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원제의 결단“같이 상소한 다른 사람이 있습니까?” 우문호가 물었다.“다른 사람이 더 필요하냐? 이 상소문이 올라가면 적어도 조정의 과반수 이상이 태자비를 엄하게 처단하고, 배후의 동기를 추궁하라고 난리 칠 걸 알고 있는데.” 명원제가 말했다.우문호가 화를 내며, “나라를 망치는 건 경건을 핑계로 몸을 사리는 관리들이면서, 안일한 쾌락을 마다하고 가서 험한 일하는 걸 방해한단 말입니까.”명원제는 이 말을 듣고 속으로 뜨끔한 것이 마치 태자가 자기에게 말하는 것 같아, 헛기침을 하며 논리적이고도 신랄한 말투로, “어찌 되었든 이 일이 커지면 수습하기 어려우니 태자비에게 다시는 문둥산에 가지 못하게 하고, 짐과 재상이 이 일을 잠재울 방안을 고려 하겠다. 과거지사로 어물쩍 넘길 생각이다.”우문호가 고개를 가로 저으며, “아바마마, 안 될 겁니다. 원 선생은 원하지 않을 게 분명합니다.”“그럼 가둬!” 명원제가 꽥 소리를 질렀다. 다섯째는 이 점이 못났다. 집안의 여자 하나 단속을 못하면서 무슨 천하를 다스리겠다는 거야?우문호가 하는 수 없이, “아바마마, 원 선생이 하는 일이 나쁜 일이 아닌데 왜 막아야 합니까? 저들이 뭐라고 하든 마음대로 떠들라고 하고 나병을 낫게 하는 건 우리 북당에 이로우면 이로웠지 나쁠 건 하나도 없습니다.”명원제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짐은 오매불망 북당에 나병을 낫게 할 의원이 나오길 원하나 그건 불가능한 일이야, 당초에 암묵적으로 가는 걸 허락했던 건 요행을 바라는 마음이 있어서 였으나 뒷일을 생각하지 못 했어. 네가 만약 태자비 단속을 못하겠거든, 내가 어명을 내리마.”우문호가 다급하게, “왜 요행입니까? 희……”주재상이 기침을 하며, “태자 전하, 우선 서두르지 마시고 방법을 강구해보도록 하지요.”우문호가 의혹의 눈길로 주재상을 흘겨보며 희상궁 일을 왜 말하면 안 돼지? 태상황 폐하도 이 일을 알고 계시고, 아바마마께서도 어렴풋이 아실 텐데 원 선생이 확실히 나병을 낫게 할 수 있다는 걸.명원제가 두 사람을
문둥산에 있는 태자비궁을 떠날 때 주재상과 우문호가 같이 나갔다.우문호는 잔뜩 열 받아서 호성교 일을 보고하는 것도 잊고 씩씩거리며, “아바마마는 간이 너무 작아요, 뭘 두려워 하십니까? 수백명의 목숨이 달린 일이란 말입니다. 이렇게 엄명을 내려 치료를 하지 못하게 하시면 그들은 죽기를 기다리란 얘기밖에 더 됩니까? 어의가 쓴 처방도 병세를 치료할 수 없는데 어의의 처방대로 계속 약을 보내도 소용 없어요.” 주재상이, “천천히 하시죠, 조급하시면 안됩니다. 나병은 대대로 악질로 여겨와서 뜬금없이 발생하는데 지금까지 원인을 알아내지 못하고 있어요. 폐하께서 근심하시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지금 조정의 문무대신은 물론이고 전국의 백성들도 나병이란 말을 꺼내면 안색이 변하는데 공개하는 건 이성적이지 못합니다. 절대적으로 낫게 한다는 확신이 없다면 말이죠.”우문호가, “희상궁의 병은 낫지 않았습니까? 재상, 왜 내가 말하지 못하게 한 겁니까?”주재상이 우문호에게 눈을 흘기며, “전하는 자신만 생각하십니까? 만약 폐하께서 희상궁이 나병을 앓았다는 것을 아시면 문둥산에 보내지는 않더라도 다시는 황손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실 게 뻔한데, 폐하께서 그리하시면 그건 희상궁에게 목숨을 내놓으라는 것과 같습니다.”우문호는 여기까지 미처 생각 못해서 자기도 모르게, “역시 재상의 배려가 세심하군요.”주재상이 아무렇지도 않게, “줄곧 그 사람의 기쁨과 슬픔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주도면밀해 집니다. 마치 전하께서 방금 폐하께 반드시 낫게 할 수 있다고 보증하지 않으시고 태자비 마마를 위해 여지를 남기신 것처럼 말이죠. 정말 공개했다가 태자비 마마께서 나병을 낫게 하지 못하면 그때는 뭇사람의 비난의 대상이 될 게 분명하니까요.”우문호가 낙심한 채로, “가서 원 선생한테 말하면 분명 길길이 날뛸 텐데.”“태자비 마마는 오늘 산에 가셨나요?” 주재상이 물었다.“갔죠!”주재상이 미간을 찌푸리며, “그럼 사람을 보내 절대로 전에 다니던 길로 가지 말라고 알
태자비를 데리러 문둥산에“경공으로 산을 내려오면 괜찮을 게 틀림없습니다.”이리 나리가 탕양에게, “하지만 태자비는 거의 무공을 모르잖아요.”탕양이 수심 가득히, “그렇지요, 하지만 방법이 없습니다. 일단 올라가봐야 죠.”이리 나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마침 내가 할 일도 없고 같이 갑시다.”탕양은 그가 장사꾼으로 알고 있어서 무공은 상당히 어설플 거라고 짐작했다. 이리 나리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탕양도 나리를 존경하지만 이 순간 그를 데리고 가는 건 일을 그르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산 위는 위험하니 이리 나리께서는 가지 않으시는 편이 좋겠습니다.”이리 나리는 들은 체 만 체 하더니 미색과 몇 마디 주고 받은 뒤 말을 끌고 탕양을 따랐다.탕양은 가슴이 답답했지만 이리 나리에게 안 좋은 소리를 하기도 그랬다. 흰 옷을 빼 입고 말에 앉아 있는 자태가 금방이라도 말 등에서 떨어질 지도 모르게 나약해 보였다. 탕양은 속으로 한숨을 쉬며 있다가 자기가 이리 나리를 안고 밀림을 건너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그렇지 않으면 어쩔텐가? 이리 나리를 산 꼭대기에 버려 두고 올 수도 없다.산 아래엔 분명 누군가가 잠복을 하고 있고 두 사람이 멀리서 보니 여러 장정들이 산 입구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다.장정들은 입고 꾸민 것이 비슷한 것이 어느 집안 시종인지 알아 볼 수 있었다.탕양이 상황을 보더니 고개를 돌려 이리 나리에게, “우리는 밀림으로 산 위로 갑시다.”이리 나리가 담담하게, “왜요? 이쪽으로 가면 안 됩니까?”탕양이 고개를 흔들며, “그건 안됩니다. 저들에게 발각되면 구실을 주는 꼴이 되지 않습니까?”이리 나리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더니 무정하고 비꼬는 듯한 미소를 띠고, “저들은 전부 태자비가 산 위에 있는 것을 아니 우리가 올라가도 뭐가 어떻습니까? 그저 우리가 하산하는 모습만 발견하지 못하게 하면 되지요, 그리고 저들도 감히 산에 올라오지 못할 겁니다. 위에는 문둥병자가 있으니까요.”탕양이, “우리가 밀림으로 가면, 밀림 상황을 좀
기세등등 아라아라가 살짝 깔보듯이, “만약 정말 미움을 살까 걱정되면 알아서 잘 처신하지 그랬어요, 이미 꼬투리 다 잡혀 놓고 누굴 원망하는 거죠? 다시 말하지만 정말 사람을 잡고 있으면 대장군이 알아서 나타날 텐데 뭐가 걱정입니까?”동무가 입을 삐죽거리며, “사람을 잡고 있는 건 일도 아닙니다, 문제는 못 잡으면 전부 제 책임이 되는 거 아닙니까.”아라가 동무에게 차갑게, “동대인, 당신 사람이 산 아래서 잠복하고 있고, 그들이 산에 올라가는 걸 봤으면 산 꼭대기에서 죽지 않는 이상 언젠가는 내려와야 하는데 왜 못 잡죠?”“밀림이 있지 않습니까?” 동무가 말했다.아라가 입꼬리를 치켜 올리며, “밀림으로 내려오면 딱 이죠.”동무가 어리둥절해서, “밀림에 안배해 놓은 게 있습니까?”아라가 고개를 들고 좀 짜증이 나는지, “뭘 그리 물으십니까? 자신이 맡으신 일만 잘 처리하시면 되죠, 가셔서 사람 좀 더 보내세요. 일단 태자비가 산을 내려오는 일행 중에 있으면, 바로 신호를 보내세요. 대장군이 알아서 갈 겁니다.”동무는 하는 수 없이 물러났다.막 마당을 나가는데 안왕비가 인사하며 다가왔다. 안왕비는 동학사의 부인과 아는 사이라 가끔 왕래가 있어서 안왕비도 동학사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동학사와 집에서 마주친 것이 의외인 지라, “동대인, 무슨 일로 오셨나요?”동무는 심장이 벌렁거렸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왕비마마를 뵙습니다. 왕야를 뵙고자 했는데 마침 왕야께서 안 계시는 군요.”말을 마치고 갔다.안왕비는 이상하게 여기며, 왕야는 집에 없는 게 당연하고 조정에서 왕야가 군영에 있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동대인이 화가 난 듯한 모습은 뭣 때문이지?안왕비가 서재 쪽을 바라봤다. 방금 동대인이 서재에서 나왔고 안에는 아라가 있다?그래서 시녀를 데리고 돌계단을 건너 서재 문을 밀고 들어가니 과연 아라가 의자에 앉아 있는데, 원래는 눈을 감고 있었지만 문이 열리자 갑자기 눈을 번쩍 뜨고 드세게 안왕비를 쳐다보며, “왜 왔죠?”안왕비는 아라
문둥산을 내려가는 방법“그래도 이렇게 방자하게 굴도록 내버려 두시면 안됩니다. 이러다 가는 안왕부에 아라만 있고, 마마께서 계신 줄 아무도 모릅니다.” 시녀가 빠르게 말했다.안왕비가 다독거리며, “네가 억울한 걸 안다, 그래도 참아야 해. 왕야께서 아라는 쓸데가 있다고 하신 말씀을 나는 믿는다.”“어디에 쓰시겠습니까? 꼴이 경박한데.” 시녀가 씩씩거리며 말했다.안왕비도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그러게, 아라를 남겨 둔 게 대체 무슨 쓸모가 있다는 거지? 왕야는 크게 쓸데가 있다는데 어디에? 왕야께서 지금 군영에 있고, 앞으로 공을 세워 조정을 위해 힘을 발휘하실 텐데 고작 모사 하나 집에 남겨 둬서 대체 뭐 하시겠다는 걸까?’안왕비의 마음에 순간 의혹이 일었다.한편, 이리 나리와 탕양이 산에 올라가자 원경릉은 이들이 갑자기 나타난 걸 보고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다. 그래, 최근 너무 순탄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머피의 법칙에 따르면 이렇게 오래 순탄한 게 오히려 불안했다.원경릉이 병자 한 명의 처치를 마치고 일어나 손을 씻고 이리 나리와 탕양에게 와 마스크를 꺼내며, “쓰고 얘기하죠.”두 사람은 시키는 대로 마스크를 하고 이리 나리는 여기 저기 빈둥빈둥 돌아다니는 동안 탕양은 원경릉을 데리고 입구로 가서, “오늘 누가 탄핵 상소를 올려서, 폐하께서 태자비는 다시는 문둥산에 올라가지 못하도록 엄명을 내리셨습니다. 지금 산 아래도 사람이 매복하고 마마께서 내려오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밤 하산은 원래 길로 갈 수 없습니다.”원경릉이 순간 서둘러, “앞으로 못 올라오면 어떻게 하라고? 병자가 얼마나 많은데.”탕양이 안을 보니 일부 민감한 병자들이 이미 이쪽을 보고 있는데 그들의 얼굴에 다소나마 불안이 비치는 것은 여기에 낯선 사람이 오는 일이 아주 드물기 때문이다.탕양이 원경릉에게, “약을 남겨둘 수는 없나요?”“안돼요, 약을 쓰려면 관찰한 뒤 상황에 따라 용량을 조절해야 해서, 약을 두고 알아서 먹던 말던 하라고 할 수 없어요.”
탕양과 원경릉은 서로 마주 보며 거들먹거리며 걸어갔다. 숨기려는 행색도 하지 않아 들키기 마련이다.“나를 믿어야 하네. 미색이 이미 계획을 세워두었으니 걱정 말고.”이리 나리가 말했다.“아니면, 제가 먼저 하산해 보겠습니다.”탕양은 이리 나리를 보며 머뭇거리다가 입을 뗐다.“얼마나 큰일이라고? 이렇게 흐지부지하다가 잘못되면 어쩌려고 그러나? 내가 다 책임질 테니 걱정 말게.”원경릉은 약 상자를 등에 짊어지고 사람들을 보았다.“갑시다. 우리가 왜 겁을 먹고 있습니까!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사람들은 그녀의 말을 듣고 하나 둘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녀를 따라나섰다.이리 나리는 대담한 원경릉의 태도를 보고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그들이 막 길을 나서려고 하는데 작은 그림자가 보였다. 원경릉이 낯선 그림자에 고개를 돌리자 그 앞엔 무동이가 서있었다.“무동아 왜 그래?”원경릉이 고개를 숙여 물었다.무동은 불안한 눈빛으로 원경릉의 뒤를 바짝 따랐다. 무동이 뒤로도 많은 환자들이 원경릉을 보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불안하고 공허한 눈빛이었다.“여러분 왜들 그렇게 불안해합니까?” 무동이를 보던 원경릉이 고개를 쳐들고 물었다. 무동은 그녀의 옷을 끌며 작은 소리로 물었다.“의녀 누이, 앞으로 문둥산에 안 오는 겁니까?”“왜 그렇게 생각해? 당연히 다시 올 거야.”“정말이요? 근데 다른 사람들이 그러던데…… 가면 다신 여기 안 올 거라고.”원경릉의 말을 들은 무동이는 눈을 반짝이다가 이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되물었다.“누가 그래? 아니야! 우리는 반드시 올 거야. 황제의 뜻을 받들어 병을 치료하러 온 건데, 누가 황제의 말을 거역하겠어? 걱정 마.”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일어나 원경릉에게 다가왔다.“정말입니까? 황제께서 우리를 치료하라고 당신들을 보낸 겁니까?”“그럼요. 황제께서 허락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우리가 이 산에 올 수 있겠습니까?”원경릉은 터지려고하는 눈물을 참았다.“우리를 속이지 마세요!” 누
산은 어둡고 캄캄했다. 그들은 탕양이 들고 있는 횃불에 의지해 천천히 산을 내려갔다. 문둥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이렇게 캄캄한 곳에 세상과 동떨어져 살았다니, 그들은 밤마다 얼마나 절망스럽고 세상이 미웠을까? 그런 그들에게 원경릉이 찾아갔을 때, 아마 잠시나마 빛을 보았겠지만 그 빛이 얼마나 희미한지 금방이라도 꺼져버릴 것 같았을 것이다.원경릉은 의사이자 어머니로서 그리고 누군가의 자식으로서 이 비극적인 상황을 지켜보기가 너무 힘들었다. 세상에서 자신의 피붙이와 생이별을 하는 것만큼 슬픈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그녀는 문득 현대에 자신의 가족들이 생각났다. ‘내 눈앞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 가족들도 살아가고 있겠지……’산을 얼마나 내려갔을까 저 멀리서 다른 횃불이 보였다. 누군가가 빠른 걸음으로 달려왔고 그를 보고 탕양은 깜짝 놀라 횃불을 끄려고 하자 옆에 있던 이리가 탕양에게 말했다. “미색이다!”미색은 내려오는 사람들을 발견하고 빠른 걸음으로 올라왔다. 그녀는 붉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횃불에 비친 그녀의 얼굴이 매우 아름다웠다.“이리 나리, 태자비! 아래는 다 해결됐으니 안심하고 산을 내려오시면 됩니다.” 미색이 웃으며 말했다.탕양은 그 말을 듣고도 믿기지 않지만 한시가 급하였기에 미색에 말에 토를 달지도 않고 빠른 걸음으로 산을 내려갔다. 산 밑에 다다르니 약 스무 명의 사람들이 짙은 회색 옷을 입고 있었다. 탕양은 평소와 다른 사람들의 차림새에 망설이면서 선뜻 산 아래로 내려가지 못했다. “다 우리 편이니 겁먹지 마세요!” 미색이 말했다. 미색이 휘파람을 불자 아래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달려와 가지런히 서서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스무 명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몸이 장대했지만 예의가 있었다.“원래 있던 사람들은?” 탕양이 물었다.미색은 풀숲 쪽을 가리키며 “모두 저기서 잠을 자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탕양이 미색이 가리키는 곳으로 가보니 그녀의 말대로 스무 명의 사람들이 너저분하게 누워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며 잠을 자고 있
미색은 속으로 깊은 한숨을 쉬었다.‘나리는 바보 군. 소답화의 십만 냥을 받고 태자비를 암살하기로 해놓고 지금 배가 달하는 이백만 냥을 쓰고, 심지어 오늘은 늑대파 스무 명까지 출동시키고 말이야 이걸 다 값으로 따지면 얼마야? 게다가 문둥산에 가서 병자들을 치료하다니? 이거 정말 밑지는 장사 아니냐고!’이리의 행동에 화가 난 것도 잠시, 미색은 머릿속으로 행복 회로를 굴렸다. ‘그래도 천만 냥의 값어치를 가진 내 신랑감을 찾았으니, 그것만으로도 족하다.’미색은 뭔가 결심한 표정으로 원경릉의 두 손을 잡고 말했다.“태자비, 사실 이리 나리와 제가 여기에 온 목적이 있습니다.”“말해보거라.”“그게……”미색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올랐다.“미색, 왜 그러는가?”“사실 제가 회왕에게 시집을 가려고 합니다. 혹시 태자비께서 좀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여섯째가 마음에 들었느냐?”미색은 고개를 푹 숙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근데 알아봤더니 회왕께서 큰 병을 막 나은 터라 아직 혼담을 하기엔 이르다고……”“그래, 그렇긴 하지만……”원경릉은 회왕에게 푹 빠진 미색의 얼굴을 보고 차마 노비가 반대할 것을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뭐요? 혹시 회왕께서 다른 여인을 마음에 두고 계십니까?” “그건 아니야.”“어우, 깜짝이야! 그것만 아니면 됐습니다! 근데 태자비께서 걱정하시는 게 무엇입니까?”원경릉은 그녀의 두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회왕의 모친인 노비가 너와 회왕의 혼인을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 노비는 고리타분한 성격에 가문을 따지는 사람이라 그리고 황상께서도 아마 그렇게 생각할 것 같고……”미색은 당당한 표정으로 “전 은화도 충분합니다.” 라고 말했다.“은화의 문제가 아니야.”“오백만 냥이 있는데요?”“오백만 냥이라고?” 원경릉은 침이 꼴딱 넘어갔다.“그리고 운영하는 가게도 열 개 정도 됩니다.”원경릉은 미색의 경제적 조건을 듣고 그녀의 손을 맞잡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미색아,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게 얼
원경릉은 도무지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훼천이 자네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고, 심지어 이 아이보다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걸 안다고 하는데, 어찌 위험을 감수하려 하는 것인가? 자네가 없는 세상이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는가? 그에게 이 아이는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네."그들은 혼사 후 줄곧 행복하게 지냈다. 아이가 없어도 아주 만족스러워했다.만약 그녀의 몸이 견딜 수 있다면 문제 없겠지만, 이제 막 임신한 상태에기에 벌써 출혈이 생겼다. 게다가 이후에 그녀가 말하지 않은 다른 증상이 생길 가능성도 높았다.그러면 너무 위험해진다.요 부인이 아랫배를 어루만졌는데, 얼굴에는 모성애가 감돌고 있었다."처음 임신했다는 걸 알았을 때, 나도 이 아이를 포기해야 겠다고 생각했네. 내 몸이 임신과 출산을 견뎌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아이를 없애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순간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네. 난 간절하게 그와의 아이를 갖고 싶네. 너무 이기적인 걸 알지만, 그 바람이 나를 흔들었네. 그가 아버지가 되는 모습을 보고 싶었네.""그는 이미 아버지네. 훼천은 언제나 희열과 희성을 친자식처럼 여겼네."원경릉이 말했다."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했고, 심지어 그 이상으로 많은 것을 해왔다는 것을 알고 있네. 그래서 더욱 미안한 것이네. 다른 여인을 부인으로 맞이했더라면, 자식을 가질 수도 있었을 텐데. 나를 선택한 탓에, 그는 자신의 아이를 가질 수 없네. 그도 정말 아이를 원하는 것을 알고 있는가?""아이를 원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원한 적은 없네. 임신한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말할 용기가 없다는 건, 그도 위험을 감수하는 걸 원치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네."요 부인의 얼굴이 복잡하게 일그러졌다."나도 알지만... 참 아쉽네."그녀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사실 혼사를 올렸을 때, 그도 아이를 더 가질 필요 없이 희열과 희성만으로 충분하다고 했네. 하지만 두 딸은 그의 성을 따를 수 없네. 임신한 적
과거에 아이를 출산한 경험이 있는 미색은 풍부한 출산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훼천은 그녀의 경험이 필요했다.훼천은 미색을 한 대 쥐어박으려 튀어나오려는 손을 억누르며 원경릉에게 다가가 공손히 예를 올렸다."황후 마마, 부디 맥을 짚어 상태를 확인해 주시옵소서."원경릉이 물었다."이미 의원에게 진맥을 받지 않았는가? 회임이 확실한 것인가?""몸이 좋지 않다고 하니, 그제 돌아온 희열이가 맥을 짚어 보고는 임신했다고 했네. 나도 잘 모르겠네."요 부인은 살짝 얼굴을 붉혔다. 이 나이에 임신이라니, 정말 부끄러웠다.그녀는 원경릉을 불러 가까이 오라고 부르더니, 조용히 속삭였다."사실 아닐 수도 있네. 몇 달째 월경을 하지 않아서...""몇 달 동안 하지 않았다니요? 그럼… 임신이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내력이 깊은 미색은 요부인이 원경릉에게 바짝 다가가 낮게 말했지만, 여전히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말았다. 그리고 미색은 바로 입 밖으로 말을 꺼냈다."조용히 하거라!"원경릉이 웃으며 그녀를 나무랐다.‘미색도 참...’"정말 임신한 것인지, 어서 확인해 보게나."손 왕비가 말했다."그럼, 방으로 가세."원경릉은 요 부인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미색도 따라가려 했지만, 훼천이 그녀를 막았다."여기서 기다리시지요. 어차피 의술도 모르잖습니까.""나도 도우려는 것이다. 훼천아, 너도 참... 호의를 몰라주는구나."미색은 목을 길게 빼고 가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그녀는 지금 상황을 제일 먼저 알아내야 했다. 그러자 원용의가 그녀를 붙잡았다."그냥 앉아서 기다리시지요. 임신이 맞는다면 원 언니가 곧 알려줄 것이니."미색에는 다시 훼천을 바라보며 물었다."아이를 낳지 않기로 하지 않았느냐? 어찌 임신을 막는 약을 쓰지 않은 것이냐?"훼천은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그는 지금 너무 걱정되었다.이 나이에 아이를 가지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게다가 희열과 희성도 효심이 깊었고, 외손자까지 얻었기에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리 나리가 말했다."훼천이 집으로 왔는데, 기쁘면서도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소. 그래서 물으니 다 말해주었소. 석 달 동안 비밀로 하려 했지만, 그래도 사전에 검사도 하고 미리 대비하는 게 좋을 것 같아, 황후에게 알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소."목여 태감은 고개를 끄덕이고, 재빨리 원경릉을 찾아갔다.원경릉은 실험실에 틀어박혀 있다가 요 부인이 임신했다는 목여 태감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 손에 들고 있던 실험 도구를 급히 내려놓으며 물었다."정말인가?""부마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목여 태감이 대답하자, 원경릉이 말을 이었다."정말 큰 일이네. 요부인의 건강 상태가 원래 좋지 않았는데, 이제야 임신하다니. 그래도 큰 경사니, 내일 당장 찾아가야겠소."지금은 이미 오후였기에 다음 날 아침 일찍 출발하는 것이 좋았다.저녁이 되어 우문호가 궁으로 돌아오자, 원경릉이 말했다."내일 요부인을 만나러 갈 것이오. 아마 밤늦게 돌아오게 될지도 모르오.""다녀오시오."우문호가 말했다.그는 겉옷을 벗으며 물었다."이 나이에 임신해도 괜찮소?""아직 쉰 살은 안 됐지만, 고령 임산부인 건 맞소. 게다가 건강 상태가 원래부터 좋지 않아서 나도 좀 걱정되오.""그럼 당신이 곁에서 잘 챙겨주시오."우문호가 배려하며 말했다.그는 오래전부터 어디서든 원경릉의 도움이 필요하면 무조건 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오늘 저녁 여섯째도 궁에 왔소. 그래서 이 소식을 전했으니, 아마 내일 미색도 갈 것이오."우문호가 말했다."미색이 알게 됐다면 내일 아주 많은 사람이 몰리겠소."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미색은 비록 수다스럽지는 않았지만, 기쁜 일에는 지나치게 열정적이었다.다음 날 아침, 원경릉은 이른 아침부터 약상자를 들고 출발했다.요부인의 저택 앞에 도착하니, 역시 미색의 마차뿐만 아니라 원용의와 손 왕비의 마차까지 줄지어 서 있었다.문을 들어서자마자 미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언제부터입니까? 대체 언제부터 우리한테 비밀로 하고 있었던
특히 황제가 된 지금, 그는 평화가 있어야만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두 사람은 손을 꼭 맞잡았다. 각자 자신의 신념과 소망을 위해 나아갈 것이다.이틀 후, 이리 나리가 궁에 찾아와 다섯째와 함께 경단이 경성으로 돌아오는 일을 의논했다.그러자 우문호가 의아해하며 물었다."돌아오다니? 난 전혀 몰랐습니다.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었습니다."어젯밤에도 교류했지만, 귀경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다."지금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언제쯤 불러들일 생각인지 묻는 것입니다.""한두 해는 지나고 부를 셈입니다. 무슨 일이십니까?""계획을 세울 생각입니다."이리 나리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1~2년이라면 금방 지나가겠군.’우문호는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속셈입니까?""전에 말했잖습니까? 경단이는 내 가업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제자가 그럴 능력이 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제자의 자식을 탐낼 수밖에요."이리 나리의 제자 원경릉은 장사에 소질이 없었기에 그저 냉가의 가업을 그녀에게 맡길 수 없었다.이리 나리는 전부터 경단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만두는 경성으로 돌아와 군무를 배우고 있으니, 경단도 그의 가업을 이어받아야 할 때였기 때문이다. 한두 해 뒤에 돌아오면, 몇 년만 더 가르치면 대성할 것이었다.그러자 우문호가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 진심이십니까? 냉가의 산업을 몽땅 삼켜버릴까 봐 걱정되지 않습니까?"하지만 이리 나리는 조금도 걱정되지 않았다."우선 몇 년 동안 가르칠 것입니다. 먼저 배울 것이 바로 부친의 뻔뻔한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입니다."우문호가 바로 인상을 찌푸렸다."내 아들을 데려가면서, 어찌 이득도 못 보게 하는 것입니까?!""이득은 무슨, 이건 그야말로 통째로 삼켜버리는 거잖습니까? 욕심이 너무 크십니다."이리 나리는 옷소매를 휘날리며 자리에 앉은 후, 목여 태감에게 말했다."황후에게 가서 전하시오. 할 일이 생겼다고."목여 태감은 어리둥절했다."부마, 황후 마마께서 무슨 일을 하셔야
우문호는 종일 바빴다. 그는 차 한 잔을 들고 멀리 있는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특별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아닌, 그저 밥은 먹었는지, 무엇을 먹었고 내일 무엇을 할 셈인지 묻는 것 뿐이었다. 더불어 아이들에게 요즘 잘 지내는지, 무슨 책을 읽고 있느지에 대해서도 물었다.마치 처음으로 전화기를 접한 시골 사람처럼 신기해했지만 그는 마땅한 대화 주제를 찾지는 못했다.한편 원경릉은 홀로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우문호는 이미 능숙해진 듯 보였고, 심지어 목욕하러 가면서도 아이들에게 말을 남겼다.그가 목욕하러 가자, 원경릉은 곧장 아이들과 교감하며 이 일을 의논하기 시작했다.다섯째는 지금 억제제를 맞은 상황이었다.아이들은 잔뜩 흥분한 채 앞으로 언제든 아버지와 이야기할 수 있다고 좋아했다. 하지만 그는 의식으로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말을 해야 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보면 그를 미친 사람으로 오해할 수도 있었다.목욕을 마친 우문호는 마치 의기양양한 수탉처럼 걸음걸이조차 전보다 더 당당해 보였다."원 선생, 계란이가 그곳이 이곳보다 훨씬 덥고, 과일도 적다고 하오. 과일을 말려, 아이들에게 나누어 보내는 것이 어떻소?"그러자 원경릉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좋소. 그럼 내일 함께 말리는 것이 어떻소?""좋소! 아, 그리고 만두한테도 물어야겠소. 깜빡하고 어디까지 갔는지 묻지를 못했소."우문호는 앉아서 머리를 수건으로 닦은 뒤 다시 눈을 감고 우문예와 대화를 시도했다.그 모습을 보며 원경릉은 차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침대에 누워서도 우문호는 여전히 흥분 상태였다. 그는 두 손을 베고 말했다."원 선생, 당신이 없었으면, 정말 많은 재미를 놓쳤을 것이고, 이렇게 많은 걸 배울 수도 없었을 것이오. 세상에 이런 것도 있다는 것을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소. 우리가 경험한 일들이 정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지조차 믿기 어렵소.""알겠소."원경릉은 그의 충격에 휩싸인 표정을 바라보며 말했다."난 당신이 살던
"그래, 좋구나. 죽여서 천도를 꼭 바로잡아야 한다!"우문호가 말했다."천도?""법이다! 죽여서 법을 바로 세워야 한다!"냉정언이 꼬투리를 잡자, 우문호가 급히 정정하며 억울한 표정으로 까다로운 그를 바라보았다.천도가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그는 요즘 천도를 따르는 것을 원하고 있었다.저녁 무렵 소월궁으로 돌아온 우문호는 흥분한 얼굴로 원 선생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려 했다. 하지만 미간을 찌푸린 채 사색에 잠겨 한쪽에 앉아 있는 원경릉을 발견했다. 그녀는 그가 돌아온 것도 모르는 듯했다."원 선생...?"우문호가 그녀를 부르며 다가갔다.원경릉은 아이들과 교감할 수 없는 문제를 어떻게 이야기할지 고민하며 넋을 잃고 있다가, 우문호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그녀가 다급히 일어나 말했다."돌아왔소? 곧 저녁을 올릴 테니, 손 씻고 오시오."그가 괜히 입맛을 잃을 수도 있으니, 그녀는 일단 배를 채우고 이야기하려 했다.하지만 우문호는 신이 나서 앉더니,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싸며 말했다."급할 거 없소. 할 말 있소."원경릉이 그의 반짝이는 눈을 보며 따라 웃었다."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소? 어찌 이렇게 기뻐하는 것이오?"우문호는 목소리를 낮췄지만, 여전히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오늘 계란이와 연락이 닿았소.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소."그러자 원경릉이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정말이오? 목소리를 들었소? 뭐라고 했소?"순간 우문호의 얼굴에 빛이 나는 듯했다."밥 먹었냐고 물으니, 먹었다고 답하며 나한테 식사를 했는지 물었소. 그래서 굴비를 먹었다고 말했네. 우리를 그리워하고 있고, 조만간 우리를 보러 오겠다고 했소."원경릉은 그의 말이 사실인지 헷갈렸다. 그와 아이들이 교감할 수 있는 것은 자기장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다섯째는 그들과 다른 상황이라 교감이 가능할 리가 없었지만 기쁨에 가득 찬 그의 표정으로 보아, 거짓은 아닌듯했다."말을 한 것이오?"원경릉이 다시 묻자, 우문호가 이내 고개를
점심을 먹은 후, 그녀는 혼자 산꼭대기로 올라가 먼 곳에 있는 금나라의 도성을 바라보았다. 거세게 부는 바람을 느끼며, 그녀는 문득 스승님이 금나라로 돌아갔는지 궁금해졌다.그녀는 스승님이 며칠 더 머물기를 바랐지만,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급히 금나라로 떠났다. 그가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 일은 좀처럼 없었기에 이상했다.방금 들린 낮은 목소리를 떠올리며, 그녀는 순간 스승님이었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아버지의 목소리와 비슷하게 들려, 어머니가 아버지에 대해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설마 아버지의 정신력이 이렇게 먼 곳까지 전달될 수 있는 걸까?그녀는 마음을 집중해 답해 보았다.“아바마마, 저는 식사를 했습니다. 아바마마는 드셨습니까?”한편, 경성 황궁 어서방에서 냉수보, 이리 나리, 탕양, 그리고 몇몇 친왕과 중신들이 과거 시험 개혁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이리 나리가 자신의 의견을 차근차근 얘기하고 있었고 모두가 집중해서 듣고 있었는데, 그러던 중, 우문호가 갑자기 고개를 살짝 기울이더니, 이내 탁자를 세게 내리치며 벌떡 일어났다. 그는 기쁨에 찬 얼굴로, 흥분된 목소리로 외쳤다."먹었어, 먹었다. 굴비를 먹었는데, 정말 맛있더구나."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모두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그가 탁자를 세게 내리치는 바람에 잔이 앞으로 날아가, 열변을 토하던 이리 나리의 얼굴을 강타해 버렸다. 이리 나리는 코를 맞은 것도 모자라, 온몸이 흠뻑 젖고 말았다.이리 나리는 그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천천히 일어나서 옷을 털어내고는,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사과와 해명을 하시지요."그러나 우문호는 여전히 흥분한 상태였다. 그는 이리 나리의 어깨를 붙잡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듣고 있으니, 어서 계속 이야기 하십시오. 나리의 의견이 너무 뛰어나,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습니다! 나리는 정녕 전무후무한 북당 최고 부자입니다! 훌륭합니다!"냉수보가 무표정하게 말했다."북당의 수보는 접니다만."이때, 목여 태감이 황급히 달려와 걱정스러운 얼
같은 균이긴 하지만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어, 이곳에서 처리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일이었기에, 이제 양여혜에게 기대는 수밖에 없다.원경릉은 귀영위 나장군과, 경천의 일을 담은 편지를 써 양여혜에게 보내면서, 혹시 해결책이 있는지도 함께 물었다. 주변 나라의 안정은 북당에게 중요한 일이다. 특히 두 나라는 이제 막 협력을 시작한 상황이었기에, 주변 나라의 안정은 북당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우문호는 어서방에서 신하들과 함께 국사를 논하며 식사하고 있었다.즉위한 이후부터 그는 늘 배불리 먹을 수 있지만, 간소한 식사를 해왔다. 사적으로 모임을 가질 때는 이리 나리가 따로 준비하기에 밥상은 꽤나 풍성했다.우문호는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신하들과 모여 식사하며,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때로는 취한 신하들이 거리낌 없이 말하기도 했지만, 실언으로 황제가 화를 내지 않는 것을 알고 자유로이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그 덕분에 군신 간의 관계는 유례없이 돈독해질 수 있었다.오늘 역시 분위기가 좋았다. 우문호는 어제처럼 화를 내지 않고, 차근차근 일을 처리하게 명을 내렸다. 그리고 만두도 서일과 함께 보내어, 실무를 배우게 했다.식사를 마치자마자 신하들은 너도나도 밖으로 나가 몸을 움직이며 소화를 시켰다.우문호는 궁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오가는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원 선생이 실험실에 있을 테니, 그녀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그는 어서방에 있는 연탑에 걸터앉아 다리를 꼬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는 다시 계란이와 교감을 시도했다.그는 안에 있던 시종들을 모두 내보냈고, 심지어는 목여 태감도 물러나게 했다.그는 원 선생이 말한 대로 잡념을 비우고 오로지 계란이와의 교감을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계란아, 밥은 먹었느냐?"하지만, 오랫동안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능력이 부족한 것인지 의심스러워했지만, 천천히 배우다 보면 언젠가는 익숙해질 것이니, 걱정은 하지 않았다. 똑똑하며, 타고난 재능까
점심때가 되자 희 상궁은 궁을 떠났고, 사식이도 아이를 돌보러 돌아갔다. 원경릉이 실험실로 가려고 할 때, 목여 태감이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왔다. 원경릉이 문을 나서는 모습을 보고, 그가 다급히 소리쳤다."마마,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원경릉은 그의 다급한 모습에 깜짝 놀라 물었다."무슨 일인가?! 어서방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것인가?""아닙니다, 그건 아닙니다."목여 태감은 자리에 가만히 서서 눈치라도 보는듯, 계속 뒤를 힐끔 돌아보았다. 문득 녹주와 기라가 전각 밖에 서 있는 것을 보고, 그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다들 일을 보거라. 마마께 드릴 말씀이 있다."녹주와 기라는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눈치채고 공손히 예를 올리며 물러났다.목여 태감이 심각한 표정을 짓자, 원경릉도 덩달아 긴장되었다. 그녀는 그를 전각 안으로 불러 앉히며 말했다."태감, 대체 무슨 일인가?"목여 태감은 조회에 따라갔을 때부터 이 말을 꺼내지 못해 속이 타들어 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황제가 어서방에서 대신들과 함께 식사하는 틈을 타 급히 마마를 찾아온 것이었다. 전각에 들어온 그는 숨도 제대로 고르지 못한 채 서둘러 말했다."마마, 오늘 축시쯤에 일찍 일어나 폐하의 시중을 들려고 밖으로 나섰습니다. 그제야 폐하께서 전각 밖에서 혼잣말하고 계신 것을 보았지요. 공주의 이름을 여러 번 부르시는 것으로 보아, 공주를 너무 그리셔서 넋을 잃으신 게 아닌지 걱정됩니다. 폐하께는 감히 여쭤볼 수가 없기에, 이렇게 마마께 보고드리러 왔습니다. 폐하께 약이라도 지어 드리는 건 어떤지요?""전각 밖에서 혼잣말을 했다니?!"원경릉은 그만 깜짝 놀랐다. 며칠 동안 바삐 움직였고, LR과 어린 황제의 일로 고민이 깊어진 터라, 어젯밤 그녀는 깊이 잠들어 있었기에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예. 공주의 이름을 몇 번이나 부르셨습니다."그는 원경릉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까 봐, 황제의 모습을 흉내 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계란아, 계란아, 자고 있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