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 우문호우문호는 원경릉을 가슴에 끌어당겨, “가지마, 당신한테 할 말이 많아, 앉아봐, 여기서 내 얘기 들어.”원경릉이 하는 수 없이, “좋아요, 얘기해요, 들을 게요.”우문호가 누워서 원경릉이 일어나지 못하게 가슴 앞에 꼭 끌어 안고, 눈을 감고 자신과 회왕이 어릴 때부터 자라나며 있었던 각종 재미난 일과 흑역사를 얘기하기 시작했다.술에 취한 사람의 주정은 특히 느릿느릿하고 말꼬리를 질질 끌어서, 완전 자장가가 따로 없었는데 원경릉은 아예 편안한 자세를 잡고 잠이 들었다.삼경(밤 12시)에 일어나 보니 우문호는 쿨쿨 잠이 들었는데, 붉었던 얼굴은 이미 색이 돌아왔고 머리에 관을 아직 벗지 않은 모습이 꽤 멋지다. 깊이 잠든 우문호는 들뜬 기운이 사그라지니 오히려 학문이 깊고 온화해 보인다.원경릉은 우문호의 볼에 뽀뽀하고 팔을 괴고 우문호를 바라봤다.이 남자는 전신이 결점 투성이로, 거칠고 난폭하며 고집스럽고 더럽고 어떨 땐 사건을 처리하고 돌아와 씻지도 않고 옷만 벗고 침대에 쓰러져 잔다.우문호의 결점은 손가락 발가락 다 동원해도 부족할 만큼이다.하지만 우문호는 장점도 많은데, 효심이 깊고 원칙을 고집하고 아내를 사랑하고 아이를 사랑하고 전에는 개를 무서워했는데 지금은 다바오와 거의 ‘절친’이 되었다.우문호는 황실의 아들이나 백성의 둘러싸여 살며 허세를 부리지도 않고 땅에 발을 붙이고 생활의 향기를 풍긴다. 쉽게 말해 실질적이고 명실상부한 한 명의 사람이다.전에 할머니가 그러셨다. 원경릉은 나중에 결혼하지 않을 거라고, 오직 연구에만 몰두하고 연애라 고는 1도 모르는 여자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이다.만약 원경릉이 결혼 정도가 아니라 아이까지 셋을 낳았다는 걸 할머니께서 아시면 분명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시겠지.가족을 생각하니 원경릉은 또 눈가가 붉어졌다. 천천히 누워 팔베개를 하니, 전생에 가족과 같이 한 추억이 방울방울 마음 속에 떠올랐다.사실 그들 가족이 서로 모인 날은 많지 않은 게, 1년을 통틀어 모두가 같이 모이
이리 저택이리 저택 쪽에 신시(오후3시~5시)에 올 거라던 손님이 벌써 도착해 태자비를 오라고 했다.원경릉은 초왕부에서 마냥 기다리고 있었던 게 아니라, 날이 좋은 김에 다바오를 한바퀴 산책 시키고, 열이와 호명의 일을 살피며 고시(古詩)를 몇 수 가르쳐 주고 차 한잔하며 일상을 즐겼다.그간 쌓인 피로는 며칠 느긋하게 쉬면서 거진 사라졌고 거기에 차까지 마시니 정신이 맑아졌다. 살구 빛 옷으로 갈아입고 정성 들여 높이 틀어 올린 머리에 보석을 장식하니 원경릉은 딱 위엄 있는 귀부인 모습이다. 오늘 날씨가 특히 좋아서 사식이는 집에 갔고, 이리 저택엔 만아와 서일을 데리고 갔다. 사식이가 빠져서 수행하는 호위가 부족해 보일지 모르나 비밀리에 얼마나 많은 고수가 따라오고 있는지 모른다. 그 고수들은 호시탐탐 길 가는 모든 사람들을 주시하며 갑자기 어느 흉악한 자객이 늑대파의 20만냥 현상금을 노리고 태자비를 살해할까 감시했다. 이리 저택에 도착하자 불식이 문 앞에서 원경릉을 기다리고 있다. 기울어져 비취는 햇살에 정원은 온통 금빛이고, 가을 바람이 여전히 강하게 불어와 원경릉의 옷자락이 펄럭였다.하인은 황금빛 오동나무 잎이 가득 떨어진 마당을 쓸고 있어 먼지가 이는데, 황금빛 햇살 아래 먼지도 마치 금가루 같았다.원경릉은 마치 시간의 모양을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불식은 원경릉을 데리고 들어가며, “숙친왕 전하와 이리 나리 모두 편청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원경릉이 고개를 끄덕였다.원경릉과 불식이 본관을 돌아 후원으로 들어가니 접객실은 후원 바로 맞은 편에 있다.네 쪽 문을 활짝 열고 석양이 안으로 비쳐 드는데, 원경릉은 멀리서도 숙친왕과 이리 나리가 본관에 앉아 담소를 나누다가 약속이나 한 듯 고개를 들어 자신을 보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원경릉이 들어가자 숙친왕이 일어나 예를 취하고, 원경릉과 숙친왕이 대면한 뒤 이리 나리를 보니 태산처럼 미동도 하지 않고 있는 모습에 지금 그가 사부라는 사실이 떠올라 문안인사를 올리며, “사부님 안녕
숙친왕의 선배원경릉은 심장이 벌렁거리다 밖으로 홀랑 튀어나올 것 같은데, 걸음도 흔들리는 것이 허공을 밟고 있는 것처럼 조금도 현실감이 없었다.두 사람이 어느 방 문 앞에 도착하자 녹색 옷을 입을 시녀 두 명이 문에 서 있는데 이리 저택 하인의 복장이 아니고 대흥의 복식과 화장같이 보였다.숙친왕이 정중하게 문 앞에서 소리치길, “선조님!”노 상궁이 하나가 나와서 숙친왕에게 예를 취하고, “왕야, 손님께서 오셨습니까?”숙친왕이, “상궁, 손님이 이미 오셨네.”노 상궁이 숙친왕 뒤에 있던 원경릉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태자비 마마시죠? 쇤네 태자비 마마를 뵙습니다.”원경릉이 흥분을 감추고, “예는 됐습니다.”노 상궁이 미소를 머금고, “태자비 마마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마마를 오래 기다리셨습니다.”원경릉이 문지방을 넘어가자 그 상궁도 같이 들어왔다.문을 들어서자마자 따스한 기운이 사방을 감싸는 것이 방안에 난로를 피운 것 같은데 상궁이 들어오면서 문을 닫았다.원경릉이 상궁을 따라 들어가자 휘장 밖에서 상궁이 걸음을 멈추고, “노마님, 태자비 마마 들었습니다.”“들어오너라!” 안에서 따스하고도 침착한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목소리는 전혀 늙지 않았지만 그렇게 젊은 목소리도 아니었다.휘장을 걷고 원경릉이 따라 들어가니 뒤로 구슬 발이 찰랑거리는 소리가 기분 좋게 들렸다.방에 남쪽 창문이 약간 열려 있고,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와 바닥에 떨어지는 게 한 줄기 금빛으로 바닥을 쪼개는 듯 했다.원경릉이 태사의에 앉아 있는 노인을 보니 호화롭지 않고 질박한 흰색 옷이 헐렁한 것이 편안하고 자유로워 보였다.노마님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예순 정도 되어 보이고 눈가에 잔주름과 입가에도 웃을 때 생기는 주름이 있고 이외엔 혈색이 좋고 풍만한 얼굴이다.간단하게 머리를 빗고 벽옥 비녀를 했으며 다른 장식은 없고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한데, 마음을 사로잡는 눈빛이나 원경릉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이 노인은 머리 숱이 많고 부드러워서 약간 희끗희끗한 부분을
할머니와의 재회원경릉은 순간 몸을 부르르 떨며 뇌리엔 현실감이 더욱 사라지고, 두 손은 의자 손잡이를 꼭 쥔 채 눈물이 가득 고이며 감히 고개를 돌리지 못하겠는 것이 그랬다가 실망할 까봐 두려웠다.일 년 동안 너무도 많이 이런 꿈을 꿨다. 꿈에서 할머니와 엄마가 원경릉을 부르는데 원경릉이 대답하면 사라져 버린다.원경릉은 가족을 만난다는 건 어이없는 환상이고 사치스런 생각이란 걸 안다. 하지만 그런 꿈이라도 좋으니 한번만이라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구슬 발 찰랑거리는 소리가 그치고 발자국 소리가 조용히 들리더니, 푸른 옷자락이 원경릉의 내리 깐 눈에 얼핏 들어왔다가 그림자가 비치며 원경릉의 시선을 막았다.나이든 손이 가볍게 원경릉의 머리카락을 만지며 한숨이 섞여 나온다, “할미는 이 생애 다시는 너를 못 보는 줄 알았다.”원경릉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 낯익은 얼굴을 눈에 담았다. 눈물때문에 또렷하지 않지만 마음 속에 새겨져 있던 그 윤곽이 틀림없다고 한 눈에 알 수 있었다.원경릉은 결국 ‘후두둑’ 눈물을 떨구며 일어났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쓰러지며 할머니의 다리를 잡고 통곡했다, “할머니!”마음 속에 켜켜이 쌓여 있던 일 년사이의 그리움이 한순간 봇물처럼 터져 나와 한참을 소리 없이 우는데 목에 뭐가 걸린 듯, 가슴에 뭔가 걸려 있는 듯 아리고 아팠다.할머니도 눈물이 나서 주저 앉아 원경릉을 껴안고 살살 그녀의 등을 두드리며, “그래, 그래, 울지 마라.”지금 원경릉이 울음을 멈출 수 있나? 일 년 사이 겪어왔던 수많은 고난이 눈물 방울에 알알이 맺혀 흘러나왔다.이때 노부인이, “네 할머니는 몸이 좋지 않아서 너와 이렇게 쪼그리고 앉아 있기 힘드시니, 어서 일어나려 무나.”원경릉이 그제서야 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할머니를 보는데 눈물은 여전히 볼을 타고 흘렀다. 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자리에 앉히고 자신은 꿇어앉아 9번 머리를 조아려 절을 하는데, 할머니는 가슴이 아파서 원경릉을 일으키며 목이 메어,
할머니와 원경릉원경릉은 이 말을 듣고 또 울기 시작했다.“업신여기더냐?” 할머니의 목소리에서 잠시 노여움이 베어 나왔다.“아뇨, 아뇨” 원경릉이 눈물을 닦았지만 눈이 부어서 제대로 뜰 수가 없는데, “그이는 절 업신여긴 적이 없어요, 우리 둘이 사이가 좋아진 후로 100% 잘해줘요, 안심하셔도 돼요.”할머니는 비로소 마음을 놓고 원경릉의 손을 꼭 쥐더니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숙여 손목을 보니 거기엔 또렷하게 상처가 남아있었다. 상처는 이미 흉터만 남았지만 당시 원래 몸 주인이 심하게 상처를 내서 아문 후에도 선명한 흉터가 남아버렸다. 원경릉은 전에 팔찌로 가렸지만 뒤에 산에 가서 환자를 치료하는데 불편해서 팔찌를 빼 버렸다. 그러다 오늘은 잊고 안하고 오는 바람에 사람을 놀라게 할 만한 흉터가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원경릉은 할머니께서 또 눈물을 흘리자 얼른 변명하며, “이건 제가 한 게 아니예요, 제가 왔을 때 손목에는 이미 상처가 있었어요.”이 말을 할머니께서 믿으시겠어? 조금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다. 원경릉은 전에 ‘집순이’로 연구실을 제외하면 어디를 가는 것도 싫어해서 만남도 모르고 교제도 모르고 사람 됨됨이에 대해서는 더군다나 하나도 몰랐는데 혼자 여길 와서 사방에 가족이라고는 하나 없이 얼마나 절망적이었을까?손녀가 겪었을 고초를 생각하니 눈물이 줄줄 흘러내려, 원경릉이 아무리 달래도 안되자 화제를 바꿔, “손녀사위 만나고 싶으시죠? 조금 있으면 올 거예요, 할머니 눈이 다 부었네, 잘 안보이시면 자세히 보세요.”할머니가 눈물을 멈추고, “조금 있다가 온다고? 할머니에게 사실대로 말해도 돼, 정말 너한테 잘해주니? 만약 너한테 잘하는 게 아니면 작별 인사할 필요도 없이 바로 널 데리고 돌아가려고 하는데, 볼 필요도 없으니까.”원경릉이 놀라서, “돌아가요?”할머니가, “넌 돌아가고 싶지 않아? 아빠, 엄마 다 필요 없어? 보고 싶지 않아?”원경릉은 부모님을 오매불망 보고 싶지만 돌아간다는 건 우문호와 아이들을 버린다는 뜻이다……
어떻게 오셨어요?원경릉이, “제가 전에 그 원경릉이 아니란 걸 알아요, 쭉 제가 ‘환혼’했다고 알고 있죠.”할머니가, “너한테 정말 잘하는지는 있다가 내가 직접 봐야 겠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손녀의 얼굴을 보고, “네 지금 이 얼굴이랑 원래 얼굴이 어느 정도 닮았구나, 오기 전에 문이가 네 상황을 알려줬고, 임선생도 얘기를 해서 네가 의대를 세우고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마땅한 의사를 찾지 못했다고, 생각해 보니 이 늙은이도 병원 계약이 거의 끝나가니 와서 널 돕는 게 어떨까 하고, 그래서 난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란다. 여기서 널 지키며 너 혼자 외톨이로 두지 않게 말이야, 대신 넌 날 먹여 살리고 임종도 지켜 주렴.”원경릉이 듣고 순간 너무 기뻐서, “정말요? 할머니 정말 너무 좋아요.”할머니는 원경릉 손목에 상처를 만지며 여전히 가슴이 아파서, “네가 배운 걸 여기서도 잊지 않고 있는 걸 대흥국에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더라, 네 얘기를 하며 상당히 존경하는 것이 할미까지 어깨가 으쓱하더라.”할머니는 안도하며 기뻐했다.원경릉은 약간 의외인 것이, “정말요? 대흥 사람들이 전부 절 알아요? 할머니, 저 임선생님은 어떤 분이세요? 할머니를 데리고 오셨다고 했는데 설마 타임머신을 가지고 계신 건가요?”할머니는 원경릉의 손을 끌고 가서 천천히 이곳으로 온 과정을 설명했다.당시에 문이가 원경릉의 소식을 가지고 온 뒤 원경릉의 아빠는 병원에 가서 할머니에게 알렸고 할머니는 감격과 함께 가슴이 아픈 나머지 일시적으로 병세가 악화되었다. 마침 원경릉 할머니가 있는 한의대학 동료 임교수의 증손녀 양여혜(楊如慧)가 심장외과 전문의라 그녀에게 할머니의 수술을 부탁했다.문이도 할머니가 수술 받으신다는 얘기를 듣고 비행기를 타고 와서 문병을 와서 마침 양여혜와 딱 마주쳤다. 알고 보니 양여혜는 문이의 여동생 주치의였던 것이다.양여혜는 섭정왕이 문이의 여동생을 치료하도록 보낸 의사로, 문이는 양여혜가 섭정왕과 관계가 있음을 확신했다. 그래서 몰래 이
할머니와 우문호의 만남원경릉이 이해되지 않는 것이, “대흥은 왜 자기네가 직접 학교를 열지 않죠?”할머니는 손녀가 여기 온 뒤로 머리가 둔해 졌구나 생각하며, “그럼 우리 나라는 왜 매년 그렇게 많은 학생을 유학 시키지? 그 중에 의대생도 상당할 텐데, 왜 그러니?”원경릉이 또 머리를 때리고 푸념하듯, “할머니, 임신한번에 3년씩 바보가 된다더니 진짠 가봐요, 두 나라의 의학 수준이 다르니 당연히 필요하죠, 하지만 만약 그렇다0면 우리 북당 사람도 대흥에 가서 의학을 배워야 양국이 진짜 공평한 거죠!”할머니가 작은 소리로, “이런 일은 권력자들이 알아서 하라고 맡기고, 우리 의사들은 정치에 관해서는 묻지 않기로 하자.”할머니와 손녀는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는데 만아가 와서 왕야가 왔다고 전했다.오늘 성안가(成安街)에 인명 사건 일어나 두 명이 죽었다. 남녀 1명씩으로 남자는 홀아비로 아내가 죽은 뒤 두 아들을 키워, 아들이 모두 성인이 되어 나가서 생계를 꾸리는데 부유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먹고 사는 걸 걱정할 처지는 아니었다.죽은 여자는 남자의 옆집 이웃으로 홀아비의 침대에서 죽었는데 둘 다 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점심때 신고를 받았는데 포도대장이 휴가 중이라 우문호가 가서 현장 검증을 했다. 두 명이 사망한 상태가 처참하기 그지 없는 것이 남자는 성기를 잘린 뒤 몸을 십여 군데를 칼로 잘랐고, 여자는 혀를 잘라내고 귀와 코도 전부 베었을 뿐 아니라 손가락과 발가락을 마디마디 다진 뒤 여기저기 버려서 땅바닥에 피가 낭자하고 참혹했다.우문호는 오늘 흉악 사건 현장에서 하급관리와 함께 사망한 여자의 손가락과 발가락을 찾았는데, 집안, 마당, 모퉁이까지 군데군데 떨어져 있었다.저녁 때 사람들이 철수하고, 우문호는 성안가에서 바로 이리 저택으로 왔다. 고작 길 두개를 사이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가까웠을 뿐 아니라, 우문호는 저녁에 야근한다고 원경릉에게 얘기하고 오는 김에 밥도 먹으려고 했다.하지만 오늘 일을 처리할 때 몸에 혈흔이 점점이 튀었는데
할머니와 우문호의 대면우문호는 입가에 웃음이 얼어붙으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정말 가족이라고? 저쪽 사람이 왔다고? 그럼 원경릉을 데리고 가는 거 아냐?우문호의 뇌리에 몇 번이고 울면서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하던 원경릉의 모습이 떠올랐다. 가족이 찾아 왔으니 원경릉은 분명 따라갈 게 틀림없다. 가족에 대한 감정이 각별하니까.“자기야, 우리 들어가서 얘기해.” 원경릉이 할머니를 부축하며 본관으로 들어갔다.우문호는 알았다고 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에 영혼이 나간 채로 돌계단을 올라서다가 하마터면 헛디딜 뻔 하질 않나, 문턱에 걸려 넘어질 뻔 하질 않나.원경릉은 할머니를 가운데 자리 태사의에 앉히고 자기도 옆에 앉았다. 우문호가 한가운데 서 있는데 뭘 어째야 할지 모르고 어색함 그 자체다.원경릉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바보, 얼른 와서 할머니께 인사 안 드리고 뭐해?”우문호는 완전 심란해서 죽을 지경으로, 두 다리가 와들와들 떨리는 게 눈에 보일 정도고 여기저기 부딪히며 앞으로 나와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는데 예의가 바른 건지 아니면 다리에 힘이 빠진 건지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할머니를 뵙습니다.”할머니는 우문호의 이런 모습을 보고 오히려 마음이 아파서, “어서 앉아요.”우문호는 일어나 옆에 앉아 뚫어져라 원경릉만 바라보며 불안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다행히 이 때 숙친왕과 이리 나리가 와서 수라가 준비됐다고 했다.우문호는 원래 배가 등가죽에 붙어 있었는데 지금은 식욕이고 뭐고 원경릉을 붙잡고 한쪽으로 가서 물어보고 싶은 마음 뿐이다. 하지만 원경릉은 할머니랑 딱 붙어서 앉아서 한없이 할머니만 보는 게 이러다 눈 깜짝할 새 원경릉이 사라질 까봐 두려웠다.할머니도 상식이 통하는 사람으로 원경릉에게, “사위 옷이 더러워졌구나, 너는 가서 사위 옷 갈아 입혀 드려라.”사위라는 말은 우문호를 인정한다는 뜻으로 우문호가 느끼는 두려움과 심란함이 많이 수그러들었다. 그리고 이성을 차리고 생각하니 지금 원 선생은 아이도 낳았으니 할머니가 원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