠?”그러자 원경릉이 애써 눈물을 참으며 말햇다.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요. 만약 제가 안 가면 저도 살 수 없어요. 전 원숭이랑 같은 상태예요. 원숭이도 죽을 거고, 저도 죽을 거예요.”“당신....당신은 죽으면 안 돼요.” “저야 말로 죽기 싫어서 이렇게 시도를 하는 거라고요. 그래서 이번에 당신을 데리고 갈 수 없어요. 당신은 목적성이 강하니까 정말 가고 싶으면 태자를 찾으세요. 그럼 방법이 있을 거예요.”홍엽이 원경릉을 보고 한참 있다가 입을 열었다. “좋아요. 알았어요.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죠.”원경릉은 결국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고마워요.”우문호가 나와서 두 사람이 복도 끝에서 대화하는 것을 보고는 얼른 다가와 물었다. “무슨 일이야?”원경릉이 눈가를 닦으며 답했다. “아무 것도
초왕부는 여전히 웃음소리가 떠돌고 있었으나 가식적인 웃음 뿐이었다. 다들 ‘주재상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데려가는 거면 왜 원경릉 본인이 직접 가야만 하는거지?’, ‘사부님이 다른 사람을 만나지 않아서 그런 거면 원경릉은 주재상을 데려다 주고 돌아오면 되는데 왜 굳이 계속 기다리는 걸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원경릉의 변명은 누가 들어도 억지스러웠다. 심지어 한 달도 되지 않는 아기를 떼놓고 가다니. 이 정도면 확실히 간단한 문제가 아니란 소리다.하지만 원경릉이 계속 웃고 있으니 모두 장단을 맞춰 같이 웃는 수밖에 없었다. 동서들은 마지막에 접객실에서 얘기를 나누는데 매사에 덤벙거리며 세심함이라고는 없는 손 왕비조차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눈물이 흘러내리자 얼른 고개를 돌려 눈물을 닦으며 울먹였다. “얼른 돌아와야 해. 난 동서가 이렇게 오래 없는 게 아무래도 낯설어.”이 말에 팽팽하게 긴장하고 있던 마음의 줄이 끊어지듯 이별의 슬픔으로 휘감겼다.원경릉은 괴로웠다. 입술이 바르르 떨리고 얼굴에 미소도 점점 유지하기 힘들었지만 눈물이 떨어지려는 것을 겨우 참으며 마치 자기최면이라도 걸 듯이 말했다. “전 반드시 최대한 빨리 돌아올 거예요. 반드시!”“기다리고 있을게.” 요 부인이 원경릉에게 조용히 속삭였다.“우리도 기다리고 있을게요.” 동서들도 너도나도 말했다.원경릉이 동서들을 바라보았는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그리고 원경릉이 차례로 한 마디씩 작별의 인사를 건네는데, 손 왕비에게는, “앞으로 둘째 아주버님을 게속 원망만 하지 마세요. 평범도 좋고 말다툼을 해도 좋고, 결국 아주버님은 형님 곁으로 돌아오시잖아요. 형님이야 말로 알찬 거죠.” 요 부인에게는, “혼례식에는 참석하지 못 할 것 같지만 훼천을 믿어 봐, 늘 요 부인을 지키고 아껴줄 게 분명하니까.” 원용의에게는, “줄곧 여기저기 다니고 싶어하는 거 알아, 일곱째 아주버님 휴가 때 가. 미루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은 최대한 해야지. 청춘을 배신하지 말고!”사식이에게는, “힘껏 서일
출발 전에 원경릉은 할머니와 한참을 얘기하며 할머니를 위로하고 나서야 드디어 계란이를 보러갔다. 계란이를 안으며 손가락 끝으로 살짝 볼을 만졌다. 젖을 듬뿍 먹은 아이는 순하고 천진난만했다. 천사처럼 눈을 깜박이며 엄마를 바라보는게 세상에 호기심이 충만한 모습이었다.이렇게 달콤한 아가가 불 속성일리는 없을 것이다. ‘아쉬워, 아쉬워, 너무 너무 아쉽다…’우문호가 조용히 들어와 눈동자에 어린 슬픔을 억누르며 목멘 소리로 말했다. “마차 준비 다 됐어.”원경릉은 계란이를 하염없이 바라보더니 미련이 가득한 얼굴 아이를 내려놓는데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마차는 서서히 움직였다. 원경릉이 가리개를 젖히고 초왕부 문 앞으로 보는데 돌계단, 대문, 문에 박힌 구리 못, 문 앞에 두 마리 사자상, 그리고 돌계단 옆 바닥에 낀 이끼까지. 익숙한 장면들이 보이자 원경릉은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아쉬운 마음이 어디 사람한테만 있을까? 초왕부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기와 한 장, 벽돌 하나도 다 미련과 아쉬움의 대상으로 원경릉의 마음속에 초왕부는 예전부터 고향이었다.사람들이 북적이는 큰 길, 나부끼는 상점, ‘집복당이요’, ‘덕복루요’라며 장안 거리 상인들이 외치는 소리, 싱글벙글한 사람들의 얼굴, 긴 골목 끝에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 원경릉은 문득 다바오가 떠올랐다. 다바오에게 작별인사를 나누지 못했는데 어쩌면 앞으로 다바오를 못 본다는 생각에 자신의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어 얼굴을 감싸쥐고 눈물을 흘렸다.우문호는 원경릉을 가슴에 끌어안고 조금도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아이들도 엄마를 껴안으며 슬픈 분위기는 이로 말할 수 없었다.밖에서는 서일이 말을 몰았는데, 출타의 진실을 알고 문을 나서면서부터 너무 충격을 받아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머릿속에서 많은 일이 지나갔다. 매 순간 태자비 마마가 없었다면 지금의 서일은 없었을 것이다. 서일은 소매로 눈물을 훔치고 고삐를 쥐었다. 그리고 “이랴!”라고 소리치며 사무치는 슬픔을 감췄다.성을 나갈
소요공이 얼른 말했다. “에이, 아니야. 축하연 모닥불에서 막 술에 취해서 얘기했잖아, 무슨 시공간에서 만든 전차말이야, 사부님이 많은 말씀을 하셨는데 기억 안 나?”태상황이 놀라서 소요공을 보는데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모습이었다. 축하연 때 태상황은 대취했었다.하지만 재상은 다 기억하고 있어서 의자에 단정하게 앉아 차분한 목소리로 한 마디 거들었다. “난기억나. 거기 아가씨는 팔 다리를 내놓은 옷을 입는다고 했지.”“아!” 태상황은 이 말을 들으니 확실히 형수님이 술에 취했을 때 이 얘기를 아무렇게나 했던 것이기억났다. 하지만 태상황은 웃음을 지었다. “그건 형수님이 멋대로 지어내신 말이야. 술에 취하시기만 하면 창작능력이 막 폭발하시잖아.”“아냐, 난 사부님을 믿어. 사부님이 말씀하신 건 분명 진짜야. 그 시공간 나라는 우리와 거리가 아주 먼데, 거길 가려면 아주 멀고 먼 길을 가야한다고 하셨어.” 소요공이 아이처럼 신이 난 듯 말하고는 원경릉 쪽으로 홱 돌아보고 물었다. “맞지?”원경릉은 원래 굉장히 진중하게 설명할 생각이었는데, 어르신들의 대화를 들어보니 모두 다른 시공간에 대한 개념을 이미 어렴풋이 가진 듯 했다. 하지만 저들에게 시공간이란 그저 어떤 나라 이름 정도로 여기는 것 같았다. 즉, 그들에게 시공간이란, 어떤 나라가 있는데 그 나라 이름이 ‘시공간국’이라는 의미와 같았다. “그렇다고 치죠!” 원경릉이 잠시 생각해보더니 답했다.“어쩐지 그 나라를 가기가 이렇게나 어려웠다니. 북당과 무역을 하는 사람도 거의 없는 게 경호를 통과해야 했기 때문이군.” 소요공이 탄식했다.주재상과 태상황은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닌 것 같지만, 뭐라고 물어봐야 할지 몰라서 한참 생각하다가 한 마디 물었다. “그럼 그 나라 황제는 누구야? 성은 뭐지?”원경릉이 웃었다. “그 나라엔 황제가 없어요.”그러자 주재상이 화들짝 놀랐다. “황제가 없어? 황제가 없으면 누가 천하를 다스리지? 그건 법과 질서가 없다는 말이 아닌가?”“관리하는 사람은 있
원경릉은 얼른 우문호와 아이들과 함께 가서 인사를 올렸으나 우문호는 사실 인사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계란이를 기화에게 제자로 팔아 버린 일을 아직 제대로 따지기 전이기 때문이었다.안풍친왕이 말했다. “내가 당신들을 좀 도와주지.”“에?” 원경릉은 좀 의외라고 생각해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희가 어디로 가는지는 어떻게 아신거죠..?”“누군가가 명령을 내리며 너희가 가는 걸 도와주라고 하더군.” 안풍친왕비가 답했다.“누가요?” 원경릉이 직설적으로 물었다.그러자 만두가 바로 옆에서 대신 답했다. “주진이 그랬어요. 큰 증조할머니의 아빠가 라진이시라고.”안풍친왕비가 웃으며 만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주 똑똑하군!”원경릉은 정말 누가 도와줄 거라는 생각을 못해서 그 자리에 신뢰감이 상승했다. 그 중 우문호가 가장 기뻐하며 얼른 가서 예를 취했다. “큰 할아버지, 큰 할머니, 그럼 전부 두 분께 맡기겠습니다.”안풍친왕이 말했다. “최선을 다할 뿐이야. 다른 건 아무것도 보증할 수가 없네.”소요공이 곁에 있다가 안풍친왕비에게 물었다. “사부님, 저희가 이번에 가는 곳이 전에 말씀하셨던 시공국이 아닌지요?”“그렇게 옛날 일을 아직도 기억하는 게야?” 안풍친왕비가 다소 놀라워하며 말했다.“기억하죠. 사부님이 하신 한 마디, 한 마디 다 기억하고 말고요!” 소요공이 뿌듯한 목소리로 말했다.안풍친왕비가 소요공을 흘끔 보고는 한 마디 했다. “때론 너무 똑똑히 기억하는 것도 좋지 않아. 적당히 어슴푸레한 게 복이야.”소요공이 웃었다. “그렇긴 하네요.”다들 모이자 다시 앞으로 나갔다. 도장에 도착하니 날이 이미 상당히 저물어 해가 지고 달이 뜨는 중이라 해와 달이 동시에 하늘에 걸친 모습이 상당히 아름다웠다.모두 무심하게 하늘을 감상하고 도장의 도사와 인사를 나눈 뒤 경호로 갔다.해질녘 경호는 경치가 각별했는데 푸른 호수는 마치 짙고 푸른 옥 같고, 소용돌이는 옥에 있는 문양 같았다. 소용돌이 하나씩 원을 그리다가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을 휘
하지만 원래 두 시간이면 가만히 마음의 슬픔을 다독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서로 손을 맞잡고 도장에 올라가는데 두 시간은 말 그대로 참혹한 고문이였다. 도장에는 밥과 반찬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우문호는 한 입도 먹지 않고 원경릉도 먹지 않았다. 사실 앉아 있는 사람 모두 안풍친왕 부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식욕이 없었다.안풍친왕 부부는 마파람에게 눈 감추듯 금방 다 먹더니 일어나서 나갔다.삼대거두는 몇 숟갈 뜨다 말고 서일과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나갔다. 남겨진 다원 부부(다섯째 우문호와 원경릉 부부)는 식탁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봤는데, 짜증나긴 했지만 해야 할 말은 이미 다 해서 더 말해봤자 잔소리밖에 안 됐다.원경릉은 우문호가 점심을 별로 먹지 않았는데 저녁도 거의 먹지 않아 걱정이 되어 애써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나랑 같이 밥 제대로 먹자.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우문호가 알았다고 하며 젓가락을 들었으나 두 손이 떨리고 눈시울이 빨개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눈물이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게 지금으로서는 최선이었다.두 사람은 그렇게 아무 말이나 몇 마디 주고받다가 그릇을 내려놓고 서로 마주보았다. 그리고 우문호가 식탁에 손을 뻗어 원경릉의 손을 잡으며 속삭였다. “나랑 같이 도장 신선에게 참배하러 가자.”그러자 원경릉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함께 일어나 길잡이 아이를 따라 이곳에 봉납되어 있는 모든 신선에게 참배했다. 우문호는 아주 경건하게 향을 피우고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 길잡이 아이가 요구한 모든 규칙을 하나도 빠짐없이 따라했다.우문호는 이미 손 쓸 방도가 없었다. 그저 신불에 기대는 수밖에 없었으며 이 도장에 봉납되어 있는 신선 중에 진짜 신선이 있으면 저들이 안전하게 그쪽에 도착할 수 있도록, 그리고 다시 안전하게 돌아오도록 보호해 달라고 빌었다.원래는 우문호와 원경릉만 같이 참배하려 했으나 밖에서 불안하게 기다리고 있던 아이들도 전부 들어와 같이 참배하고 아빠가 꿇어앉으면 자기들도 같이 꿇어앉고 아빠가 절하면 자기들도 따라
“우선 박원이랑 소홍천 의사부터 물어보자. 억지로 하게 하고 싶지 않아. 그동안 그들이 날 많이 도와줬으니 전부 원하는 대로 하자고.” 우문호가 말했다.“그러자!” 원경릉이 일어서며 말했다. “오늘 저녁 애들 데리고 어머님께 가서 수라를 들려면 빨리움직여야 해. 꾸물대면 늦을거야.”그러자 우문호도 계란이를 안고 일어섰다. “그래, 우리 황조모한테 가서 맘마 먹자.”우문호가 나가서 부르자 아이들이 달려와, 같이 왁자지껄하게 수라를 들러 황태후 전으로 갔다.황태후는 원래 우문호에게 할 말이 있었지만, 식사 자리에 아이들이 있어서 기다렸다가 저녁을 다 먹은 뒤 우문호와 아이들이 나가서 놀고, 원경릉이 황태후와 얘기를 나눌 때 말을 꺼냈다.“천행이가 태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부마를 풍도성으로 보낼 수가 있지.. 공주가 얼마나 괴로웠을까.”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공주는 사정을 훤히 알고 있어서, 이리 나리께서 풍도성에 가는 걸 지지하셨는걸요.”“말은 그렇게 해도, 출산 후에 여자 곁엔 남편이 있어야 하는 법이야. 하지만 이것도 단지 우리 가족끼리 하는 얘기일 뿐이고, 조정 일을 내가 함부로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는 노릇이지.”황태후는 이리 나리가 풍도성으로 간 진정한 목적을 전혀 몰랐으며, 단순히 어지러운 형국을 정리하러 갔다고만 알았기 때문에 순수하게 공주를 아끼는 마음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어마마마, 걱정하지 마세요. 이리 나리는 이미 돌아오는 중이래요.” 원경릉이 위로하자 황태후가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거 잘됐네!”온 가족이 별빛을 받으며 천천히 소월궁을 거닐었다.계란이는 아빠 품에서 잠이 들었고, 아이들은 놀다 지쳐서 아빠 엄마를 따라 천천히 걷고 있었으며, 목여 태감이 궁인 둘을 데리고 뒤에서 조용히 따라오는 가운데, 궁 안은 인적이 드물어 밤이 되자 상당히 고요했다.“어마마마께서 공주를 아끼셔서, 이리 나리가 하필 이때 풍도성에 보냈냐고 하셨어.” 원경릉이 말했다.“날 원망하셨어?” 우문호는 품에 있는 아이가 깰
늑대파 사람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질질 끌고 나가는데, 소여쌍은 여전히 미친사람처럼 웃어대기만 했다.이리봉청은 그들이 끌려 나가는 것을 보자, 눈앞에 안지여가 자신을 데리고 소여쌍의 침대 앞으로 가서 소여쌍의 그 악랄한 말을 듣던 순간이 떠올랐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여리여리하고 아름답던 그녀가 이렇게 변해 버린 게 꿈처럼 느껴졌다.풍도성을 접수한 뒤 안풍 친왕은 관리들을 새롭게 임명했고, 더 이상 성주 같은 것을 두지 않고 조정과 이부에 적합한 인사를 선발해 풍도성 지부로 앉힐 것을 요청했다. 풍도성은 더 이상 이전의 독립 자치 지역이 아닌, 다른 주나 현과 마찬가지로 조정에 귀속되어 통일서 있게 다스리게 되었다.더불어 안풍 친왕은 별도로 서신을 써서 황제인 우문호에게 보냈는데, 풍도성을 추천하지만, 이건어디까지나 건의와 추천이니 황제가 생각하는 마땅한 사람이 있으면 안풍 친왕의 추천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동시에 안지여의 잔당들이 계속 나타났다.안풍 친왕이 이번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데려오고, 호랑이와 눈 늑대, 회색 늑대까지 출동시킨 건 바로 모든 세력을 강화하고, 신속하게 진압해 풍도성을 조정에 복귀시키고 보름 만에 비적을 토벌하며 기본적인 숙청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박원은 잔당의 남은 불씨가 다시 타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 안풍 친왕의 영패를 가지고 부근에 5천 명의 군사를 파견시켜 풍도성을 지켰다. 이리 나리는 자금을 지원해 천문 세가의 묘를 이장하였는데, 이전 무덤은 안지여가 고른 곳으로 폐허에 가까워, 그는 천문 세가 사람들이 그런 곳에서 안식을 취하기를 원하지 않았다.풍도성에 온지 거의 한 달가량 될 때쯤, 대군은 경성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돌아가기 전에 미색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보러 갔다가, 돼지우리에서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사는 것을 보고 그제야 비로소 맺혀 있던 한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미색은 이리 나리와 어머님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 두 사람은 이미 안지여가 누군지 잊은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리봉청에게 있어 모든 건 지나가지 않았고, 36년 전 일은 여전히 어제 일 같이 느껴졌다.“어머니, 그를 어떻게 처분하시겠어요?” 이리 나리는 이리봉청의 마음을 넘겨짚을 수 없어 함께 걷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생각은 어떠니?” 이리봉청이 다시 되묻자 이리 나리가 원한에 사무친 눈빛으로 말했다. “제게 처분하라고 하면 전 그를 죽여 버릴 겁니다.”이리봉청은 알았다며 대답만 했다가, 다시 30분쯤 걷다가 정자에 앉아 을 때 말을 덧붙였다. “난 안 죽일 거야.”이리 나리가 약간 놀라서 물었다. “어머니, 또 마음이 약해지신 겁니까?”이리봉청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 반대야. 그 인간을 죽이는 게 마음이 약해진 거지. 사실 며칠 동안 이전의 원한을 내려놓을 수 있을지 생각해 봤는데,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 인간을 백번이라도 죽이겠지만, 난 그럴 수 없더구나. 아들아, 게다가 오늘 천문 세가 대문을 들어서는 그 순간, 더욱 마음을 굳혔단다.”이리봉청이 일어나 집안을 둘러봤다. 이곳은 그녀의 가족들이 살아 원래 온통 사람 소리로 가득한 곳이였다. 그들의 웃던 광경이 눈앞에 비치는가 하더니, 눈 깜박할 사이에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천문 세가는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없는데 멸문지화를 당했고, 가엾게도 그 중엔 아이들이 많아서 제일 어린아이는 이제 태어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었다.이리봉청의 얼굴에 눈물이 타고 흐르며 가슴이 미어졌다. “그자와 소여쌍을 밖에 내버리고 사람을 시켜 지켜보도록 해. 죽게 두지 말고 계속 살려둬. 36년은 더 살면서 이 세상의 고생을 모두 겪어야, 내 마음에 맺힌 한이 풀리고 억울한 망자들도 안식에 들지!”이리 나리는 온몸으로 그 마음이 느껴져, 어머니가 눈물 흘리는 것을 더는 볼 수 없었다. “네, 전부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대로 할게요.”안지여와 소여쌍은 버려졌다. 짧은 며칠 사이에 안지여는 의기양양하던 성주에서 시궁창 쥐로 변해, 사람들이
안지여는 풍도성 지하감옥에 갇혔다. 빛 한 줄기 없는 지하감옥에서 사방에 끝없는 어둠과 절망만이 안지여를 삼키고 있었다.훼천의 형벌은 12 시진 후면 사라져서, 앞으로 안지여는 그저 한 명의 폐인일 뿐이었다.안지여의 결사대가 성으로 공격해 들어오기 전에, 이리봉청은 오 선생을 찾아내 안지여가 저지른 모든 죄를 고백하게 하고 안풍 친왕이 친필로 받아 적었다. 안지여가 당시 천문 세가를 해친 경위를 소상히 써 내려간 뒤, 오 선생과 안풍 친왕의 직인을 찍고 인쇄해서 대중에게 공개했다.안지여의 죄악은 하늘을 찔러 백성들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안지여의 결사대의 옛 부하들이 본래 성을 공격해 들어가 안지여를 구출할 계획을 세워놓았으나, 안지여의 죄상이 공포된 뒤로 많은 사람들이 해산하였다. 유일하게 무대장군만이 수천 명을 데리고 성으로 쳐들어왔지만, 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가 이미 대비해둔 덕분에, 경성에서 굴러온 돌이 무대장군의 박힌 돌을 빼내는 전투를 벌였다.풍도성에 온 지 7일째, 안풍 친왕은 풍도성을 접수하고 성에 살던 사람을 쫓아내며 서민으로 강등시켰다.안지여와 소여쌍에 대한 처분은 이리봉청에게 넘겼다.안지여는 캄캄한 지하감옥에서 6일을 지내는 동안, 처음엔 침착한 척 가장했으나 사흘째가 되자 울부짖으며 악독한 저주의 말을 내뱉더니, 나흘째가 되자 용서해달라고 애원하며 참회했다.손발의 힘줄이 끊어진 안지여는 일어나 걸을 수도 없고 심지어 스스로 몫숨을 끊을 힘도 없었다.그 와중에 매일 누군가가 먹고 마시도록 해주고, 상처도 치료해 주어 살 수 있다는 부질없는 희망을 품게 했다.훼천의 말에 따르면, 진정한 절망은 살아도 죽느니만 못하고,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것으로, 온 마음으로 죽기를 바라지만 살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가, 안간힘을 쓴 뒤 다시 절망에 빠지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으로, 사람을 한없이 죽였다 살렸다 괴롭힌다고 했다.결국 안지여를 죽일지 말지 여부는 이리봉청에게 달렸는데, 그녀는 안지여를 단번에 죽여 천문 세가
안지여의 이마에 파란 힘줄이 불끈불끈했으나 냉정을 가장했다. “내가 두려워할 줄 알았나 보지? 죽음도 두렵지 않은데 뭘 더 두려워하겠어?”“넌 두려울 것이야!” 이리봉청이 고개를 돌려 이리 나리를 보고 살짝 그의 팔을 잡았다. “내가 오는 길에 늑대파 사람이 그러던데, 천하에서 제일 잔혹한 형벌을 아는 사람이 늑대파에 있다고. 그게 사실인 것이냐?”이리 나리가 가볍게 답했다. “물론 사실이죠. 훼천이라고 합니다. 늑대골 출신이에요.”“안지여가 버틸 수 있는지 어디 한 번 보고 싶구나.” 이리봉청이 말했다.이리 나리가 엄숙한 태도로 명을 내렸다. “훼천!”그러자 훼천이 급히 나왔다. “이리 나리, 분부하시지요!”이리 나리는 그가 짐짓 냉정한 척하고 있으나 눈빛이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몸까지 부들부들 떠는 것이 아주 만족스러워 훼천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시작해!”안지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욕했다. “난 네 아버지거늘, 감히 나에게 손을 대다니, 천벌을 받아 마땅한 놈 같으니라고!”이리봉청이 이 말을 듣고 잠시 주저하는 눈빛으로 이리 나리를 바라봤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제 아버지는 오직 저를 키워주신 안풍 친왕뿐이십니다.”이리봉청이 살짝 안도했다. “저 인간이 단지 나만 해쳤으면 네 체면을 봐서 놔줬겠지만 천문 세가의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니 난 용서할 수 없구나.”“이리봉청, 너 언제 이렇게 악랄하게 변했어? 죽이려거든 그냥 죽여. 난 천문 세가 사람을 죽이긴 했어도 그들을 괴롭히진 않았어. 네가 날 죽이려거든 깨끗하게 단번에 죽여!”안지여가 크게 노해 몇 번 몸부림을 치다가 상처가 벌어지는 바람에 배에서 선혈이 흘러나오고, 훼천이 가까이 다가가자, 눈에 두려움이 깊어졌는데, 늑대골 출신 훼천은 온몸에서 피비린내가 뿜어져 나와 안지여를 덜덜 떨게 했다.“이리율!” 안풍 친왕비는 시ㅈ가하기 전에 이리 나리를 불렀다. “내가 여기서 네 엄마와 같이 있을 테니 넌 먼저 나가 있거라!”이리 나리가 안풍 친왕비에게
안지여에게 구원 병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리 나리 일행이 성을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대오가 경성에서 출발하기 전에, 안풍 친왕비가 미리 사람을 풍도성으로 보내 각처, 특히 성 수비군과 군대에 잠입시켜, 음식에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독을 풀어, 오늘 중독 증상이 나타나도록 독의 분량을 조절했다.적어도 내일까지는 안지여를 도우러 올 사람은 없었다. 독성은 적어도 이틀이 지나야 깨끗해지기 때문에 이틀 동안 그들은 설사와 전신 무기력으로 성에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아도 와서 도울 수 없었다.그리고 그들이 기력을 회복할 때쯤이면, 안지여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는 성을 통제하고, 안지여 부부를 제압해 두 사람을 줄로 묶고 지혈시켜 주었다.안지여는 요 몇 년 동안 자신이 상당히 대단하다고 여겼다. 이는 풍도성이 부유하기 때문으로, 돈으로 많은 사람을 살 수 있었으며, 여러 곳에서 추켜세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처절하게 패배한 적이 없었던 이유는 진정한 적이 없기 때문으로, 주변의 떠돌이 비적은 작은 마을 규모로 너무 작아서 소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그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적이 너무 약해서였다.조정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는 제대로 훈련받은 적 없는 비적었기에 일격도 감당할 깜냥이 못됐다.이리 나리는 둘을 중정에 묶어 두었다. 온 바닥에 남은 음식과 깨진 기와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본 안지여는 마음속 깊이 분노가 일었다. 자신의 생일날, 그를 다치게 한 것이 바로 그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욱이 오늘 이렇게 많은 고수가 현장에 있었는데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런 결말을 맞다니 너무 불쾌했다. 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을 부축하고 안지여 부부 앞으로 가서, 그녀가 안지여 부부를 내려다보자, 그들은 낭패에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이리봉청은 분노하는 마음과 함께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그들을 죽이면 커다란 복수는 이뤄 천문 세가 망자의 원혼은 달랠 수 있었다.하지만 저들을 이렇게 쉽게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이리 나리가 검을 휘두르며 안지여를 겨누자, 안지여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후퇴했다.공자들은 돕고 싶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에게 바로 제압당했다. 안지여는 이리율 것으로 그들은 주변 사람을 제압하기만 할 뿐 옆에 서서 전투를 관전하고 있었다.이리율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를 가르친 안풍 친왕 부부를 제외하고, 사실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이리율의 검법은 신속하고 맹렬해서 안지여는 상대하느라 쩔쩔매고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다. 성안의 호위들은 늑대 무리와 늑대파, 홍매문 사람들에게 막히는 바람에 안지여는 홀로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그래도 아직은 버틸 수 있었다.하지만 30분을 못 가서 안지여는 질게 틀림없었다.놀란 나머지 계속 실성해 있던 소여쌍이 갑자기 이리봉청을 향해 바싹 마른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조르며 광적인 집착과 분노에 사로잡혀 성질을 부렸다. “멈춰, 다들 멈추라고. 안 그러면 내가 이년을 죽여버릴 것이니까!”소여쌍은 무공을 할 줄 알았지만 잘하지 못한 것이 어릴 때부터 계속 중병을 앓아 무공 연습에 소홀했고 성주 부인이 된 뒤로는 더욱 병기에 가까이할 일이 없었지만, 공력만큼은 아직 약간 있었다.소여쌍은 증오의 힘으로 이리봉청의 목을 졸랐는데, 소여쌍이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이리봉청의 목을 부러뜨릴 것만 같았다.안풍 친왕이 차가운 눈빛으로 나서려 하자, 안풍 친왕비가 말리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는데, 그럴 필요 없다는 뜻으로 뒤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참으라는 눈짓을 하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모두가 이리봉청이 제압당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손가락으로 뭔가를 쥐고 있어 소여쌍의 어깨 위를 휘감고 팔을 눌러 소여쌍이 머리를 돌리게 했다. 이리봉청 손에 쥔 것은 바늘로, 그대로 소여쌍의 오른쪽 눈을 찌르고 들어갔다.소여쌍이 절규하며 이리봉청을 놔주고 선혈이 흐르는 눈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다 바닥에 쓰러져 데굴데굴 구르며 새된 소리를 지르는데, 원망과 저주의 말을 끊임없이 쏟아
풍도성 중정에는 안지여의 아들들과 사위가 그의 곁에 남았는데,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점점 공포에 질려가고 있었다.‘이 사람들, 아주 대단하구나!’안지여는 이리봉청을 보고 비록 조금 냉정해 보였지만, 여전히 놀라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갑자기 소여쌍이 큰 소리로 웃으며, 몸을 앞뒤로 흔들며 눈물을 찔끔거리더니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이리봉청을 가리키며 원망했다. “뜻밖에 네가 안 죽었단 말이지? 게다가 아들까지 있고. 참으로 황당하구나. 정말 너무 황당해. 원래 죽어야 했을 인간은 죽지 않고, 잘 살아야 할 사람은 36년간 괴로움을 당했어. 이리봉청 네가 날 비참하게 만들었으니 넌 이제 지옥에 떨어져야 해.”이리봉청은 소여쌍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했는데, 그녀 눈에는 지금 안지여만 들어왔다.안지여는 36년을 살아왔지만, 이리봉청에게 있어 36년은 마치 사라진 시간처럼 멸문지화의 원한이 어제 일 같았다.안지여도 이리봉청의 눈에서 분노와 악랄함을 보고, 처음으로 마음속에 두려움을 느꼈다.안지여는 억지로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네 사람을 데리고 가. 지난 일을 묻지 않을 테니. 그렇지 않으면 풍도성에서 곧바로 10만 대군이 올 것으로, 살아서 도망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아.”이리봉청의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 “우리는 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바로 네 성으로 쳐들어갈 수 있어. 넌 이미 졌어.”안지여가 웃었다. “졌다고? 그래?”안지여는 수하의 대장군이 믿음직해서, 그들을 당하게 놔줄 수도 있다고 여겼다. 대장군의 부대는 분명 치밀하게 준비되어 있을 것으로, 아마 지금쯤이면 궁수들이 이미 배치를 마치고 그들을 전부 쏴 죽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어머니, 저자와 말 섞으실 필요 없어요. 앉아서 지켜보시기만 하면 됩니다!”말을 마치고 의자를 올리더니 이리봉청을 부축해서 앉혔다.안지여가 이리 나리를 보는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안지여가 퍼뜩 눈을 돌려 이리 나리를 보았다.‘이리봉청이 저자를 아들이라고 불렀다는 건러니까?이리 나리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찬찬히 훑어보더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안 성주와 좀 오래된 원한을 따져야 하는데, 관련되기 싫으신 분은 자리를 피해 주시지요!”그때 한 사람이 검을 짚고 일어나 호통을 쳤다. “넌 도대체 어떤 놈이냐? 무슨 자격으로 자리를 피해라 마라야? 안 성주를 귀찮게 할 생각이면 일단 나부터 통과해 보시지!”그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장검을 뽑아 파죽지세로 이리 나리를 향해 휘둘렀다.이리 나리는 손을 살짝 움직여 손바닥으로 칼자루를 밀자, 검이 날아가며 그 사람의 귀를 베어 한 줄기 피가 공중에 뿌려지더니, 방금까지 기고만장하던 자가 비명을 지르고 귀는 바닥에 떨어졌다.검이 다시 이리 나리 수중으로 정확히 돌아왔다.이 모든 게 3초 안에 벌어진 일이었다.“회선검?” 검법을 아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외쳤다.현장은, 숨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았다.회선검은 검마의 검법으로, 그렇다는 건 저 사람이 검마의 계승자?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무리에서 검마를 찾았다. 과연 두 손으로 검을 안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도 차가운 안광이 느껴졌다.과연 진짜 검마구나, 사람들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검마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리 나리를 흘끔 보더니 속으로 의아해했다. ‘이 자식, 언제 내 비장의 검법을 배운 거야?’이리 나리의 검 끝에선 아직 선혈이 떨어지는데, 여전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말했다. “이 아수라장에 끼고 싶은 거라면, 제가 무례하다고 원망할 생각 마세요.”“무엄하도다!” 안지여가 몹시 놀랐다가 천천히 정신을 차리고 눈을 치켜뜨며 이리 나리를 노려봤다. “너는 내가 누구인 줄 아느냐? 내가 네 아버지다!”이리 나리가 코웃음을 쳤다!안지여의 몇몇 아들이 달려 나와 소리쳤다. “아버지, 저희가 지켜드리겠습니다.”안풍 친왕이 젓가락을 던지고 일어나 차갑게 명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