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은 주눅 든 모습으로 왕부로 들어가더니 회계방으로 문방사보(文房四寶)를 찾으러 갔다. 회계방을 지키는 선생은 서일의 사촌동생이었는데, 서일이 느닷없이 들어와서는 선지(宣纸) 1000장이 필요하다고 하자 눈이 휘둥그레졌다.“그렇게나 많이? 그럼 창고에서 가져와야 하는데, 탕대인(汤大人)에게 열쇠를 받아서 직접 가져가세요.”서일은 하는 수없이 탕양을 찾으러 갔다.탕양은 장부를 꺼내 기록을 하던 중에 서일이 들어와 선지 1000장을 가져가겠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그렇게나 많이 필요하다고? 그렇게 많은 종이를 어디에다가 쓰게?” 탕양이 물었다.“탕어른, 저 좀 도와주세요.” 서일이 울상이 되었다.“무슨 일이야?” 탕양은 서일의 낯선 모습에 당황했다.“왕야께서 저에게 ‘예의염치’라는 네 글자를 천 번 베껴 쓰라고 벌주셨습니다. 예의는 쓸 수 있는데, 염치는 어떻게 씁니까?”이 말을 들은 탕양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이상하다. 자네야 염치가 없으니, 염치를 쓰라고 하신 건 그렇다 치고, 왕야께서 예의를 쓰라고 하셨다고? 자네 왕야께 예의 없이 행동했나?”“지금 저를 놀리시는 겁니까? 이렇게 불쌍한 저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놀리기나 하고! 앞으로 저도 탕어른을 도와주지 않을 겁니다!” 서일이 발을 동동 구르며 탕양에게 소리쳤다.“자네가 나를 언제 도와줬어?” 탕양이 웃었다.“앞으로 제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을 겁니다!” 서일이 말했다.탕양은 웃으며 창고 열쇠를 들었다. “어서 창고에 선지를 가지러 가자. 가는 길에 왜 왕야께서 그런 벌을 내렸는지 나에게 알려줘야 해.” 탕양이 웃으며 말했다.“마차가 왕부에 도착했으니, 장막을 걷고 왕야와 왕비께 내리라고 했습니다. 근데 마차 안이 더웠는지 두 분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땀을 한 바가지를 흘리고 있지 뭡니까? 그리고 왕비의 옷 앞섶이 열려있길래 슬쩍 눈이 갔는데, 왕야가 욕을 하시지 뭡니까!”창고로 가는 길에 그는 탕양에게 억울함을 호소했다.이 말을 들은 탕양은 발걸음을 멈추고는 넋이
소월각에 도착하니 시중을 드는 청색 옷을 입은 서너 명의 시녀들이 있었다. 그들의 나이는 열다섯 살 내지 열여덟 살 정도로 보였으며 청순한 얼굴에 행동거지가 얌전한 것이 대갓집의 계집종의 소양을 띄고 있었다. 그들 몇은 원경릉에게 깍듯하게 대했으며 그녀가 식사를 하는 내내 옆에서 세심하게 시중을 들었다.원경릉은 우문호가 그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살폈는데 그들 사이에 묘한 기류라거나, 계집종을 귀여워하거나 눈길도 주지 않았다. 시녀들의 눈빛에도 우문호를 향한 경외심뿐 다른 느낌은 없었다. 원경릉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잠자리 시중을 드는 여인이건 첩이건 다른 여자들과 한 명의 사내를 나누어 가질 바엔 차라리 갖지 않는 편이 낫다. 우문호는 소월각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원경릉이 시녀들을 뚫어져라 보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 그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어 ‘풉’하고 소리를 냈다. 원경릉은 어리둥절해서 그를 돌아보았다. “뭐가 웃깁니까?”우문호는 그녀의 하얗고 깨끗한 얼굴을 보았다. 이마에 작은 분홍색 흉터, 맑은 눈가, 들쑥날쑥하지만 빽빽한 속눈썹, 핏기를 머금은 붉은 입술, 그녀는 마치 활짝 피어있는 장미꽃 같았다.그는 지금 당장 원경릉을 번쩍 들어 올려 침대 위로 내동댕이치고 싶었다.원경릉은 불타오르는 우문호의 눈빛을 애써 외면하며 고개를 숙이고 수저를 들었다. 그녀는 속으로 계속 그 문제를 생각했다. 도대체 무엇이 우문호를 저렇게 만든 것일까?잠시 후, 그녀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 경계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사실대로 말해, 내가 어장(御杖)을 가지고 있어서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는 거지? 내가 어장으로 너를 내리칠까 봐?”우문호는 쓴웃음을 지으며 수저를 들어 탕을 한술 떴다. 목구멍에서 넘어갈랑 말랑한 탕을 겨우 삼키며 그는 방 안의 시녀들을 모두 내보낸 후 원경릉의 눈을 직시했다. 원경릉은 바짝 긴장하며 그를 쳐다보았다. 우문호는 그런 그녀를 보며 천천히 손을 뻗었다.“내
원경릉은 온몸이 굳은 채 눈동자만 이리저리 움직였다. 우문호의 뜨거운 눈동자를 피하기 위해 재빨리 몸을 피했다. 그의 입술이 온기를 머금고는 점점 가까워졌다. 그녀는 온몸이 나른해지며 눈을 감았다.“오늘 밤은 소월각에서 어때?”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원경릉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밀어냈다. “나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좀 혼란스러워서.”말은 마친 후 원경릉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어찌나 마음이 급했는지 단숨에 아주 멀리까지 뛰어갔다. 오래간만에 달리기에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허리를 굽히고 두 손으로 무릎을 짚으며 숨을 크게 내쉬었다.이게 무슨 일일까? 이 둘은 원래 만나기만 하면 싸우던 사이였는데, 갑자기 핑크빛 기류가 흐르는 사이로 발전하다니? 우문호가 원경릉을 좋아한다고? 그럴 리가 있나? 그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녀를 죽이고 싶어 이를 부득부득 갈지 않았는가?그가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게 분명하다!하지만, 그가 그녀에게 원하는 게 무엇일까? 돈? 돈은 우문호가 원경릉보다 많을 텐데. 지위? 우문호의 신분이 원경릉보다 높은데……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 걸까?“왕비, 괜찮으십니까?” 뒤에서 탕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원경릉은 깜짝 놀라 휙 뒤를 돌아보니, 흰옷을 입은 훤칠한 모습의 탕양이 보였다.그녀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탕양님. 저를 심장마비로 죽이려고 하십니까?” 라고 말했다.“왕비, 제가 무례했습니다!” 탕양이 미소를 지으며 “그런데 왕비님은 원래 이렇게 잘 놀라지 않으셨잖아요.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십니까?”라고 물었다.원경릉이 어찌 탕양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터놓겠는가? 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별일 아닙니다. 밥을 많이 먹어서 소화시킬 겸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탕양님의 목소리가 들려서 깜짝 놀랐지 뭡니까.”라고 말했다.“그렇군요. 근데 왕비 고민이 있으면 저에게 털어놓으십시오. 제가 비록 이래 보여도 알고 있는 게 많습니다.”탕양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원경릉을 쳐다보았다.당당한
기라가 우문호의 말을 듣고 한걸음 다가와 몸을 숙이고 “왕야. 소인 여기 있습니다.”라고 말했다.우문호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천천히 손을 뻗어 볼을 꼬집었다.“왕야!”기라(綺羅)가 놀라서 멍해졌다.“가보거라.”우문호가 손을 휘휘 저었다.보기엔 다 똑같은 얼굴인데 왜 원경릉의 볼은 꼬집었을 때 느낌이 다른 걸까?기라는 당황스러움을 감추고 “왕야 잠이 오지 않으신다면, 소인이 잠향을 피워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그래라.”우문호는 자꾸 떠오르는 원경릉의 모습에 미쳐버릴 것 같았다.기라가 피운 잠향에 그는 점점 의식이 흐려지고 잠이 몰려왔다.몽롱한 기운이 감도는데 원경릉이 살금살금 들어와 침상 옆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나 잠이 안 와. 나랑 같이 좀 걷자!”원경릉이 조용히 말했다.우문호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는 원경릉의 손을 잡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는 그녀의 혼란스러운 눈동자를 보고 마음이 쓰였다.고요한 밤, 귓가엔 벌레들의 울음소리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이외에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정원엔 길모퉁이마다 걸려 있는 양각 풍등(羊角風燈)의 불빛이 사방에 흩뿌려져있었다.두 사람은 호숫가 버드나무 아래에 앉아 밤바람에 겹겹이 일렁이는 호수 표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문호는 그녀의 손을 꼭 잡고는 그녀를 감싸 안았다.“왜 아까 도망갔느냐?” 우문호는 작게 읊조리며 “너는 본왕을 보고 한 번도 마음이 동요된 적 없느냐?”라고 물었다.그녀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당연히 있지. 널 좋아해.”“그런데 왜 도망갔어?” 그의 입술이 그녀의 뺨을 스치더니 이윽고 그녀의 입술에 닿았다.원경릉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그의 앞에 서더니 무릎을 꿇고 앉아 비녀를 뽑고 긴 머리를 늘어뜨렸다. 밤바람에 머리카락이 그녀의 어깨 위로 흩날렸다.그녀가 손으로 자신의 어깨에 걸쳐진 저고리의 깃을 내리자 희고 수려한 어깨가 보였다. 그녀가 고개를 들자 움푹 파진 쇄골이 드러났다.우문호의 숨이 빠르게 가
우문호는 몸을 일으켰다. 그는 사나운 얼굴로 “너…… 본왕의 이부자리를 빨아 오거라.”서일은 한쪽 눈을 손으로 감싸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우문호를 쳐다보았다.그러자 남은 한쪽 눈에도 주먹이 날아왔다. 우문호가 화가 풀리지 않은 듯 잔에 담긴 물을 한 번에 들이켰다. 날이 밝지도 않은 어두컴컴한 시간, 서일은 억울하다는 듯 울먹이며 이부자리를 끌어안고 밖으로 나갔다.기라(綺羅)가 침상으로 들어와 조심스럽게 우문호를 바라보니, 그는 화난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와 눈을 마주치자 기라는 무서워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왕야께서 오늘 왜 이러시지?’기라는 벌벌 떨며 침상 위에 새 이부자리를 펴놓고 서둘러 나갔다.우문호는 다시 잠자리에 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잠이 오지 않아 계속 뒤척였다.서일은 우물가에 쭈그리고 앉아 방망이로 연신 이불을 내리치며 울었다. 그 모습을 본 탕양이 멀리서 초롱(燈籠)을 들고 왔다. “서일.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왕야가 쓰라는 건 다 쓰고 이불을 빨고 있는가?”서일은 억울한 눈빛으로 탕양을 보았다. “탕어른께서는 어찌 주무시지 않고, 이 시간에 돌아다니십니까?”“잤다. 밖이 시끄러워서 나와 본 것이야.” 탕양은 서일의 옆에 앉아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왜 매번 왕야의 미움을 사는 거야?”라고 서일에게 물었다.서일은 한숨을 내쉬며 “저도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다.“네가 열심히 하지 않으면 왕야가 널 내보내고 다른 사람을 들일 수도 있어.”탕양이 말했다.그 말을 들은 서일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잡고 있던 이불을 놓아버렸다.“탕어른! 그게 정말입니까? 왕야께서 설마 저를 내보내 버리려고?”“네가 이렇게 왕야의 심기를 거스르게 한다면, 그럴 수도 있지. 너도 알다시피 왕야를 모시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아? 너 하나쯤 대체하는 건 식은 죽 먹기다.”탕양은 어깨를 으쓱였다.서일이 자리에 털썩 주저앉더니 생각에 잠겼다.‘내가 비록 얻어 맞고, 욕을 먹어도 절대 이 자리를 남에게 내어줄 수는 없다.’
“은화(银子)가 없는데 어떻게 여인을 부릅니까? 그곳은 은화로 계산을 합니다.”서일이 씩씩하게 말했다.“내일 회계방으로 와서 은화를 찾아가거라.” 탕양은 천천히 뒤를 돌며 “참, 왕야의 이불을 잘 빨아라.”라고 말했다.서일은 이런 생각을 해낸 자신이 대견해서 이불을 빠는 내내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원경릉은 잠이 오지 않았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 이리저리 뒤척거렸다. ‘미치겠네! 도대체 우문호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그녀는 이불을 머리까지 끌어올렸다. ‘우문호를 정말 믿어도 될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의 매일 폭력을 휘두르던 그가 한순간에 이렇게 바뀌다니? 하지만…… 그와 입을 맞추는 게 왜 이리도 좋을까?’마차를 타고 왕부로 돌아올 때, 그녀는 우문호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 그의 심장소리를 들었다. 그 순간 그녀는 마음이 평온해졌다. 그가 갑자기 입을 맞추는 바람에 그 평온함도 잠시였지만 말이다.만약 마차가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렸다면 마차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원경릉은 자신이 미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우문호의 숨결, 심장박동, 입술. 이 모든 것들이 그녀를 잠 못 들게 했다.‘제발 진정해!’그녀는 침상에서 내려와 찬물을 한 잔 마시며, 만약 계속 잠에 들지 못한다면 약 상자에서 수면제를 꺼내 한 알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잠시 후, 도저히 안되겠다고 생각이 들어 그녀는 약 상자를 열었다. 하지만 그 안엔 수면제가 없었다.하는 수 없이 그녀는 다시 침상에 누웠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양 네 마리, 우문호 다섯 마리, 우문호 여섯 마리…….’다음 날, 두 사람 모두 일찍 눈이 떠졌다. 그 둘은 다크서클이 턱 끝까지 내려온 채로 본관에서 마주쳤다.서로를 마주 보고는 넋이 나간 듯 어색하게 인사를 나눴다.서일도 눈 밑이 퀭한 채로 하품을 하며 본관으로 들어왔다. 때 마침 구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구사는 그들을 보고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마치 판다 세 마리를 보는 것 같았다.
회왕이 일어나지 않자, 원경릉은 밖에 나가 지난밤 시중을 든 사람에게 물었다. 시동은 간밤에도 피를 토한 적은 있었지만 기침은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희상궁은 회왕이 약을 먹은 현황을 말했다. 저녁 식사 후에 한 번, 한밤중에 깨어나서 각혈 후에 또 한 번 복용했고, 오늘 아침은 아직 약을 먹지 않았다고 했다. 원경릉은 고개를 끄덕이며 “희상궁님 수고하셨네요. 가서 주무세요. 낮에는 제가 지켜보겠습니다.”라고 말했다.희상궁은 고개를 저으며 “필요 없습니다. 회왕님이 약을 복용하는 시간 외에는 저도 잠을 잤습니다. 제가 잠을 자는 동안에는 노비(魯妃) 마마께서 보낸 사람이 시중을 들었습니다.” 라고 말했다.“그렇군요. 그럼 노비 마마는요?” 원경릉이 물었다.“주무십니다. 어젯밤 마마님께서 밤새 돌아다니셨습니다.”원경릉은 의아했다. 오늘 노비는 원경릉을 감시하지 않는 거지?그녀는 어제 노비가 그녀를 신뢰하기 시작했다는 느낌을 받긴 했지만, 노비가 완전히 그녀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노비가 끝끝내 나타나지 않자, 원경릉은 아마도 어제 회왕의 상태가 호전되면서 노비가 생각을 바꾼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회왕은 희상궁과 원경릉의 대화 소리에 뒤척이며 기침을 두 번 했다. 그 소리를 듣고 시동이 수건을 들고 급히 달려갔다. 회왕은 시동의 도움을 받아 세수와 양치를 마친 후, 간단하게 머리를 정돈하고는 좁쌀죽을 먹었다.우문령은 마스크를 쓰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여섯째 오라버니. 초왕비가 왔습니다.”회왕은 원경릉을 보고 활짝 웃었다.“알겠다. 근데 넌 왜 이렇게 일찍 온 것이냐?”“며칠 내내 제가 회왕부에서 살다시피 한 것을 이제야 안 겁니까?” 우문령이 입을 삐죽거렸다.“어? 그래?” 회왕은 눈에 웃음을 머금은 채 우문령을 바라보며 “현모비(賢母妃)께서 여기 와 있다고 뭐라고 하지 않으시냐?” 라고 물었다.“모비는 항상 저를 꾸짖잖아요. 그래서 부황에게 이미 허락을 맡았죠.” 말을 마치고 우문령이 방석 위에 앉으며 시동을
회왕이 약을 복용한 이후 별다른 부작용은 보이지 않았다. 원경릉은 약 복용량을 좀 더 늘려 결핵균을 가능한 한 빨리 없애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바늘은 무엇이죠? 어의가 쓰던 것이랑 다른데?” 우문령이 다가와 물었다.“이건 결핵에 효과가 좋은 약입니다. 치료 기간은 보름 정도고, 일반적으로 이걸 사용하면 전염성이 급격히 낮아집니다. 그 이후에 약을 바꿔 반년 정도 치료하면 완치가 가능합니다.”원경릉이 설명했다.우문령이 눈을 부릅뜨고 원경릉을 보았다.“진짜로 완치가 가능하다고요? 여섯째 오라버니의 병이 낫는다니, 정말 다행입니다!”원경릉은 미소를 지으며 회왕을 바라보았다. 회왕은 그녀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시종일관 무표정을 유지했다.“병세를 보아하니 완치의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모든 병에 맞서 싸우려면 환자의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특히 환자의 낙관적인 태도가 중요합니다. 저는 많은 환자를 만나봤는데 그중에는 이미 손을 쓰기 늦은 환자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살려는 의지가 강해 오래 사는 환자들도 있었습니다. 회왕님 주변에서 이렇게 응원을 하는데 꼭 건강을 되찾으셔야죠.”원경릉의 말을 들은 회왕은 고개를 살짝 들어 무슨 말을 하려다가 멈추고 미소를 지었다.“예. 초왕비 말이 맞습니다.”원경릉은 그가 아직도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회왕은 오랜 병치레 때문인지 시종일관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원경릉은 회왕에게 약물치료와 함께 심리치료도 해야겠다는 판단이 섰다.회왕은 겉으로 보면 치료에 협조적인 듯했지만 사실은 매우 비관적이었다. 자신의 병세가 호전되는 것을 자신의 두 눈으로 확인했으면서도 이것은 잠깐이고, 자신은 결국 죽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는 주변 사람들이 병이 호전된 것을 보고 기뻐할 때, 그들을 따라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공허했다.“모두 나가주시지오. 제가 왕야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원경릉이 말했다.원경릉이 정색을 하며 말하자 우문령과 시동, 그리고 희상궁이 바쁘게 밖으로 나갔다.밖에는 사람들로 시끌벅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