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원경릉은 그가 말을 꺼내기 전에 언제 문둥산에 갈 수 있느냐고 물었다. 우문호는 밥을 씹지도 않고 삼키더니 소매로 입을 닦고 근엄한 표정으로 원경릉을 보았다.“일단 식생활 개선부터 하자. 이번엔 내가 식량 수송하는 사람들을 따라 문둥산 어귀까지 갔으니 조정의 사람들이 이 일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펴보자.”그녀에게 문둥산이 의학원 설립보다 급한 일이었다. 하산한지 이미 열흘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진행된 게 없다니 원경릉은 마음이 조급했다.“너무 조급할 필요 없어. 게다가 지금 넌 태자비 신분이야. 모든 이들이 반대하고 꺼려 하는 곳에 네가 굳이 가야 한다면 그만한 이유를 만들어야 해.” 우문호가 말했다.“일단 식사부터 개선이 되어야 그다음을 생각할 텐데…… 만약 3일 안에 이 일이 조정에서 거론되지 않거나 부황께서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자. 몰래라도 좋으니 문둥산에 가봐야겠어.”“그래, 그렇게 해야 네 마음이 편하다면 그렇게 해.” 우문호도 문둥산의 일을 질질 끌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하인을 불러 그릇을 치우게 한 후 원경릉과 함께 아이들을 보러 갔다.우문호는 그제야 이리 나리에 대한 일이 생각나서 원경릉에게 말했다.“우리 왕부의 마차가 그 사람을 쳤다면, 당연히 우리가 치료해 줘야지.”“탕양이 말하길 이리 나리가 돈이 많아서 경중 곳곳에 여인숙을 차렸다며? 탕양도 전에 그 여인숙에 묵었는데, 지갑을 도둑맞아서 숙박비 계산을 못하고 있었대. 근데 이리 나리가 그의 상황을 듣고 너그럽게 봐줬다고 하더라고.”“전에 탕양이 말했던 기억이 있어. 근데 탕양이 여인숙이래? 하하. 너한테 진실을 말하지는 않았구나? 아무튼 거긴 여인숙이 아니야. 이리 나리가 가장 많이 소유하고 있는 것은 기루야.”“뭐? 기루라고? 상상도 못했어!” 원경릉은 이리 나리 같은 얼굴로 기루를 운영하고 있다는 게 놀라웠다.“왜? 기루가 불법도 아니고. 성매매만 하지 않으면 돼.” 우문호는 그녀의 반응에 곁눈질을 했다.“아무튼
이리 나리가 미색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미색이 놀란 표정으로 머리를 쳐들었다. 미색은 우문호를 한참 동안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고개를 숙이고 이리 나리에게 다시 귓속말을 했다. 이리 나리는 불만스러운 얼굴로 우문호를 차갑게 한번 훑어보더니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휙 돌렸다. 원경릉은 우문호가 두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우문호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저 두 사람이 이리 나리랑 시녀인가?”우문호가 물었다.“응. 가서 인사를 하자.”두 사람은 회랑을 지나 이리 나리와 미색을 마주했다.“태자 전하를 뵙습니다.”이리 나리가 원기둥에 반쯤 기대어 있다가 두 사람이 걸어오는 것을 보고 두 손을 뻗어 우문호의 손을 맞잡았다. ‘세상에 이렇게 잘 생긴 태자가 저런 추녀와 혼인을 했다니……’이리 나리가 속으로 생각했다. 이리 나리는 우문호의 옆에 있는 원경릉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맨얼굴의 원경릉은 약간의 홍조를 띠고 있었고 수수해보였다.우문호는 이리 나리의 얼굴을 보며 온화한 목소리로 물었다.“이리 나리 크게 다치시진 않으셨나요? 본왕의 가신이 나리를 다치게 했다니 참으로 죄송합니다.”“전하께서 사과할 필요 없습니다. 아랫사람이 잘못한 것이지 전하께서는 잘못하신 게 없습니다. 그리고 며칠 몸조리를 하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서일은 회랑 끝에서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화가 났다. ‘저 사람…… 태자 전하에게 고자질을 하다니! 있는 것들이 더 한다더니!’우문호는 그들을 데리고 본관으로 들어가더니 아침식사를 같이 하자고 했고 두 사람도 사양하지 않았다. 이리 나리는 자리에 앉은 후 미색을 소개했다.“이 사람은 제 의매(義妹)인 미색입니다. 미색아, 넌 태자 전하를 본 적이 있지?”미색은 이리 나리의 말을 듣고 합장을 하더니 서먹서먹한 얼굴로 인사를 했다.“미색 태자 전하와 태자비를 뵙습니다.”“아 이리 나리의 누이동생이시구나. 지금까지 이리 나리의 시녀인 줄 알았네요. 미색, 너무 예의를 차릴 필요 없습니다. 어서 앉
우문호가 간 뒤이 이리 나리와 미색도 방으로 돌아갔다. 이리 나리는 미색에게 문을 닫게 하고는 씩씩거리며 말했다.“태자를 봐! 얼마나 좋은 신랑감이야? 너도 나이가 그만큼 먹었으면 생각을 해야지! 그러니 아직도 시집 못 가고 있지!”“나리, 다 좋지만 딱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있습니다. 태자에게는 태자비가 있지 않습니까?”“그럼 두 사람을 갈라놓으면 되잖아.”“그건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만……”미색은 오늘 태자가 관아로 가기 전에 태자비의 이마에 입을 맞추던 장면이 떠올라 고개를 저었다. 이리 나리는 소극적인 그녀의 태도에 화가 나서 탁자를 내리쳤다. “네가 그러니 시집을 못 갔지! 아이고!”“그럼 나리는요? 나리는 장가들었습니까? 재산이 그렇게 많으면 뭐 합니까? 시집을 오겠다는 여자가 없는데.”“지금 나를 걸고넘어지겠다? 남자는 나이가 들수록 값어치가 올라간다고! 네가 그걸 알기나 해? 그리고 나같이 완벽한 남자에게 어울리는 여자가 어디 있단 말이야?”“아이고……”“그나저나 저렇게 잘생긴 태자가 왜 저런 여인을 아내로 삼은 거지? 태자비의 집안이 좋은 것도 아니고 인물도 썩 별로인데,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네……”“태자비의 얼굴도 그리 나쁘진 않던데요? 뽀얀 얼굴에 불그스름한 볼이 수수해 보이고 성격도 온화하니 좋던데요.” 미색은 찻잔에 차를 따르며 그의 말에 반박했다. “성격이 좋다고? 네가 태자비를 얼마나 봤다고 성격이 좋대?”“딱 보면 알죠. 얼굴에 귀티가 흐르는 것이 배운 것도 많고 똑똑해 보이던데요. 그리고 제가 낯선 환경에 어색해하는 것 같으니 저를 보며 웃어주기도 했잖아요. 그런 걸 보면 성격이 보이죠.”이리 나리는 자신의 생각과 전혀 다른 미색을 보고 화가 치밀어 그녀를 밖으로 쫓아냈다. 이리 나리와 미색은 그날 이후로부터 3일을 더 지냈다. 그동안 두 사람은 격일로 아침에 많은 사람들이 초왕부로 찾아와 약을 받는 것을 발견했다. 이리 나리는 왕부에도 어의가 있으니 입궁해서 약을 처방받는 것보다 왕부에서 받는
우문호는 고민하는 원경릉을 보고 통쾌한 답을 내었다.“그럼 팔자! 설랑들은 주인을 잊지 않으니 판다고 하더라도 금방 아이들 곁으로 돌아올 걸?”원경릉은 그의 말을 듣고 놀란 눈빛으로 “정말로? 설랑들이 돌아올까?” 라고 물었다. “물론이지 설랑들은 한번 주인으로 섬기면 죽을 때까지 주인의 곁을 지키거든. 지능이 높고 충성심이 강하니 팔려가도 스스로 돌아올 거야.”우문호의 말을 듣고 원경릉은 마음이 흔들렸지만, 이런 사기 행각에 발을 담그면 안 된다는 생각에 고개를 이내 마음을 접었다.“그나저나 문둥산 얘기는 부황께 말씀드렸어?”“부황께서 딱 한 마디 하셨어.”“뭐라고? 안된다고 하신거야?”우문호는 원경릉의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고 조용히 말했다.“꺼지라고.”“그럼 어떡하지? 지금도 시간이 많이 지체됐는데 말이야. 이렇게 시간을 계속 끌 수는 없어.”우문호는 조급해하는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조급해 하지 마. 이미 재상에게 말을 해두었으니 재상이 추후에 부황을 설득하기만 하면 돼. 정 안되면 몰래라도 문둥산에 올라가지 뭐.”라고 말했다. 원경릉은 문둥산에 있는 환자들이 죽을 날만 기다리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다. “하지만, 부황의 뜻을 어기고 몰래 문둥산에 올라가서는 안 돼.”“사람의 목숨이 더 중요하지 죗값은 그 이후에 치르면 돼.”“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거야?” 원경릉이 웃었다.“아 맞다! 이리 나리가 부중에 나흘이나 계셨는데 아직 정식으로 대접한 적이 없잖아. 내가 내일 연회를 열 생각인데 어때?”우문호가 말했다.“그래. 그 일은 탕양에게 부탁하자.”원경릉은 당장 내일 열릴 연회보다 문둥산의 일이 더 걱정됐다. “어제 부황께서 내년부터는 고복원(孤福院)으로 보내는 은화를 삭감하기로 하셨어. 그래서 난 민간에 부유한 상인들을 선동해 기부를 하게끔 유도하려고 해. 지금 북당의 경제가 암울하지만, 아마 내년부터 경제가 나아지기 시작할 거야. 후년엔 정상적으로 돌아오겠지.”“너 설마 이리 나리에게 접근하려는 거야?”
이리 나리는 여자들을 잘 알았다. ‘여자들은 선물 몇 개 주고, 듣기 좋은 말로 아첨 몇 번 하면 바로 넘어오게 되어있어.’왕부에 있는 동안 부상 때문에 많이 돌아다니지는 못했지만 지금은 상처가 많이 나아서 계획을 진행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다음날 아침, 그는 미색을 불러 초두취(梢頭醉)를 시켜 귀한 선물을 가져오라고 했다.미색은 번쩍거리는 비단함을 들고 들어와 탁자 위에 놓고는 웃으며 말했다.“이 유월검(流月劍)은 한 번도 꺼낸 적이 없으니 그대로 선물로 드리면 되겠네요.”“이 검은……” 이리 나리는 그 자리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왜요? 태자비에게 주려니 아깝습니까?”“이건 당숙이 내게 준 청망검인데…… 이 검을 값으로 따지자면 천금이 넘어! 근데 이걸 원경릉에게 주자니 참으로 아깝구나.”“그럼 다른 걸 줘요.”“다른 적당한 게 있느냐?”미색은 고개를 저었다.“여기엔 없죠. 금 몇 상자와 무기를 제외하고는 없습니다.”“그럼 금을 주는 게……”“에이, 선물인데 금을 주면 너무 속이 보이잖습니까?”이리 나리는 원경릉을 남편과 아이 곁에서 떼어놓게 할 심산이었기에 그냥 유월검을 그녀에게 선물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 그냥 이 검을 주자.”“맞다! 듣자 하니 왕부에서 우리 둘을 위해 오늘 밤 연회를 연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밖이 아주 시끌벅적합니다.”“정말로? 그거 잘 됐네! 안 그래도 이곳은 너무 지루했거든. 연회라면 좋은 술도 있겠지?”“하인들이 옮기는 술을 보니 그리 질 좋은 술이 아니더라고요. 아니면 나리, 저장고에 있는 술을 꺼내는 건 어떠십니까? 하인들 보고 몇 개 나르라고 할까요?”이리 나리는 연회가 열린다는 생각에 들떠 아무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화려한 장식과 맛있는 음식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따분한 것은 못 견디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늑대파의 규율이 있어 망정이지 늑대파가 없었으면 그는 방탕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그는 비단함을 안고 한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절뚝거리며 밖으로
이리 나리는 미간을 찌푸렸다. ‘태자가 아직도 안에 있단 말이야?’서일의 말을 듣고 우문호와 원경릉이 함께 나왔다. 두 사람은 아주 예쁘게 차려입고 있었으며 특히 우문호의 갓 씻은 듯한 뽀송뽀송한 얼굴이 돋보였다. 그는 독수리가 수놓인 흰색의 비단 옷을 입고 허리에는 금이 박힌 옥띠를 두르고 있었다.원경릉도 흰색 비단 옷에 큰 작약이 수놓인 풍성한 치마를 입고 있었으며 위에 걸친 저고리는 석류처럼 생기 있는 붉은색이었다. 하얀 치마에 상반되는 저고리 덕분에 독특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느낌이 났다. 이리 나리는 전과는 다른 두 사람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옷이 날개라고 저렇게 입고 있으니 정말 태자와 태자비 같네.’두 사람은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이리 나리 앞에 섰고, 이리는 화려한 두 사람의 치장에 기가 눌렸다. 이리는 고개를 들어 원경릉을 보았다. 그는 그제야 미색이 원경릉의 용모를 칭찬했던 이유를 알게 됐다. ‘이렇게 보니 얼굴에 귀티가 좀 흐르는 것 같군……’이리 나리는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비단함을 들고 두 사람에게 인사를 했다.옆에 있던 서일이 이리의 손에 들린 비단함을 가리키며 “이 선물을 전하러 오셨답니다.”라고 말했다.그 말을 듣고 이리는 비단함을 원경릉에게 주었다. 비단함을 받은 원경릉은 서일에게 뚜껑을 열어달라고 부탁했고, 서일은 뚜껑을 열자마자 기함을 토했다.“세상에! 이렇게 귀한 검을 선물로 가져오신 겁니까? 비취가 박혀있는 검이라니, 이건 무슨 검입니까?” 서일이 물었다.“청망검(青芒劍)일세.” 이리는 서일의 촐싹거리는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를 째려보았다.“그럼 이게 그 전설 속의 검이라는 말입니까? 쇠를 단번에 자르는 그 청망검이라고요? 대단합니다!”이 상황을 지켜보던 탕양이 서일에게 다가와 그의 옷자락을 끌었다. “이것은 나리께서 전하께 드리는 선물인데, 네가 거기서 주절주절 떠들 이유가 뭐가 있느냐? 버르장머리 없이…… 어르신들 말씀 나누시는데 끼어들어가지고!”우문호가 비단함에 담긴 청망
이리는 거문고를 받더니 자세를 단정히 하고 두 손으로 거문고의 현을 떼자 우문호는 그 소리에 맞춰 검을 들었다. 두 사람이 모두 흰옷을 입어서 그런지 가을바람에 나부끼는 옷자락과 눈부신 햇살이 조화롭게 느껴졌다. 우문호의 검무는 자세가 멋지고 일반 검무처럼 살기가 가득하지 않아 보기가 편했다. 그는 음악에 맞춰 검을 돌리거나 허공에서 공중재비를 돌며 자신의 무술 실력을 뽐내었다. 거문고 소리는 그의 검무에 힘을 실어 주었고 이리도 기분이 좋은 듯 미소를 지으며 현을 뗐다.두 사람의 합이 잘 맞자 그것을 지켜보던 원경릉은 마치 전생에 연인이었던 두 사람을 자신이 갈라놓은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특히 우문호가 검무를 출 때 고개를 들어 이리를 바라보는데 그 눈빛은 맑았고 미소는 아름다웠다. 그럼 이리는 그에 눈빛에 보답이라도 하듯 거문고를 경쾌하게 연주했고 우문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검을 들고 이리저리 파도처럼 일렁였다.“우와!”사람들은 두 사람의 모습에 넋을 잃었다. 술을 가지러 갔던 미색은 소월각 쪽에 사람들이 모여있자 빠르게 다가와 무슨 상황인지 파악했다. 미색은 우문호가 검무를 추고 있는 것을 보고 술을 내려놓고 자신의 검을 빼어 같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미색이 함께 춤을 추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감탄을 멈추지 못했다. 그녀가 입고 있는 검은 꽃이 수놓인 청색 옷이 우문호가 입은 흰옷과 어울리자 묘하게 두 사람 사이에 긴장감이 느껴졌다.두 사람의 춤을 보던 원경릉은 입을 다물지 못했고, 다시 한번 우문호에게 반했다. 원경릉의 눈에서는 꿀이 뚝뚝 떨어졌고, 우문호가 추는 검무가 마치 슬로모션이 걸린 것처럼 보였다.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곡조가 끝이나 자 검무도 끝이 났다. 원경릉은 정원에 핀 꽃을 하나 꺾어 우문호에게 다가갔다.“검무가 너무 아름다웠어. 이건 약소하지만 아름다움에 대한 대가야.”우문호는 웃으며 그녀의 꽃을 받아들었다. “내가 네 앞에서 검무를 처음 춘 것도 아닌데 새삼스럽긴.”“이번
이리 나리는 우문호의 감사 인사에 빙그레 웃었다. “보검(寶劍)이 진짜 주인을 찾은 것 같아 제가 더 기쁩니다.”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보며 각자의 목적은 숨긴 채 웃었다. 거문고 연주에 맞춰 검무를 추었던 덕분인지 두 사람 사이에 흐르던 서먹서먹한 공기는 사라졌다. 우문호는 이리를 안으로 초대하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리는 우문호의 검무를 칭찬하며 그의 검법에 대해 배우고 싶어 했다. 우문호의 검무는 매서움과 부드러움이 공존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긴장감을 놓칠 수 없게 했다.“배우고 싶다고 하시니 가르쳐 드리지요. 정원으로 갑시다.”우문호는 이리를 데리고 정원으로 나와 검을 쥐게 했다. 우문호는 이리를 보며 천천히 검을 휘둘렀고 이리는 그의 형상을 따라 했다. 우문호는 이리의 검 실력을 보고 안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자신의 검은 칼집에 넣고 이리에게 가까이 다가와 그의 뒤에 몸을 밀착해 검을 쥐는 법부터 어떻게 휘둘러야 하는지를 가르쳤다. 이 모습을 본 하인들은 태자께서 세심한 면이 있다며 감탄했지만, 서일의 눈에는 그 모습이 소름 끼치게 이상했다.서일은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항간에 떠도는 소문이 맞았네! 이리 나리가 남자를 좋아한다고 소문이 파다하던데!”라고 말했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돌려 서일을 보았고, 다행스럽게도 정원에 있던 두 사람은 서일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 같았다.탕양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서일의 입을 막기 위해 달려왔다. “그 입 닥쳐! 어디서 허튼소리를 해!”하지만 그의 옆에 있던 미색은 서일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을 믿다니요. 용모가 출중한 이리 나리께서 아직 장가를 들지 않으셔서 그런지 사람들이 이상한 소문을 많이 내더군요. 근데 그런 천박한 소문을 초왕부 사람이 믿다니…… 좀 의외입니다.”서일은 미색의 말에 반박을 하려고 했고, 탕양은 그의 입을 막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입 다물어! 한마디만 더 했다가는 네 주둥이를 잘라버릴 거야!”“제가 그런 소문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