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좋게 취한 우문호우문호는 오늘밤 70~80%는 취한 상태라 서일의 부축을 받고 돌아왔다.원경릉은 우문호보다 조금 일찍 와서 목욕을 마치고 돌아와 있었다. 우문호가 침대에 앉아 두 다리는 바닥에 여덟 팔자로 쭉 뻗고 손을 들고 웃으며 힘껏 원경릉을 향해 손목을 흔들더니, “이리와, 음냐음냐, 이리와.”원경릉이 뜨거운 물수건을 가져가서 우문호의 얼굴을 닦으려고 하는데, 우문호가 손을 뻗어, “손잡자.”원경릉은 우문호를 상대하지 않고 뜨거운 물수건으로 얼굴을 뽀독뽀독 닦았다.우문호는 아무렇게나 원경릉의 손목을 잡고 힘껏 원경릉의 손을 흔들며, “옳지, 잘한다, 옆에 엎드려, 내일 고기 주께.”원경릉은 이 말을 듣고 또 자기를 다바오 취급하는 걸 보니 우문호가 상당히 마셨다는 걸 알았다.다바오는 문 귀퉁이에 숨어서 ‘왈’ 하고 한번 짖더니 약간 안됐다는 듯 원경릉을 쳐다봤다.원경릉은 개한테까지 동정 받는 바람에 피식 웃음이 터졌다. 우문호의 겉옷을 벗겨주며, “전신에 술 냄새.”우문호가 한 손으로 원경릉의 허리를 감아 쥐고 사랑에 빠진 눈빛으로 아무 말이나 막 하기 시작하는데, “원 선생, 오늘 나 기분 좋다, 내가 왜 기분 좋은 지 알아?”“동생이 결혼했으니까!” 원경릉이 우문호의 벌건 얼굴을 보며 시큰둥하게 말했다. 얼마나 마셨길래 눈이고 목이고 다 벌건 거야.“그럼, 당신은 여섯째가 결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 있어? 전에 난 꿈에도 생각을 못했지, 여섯째 병은 나때문에…… 나때문에 병에 걸린 거야, 거의 죽을 뻔 했다고, 만약 여섯째가 죽었으면……” 우문호는 원경릉의 얼굴을 받치고 약간 짜증을 내며, “머리 좀 흔들지 마, 내가 다 어지럽잖아.”원경릉이 우문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응, 안 흔들게, 자기 눈 감아.”“안돼,” 우문호가 눈을 감았다가 바로 다시 번쩍 뜨더니, “눈을 감으니까 더 어지러워.”우문호는 원경릉을 안고 눕더니 몸을 돌려 엎드려서 체중을 실어 원경릉을 누르고, 술냄새가 터지며 원경릉의 귀에 대고 중얼
기쁜 우문호우문호는 원경릉을 가슴에 끌어당겨, “가지마, 당신한테 할 말이 많아, 앉아봐, 여기서 내 얘기 들어.”원경릉이 하는 수 없이, “좋아요, 얘기해요, 들을 게요.”우문호가 누워서 원경릉이 일어나지 못하게 가슴 앞에 꼭 끌어 안고, 눈을 감고 자신과 회왕이 어릴 때부터 자라나며 있었던 각종 재미난 일과 흑역사를 얘기하기 시작했다.술에 취한 사람의 주정은 특히 느릿느릿하고 말꼬리를 질질 끌어서, 완전 자장가가 따로 없었는데 원경릉은 아예 편안한 자세를 잡고 잠이 들었다.삼경(밤 12시)에 일어나 보니 우문호는 쿨쿨 잠이 들었는데, 붉었던 얼굴은 이미 색이 돌아왔고 머리에 관을 아직 벗지 않은 모습이 꽤 멋지다. 깊이 잠든 우문호는 들뜬 기운이 사그라지니 오히려 학문이 깊고 온화해 보인다.원경릉은 우문호의 볼에 뽀뽀하고 팔을 괴고 우문호를 바라봤다.이 남자는 전신이 결점 투성이로, 거칠고 난폭하며 고집스럽고 더럽고 어떨 땐 사건을 처리하고 돌아와 씻지도 않고 옷만 벗고 침대에 쓰러져 잔다.우문호의 결점은 손가락 발가락 다 동원해도 부족할 만큼이다.하지만 우문호는 장점도 많은데, 효심이 깊고 원칙을 고집하고 아내를 사랑하고 아이를 사랑하고 전에는 개를 무서워했는데 지금은 다바오와 거의 ‘절친’이 되었다.우문호는 황실의 아들이나 백성의 둘러싸여 살며 허세를 부리지도 않고 땅에 발을 붙이고 생활의 향기를 풍긴다. 쉽게 말해 실질적이고 명실상부한 한 명의 사람이다.전에 할머니가 그러셨다. 원경릉은 나중에 결혼하지 않을 거라고, 오직 연구에만 몰두하고 연애라 고는 1도 모르는 여자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이다.만약 원경릉이 결혼 정도가 아니라 아이까지 셋을 낳았다는 걸 할머니께서 아시면 분명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시겠지.가족을 생각하니 원경릉은 또 눈가가 붉어졌다. 천천히 누워 팔베개를 하니, 전생에 가족과 같이 한 추억이 방울방울 마음 속에 떠올랐다.사실 그들 가족이 서로 모인 날은 많지 않은 게, 1년을 통틀어 모두가 같이 모이
이리 저택이리 저택 쪽에 신시(오후3시~5시)에 올 거라던 손님이 벌써 도착해 태자비를 오라고 했다.원경릉은 초왕부에서 마냥 기다리고 있었던 게 아니라, 날이 좋은 김에 다바오를 한바퀴 산책 시키고, 열이와 호명의 일을 살피며 고시(古詩)를 몇 수 가르쳐 주고 차 한잔하며 일상을 즐겼다.그간 쌓인 피로는 며칠 느긋하게 쉬면서 거진 사라졌고 거기에 차까지 마시니 정신이 맑아졌다. 살구 빛 옷으로 갈아입고 정성 들여 높이 틀어 올린 머리에 보석을 장식하니 원경릉은 딱 위엄 있는 귀부인 모습이다. 오늘 날씨가 특히 좋아서 사식이는 집에 갔고, 이리 저택엔 만아와 서일을 데리고 갔다. 사식이가 빠져서 수행하는 호위가 부족해 보일지 모르나 비밀리에 얼마나 많은 고수가 따라오고 있는지 모른다. 그 고수들은 호시탐탐 길 가는 모든 사람들을 주시하며 갑자기 어느 흉악한 자객이 늑대파의 20만냥 현상금을 노리고 태자비를 살해할까 감시했다. 이리 저택에 도착하자 불식이 문 앞에서 원경릉을 기다리고 있다. 기울어져 비취는 햇살에 정원은 온통 금빛이고, 가을 바람이 여전히 강하게 불어와 원경릉의 옷자락이 펄럭였다.하인은 황금빛 오동나무 잎이 가득 떨어진 마당을 쓸고 있어 먼지가 이는데, 황금빛 햇살 아래 먼지도 마치 금가루 같았다.원경릉은 마치 시간의 모양을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불식은 원경릉을 데리고 들어가며, “숙친왕 전하와 이리 나리 모두 편청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원경릉이 고개를 끄덕였다.원경릉과 불식이 본관을 돌아 후원으로 들어가니 접객실은 후원 바로 맞은 편에 있다.네 쪽 문을 활짝 열고 석양이 안으로 비쳐 드는데, 원경릉은 멀리서도 숙친왕과 이리 나리가 본관에 앉아 담소를 나누다가 약속이나 한 듯 고개를 들어 자신을 보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원경릉이 들어가자 숙친왕이 일어나 예를 취하고, 원경릉과 숙친왕이 대면한 뒤 이리 나리를 보니 태산처럼 미동도 하지 않고 있는 모습에 지금 그가 사부라는 사실이 떠올라 문안인사를 올리며, “사부님 안녕
숙친왕의 선배원경릉은 심장이 벌렁거리다 밖으로 홀랑 튀어나올 것 같은데, 걸음도 흔들리는 것이 허공을 밟고 있는 것처럼 조금도 현실감이 없었다.두 사람이 어느 방 문 앞에 도착하자 녹색 옷을 입을 시녀 두 명이 문에 서 있는데 이리 저택 하인의 복장이 아니고 대흥의 복식과 화장같이 보였다.숙친왕이 정중하게 문 앞에서 소리치길, “선조님!”노 상궁이 하나가 나와서 숙친왕에게 예를 취하고, “왕야, 손님께서 오셨습니까?”숙친왕이, “상궁, 손님이 이미 오셨네.”노 상궁이 숙친왕 뒤에 있던 원경릉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태자비 마마시죠? 쇤네 태자비 마마를 뵙습니다.”원경릉이 흥분을 감추고, “예는 됐습니다.”노 상궁이 미소를 머금고, “태자비 마마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마마를 오래 기다리셨습니다.”원경릉이 문지방을 넘어가자 그 상궁도 같이 들어왔다.문을 들어서자마자 따스한 기운이 사방을 감싸는 것이 방안에 난로를 피운 것 같은데 상궁이 들어오면서 문을 닫았다.원경릉이 상궁을 따라 들어가자 휘장 밖에서 상궁이 걸음을 멈추고, “노마님, 태자비 마마 들었습니다.”“들어오너라!” 안에서 따스하고도 침착한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목소리는 전혀 늙지 않았지만 그렇게 젊은 목소리도 아니었다.휘장을 걷고 원경릉이 따라 들어가니 뒤로 구슬 발이 찰랑거리는 소리가 기분 좋게 들렸다.방에 남쪽 창문이 약간 열려 있고,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와 바닥에 떨어지는 게 한 줄기 금빛으로 바닥을 쪼개는 듯 했다.원경릉이 태사의에 앉아 있는 노인을 보니 호화롭지 않고 질박한 흰색 옷이 헐렁한 것이 편안하고 자유로워 보였다.노마님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예순 정도 되어 보이고 눈가에 잔주름과 입가에도 웃을 때 생기는 주름이 있고 이외엔 혈색이 좋고 풍만한 얼굴이다.간단하게 머리를 빗고 벽옥 비녀를 했으며 다른 장식은 없고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한데, 마음을 사로잡는 눈빛이나 원경릉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이 노인은 머리 숱이 많고 부드러워서 약간 희끗희끗한 부분을
할머니와의 재회원경릉은 순간 몸을 부르르 떨며 뇌리엔 현실감이 더욱 사라지고, 두 손은 의자 손잡이를 꼭 쥔 채 눈물이 가득 고이며 감히 고개를 돌리지 못하겠는 것이 그랬다가 실망할 까봐 두려웠다.일 년 동안 너무도 많이 이런 꿈을 꿨다. 꿈에서 할머니와 엄마가 원경릉을 부르는데 원경릉이 대답하면 사라져 버린다.원경릉은 가족을 만난다는 건 어이없는 환상이고 사치스런 생각이란 걸 안다. 하지만 그런 꿈이라도 좋으니 한번만이라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구슬 발 찰랑거리는 소리가 그치고 발자국 소리가 조용히 들리더니, 푸른 옷자락이 원경릉의 내리 깐 눈에 얼핏 들어왔다가 그림자가 비치며 원경릉의 시선을 막았다.나이든 손이 가볍게 원경릉의 머리카락을 만지며 한숨이 섞여 나온다, “할미는 이 생애 다시는 너를 못 보는 줄 알았다.”원경릉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 낯익은 얼굴을 눈에 담았다. 눈물때문에 또렷하지 않지만 마음 속에 새겨져 있던 그 윤곽이 틀림없다고 한 눈에 알 수 있었다.원경릉은 결국 ‘후두둑’ 눈물을 떨구며 일어났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쓰러지며 할머니의 다리를 잡고 통곡했다, “할머니!”마음 속에 켜켜이 쌓여 있던 일 년사이의 그리움이 한순간 봇물처럼 터져 나와 한참을 소리 없이 우는데 목에 뭐가 걸린 듯, 가슴에 뭔가 걸려 있는 듯 아리고 아팠다.할머니도 눈물이 나서 주저 앉아 원경릉을 껴안고 살살 그녀의 등을 두드리며, “그래, 그래, 울지 마라.”지금 원경릉이 울음을 멈출 수 있나? 일 년 사이 겪어왔던 수많은 고난이 눈물 방울에 알알이 맺혀 흘러나왔다.이때 노부인이, “네 할머니는 몸이 좋지 않아서 너와 이렇게 쪼그리고 앉아 있기 힘드시니, 어서 일어나려 무나.”원경릉이 그제서야 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할머니를 보는데 눈물은 여전히 볼을 타고 흘렀다. 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자리에 앉히고 자신은 꿇어앉아 9번 머리를 조아려 절을 하는데, 할머니는 가슴이 아파서 원경릉을 일으키며 목이 메어,
할머니와 원경릉원경릉은 이 말을 듣고 또 울기 시작했다.“업신여기더냐?” 할머니의 목소리에서 잠시 노여움이 베어 나왔다.“아뇨, 아뇨” 원경릉이 눈물을 닦았지만 눈이 부어서 제대로 뜰 수가 없는데, “그이는 절 업신여긴 적이 없어요, 우리 둘이 사이가 좋아진 후로 100% 잘해줘요, 안심하셔도 돼요.”할머니는 비로소 마음을 놓고 원경릉의 손을 꼭 쥐더니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숙여 손목을 보니 거기엔 또렷하게 상처가 남아있었다. 상처는 이미 흉터만 남았지만 당시 원래 몸 주인이 심하게 상처를 내서 아문 후에도 선명한 흉터가 남아버렸다. 원경릉은 전에 팔찌로 가렸지만 뒤에 산에 가서 환자를 치료하는데 불편해서 팔찌를 빼 버렸다. 그러다 오늘은 잊고 안하고 오는 바람에 사람을 놀라게 할 만한 흉터가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원경릉은 할머니께서 또 눈물을 흘리자 얼른 변명하며, “이건 제가 한 게 아니예요, 제가 왔을 때 손목에는 이미 상처가 있었어요.”이 말을 할머니께서 믿으시겠어? 조금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다. 원경릉은 전에 ‘집순이’로 연구실을 제외하면 어디를 가는 것도 싫어해서 만남도 모르고 교제도 모르고 사람 됨됨이에 대해서는 더군다나 하나도 몰랐는데 혼자 여길 와서 사방에 가족이라고는 하나 없이 얼마나 절망적이었을까?손녀가 겪었을 고초를 생각하니 눈물이 줄줄 흘러내려, 원경릉이 아무리 달래도 안되자 화제를 바꿔, “손녀사위 만나고 싶으시죠? 조금 있으면 올 거예요, 할머니 눈이 다 부었네, 잘 안보이시면 자세히 보세요.”할머니가 눈물을 멈추고, “조금 있다가 온다고? 할머니에게 사실대로 말해도 돼, 정말 너한테 잘해주니? 만약 너한테 잘하는 게 아니면 작별 인사할 필요도 없이 바로 널 데리고 돌아가려고 하는데, 볼 필요도 없으니까.”원경릉이 놀라서, “돌아가요?”할머니가, “넌 돌아가고 싶지 않아? 아빠, 엄마 다 필요 없어? 보고 싶지 않아?”원경릉은 부모님을 오매불망 보고 싶지만 돌아간다는 건 우문호와 아이들을 버린다는 뜻이다……
어떻게 오셨어요?원경릉이, “제가 전에 그 원경릉이 아니란 걸 알아요, 쭉 제가 ‘환혼’했다고 알고 있죠.”할머니가, “너한테 정말 잘하는지는 있다가 내가 직접 봐야 겠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손녀의 얼굴을 보고, “네 지금 이 얼굴이랑 원래 얼굴이 어느 정도 닮았구나, 오기 전에 문이가 네 상황을 알려줬고, 임선생도 얘기를 해서 네가 의대를 세우고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마땅한 의사를 찾지 못했다고, 생각해 보니 이 늙은이도 병원 계약이 거의 끝나가니 와서 널 돕는 게 어떨까 하고, 그래서 난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란다. 여기서 널 지키며 너 혼자 외톨이로 두지 않게 말이야, 대신 넌 날 먹여 살리고 임종도 지켜 주렴.”원경릉이 듣고 순간 너무 기뻐서, “정말요? 할머니 정말 너무 좋아요.”할머니는 원경릉 손목에 상처를 만지며 여전히 가슴이 아파서, “네가 배운 걸 여기서도 잊지 않고 있는 걸 대흥국에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더라, 네 얘기를 하며 상당히 존경하는 것이 할미까지 어깨가 으쓱하더라.”할머니는 안도하며 기뻐했다.원경릉은 약간 의외인 것이, “정말요? 대흥 사람들이 전부 절 알아요? 할머니, 저 임선생님은 어떤 분이세요? 할머니를 데리고 오셨다고 했는데 설마 타임머신을 가지고 계신 건가요?”할머니는 원경릉의 손을 끌고 가서 천천히 이곳으로 온 과정을 설명했다.당시에 문이가 원경릉의 소식을 가지고 온 뒤 원경릉의 아빠는 병원에 가서 할머니에게 알렸고 할머니는 감격과 함께 가슴이 아픈 나머지 일시적으로 병세가 악화되었다. 마침 원경릉 할머니가 있는 한의대학 동료 임교수의 증손녀 양여혜(楊如慧)가 심장외과 전문의라 그녀에게 할머니의 수술을 부탁했다.문이도 할머니가 수술 받으신다는 얘기를 듣고 비행기를 타고 와서 문병을 와서 마침 양여혜와 딱 마주쳤다. 알고 보니 양여혜는 문이의 여동생 주치의였던 것이다.양여혜는 섭정왕이 문이의 여동생을 치료하도록 보낸 의사로, 문이는 양여혜가 섭정왕과 관계가 있음을 확신했다. 그래서 몰래 이
할머니와 우문호의 만남원경릉이 이해되지 않는 것이, “대흥은 왜 자기네가 직접 학교를 열지 않죠?”할머니는 손녀가 여기 온 뒤로 머리가 둔해 졌구나 생각하며, “그럼 우리 나라는 왜 매년 그렇게 많은 학생을 유학 시키지? 그 중에 의대생도 상당할 텐데, 왜 그러니?”원경릉이 또 머리를 때리고 푸념하듯, “할머니, 임신한번에 3년씩 바보가 된다더니 진짠 가봐요, 두 나라의 의학 수준이 다르니 당연히 필요하죠, 하지만 만약 그렇다0면 우리 북당 사람도 대흥에 가서 의학을 배워야 양국이 진짜 공평한 거죠!”할머니가 작은 소리로, “이런 일은 권력자들이 알아서 하라고 맡기고, 우리 의사들은 정치에 관해서는 묻지 않기로 하자.”할머니와 손녀는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는데 만아가 와서 왕야가 왔다고 전했다.오늘 성안가(成安街)에 인명 사건 일어나 두 명이 죽었다. 남녀 1명씩으로 남자는 홀아비로 아내가 죽은 뒤 두 아들을 키워, 아들이 모두 성인이 되어 나가서 생계를 꾸리는데 부유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먹고 사는 걸 걱정할 처지는 아니었다.죽은 여자는 남자의 옆집 이웃으로 홀아비의 침대에서 죽었는데 둘 다 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점심때 신고를 받았는데 포도대장이 휴가 중이라 우문호가 가서 현장 검증을 했다. 두 명이 사망한 상태가 처참하기 그지 없는 것이 남자는 성기를 잘린 뒤 몸을 십여 군데를 칼로 잘랐고, 여자는 혀를 잘라내고 귀와 코도 전부 베었을 뿐 아니라 손가락과 발가락을 마디마디 다진 뒤 여기저기 버려서 땅바닥에 피가 낭자하고 참혹했다.우문호는 오늘 흉악 사건 현장에서 하급관리와 함께 사망한 여자의 손가락과 발가락을 찾았는데, 집안, 마당, 모퉁이까지 군데군데 떨어져 있었다.저녁 때 사람들이 철수하고, 우문호는 성안가에서 바로 이리 저택으로 왔다. 고작 길 두개를 사이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가까웠을 뿐 아니라, 우문호는 저녁에 야근한다고 원경릉에게 얘기하고 오는 김에 밥도 먹으려고 했다.하지만 오늘 일을 처리할 때 몸에 혈흔이 점점이 튀었는데
요부인의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의 말은 항상 그녀의 불안을 사라지게 해주었다.그녀가 목이 멘 목소리로 말했다."아이가 정말 우리를 만나고 싶어 하고, 정말 행복할 것이라 생각하네. 이렇게 좋은 아버지를 두었으니. 아이가 우리 곁에 올 수 있기를 너무 바랐네."그가 아버지로서 얼마나 훌륭한지, 희열과 희성은 여러 번 그녀에게 말했었다.그들은 밖에서 모두 아무 말 없이 침묵하며, 두 사람의 결정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러다 마침내, 미색이 참다못해 물었다."나이가 좀 많다는 것 외에, 다른 위험이 있습니까?""나이가 많다는 것 자체가 큰 위험이다. 출혈도 있고, 다른 증상도 있을 텐데 말하지 않더구나.""무슨 증상이요?"미색이 잠시 멈칫했다."혹 어떤 증상이 나타납니까? 증상 때문에 아이를 지킬 수 없다면 그때 다시 아이를 포기해도 됩니까?""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가정할 수는 없다. 너무 많은 경우가 생겨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그저 지금의 상황과 몸 상태를 고려해 볼 뿐."나이가 많은 여인이 임신하면 정말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게다가 어머니뿐만 아니라 태아에게도 위험이 생길 것이다. 임신 중에는 자간, 경련, 두개내출혈, 태반 조기 박리가 있을 수 있고, 출산 후에는 선천적 결함이나 선천성 심장병 등이 있을 수 있었다. 물론, 임산부의 위험이 더 컸다. 임신성 고혈압, 당뇨병, 심장병, 그리고 신장병 등 여러 가지 질병이 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이 증상들이 꼭 나타난다는 뜻은 아니지만, 정상 연령대의 임산부보다는 확률이 훨씬 더 높고, 흔히 보는 증상이었다.원용의가 물었다."그럼, 가장 나쁜 결과는 무엇입니까?"원경릉이 고개를 흔들었다."가장 나쁜 결과는 모두가 예상한 것처럼 어머니와 아이 모두에게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문제가 클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고, 모든 것이 알 수 없지만, 아이를 지키기로 결정을 내린다면, 큰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바로 그때, 훼천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
미색은 오히려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정말 잘됐습니다! 정말 임신이라니요!"원용의와 손왕비는 서로 눈을 마주쳤을 뿐, 미색처럼 기뻐하지는 않았다. 사실 오늘, 이곳에 온 두 사람의 마음은 무거웠다.그들은 모두 요부인이 이 나이에 임신한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었다.특히, 요부인이 황후와 함께 걸어 나올 때, 황후의 눈빛에서도 기쁨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의술에 정통한 그녀마저도 낙관적이지 않으니, 다른 사람들은 더더욱 낙관할 수 없었다.원경릉이 미색과 나머지 사람들에게 말했다."요부인과 훼천이 할 이야기가 있으니, 먼저 나가자꾸나."미색은 잠시 멈칫했다."우리가 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입니까?""그래. 부부끼리 꼭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원경릉이 미색을 끌어당겼고, 미색은 워낙 눈치가 빨라 이 말을 듣자마자 단번에 깨달았다. 그녀는 놀란 눈으로 요부인에게 물었다."설마... 아이를 포기할 셈입니까? 왜요?""미색아, 헛소리하지 말고, 먼저 나가자."원경릉이 그녀의 손목을 잡고 문밖으로 향했다. 손왕비와 원용의도 이 모습을 보고는 함께 따라 나갔다.미색은 잠깐 머뭇거렸지만 결국 원경릉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계속 원경릉을 붙잡고 캐물었다."아이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것입니까?"뜰로 나와서 원경릉은 말했다."나이가 있으니, 지금 상태로는 위험할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이 잘 상의해서 결정해야 할 일이다."손왕비와 원용의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미색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그러니... 지금 두 분은 아이를 가질지 말지를 논의 중이신 것입니까?""이건 그들 부부의 일입니다. 어떤 결정을 하든, 우린 그저 지지해 주면 됩니다."원용의가 담담히 말했다.그러자 미색이 갑자기 마음이 아파왔다."예. 물론 지지합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저는 꼭 지지할 것입니다."그녀는 돌의자에 앉아 무릎 위에 손을 올려 천천히 문지르고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아이도 이 세상을 한번 보고 싶었을 텐데요."다들 아이
원경릉은 도무지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훼천이 자네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고, 심지어 이 아이보다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걸 안다고 하는데, 어찌 위험을 감수하려 하는 것인가? 자네가 없는 세상이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는가? 그에게 이 아이는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네."그들은 혼사 후 줄곧 행복하게 지냈다. 아이가 없어도 아주 만족스러워했다.만약 그녀의 몸이 견딜 수 있다면 문제 없겠지만, 이제 막 임신한 상태에기에 벌써 출혈이 생겼다. 게다가 이후에 그녀가 말하지 않은 다른 증상이 생길 가능성도 높았다.그러면 너무 위험해진다.요 부인이 아랫배를 어루만졌는데, 얼굴에는 모성애가 감돌고 있었다."처음 임신했다는 걸 알았을 때, 나도 이 아이를 포기해야 겠다고 생각했네. 내 몸이 임신과 출산을 견뎌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아이를 없애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순간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네. 난 간절하게 그와의 아이를 갖고 싶네. 너무 이기적인 걸 알지만, 그 바람이 나를 흔들었네. 그가 아버지가 되는 모습을 보고 싶었네.""그는 이미 아버지네. 훼천은 언제나 희열과 희성을 친자식처럼 여겼네."원경릉이 말했다."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했고, 심지어 그 이상으로 많은 것을 해왔다는 것을 알고 있네. 그래서 더욱 미안한 것이네. 다른 여인을 부인으로 맞이했더라면, 자식을 가질 수도 있었을 텐데. 나를 선택한 탓에, 그는 자신의 아이를 가질 수 없네. 그도 정말 아이를 원하는 것을 알고 있는가?""아이를 원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원한 적은 없네. 임신한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말할 용기가 없다는 건, 그도 위험을 감수하는 걸 원치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네."요 부인의 얼굴이 복잡하게 일그러졌다."나도 알지만... 참 아쉽네."그녀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사실 혼사를 올렸을 때, 그도 아이를 더 가질 필요 없이 희열과 희성만으로 충분하다고 했네. 하지만 두 딸은 그의 성을 따를 수 없네. 임신한 적
과거에 아이를 출산한 경험이 있는 미색은 풍부한 출산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훼천은 그녀의 경험이 필요했다.훼천은 미색을 한 대 쥐어박으려 튀어나오려는 손을 억누르며 원경릉에게 다가가 공손히 예를 올렸다."황후 마마, 부디 맥을 짚어 상태를 확인해 주시옵소서."원경릉이 물었다."이미 의원에게 진맥을 받지 않았는가? 회임이 확실한 것인가?""몸이 좋지 않다고 하니, 그제 돌아온 희열이가 맥을 짚어 보고는 임신했다고 했네. 나도 잘 모르겠네."요 부인은 살짝 얼굴을 붉혔다. 이 나이에 임신이라니, 정말 부끄러웠다.그녀는 원경릉을 불러 가까이 오라고 부르더니, 조용히 속삭였다."사실 아닐 수도 있네. 몇 달째 월경을 하지 않아서...""몇 달 동안 하지 않았다니요? 그럼… 임신이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내력이 깊은 미색은 요부인이 원경릉에게 바짝 다가가 낮게 말했지만, 여전히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말았다. 그리고 미색은 바로 입 밖으로 말을 꺼냈다."조용히 하거라!"원경릉이 웃으며 그녀를 나무랐다.‘미색도 참...’"정말 임신한 것인지, 어서 확인해 보게나."손 왕비가 말했다."그럼, 방으로 가세."원경릉은 요 부인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미색도 따라가려 했지만, 훼천이 그녀를 막았다."여기서 기다리시지요. 어차피 의술도 모르잖습니까.""나도 도우려는 것이다. 훼천아, 너도 참... 호의를 몰라주는구나."미색은 목을 길게 빼고 가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그녀는 지금 상황을 제일 먼저 알아내야 했다. 그러자 원용의가 그녀를 붙잡았다."그냥 앉아서 기다리시지요. 임신이 맞는다면 원 언니가 곧 알려줄 것이니."미색에는 다시 훼천을 바라보며 물었다."아이를 낳지 않기로 하지 않았느냐? 어찌 임신을 막는 약을 쓰지 않은 것이냐?"훼천은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그는 지금 너무 걱정되었다.이 나이에 아이를 가지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게다가 희열과 희성도 효심이 깊었고, 외손자까지 얻었기에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리 나리가 말했다."훼천이 집으로 왔는데, 기쁘면서도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소. 그래서 물으니 다 말해주었소. 석 달 동안 비밀로 하려 했지만, 그래도 사전에 검사도 하고 미리 대비하는 게 좋을 것 같아, 황후에게 알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소."목여 태감은 고개를 끄덕이고, 재빨리 원경릉을 찾아갔다.원경릉은 실험실에 틀어박혀 있다가 요 부인이 임신했다는 목여 태감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 손에 들고 있던 실험 도구를 급히 내려놓으며 물었다."정말인가?""부마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목여 태감이 대답하자, 원경릉이 말을 이었다."정말 큰 일이네. 요부인의 건강 상태가 원래 좋지 않았는데, 이제야 임신하다니. 그래도 큰 경사니, 내일 당장 찾아가야겠소."지금은 이미 오후였기에 다음 날 아침 일찍 출발하는 것이 좋았다.저녁이 되어 우문호가 궁으로 돌아오자, 원경릉이 말했다."내일 요부인을 만나러 갈 것이오. 아마 밤늦게 돌아오게 될지도 모르오.""다녀오시오."우문호가 말했다.그는 겉옷을 벗으며 물었다."이 나이에 임신해도 괜찮소?""아직 쉰 살은 안 됐지만, 고령 임산부인 건 맞소. 게다가 건강 상태가 원래부터 좋지 않아서 나도 좀 걱정되오.""그럼 당신이 곁에서 잘 챙겨주시오."우문호가 배려하며 말했다.그는 오래전부터 어디서든 원경릉의 도움이 필요하면 무조건 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오늘 저녁 여섯째도 궁에 왔소. 그래서 이 소식을 전했으니, 아마 내일 미색도 갈 것이오."우문호가 말했다."미색이 알게 됐다면 내일 아주 많은 사람이 몰리겠소."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미색은 비록 수다스럽지는 않았지만, 기쁜 일에는 지나치게 열정적이었다.다음 날 아침, 원경릉은 이른 아침부터 약상자를 들고 출발했다.요부인의 저택 앞에 도착하니, 역시 미색의 마차뿐만 아니라 원용의와 손 왕비의 마차까지 줄지어 서 있었다.문을 들어서자마자 미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언제부터입니까? 대체 언제부터 우리한테 비밀로 하고 있었던
특히 황제가 된 지금, 그는 평화가 있어야만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두 사람은 손을 꼭 맞잡았다. 각자 자신의 신념과 소망을 위해 나아갈 것이다.이틀 후, 이리 나리가 궁에 찾아와 다섯째와 함께 경단이 경성으로 돌아오는 일을 의논했다.그러자 우문호가 의아해하며 물었다."돌아오다니? 난 전혀 몰랐습니다.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었습니다."어젯밤에도 교류했지만, 귀경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다."지금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언제쯤 불러들일 생각인지 묻는 것입니다.""한두 해는 지나고 부를 셈입니다. 무슨 일이십니까?""계획을 세울 생각입니다."이리 나리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1~2년이라면 금방 지나가겠군.’우문호는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속셈입니까?""전에 말했잖습니까? 경단이는 내 가업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제자가 그럴 능력이 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제자의 자식을 탐낼 수밖에요."이리 나리의 제자 원경릉은 장사에 소질이 없었기에 그저 냉가의 가업을 그녀에게 맡길 수 없었다.이리 나리는 전부터 경단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만두는 경성으로 돌아와 군무를 배우고 있으니, 경단도 그의 가업을 이어받아야 할 때였기 때문이다. 한두 해 뒤에 돌아오면, 몇 년만 더 가르치면 대성할 것이었다.그러자 우문호가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 진심이십니까? 냉가의 산업을 몽땅 삼켜버릴까 봐 걱정되지 않습니까?"하지만 이리 나리는 조금도 걱정되지 않았다."우선 몇 년 동안 가르칠 것입니다. 먼저 배울 것이 바로 부친의 뻔뻔한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입니다."우문호가 바로 인상을 찌푸렸다."내 아들을 데려가면서, 어찌 이득도 못 보게 하는 것입니까?!""이득은 무슨, 이건 그야말로 통째로 삼켜버리는 거잖습니까? 욕심이 너무 크십니다."이리 나리는 옷소매를 휘날리며 자리에 앉은 후, 목여 태감에게 말했다."황후에게 가서 전하시오. 할 일이 생겼다고."목여 태감은 어리둥절했다."부마, 황후 마마께서 무슨 일을 하셔야
우문호는 종일 바빴다. 그는 차 한 잔을 들고 멀리 있는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특별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아닌, 그저 밥은 먹었는지, 무엇을 먹었고 내일 무엇을 할 셈인지 묻는 것 뿐이었다. 더불어 아이들에게 요즘 잘 지내는지, 무슨 책을 읽고 있느지에 대해서도 물었다.마치 처음으로 전화기를 접한 시골 사람처럼 신기해했지만 그는 마땅한 대화 주제를 찾지는 못했다.한편 원경릉은 홀로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우문호는 이미 능숙해진 듯 보였고, 심지어 목욕하러 가면서도 아이들에게 말을 남겼다.그가 목욕하러 가자, 원경릉은 곧장 아이들과 교감하며 이 일을 의논하기 시작했다.다섯째는 지금 억제제를 맞은 상황이었다.아이들은 잔뜩 흥분한 채 앞으로 언제든 아버지와 이야기할 수 있다고 좋아했다. 하지만 그는 의식으로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말을 해야 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보면 그를 미친 사람으로 오해할 수도 있었다.목욕을 마친 우문호는 마치 의기양양한 수탉처럼 걸음걸이조차 전보다 더 당당해 보였다."원 선생, 계란이가 그곳이 이곳보다 훨씬 덥고, 과일도 적다고 하오. 과일을 말려, 아이들에게 나누어 보내는 것이 어떻소?"그러자 원경릉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좋소. 그럼 내일 함께 말리는 것이 어떻소?""좋소! 아, 그리고 만두한테도 물어야겠소. 깜빡하고 어디까지 갔는지 묻지를 못했소."우문호는 앉아서 머리를 수건으로 닦은 뒤 다시 눈을 감고 우문예와 대화를 시도했다.그 모습을 보며 원경릉은 차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침대에 누워서도 우문호는 여전히 흥분 상태였다. 그는 두 손을 베고 말했다."원 선생, 당신이 없었으면, 정말 많은 재미를 놓쳤을 것이고, 이렇게 많은 걸 배울 수도 없었을 것이오. 세상에 이런 것도 있다는 것을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소. 우리가 경험한 일들이 정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지조차 믿기 어렵소.""알겠소."원경릉은 그의 충격에 휩싸인 표정을 바라보며 말했다."난 당신이 살던
"그래, 좋구나. 죽여서 천도를 꼭 바로잡아야 한다!"우문호가 말했다."천도?""법이다! 죽여서 법을 바로 세워야 한다!"냉정언이 꼬투리를 잡자, 우문호가 급히 정정하며 억울한 표정으로 까다로운 그를 바라보았다.천도가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그는 요즘 천도를 따르는 것을 원하고 있었다.저녁 무렵 소월궁으로 돌아온 우문호는 흥분한 얼굴로 원 선생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려 했다. 하지만 미간을 찌푸린 채 사색에 잠겨 한쪽에 앉아 있는 원경릉을 발견했다. 그녀는 그가 돌아온 것도 모르는 듯했다."원 선생...?"우문호가 그녀를 부르며 다가갔다.원경릉은 아이들과 교감할 수 없는 문제를 어떻게 이야기할지 고민하며 넋을 잃고 있다가, 우문호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그녀가 다급히 일어나 말했다."돌아왔소? 곧 저녁을 올릴 테니, 손 씻고 오시오."그가 괜히 입맛을 잃을 수도 있으니, 그녀는 일단 배를 채우고 이야기하려 했다.하지만 우문호는 신이 나서 앉더니,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싸며 말했다."급할 거 없소. 할 말 있소."원경릉이 그의 반짝이는 눈을 보며 따라 웃었다."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소? 어찌 이렇게 기뻐하는 것이오?"우문호는 목소리를 낮췄지만, 여전히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오늘 계란이와 연락이 닿았소.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소."그러자 원경릉이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정말이오? 목소리를 들었소? 뭐라고 했소?"순간 우문호의 얼굴에 빛이 나는 듯했다."밥 먹었냐고 물으니, 먹었다고 답하며 나한테 식사를 했는지 물었소. 그래서 굴비를 먹었다고 말했네. 우리를 그리워하고 있고, 조만간 우리를 보러 오겠다고 했소."원경릉은 그의 말이 사실인지 헷갈렸다. 그와 아이들이 교감할 수 있는 것은 자기장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다섯째는 그들과 다른 상황이라 교감이 가능할 리가 없었지만 기쁨에 가득 찬 그의 표정으로 보아, 거짓은 아닌듯했다."말을 한 것이오?"원경릉이 다시 묻자, 우문호가 이내 고개를
점심을 먹은 후, 그녀는 혼자 산꼭대기로 올라가 먼 곳에 있는 금나라의 도성을 바라보았다. 거세게 부는 바람을 느끼며, 그녀는 문득 스승님이 금나라로 돌아갔는지 궁금해졌다.그녀는 스승님이 며칠 더 머물기를 바랐지만,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급히 금나라로 떠났다. 그가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 일은 좀처럼 없었기에 이상했다.방금 들린 낮은 목소리를 떠올리며, 그녀는 순간 스승님이었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아버지의 목소리와 비슷하게 들려, 어머니가 아버지에 대해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설마 아버지의 정신력이 이렇게 먼 곳까지 전달될 수 있는 걸까?그녀는 마음을 집중해 답해 보았다.“아바마마, 저는 식사를 했습니다. 아바마마는 드셨습니까?”한편, 경성 황궁 어서방에서 냉수보, 이리 나리, 탕양, 그리고 몇몇 친왕과 중신들이 과거 시험 개혁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이리 나리가 자신의 의견을 차근차근 얘기하고 있었고 모두가 집중해서 듣고 있었는데, 그러던 중, 우문호가 갑자기 고개를 살짝 기울이더니, 이내 탁자를 세게 내리치며 벌떡 일어났다. 그는 기쁨에 찬 얼굴로, 흥분된 목소리로 외쳤다."먹었어, 먹었다. 굴비를 먹었는데, 정말 맛있더구나."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모두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그가 탁자를 세게 내리치는 바람에 잔이 앞으로 날아가, 열변을 토하던 이리 나리의 얼굴을 강타해 버렸다. 이리 나리는 코를 맞은 것도 모자라, 온몸이 흠뻑 젖고 말았다.이리 나리는 그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천천히 일어나서 옷을 털어내고는,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사과와 해명을 하시지요."그러나 우문호는 여전히 흥분한 상태였다. 그는 이리 나리의 어깨를 붙잡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듣고 있으니, 어서 계속 이야기 하십시오. 나리의 의견이 너무 뛰어나,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습니다! 나리는 정녕 전무후무한 북당 최고 부자입니다! 훌륭합니다!"냉수보가 무표정하게 말했다."북당의 수보는 접니다만."이때, 목여 태감이 황급히 달려와 걱정스러운 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